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이혜훈 “종북몰이나 빨갱이 딱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일취월장7 2017. 7. 4. 11:03

이혜훈 “종북몰이나 빨갱이 딱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인터뷰] “自强(자강) 통해 보수의 본진 되겠다” 강조한 이혜훈 바른정당 신임 대표

김지영·구민주 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7.04(화) 10:30:00 | 1446호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서울 서초구 갑 후보 경선에서 두 여성이 맞붙었다. 이혜훈과 조윤선. 조 후보의 ‘무난한’ 경선 통과가 점쳐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고,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총선행(行) 티켓은 이혜훈 후보가 거머쥐었다. 조 후보 낙마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정치권 유력 인사는 기자에게 이런 분석을 내놨다. “이혜훈 후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조윤선 후보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인지상정이라고, 먼저 다가오는 후보에게 유권자는 더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총선 후 정치 시계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비선 실세’로 최순실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더니 급기야 국정농단 사태로 번졌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새누리당은 분열했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의원 일부는 새누리당으로 유턴했다. 유승민 후보는 대선에 낙마했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정체돼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바른정당은 결국 해체되거나 자유한국당에 흡수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바른정당 존재감마저 시들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속 의원 20석. 한 명만 이탈해도 원내교섭단체 회의에 들어갈 수 없다. 이래저래 위태위태한 형국이다.

 이런 바른정당이 6월26일 이혜훈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이 대표 앞에 산적한 과제들은 녹록하지 않다. 당장 당을 재정비해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1년도 안 남은 지방선거가 첫 시험대다. 이 대표에겐 ‘큰 꿈’을 달성하기 위한 성숙기이자 리더십 검증기다. 당 대표에 오른 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 대표를 6월29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바른정책연구소가 주최한 ‘6·29선언 30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직후였다.

 

이혜훈 바른정당 신임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이혜훈 바른정당 신임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6·29 토론회에 다녀왔는데, 6·29선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 이 대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어서 유학 준비하고 시험 보느라 (6월 항쟁에) 직접 참여하진 못했다. 6·29선언은 민주화 운동의 희생과 헌신으로 탄생했다. 그 선언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겠나 싶다. 그러나 6·29 이후 민주세력 중 일부가 군부독재세력과 손잡고 (1990년 민자당으로) 3당 합당했다는 건 뼈아픈 일이다. 그 세력이 우리가 몸담았던 당(새누리당)의 전신이었다. 난 정치에 몸담으면서 ‘대한민국 민주화에 빚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우리(바른정당)는 결국 군부독재세력이 갖고 있는 특성을 상당히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당과 결별하고 나왔다. (새누리당은) 1인 지배를 강요했다. 생각과 노선이 다르거나 노선이 같아도 그 안에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전체주의·권위주의적 문화가 있었다. 그 당(자유한국당)엔 지금도 그 특성이 남아 있다.

  

1990년 민자당 이후 지난해까지 새누리당에서 함께했는데 바른정당 의원들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개혁과 변화를 요구한 우리 주장들이 묵살되면서 좌절했다. 그 세력이 변해야만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변화는 무망(無望)하다고 판단해서 나온 거다.

  

자유한국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두 가지 면에서 우리는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 낡은 보수(한국당)엔 미래가 없다. 낡은 보수가 완전히 개혁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같이하기 어렵다. 그들과 다른 두 가지는 정체성과 정치하는 방식이다. 우리와 그들이 ‘안보(安保)는 보수’라고 얘기해서 모양은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당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빨갱이 딱지 붙인다. 종북몰이 하는 걸 안보라고 한다. 문재인이 집권하는 건 김정은이 집권하는 것과 같다고 서울 한복판에서 얘기하고 거기에 당원 수천 명이 ‘옳소, 옳소’ 외쳤다. 종북 척결로 화답하는 집단과는 같이 가기 어렵다. 우리가 얘기하는 안보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거다. 우리는 종북몰이나 빨갱이 주장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경제는 시장경제라고 똑같이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재벌이나 경제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의 특권과 반칙, 횡포를 눈감아주는 건 물론이고 비호, 대변까지 한다. 그런 행태는 보수의 적(敵)이다. 우리는 그것이 대한민국 공동체를 안으로부터 붕괴시키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당과 정체성, 정치 방식 다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대선 전에 바른정당 합류 의사를 밝혔다’는 의혹이 정병국 의원 책을 통해 제기됐다.

사람은 하루 이틀 만에 변하지 않는다. 홍 전 지사와 정 의원을 벌써 15년 가까이 봐왔다. 결국 누굴 믿느냐는 건데, 홍 전 지사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해도 믿기지 않는다. 반면 정 의원은 진지하고 농담도 못하는 스타일이다. 사석에서도 빈말을 안 해서 오죽하면 별명이 ‘미스터 진지’이겠나. 정 의원에게 물어도 봤다. 정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책을 쓸 때 처음엔 대부분 실명을 썼는데 마지막 원고 교정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고 하더라. 누구는 실명을 지우고 누구는 안 지울까 고민했고 많은 분들의 실명을 지웠다고 했다. 하지만 홍 전 지사에 대한 건 고민 고민하다 실명을 안 지웠다고 했다.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바른정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낮다. 끌어올릴 복안은 무엇인가.

 정치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전략 쓰고 술수 쓰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모든 정보는 빛의 속도로 국민들이 서로 공유한다. 다 아는 것 같다. 쇼를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국민은 굉장히 냉철하게 꿰뚫어보는 것 같다. 그래서 정공법이 왕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의회) 의석 하나 없었어도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고 강직하게 얘기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서 국민 마음을 얻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의석 20석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떻게 구현할지 국민께 정확히 말씀드리고, 그대로 하면 국민도 눈여겨봐 주실 거라 믿는다.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나.

 우리 정체성에 맞는 정치를 하겠다는 거다. 안보 면에서 보수가 뭐고 경제 개혁이 뭔지 얘기했는데 그에 합당한 입장표명을 해 나가는 거다. 예를 들면 재벌 개혁을 찬성한다. 재벌의 일감몰아주기도 순환출자도 반대다. 아주 적은 지분으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회사를 좌우하는 그런 엄청난 전횡과 황제 경영을 우리는 막을 것이다. 재벌의 지배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지금 얘기하는 경제 개혁에 대한 합당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들을 주장하고 구현해 낼 것이다. 여당이 얘기하는 것들이 우리와 일치하면 여당보다 우리가 먼저 제안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정책들에 찬성한다.

  

김상조 위원장 정책을 찬성하는 이유는 뭔가.

 김 위원장은 구글, 페이스북의 빅데이터 독점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공정위가 왜 이걸 안 건드리는지 불만이 많았다.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갖고 다른 사업자 기회를 완전히 차단하면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손 놓고 있지 않았나. 또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는 왜 안 건드리나. (국회의원이) 표(票)만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 바꾸려는 정치를 해야 한다. 여당이 옳은 일을 할 때 야당이 힘을 실어주면 백배는 낫다.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에서 이혜훈 신임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바른정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에서 이혜훈 신임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각 정당과 사안별로 공조할 것”

 

민주당과 통하는 부분도 있는데, 여당과의 연정이나 협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여당과) 접점이 굉장히 많다. 사안별로 공조할 것이다. 사안별 공조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정의당과도 할 수 있다. 성역을 둘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다른 거다.

  

현재 ‘문준용 채용 비리 의혹 조작 사건’으로 국민의당이 큰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일각에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설이 나온다.

 합당은 당 정체성이 맞아야 논의될 수 있다. 그런데 안보 부분에서 결이 많이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진행한 주역들이 국민의당 주축이다. 그래서 우리와 많은 거리가 있다. 이 부분이 해결 안 되면 합당은 논의조차 어렵다. 우리는 자강(自强)이 먼저다. 보수의 본진(本陣)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다른 당과는 사안별 공조가 가장 적절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일 년도 안 남았다. 바른정당 현재 지지율로는 후보조차 내기 힘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내년 3~4월에 사람을 받을 거니까. 그 전에 보수 대(大)수혈을 받아야 한다. 지금도 타진하는 사람이 있고, 오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미 골든크로스(Golden Cross·주가 상승 신호)가 일어났다고 본다. 수도권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섰다는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은 그렇게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연연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가치를 갖고 계속 사람들을 우리의 날개 아래로 모아서 전력질주하면 내년 봄엔 확실히 역전돼 있을 거라 본다. 



익숙한 정치 문법의 반복, 더이상 안된다

[장석준 칼럼] 촛불의 승리, 배반당하지 않기 위한 조건
2017.07.04 11:25:17

새 대통령의 광주항쟁 기념사에 자랑스럽게 등장했던 '촛불혁명'이란 말이 점점 회의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관 인사 청문회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 행세를 톡톡히 하는데다 거리에서는 민주노총 파업 대오와 이에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확연히 나뉘면서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양도 짜증을 부채질한다. 이게 과연 혁명 이후의 모습일 수 있느냐는 푸념 앞에, 4.19보다, 6.10보다 먼저 '혁명'임을 공식 인정받은 몇 달 전 경험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어떤 이들은 시민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광경이 사라지면서 이리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한다. 또 어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탄핵 결정이 넘어가고 조기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광장의 열기가 제도 정치에 다 포획되고 만 탓이라고 비판한다.

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이렇게만 봐서는 대안을 찾기 힘들다. 제도 정치와 연결되지 않고 가두 투쟁만으로 구악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혁명이란 상상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명을 지워버리고 개혁을 신비화하는 사례들이 있는 것처럼, 개혁에 눈을 가리면서 혁명을 신화화하는 행태도 있게 마련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촛불 정국이 가장 혁명적인 양상을 띠었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는 게 낫겠다. 각 순간에 도대체 어떤 힘들이 어떻게 결합됐기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이 성사된 것인가? 그 특징을 식별한다면,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우리에게 부족한 바를 확인하고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지난 겨울의 의미를 끝내 '혁명'으로 귀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 승리를 만든 첫 번째 요소 – 새로운 시민의 합류 

작년 10월 이전만 해도 한국사회는 어떤 변화도 불가능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다 현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 자그마한 균열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당도 야당도, 재벌도 노동자도, 기성세대도 청년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갑자기 촛불이 타올랐다. 전국에서 수백만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사실 거리에서 정권과 시민이 대치하는 일은 전에도 있었다. 아니,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 같이 이미 나부낄 깃발이 있는 이들이 주였고, 규모도 촛불 정국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이 대목에서 촛불의 승리를 낳은 첫 번째 요소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전에는 거리에 나서지 않았지만 촛불 집회에 합류한 시민들이다. 이제껏 사회운동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운동의 적극적 참여자가 된 이들이다. 이들이 함께 했기에 매번 집회마다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이 승리를 확인할 때까지 결코 지치지 않았기에 누구도 광장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성이고, 10대, 20대였다. 주로 여성이고 젊은이이므로 대개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의 피해 대중인 이들이 저항에 나서야만 변화의 실마리가 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촛불 광장에서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비록 여성, 청년, 비정규직으로서 내는 목소리는 광장의 공통 구호에 묻혀 부각되지 못했지만, 이들이 제 소리를 내려고 광장에 나오지 않았다면 공통 구호의 함성은 그만큼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모처럼 촛불을 든 이들 시민을 직접 대변하는 정당이나 대중조직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의 가닥이 잡히기 전에 제도 정치와 광장 정치의 긴장이 한껏 고조됐을 때에는 몇몇 기성 조직이 잠시 이들의 목소리와 만났다. 가령 거대 야당들이 박근혜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던 순간, 정의당이나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가장 적극적인 촛불 시민들과 함께 했다.  

또 다른 요소들 - 민주당의 비일상적 선택과 새누리당 분당

이렇게 거대해지고 다양해진 촛불 대열이 승리의 두 번째 요소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제1야당 민주당의 전에 없던 선택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새누리당과 정권을 교대해온 정당이다. 선거로 집권한 경험이 있고, 2012년에도 집권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래서 2017년 대선에 모든 전망이 맞춰져 있었다. 즉, 1987년 이후 뿌리 내린 제도 정치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전망이었다.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나서도 민주당은 이 전망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 정국 초기에 끊임없이 새누리당(혹은 배후의 재벌, 조중동)과 타협을 모색했던 것이다. 비일상적 대중 항쟁의 와중에도 민주당은 일상의 정치 룰에 따라 행동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한 발자국 늦게나마 민주당도 광장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운동이 전개되던 당시에는 '한 발자국 늦게'라는 게 항상 불만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논의에서는 어쨌든 광장을 '따랐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즉, 민주당은 촛불 정국에서 자신의 생리에 반하는 선택을 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일상의 정치를 넘어서는 행동을 했다. 타협안을 포기하고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기피하던 탄핵 절차도 결국 추진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선택 덕분에 제도 정치와 대중운동이 상호 상승을 일으킬 통로가 열렸다. 그러나 여기에 마지막 한 요소가 더 추가되지 않았다면, 촛불의 승리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요소는 바로 범보수 블록의 분열이다.  

넓게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층의 분열이고 <조선일보>의 반란으로 상징되는 보수 시민사회의 균열이지만, 좁게 보면 새누리당의 분당이다. 지금의 바른정당을 낳은 새누리당 분당이 있었기에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 분당은 새누리당을 공포로 몰아넣은 광장의 함성이 낳은 것이었지만, 역으로 이 분당이 없었으면 촛불 시민들이 단 한 차례의 후퇴도 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에 거리에 나서지 않았던 대중의 적극적 참여, 민주당의 비일상적인 선택, 범보수 블록의 이완과 새누리당 분당, 이 세 요소가 서로 결합하자 과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실현됐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사회가 오랜만에 현상타파의 경험을 맛보았다.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적 경험의 바탕에는 이런 예외적인 세력균형이 작동했다. 이를 일단은 '촛불 세력균형' 혹은 '촛불 세력배열(형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촛불 세력균형을 유지하라  

촛불 승리의 여진이 계속되려면, 촛불 세력균형이 유지돼야 한다.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서는 일은 반복되기 어렵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정도 규모의 집회가 아니라도 여러 방면의 노력을 통해 그때의 세력균형을 지탱하고 재연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럼 어떻게든 개혁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다.  

조기 대선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조기 대선 자체가 민주당에게는 이제까지의 익숙한 경험을 넘어서는 도전이었다. 바른정당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와 경쟁함으로써 보수정당간 경쟁 구도도 이어졌다. 또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여성, 청년층에서 일정한 바람을 일으키며 광장 내의 새로운 요소와 진보정당의 접속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렇게 대선 5자 대결은 촛불 세력균형을 반영했고 역으로 이를 연장시켰다.

문제는 이제 두 달을 경과한 대선 이후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촛불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첫째, 모처럼 정치 참여의 의미를 찾은 여성, 청년, 비정규직 등이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시 정치 바깥으로 후퇴해선 안 된다. 그럴 수 있게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이 끊임없이 실험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통해 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 바람으로 나름 가능성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이게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진보정당운동 제2기로 안착될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아마도 내용, 형식 모두 훨씬 더 과감하게 전환해야만 할 것 같다.

둘째, 문재인-민주당 정부가 다시 일상 정치 문법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비일상적인 승부수가 필요하다. 여당으로서는 어차피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으니 통치 행위와 행정 명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쪽으로 기울기 쉽다. 그러나 인사 청문회 정국에서 보듯이, 익숙한 정치 문법의 반복은 촛불의 여진을 소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정부-여당의 비일상적 선택지는 아무래도 개헌-선거법 개혁 정국을 여는 것이다. 시민 참여와 전 사회적 토론을 수반하며 국민 투표로 이어지는 개헌-선거법 개혁 정국을 통해 다시금 시민사회(말하자면, 일상 속의 촛불 시민)가 국회를 압박하는 형국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여당이 생리상 이런 선택을 기피한다면, 몇 달 전에 그랬듯이 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바깥에서 압박해야 한다.  

셋째, 보수 진영이 자유한국당 단일 구도로 회귀해선 안 된다. 최소한 지금처럼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지속돼야 한다. 보수 세력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 가장 통제하기 힘든 문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선거법 개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에 따라 일정하게 영향을 끼칠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 집권 민주당 대 자유한국당의 양강 구도가 복구되는 것이야말로 촛불혁명에 '반혁명'의 승리라는 마침표를 찍는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다.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 않은 것으로 따지면, JTBC 보도로 첫 번째 촛불 집회가 열리기 며칠 전만한 때가 없었다. 마땅히 해야 할 과제라면 쉬울지 어려울지는 따질 일이 못된다. 그 과제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기만 한다면 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촛불 세력균형을 재연하는 것이다.



국민은 단지 '응원부대'가 아니다

[기고] 새 정부 성공의 열쇠는…
2017.07.04 12:22:50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이 바뀌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국회를 비롯해 언론, 경찰 등 전반적으로 요지부동 전혀 바뀔 기미가 없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부터 바뀌어야 실타래처럼 엉킨 이 난국을 풀어낼 수 있는가?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제 시작일 뿐

최근에 개최됐던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나 '광화문1번가' 등 시민 제안의 형식은 바람직하다. 다만 그러한 단발성 토론이나 온라인상의 제안 수용 등의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며, 반드시 제도화돼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철저히 결여돼 있다. 모든 정치 과정에서 시민들은 지속적이고 제도적으로 배제된다. '양손잡이 민주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필립 슈미터 교수는 "한국의 사례는 정치세력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타협한 결과다"라고 단언한다.  

시민의 의사는 오로지, 6월 항쟁 당시 그 무덥던 여름 최루탄과 경찰폭력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리에 나서거나, 아니면 지난겨울 혹한의 광화문광장에 몇 달 동안을 계속 모이도록 만든 것처럼 가장 시민들을 힘들게 하는 집회나 데모라는 형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고도 군중이 해산한 뒤 별다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굴종이냐 궐기냐의 선택만 강요된다. 

비유하자면, 박정희-박근혜 왕조체제를 지역에 토대를 둔 지역귀족(사실은 지역토호가 더욱 정확한 용어다)들이 연합해 간신히 몰아낸 형국이다. 루소는 정부의 형태를 군주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을 구분했는데, 우리는 아직 민주정에 도달하지 못한 귀족정의 단계일 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넘겨라. 그리고 제도화하라 

신고리 5,6기 원전공사의 중단 여부가 시민배심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소식은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좋은 뉴스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주체적인 정책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곧 민주주의다. 다만 이러한 뉴스가 더 이상 '일회성' 뉴스로 끝나지 않도록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법률로 뒷받침됨으로써 제도화돼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국회를 비롯해 감사원, 대법원, 정당 등등 국가의 공공 시스템과 기관 중 자기의 명칭에 부합하는 위상을 지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상호 견제와 공정한 회계감사 시스템은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본말전도와 허장성세 그리고 곡학아세의 전시장일 뿐이다. 직업공무원집단이 대응성(responsiveness)을 지니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요청에 민감하지 못하면 특권집단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관료집단이 특권화하면 관료집단 내부에 그 특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발호해 파당과 분열이 발생하고 국민을 경시하는 등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경향이 출현하게 된다. 지난 정권에서 한 고위관료의 "개돼지 발언"은 결코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리 한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를 구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헬조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더욱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왜곡된 그 독점적 권한을 끝까지 행사하고, 그것을 월권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구조에서 엄청난 기득권(그것은 대개 사대주의와도 연결돼 있다)을 차지하는 재벌과 거대정당, 국회, 대법원,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 명문대학 출신, TK 등 우리 사회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기득권 집단은 한 치의 양보는커녕 오히려 기득권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고 그 권한을 남용해왔다. 부(富)만이 아니라 학력과 직업까지 세습되는 이러한 객관 조건 하에서 전체 사회가 그야말로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만인 대 만인'의 살벌한, 그러나 승패는 이미 정해진 전쟁이 전개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을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명령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가 된다. 오늘의 '헬조선'은 이렇게 해 이룩됐다.  

세계 역사상 지속적으로 동족을 노비로 삼아온 사례는 우리 역사에서 두드러진다. 세계 역사상 노비는 대체로 침략과 정복에 의한 이민족으로 충원됐다. 유사한 역사 전통을 지닌 중국도 송나라 시대에 노비제는 기본적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외국에 대한 정복과 침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민족을 노비로 삼을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동족을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인 노비로 삼아온 것은 우리 전통의 지극히 부정적인 측면이고, 이러한 극단적 차별의 좋지 않은 관행이 존재해왔다는 점에 반드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헬조선'이라 칭해지는 오늘의 극단적 현상에 이러한 토양이 작동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해 우리 사회의 전진과 공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득권층의 반성과 양보가 그 필수불가결의 전제다.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돼 빈곤층이 확대되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기득권층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 역시 범죄의 직접적인 표적물로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공존'과 '사회복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요체이며,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촛불시민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뤄진 새 정부는 정말 성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고 망국적인 세력의 집권과 같은 어이없는 참사와 비극이 또다시 재연(再演)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지금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넘겨야 한다. 헌법이 천명한 바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이며,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국민이 단지 응원부대나 박수부대로 치부돼서는 결코 안 된다.  

재벌이나 기득권층에만 독점되는 이익이 국민에게 공정하게 균점될 수 있는 공정 경제가 이뤄져야 하고, 동시에 국가 권력의 주인으로서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돼야 한다. 국가 주요정책 결정에 국민들이 보다 많이 참여해야 하고, 정부와 국회 등 국가운영 주체의 선출과 담임에도 보다 많이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문제 등 자신의 주변 문제 역시 국민들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제도가 보장돼야 한다. 국민주권주의와 국민의 자치권이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 본연의 임무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야말로 시대착오적 반민주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력이다.  

이렇게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실현시켜내고 그 민주주의와 국민에 의존하는 것, 이것이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악마도 희생양이라는 새로운 질문

1990년대, 대중매체가 남북 간의 화해까지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북한 정권과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7월 03일 월요일 제511호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북한을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의 첫 사례다(<시사IN> 제509호 ‘똘이장군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사 참조). 물론 비슷한 시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민족의 화해와 전쟁의 초극을 이야기하는 조정래 장편소설 <태백산맥>이 히트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현시점에서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다. 애초에 박정희의 독자적 핵 보유 플랜이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는 껄끄러운 사실을 뛰어넘기 위해, 김진명은 일본이 다시 한반도를 침략하려 하고 동맹국인 미국마저 이를 방치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온다. 일본에 핵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북한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 기괴한 소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아마 “어떠한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라는 취임 일성으로 출범한 문민정부가 아니었다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을지 모른다. 한·미 동맹조차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소설의 인식과 정권의 방향이 맞았던 셈이다.

사랑으로 이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의 영화 <쉬리>(왼쪽)와 임무를 수행하고도 희생당하는 간첩을 보여준 <간첩 리철진>.

문민정부라고 해서 북한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던 이전 정부의 행태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1994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를 헬기를 동원해가며 강경 진압했고, 특히 1996년에는 정권 차원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자체를 와해시키겠다며 공안 정국을 이끌어갔다. 북한 핵 위기와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북한은 통일을 함께 논의할 대상에서 다시 악의 제국으로 그 지위가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취임사에서부터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출범한 정부 처지에서 예전만큼 북한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언설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남한의 기자가 북한의 총리 비서와 사랑에 빠져 분단의 장벽을 극복하려 들고, 남북한 정보 당국의 온건파들이 이를 이용해 화해 무드를 이끌어간다는 내용의 SBS 드라마 <해빙>(1995)이 방영될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 때문이었다. 게다가 1997년 청와대와 안전기획부(현 국정원)가 정권 재창출을 이유로 북한 군부와 접촉해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벌여줄 것을 요청한 총풍 사건이 밝혀지면서, 정부가 더는 북한 이슈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워졌다.


<해빙> 이후 한국의 대중매체는 북한 지배세력 내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 체제를 단순히 “혹부리 돼지 수령을 섬기는 늑대들”과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로 거칠게 이원화했던 <똘이장군> 시리즈의 세계관을 비로소 넘어선 셈이다. 불행히도 <해빙>은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MBC <제4공화국>에 밀려 이 대담한 세계관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문제는 충성심을 강요하는 체제”라고 고발


이후 온건파와의 대화로 강경파를 제압하고 평화를 불러와야 한다는 발상이 대중의 너른 열광을 불러일으킨 첫 작품은 영화 <쉬리>(1999)였다. 특수임무를 띠고 남파된 북한 강경파의 특수요원 이방희(김윤진)가 한국의 정보요원 유중원(한석규)에게 접근했다가 그와 연인이 되었다.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북한 강경파의 부름 앞에 이방희는 눈물을 머금고 연인에게 총구를 겨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조차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사랑으로 이념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한국 관객들에겐 낯선 것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민족이라는 이름을 호명해 남북 화해를 상상했다면, <쉬리>는 통일과 화해를 민족적 협력의 단위가 아니라 개인적 연애의 단위에서 상상한 것이었는데, 이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왼쪽)는 남북 군인 간 의리를 통해, <태극기 휘날리며>는 가족주의를 통해 남북 간 비극의 역사를 곱씹는다.

강경파 정예 요원마저 개인 대 개인으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쉬리>의 질문이 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같은 해 개봉한 <간첩 리철진>(1999)은 더 대담하고도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식량난 타개를 위해 한국에서 개발한 슈퍼 돼지의 유전자를 탈취하라는 임무를 받아 남파된 간첩 리철진(유오성)은 고정간첩의 딸 화이(박진희)와 감정적인 교류를 나눈다. 리철진은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슈퍼 돼지의 유전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장진은 이 과정에서 리철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그는 남파되기가 무섭게 사람의 선의를 믿었다가 4인조 택시강도에게 공작금과 무기를 도난당하고, 복권 당첨금을 타러 은행에 갔다가 얼결에 은행 강도를 때려잡으며,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변절한 동료를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고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한다.


철진에게 한껏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 장진은 해피엔딩으로 끝낼 것처럼 굴다가 마지막 순간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민족 화해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북에 슈퍼 돼지 유전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자, 북은 무력으로 유전자를 탈취하려 했던 시도를 감추기 위해 리철진을 제거한다. 장진은 머리에 뿔이 나고 엉덩이엔 악마의 꼬리가 달린 줄로만 알았던 간첩조차, 남북 간의 정세에 따라 얼마든지 제거될 수 있는 희생양에 불과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남북 간의 화해 무드가 도는 순간조차, 누군가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 그 덕분에 관객은 임무를 수행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당할 수 있는 존재, 국가와 별개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간첩’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남북 간의 해피엔딩을 상상할 만큼 힘이 센 판타지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북 간의 대화를 가로막고 공포를 불러온 책임이 다름 아닌 충성을 강요하는 체제에 있다고 고발하는 단계까지는 온 것이다.

이듬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그다음 해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2001)에서 한국 영화는 가족주의를 통해 남북 간 비극의 역사를 곱씹고 이를 넘어서야 하지 않겠냐고 웅변했다. 같은 시기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년)이 열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해 매스게임을 관람하던 중 카드섹션으로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이 연출되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에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위성 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은 물론 북미 화해 무드까지 조성되던 시대적 흐름과 대중문화는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랬던 시절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천상륙작전>(2016) 같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시절로 회귀하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