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적폐 청산, 제도로 완성한다
국정원 적폐 청산, 제도로 완성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고 대공수사 기능을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에 넘기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 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 폐지와 대공수사 기능 폐지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으로 대표되는 국내 정치·선거 개입과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대표되는 대공수사권 문제를 손보겠다는 뜻이다. 정치 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국내 정보 수집은 그만두고 북한과 해외 정보 수집을 강화하는 해외안보정보원으로 재편하겠다는 게 개혁의 큰 그림이다. 수사 기능은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으로 넘긴다. 경찰 개혁도 동반된 그림이다. 미국 CIA나 영국 Ml6처럼 정보는 정보기관이, 수사는 수사기관이 맡는다는 원칙이다.
핵심 전략은 ‘개혁의 제도화’다. 권력기관 개혁을 선의나 의지에 맡겨서는 또다시 실패한다는 참여정부 시절의 반성이 바탕에 깔렸다. 제도화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대선 주자 시절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월5일 그는 권력 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 좌담회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간첩 조작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국내 정보활동의 빌미가 된 수사 기능을 없애겠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수사의 기반이 되는 국내 정보 수집도 막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수사권이 있으니 수사를 위한 국내 정보 수집을 하게 되고, 정보 수집을 한 다음 수사권을 활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두 가지 기능 중 한 가지만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경험을 복기해서 만든 공약이었다. 이후 후보자 토론회 때마다 문 대통령은 해당 공약을 반복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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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진기자단 |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 실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전횡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9년 동안 국정원은 국내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댓글 사건 외에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박원순 제압 문건 작성, 보수 단체 집회 지원 의혹 등이 연달아 불거졌다(22~24쪽 표 참조).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라는 원훈이 무색할 정도로 요란한 정치 개입이었다.
국정원 개혁은 노무현 정부의 과제이기도 했다. 다만 참여정부는 이를 기본적으로 제도보다는 의지 문제로 여겼다. 집권 5년을 마치며 2008년 2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는 이러한 인식이 잘 드러난다. 참여정부 마무리 백서 격인 <참여정부 정책보고서>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편의 국정원 개혁 부분이다. “국정원의 탈정치·탈권력화 및 순수 전문 정보기관화는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보 사용자와 국정원 구성원이 인식하는 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한 의식의 문제이고 의지에 관한 문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를 폐지하고 정치권 동향 보고 등을 중단시켰다. 각종 정부기관에 대한 국정원의 존안 자료(주요 인물의 활동 상황 기록 자료)와 정보 보고는 정권을 장악하는 대통령의 힘이었다. 동시에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참여정부의 문제의식은 명료했다. 참여정부 첫 국정원 기조실장인 서동만 교수가 2003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의 대부분이 국정원장 개인의 정치권력 유지라는 사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동안 국정원장은 핵심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나머지는 실제로 필요로 하는 다른 부처와 공유하지 않고 사장시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정권 보위 활동 시작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은 검찰과 달리 청와대의 개혁 조치에 적극 호응했다. 불법도청 등 과거사를 규명하고 사과했다. 국정원 업무 영역도 공안 일변도에서 벗어나 국가 정보기관에 걸맞도록 재편했다. 2003년 10월 산업기밀보호센터를 만들어 산업정보 보호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국정원은 제도적으로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입니다(2006년 3월23일).” “국정원은 과거의 특권 행사, 특권 구조가 해소된 것 같습니다(2007년 1월19일).” 당시 한나라당도 대공수사권 폐지에 반대해 국정원 개혁은 수사권을 조정하는 등의 제도 개혁 없이 끝났다. 국정원법까지 건드리는 차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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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홈페이지 갈무리 2016년 6월10일 국가정보원은 원훈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에서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교체했다. |
그러나 대통령의 선의에 머문 개혁은 정권이 바뀌면서 역진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국정원장의 대통령 대면 보고가 부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측근인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을 국정원장에 앉혔다. 정권 보위를 위한 국정원 활용이 되살아났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보배드림 등과 트위터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2012년 대선 당시 “이번에 문죄인이 되야 (북한에) 링겔이라도 꽂아줄 텐데ㅋㅋ 근혜찡이 되면ㅋㅋㅋ 북괴는 괴멸할 거다(오늘의 유머, 2012년 12월11일)” 등과 같이 온라인에 글을 써 문재인 후보를 비방했다. 이를 밝히고 문제 제기했던 이들에게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괴롭혔다(25쪽 상자 기사 참조).
국내 정치 개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정원은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다. 2014년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국내 정치에 두 번 다시 개입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정보관(IO)의 국회·정당·언론사 상시 출입 금지, 관련 조직 폐지 또는 축소 방안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지만 정치 개입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관련 조치가 입법으로 제도화되지 않아서다. 권력자의 선의와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깨달음을 얻는 9년이었다.
문재인 캠프에서 국정원 개혁 공약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인사의 진단이다. “국내 정보 수집을 안 하겠다는 것은 국정원장이나 대통령의 의지로 가능한 개선에 불과하다. 개혁과 개선은 다르다. 정부조직법과 국정원법을 바꿔 국정원의 수사권을 내려놓게 만들어야 개혁이 된다. 국정원이 수사권을 가져 그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또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무리한 수사를 했다. 대표적 사례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다. 이후에 박원순 견제용으로 기획된 사건이라고 드러났다. 국정원의 수사권 이전을 통해 국내 정치 개입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속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국정원 개혁은 기본적으로 검찰 개혁과 구조가 유사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 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권력기관의 전횡을 견제하는 장치가 함께 만들어져야 개혁이 완수된다.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은 인사와 운용으로, 기관의 전횡은 권한 분산과 조정으로 개혁한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권한 분산을 제도로 못 박아야 하고, 그러려면 대통령과 의회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26~27쪽 인터뷰 참조).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의 수사권을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으로 넘기도록 공약을 설계했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복합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이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이 가진 수사권을 경찰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기소는 검찰이, 수사는 경찰이 한다는 권한 분산의 원칙을 세웠다. 여기에 국정원이 지닌 수사권까지 경찰로 옮길 경우, 이번에는 경찰의 권한이 너무 커지게 된다. 그래서 경찰의 권한 또한 나누도록 설계했다. 미국의 연방경찰과 자치경찰처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어 권한을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조직법과 국정원법 개정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안은 복잡한 대수술
즉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안은 국정원 한 기관만의 개혁 구상을 넘어선다. 검찰·경찰 개혁과 맞물려 고도로 섬세하게 돌아가야만 성공하는 대수술이다. 해당 권력기관들의 반발을 제어하고 국회의 지지까지 얻어야 한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권한에도 불구하고 성공 가능성을 낙관만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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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6월1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서훈 국정원장(오른쪽)과 티타임을 갖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정보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이렇게 진단한다. “국정원 개혁을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확실하다. 공개 발언도 많았다. 참여정부 때 경험한 결과, 운영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다만 서훈 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대통령과 온도차가 느껴진다. 국정원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대통령이 중심을 잡으면 국정원장은 따라가게 되어 있다. 현재 국회 상황도 괜찮다. 국정원 개혁은 야당에 불리하지 않다.”
서 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대공수사권 이전과 관련해서 당장은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느냐는 의구심 섞인 질문을 여당 청문위원들로부터 받았다. 문 대통령이 반대한 테러방지법에도 긍정적이다. 서 원장의 취임 이후 일성이었던 국내정보관(IO) 폐지만으로는 개혁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정보관 폐지 조치는 그 자체로 진일보한 개혁이지만, 제도가 아니라 국정원장의 의지에 달린 조치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병기 국정원장의 국내 정치 개입 차단 선언이 공수표로 돌아갔듯, 원장의 의지에 기반한 개혁은 언제나 역진이 가능하다. 인사청문회에서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 개혁은 원장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원장 의지로 된다고 해도 원장이 바뀌면 또 훼손될 수 있다. 국정원 개혁은 법과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6월1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산하에는 적폐청산 TF를 만들었다.
의지가 확고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물러나자, 국정원은 또다시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언론 플레이의 가장 앞에 섰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이 논두렁에다 시계를 버렸다는 거짓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라고 폭로한 바 있다.
이제는 의지를 넘어 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경험이 쌓일 만큼 쌓였다. 관련 입법이 국정원 개혁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잣대라는 뜻이다.
“국정원, 견제 없으니 끝없이 망가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을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신뢰받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나누는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MBC에서 30년간 근무 후 여의도로 진출했다. 국회의원이 된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당 최고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맡아 <국정원을 말한다>라는 책을 냈다. 국정원을 감시하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4년째 몸담고 있다. 그사이 ‘국정원 사건’은 더 많아졌다. 그는 지난해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서 ‘국정원의 흑역사’를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
2017년 5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국정원 개혁 요구와 기대가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국정원 개혁 공약을 내세웠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금지와 대공수사권 이관이다. 국정원 문제의 핵심 요인을 진단한 다음 나온 해법이다. 이제 국정원 문제 감시자이자 개혁의 파트너로 나서야 할 여당 정보위원이 된 신경민 의원을 6월5일 만나 국정원 개혁에 대해 물었다. 그는 “국정원 개혁은 이제 운용이 아닌 제도화로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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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4년째 몸담고 있으면서 국정원의 문제점을 분석한 <국정원을 말한다>를 쓰기도 했다. |
서훈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국정원의 과오를 쭉 읊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입 및 언론 공작을 시작으로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관제 데모 지시 의혹, 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RCS 내국인 사찰 의혹 등을 언급했다. 리스트업해서 말하다 보니 새삼 많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을 넘어 아예 주도했다. 이를 신임 국정원장이 살피고 진단·처방하는 데서부터 국정원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9년간 국정원은 감사도 수사도 조사도 받지 않는 기관이 되었다. 검찰 수사 거부, 감사원 감사 거부, 국회 국정조사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서훈 원장의 일성은 국내정보관(IO) 폐지다.
2013년에도 비슷한 조치는 있었다. 대선 댓글 개입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국회가 특위를 꾸려 ‘IO의 국가기관 등 파견 및 상시 출입금지’안을 마련했다. 그때는 ‘출입 않겠다’였고, 이번에는 ‘아예 없애겠다’는 차이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간 조치다. 물론 폐지가 끝은 아니다. 보안업무를 한다며 국내 기관에 개입할 수 있다. 또 IO 조직과 인원을 적절하게 변모시킬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 문제가 남았다. 내부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두고 봐야 한다. 첫 행보가 분명히 한 단계 진전한 것은 맞지만, 이제 시작이다.
감찰실장 자리에는 검찰 출신이 앉았다.
진일보했지만, 외부 인사 임명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례가 있다. 외부 인사를 어떤 요건에서 일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RCS 사건이 터지고 담당 과장이 자살했다. 고강도 감찰을 받고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겼다. 국회에서 감찰 자료를 요구했다. 국정원은 감찰을 하면 무조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감찰을 안 했다는 거다. 직무유기로 욕먹을지언정 진실 은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감찰 안 했다고 우기면 확인할 방법도 없다.
자체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 외부에서 견제가 가능한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원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꿔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앤다는 게 대선 때 우리 당의 공약이었다. 국정원의 수사권은 없애고, 대공수사는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으로 이관한다는 계획이다.
대공수사권 이관은 자유한국당이 반대한다.
반발이 많다는 거 안다. 국정원이 제일 잘하는 분야라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정원의 전횡을 보면 회의가 든다. 대공수사권을 이용해서 간첩을 만들기까지 했다.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보자. 처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주장할 때 설마설마했다. ‘민변의 오버가 아닐까?’ 검증해보니, 검찰이 재판부에 낸 중국 공문서는 맞춤법조차 틀린 서류였다. 어쩌다 저리 허술한 자료를 증거로 냈을까? 국정원이 수사한 증거에 검찰이 손도 못 대서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국정원이 끝도 없이 망가졌다. 제도적으로 국정원의 권한을 나눠 견제받게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 개혁은 시도됐다.
그때는 제도를 손대기보다는 사람을 통해서 바꾸려고 했다. 외부 인사를 국정원장·기조실장에 임명하는 등의 개혁을 시도했다. 대통령의 의지로 국내 정보 보고도 받지 않았다. 국정원도 발맞춰 과거사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다 원대 복귀했다. 제도를 크게 손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 쇄신도 정권이 끝나니 다시 원위치되었다.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다. 당시를 교훈 삼아 제도를 바꾸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동시에 인사와 운용도 잘 해야 한다. 실패의 경험을 따져서 되풀이하지 않는 게 이번 정권의 책무다. 무조건 우리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왜 실패했는지부터 짚고 시작하자.
의회의 견제도 중요하다.
국정원 견제는 청와대와 국회가 해야 한다. 청와대는 운용과 인적 쇄신, 국회는 제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국회 정보위 기능 강화도 중요하다. 현재는 비공개가 남발된다. 정보위가 열리면 보좌진도 못 들어간다. 전문위원도 없다. 의원만 참석한다. 그렇다고 엄청난 비공개 정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듣고 있으면 왜 이걸 비공개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조건 공개하자는 게 아니다. 비공개해야 할 정보가 분명 있다. 그러므로 공개와 비공개를 적절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는 비밀주의가 너무 심해서 보고의 신뢰도까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은 예산 집행·결산에서도 특혜를 누린다.
일반 부처와 달리, 국정원은 사업별 예산이 아닌 총액만 제출하고 첨부 서류도 면제된다. 정보위 심사만으로 예결위 심사를 대신한다. 감사원 회계감사도 국정원장의 ‘셀프 회계감사’로 대체한다. 현재 국정원이 정보위 심사를 받지 않는 기재부 예비비를 매년 3000억원 정도 쓰는데, 이를 전면 금지하거나 국회 정보위 또는 예결위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이 국정원 본연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주장인가.
국내 정치 개입을 일삼던 국정원이 정작 김정일 사망은 몰랐다. 정보위가 열릴 때마다 국정원이 하는 보고는 ‘북한은 곧 망한다. 정치적으로 굉장한 어려움에 처했다. 경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 혼돈과 불안이 크다’이다. 현실은 다르다. 안 무너졌다. 제발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적 사고)’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북 전략을 세운다. 한동안 국정원 별명은 ‘걱정원’이었다. 국정원을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어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신뢰받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나누는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