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또 '증세 없는 복지'인가?
재정 대책 없는 복지 공약 '말 잔치' 우려
지난 4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이하 내만복)'는 대선을 맞아 핵심 10가지 복지 공약을 순차적으로 제안했다. 이외에도 중요한 의제들이 있지만, 현재의 복지 상황에서 우선 꼽을 수 있고, 내만복이 추진하는 의제 중심으로 구성된 10가지이다.
내만복의 10대 제안이 후보들 공약에 얼마나 반영됐을까? 내만복 제안 공약을 기준으로 후보들의 복지 공약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자(제안 공약의 순서는 재구성했다). 여러 언론에 후보들의 공약 비교가 소개되는데, 이 글이 다루는 내용은 거의가 최종 공약집을 근거로 삼았다.
국공립 보육·요양시설 확충 : 소요 재정 및 실행프로그램 불명확
내만복의 첫 번째 제안 공약은 "질 좋은 보육, 국공립시설 확충으로 시작하자!". 대선 운동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의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 발언으로 유치원 시설의 공공화가 뜨거운 주제로 등장했다. 그만큼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에 시민들의 관심이 크다.
이는 거꾸로 무상 보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보육 서비스 질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을 말해 준다. 현재 보육 서비스의 질에서 국공립 보육시설과 민간 보육시설 사이에 격차가 크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동수 기준 11.4%에 불과하고, 유치원은 24.1%이다. 이에 내만복은 국공립 보육, 유치원 시설 확충을 제안했다.
후보들의 공약을 보자. 다섯 후보 모두 국공립 시설의 확충을 발표했다. 문재인 후보는 어린이집, 유치원 이용 아동수 기준 40%까지 확충한다. 이를 위해 광역별로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한다. 안철수 후보도 아동수 기준으로 어린이집은 20%, 유치원은 40%를 공약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국공립 비율을 지금보다 2배 수준으로 확충하겠다는 내용이다. 안철수 후보도 '사회복지고용공단'을 설립해 사회 서비스 종사를 직무형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조금 더 강해, 어린이집은 아동수 기준 50%, 유치원은 40%이다. 역시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한다. 유승민 후보는 공공 보육시설이라는 이름으로 70%를 약속했다. 국공립뿐만 아니라 공적 개입이 가능한 민간 부문까지 포괄한 수치로 이해된다. 홍준표 역시 원론적으로 국공립 확충을 명시했다.
이처럼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은 모든 후보의 공약이다. 규모가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보다 크게 늘어나는 전향적 내용이다. 그런데 유권자가 이 공약을 위해 얼마의 재정이 필요한지를 알기는 어렵다. 후보들이 이 재정 수치를 복지 분야 혹은 육아 보육 부문의 다른 공약과 합산해 제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확충 실행 프로그램이 얼마나 마련돼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두 번째 제안은 "이제는 요양의 질, 공공 요양시설과 공공 재가기관 대폭 확충하자!". 백세 시대를 맞아 갈수록 중요해지는 요양 복지의 강화를 위한 제안이다.
현재 민간에 일임해온 서비스 공급 구조에서는 요양시설의 안전성, 재가 요양의 효과성이 모두 불충분하다.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 정책이 직면한 핵심 숙제는 양적 확대에 우선하는 요양 서비스의 질에 대한 공적 관리이다. 내만복은 요양 복지의 내실화를 위해서 지방정부, 국민건강보험은 공공 요양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재가기관도 설립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든 후보들이 국공립 보육시설과 마찬가지로 국공립 요양시설 확충을 이야기한다. 전체 요양시설에서 국공립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2.2%에 불과한 현실에서 당연한 공약이다. 그런데 국공립 요양시설 확충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후보는 없다. 국공립 보육 공약에 비해 목표가 추상적이다. 물론 소요 재정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역시 실행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병원비 해결 : 공약 강하나 재원 방안 밝히지 않아
세 번째 제안은 "환자가 1년간 총 100만 원까지만 내는 100만 원 상한제 도입하자!". 이는 민간 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비 부담이 큰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의 전면 개편, 의료 공급 체계의 개혁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상당한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이다. 단순히 연간 본인부담 상한제를 100만 원 시행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평균 80% 이상 인상하는 데 13조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2016년 기준). 여기에 상병수당, 보건의료 인력 확충 등 정책을 포함하면 더 많은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후보들의 보건 의료 공약을 보면 보장성 수준이 높은 편이다. 문재인 후보는 하위 50% 계층까지는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약속했다. 당연히 이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전제로 한 프로그램이다. 아직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삼진 않았지만, 이 공약이 이뤄지면 전체 국민에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으로 평가된다.
안철수 후보도 비급여 항목을 단계적으로 급여로 전환하고 본인 부담 상한제 강화를 공약했다. 하지만 비급여의 급여화가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되고 본인부담 상한 금액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 문구만으로 보장성 확대 폭이 어느 수준인지를 예상하기 어렵다.
유승민 후보는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2014년 63.2%를 향후 80%까지 올린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고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가입자를 현행 1%에서 10%까지 확대한다. 이는 상당히 높은 보건의료 복지 수준을 의미한다. 홍준표 후보도 비급여의 예비 급여화, 18세 이하와 노인 의료비 절감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보장성 수준이 가장 강하다. 100만 원 상한제, 비급여의 급여 전환을 약속하고 보장률 수준을 80%, 입원 보장성은 90%를 명시했다. 나아가 상병수당 도입까지 공약한 유일한 후보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재원 방안이다. 보건의료는 일반 회계 재정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재원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후보는 공약 소요 재정액 추계에서 보건의료 부문을 배제했다. 윤호중 정책본부장은 사회보험은 자체 재원으로 정책을 펴기에 소요 재정 추계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공공연하게 설명한다. 국민건강보험 누적 흑자액이 20조 원 있으나, 향후 수지 적자 예상, 부과 체계 개편에 따른 보전 등을 감안하면 재원이 되기 어렵다. 안철수 후보 역시 소요 재정 총액 계산에 보건의료 부문이 빠져 있다. 유승민 후보도 포괄적으로 복지 분야 소요액을 제시해 여기에 보건의료 재정이 포함돼 있는 지 확인할 수 없다. 보건의료 공약에 소요되는 재정 규모를 밝힌 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 심 후보는 연 18조 원이 소요되는 큰 공약임을 인정하며, 건강보험료율 인상도 분명히 제시했다.
이처럼 후보들의 보건의료 보장성 공약 수준은 높은 편이다. 공약의 개요만 보면 다른 후보들의 보장성 수준이 심상정 후보 공약과 엇비슷해 보인다. 그런데도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예상 재정 규모,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밝히지 않는다. 공약의 기본 요건을 갖추었다 보기 힘들다.
네 번째 제안은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지자!". 지금까지 아픈 어린이 병원비를 민간 모금, 방송 출연에 의존해 왔는데 이제 국가가 나서라는 제안이다. 작년 2월 시작한 '어린이병원비 국가 보장 운동'의 요구이기도 한다. 앞서 제안인 '100만 원 상한제'를 이끄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어린이병원비 국가 책임을 명시했다. 어린이 본인부담 비율을 5% 인하하면서 이를 '국가 책임'으로 의미 부여했다. 문제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이다. 지금도 어린이 입원비의 본인부담률은 10~20%로 높지 않다(6세 미만은 10%). 이 공약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비급여의 급여화가 관건이다. 또한 5% 수치가 높지 않지만 고액 진료의 경우 5%로 부담이 될 수 있다. 비율보다는 50만 원 상한제 혹은 100만 원 상한제처럼 금액 상한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 역시 동일하게 5% 본인부담으로 공약했다.
한편 심상정 후보는 어린이병원비 100% 국가 책임으로 목표를 더 강력히 내세웠고, 유승민 후보는 같은 취지로 어린이병원비연대에 영상 발언을 전했다. 이 공약에 소요되는 재정은 대략 5000억 원으로 예상돼, 차기 정부에서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한다.
기초연금 3대 독소 조항 : '30만 원 줬다 30만 원 뺏을 건가?'
다섯 번째 제안은 "물가 연동 인상·줬다 뺏는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기초연금 3대 독소조항 폐지하라!". 노인 빈곤율이 절반에 이르는 현실에서 공적 연금을 강화하는 핵심 방안은 기초연금이다. 다섯 후보 모두 30만 원을 약속했지만, 이 공약이 온전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기초연금에 존재하는 3대 독소조항을 폐지해야 한다.
독소조항의 내용을 보자. 노동자 평균 소득 연동이 아닌 물가 연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초연금의 상대적 가치를 하락시키고,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노인의 기초연금 권리를 박탈하며, 국민연금 연계는 국민연금 불신을 심화시켜 국민연금 개혁을 어렵게 한다.
특해 내만복은 이 중에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여섯 번째 제안으로 강조했다. 제목은 "30만 원 줬다가 30만 원 뺏을 건가? 기초생활 노인의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하자!". 이는 2014년부터 내만복이 여러 복지단체와 함께 진행한 운동 의제로서 이번 대선에서 꼭 명시되기를 바랐던 정책이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은 매달 25일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고 다음달 20일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공제당한다. 기초연금 도입에 따라 차상위 이상 노인들의 현금 소득이 20만 원 늘지만, 수급 노인들만 그대로이다. 이로 인해 수급 노인과 그 이상 계층 노인 사이에 20만 원의 소득 격차가 생긴다.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노인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형평성 문제가 초래된다. 이러한 구조를 방치하고 후보들이 기초연금 30만 원을 공약하면 어떻게 될까? 이제 "30만 원 줬다 도로 30만 원을 빼앗는" 일이 반복된다.
안타깝게도 후보들의 기초연금 공약에서 3대 독소조항의 폐지가 제대로 담겨있지 못하다. 30만 원 인상이 부각될 뿐, 내부 독소조항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한 탓이다. 심상정 후보만이 3대 독소조항 모두의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 안철수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 폐지만을 공약에 담았다.
이에 여러 노인, 복지 시민단체들이 문재인, 안철수 캠프를 찾아가 항의 기자회견을 벌였다. 두 후보가 속한 정당은 작년 총선에서 이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약속했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포함하지 않았다. 아마도 재정 부담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된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에 해당하는 노인이 무려 40만 명에 육박한다. 인원수가 많은 만큼 기초연금이 30만 원으로 오르면 소요 재원이 1조 원을 넘는다. 빈약한 재원 방안 공약의 부메랑이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날아간 꼴이다.
주거 복지 : 공공 임대주택 확충하나 민간 임대시장 규제는 미흡
일곱 번째 제안은 "주거 복지 3대 해법, 계속 거주권·전월세 상한제·공공 임대주택!". 이는 남의 집에 살아야하는 서민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거주'를 보장받기 위하 필수적 제도이다.
계속 거주권은 지금 살고 있는 전월세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이다.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기존 세입자가 계속 거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전월세 상한제와 표준임대료 제도와 결합해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는 특별히 오를 요인이 있을 때에도 최대 상승 비율을 정하여 계속 거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안전 장치다. 표준 임대료는 공정 임대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주택의 위치, 상태, 건축 재료, 건축 시기와 내구연한에 따라 전월세 가격을 정하는 제도다.
또한 장기 공공 임대주택도 대폭 늘려야 한다. 내만복은 주거권 보장과 서민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현행 약 100만 호에서 250만 호를 더 확충해 프랑스 수준으로 가자는 제안을 담았다.
모든 후보들이 주거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공공 임대주택 확충이 중심을 차지하는데, 주요 대상으로 청년, 신혼부부가 강조된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 임대주택 연 17만 호(공공지원 주택 4만 호 포함),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연 15만 호, 홍준표 후보는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연 12만 호를 약속했다. 유승민 후보는 총량 수치를 밝히진 않았지만, 역시 청년, 고령층 임대주택 확대를 약속했다.
주거 복지에서 공공 임대주택만큼 중요한 정책이 민간 임대 시장에 대한 규제이다. 세입자와 임대인의 권리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계속 거주권(계약 갱신권), 표준 임대료, 전월세 상한제가 핵심이다.
대체로 후보들이 이 세 제도를 강조해 공공 임대주택 공약과 균형을 이루었다. 안철수 후보는 세입자의 갱신 청구권, 표준 임대료,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주거 복지 공약 첫 번째로 강조했다. 이는 공공 임대주택 외 민간 임대시장에 대한 강력한 개입을 선언한 것으로 적절한 공약으로 평가된다. 심상정 후보는 6년 계속 거주권, 전월세의 물가 연동제 등 구체적 목표까지 제시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 및 임대료 상한제를 단계적으로 제도화"한다는 선언적 문구가 전부이다. 유승민 후보는 공약집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의 공약 비교에 의하면 계약 갱신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지지한다. 홍준표 후보에게선 민간 임대시장 규제 정책을 찾을 수 없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 방향은 제시되었으나…
여덟 번째 제안은 "기초생활수급권 박탈해온 독소조항, 부양 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자!'.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 권리를 빼앗는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이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대상자임에도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후보들의 공약 문구만 보면 내용은 전향적이다.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완전 폐지를 공약했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단계적 폐지'를 약속했다. 홍준표 후보도 '기준 완화'로 응답했다.
그런데 후보들이 공약을 실현할 의지와 방안을 지니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재정 소요 공약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항목이 없다. 윤호중 정책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시범사업 예산만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범사업' 수준의 공약이 '단계적 폐지'로 포장된 것이다. 이는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되는 문제일 수 있다.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에 소요되는 대략의 재정 규모를 밝힌 후보는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와 함께 소요 재정이 표기돼 구체적 수치를 알기는 어렵지만, 두 공약을 합해 연 16.4조 원이니 상당히 큰 예산이 소요되는 공약임을 알 수 있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에 연 10조 원가량 필요하다.
실업부조 도입 : 모든 후보들이 청년 실업에 주목
아홉 번째 제안은 "고용보험 밖 청년·불안정 취업자를 위한 실업부조를 도입하자!". 실업 급여는 실직 노동자가 빈곤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고용 안전망의 핵심이다. 정작 우리나라에서 고용 불안정성이 심각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이 실업 급여 수급 기간 확대 혹은 급여 수준 상향을 공약으로 내걸어도 고용보험 밖의 청년 구직자, 영세 자영업자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에 내만복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불안정 취업자를 위해 실업부조 도입을 제안했다. 근래 정치권이 청년 실업에 관심이 크지만 일자리와 소득 보전이 전 연령대 문제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다섯 후보 모두 청년을 위한 실업부조 공약을 내걸었다. 문재인 후보는 청년고용촉진수당을 도입해 한국형 실업부조로 발전시키겠다 약속했다. 안철수 후보가 공약한 미취업청년에서 훈련 수당을 제공하는 정책도 청년 실업부조의 성격을 지닌다. 유승민 후보도 '한시적 청년 실업부조', 홍준표 후보는 '한국형 실업부조'라는 포괄적 이름으로 공약에 포함시켰다. 심상정 후보도 청년 실업부조 도입을 공약했는데, 자영자까지 포함한 사회보험료 지원을 위해 '두루누리사업2'를 제안한 것도 눈에 띈다.
이 공약은 실제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심상정 후보는 고용, 청년 분야 소요 재정으로 연 19.9조 원이라 밝혔다, 상당히 규모가 큰 공약으로 판단된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연 5400억 원, 안철수 후보는 약 7000억 원에 그친다.
후보들의 재원 방안도 불명확하다. 고용보험료율 인상을 언급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뿐인데, 그 규모가 연평균 6.1조 원으로 상당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여기에 필요한 재정은 기존 일자리 예산을 조정해 조달하겠다는 방침이다.
19대 대선, 또 '증세 없는 복지'인가?
앞선 글에서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이하 내만복)'는 이번 대선의 핵심 10가지 복지 공약 가운데 9가지를 소개하고, 후보별로 평가했다. (☞바로 가기 : 재정 대책 없는 복지 공약 '말 잔치' 우려)
마지막 열 번째 제안은 "복지국가를 향한 조세 개혁,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 양날개로 가자!". 국민들이 지닌 조세 불신을 타파하기 위해서 과세 정의를 구현해야 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복지 증세가 동반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제안이다. 내만복이 제시하는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가 실현될 경우 우리나라 조세 부담율이 최소 GDP 23%에 이를 것이다(2014년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1%.).
우선 공평 과세를 위해선 법인세, 소득세, 보유세가 핵심 대상이다. 법인세와 보유세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를 원상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소득세에서는 '소득이 있으면 과세된다'는 원칙을 주택 임대 소득이나 주식 양도 차익 등에 적용해야 한다.
복지증세는 우리나라처럼 재정 지출에 대한 불신이 큰 나라에서 유용한 정책이다. 사회보험료가 복지 증세에 속할 수 있는데, 이에 더해 내만복은 복지 목적세로서 법인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에 일정 비율로 부가하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한다.
대선 후보들의 재정 공약은 어떨까? <표1>은 후보들의 재정 공약을 정리한 자료이다. 대체로 재정 공약이 빈약하다. 공약에 소요되는 재정 추계가 애매하고 재원 방안 역시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소요 재정은 연평균 35.6조 원이다. 이 중 복지 지출은 24.3조원으로 GDP 2%에 미치지 못한다. 2016년 한국의 복지 지출이 GDP 10.4%로서 OECD 평균 21.0%의 절반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온건한 복지 공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가 요구되다. 이 소요 재정 추계에는 사회보험 지출이 제외돼 있다. 정부 총지출이 예산과 기금으로 구성되고, 후보의 복지 공약도 예산과 기금사업을 모두 포괄한다. 그렇다면 소요 재정도 당연히 사회보험 몫도 합산해야하건만 문 후보는 예산회계에서 지출되는 사업만 계산했다. 그래서 실제 문재인 후보의 복지 공약의 규모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문 후보가 공식 발표한 연 평균 35.6조 원은 실제 공약 소요액에 비해 과소 추계된 수치라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연 평균 40.9조 원으로 공식 수치로는 문 후보에 비해 조금 많다. 그런데 복지 공약(교육 분야 포함)은 21.5조 원으로 문 후보에 비해 적다. 문 후보의 복지 공약 소요액이 과소 계산된 것까지 감안하면 더욱 적다고 판단된다. 유승민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41.7조 원이고 이 중 복지 분야 지출이 약 40조 원이다. 심상정 후보 공약 소요재정은 연 110조 원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 중 복지 지출도 99조 원에 달한다. 홍준표 후보의 공약 소요 재정은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연 18조 원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공개했는데…
다섯 후보들의 복지 공약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보들이 개별 공약이 아니라 복지 분야별로 소요액을 합산해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만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핵심 개별 복지 공약의 소요 재정을 밝혔는데, 최종 공약집에선 역시 분야를 포괄해 소요 재정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극복, 주거 복지, 사회 안전망 강화 등 복지 지원'으로 연 18.7조 원, 교육비 지원(누리과정, 고교 무상교육, 등록금 경감, 초등 돌봄교실 등) 5.6조 원 등이다. 이런 방식의 소요 재정 발표로는 개별 복지 공약의 실체를 명확히 검증하기 어렵다.
다른 후보의 공약집에서도 소요 재정 공개 방식이 동일하다. 안철수 후보는 기초연금, 아동 수당, 노인 일자리, 저소득층 사각지대 해소 등을 모두 포괄해 '복지 분야' 제목으로 연 12.2조 원을 제시했다. 심상정 후보 역시 교육, 주거, 보건의료, 노인 등 부문별로 소요 재정을 제시했다. 심지어 유승민 후보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복지 실현'이라는 제목으로 총 125조 원이라 종합해 제시했고, 홍준표 후보는 소요 재정 수치를 공식적으로 찾을 수 없다.
이는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개별 공약별로 소요액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과 크게 비교된다. <표2>에서 보듯이 박근혜 후보는 투표일 직전에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만약 최종 투표일까지 다섯 후보가 개별 공약별 소요액을 밝히지 않는다면, 복지 공약의 투명성과 명확성이 2012년 박근혜 후보보다 뒤떨어진다는 불명예스런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표2>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의 개별공약별 소요액(사례, 억 원). (출처 : 박근혜 후보 선대위, "대선공약 공약별 소용재정", 2012년 12월)
재원 방안 : '증세 없는 복지' 어게인?
이제 후보들의 재원 방안을 살펴보자. 우선 문재인 후보의 재원 방안은 빈약하다. 연 평균 35.6조 원 중 22.4조 원을 재정 지출 개혁으로 마련한다. 내용은 방산 비리, 최순실 예산, 저평가 사업, SOC 등 당위적 방향에 그친다. 조달 금액은 상당히 큰 편이다. 2017년 중앙 정부 총지출 400.5조 원 중 순재량 지출은 141.5조 원이다. 22.4조 원은 순재량 지출의 약 16%에 달하는데 과연 이러한 조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반면 증세 몫은 6.3조 원으로 너무 적다. 세목별 목표 수치도 밝히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비판이 제기될 만 하다.
안철수 후보는 소요 재정 40.9조 원 중 지출 개혁으로 9.9조 원을 마련한다. 2017년 순재량지출 145조 원의 7%를 적용한 금액으로 적절한 규모라 판단된다. 비과세 감면을 포함한 증세 몫은 23.7조 원으로 문재인 후보보다 많다. 문재인 후보보다 증세에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안 후보도 세목별 개혁 방향을 제시할 뿐 목표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특히 안 후보가 세수 초과 징수 예상분으로 연 7.3조 원을 상정한 것은 무리수로 판단된다. 2016년 초과 세수를 근거로 삼은 추정이지만, 그 이전 4년 내내 세입이 예측보다 줄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경제 공약에서 추가 세수로 연 10조 원을 공언하다 최종 재정 공약에서는 이 금액을 제외한 것과 비교된다.
유승민 후보는 소요 재정 대부분을 증세로 마련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지출 개혁 몫은 연 5.6조 원으로 후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적다. 지출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으나 지출 개혁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합리적 추계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유 후보의 문제는 중부담 중복지를 제안하며 증세를 강조하지만, 막상 재원 공약에서 구체적 증세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증세 목표로 GDP 21.5%를 선언할 뿐이다.
한편 홍준표 후보는 증세 대신 담뱃세, 유류세 인하를 토론에서 언급했는데, 증세 없이 지출 개혁으로 재정을 조달한다.
재원 방안이 구체적이고 대규모인 후보는 심상정 후보이다. 심 후보는 각 세목, 사회보험별로 조달 금액을 제시했는데, 증세 규모가 약 66조 원, GDP 4%에 이른다. 2016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19.4%에 이 수치를 더하면 23.4%가 된다. 이는 2014년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1%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심상정 후보의 증세 공약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증세 의제를 정공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심 후보의 세목 설계에서 논란의 소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득세, 법인세 세율을 인상하면서 별도로 신설하는 사회복지세에서 다시 두 세목의 세율을 인상한다. 이러면 소득세 최고세율이 60%에 육박하고 법인세 명목세율은 30%를 넘게 된다(지방소득세 포함). 사회보험에서는 고용보험, 건강보험료 인상은 제시했지만,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은 재원 방안에 누락되어 있다.
정리하면, 문재인 후보는 소요 재정을 실제 복지 공약에 비해 과소 추계하고 재원 방안도 지출 개혁에 크게 의존한다. 소요 재정의 실체가 명확치 않고 재원 방안도 불투명하다. 안철수후보는 복지 공약 규모나 재원 방안이 온건한 수준이다. 유승민 후보는 중부담 중복지를 강조하나 아직은 선언적 수준에 머문다. 홍준표 후보는 여전히 선별주의 입장에서 기존 복지를 보완하는 수준이다. 심상정 후보는 강한 복지 공약, 강한 증세를 내놓았는데, 재원 방안이 구체적인 건 장점이지만, 현실가능성을 두고 논란의 소지를 지닌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프레시안
총괄 평가: 강한 복지 공약, 빈약한 재정 공약
이제 곧 투표일이다. 박근혜 정부를 권력에서 끌어내린 촛불의 민심이 만든 대선이다. 과연 후보들의 복지 공약이 이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을까? 집권 이후 촛불의 염원이 실제 국정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의 복지 공약은 대체로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2012년 야당 후보의 복지 공약 수준을 웃돈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20만 원, 반값 등록금은 일부 조정된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당시 야당 후보의 공약이었던 아동 수당,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청년 실업부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은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 포함돼 있다. 여기에 더해 기초연금 30만 원,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2012년 대선 공약 수준을 넘는 정책이다.
반면 재정 공약은 빈약하다. 문재인 후보의 일부 개별 공약을 제외하곤, 후보들의 공약에서 개별 공약별 소요 재정을 알 수 없다. 2012년 대선에서 개별 소요 재정을 모두 공개한 박근혜 후보와 비교된다. 국민에게 권력 위임을 요청하면서 그 근거의 공약의 소요 재정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다가 재원 방안은 다수 후보들이 원론적, 포괄적 수준에 머문다.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대선인데, 후보들의 재정 공약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어느 후보든, 대한민국 국정을 운영할 때는 자신의 공약 한계를 직시하고 이를 보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