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국방장관이 새 대통령 능멸한 국기 문란 사건" - 4월 한반도 위기설은 어떻게 지나갔나
정세현 "국방장관이 새 대통령 능멸한 국기 문란 사건"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은 엄연한 군 통수권자이다. 그런데도 보고를 누락시켰다는 것은 국기 문란의 문제"라며 "대선 전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이 서둘러서 사드 장비를 가져다 놓는 것과 관련해 국정조사 또는 청문회, 필요하다면 특검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번 사안도 이와 유사해 보인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고 해도 현 대통령에 대해 중요한 안보 사안을 보고도 하지 않는다? 이건 전임 정부의 장관들이 새 대통령을 능멸한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관련해 그는 남한이 아닌,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처음에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도 불사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이 위협적인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점점 유연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북한 입장에서는 머지않아 북미 간 협상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이 이뤄지는 직전까지 몸값을 최대한 올려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미국과 협상이 임박했다고 보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적 행위를 진행하면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북한과 미국이 핵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한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남한을 배제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실제 '통미봉남'(通美封南. 남측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함)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경제적인 분야에서 북한을 남북 회담 테이블로 유도해야 한다"며 "정치적으로 우리가 북한의 '통미봉남'에 당했다고 화만 낼 것이 아니라,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민간 통로를 열어 둬야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30~3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반입한 것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했다는 청와대의 조사 결과 발표가 나왔습니다.
정세현 :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고 해도 현 대통령에 대해 중요한 안보 사안을 보고도 하지 않는다? 이건 전임 정부의 장관들이 새 대통령을 능멸한 수준입니다. 필요하다면 수사까지 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입니다. 대선 전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이 서둘러서 사드 장비를 가져다 놓는 것과 관련해 국정조사 또는 청문회, 필요하다면 특검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번 사안도 이와 유사해 보입니다.
먼저 정부가 묻지 않았다고 하면서 안보에 무능하다고 하는데, 이건 당연히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한테 보고했어야 할 중대 안보 사안입니다. 심지어 사드 비용을 누가 내느냐의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중대한 사안으로 떠올랐는데, 그럼에도 보고를 누락했다면 국기 문란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 국방부는 30일(현지 시각) 사드 배치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정세현 : 이건 한미 간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이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내 문제입니다. 미국과 관계를 고려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서 볼 사안이 아닙니다.
물론 새 대통령의 외교‧안보 라인의 인선이 늦어지면서 국방부도 어디에 보고해야 할지를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안보실장을 임명했다면 국방부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중요한 사안이었다면 대통령에게 따로 면담을 신청해서라도 현황을 정확하게 알렸어야 합니다. 그건 군 통수권자에 대한 의무입니다.

▲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럭이 성주 롯데 골프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인선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6월 말에 한미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한 목표를 세우지 못한 채 그냥 미국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정세현 : 일단 외교‧안보 인선과 관련해, 외교부 장관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가야 하는 정상회담은 외교부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이 준비하는 것이고, 외교부는 필요한 실무를 뒷받침하면 됩니다.
그리고 정상회담은 양측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이 확실치 않다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바가지 쓰고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이미 확정된 회담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우리 외교‧안보 실무진 인선이 끝날 때까지 한미 정상회담을 미루자고 하면, 이런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냐는 이야기도 나올 겁니다.
첫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우리는 할 말을 하면 됩니다.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통화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전했듯이 사드나 기타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면 됩니다. 우리도 미국 너네와 같은 민주주의‧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들과 약속을 지켜야 하고 국회 비준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겁니다.
북한의 미사일,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프레시안 : 북한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매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습니다. 대체 북한의 저의는 뭘까요?
정세현 :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을 상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데요. 우선 이 미사일들이 중장거리, 즉 괌이나 하와이 인근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 이동 발사대를 쓰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남한보다는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처음에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도 불사할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 라는 카드를 꺼냈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북한과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북미 양자 회담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북한이 위협적인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점점 유연한 쪽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북한 입장에서는 머지않아 북미 간 협상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이 이뤄지는 직전까지 몸값을 최대한 올려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미국과 협상이 임박했다고 보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적 행위를 더 진행하면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봅니다.

▲ 북한이 29일 정밀 유도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김정은(오른쪽)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과 미국은, 비록 1.5트랙이긴 하지만 지난해 10월 쿠알라룸푸르, 11월 제네바에서 접촉했고 지난 8~9일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또 접촉을 가졌습니다. 이 접촉에서 북한 측 대표로 나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은 북한의 의사를 여러 번 전달했을 겁니다.
지난 14일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화성-12를 발사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최 국장은 13일 베이징을 통해 평양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 미국과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건이 되면'이라는 조건을 붙었는데, 미국과 북한이 이 조건을 이야기했을 겁니다. 여기에 대해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답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북한이 화성-12를 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과 미사일 발사 유예 또는 중단을 교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의견 교환이 이뤄졌는데 미국이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있을뿐만 아니라, 당시는 미국의 항공모함인 칼빈슨호도 동해에 전개해 있었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항공모함과 같은 전략자산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최소한 칼빈슨호 정도는 동해에서 나가야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칼빈슨호를 그대로 동해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를 유예 또는 중단한다는 자신들의 조건 역시 철회한다는 생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성장하면 우리한테 위협이 되는 것이라며, 김정은 정권이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떠보기 위해 이같은 행동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하는데, 사실 북한은 문재인 정권을 떠 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고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가동 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압박이나 제재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굳이 저런 미사일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떠 볼 필요가 있을까요?
프레시안 : 청와대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서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만약 북한의 미사일을 두고 정부가 "저건 우리가 아닌 미국을 상대하는 것"이라며 NSC 회의도 열지 않고 있으면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마 무책임한 정부라고 지적할 것입니다. NSC 회의도 하고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해 경고도 해야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NSC를 열고 북한의 행동에 대비하면서 강력한 경고를 내놓는 것은 비껴갈 수 없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경고가 북한에 효과를 발휘하려면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작권이 있다면 북한도 함부로 남한을 상대로 도발을 벌일 수가 없습니다. 남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작권이 환수되면 미국은 강 건너 불구경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공산화된다는 공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패배주의적인 의식입니다. 이런 의식을 타파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이 이러한 의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현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이 바로 협상에 들어갈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 때문에 정신이 없고,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측은 1.5트랙 대화를 통해 서로 접촉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활동을 유예하도록 설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이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지는 대로 본격적인 양측 당국 간 접촉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프레시안 : 한국과 중국의 개입 없이 미국과 북한의 일대일 대화가 가능할까요?
정세현 :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각) 베이징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 이후 중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제안했는데요.
틸러슨 장관은 당시 왕이 부장의 제안에 대해 '노'(NO)라고 대답하지 않은 채, 앞으로 긴밀하게 협조하자는 식으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이게 인사치레일 수도 있으나, 한국도 회담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북한이 미국과 일대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과거 3자와 같은 다자회담에서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2003년 4월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도 당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따로 복도로 불러내서 중국은 왜 자꾸 여기에 낄려고 하냐, 장소만 제공하지 왜 조정한다는 이유로 나서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북미 간 대화를 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미국과 마주 앉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고 스스로를 선전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다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내부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죠. 그런 의미에서 북미 양자회담 추진을 위해서라도 북한은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들어가려 할 겁니다.
여기에 북한은 전통적으로 미국에 대해 세게 압박하면 할수록 미국이 직접 회담장에 나오고, 먼저 자신들에게 달려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을 때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과 직접 만났습니다. 또 2006년 1차 핵실험을 했을 때도 미국이 북한에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죠. 북한은 아마 미국이 움직일 때까지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지금 북한과 일대일 대화를 할 상황이 아닙니다. 외교‧안보 라인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최선희 국장과 마주 앉을 담당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그래 너네 마음대로 해봐라" 라고 넋놓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북한의 의도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좀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1.5트랙 접촉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정부 내의 본격적인 인선이 끝나면 이런 접촉을 기반으로 당국 대화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코리아 패싱' 당하지 않으려면…남북 민간 교류 열어야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북한과 미국이 일단 대화하라고 놔둬야 합니까?
정세현 : 지금 상황으로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한반도 상황에서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만나려는 이른바 '통미봉남'을 원할 겁니다.
실제 김영삼 대통령 집권 당시 우리가 이러한 입장이었는데, 당시 남한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면 안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남북대화 시도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북미 접촉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든다면 우리도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위해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남북대화 채널을 복원하겠다는 식으로 나가야죠.
프레시안 : 그런데 남북 대화는 그렇다 치고 대화 채널 복원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때문에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북한이 저렇게 미사일을 쏴대는데 남북관계 개선이 바람직하냐는 여론도 있습니다.
정세현 : 일단 유엔 안보리 제재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아니, 미국은 유엔 제재에 대한 언급도 없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안됩니까?
대부분의 국제적인 문서들은 해석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문장을 만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교적 합의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건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국내 여론 문제도, 미국도 북한과 대화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안되느냐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나 미사일 발사 유예라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단 남북 간 접촉과 대화라는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5.24 조치 해제를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만 나와도 반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주춤해서 정부가 아무 일도 못한다면, 김대중 정부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100% 국민의 지지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수의 지지가 중요한 겁니다.
문 대통령이 다양한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면서 지금 지지율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 높습니다. 그런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있게 나가야 합니다. 일부 보수층에서 제기하는 비판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정부를 운영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를 느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습니다. 미국과 담판을 짓는다면 굳이 남한과 대화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정세현 : 남북 간 당국회담보다는 경제적인 분야를 통해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유도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과 같은 것은 해주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이 부분을 긁어줘야 합니다. 사회간접자본(SOC)과 같은 분야에서도 필요하다면 우리가 선점해야 합니다. 이런 협력은 북한을 돕는다는 차원보다는 우리 경제의 이른바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동북 3성이나 러시아 연해주로의 물류를 원활하게 해줄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남북 간 연결 고리를 걸어둬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우리가 북한의 '통미봉남'에 당했다고 화만 낼 것이 아니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간 통로를 열어 둬야 하는 겁니다.
민간에서 지원 물자를 보내러 가면 그냥 물자만 주고 오는 게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사람들 접촉하고 정보나 분위기도 알게 됩니다. 또 각종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다보면 우리 쪽 민간과 북한의 당국이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종의 남북 간 1.5트랙 접촉이 수시로 일어나는 셈이죠.
남북 당국 간 회담은 북미 관계의 진전과 남한 국내 여론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여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 사전에 준비를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민간의 영역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점진적인 남북관계 개선 외에 현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없을까요?
정세현 : 우리는 민간부터 시작하는 남북관계 개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고 이를 통해 관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가치중립적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하겠다고 하면 바로 '종북' 논쟁이 불거질 겁니다. 미국은 북한 정도로 적대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적어도 이슬람 국가(IS) 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구의 절반 정도가 북한을 싫어합니다. 정상 간 먼저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결국 민간에서 시작해서 당국까지 이어지는, 점진적인 개선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을 허용하고 북한이 남한의 이러한 로드맵에 호응해 오도록 시간을 주면서 교류 협력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당국회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당국회담도 바로 장관급 회담을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남북대화를 어렵사리 시작했는데, 당시 나온 대북 정책 기조가 점진적‧단계적 접근이었습니다. 결국은 '기능주의적' 접근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정치적인 접근도 필요합니다. 다만 순서는 민간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관계가 원활하게 풀립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3주 만에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외교안보 라인업이 갖춰졌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이번 외교안보라인의 면면은 화려하고 균형 잡힌 모습이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지나치게 군 출신들에 의해 장악됐던 외교안보 분야에 외교부, 학계, 국제기구, 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로 정평이 나있던 인사들을 고루 배치함으로서 당면한 외교안보 현안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강경화 외교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이 북핵 문제를 다루어본 경험이 없다는 비판이 보수진영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프레임 공격이다. 어려운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첫 시험에 선생도 풀지 못한 고난이도 질문을 던져놓고 이를 풀지 못하면 낙제점을 주어 학교에서 내치거나 두고두고 괴롭히겠다는 심산이다. 강경화 지명자 청문회에서 새 정부와 보수세력 사이에 <오케이 목장의 결투> 같은 일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북핵 문제를 풀어나갈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경계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북핵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핵문제의 원인이 그만큼 깊고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 또한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이유는 1990년대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와 더불어 닥쳐온 체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북한은 NPT라는 국제 핵규범 체제의 모순을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때마침 급부상한 중국을 업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핵문제의 판이 커진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북한 붕괴론에 지나치게 기대며 제재와 압박 위주의 북핵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 6자 회담이 공전되고 상황은 오리무중으로 빠져있는 상태다.
북핵 문제는 미지수가 너무 많은 방정식이다. 기존의 공식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새로운 접근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 단절된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재개하고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와 다각도로 공조하며 무너진 신뢰구조를 회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에서 착안한 북한붕괴론에 더 이상 기대서는 안된다. 동구권이 무너진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결함과 내구성의 한계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소련 체제의 붕괴가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반대로 중국은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으며 전략적 이해 때문에 사실상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고 있다. '북한 붕괴보다 붕괴론이 먼저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차차 현실화 되고 있다. 때때로 제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강도와 효용을 면밀히 검토해야한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하고 있다. 이는 마치 너무 센 약을 환자에게 투약했다가 약효도 보기 전에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북한이 선택할 길은 어찌 보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인지 북한 정권의 붕괴인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국제관계는 얼음 같다. 차갑지만 투명하다. 국익이라는 일관되고 확고한 원칙만 가지고 접근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색깔론은 현실을 왜곡시키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교착된 북핵 문제도 적폐의 하나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9년 동안 쌓이며 굳어진 심각한 폐해이다. 이를 바로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이러한 상황이 야기된 과정을 면밀히 복기하며 사실관계와 시시비비를 바로 잡는 것이 우선 요구된다. 데이터만 확실해도 해답의 반은 보인다. 이 과정에서 새 정부 외교라인에게 누구도 과거의 경험을 주입해서는 안된다. 북핵 문제 해결은 남북대결이라는 작은 안보가 아닌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안보의 틀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4월 한반도 위기설은 어떻게 지나갔나
압박으로 시작했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 쪽으로 기울어간다. 중국이 움직였고, 대화파인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0일 계획’을 중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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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PHOTO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위)이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군인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아래)이 5월15일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 폐막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북핵과 관련해 미국이 중국에 준 시간은 100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미·중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에서 연유한 측면도 있다. 어차피 미국은 이 기간에 북핵 문제를 다룰 실무 책임자들 자리가 공석이다. 7월 초에나 국무부 동아태 차관과 차관보, 그리고 국방부 차관 임명이 마무리된다.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100일이면 7월 초다. 이 기간에 중국에 기회를 줄 테니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것이다. 중국이 못하면 그다음에 미국이 직접 나서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전에 했던 얘기다.
100일 후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중국이 얼마나 열심히 뛰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에 따라 국방부 차관에 강성 인물이 앉을 수도, 온건한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대신 지난 4월26일 상원의원 100여 명 앞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이 바로 ‘압박 전략(Pressure Campaign)’임을 천명했다. 4월11일자 <뉴욕타임스>는 이를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압박도 최대로 할 것이고 관여도 최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압박과 관여 중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은 추가 관여(대화)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중국이 그만큼 열심히 뛰기도 했고 5월9일 한국 대선에서 ‘대화파’인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0일 계획’의 중간결산을 해보자.
북한이 4월 핵실험을 포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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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5월24일 신형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 12호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
4월15일 북한의 태양절과 4월25일 인민군 창건일이 가장 중요한 고비였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 호가 한반도 해역으로 접근 중이었고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이 많이 거론되었다. 지난 3월 말부터 함경북도 풍계리 핵 시험장에서는 핵실험 준비가 한창이었다. 핵실험용 동굴을 굴착하면서 토사가 배출되고 측정 장비가 반입됐다. 하지만 핵실험은 일어나지 않았다. 4월15일 태양절 행사 다음 날 미국이 KN-17로 명명한 대함 미사일 발사 시험이 있었다. 4월25일에는 대규모 화력 시험만 거행됐다.
조용히 넘어갔다 싶은데 북·중 관계가 이상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상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4월21일자 <조선중앙통신>이 “북·중 관계에 파국적 후과를 각오하라”는 논평을 게재하자 이튿날 <환구시보>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외과수술식 공격에 중국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것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마지노선’이라는 선언이었다.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을 줄임에 따라 평양 시내 주유소에서 휘발유 판매가 제한되고, 북한 관광이나 국경무역이 통제되는 일이 일어났다.
북·중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둘러싸고 양쪽이 물밑에서 충돌했다. 5월14일자 일본 민방 TBS에 당시 상황이 소개되었다. 지난 4월18일 북한이 중국에 “이틀 뒤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통고했다. 중국 측은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육지와 바다의 국경을 모두 봉쇄하겠다”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북·중 접경지역 공안에다 핵실험에 대비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미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미국은 다시 일본에 통보했다. 결국 북한은 4월20일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는 처지에 국경이 봉쇄될 경우 치명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북한과 단교 조치도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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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노스 홈페이지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풍계리에서 핵실험 징후가 있다며 아래 사진을 공개했다. |
지난 3월 말부터 벌어졌던 일련의 내용을 살펴보면 맥락이 좀 더 이해된다. 우선 북한이 언급한 핵실험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3월 말부터 풍계리 일대에서 핵실험 징후가 있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이번에 파낸 토사의 양이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토사의 양을 토대로 핵실험을 할 경우 폭발력이 280kt 정도 되리라 예상했다. 10kt 정도에 불과했던 5차 핵실험에 비해 28배나 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무슨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난해 12월 NK지식인연대에서 펴낸 <2016년 북핵 및 WMD 평가> 자료집에 그 단서가 나온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직후인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2017년에 6차 핵실험을 실시하는데, 5대 핵 타격 수단 개발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에 따라 5개의 연구개발 주체들이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탄두들을 동시에 터트려라.” 5대 핵 타격 수단은 수소탄,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핵어뢰, 핵배낭을 말한다. 이처럼 5가지 핵폭탄을 모두 터트리기 위해 평상시보다 많은 동굴을 팠기 때문에 유출된 토사량이 많았던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폭발력을 과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시했다.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좀 더 자세한 내용이 홍콩의 시사월간지 <동향> 5월호에 소개됐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박명호 주중 북한 대사관 공사를 불러놓고 중국 외교부 부부장으로 하여금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중국이 취할 5대 조치를 담은 비망록을 낭독하게 했다고 한다. 첫째, 유엔안보리 경제제재와 기타 조치를 굳건히 지킨다. 둘째, 즉시 석유와 석유 연료의 공급을 중단한다. 셋째, 모든 경협을 즉각 중지한다. 넷째, 북한 주재 중국 대사를 소환하고 이후 진일보한 조치를 취한다. 다섯째, 육상 변경과 해상 수계(육상과 해상의 국경선)를 닫고 사태 추이를 봐서 봉쇄하고 계엄조치도 고려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 고집하면 전 세계에 ‘중·조 우호협력 조약’ 파기를 선언한다. 사실상 단교 조치까지 불사한다는 내용이다.
지린대학(길림대)의 쑨싱제 국제관계학 교수는 4월29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기고문에서 중국의 석유 공급 중단은 북한의 전략 비축량 때문에 심한 타격을 가할 수 없는 1~2개월 수준이 아니라 최소 6개월을 중단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은 왜 핵실험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동안 국내외 논의는 주로 핵 기술 발전의 과정이라는 측면에 국한해 분석했다. 1차에서 5차 핵실험까지 이르는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다중폭발실험(6차 핵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간에는 물밑에서 6차 핵실험을 담보로 북한의 핵 폐기와 보상 협상을 전개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4월16일 타이완 중앙통신(CNA)은 중문에서 북·중 간 만남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폐기 조건으로 경제적 이익과 안전보장이 우선해야 하며, 핵무기 폐기를 위한 시한으로 3년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북한에 3개월 이내에 폐기하라며 2∼3주일 내 이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 국내 북한 전문가는 지난 4월22일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북한 대표단이 3월27일부터 3월30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미국과 기타 국가가 무상원조 100억 달러를 포함해 400억 달러를 지원한다면 3년 내 비핵화 노력을 할 수 있다’라는 핵 폐기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3일자 홍콩의 화교용 뉴스 사이트 <아보뤄(阿波羅) 신문망>이 유력 월간지 <쟁명> 5월호를 인용해 북·중 양국이 지난해 8월부터 핵 폐기를 위한 비밀협상을 벌여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 폐기 조건으로 중국·미국·일본·러시아·한국이 10년 기한으로 매년 600억 달러 무상원조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철회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3년 기한으로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보상 액수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북한이 요구한 정확한 액수는 과연 얼마일까? 그 내용 역시 앞의 NK지식인연대 자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에 나온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미국과 관련국들에게 500억 달러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면 우리는 모든 공업과 과학기술에 투자하여 세계적인 부흥국가로 단번에 도약할 수 있다.” 북한 핵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경제개발의 종잣돈 마련인 셈이다.
북·중 간 물밑 대화 시기에 대해 <쟁명>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탈북자 출신 국내 북한 전문가는 3월27일부터 3월30일까지 협의했다고 했다. 북한이 풍계리에서 다중 핵폭발 실험 준비에 착수한 시기가 바로 3월 말이다.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물밑 협상이 3월 말 협상에서도 진전이 없자 6차 핵실험으로 북핵의 위력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구상한 대로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중국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섰다.
7월까지는 유화 국면
중국의 유례없는 대북 압박으로 4월20일 예정되었던 대규모 핵실험은 막을 수 있었다. 4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2~3시간 전에 매우 ‘특이한 움직임(unusual move)’이 있었다. 모든 전문가가 중국이 지금처럼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4월27일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에 핵실험을 감행하면 자체적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통고했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중국의 노력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미국도 북한에 대해 관여(대화)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4월26일 상원의원 100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압박 전략을 발표할 때만 해도 ‘최대한 압박하되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며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그런데 4월27일 틸러슨 국무장관은 ‘비핵화를 위한 북·미 양자대화’를 제안했다. 5월1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이 적절하다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라며 워싱턴 북·미 정상회담 발언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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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
실제로 대화가 이뤄졌다. 한국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5월8일 시작해 5월9일(현지 시각)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등과 ‘뉴아메리카 재단’의 수전 디매지오 국장, 피커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특보, 윌리엄 팰런 전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 등이 만났다. 반관반민(半官半民) 형식의 ‘1.5 트랙’ 대화다. 3월 초에 만나려다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취소된 뒤 재개되었다. 전후 맥락으로 보면 북·미 대화 채널이 빠르게 가동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초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북핵 문제를 중국에 ‘외주’를 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미국이 북한과 만난 이유를 몇 가지 추론해볼 수 있다. 먼저 중국에 대한 배려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일부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을 압박해 핵실험을 막았다. 미국도 대화에 성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국 대선에서 남북 대화를 중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이 북측과 접촉을 시도하기에 앞서 선수를 칠 필요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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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5 트랙 회담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위)과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특보(아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