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문재인 정부, 한미동맹 전환점에 서다 -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일취월장7 2017. 5. 23. 09:57

"문재인-트럼프 '6월 정상회담' 너무 빠르다"

[좌담] 문재인 정부, 한미동맹 전환점에 서다
2017.05.23 07:53:12


북핵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미 FTA,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외교‧안보 사안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등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과제를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2일 만에 국가안보실장을 임명하고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교 안보 라인의 인사는 남아 있고,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의 골격 역시 확고하게 마련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의 발언, 그리고 사안에 따른 대응을 통해 추론해볼 수 있는 정도다.  

이 와중에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는 6월 말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16일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정의용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을 만나 정상회담 및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한 4가지 사항(△북핵 완전 폐기가 궁극적 목표 △제재‧대화 포함 모든 수단 동원 △북한과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 가능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방안 모색)에 합의하면서 정상회담 일정도 함께 발표됐다. 

새 정부가 외교‧안보의 핵심 정책 목표를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일을 진전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남주 교수는 "일부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안보가 불안하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국내정치적인 요인이 조기 정상회담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구갑우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가서 얻을 것이라고는 사드와 한미 FTA 등에서 한국에 청구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지서'를 받아오는 것밖에 없을 것"이라며 "게다가 우리가 이러한 고지서를 다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이혜정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통령 부재 상황이 7개월이나 지났다. 그만큼 주변국가들이 한국을 기다린 측면이 있다"면서도 "전임 정권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이 팀들이 쌓아 놓은 외교‧안보적인 적폐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미국과 합의를 이룬 4가지 사항에서 '평화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모든 수단'에 군사적인 방법 역시 사용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구갑우 교수는 "지금 남아있는 답은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밖에 없다. 북한은 이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혜정 교수 역시 "군대는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군사 훈련을 시행하는 목적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북한과 핵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것은 안정과 평화를 위한 조치"라며 "이를 위해 통상적인 군사 훈련 축소 또는 중단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남주 교수는 "북한이 핵 실험을 또 한 차례 한다고 해서 당장 핵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 어디에선가 우리가 협상을 통해 지연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주도성이 발휘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지금과 같은 제재 국면에서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고 미국은 또 여기에 대응해 강경한 대응책을 내놓는 악순환이 문제였다면, 이 패턴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며 "당장 북한이 미사일 하나 쏜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면 답이 안 나온다. 계속 '조건반사적'인 반응만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좌담은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 문재인(오른쪽에서 세 번째) 대통령이 지난 16일 미국 대표단으로 한국을 찾은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 있다. 첫 만남은 오는 7월 독일에서 열릴 주요20개국(G20)회의에서 간단한 상견례 정도로 하고, 새 정부 외교‧안보의 핵심 정책 목표와 전략을 확정한 이후에 해도 된다는 의견이다.  

이남주 : 외교라는 건 상대가 있어서 국내 정치적인 고려를 너무 많이 하면 안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안보가 불안하다는 평가가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에 특사를 서둘러 파견하고 미국과 정상회담 일정까지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간 복잡해진 한반도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에 대한 분명한 의제 세팅이 안된 상태에서 안보 불안을 빨리 안정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다소 앞서서 작동된 것 같다.

구갑우 :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가서 얻을 것이라고는 사드와 한미 FTA 등의 분야에 있어서 한국에 청구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지서'를 받아오는 것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이러한 고지서를 다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혜정 :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일단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해본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통령 부재 상황이 7개월이나 지났다. 그만큼 주변국가들이 한국을 기다린 측면이 있다. 물론 국내 정치적인 고려도 있었겠지만, 주변국의 수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외교라는 것은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었으니 상견례를 서둘러 하자는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시기가 빠르다는 측면은 동의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불가피하게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상황도 없지 않아 보인다. 

다만 우려하는 대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고지서'만 잔뜩 받아오지 않으려면 사드가 됐든 FTA가 됐든 고차 방정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임 정권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이 팀들이 쌓아 놓은 외교‧안보적인 적폐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4월 28일(현지 시각)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가장 강경한 대북제재 입장을 내놨다.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생화학 무기를 쓴 국가라면서 이 부분에 대한 제재도 언급했다.

그런데 안토니오 구테헤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분명 잘못한 것이지만, 북한의 군사적인 움직임에 대한 주변국가의 대응이 긴장을 더욱 고조시켜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내용을 비교해보면 유엔 사무총장보다 윤 장관이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줄인 셈이다.

미국의 행보도 문제다. 19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던 지난 4월 17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나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조속한 사드 배치를 촉구했다. 또 4월 26일 새벽 미군은 성주 롯데 골프장에 사드 장비를 반입시켰다. 5월 9일 대선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이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했을 때 11월 대선이 있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민의를 들어보고 여기서 선택된 정당이 대법관을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는 청문회도 열지 못했다.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동맹국인 한국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도 펜스 부통령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 아무런 힘이 없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났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바로 취임했다. 지금이 실질적인 인수위 기간인데, 미국 트럼프 정부는 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거의 바로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을 만났다. 이들의 만남도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정치적인 이유도 중요하겠지만, 전임 정부의 관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게 되면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대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구갑우 :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외교적 대전환'이라는 구상 자체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실제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 및 여러 상황을 살펴봤을 때 전임 정부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지난 3~4월 위기설이 커질 때 남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이때 가장 유력한 후보가 정책 대안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좀 피했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쌍궤병행(雙軌竝行·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 및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의제화시킬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침묵했다는 점을 보면 대전환을 이룰 만한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방법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미 동맹을 어떤 형태로 조정할지, 그 작업들이 구상 속에 포함돼있는지 의문이다. 또 사드 배치 여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개별 사안에 대한 답도 없는 상황이고 외교정책의 골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수 측 반발을 고려해서 안보 불안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닐까?  

이남주 : 1위 후보가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선거는 승패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공간에 들어와서 선거 이후의 할 일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권 초기에 이를 밀어붙일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무엇이 우선적인 과제인지에 대해 선거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 새 정부가 많이 의존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확실히 다르고, 또 자신들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가운데)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이는 곧 인적 요소에 많이 기대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관료나 기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효과적 대응할 수 없다. 추구해야 할 의제가 조금은 더 분명하게 있어야 인적 요소도 잘 작동한다.  

물론 주변 국가들과 정상외교를 한다고 하면 한미 정상회담을 먼저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보여줄 수 있는 컨센서스가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것과, 그게 없는 상태에서 일단 만나고 보자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기도 하다.

프레시안 : 사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건 하나도 없다. 포틴저 보좌관과 정의용 단장이 만나서 북핵의 4원칙을 이야기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폐기'인지에 대한 지적과 함께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북한과 대화한다고 못을 박은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과 무조건 대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구갑우 : 일단 정의용 단장이 문재인 정부를 대표해서 만났는데 이게 무슨 법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인수위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절차상으로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이남주 :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트럼프-문재인 양 정상이 합의해야 한다. 실무자 차원에서 원칙을 정할 문제는 아니다.  

이혜정 : 미국과 한국 정부 모두 문제다. 미국은 주한대사도, 국무부 동아시아 아태담당 차관보도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외교‧안보 라인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포틴저-정의용의 만남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든 북한의 비핵화든 괜찮다고 보는데, 문제는 '평화적 해결'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수사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실제 지금까지 나왔던 발언인데 이번엔 빠졌다.  

선제타격을 선택지에 올려놓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적어도 군사적인 선택지는 배제하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절대로 전쟁은 안 된다고 못을 박으려 했다면, 적어도 평화적 해결 원칙은 천명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이남주 : 집권 초기에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미국과 접촉하고 대미 관계를 접근한다면, 미국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우리 국민들은 촛불에서 대선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목표에 대해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인내심을 발휘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길 원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부각시켜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특히 대선 직전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했다. 그렇다면 평화적 해결 원칙이 더 중요하고 강조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바 북핵 해결의 '원칙'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신호는 아니라고 본다.  

이혜정 : 그런데 미국 내부에서도 정책적인 조율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틸러슨 장관이 지난 3일(현지 시각) 국무부 직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했을 때는 분명히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고 했다.  

그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의 주요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교 정책에서 어떻게 실현할지의 문제였다. 그러면서 틸러슨 장관은 가치와 정책을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 다음에 6가지 이슈들을 이야기했는데 첫 번째가 북한이었고, 이를 설명하는 도중에 한반도 비핵화가 모든 국가들의 공통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전술핵을 뺐다고 했다. 이건 대선 기간 중 전술핵 배치를 이야기했던 한국 보수의 입장과는 정확하게 충돌하는 셈이다. 그리고 문구 그대로만 보자면 틸러슨 장관의 발언과 포틴저-정의용의 4원칙 역시 충돌한다.  

구갑우 : 제재를 앞에 강조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여기에는 군사적인 선택지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남주 : 4원칙이 대단히 깊은 고려를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주의 때문에 쉽게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구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지 않고 합의를 한 것 같은데, 이게 나중에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한미동맹 재조정해야  

프레시안 : 세부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문재인 정부가 당장 현안으로 놓인 사드와 FTA, 방위비분담금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남주 : 어차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으로부터 뜯어낼 것은 '돈'이다. 한국이 그 압박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갑갑한 상황은 확실해 보인다.  

이혜정 : 한미 간에 저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협상을 해야하는데, 이게 다른 국가들까지 참여하는 다자회담이 아니라 양자회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 약자인 한국은 불리하다. 그래서 트럼프는 협상을 원한다. 물론 여기에 응하는 순간 한국은 타격을 입게 돼 있다.  

▲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트럼프가 애초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적 민족주의' 부분은 사실상 많이 좌절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탈퇴도 못했고 중국과는 큰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딜 쳐다보게 될까? 국내 정치적으로 몰리면 몰릴수록 경제적 민족주의를 보여주려고 할텐데, 트럼프 입장에서는 그걸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다.

사드의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의 사안이라 더 어렵다. 미국은 군사력을 투사하려고 하고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 이를 거부하려고 한다. 또 지역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중국이 다른 나라를 경제적 레버리지로 길들이려고 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면 미중 경쟁의 '게임 체인저'로 사드 문제가 시작됐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이 자국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면서, 이를 탐지하고 요격하기위해 사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드는 당연히 중층적인 미사일 방어의 일환이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미일 3국이 북한의 군사 공격에 일치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경우다. 예를 들어 북한이 괌이나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공격하면 일본이나 미국은 북한과 자동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데 여기에 한국도 함께 자동적으로 따라 들어오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지난해 나온 미국 외교협회(CFR)의 대북 정책 보고서에서는 북한이 한미일 3국 중 하나를 공격하면 한미일 전부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생각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다.

중국은 사드를 들여놓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 알아 들을 만큼 이야기했는데도, 한국은 자신들과 최소한의 조율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따귀를 때렸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한미 동맹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층에서는 중국에게 대접 받으려면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그러한 논리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미 동맹의 전면적 재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드는 눙쳐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레이더 하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어떻게 살아갈지와 관련한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사드 문제를 계기로 한미 동맹의 부담과 위험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혜정 : 동맹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미국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한국이 지켜줘야 하고, 미국과 북한의 전쟁에 한국이 말려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동맹 간에 있었던 '연루의 위협'이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연루의 위협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한국이 이라크에 병력을 파병하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사드의 경우도, 사드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느냐는 문제를 따져야 하는데, 신성화된 한미동맹이 나머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동맹의 관리 자체가 목적이 된 상황이다.  

물론 동맹은 관리해야 하는 외교적 자산이 맞다. 하지만 이게 한국의 국익을 건너뛸 수는 없다. 목적과 수단이 역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이렇게 해도 견딜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한미 동맹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있고 민주적인 통제에 의해 한미 동맹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한국 내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현 상황을 해결할 것인가? 우리 입장에서는 최소한 지난 사드 배치와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사드가 동맹의 합의 사항이라면서 새 정부가 지키라고 하는 것은 한미 동맹이 한국 정부보다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방부 정책실장과 주한 미군 사령관이 한미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사안을 결정한다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동맹이 '절대 반지'도 아니고, 설사 그것이 '절대 반지'라고 하더라도 실무자 수준에서 동맹의 이름으로 합의를 하고 이를 신성시하는 행위는 용납돼서는 안된다.

이남주 :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다고 본다. 사실 한미 동맹의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미 동맹이 필요하고, 그래서 사드를 들여온 것인데 중국은 왜 우리한테 보복을 하느냐는 불만도 있지만, 사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일정 부분 버려야 한다는 측면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단순히 관광객이 얼마나 줄어들었느냐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중국이 우리에게 가장 큰 시장이고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면서 앞으로 성장동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기회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기회의 상실'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우리가 사실은 엄청난 기회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건데, 그렇다고 군사적으로 한미 동맹이 한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핵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한미 동맹에 대한 비용 지불, 그리고 동맹의 조정에 대해 적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공간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차라리 사드가 미국 MD의 일환이고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사드가 필요하며 한미 동맹 때문에 해야 한다고 말하는게 솔직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말도 못하고 있다. 그래놓고 북한의 위협을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들여놓는다고 하니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도 문제다. 사드는 자신에게 전략적인 위협이고 미국의 전략에 포섭되는 것이라는 우려가 들면 그런 문제점들을 미국에도 이야기 해야 한다. 결국 현재 구조는 한국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됐는데, 사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부담스러워서 앞으로도 직접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국만 죽어난다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 중국 움직임은  

프레시안 : 북한이나 미국, 중국 등은 사드와 핵 문제에 대해 현재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구갑우 : 북한이 지난 14일 화성 12호를 발사했다. 사실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른바 '금지선'을 넘은 것인데, 기본적으로 핵 억제력을 갖추겠다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할 때 이틀 동안 여섯 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지금 전술핵무기까지 만들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5번의 핵 실험을 했는데 추가적인 핵 실험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은 지금 수준에서 북한이 핵 실험을 동결해도 미국과 협상할 때 충분히 위험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북한에 핵 실험을 중단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지난해 북한은 핵 무기에 대한 교환품목으로 한미동맹을 제시했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선포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핵 군축만 이야기하다가 비핵화 문제를 다시 언급했는데, 여기에 한미 동맹을 걸고 들어온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한을 어떻게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구갑우 : 지금 남아있는 답은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밖에 없다. 일단 북한은 핵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 훈련 중단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그리고 북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계속 쪼개서 쓸 가능성이 높다. 미사일 각도를 바꾸면 사거리는 늘어난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이 북한의 ICBM인데, 만약 북한이 점점 사거리를 늘리면 미국은 군사적 수단을 쓰지 않는 한 북한에 대화를 하자고 제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북미 대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 정부가 북미 대화의 방해자가 될 수도 있고 한국 정부가 소외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북한과 미국에 대화를 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혜정 :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결국 도돌이표가 된다. '통미봉남'이든 '코리아 패싱'이든 간에 중요한 목표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면, 그리고 휴전의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라면 한국은 양측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조율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미국과 필요한 정보를 계속 교류해야 한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원칙이 나와야 그 다음 전략이나 계획을 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북미 양국이 협상하려고 하면 '통미봉남'이라고 비판할 것이고 한국이 회담에 참여하면 협상의 주도권 문제를 거론할 것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많은 저항 지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남주 : 북핵 문제에 관해 주어진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는 것도 문제다. 북한이 핵실험하면 항상 제재를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그게 북한의 핵 능력을 빠르게 강화시켰다.  

북한이 핵 실험을 또 한 차례 한다고 해서 당장 핵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탄두의 소형화도 필요하고 핵 물질도 축적해야 하며, 탄두를 운반할 수단도 필요하다. 이게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 어디에선가 우리가 협상을 통해 이걸 지연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주도성이 발휘될 수 있다. 즉 북한의 핵 개발을 지연시키고 교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만 남한의 주도권이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지금처럼 계속 제재 국면에서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고 미국은 또 여기에 대응해 강경한 대응책을 내놓는 악순환이 문제였다면 이 패턴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당장 북한이 미사일 하나 쏜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면 답이 안 나온다. 계속 '조건반사적'인 반응만 하는 게 문제다.

프레시안 : 유엔주재 미국 대사인 니키 헤일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단순한 수사인가?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려면 최소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이혜정 :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 내에서 정책 조율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헤일리 대사의 언급이 어디까지 정책 조율이 됐는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조율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잘 짜여진 그림 안에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씩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면 상관 없는데, 정말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미국 외교의 신뢰성이 떨어진 셈이다.  

다만 헤일리 대사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보자면 북한이 핵 실험만 중단하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명시돼있긴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带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북한이 대화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주변 국가가 북한에 대한 위협을 멈춰야 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헤일리 대사는 북한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는 발언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 니키 헤일리(가운데)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16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직전 조태열(왼쪽) 유엔 주재 한국 대사, 벳쇼 고로 유엔 주재 일본 대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AP=연합뉴스


이렇게 살펴보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나와 있는 입장보다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를 대화 국면으로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문구를 붙들고 늘어져서 잘 활용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헤일리 대사의 말을 문맥으로 보자면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를 하겠다는 것일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 "군사적인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라"고 했던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던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의 브리핑과 28일(현지 시각) 유엔 안보리를 소집했을 때, 그리고 3일(현지 시각) 국무부 직원들을 상대로 대북정책을 설명했는데 처음에는 북한 정권 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국무부 직원들에게 설명을 했을 때 거기에 들어있었다.  

이남주 : 핵 실험 중단과 같은 부분에서 미국이 어떤 조치를 가져갈지 아직 미국 내에서 논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대화가 시작될 수 없다.

미국도 준비가 덜 됐고, 우리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가격을 높게 부를 것이다. 이를 맞추는 과정은 상당히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덧붙여서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인 중국이 북한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조건 하에 이러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될까봐 강한 제재를 하지 못하는게 아니다. 붕괴는 그 다음 문제고, 북한에 대한 제재가 더 강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중국이나 미국, 한국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 단계를 건너 뛰고 중국이 제재하면 북한이 붕괴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벌써 붕괴되고 남았을 거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를 하면 할수록 핵 전쟁 위험이 커지는데, 그 상황을 누가 감당할 것이냐고 묻고 있다.

일단 핵에 대한 양국의 전략적 입장이 어느 정도 조율 가능한 수준까지 와야 하는데 북한은 아직까지 핵 보유를 계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이게 조율이 되지 않는 선에서 양측 정상회담도 어려워 보인다. 다만 양측 모두 감정적으로는 접근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핵 문제 협상 들어가야 남북관계도 가능하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한국이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북극성 2형 시험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노동신문


구갑우 :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입구도 만들지 못하고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푸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은 핵 문제의 입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지금까지 남한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도 별로 없고,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 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다.

이남주 : 협상의 입구로 들어가야 남한의 레버리지가 생긴다. 안그래도 남한은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레버리지가 없다. 하지만 대화가 되면 남북 간 교류 협력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때는 남쪽이 가질 수 있는 레버리지가 좀 생긴다.

프레시안 : 현재 한국이 대단히 곤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정적 순간에 와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위기의식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구갑우 : 지난 4월 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선 후보 누구도 제대로 발언하지 않았다. 이것부터 문제다.  

이혜정 : 결국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통상적인 방어훈련을 하지 않을 경우, 그거 가지고 반미(反美)다, 매국노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따져봐야 한다.  

군대는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군사 훈련을 시행하는 목적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북한과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안정과 평화를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통상적인 군사 훈련 축소 또는 중단을 못할 이유가 없다.  

구갑우 :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91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그 결과로 남북 기본합의서가 나왔다. 실제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이번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남주 : 기본적으로 군사적 억제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적으로부터 오는 공격을 전부 막는 것이 억제력이 아니다. 한 방 맞았을 때 충분한 보복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상대방이 우리한테 공격을 못하게 하는 것이 억제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충분한 보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미 동맹까지 포함하면 막강하다.

이혜정 : 궁극적으로 깨야 할 또 하나의 신화가 있다. 미국이 지역의 '안정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45년 이후 미국은 아시아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지만 둘 다 실패했다. 이건 미국이 지역의 안정자가 아니라 오히려 비안정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아시아 생각] 4강 중심외교, 아세안 외교로 보완해야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법의 모색이다. 전통적 4강 외교와 함께 동아시아 차원의 역학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자 간 직접적인 갈등을 회피하며 북핵 문제에 있어 공조를 모색하는 양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이를 전략적 협상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9일에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는 설립 50주년을 자축하고 공동체를 향한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 정상회담을 지배한 이슈는 남중국해 문제와 한반도 문제였다.


▲ 아세안지역포럼(AFR)는 6자 회담이 중단된 현재 북한이 참여한 유일한 다자체 기구다. ⓒasean.org



전통적 중립성 탈피한 아세안의 변화에 주목해야  


남중국해를 둘러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중국 등 당사국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모색은 아세안의 오랜 과제이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필리핀과 베트남의 중국과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지난해 7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인공섬 건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등장은 이전 정권이 일관되게 추진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견제 전략의 변화를 가져왔다. 두테르테는 인권 문제와 관련 미국과 각을 세웠으며 친 중국 행보를 보이며 투자 등의 실익을 챙기고 있다.  

올해 의장국이 필리핀임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아세안은 유화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세안 의장국은 정상회의 의제 설정과 최종 의장성명서의 도출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의장성명서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나 비난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두테르테는 의장 성명서 발표 이후 필리핀 내 정박 중이던 중국 군함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세안 회원국 간 이해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견 도출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일정정도의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남중국해 사안과는 달리 한반도 위기와 관련 북한에 대한 비판에는 바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하루 전에 열린 아세안외무장관회의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심대한 우려(grave concerns)'를 표명했는데 이는 정상회의 의장성명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상회의에서는 한반도 긴장 심화가 북한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 명시했다. 그간 아세안 관련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상황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한반도 차원의 평화적 노력을 희망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해왔던 것에 비해 이번 아세안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동남아 현지 전문가들은 북한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1991년 남북한 유엔가입 이전에 남북의 치열한 외교적 각축장이었다. 아세안 설립 이후로는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EU 등 주요 국가들을 대화상대국으로 만들어 협상력을 높였다. 한국은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화상대국 관계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삼으려했다.


1981년 아세안 5개국 순방은 이러한 전략에서 추진되었다. 당시 관련 외교문서들은 타 대화상대국에 비해 경제력이 미약한 한국이 북한 견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이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아세안 국가들이 사실상 한국의 대화관계 수립 제안을 거절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당시 대화상대국 관계 개설에 실패한 한국 외교부는 자체적으로 '아세안의 푸대접 사례'란 제목의 내부 공문으로 아세안에 서운함을 성토한 바 있다. 이후 냉전해체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한-아세안 대화관계가 수립될 수 있었다. 아세안이 정치적 민감성에 대해 집단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하는 기조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가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추진한 대북견제 외교의 실패는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도 아세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공들여왔다. 전통적으로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등이 있다. 2000년부터 ARF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을 체결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의 총 무역액 중 동남아시아의 교역비중은 약 10%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전통적 우호 국가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관계 설립을 제안했으며 2016년 리수용 현 북한외무성 장관은 아세안 5개국을 방문했다.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아세안의장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북한은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전쟁직전의 상황임을 알리고 긴장해소를 위한 아세안국가의 협조를 요청했다. 

아세안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미중간 갈등의 사이에서 헤징전략의 도구로 한반도 사안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협과 더불어 실리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세안은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다. 남중국해 문제는 이러한 아세안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최근 수년간 아세안 회원국 간 이견이 확대됨에 따라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의 실현에 있어서도 심각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대북공조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필리핀의 국내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아세안은 나름의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5월 4일 아세안 외무장관과 회동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 국가들에 북한과의 관계를 ' 최소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지금 당장 미국의 이해가 남중국해보다 북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를 위해 아세안을 활용하여 동아시아적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이다. 아세안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북한을 비판하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아세안의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적으로 아세안이 강조하는 중심적 역할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주요 강대국을 포함하며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해온 아세안은 중립원칙을 지키며 강대국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를 추구했다. 이는 섣불리 균형자(balancer)역할을 자처하지 않았고 기계적 중립을 고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갈등 당사국의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 않고 지속적 신뢰구축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강대국들로부터 고른 구애를 받아왔다.  


이번 조치는 아세안이 강대국의 이해를 수용하며 스스로 균형 잡고자 했던 관행을 훼손했다. 둘째,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더불어 대화의 채널을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체인 ARF는 정치적 부담 없이 당장의 활용이 가능한 대화채널이다. 이번 입장변화는 전통적 의장국의 중립원칙과 상충된다.  

이러한 아세안의 입장변화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북한 고립을 추구한 아세안외교가 영향을 미쳤음도 부정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한반도위기 해결을 우리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위한 다양한 대화채널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4강 외교뿐만 아니라 아세안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