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진공청소기처럼 인재 빨아들인다” - 문재인,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벗어라
“문재인, 진공청소기처럼 인재 빨아들인다”
1000명 넘는 역대급 자문단…조윤제·김광두 등 주도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8(화) 15:10:33 | 1432호
몰리는 걸까, 모으는 걸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전 대표의 캠프 ‘더문캠’의 인재영입이 쉴 새 없다. 현재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유력 주자니만큼 많은 인재들이 먼저 찾기도 하지만, 캠프에서도 세(勢)를 불리기 위해 무분별하게 영입을 진행하고 있다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선 “문캠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곳곳의 인재들을 빨아들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계속되는 영입으로 캠프 몸집은 진작 역대 최대 규모를 이룬 상태다. 캠프 실무 조직만 해도 2실(비서실·종합상황실)과 10본부 체제로 꾸려져 있다. 각 본부장 자리는 외부에서 영입한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홍보본부장)과 윤영찬 전 네이버 부사장(SNS본부장)을 제외하고 모두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맡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3월15일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인재영입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호기 연세대 교수, 문 전 대표, 김광두 전 국가미래연구원장,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 연합뉴스
문 전 대표 측은 캠프 구성 초기부터 ‘친(親)문 패권’이라는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탈(脫)계파’를 선언하며 비문(非文) 인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으로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의원은 박원순계 인사였다. 총괄본부장 송영길 의원 역시 비문 진영에 속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부본부장 자리 등 캠프 2선에는 대부분 친문 세력이 포진해 있다. 문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최재성 전 의원은 직함은 없지만 캠프 외부인사 영입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내부에선 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친문계 홍종학 전 의원이 사실상 ‘실세’이며, 따라서 캠프 내 모든 정책이 홍 전 의원을 거친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 전 대표의 ‘비선’이라 불렸던 ‘3철’ 중 한 명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비서부실장으로 캠프에 합류해 있다. ‘3철’이 여전히 문 전 대표의 물밑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임종석 비서실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비서실이 캠프 일에 종합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곳이긴 하지만 투명한 회의체계를 갖춰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른 채 뒤에서 이뤄지는 일은 전혀 없다”고도 했다.
매머드급 인재영입 ‘세(勢) 과시’에 비판도
문재인 캠프가 ‘매머드급’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실무 조직보다도 1000여 명의 인사가 참여하고 있는 다수의 자문기구 때문이다. 2016년 10월 출범 당시에도 500명의 교수로 꾸려져 ‘초대형’이라는 평을 받았던 문 전 대표의 정책 싱크탱크 ‘국민성장’은 현재 참여 인원 1000명을 돌파한 상태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은 조윤제 서강대학교 교수로, 참여정부 경제보좌관을 지낸 인연이 있다. 캠프 내에서 사실상 문 전 대표의 경제정책 마련을 주도하고 있다. 조 교수는 국민성장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김현철 서울대 교수와 함께 차기 문재인 정부의 유력한 경제부총리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최근 캠프의 또 다른 국정 자문기구인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에 굵직한 경제통이 합류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가 분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의 경제교사’로 불렸던 보수진영 대표 경제학자 김광두 전 국가미래연구원장이 3월15일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된 것이다. 캠프 관계자는 “조 교수와 김 전 원장이 둘 다 서강대 교수 동료여서 관계가 나쁘진 않다”면서도 “현재로선 조 교수가 캠프 내에서 힘이 더 있으며, 김 전 원장은 문 전 대표의 보수층 아우르기 차원에서 영입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이 밖에도 문재인 캠프 자문기구 중 경제와 관련해 ‘비상경제대책단’과 ‘일자리위원회’도 출범한 상태다. 이들은 각각 이용섭 전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이끌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캠프 경제특보 직위도 겸하고 있어 문 전 대표의 경제정책을 이끌 또 다른 축으로 지목된다. 캠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비상경제대책단’이 교수들과 당장의 현안에 대해 논하는 곳이라면,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와 ‘일자리위원회’는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과 중장기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교·안보를 책임질 자문기구도 남다른 기세를 과시하고 있다. 김정남 피살 사흘 후인 3월16일 문 전 대표는 전직 외교관 24명으로 이뤄진 외교 자문기구 ‘국민 아그레망’을 출범시켰다. 국회의원을 지낸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가 단장을 맡아 심각한 외교 난제를 풀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여기에 이선희 전 방위사업청장 등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180여 명의 군 장성들이 모여 2월22일 ‘더불어국방안보포럼’을 형성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안보 분야 강화를 위해 가장 앞서 영입했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부인의 횡령과 5·18 관련 발언 문제로 물러나면서 일찍이 안보 행보에 생채기가 난 바 있다. ‘더불어국방안보포럼’은 문 전 대표가 이러한 논란을 수습하고 2012년 대선부터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아온 불안한 안보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차원에서 탄생시킨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정책 충돌·방향성 상실 우려
더문캠의 ‘끌어모으기 식’ 영입전에 경쟁 후보 측에선 연일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3월19일 열린 민주당 5차 토론회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문 후보 근처에 몰려들고 있다”며 무분별한 인재영입을 지적했다. 안희정 충남지사 캠프 역시 논평을 통해 “최근 문재인 캠프 영입을 보면 ‘민주당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며 “‘세 과시’와 ‘줄 세우기’ 등 청산해야 할 ‘적폐’들이 어른거린다”고 꼬집었다. 안희정 캠프 정책단장인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문재인 캠프를 ‘잡탕’에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조직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내가 속한 파트만 신경 쓰기에도 정신이 없다”면서 “다른 본부나 기구의 사정을 잘 모른다”고 털어놨다.
영입은 계속하지만 정작 신선한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캠프의 인재영입을 보면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옛날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다시 패거리정치가 실현되고 캠프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구성과 영입에 있어 가장 논란이 됐던 자문기구는 단연 ‘10년의 힘 위원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장·차관 출신 60여 명이 모여 2월14일 출범식을 가진 ‘10년의 힘’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정권교체를 경험한 과거의 실패 세력들이 다시 모인 그룹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모임의 정체성뿐 아니라 여기에 속한 개개인 역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시장은 “여기 속한 60명 중 15명이 삼성을 비롯한 재벌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며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문제투성이 인사”라고 비판했다.

1월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더불어포럼’ 창립식 모습 ©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이처럼 문재인 캠프가 전·현직 관료들과 수많은 외부인사들을 영입한 그 끝엔 결국 치열한 ‘자리다툼’만이 남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안희정 지사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를 언급하며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 측은 향후 자리를 생각지 않는 ‘자발적 지지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임종석 비서실장은 “당선됐을 때 인사 문제는 현재 캠프 구성원들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새롭고 포괄적으로 논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캠프 조직에 대한 여러 비판과 잡음이 들리는 상황에서도 문 전 대표에 대한 외곽 지지 세력은 끊임없이 전국 단위로 헤쳐모여를 이루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각계각층 인사들이 모인 ‘더불어포럼’은 캠프에서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거대하다.
경제·문화·체육 등 13개 분야에 걸쳐 약 150개 협회 대표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전체 참여 인원이 1000명은 훌쩍 넘은 규모로 파악된다. ‘경남 더불어포럼’ ‘제주 더불어포럼’ 등 지역 단위로 출범식을 따로 열고 있고, ‘더불어 약사 포럼’ 등 직업별로도 뭉치고 있다. 전 지역, 전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더불어포럼’은 대선 레이스에서 문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캠프는 민주당 경선이 끝나고 본선에 진출할 경우 당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안희정·이재명 캠프 인사가 추가로 가세할 가능성도 크다. 영입 규모와 대상에 있어 문재인 캠프를 향한 눈초리가 따가운 만큼, 경선 후 2차 영입전에서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캠프 차원에서도 더욱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우연이 겹쳐 운명을 만든 문재인 삶의 변곡점
특전사·인권변호사·노무현재단 거쳐 두 번째 대권 도전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수) 08:30:00 | 1432호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서전 《운명》의 표지에 이 같은 말을 남겼다.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운동권 대학생이 특전사로 갔고,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우연. 이때부터 시작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동행은 결국 정치인 문재인을 탄생시켰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거친 조기 대선에서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어쩌면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문 전 대표 앞에 펼쳐질 운명을 과거의 성장사를 통해 추론해 보고자 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참여정부에 참여했다. 문 전 대표는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1년 만에 사임하고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 시사저널 포토
운동권 대학생, 특전사에 가다
문 전 대표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단어는 ‘가난’이다. 그의 부친은 6·25 전쟁 당시 함경남도 함흥에서 미군 선박을 타고 경남 거제도에 마련된 피난민수용소로 내려와 문 전 대표를 낳았다. 부산 영도로 이사한 뒤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난은 그에게 자립심과 독립심을 선물로 줬다. 힘들게 보여도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려는 자세였다.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는 가치관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책을 가까이하던 어린 시절의 문재인은 경희대 법대로 진학했다. 역사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의 반대로 법대를 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을 시도하던 시대적 상황은 그를 광장으로 이끌었다. 학내에서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한 이유로 구속된 그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가 강제징집을 당했다.
문 전 대표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는 ‘특전사’다. 흔히 야당 정치인에게 숙명처럼 여겨지는 ‘색깔론’을 방어할 수 있는 하나의 카드로 여겨졌다. 문 전 대표는 1975년 8월 강제징집을 당해 입대했는데,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학생운동 전력으로 ‘신원특이자’가 되면서 훈련이 힘든 부대에 배치된 것이다. 여단장은 전두환, 대대장은 장세동이었다. 그는 특전사 복무 시절 폭동진압 훈련도 받았지만, 실제로 폭동진압에 출동한 일은 없었다. 문 전 대표가 제대한 후 그가 근무했던 부대는 부마민주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다. 강제징집을 당하지 않고 군복무를 좀 더 늦게 했다면 문 전 대표 또한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할에 동원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전사 동기인 최경원씨는 이등병 문재인을 ‘지독한 놈’으로 기억한다.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사병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다리가 휘어 ‘차렷’ 자세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때 조교가 두 개의 띠를 가져와 다리를 묶고 잘 것을 지시했다. 최씨가 매일 밤마다 이등병 문재인의 다리와 발목을 묶었는데, 몰래 느슨하게 푸는 일이 없었다. 특전사 부사관으로 복무했던 이형만씨는 문 전 대표에 대해 “다른 병사들에 비해 약체였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좋았다”고 기억한다.

문재인 전 대표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는 ‘특전사’다. 왼쪽부터 문 전 대표의 특전사 복무 시절 모습, 성악가 김정숙씨와 결혼하는 모습, 변호사 시절 모습 © 시사저널 포토
인권변호사의 길에서 만난 노무현
제대 후 문 전 대표의 부친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뒤늦게 사법시험을 보기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 5월17일 신군부가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문 전 대표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문 전 대표는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마치면서 법무부장관상을 받고 판사를 희망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검사를 할 수도 있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택한 변호사의 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당시 문 전 대표에게 김&장을 비롯해 이름난 법률법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문 전 대표 또한 솔깃했지만 평범한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했다. 어머니도 모실 겸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법시험 동기였던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첫 만남에서 소탈하고 솔직한 노 전 대통령에게 매력을 느끼고 바로 같이 일하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다 보니 노동·인권 변론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됐다. 부산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부산상공회의소 점거농성 사건 등을 도맡아 하다 보니 어느 새 노동·인권 변호사가 돼버렸다.
변호사 시절 오해를 샀던 사건도 있다. 문 전 대표가 ‘노동자를 위한 연대’ 부설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노동조합원이나 활동가를 대상으로 법률 교육을 많이 하는데, 주로 문 전 대표가 강의를 맡았다. 다른 강사들은 강의료를 사양하거나 뒤풀이 비용에 보태곤 했는데, 문 전 대표는 꼬박꼬박 챙겨갔다고 한다. 책정된 수입이니 꼭 받아가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면서 해당 단체의 회비는 늘 두 배를 냈다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동업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거리로 나갔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벌어진 노동자 구속·해고 사건은 문 전 대표의 몫이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대우조선 사건으로 구속되자 문 전 대표가 진상조사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이듬해 초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은 노 전 대통령을 영입한다. 노 전 대통령의 출마에 문 전 대표도 찬성했고, 1988년 4월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을 만들었다. 문 전 대표는 뒤늦게 이를 후회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좌절과 고통을 볼 때마다 그랬다. 문 전 대표는 “바보 노무현은 끝내 대통령이 됐지만, 비운의 일을 겪고 나서 처음부터 말렸어야 한다는 회한이 남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 참여를) 처음부터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포토
‘리틀 노무현’ 문재인의 홀로서기
이후 문 전 대표의 활동에 대해선 잘 알려진 내용이 없다.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던 문 전 대표는 200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와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문 전 대표에게 민정수석비서관을 맡긴다. 정치에 찬성했던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문 전 대표는 ‘민정수석으로 끝낸다’ ‘정치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민정수석을 맡았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이후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에 몸담았던 사람이 바로 변호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몇 달을 양산 집에서 칩거했다.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선 노 전 대통령 체면을 위해 요청할 때마다 봉하마을을 찾았다. 문 전 대표는 “봉하마을을 가끔 찾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소박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전직 대통령, 또 그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국민들의 미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왔다. 수백 개의 플래시가 터지는 기자회견장에서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장례가 끝난 후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 가기 위해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직을 맡았다. 이후 친노(親盧) 세력의 상징이 되면서 운명처럼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정치인의 길 역시 부침(浮沈)이 많았다. 정권교체를 위해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해 부산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같은 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했다. 이후 백의종군을 자처했던 그는 2014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가 된 뒤 친노 세력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당권을 장악한 이후 친노 진영은 친문(親文) 세력으로 급격히 전환됐지만, 오히려 친문 패권주의라는 공격을 받게 된다. 조기 대선을 앞두곤 대세론을 형성하며 ‘반문(反文)연대’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문 전 대표는 친노 세력의 또 다른 적통으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절대 정치는 하지 마라’는 고언을 남겼지만, 그의 적자로 불리는 두 사람은 대선 길목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대연정’과 ‘선의(善意)’ 발언, ‘전두환 표창장’ 논란 등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갈등의 골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까지 문 전 대표는 2017년 장미 대선에서 청와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대세론은 늘 부침의 역사를 겪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청와대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개혁의 선구자가 될까, 아니면 야인으로 돌아가 생계를 책임지는 평범한 자연인이 될까.
문재인,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벗어라


▲ 문재인과 안철수, 유승민은 어린 시절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으며,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27일 광주 광산구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자 호남권역 선출대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김태형 지음, 원더박스 펴냄) ⓒ프레시안
문재인 정책 핵심 키워드 ‘적폐청산’과 ‘국민성장’
김현 뉴스1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수) 14:06:43 | 1432호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미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이후 절치부심해 왔던 만큼 4년 넘게 준비해 온 ‘문재인표 구상’을 하나둘씩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표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적폐청산’과 ‘국민성장’이다. ‘적폐청산’은 국가 대개조를 위한 정치·사회 분야 공약이 주축이라면, ‘국민성장’은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운 문 전 대표의 경제 분야 구상이다.
‘적폐청산’과 관련해 문 전 대표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권력기관 대개혁’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에서 “‘이게 나라냐’는 탄식의 근본 원인은 국가권력 사유화로 인한 국가 시스템 붕괴다. 그 중심에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이 있다”며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기관부터 대수술해야 무너진 공직기강을 다시 확립하고 제대로 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문 전 대표는 △대통령 집무 청사 광화문 이전, 대통령 휴양지였던 저도 반환, 대통령 24시간 공개, 인사추천 실명제 등 청와대 특권 버리기 및 국민과 소통 △수사권 및 기소권 분리, 경찰위원회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개혁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 국정원 대공수사권 국가경찰 산하 안보수사국 신설 및 이전 등을 제시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문캠 일자리위원회 출범식에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만들겠다”
문 전 대표는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안보무능과 무책임 △방산비리 △국방의무와 병역의 불공정 △사악한 색깔론과 망국적인 종북몰이 등 4가지를 ‘안보적폐’로 꼽고 있다. 그러면서 △한·미 확장억지력 탄탄히 구축 및 북한 압도할 독자적 핵심전력 구축 △감시정찰정보 역량과 정밀타격 능력을 키우는 등 자주국방력 강화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북핵 문제, 대화에서 제재까지 가능한 방법 동원하는 ‘과감하고도 근원적인 해결책’ 활용 등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특히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2차 포럼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고, 누구라도 만나겠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우방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며 “‘북한에 먼저 갈 수도 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사상검증처럼 되는 슬픈 현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조건 미국 먼저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이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교육 공약과 관련해선 “국가가 교육을 완전히 책임지는 시대를 열겠다”며 “우리는 민간이 부담하는 공교육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배이고 OECD 국가 중 3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담 공교육비의 비중을 임기 내에 OECD 평균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면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이 이뤄질 것이다. 대학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춰, 대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줄이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의 단계적 일반고 전환 등 고교서열화 완전 해소 △초등학교 ‘1:1 맞춤형 성장발달시스템’과 기초학력보장제 도입 △중학교 일제고사 폐지 및 절대평가 단계적 도입, 자유학기제 확대·발전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 실시 △학사비리 일으킨 대학 지원 금지 등 교육적폐 척결 등도 공약했다.
문 전 대표는 또 지난해 12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1차 포럼’ 기조연설 당시 ‘공정국가’를 새로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비전 중 하나로 꼽은 뒤 “특히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문 전 대표가 ‘국민성장’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 경제공약 중 대표적인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월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포럼에서 ‘일자리 국민성장의 맥박’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저성장의 위기,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등 국가위기의 근본원인은 바로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라고 진단한 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문 전 대표가 제시한 핵심 방안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다. 문 전 대표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의 고용주다.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이 21.3%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7.6%밖에 안 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을 3% 올려 OECD 평균의 반만 돼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관, 경찰, 교사, 복지공무원 등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면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꼭 필요한 일자리를 당장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50만 개 창출,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대기업 노동자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공정임금제 실시 등을 제시했다.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선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 설치 △중소기업청, 벤처까지 관장하는 중소 ‘벤처기업부’로 확대 승격 △창업기업의 공공부문 조달참여 보장, 의무구매비율 확대, 신기술 적용제품 우선구매 비율 확대 등 추진 △연대 보증제 폐지, 신용대출제도 개선 등을 통해 재도전 기회 마련 등을 공약했다.
문 전 대표는 재벌개혁과 관련해선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배구조 개혁을 통한 투명한 경영구조 확립을 위해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 서면투표 의무화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편들지 않는 공정한 감사위원과 이사 선출 제도화 △공공부문 노동자추천이사제를 도입하고 4대 재벌과 10대 재벌의 순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액주주의 대표소송 단독주주권 도입, 다중대표소송과 다중장부열람권 제도화 등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재벌의 중대한 경제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한 반시장범죄자는 기업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며 “법정형을 높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주회사 요건 및 규제 강화 △자회사 지분 의무소유비율 인상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재벌의 갑질 횡포에 대한 전면적 조사와 수사 강화 및 엄벌을 위해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중소기업청 등 범정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구성 등을 제안했다. 그는 또 “대기업이 2015년 한 해에만 납부한 준조세가 16조4000억원에 달한다. 법인세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라며 “대기업 준조세금지법을 만들어 정경유착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고 기업을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