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2030이 '오래오래' 살 집을 내놓아라!
[복지국가SOCIETY] 조물주 위에 건물주…'지옥고'를 아는가
| '지·옥·고'를 아십니까? 반지하, 옥탑, 그리고 |
| [복지국가SOCIETY] 대선 후보들, 2030이 '오래오래' 살 집을 내놓아라! |
얼마 전 '청년들은 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라는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열악한 주거 상황을 개선할 여력이 안 되니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예쁜 카페를 이용하는 식으로 대리만족을 누린다는 것이다. 나날이 사상 최고를 갱신하고 있는 가파른 고용절벽과 이에 못지않게 높은 주거비 부담 속에서 돈 모아 집 사기를 포기한 청년들로서는 그나마 있는 돈으로 가성비를 높이려는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주거의 의미: 헌법적 기본권
주거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요소인 의․식․주의 한 부분으로 각종 자연재해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물리적 공간의 역할이 일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육체적 안전을 바탕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정서적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즉, 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지속하고 있는 바탕에는 개인의 신체적․정서적 안정을 만드는 ‘편안한 공간’ 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의 가장 기본적 권리를 천명한 세계인권선언과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가 모든 사람이 보장받을 기본권이자 정부의 책임임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 제35조에서 언급하고 있고, 2015년 「주거기본법」제정에 의해 주거권과 주거복지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현실
그렇다면 유독 왜 청년들‘만’(중장년층도 일부는 그렇겠지만 상대적으로) 예쁜 카페에 집착하게 되었나? 뉴스를 보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예전에 비해 위축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매매가격에 버금갈 만큼 높은 전셋값과 월세 부담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상당수 역시 '예쁜(혹은 적절한) 집'을 갖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주거권은 더욱더 위험하다. 이는 단지 청년 주거 문제가 높은 부동산 가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부동산 시장과 노동 시장의 모든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청년들의 삶 자체를 갉아먹는 암적인 요소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높은 주거비용: 청년의 소득 빈곤
지난 국감에서 나온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청년들의 평균 보증금은 1395만 원으로, 다른 세대(2778만 원)보다 낮았지만 월세는 각각 47만 원, 46만 원으로 청년층이 더 높았다. 아직 모아둔 목돈이 없는 청년들로서는 월세가 높더라도 마련할 수 있는 보증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여 순수 월세로 환산 시 청년층의 월세 부담이 다른 세대에 비해 최고 2.7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을 보더라도 청년의 주거비 부담이 과도함을 알 수 있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경우를 보면, 청년 가구는 20.3%, 노인 가구는 11.2%, 아동 가구는 6.3%로 청년 가구가 월등히 높다.(이태진 등.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주거비 부담 자체가 청년에게 절대적으로 높기도 하지만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체감 정도로 보면 최대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로 소득이 없다. 이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유일하게 청년 세대만 2015년 대비 2016년 소득이 줄어들었다. 반면 대학생 시절 연평균 737만 원에 이르는 높은 등록금과 취업준비 비용, 각종 생활비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빚이다. 설상가상으로 매달 지출해야 하는 약 47만 원의 높은 월세는 청년들을 빈곤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주거의 질: 지옥고와 청년 난민, 조물주 위의 건물주
1) 주거 수준
'지옥고'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아울러 칭하는 말이다. 지옥고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햇빛이 들지 않고 곰팡이와 습기 등으로 인해 건강에 유해한 반지하방, 드라마 속에서나 낭만적이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살기 힘든 옥탑방, 그리고 최저 주거기준(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주거생활 기준으로 최소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전용부엌, 화장실의 설비기준, 안전성, 쾌적성 등을 고려한 주택의 구조, 성능 및 환경 기준)인 14제곱미터(4.23평)의 절반도 안 돼 서 있기조차 버거울 만큼 비좁은 고시원 등 도저히 적절한 주거 환경이라고 볼 수 없는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 가구에 사는 청년들이 전국적으로 23.6%, 심지어 서울에는 36.3%에 이른다. 전체 평균인 14.8%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특히 <표 1>에서 볼 수 있다시피 전체 평균은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청년층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표 1> 전국 가구와 서울 1인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율 변화(1995 ~2010년)
▲출처 : 최은영. '서울시 청년가구의 주거실태와 정책연구'. 민주정책연구원. 2014.
대학생의 경우에는 더 암울하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의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대학생의 68.7%가 고시원 또는 원룸에 살고 있고, 이 중 70.3%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단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있을 뿐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 청년 난민
청년들은 '주거 난민'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허술한 임대차 보호법은 임대인이 2년마다 임대차 계약을 거절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2년마다 강제 이사를 가능케 만들었다.
게다가 청년들로서는 더 이상 보증금이나 월세 인상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 조금이라도 더 싼 방을 찾느라 고시원 같은 임시 거주지를 전전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주 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토연구원의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8명이 최근 2년 이내에 집을 옮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1.3년으로 중장년(4.7년), 노인(11.4년)에 비해 훨씬 짧다. 청년들에게 현 거주지는 길어봤자 고작 1년 머무는 임시 거처로 '내 집' 이라는 인식이 들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예쁜 인테리어는커녕 이사하기 편리하도록 최소한의 짐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3) 조물주 위의 건물주
2~3월 신학기가 시작되는 경우, 대학가에서는 건물주들의 횡포가 청년들을 울린다. 대학가마다 조성된 높은 월세로 인해 공급 과잉 상태가 되면서 집주인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도 다른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까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주택 임대차 보호법이나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잘 모르는 대학생, 사회 초년생의 상태를 악용하여 계약 전의 정보와 실제 환경이 다르거나 정당한 수리 요청을 거절하는 등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이런 피해를 입는다.
주거의 양: 공공정책으로부터 배제된 청년의 주거
1) 공공임대주택의 사각지대
민간임대에 비해 낮은 주거비 부담으로 그나마 가성비가 높은 공공임대주택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적다.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은 동일한 조건의 대상자가 있을 경우, 1)연장자 2)다자녀 3)해당지역 거주기간 4)부양자가 있을 경우에 더 많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청년 1인 가구는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행복주택 등 청년의 비중을 높인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고 있으나 1인 가구가 많은 20대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비율은 단지 3%에 불과하다. 30대의 경우 약 18%로 좀 더 높은데,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특별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지는 사회적 추세를 고려하면 지금의 추이 속에서 청년 1인 가구에 주어지는 정책적 혜택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2) 공공 기숙사의 부족과 민자 기숙사 활성화
기숙사비가 저렴하다는 것도 옛날의 이야기다. 많은 사립대학들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민자 기숙사를 비싸게 운영하면서 연평균 기숙사비가 주변의 월세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데 이어 등록금 액수(연평균 737만 원)에 맞먹을 정도로 높아졌다. 연세대 SK 국제학사의 경우 1인실 기숙사비가 연간 786만 원(월 65만 원)에 달하고, 2인실도 연간 531만 원(월 44만3000 원)에 이른다.
주변의 월세 시세 평균(약 42만 원)에 비해 많게는 20만 원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시내에는 기숙사가 부족하여 대학생 10명 중 1명만 겨우 기숙사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높은 기숙사비로 인해 민자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지원자의 수가 모집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1)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의 LH대학생전세임대주택을 시작으로 2012년이 돼서야 비로소 청년 대상의 주거 정책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되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년전세임대주택으로 확대되었고, 행복주택과 사회주택 정책이 실시되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주택이며, 사회주택은 여러 명이 방을 함께 나누어 쓰는 주거의 형태이다. 전세임대주택은 LH가 입주자를 대신하여 전세 계약을 맺고, 이를 임대하는 방식으로서 보증금을 LH에서 지원해준다. 지역 차원에서도 따복하우스, 희망하우징 등의 이름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임대주택이라고 부를 만큼 저렴한 주택인지는 의문이다. 주변 시세의 80% 수준에서 공급하고 있지만 보증금이 4000~6000만 원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비정규직이 태반인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사회초년생이 이 정도의 목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또한 행복주택의 경쟁률이 최대 '130 대 1'에 이르는 등 물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계약 기간 역시 최장 10년까지 살 수 있으나 2년에 한 번씩 입주 자격에 해당하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상이 되는 '청년'에 있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청년 창업가, 예술인, 프리랜서, 신혼부부 등 조건이 까다롭게 설정되어 있어 애초의 자격 심사에서 배제되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게다가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입주자가 직접 해당 주택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절차적 까다로움으로 인해 집주인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2) 대출 지원 정책
공급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 제공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의 또 다른 축은 주택 구입 및 전·월세 자금에 대한 금융 지원이다. 신혼부부가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 그리고 취업 준비생 및 사회 초년생 등으로 대상을 확대한 월세 대출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도 임대 보증금 이자를 지원하는 등 대출 부담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래에 갚을 여력이 있다면 현 시점에서 이자 지원을 통해 보증금 혹은 월세 대출을 받아 주거비를 마련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1,34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게다가 청년들은 높은 실업률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해 소득이 없거나 저임금의 덫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대출을 장려하는 정책이 과연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걱정스럽다.
청년 주거권 보장 정책: 당장 어디로 가야 하나?
사실 현재의 청년 주거 정책들이 이 같은 한계를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가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주거비 지불 능력이 없다고 하니 돈을 빌리라고 하고, 기존의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에 끼워 붙이려고 하니 물량이 너무 적은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형성된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을 모른 척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건설 기간과 입주 시점의 차이로 인해 지금 당장의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
청년들이 '적절하고 안전한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서 형성된 높은 전·월세 가격을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형편없이 질 낮은 주거로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의 주거권 보장 정책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공급 측면에서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5.5%로 OECD 평균(11.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청년공공임대주택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운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재원인데,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국민연금의 사회적 투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작정 새로 짓기보다는 지금 지방정부들이 실시하고 있는 다가구 임대매입주택 사업과 같이 기존의 상가·주택 건물을 매입하고 안전하게 개조하여 소규모로 공급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소비 측면에서 민간시장의 과도한 전·월세 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현행 부동산 시장의 높은 매매 및 전·월세 가격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40년간의 주거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다. 토건 사업에 골몰하던 70~80년대부터 부동산 시장 띄우기를 경기부양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온 정책적 실패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 역시 정부에게 있다.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여 거품이 끼어있는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다하게 책정된 전월세 가격은 제어해야 한다. 이 같은 직접적 규제는 가계의 전월세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또한 지금 당장 소득이 없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을 위한 주거수당이 도입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높은 전월세 가격하에서는 생애 첫 독립적 출발의 시기이기에 소득이 없거나 빚을 진 청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현금 지원이 한시적으로 필요하다. 실제 사회적 이행기에 있는 청년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서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35세 미만 청년 가구에 주택수당을 제공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가족수당과 독일의 임대료 보조 제도도 이와 유사하다.
셋째, 임차인 보호 측면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있어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 계약이 원칙인 독일,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임대인에게로 주택이 인도되는 영국 등 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임차인의 안정된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청년들에게도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주거권과 관련된 내용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에 따르면 청년들이 세입자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절반 이상이 '알지 못해서'라고 응답했다. 청년들이 대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 등을 이유로 독립해서 한 명의 세입자가 된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교과 과정에 주거권 관련 법률적 내용을 포함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주거 문제는 단지 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소득 부족, 나아가 노동시장이나 교육과정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이는 주거 문제를 단순히 주거 정책으로만 한정 지어 보기보다는 노동정책, 소득보장정책, 교육정책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거수당은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의 소득보장정책이 될 수 있고,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청년의 주거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안정적인 주거의 확보는 저출산을 완화할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청년 문제는 한 영역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기에 다차원적 관점에서 청년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과 당사자인 청년들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 이행기에 불안하게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청년들만이 아니라 청년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청년의 후세대 등 모든 세대가 함께할 것이 분명한 우리 모두의 미래다. 따라서 청년들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우리의 함께 미래도 암울해지는 것이다. '예쁜'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 속에서 보다 발전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청년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선후보들, '부드러운 혁명'을 원한다면… [사회 책임 혁명] 사회적 책임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앞머리가 길고 수북한 곱슬인 데 반해 뒤통수는 민머리인 독특한 생김새의 신이 등장한다. 어깨와 발뒤축에는 날개가 달렸고, 한쪽 발뒤꿈치는 들려 있으며, 양손에는 칼과 저울을 쥐고 있다. 이 신의 이름은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만인의 시간 앞을 지나간다. 하지만 수북한 곱슬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아무나 그를 알아보는 건 아니다. 알아보는 자는 이 신을 붙잡을 수 있는데, 수북한 앞머리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을 스쳐 지나가다 아차, 하고 돌아서 손을 뻗었을 때는 잡지 못한다. 민머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신은 순식간에 새처럼 날아 올라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다. '기회'(occasion)의 속성이 그렇지 않는가. 카이로스는 사실 '기회의 신'이다. 절대적이고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Chronos)와는 달리 카이로스라는 '기회'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적절한 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회는 신중함을 지닌 균형적 사고와 과감한 결단 그리고 신념을 가진 행동으로 붙잡을 수 있다. 카이로스의 저울과 칼은 이를 상징한다.
주관적 판단을 전제로 말하자면, 2006년과 2007년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책임투자(SRI)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였다. 민간 기관투자자들의 사회책임투자 펀드 상품 출시가 줄을 이었고, 국민연금도 자산의 일부를 처음으로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위탁운용하기 시작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주도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 펀드')가 언론에 관심을 받으면서 시장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속가능성보고서도 '붐'을 이루었다. 2005년까지 총 19개 기관만이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했지만 2006년과 2007년에만 각각 12개, 25개 기관이 신규로 발간했을 정도다. 특히 2007년에만 11개의 공기업이 가세했다. 정부는 글로벌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제표준인 ISO 26000에 기업이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발전법'을 개정하기도 했고, 지속가능경영 자가진단 지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SRI와 CSR에 대한 정부의 활성화 의지는 높아 보였고, 이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 상승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시대의 창이 열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책임투자 이슈는 '효율성과 수익성'에 밀려 급격히 퇴조해 계륵(鷄肋) 취급을 받았고, 경제민주화 이슈를 이용해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외양만 돋보이게 하는 여러 가지 액서서리 중 하나로 전락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연금과 대기업들의 부패 연루는 이러한 흐름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고조되어 가던 2006년과 2007년 당시 분위기를 살려 나가고 담론의 당위성을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적 책임 철학이 빈곤하거나 박약한 정권의 탄생이라는 객관적인 조건이 크지만 주관적인 역량이 부재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책임 전성시대'를 가져올 소중한 기회를 그때 놓치고 말았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치루고 있는 2017년 장미대선 정국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2012년에 대선에 이어 경제민주화가 다시 화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이 역시 강조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고 이를 시장 친화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하다. 방법론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수와 진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드러운 혁명'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5.9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활동하고 있는 14개 비영리기관들의 협의체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의 참여과 후원으로, 제19대 대선 후보들에게 사회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5대 이슈 정책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요구한 바 있다.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전면 시행(국가재정법 개정), ∆공적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전면 가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주주권 행사 의무화, ∆국민연금 내 독립적인 사회책임투자위원회 구성과 운영, ∆기업의 ESG 정보공개 의무화, ∆CSR 국가전략 수립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만이 공약 미확정을 이유로 답변서를 보내오지 않았을 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4당의 대선 후보들은 모두 답변했다.
답변을 분석한 결과, 차기 정부에서 공적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주주권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답변을 보내 온 4당의 후보 중 누가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렇다. 추진 방법론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4당의 후보들은 5대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분석해도 단순히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사회적 책임 전성시대'를 만들 기회가 다시 오고 있다. 주체적 역량도 10년 전보다는 축적되었다고 본다.
사회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투자자와 기업과 소비자와 노동자와 협력업체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속가능하게 상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실현할 기틀을 만들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 사회에서 희망은 곧 신화의 다른 이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 후보들은 '사회적 책임의 시대'를 약속했다. 우리들은 그 약속 이행을 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대선 후보들의 사회적 책임 관련 공약을 규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DNA를 가진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필자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순간', 곧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본다.
아프리카 속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를 심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송민순 문건'이 확인해준 문재인의 안보 역량
[사회 책임 혁명] 내부 경쟁자를 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 차용
2017.04.25 12:28:09
대세론에서 양강구도로, 1강 1중으로, 특별한 쟁점 없이 판세 변화를 거듭하던 19대 대선판에 '송민순 문건'이란 작은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뭔가 논란거리가 될 것이기에, 또는 (누군가) 뭔가 논란거리가 되길 바라기에 파문은 맞지만, 개인적으로 판을 엎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니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기에 '작은' 파문이다.
'송민순 문건'은 예의 북풍이란 점에서 구차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송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신의 회고록인 <빙하는 움직인다>(창비 펴냄)에서 2007년 11월 UN 대북인권결의안의 찬성과 기권을 두고 벌어진 참여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이른 바 난맥상을 기술한 후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고 새삼 '난맥상'이 부각된 게 다수의 추측처럼 우연일 리는 없다. 어렵지 않게 추한 맥락을 떠올리게 되어, 세상사의 씁쓸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나아가 이 북풍에 담긴 구시대의 유물을 직시하면 씁쓸함은 배가된다. 요점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사를 물어보고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느냐', 아니면 '기권을 결정한 뒤 북한에 사후 통보했느냐'이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 벌이는 제로섬의 정치게임이지만, 일단 치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 정상회담 바로 뒤인 당시 상황에서 북한과 교감 없이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긴 힘들었을 것이다. 만일 북한과 사전 교감 없이 덜컥 결정을 내리는 정부라면 오히려 신뢰할 만한 정부라고 할 수 없다.
국내 정치가 그러하듯 남북문제에서 상대방의 의사와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정작 송 전 장관 자신도 유엔 채널로 북한과 접촉해 결의안에 대한 북한의 '동향'을 파악했다고 하지 않았나. 같은 행위에 대해 의중·의사·동향 등 다양한 단어로 변주되다가 급기야 '재가'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걸 보면, 정략적 목적의 북풍 불씨 살리기라는 의혹이 짙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송민순 문건'에서 문제 삼는 것은 문젯거리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문재인 캠프 진성준 TV토론단장이 "(설사 사실이라 해도) 북한에 입장을 물어 본 것이 뭐가 문제냐?"는 인식이 가장 정확하다. 악의적으로 해석하듯 상사에게서 결재받듯이, 상급자에게서 재가 받듯이 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무엇보다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찾기 위해 협의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4대강 사업에 관해 물은 게 아니라, 북한 현안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물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사실관계는 결정 후 통보라는 게 문재인 캠프의 해명이고, 다른 후보 진영에서는 해명을 믿지 못한다는 이견이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는 주적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 이때 우리는 북한을 두 층위로 나누어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 인민과 북한 집권세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3대 세습의 북한 지배세력은 분명 호전적이고 현존 국가 중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악한 집단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국민을 굶주리게 만들었고, 한줌 지배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반도를 끊임없이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정은 집단을 극복해야 할 '적'으로 간주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김정은 철권통치 아래서 신음하는 북한 인민도 '적'인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북한 인민이 '적'일 수는 없고, 남한 인민의 입장에서 북한 인민은 함께 가야 할, 가치 있는 미래를 더불어 도모해야 할 하나의 민족이다.
답은 명확하다. 북한의 지배세력과 인민을 나누어서 대처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남한에 북한 인민과 직접 소통하거나 동원할 역량이 없다고 할 때 우리는 북한 인민과 함께할 공동의 미래 때문에라도, 전체 북한 인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저 호전적 북한 정권과 적대할 수 없고 따라서 적으로 돌릴 수가 없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 북한 인민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고, 북한 정권은 대화하고 소통해서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노력해야 할 대상이지 싸워서 무너뜨려야 할 적이 아니다. 북한은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 컨트리 리스크이므로 남한 정부가 할 일은 리스크 관리이지, 리스크 발현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불가불 햇볕정책이 나왔고, 정말로 아주 결정적 순간까지는 어떠한 형태로든 햇볕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북한을 주적으로 취급하고 선언하는 일부 대선 후보들의 행태는 몰상식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은 아마 이럴 것이다. 그들은 사실 북한에 관심이 없다. 유력 대선 후보를 주적으로 몰아붙이기 위해 북한을 끌어왔을 뿐이다. 내부의 경쟁자를 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의 이름을 차용하는 행태의 답습.
문재인 후보가 TV토론에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 다시 물어도 문 후보가 재차 "대통령 될 사람이 할 발언이 아니라고 본다"고 한 것은 정확한 답변이었다. 문 후보의 말대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관리 대상인) 북한에게 적대의 표현인 주적이란 말을 써서 될 일인가.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적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송민순 문건'은 역설적으로 후보 문재인의, 적어도 안보관에 관해서는 안심할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