지방 청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꿈꾼다는 것
지방 청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꿈꾼다는 것
청년 문제는 수도권에 사는 청년의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지방 청년의 문제는 뒷전이다. 하지만 지역 불균형이 청년 세대를 만났을 때 청년 문제는 훨씬 더 악화된다.
100명 중 53명. 우리나라 20~39세 인구 가운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의 비율이다(2017년 5월 통계 기준). 전체의 절반이 넘기에, 서울과 그 인근 청년들은 종종 대한민국 청년의 대표성을 부여받는다. 특히 ‘청년 문제’를 논할 때 그 대표성은 더 두드러진다. ‘청년 주거 문제’는 서울 주요 대학가의 원룸 시세를 기준으로 이야기되고, ‘청년 노동 문제’는 서울 지역 프랜차이즈 아르바이트생들의 처우를 중심으로 그 해결책이 모색되는 식이다.
100명 중 47명.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방 거주 청년들의 목소리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지방 청년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기보다 서울 사람들에 의해 서울의 관점으로 ‘말해져’왔다. 이 관점에서 지방 청년 문제란 지방의 (열악한) 환경을 뚫고 (선진화된) 서울의 대학 혹은 일자리로 진출할 때 겪는 차별 정도로 축소된다. 지방에서 현재 살고 있고 살아가기 위한 청년의 고민이 아니라 지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청년의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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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부산청년정책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방 청년들의 고민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47명의 고민은 53명의 고민과 같되 다르다. 주거, 노동, 교육, 취업, 문화 측면에서 지방 청년은 서울 청년과 정도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단순히 청년 보편의 문제로 묶을 수 없는 ‘결 다른’ 지방 청년들의 문제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 고질적 병폐인 지역 불균형이 청년 세대를 만났을 때 청년 문제는 훨씬 더 악화된다. 사회가 함께 고심하는 해결책은 보편적 의제로 수렴되기 마련이지만, 이들이 겪는 특수한 어려움은 개인이 돌파하게끔 내맡겨져 있다. 이 각자도생의 짐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 질 방법을 찾기 위해, <시사IN>은 광주·대구·부산·울산·원주 등 다양한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를 찾아 나섰다.
■ “여기에선 200만원 이상 벌기 힘들어요”
광주에 사는 3년차 직장인 정도연씨(가명)는 말했다. “항상 돈에 쪼들려요. 매달 월급은 나오지만, 서울 가서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너무 적어요. 생활에 필요한 것이나 하고 싶은 것들은 그 친구들과 비슷한데…. 매일 그만둘까, 이직할까만 생각하고 있어요.”
지방은 1인당 평균 소득이 낮다. 2015년 시도별 개인소득 통계를 보자(오른쪽 <표> 참조). 울산(2001만원)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개인소득이 서울(1997만원)과 큰 차이로 뒤떨어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은 다른 세대에 비해 소득수준이 열악하다. 지난해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30세 미만의 가구소득(3406만원)은 전체 평균 4770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전해에 비해 소득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세대도 30세 미만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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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6월16일 광주 조선대학교 후문 ‘동네줌인’에서 진행된 청년 상담 토크쇼 ‘고민툭 고민Talk’에서 안대로 눈을 가린 참석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
낮은 ‘지방’ 소득이 낮은 ‘청년’ 소득을 만나면 어떨까? 이를 보여주는 전국 통계는 아직까지 나온 바가 없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청년단체가 각각 조사한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구 청년유니온이 지난해 만 15~39세 청년 노동자 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 지역 직종별 청년노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 지역 청년들의 한 달 평균임금은 175만원이었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1.5시간. 시급으로 나누었을 때 간당간당하게 최저임금을 넘기는 수준이다.
전주 청년단체 ‘청년들’에서 전주시 등 전북권에 거주하는 청년 107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주 청년 월평균 소득액은 140만원으로 나타났다. 광주시 ‘2015년도 광주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39세 청년 가구 가운데 16.1%가 월평균 100만원, 54.8%가 2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얻는다. “여기에선 200만원 넘게 버는 사람 찾기 힘들어요”라는 광주 비정규직 청년 박소미씨(가명·27)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광주시 ‘광주지역 청년 취약성과 자립기반 연구 보고서’ 중).
■ “소득은 촌스러운데 물가는 서울스럽네”
적게 벌고 적게 쓸 수 있으면 다행이겠건만 지방 청년들이 감당해야 하는 지출 수준은 서울 못지않다. “지방이라고 서울 청년들보다 욕구가 낮지는 않잖아요. 우리도 서울하고 똑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쿠팡 같은 데서 필요한 물건들 사서 쓰는데 지방이라고 더 싼 것도 아니잖아요”라는 대구의 대학생 김정민씨(가명·27) 말처럼, 전국 청년들의 소비 수준은 이미 ‘상향 평준화’되었다.
청년들의 주요 소비지출 항목인 식비·주거비·교육비·교통비·통신비 가운데 지방 청년들에게 유리한 항목이라곤 주거비 정도밖에 없다. 통신비에는 지역 할인이 없고 지역 소재 대학이라고 등록금이 낮지도 않다. 오히려 부실 대학 등으로 선정돼 국가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통비도 지하철·버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서울보다 더 많이 들기 십상이다. 부산의 직장인 정승훈씨(31)는 “서울에 사는 청년이 경기도에 있는 직장에 많이 다니듯 부산에서도 외곽 지역의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서울처럼 광역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방은 ‘시골 인심’의 싸고 맛있는 식당이 많아 밥값 걱정은 덜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면, 강원도의 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김 아무개씨(25)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학교는 도심과 떨어진 곳에 있어 대학가 상권도 아주 작게 형성돼 있다. 그래서 대학가 식당 음식의 질과 가격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학생들은 사먹을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식당 주인들은 위생관리도 안 하고 가격도 제멋대로 올려버린다. 특히 학교 식당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는 더하다.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런 음식을 사먹거나 아니면 편의점으로 향한다.”
■ “지방 방값 싸다는데 왜 빚더미에 앉았을까”
그나마 양호하다는 주거비 부담도 지방 청년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부모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서울보다 방값의 절대 금액이 낮다는 이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벌이로 온전히 독립생활을 꾸려가는 지방 청년들 앞에 가로막힌 주거비용의 벽은 서울 못지않게 높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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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정현 |
부산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는 김현지씨(25)는 스무 살 이후 스무 번 넘게 이사를 다녔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방값에 들이는데도 방들은 하나같이 살기 어려운 곳이었다. 화장실이 마당 건너편에 있는 노후 주택에서부터 에어컨 하나만 틀면 한 층의 방 모두가 그 냉기를 공유할 수 있는 ‘임시 칸막이’ 고시원까지 두루 겪으면서 ‘이게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부산은 주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생각하다가 주변 다른 부산 친구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분명 사회문제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서울이라면 겪지 않을 지방 청년의 특수한 주거 문제도 있다. 지방 대학가 원룸촌에 성행하는 연세(年貰·선세(先貰)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약이 대표적이다. 충북의 한 대학교에 입학한 신민찬씨(가명·20)는 지난 2월 학교 앞의 한 원룸을 연세 210만원에 빌렸다. 연세 계약이란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이다. 월세로 치면 한 달 20만원도 되지 않는 셈이라 처음에는 ‘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입학 한 달 만에 재수를 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했을 때 벌어졌다. 집주인은 미리 낸 1년치 연세를 하나도 돌려주지 않았다. “새 세입자를 구해주면 돌려주겠다”라고 했지만 내년 신학기가 돌아올 때까지 그 원룸촌에는 신씨처럼 빠져나가는 학생만 많을 뿐 새로 유입될 학생은 사실상 전무하다. 신씨는 결국 그 돈을 포기했다. 이런 경우가 지방 대학 학생들에게는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불합리한 계약임을 알지만 학생들은 선택지가 없다. 강원도에서 대학을 다닌 김병준씨(26)는 “인근에서 연세가 성행하는 대학일수록 기숙사 시설과 학교 셔틀버스 운영도 부실하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서 연세를 날리게 되더라도 당장 학교를 다녀야 하니 그런 방을 계약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버리는 돈’이 1년에 200만~3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학기마다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대학 등록금과 한꺼번에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만만한 금액도 아니다.
지방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부채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구에 사는 심은규씨(가명·31)는 3년 전 결혼하면서 3500만원을 빚졌다. 5000만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40㎡(약 12평)짜리 작은 신혼집은 도통 볕이 들어오지 않아서 1년 지나니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어났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알아보니 그사이 전세 시세는 8000만~9000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심씨의 한 친구네 부부는 전세살이가 싫다며 9000만원을 대출받아 1억2000만원짜리 집을 샀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맞벌이로 30년을 갚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낮은 소득과 높은 지출 때문에 발생한 부채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 나가려는 지방 청년들의 발목을 또다시 잡는다. “대출 상환과 생활비 때문에 월급이 들어와도 통장을 스쳐갈 뿐이다. 벌고는 있지만 언제쯤 모으고 사고 누릴 수 있을지…. 이대로는 미래가 없어 보여서 다른 준비를 해보려 해도 일단 당장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으니, 만족스럽지도 않은 지금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 갚기 전까지는 정녕 답이 없는 건지, 돈 때문에 다른 도전을 시작할 수도 없는 상태가 정상인 건지….” 대학 학자금과 전세 보증금 등을 위해 빌린 대출금을 갚고 있다는 광주의 한 20대 직장인 여성은 이렇게 토로했다.
■ “사장과 싸우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지방 청년 노동자는 일이 힘들어도 잘 참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족처럼’ 일하는 일터 분위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 한 중소기업의 사무직 청년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지내는 것이 좋은 부분이에요. 서로 잘 챙겨주고 형제처럼 서로 고민도 나누고 하는 부분들은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대신 권위적이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까라면 까야 해요. 원래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권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대구청년유니온·뉴스꼴리지의 대구 청년 인터뷰집 <아는 사람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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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지역사회는 좁아서 아르바이트생이 부당행위에 항의하면 ‘알바생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
‘가족 같은’ 분위기는 가장과도 같은 고용주를 배신한 노동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대구청년유니온 이건희 사무국장(27)은 “노동 상담을 해보면 사장이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거나 부당행위를 해도 좁은 동네에서 계속 일하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문제 제기를 꺼리는 청년들이 많다. ‘뒤통수 칠 순 없다’는 정서가 강하다”라고 말했다. 용기를 내 고용주와 ‘한판 붙은’ 청년들은 그 동네 ‘알바생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대구의 대학생 공의정씨(22)는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사장과 갈등을 빚다가 그만뒀는데 이후 인근 다른 카페 사장들 사이에 블랙리스트처럼 돌아서 그 학생이 새로 일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누리씨(24)는 A사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손님의 성추행 문제로 점주와 싸우고 나온 뒤 새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찾아간 B사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며칠 전 싸운 A사 매장 점주가 앉아 있었다. 시내에 여러 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둔 문어발 점주였던 것이다. 부당노동 행위에 맞서는 데에 지방 청년들은 서울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지역에서 다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 각오까지 해야 ‘갑’에게 맞설 수 있는 것이다.
지방 청년들의 노동은 고되고 외롭다. 이를 입증하는 여러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대구청년유니온 조사(802명 답변) 결과 대구 청년 노동자의 84.5%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했고, 63.2%가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했으며, 100%가 근무 시 정서적 소진감을 호소했다. 광주 지역 배달 노동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광주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210명 답변)에서는 78.9%가 휴게 시간 없이, 71.5%가 식사 시간 없이 일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산청년유니온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실태조사(430명 답변) 결과 부산 지역 아르바이트생의 57%는 부당대우를 받아도 참고 넘어가거나 조용히 일을 그만뒀다.
■ “다른 꿈을 꿀 기회가 없다”
튀어서 득이 될 게 없는 노동 현장처럼, 많은 지방 청년들은 미래를 꿈꿀 때도 공무원 시험 준비 같은 안전책을 택한다. 조금 ‘다른’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지방은 훨씬 더 살아가기 가혹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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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6년 10월1일 지방공무원 7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진 부산 해운대공고에 수험생들이 들어서고 있다. 모두 275명을 선발하는데 3만3548명이 지원해 평균 12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
영화인을 꿈꾸는 부산 청년 정엄지씨(24)는 ‘부산에서 영화 일을 한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국내 최대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 도시 부산에서조차 말이다. 정씨에게 1년 동안 머물렀던 서울에 비해 고향 부산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도 적고, 알찬 영화 관련 교육도 부족한 ‘영화 불모지’이다.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봐도 영화적 상상력을 높일 수 있는 흥미로운 강좌가 아닌 단순 취업이나 자격 획득을 위한 형식적 강좌 일색이다”라며 정씨는 아쉬워했다.
울산의 취업준비생 하인혜씨(가명·27)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제조업이 발달한 울산은 청년 취업률이 높고 평균 소득도 서울 못지않게 높은 지역이지만 이 좋은 여건은 제조업체에 취업하는 청년에게만 해당된다. 언론계 진출을 희망하는 하씨처럼 좀 독특한 진로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지역에서 외롭고 힘들다. “여기는 산업 편중이 너무 심해서 솔직히 제조업 쪽으로는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연봉도 3000만~4000만원씩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직종으로 가고 싶다 하면 아주 ‘개고생’을 하게 된다. 지금 그걸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언론계 취업을 위해 함께 공부할 선후배가 없고 관련 업계 정보들을 구하기가 어려워 두 배 세 배 힘들다.”
다른 ‘꿈’이 꼭 다른 ‘일자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원주 청년 김누리씨(24)는 지방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통해 청년들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시내에 멀티플렉스 영화관만 4개가 있다. 번듯한 문화시설이 있는데 뭐가 부족하냐 하지만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영화 볼 데가 없다. 독립 출판, 페미니즘, 인디밴드 이런 것들을 배우거나 접하고 싶으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한다.” 팟캐스트 ‘부산의 달콤한 라디오’를 운영하는 김서희씨(23)는 “지방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너무 어렵다”라고 말한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대안 미디어 쪽 일을 하고 싶어도 발 담글 곳조차 없었다. 지역 공무원을 만나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더니 ‘일자리창출과에 문의해보라’더라. 지역 청년 문제를 무조건 일자리로만 접근하는 시선이 답답했다.”
지역 내 지나치게 끈끈한 관계망이 지방 청년들의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남 순천 지역에서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벌였던 김혜민씨(31)는 “지방에서는 청년들 사이에서조차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인식이 심하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서로들 잘 아니까 기존 체제에 비판적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가령 누군가 지역 내에서 뭔가 튀는 활동을 벌인다 하면 주변에서 수군거린다. ‘쟤가 초등학교 때는 이랬는데, 쟤 부모가 누구인데…’ 하면서. 현재 활동이 아니라 과거 이력으로 평가받으니 다른 세상을 꿈꾸거나 현재 삶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기 어렵다.” 대구청년유니온 최유리 위원장은 “현재 지역공동체 안에 청년들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성장이 멈춘 이곳에서 돌파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방 청년에게 돌파구는 세 가지 중 하나다. 벗어나거나 체념하거나, 혹은 바꾸거나.
※ 다음 호(제512호)에서는 벗어나거나 체념하는 대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바꿔나가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꿔야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분석>에서 지방 청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했다.
서울과 미국에서 문화사회학을 공부하고 2005년 대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에 부임한 최종렬 교수(52)는 처음 학생 MT를 따라갔다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펼치고 공적 이슈를 논하는 자리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군복과 ‘깔깔이(군용 방한 내피)’, 여학생을 안고 한 발로 오래 서 있기 게임, “부어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 쭉쭉” 노래가 뒤섞인 대학생의 MT 풍경에 최 교수는 적잖이 당혹했다.
10여 년간 지켜본 제자들은 성별로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1학년 남학생은 대개 술 마시고 당구 치고 피시방에서 시간을 ‘죽인다’. 어차피 곧 군대에 가기 때문이다. 제대 후 깔깔이를 입고 후배 여학생들과 어울리며 쉬운 과목을 골라 듣다 보면 어느새 4학년. 불안해진 남학생은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계를 낸다. 많은 여학생들은 신입생 때 만난 복학생 오빠와의 연애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연애가 끝나고 학교생활이 시시해질 3학년쯤 되면 우르르 휴학을 한다.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간 뭐했냐고 물으면 헌혈, 서빙 알바, 해외여행, 자격증 공부 등이라고 답한다.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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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계명대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는 문화사회학의 관점으로 지방 청년을 연구했다. 그는 “기존 청년 담론은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안타까웠다. 그 도돌이표를 끊어주고 싶었다. 방법을 궁리하던 중 제자의 권유로 웹툰 <복학왕>을 뒤늦게 보았다.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간 목격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문화사회학의 관점으로 지방 청년을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다. 지난 2월 학술지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분석>이 그 연구의 결과물이다.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국한된 현상을 전체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위험은 분명 존재하지만, 지방 청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분석의 틀을 끄집어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6월13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기존의 청년 담론이 지방대 학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가 논문에서 지방 청년을 분석할 때 사용한 기존 청년 담론은 사회학자 김홍중(서울대 교수)의 ‘진정성 세대’ ‘동물·속물론’ ‘생존주의 세대’, 이 세 가지 틀이다. 여기서 진정성 세대란 “내면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목소리인 참된 자아와의 대화에 의거하여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태도”를 지닌 세대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부터 민주화운동을 거쳐서 1997년 위기에 이르는 약 20년간 지속적인 헤게모니를 발휘”했다. 동물·속물 세대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내면성을 상실하고 타자의 잣대를 따라 살아가는” 세대이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심화되자 청년 세대는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이른바 ‘생존주의 세대’이다. 자기계발을 기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되게 한다는 점에서 동물·속물과 다르다. 생존주의 세대의 마음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생존이냐 낙오냐다.
착하고 관계 중심적인 지방대 학생들
그럼 2017년 대한민국의 지방대 학생은? 진정성 세대는 아니다. 동물·속물론으로 바라보기에는 최 교수 눈에 이들은 너무도 ‘착하다’. 가족과 친구에게 충실하고 매우 관계 중심적이다. 그렇다면 낙오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생존주의자인가? 최 교수는 이런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방대 학생 6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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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복학왕>은 기안대학교라는 가상의 대학 풍경을 그렸다. |
좋은 삶과 그것을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지방대 학생들은 모두 ‘가치의 언어’가 아닌 ‘선호의 언어’와 ‘가족의 언어’로 답했다. “제 꿈은 그냥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예쁜 아내 얻고 아들딸 예쁘게 크는 걸 보면서 오래 사는 것입니다(남학생 1).” “돈이 어느 정도는 있고 재산을 유지하고…(남학생 2).” “저녁이 있는 삶, 가족과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삶이요(여학생 2).”
경제적 여유와 행복한 가정을 ‘선호’하는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위해 독하게 자기계발에 나서지 않는다. 연구 대상자 6명 중 대다수가 행복한 삶을 위해 ‘공무원 같은 것’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막상 경쟁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제가 학교 수업도 잘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 다 해도 많이 안 되는데… 공부 싫어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남학생 2).” “준비하는 과정이… 경쟁이 심하잖아요. 제가 할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영어도 해야 되고 역사도 해야 되고 그럴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여학생 1).” 이 같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식의 결론은 “괜히 혼자 중뿔나게 굴지 마라”는 가족 혹은 유사 가족(학교 동기, 선후배)의 조언으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현재 청년들을 신자유주의적 주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논문에서 말한다. “생존주의자에게 생존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말자’는 것인 데 비해, 지방대 학생에게 생존은 ‘가족 안에 머물자’이다. 생존주의자는 낙오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지만, 지방대 학생에게 생존은 오히려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지금처럼 가족 안에 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결론과 더불어 최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며 지방대 학생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더 발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도전해도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하지만 그런 자기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이른바 ‘성찰적 겸연쩍음’이다. 또 그가 보기에 지방대 학생은 “앎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알지 않으려는 의지, 자기계발 의지가 아니라 자기보존 의지”가 강하다. ‘습속’이다.
‘성찰적 겸연쩍음’에 대해 최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방대 학생은 공부를 통해 인정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특히 지방대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이들을 위축시킨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해도 되지 않은 쓰라린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권리 인정 형식을 통해 자기존중의 길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해도 안 되는 걸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희망 고문하는 뻔뻔한 일이다. 다시 말해 진정성이 없고 위선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대신 지방대 학생들은 수업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오거나 MT 때 깔깔이를 걸치는 식으로 ‘상황을 느슨하게 만들기’ 전략을 택한다. 이른바 ‘습속’이다. 최 교수 말에 따르면 그런 습속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황 자체를 깰 수는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저항책”이다. “무엇에도 몰두하지 않고 느슨하게 유지하니 목표치도 적당하게 세우고, 성취도 적당하게 하고, 실패해도 타격을 안 받는다.”
연구 대상자들은 아직 본격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전의 대학 3~4학년생들이다. 조만간 ‘성찰적 겸연쩍음’과 ‘습속’을 버리고 이들도 곧 생존경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연구 대상자들의 에필로그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최 교수는 답했다.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청년과 지방에 남은 청년이 극명하게 갈린다. 서울로 가면 엄청난 경쟁 세계에서 생존주의 청년이 된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이직이 매우 잦다. 지방에 남은 청년들은 졸업 후 몇 년 지나 연락해보면 신기하게도 그럭저럭 다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고, 저 월급으로 가능할까 싶은데 잘들 살고 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니 후배들도 굳이 자신을 경쟁으로 내몰지 않는다.”
그들이 갇힌 세계를 깨고 나오려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청년들이 지방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존 생존주의 청년 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최 교수는 단호하게 ‘문제 있다’고 말한다. “자아는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지방 청년은 대화하는 사람이 가족 아니면 유사가족이다. 젊을 때는 괜찮은데 30대, 40대 점점 나이 들수록 그 세계 안에서만 자기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밖에서 그런다. ‘저 지역은 왜 저 모양일까’ ‘어휴, 아직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네.’ 지금 당장 행복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는 만나는 타자가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 청년들이 앞으로 계속 자기 세계에 갇혀 새로운 타자를 못 만나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될까 봐 안타깝다.”
지방 청년이 갇힌 세계를 깨고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교수는 다른 집단에 들어가 새로운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체험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사유하고 다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대학도 적극 도와야 한다. 좁은 가족적 연결망을 넘어 나 자신을 다양한 타자의 눈으로 대상화해보는 초월적 체험 장을 마련해줘야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