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남성 감독이 그린 '시월드' <B급 며느리> - "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일취월장7 2017. 6. 12. 12:46

남성 감독이 그린 '시월드' <B급 며느리>

[작은책] 결혼 생활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
2017.06.10 13:14:44

저는 시댁에 가지 않는 며느리입니다. 결혼 14년 만인 2014년부터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명절날이 되면 경기도 일산에 사는 엄마를 광명 오빠 집에 모셔다드리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한 뒤, 일산의 시댁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차례와 성묘를 모두 마친 후 다시 오빠 집으로 갔습니다. 2014년 이후에도 겉으로 보이는 여정은 같습니다. 하지만 "다녀오겠습니다" 한 뒤, 다른 가족들만 시댁에 갑니다.

가족들이 시댁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쌓인 정을 나누는 동안 저는 혼자 있습니다. 혼자 있는 저를 위해 가족들은 시댁에서 자지는 않습니다. 첫해에는 가족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혼자 일산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가족들을 기다렸고, 두 번째 해에는 아이들이 늦은 시간에 다시 강화 집까지 가는 걸 너무 피곤해해서 비어 있는 엄마 집에서 몰래 잤습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마 집에 들어서자마자 실내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둬야 합니다. 도둑잠을 자고 다음 날 엄마 집을 떠나기 전, 이불장에 이불이 들어 있던 순서, 침대에 놓여 있던 사물들의 위치 등을 전날 사진을 보며 함께 복원하며 아이들은 마치 첩보원이라도 된 듯 즐거워합니다. 가족만의 비밀은 갖는다는 것은 일체감과 죄의식을 함께 줍니다. 하지만 평생 아버지 대신이었던 오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저는 친정에도 못 가게 되니 이 비밀은 계속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Myeoneuri - My Son’s Crazy Wife)>의 영어 제목은 '며느리'를 소리 나는 대로 쓴 뒤, '나의 아들의 미친 부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품은 지난 3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본선 진출작품으로 선정됐다. 이미지는 영화 스틸컷.


<B급 며느리>의 주인공 진영도 시댁에 가지 않는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라면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한다고 믿는 시어머니와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진영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습니다. 고부간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고 이들의 아들이자 남편인 선호빈 감독은 카메라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봅니다. 영화 안에서 선호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독립영화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통째로 갈아 넣는 듯이 고통스러웠다며 '에밀레 다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B급 며느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관객 반응은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고려대학교와 출교생들 간의 갈등을 담은 <레즈>(2011)로 데뷔한 선호빈 감독에게는 이러한 관객 반응이 새로웠을 것입니다.

"엉성한 구석이 많은 영화인데 관객들이 이야기의 빈자리를 스스로의 기억으로 메워 가며 감상해 주었다."  

SNS에 올린 감독의 이 말에는 '사적 다큐멘터리'의 효용과 가치가 압축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다수가 선택한 결혼이라는 삶 안에서 우리들 모두는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저 같은 사람에게 결혼 생활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이상한 무대였습니다. 그 무대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힘껏 노력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쉬쉬해 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라는 선호빈 감독의 내레이션 첫 문장이 통쾌합니다. 주인공 진영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상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결혼하자마자, 첫 명절을 맞았고 시댁에 다녀온 후 저는 급체로 앓아누웠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엄마 옆에서 남편은 억울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려 깊은 시댁 식구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온 뒤였거든요. 환대받는 사위의 입장에서는 시댁에서 제가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제 상영 후 객석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진영 씨가 B급 며느리면, 감독 자신은 몇 급 사위라고 생각하나요?"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박수로 등급을 매겨 보자는 재치 있는 제안을 했고 결과는 'F급'이었습니다. 선호빈 감독은 그 결과를 순순히 인정하더군요. 영화를 만들면서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감독의 고백은 그래서 참 반가웠습니다.  

저도 이 영화가 참 반갑습니다. 12년간의 육아일기인 제 영화 <아이들> 상영회에서 관객들은 왜 친정 식구들만 나오냐는 질문을 합니다. 시댁에서 며느리는 그저 전 부치고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사람인데 그런 일 안 하고 카메라 들고 있으면 큰일 나죠. 이게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라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위치이기 때문에 시댁 얘기는 단 한 장면도 등장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B급 며느리> 덕분에 관객들은 결혼생활로 확장된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2010)을 보고 난 후 육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던 것처럼요.  

제가 참여하지 않았던 바로 전날 상영회에서는 한 남성이 사위로서의 고민을 펼쳐놓았고 관객들이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내내 명랑하던 진영이 영화 막바지에 눈물을 쏟으며 말합니다. 

"이 결혼 생활에 뛰어들기 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했던 사람이었는지 그냥. 오빠가 영화랍시고 이거 찍는 동안 나는 이 집에서 병들고 늙어 가고 있다고."

고부간 갈등이 미스터리인 이유는 갈등의 당사자 모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면, 갈등의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으면 안 되겠죠. 하지만 우리들 모두는 각자 고군분투합니다. 더 힘든 상황을 견뎌 낸 앞 세대 사람들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합니다. 아직 이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왜 이혼하지 않지?' 의아해합니다. 결국 혼자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영처럼 용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저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상하고 때로는 거짓말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 결혼 생활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B급 며느리>의 진영을 만났고, 그래서 이렇게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이것이 사적 다큐멘터리의 힘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격월간 민들레] 아기, 황새가 물어다 줬다? 첫 단추부터 어긋난 성교육
2017.06.10 13:14:07

알 건 다 안다고!

중학교 2학년 즈음인가,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좀 달랐다. "아라야, 여기 앉아봐." 엄마의 첫마디는 큰 돌덩이가 저수지에 빠진 듯 무겁고 답답했다. 이윽고 이어진 말, "니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답답함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젠장,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바로 엄마표 성교육. "안다, 다 안다!" 나는 외치듯, 짜증을 내듯, 화를 내듯 내뱉었다. 

당시 나는 엄마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거북했다. 그런 얘기가 엄마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싫었고 그런 얘기를 내 귀로 듣는 것도 싫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어서 "다 안다고!"를 외치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엄마는 그런 나의 외침을 전혀 믿지 않았다. 엄마 눈에는 언제까지나 작고 순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성년자 딸내미가 그런 걸 절대로 다 알 리가 없었고, 또한 아직은 알 리가 없어야 했다. 이어지는 엄마의 성교육 시간 동안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장판이나 벽지의 무늬를 보며 거북스러운 속을 달랬고, 엄마는 본인도 하기 싫고 두렵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할 말만 순서대로 쏟아내고 있었다. 

서로에게 힘들기만 했던 성교육의 결론은 결국 '남자는 욕구를 잘 참지 못하며, 흥분하면 성기가 단단해지는데 그 성기를 여자 성기로 집어넣으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고 그러면 아기가 생기므로 여자인 나는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꼭 몸조심을 하겠노라' 여러 차례 다짐하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픽(팬들이 만든, 연예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즐겨 읽으며 이미 사랑, 섹스, 동성애, SM 플레이 등에 대해 '글'로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고, 남자의 몸속에 있는 정자가 여자의 몸속에 있는 난자와 무슨 수로 만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해서 혹은 사랑 없이 욕구만으로 섹스하기도 하고, 또한 섹스는 황홀감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빠도 섹스를 통해 나를 낳았다는 것이 마치 동물처럼 느껴져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성교육은커녕 부모님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려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성교육을 받았던 친구들도 그 내용과 결론이 나와 다르지 않았는데, 결론은 언제나 '여자는 팬티를 잘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성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미지의 세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지의 세계를 나와 함께 걸어가거나 안내해준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 입구에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출입금지' 팻말을 세우는 어른들이 있었을 뿐이다.  

ⓒgettyimage.com


모른 척하는 부모들 

몇 년 전,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이성 교제'(강의안에는 이성 교제라고 적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연애'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를 주제로 성교육을 하면서 연애할 때의 좋은 점과 걱정되는 점을 포스트잇에 적고 얘기한 적이 있다. 연애할 때 걱정되는 점을 적은 메모 중 눈에 띄는 것이 '낙태'였다. 그 메모를 골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교실엔 "으어~" 하는 야유가 쏟아졌다. 간간이 "쓰레기네, 누구고? 미쳤나!" 하는 추임새도 있었다. 그때 묻지도 않았는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자기가 썼노라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야유는 한층 더 높아졌다. 그러나 그 아이가 내뱉은 말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가 임신하면 낙태하는 것 말고 뭐 다른 방법 있어요?"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해도 중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쳐도 최저시급도 안 주는 사업주가 수두룩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만큼의 급여를 위해서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어야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든 학업을 중단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어렵게 아이를 낳더라도 '걸레' '양아치'라는 말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날 나는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의논하겠는가 하는 질문도 했는데, 대부분 친구나 그 일을 함께 벌인(?) 상대방을 꼽았다. "부모님하고는 상의하지 않아? 그 이유가 뭐야?" 하고 묻자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부모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은데요." 

그날 이후로 얼마간 나는 아이들이 부모님은 왜 해결 방법을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지 생각해보았다. 부모들이 성에 대해서 늘 모르는 척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에는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황새가 물어다 줬지"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둘러대기 일쑤다. 가정에서의 성교육은 첫 단추부터 어긋난 셈이다.

청소년이 된 아이의 방에서 휴지 뭉치를 발견하거나 컴퓨터에서 '뻐꾸기' '직박구리' 같은 수상한 새 폴더를 발견하면, 속으론 걱정하면서도 많은 부모들이 이 또한 모른 척 넘어가려 한다. 온라인 카페에 "우리 아이가 야동을 보는 것 같아요. 자위를 하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하고 글을 올리면, "사춘기가 시작됐네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모르는 척하세요"라는 유경험자들의 댓글이 주르르 달리니까. 부모들끼리 자연스러운 발달상의 과제들에 대해 '모르는 척하기'로 대동단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들은 꽤 오랫동안 쑥스러워서, 민망해서, 당연한 과정이라서, 혹은 정말 몰라서 아이들의 성에 대해 울타리 밖에 서서 모르는 척해왔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선 지금까지 모르는 척하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성 얘기를 하자고 들면, '왜 이래?' 하고 거부 반응이 드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이들과 성 얘기를 나눌 때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든(그러나 아이가 원할 때,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와 성 얘기를 하는 부모가 되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부모가 되고 나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는 두 돌 무렵부터 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엄마 몸을 여기저기 찔러보거나 자신의 몸을 무던히도 관찰하며 놀았는데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는 속옷 차림으로 편안히 누워 있는 아빠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고추를 확 잡아당겨 남편이 "억!" 하며 나동그라진 적이 있다. 나는 태연히 아이에게 다가가 "이건, 고추라고 하는 거야. 우리 아민이랑 엄마 몸에 있는 짬지랑은 다르지?"라고 말했다. 아, 얼마나 살아 있는 교육인가! 그러나 그런 내 의기양양한 태도도 잠시, 남편이 "아빠 아프다고! 아빠도 부끄럽다고!" 하며 아이를 붙잡고 혼을 내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는 아이의 성교육 교구가 아니라 아빠 자체로 성적인 인간임을. 그렇기에 그런 남편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임을 나는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나만 이런 착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종종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엄마의 목욕 장면을 힐끔 훔쳐보거나 슬쩍 가슴 쪽을 터치하고, 혹은 딸이 집에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녀 민망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참에 성교육을 해야 한다", 혹은 "발달상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넘어가라" 하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안타깝게도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몸을 훔쳐보거나 가슴을 터치하는 것이 불쾌한 '나'는 어디에도 없고, 이런 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부모'만 남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에게 내 기분이나 생각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어린아이라 가끔 가혹하게도 느껴질 테지만, "사람들 앞에서 엄마 찌찌 만지지 마, 간지럽고 부끄러우니까. 엄마 찌찌는 엄마 거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조금 서운해하지만 나름대로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인다. "그럼, 만져도 될 때 다시 이야기해줘" 하고 협상까지 할 정도니까. 

그런데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그런 '나'가 어떤 사람인지 점검할 필요가 생겼다. 성교육 강사 생활을 하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성에 대한 여러 통념을 깨부수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언뜻언뜻 숨어 있는 통념들을 발견하게 된다(예를 들면, 딸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아이고, 치마를 입었으면 얌전히 이쁘게 앉아야지"라고 말하는 것).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다. 부모가 무의식중에 한 말뿐만 아니라 어조, 눈빛, 손짓까지 기억하곤 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편이 맞겠다. 뉴스를 보다가 성폭행 사건 같은 보도에 무심결에라도 "아니, 그러게 왜 늦은 시간에 돌아다녀서. 쯧쯧, 혼자 사는 집에 남자를 들였다면 뻔하지"와 같은 말을 했다면 아이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가해 행위를 해도 그것이 잘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반대로 피해를 입고도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 것이다.

'설마, 내 아들딸은 안 그렇겠지'도 부모들이 흔히 가진 가장 심각한 성 통념이자 아이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부모 안에 있는 통념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부수는 작업이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성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높아져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너무 아는 척(?)하는 사례들도 많다. 주로 초경을 시작한 딸아이에게 생리 파티를 열어주거나 연애를 시작한 아들의 서랍 안에 깜짝 선물로 콘돔을 넣어두거나 아빠와 아들이 함께 야동을 공유하거나 하는 것들인데,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좋지만 자연스러운 성장을 자칫 '이벤트'로 다루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일상이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함께 관심을 갖고(자연스레 아이의 이성에 대한 관심, 이상형 등을 알게 된다), 교육상 안 좋다는 이유로 참지 말고 부부싸움(이성 간의 싸움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화끈하게 하고, 가끔은 아이 앞에서 뽀뽀도 당당하게 하며 아이들과 일상을 살아가는 건 어떨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상 속에 아이들과의 성적 소통 또한 이전과 확실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