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당신의 '세 가지'를 들려주세요. 안희정, 이재명,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일취월장7 2017. 4. 19. 09:46

당신의 '세 가지'를 들려주세요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①
전홍기혜 기자     
2017.03.28 09:50:40


작년 말과 올해 초, 저는 크게 앓았습니다. 병세가 깊을 경우 시한부 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중증 질환인지라, 처음 진단을 받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한 것이어서, 저는 지난달 수술을 받고 이제는 다시 기사를 쓸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회복됐습니다. 아직 치료 과정 중에 있지만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중증 환자'가 되면서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소수자이자 약자인 '환자'에 대한 편견과 부조리를 느꼈습니다. 폐쇄적이고, 어찌보면 강제적인 공간인 병원에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아픔(고통)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공유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을 통해 적잖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내가 태어난 순간을 시작점으로 끝을 모르고 뻗은 반직선의 삶을 살았다면, 겨우 얼굴 두 번 본 대학병원 의사의 입에서 '00병'이라는 말이 나온 그 순간 끝이 분명히 존재함을 아는 선분의 삶이 확 다가왔습니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찌할지 모를 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지만, 이를 매 순간 인지하면서 사는 현자, 아니 도인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저 어딘가에 끝점이 있다, 그리고 그 끝이 번개처럼 급작스러울 수도 있다는 걸 새삼 절감하면서 나의 시간, 사람, 일 등 많은 것들에 대해 곱씹어보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유한'한 내 미래를 새롭게 꿈꿔봅니다.

서론이 너무 무겁고 길었나요? 이번 기획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된 제 인생의 세번째 '사건'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개개인의 삶은 온 우주를 집어삼킨 것처럼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또 달리 보면 살아간다는 것의 고갱이는 어쩌면 한 손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있을만큼 단순하기도 합니다. 짧은 기간이니마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간접 체험하고 되돌아본 제 삶도 그랬습니다.  

당신 인생의 '세 가지' 일(사람)들은 무엇(누구)입니까? 그렇게 귀하게, 때론 아프게 거쳐온 시간들, 사람들 덕분에 당신의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당신과 그 옆 사람, 또 옆의 옆 사람...우리는 어떤 연대와 공감을 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나선 '장미대선'의 후보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세 가지'에 대해.


ⓒ프레시안(최형락)


뱀발. 끝까지 너무 '진지모드'였나요? 무엇보다 '세 가지'로 정한 건 나이와 과거 잦은 음주로 인한 건망증으로 '다섯 가지'는 도저히 기억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겁고 어려운 질문 만이 아니라 가벼운 질문도 던져 볼랍니다. 사는 게 그렇잖아요! 



안희정 "아내 덕에 페미니즘 공부를 합니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② 안희정을 만든 사건과 사람 '3'
전홍기혜 기자     
2017.03.29 10:37:05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 중인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가나다 순) 후보 측에 세 가지 질문을 공통으로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가지.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에 맞춰 한 후보당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가장 먼저 답변을 보내온 안희정 후보의 '세 가지'입니다.  

안희정 후보가 꼽은 인생 '세 가지' 사건은 5.18 광주민주항쟁, 1988년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일, 2010년 충남도지사 당선입니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안 후보가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는 당시 "전두환-노태우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든 군대로 쿠데타를 하는데, 시민의 힘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시민혁명을 하려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남대전고 1학년 때 계엄사에 잡혀가 제적을 당했"고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안 후보는 5.18에 대해 "광주와 김대중, 그리고 민주당 역사와 만난 첫 사건"이라고 규정합니다.

두 번째로 꼽은 '1988년 남산 안기부 고문' 사건은 안 후보가 현실 정치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에 뛰어든 안 후보는 1986년 '건대 사태'에 이어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두 번째 수감되면서 남산 안기부로 끌려가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4인 1조로 매일같이 자행되는 폭력은 육체의 고통을 넘는 수치심을 안겼다. 그런데 폭력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좇던 이념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질문들이었다. '미국을 몰아내면, 세계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뭔데?', '네가 말하는 민족 자주 경제를 건설한다는 게 대체 뭔데?' 지속적이고 교묘한 질문 공세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앙상한 안티테제 말고는 가진 답이 없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정의감은 충만했지만, 그래서 어떤 사회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없었다." 

이 일이 있고 1년 뒤인 1989년(안 후보가 "혁명이 멈췄다"고 표현한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의 붕괴가 일어난 해), 그는 민주당에 입당해 현실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안 후보가 세 번째로 꼽은 사건은 2010년 충남도지사 당선입니다. 이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가능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2010년 민주당이 단 한 번도 깃발을 꽂지 못했던 충청남도에서 도지사로 당선됐고, 민주당과 386하면 좌파, 빨갱이라 생각하던 지역에서 재선을 했다"고 합니다. 또 "극단적 여소야대 의회와 함께 도정을 수행하면서 민주적 대화와 타협으로 협치를 해 왔다"고 평가합니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적잖은 비판과 논란을 불러온 '대연정' 발언은 이런 도정 경험에도 기반을 두고 있는 셈입니다.  

안 후보는 지자체장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성과에 대해 "양성평등 비전과 인권 선언, 노동정책 기본계획, 노인빈곤 정책, 농업혁신, 그리고 전면 친환경 무상급식 등 협치가 성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정부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며 "지자체 유일 6년 연속 공약 이행 평가 최우수,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11개월 연속 1위, 도정 긍정 평가율 78.7%로 도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자부했습니다.  


▲ 대학 졸업식 때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안희정


다음으로 두 번째 질문인 안희정을 만든 '세 사람'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까요?그는 어머니, 노무현, 민주원(부인)을 꼽았습니다.

어머니는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안 후보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밝힌 일화는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남대전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고향에 돌아와 책이나 읽고 있던 내 앞에 아버지는 농약병을 꺼내놓으셨다. '학교에 다시 갈래, 아니면 이거 먹고 나랑 같이 죽을래?' 아버지를 거역할 수는 없어서 1981년에 두 번째 고등학교, 서울 대방동의 성남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상경을 해서도 혁명을 하겠다며 대학가를 어슬렁거렸고, 학교생활에 충실할 리 만무했다. 결국 3개월 만에 부모님을 설득해 자퇴를 했다.  

부모님과 교무실에서 자퇴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교실에서 국어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공부하는데 왜 너만 이렇게 그만두려 하냐'며 정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아 우셨다.  


이후 거의 자취방에 혼자 지냈다. 형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같이 사회과학 얘기하고 역사 얘기를 했다. 누님이 야학 선생님을 하던 교회의 신자들과 어울리거나 청계천 골목길을 혼자 돌아다녔다. 지나보면 그 시절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그때 외로움과 고독의 상처가 굉장히 오래 갔다.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 때문에 그 시기를 잘 버텼다."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안 후보는 "가장 따라 배우고 싶은 모델"이라고 밝혔다. ⓒ안희정

안희정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 팔'(좌광재 우희정)이라 불릴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습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현실 정치인으로 이끌어준 분이자, 원칙을 지키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 스승"이자 "내가 가장 따라 배우고 싶은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스로 군림하지 않고 파트너로서 참모진과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고위인사를 만날 때도 해당 업무를 맡은 참모가 참석하게 했고, 참모들의 지위와 역할을 끊임없이 높여주려 노력했다. 원칙과 상식의 시대,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은 내게 두툼한 월급봉투는 못 줬지만 희망을 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앞당겨진 2017년 대선에서 지지율 1,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 안희정 두 후보는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이들입니다. '장미 대선'을 가능하게 한 민심은 이른바 적폐 청산, 즉 대한민국의 낡은 정치와 사회 구조를 뜯어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구시대의 막내가 될 수 밖에 없었다"(2003년 11월 5일 지식인 원로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한 발언)고 안타까워 했던 것처럼, 노무현 정부도 극복해야할 과제를 분명히 남겼습니다. (관련기사 : 노 대통령에게 쏟아진 원로들의 고언) 안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로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을 지적했습니다.

"대학 1학년 도서관 앞자리에 앉았던 동갑내기 여학생", "6년 열애 끝 결혼", "두 번의 수감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무신 거꾸로 안 신고 옥바라지를 한" 부인 민주원 씨가 안 후보를 만든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동년배 남편들이 그러하듯 육아와 가사노동을 등한시하고 일에만 빠져 살았던 안 후보는 "2004년 대선자금 관리자로서 책임을 지고 투옥된 1년 동안, '노무현의 참모' 안희정이 아니라 '누구의 남편과 아빠' 안희정으로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며 "그 이후 가족 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회상합니다. 교사였던 민 씨가 자신 때문에 '경력 단절 여성'이 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워 했습니다.  

부인에 대해 안 후보는 "가장 든든한 조언자이자 카운슬러"라며 "몇 해 전부터 여성주의 책들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교육받고 생활해온 탓에 아내를 통해 보는 세상의 반쪽 창이 더 소중하고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 둘째 첫돌 때 찍은 가족사진 ⓒ안희정


(안희정 후보가 바꾸고자 하는 미래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도 추후 게재됩니다.)



안희정 "'인서울' 아니면 '루저'되는 현실 교체!"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③ 안희정이 바꿀 미래 '3'
전홍기혜 기자      
2017.03.31 10:20:05


"인(in)서울이 아니면 루저가 되는 대한민국을 바꾸겠다."

안희정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안희정이 바꿀 미래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자치 분권'을 꼽았습니다. 민주당이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충청남도 도지사를 재선한 정치인답게 그는 '지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소득 불균형보다 더 심각한 부의 쏠림 현상을 낳고 있는 부동산 문제(자산 불균형), 지역의 교육과 의료 뿐 아니라 문화 '소외' 현상 등 서울과 수도권 집중 현상으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역 주민들만이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도 높은 집값과 교통 혼잡처럼 고질적인 문제 뿐 최근 미세먼지 문제 등 인구 집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안 후보는 "600년 간 흔들리지 않았던 중앙집권 국가, 한양 중심 국가에서 자치분권 국가로 나아갈 것"이라며 "서울에 몰려 있는 권력과 부를 분산시켜, 전 국민이 주인 되고 국토가 고루 발전하는 균형 발전의 나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자치와 분권 문제와 관련한 고민이 깊습니다. 그는 "우리 지역에서 대통령 안 나와서 지역 소외 받았다, 차별받았다는 생각이 지역주의의 골을 깊게 파놓았다"며 "예산권과 입법권 등 지방자치의 폭을 대폭 확대해, 지역의 발전은 지방 정부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목표를 위해 △시·도지사협의회와 함께 '제2국무회의'를 신설해, 지역 의제를 국가 재정예산회의에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 것 △지역별 거점 국·공립대학 육성 등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안 후보는 두 번째로 힘찬 국방, 당찬 외교, 활기찬 남북 관계, '찬찬찬 안보·외교' 정책을 꼽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따른 탄핵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요동쳤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친하다는 것 이외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여전한 북핵 문제...사실상 정권 부재 상황에서 한국은 이런 외교 문제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기 정부 앞에 놓은 난제 중 하나가 박근혜 정권의 '외교 참상'을 바로 잡는 것이기도 합니다.  

안 후보는 외교적 목표로 △한·미동맹 관계의 심화 △아시아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한 중국과 협력의 강화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대화 재개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초당적 국가안보 전략회의를 구성해 정권을 떠난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안 후보는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강조합니다.

"명절 때마다 화기애애했던 밥상머리에 정치 얘기만 시작하면 감정싸움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극단적 대립만 거듭해온 정치문화는 시민들의 일상 풍경까지 팍팍하게 바꿔놓았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하는 민주적 정치 문화가 뿌리내려야만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도 해소될 수 있다." 

안 후보가 '욕 먹으면서도' 주장하고 있는 대연정이 바로 이런 구상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5월 9일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협치'는 불가피한 현실일 것입니다. 안 후보는 대연정에 대해 "여소야대 의회에서 개혁입법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뿐 아니라 민주적 정치 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하는 안희정 후보(가장 왼쪽) ⓒ안희정



"세월호 참사는 제 잘못입니다"라는 이재명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④ 이재명을 만든 사건과 사람 '3'
전홍기혜 기자     
2017.04.01 11:02:46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 중인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가나다 순) 후보 측에 세 가지 질문을 공통으로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가지.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에 맞춰 한 후보당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두번째로 이재명 후보의 '세 가지'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인생 세 가지 사건으로 소년공 시절, 5.18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를 꼽았습니다.  


이 후보는 본인이 '무수저 출신'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어린 시절 가난했습니다. 그는 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열두살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 대신 공장에 출근했던 노동자 출신입니다. 수많은 공장을 전전한 소년공 생활은 여러 차례 산재 사고로 이재명에게 '후천적 장애'들을 남겼습니다. 고무공장에서 작업대 전기모터에 손가락이 말려들어가 손가락과 고무가 떡이 되는 사고도 있었고, 글러브와 장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에 눌린 왼손이 골절됐는데, 당시 제때 치료하지 못해 성장 과정에서 손목이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장애인이 된 소년 노동자는 두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실패 아닌 실패 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자며 공부를 시작했고, 그 후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합격하고 대학까지 입학하게 됩니다. 


이 후보는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성남시장이 되고, 지금은 대선 후보로 출마했지만, 소년공 시절을 그는 잊지 못합니다. 이재명 후보처럼 어린 시절 극도의 가난을 겪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CEO가 되는 '계급 배반'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풀었다면, 이재명 후보는 여전히 '나는 노동자 출신'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듯 합니다. 2017년 대선 출마 선언 장소로 소년공으로 일했던 성남 오리엔트 시계 공장을 택한 것도 이런 의식의 반영입니다.  

▲ 소년공 시절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이재명 후보. ⓒ이재명


이 후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육신을 낳아주신 어머니가 계시다면 일베였던 대학생 이재명을 바꾼 사회적 어머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5.18의 진실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그 정도로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어린 이재명은 당시 방송과 신문을 보고 "광주사태는 북한군과 연계된 반국가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경찰과 군인을 쏴 죽인 사건이다"라고 얘기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 학교 선배들이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뿌린 대자보와 유인물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 경선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현충원에 참배한 후 가장 먼저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 후보가 세 번째로 꼽은 사건은 2014년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야권 정치인들은 대다수가 고개를 숙이며 '책임'과 '반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후보 역시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 저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는 일이다. 한 번의 일이 벌어지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했어야 한다"며 "우리가 남의 일로 외면하고 관심 갖지 않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제 잘못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는 극우 세력(정치인, 언론, 단체)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쏟아낼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억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해 초 성남시청사에 게양된 세월호기를 내려 달라는 당시 새누리당 시의원의 요구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게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아직도 게양하고 있습니다. 성남시청 청사 벽면에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세월호 기가 걸려있습니다. 성남시청 광장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가족이 진도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삼보일배를 하는 긴 여정을 함께해온 세월호 모형배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 후보는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박근혜 탄핵 직후 세월호 유가족을 찾은 이재명 후보 ⓒ연합뉴스




이 후보는 이재명을 만든 '세 사람'으로 어머니, 노동법연구회, 김혜경(부인)을 꼽았습니다.

이 후보는 본인에게 '어머니는 하늘'이라고 표현합니다. 대선 출마선언에서도 이런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솜털이 남아있는 고사리 손 아들을 시커먼 고무공장까지 바래다 준 어머니는 밤 열시가 넘어 퇴근 하시고도 철야를 마치고 새벽 4시가 되어야 귀가하는 어린 아들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고된 밭일로도 자식들 먹여살리기 어려워 약장사에 밀주까지 팔면서 힘겨운 삶의 무게에 부엌 구석에서 몰래 흐느끼시던 어머니, 고무공장 샌드페이퍼에 깎여 피가 배어나오는 제 손바닥을 보고 또 우셨습니다. 단칸방 가족들이 잠들었을 때 마당에 물통을 엎어놓고 공부하던 저를 보고 우셨고 장애와 인생을 비관해 극단적 시도를 두 번이나 하는 저를 보고 또 우셨습니다." 

▲ 대선 출마 선언 현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은 부인 김혜경 씨. ⓒ 연합뉴스


그렇게 힘들게 키운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판검사가 되길 바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독재정권의 주구 노릇을 할 수 없고 노동현장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위해 성적이 미치지 못해 판검사를 못하게 됐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들의 거짓말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선택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고 합니다.  

이 후보가 두 번째로 꼽은 사람은 '노동법연구회'를 함께한 동료 법조인들입니다. 이 후보는 1987년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함께 '노동법연구회'라는 이른바 '언더서클'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폭압 정치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고, 급기야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발생해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처럼 보수적인 집단에서, 더군다나 법관 임명을 앞둔 사법연수원생들이 대놓고 '노동법'을 공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이 후보와 연구회를 함께한 이들로는 정성호 의원, 문병호 의원, 최원식 전 의원 등이 있습니다. 정 의원은 이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정 의원은 당시에 대해 "이 시장의 연수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판검사가 아니라 변호사를 선택했다.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다. 입신양명보다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자 했던 정의감과 용기가 지금의 이재명을 만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다섯 번의 맞선 중에서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였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제 생에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두 번째 보던 날 집 앞에 가서 '바다나 갑시다'로 시작해 다음 해 봄에 결혼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밝힌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인과의 첫 만남입니다. 이 후보가 세번째로 꼽은 사람은 부인 김혜경 씨입니다.  

하지만 로맨티스트로 보이는 이재명 후보와의 결혼 생활은 달랐습니다. 부인 입장에선 멀쩡한 변호사인 줄 알았는데, 이 후보는 인권운동 하느라 맨날 경찰서에 잡혀가고 구속까지 됐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한다고 숨기고 싶은 집안일까지 온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보가 부인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김혜경 씨는 이 후보가 정치하는 것을 처음에 완강히 반대했었습니다. 처음 성남시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지자들이 이 후보에게 전해준 정책들을 전달하기도 하고 직접 제안하기도 할 정도 가장 큰 조력자라고 밝힙니다.



안철수 "박근혜 탄핵, 국민의당 힘이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⑤ 안철수를 만든 사건과 사람 '3'
2017.04.10 08:34:59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에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측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가지.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에 맞춰 한 후보당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안철수 후보의 '세 가지'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달라졌습니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대선후보 5명의 후보 수락 연설을 전문가 5명에게 물은 결과, 안 후보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과거 '조용한 부장님 스피치’에서 정치인의 힘이 실린 스피치로 진화했다는 평"입니다. '소몰이 창법'이라며 아직은 어색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의 말과 태도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4월 첫째주를 기점으로 각 당의 후보들이 정해지면서 2017년 대권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던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집니다. '박근혜의 몰락'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적 유권자의 표심이 안 후보에게 일정 부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안 후보 역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5년 전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20-30대 청년층의 지지를 받던 그가 이젠 50대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후보가 됐습니다. 이처럼 '모호성'은 안 후보에게 보수세력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자 동시에 숱한 의심을 낳는 약점입니다.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은 안 후보에게도 '세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의 인생 세 가지 사건 중 첫 번째는 'V3백신 프로그램 개발'입니다. 의사 안철수를 IT전문가이자 사업가로 변신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안 후보는 "19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시절 '브레인'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한 후부터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뛰어들어 밤을 지새웠다"며 "백신 개발 과정은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오직 열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 V3 백신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회고합니다. 당시 서울대 의대 박사 과정이었던 그는 컴퓨터에 푹 빠진 뒤 새벽 시간을 이용해 백신 개발을 했다고 합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 했지만, 결국 본인이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선택했습니다. 그는 1995년 컴퓨터 백신 전문 기업인 '안철수 연구소'를 창업하게 됩니다.

이후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에게 정치인으로 전환점이 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 후보가 두 번째 사건으로 꼽은 '2011년 청춘콘서트'입니다. 청춘콘서트는 안 후보(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사이자 경제평론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이사장 법륜 스님)이 공동 주최했던 강연회를 말합니다. 안 후보는 이를 통해 20대들의 '멘토'로 떠올랐고, 당시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도 올라갔습니다. 안 후보는 "저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공감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좀 더 나은 미래, 좀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습니다.  

▲ 안철수 후보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장면. ⓒMBC 화면 캡처


그는 "5년 전 저를 정치로 불러내주신 국민들 역시, 정치를 배우라고 불러낸 것이 아니라, '정치를 바꾸라'고 불러내셨다. 그 초심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욱 더 간절해졌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 후보가 꼽은 세 번째 사건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국민의당 창당과 4월 총선 결과에 대한 안 후보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광야에 혈혈단신 나온 지 채 두 달도 안 돼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지지율 2위, 38석이라는 기적 같은 3당체제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거대 기득권 정당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든 녹색태풍이었다.  

국민의당이 만든 3당체제는 박근혜 게이트를 폭로한 출발점이었으며, 234명의 압도적 탄핵 가결의 견인차였다. 국민의당은 소모적인 대결로 일관하던 양당체제의 한계를 깨고 협치의 길을 열었다. 국회 개원을 앞당긴 것도, 탄핵을 이끈 것도, 정상적인 예산국회를 만든 것도 국민의당의 힘이었다." 

안 후보는 당 대선 후보로서 "국민의당 중심의 정권교체 이루고, 국민을 위해, 개혁을 위해, 미래를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안 후보가 꼽은 세 사람은 부모님, 부인, 국민이었습니다. 특정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민'을 꼽은 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대목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에게 부모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의 부친은 '범천동 슈바이처'로 불릴 정도로 부산에서 상당히 존경 받는 의사였다고 합니다. 그가 의대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모친은 안 후보에게 어린 시절부터 존대말을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 후보는 부모님을 꼽으며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분"이라고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안 후보는 두 번째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말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후배였던 김 교수는 안 후보가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연구가이자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양 갈래 길에서 고민하던 안 후보에게 부인은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격려하고 지원했다고 합니다. 안 후보는 부인에 대해 "서로 돕고 의지하는 소울 메이트"라고 표현했습니다.  

▲ 안 후보와 부인 김미경 씨. ⓒ연합뉴스


안 후보는 마지막으로 국민을 꼽았습니다. 정치 이력은 짧지만,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인 그가 이번 대선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답변으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안 후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에게 정치를 배우지 말고, 정치를 바꾸라고 불러내신 분들도 국민이다. 외롭고 두려운 광야에 홀로 섰을 때, 손 잡아주신 분들도, 국민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분들도 국민이다. 그래서 경선 후보 수락연설에서도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대통령 되겠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2017년 대선의 정치적 지형도와 안철수라는 인물이 만나 형성한 독특한 지지층 때문에, 그가 말하는 국민의 범주는 매우 넓고 다양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지지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모두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의 속성입니다. 때문에 2012년의 '새 정치'와 마찬가지로 2017년 '국민'은 그가 채워 넣어야할 빈칸으로도 생각됩니다.


안철수의 세가지 "미래 대비 안 하면 국가가 뒤처진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⑥ 안철수가 바꿀 미래 '3'
2017.04.12 08:26:48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스스로 "유능한 후보"라고 자부합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의 의사, 성공한 벤처 사업가,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유능'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안철수 후보는 본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바꿀 미래 '세 가지'에 대해 교육, 과학기술, 산업구조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 교육혁명. 안 후보는 교육부 폐지 후 국가교육위원회·교육지원처 재편 학제개편 평생교육 강화를 3대 교육 개혁 과제로 내놓았습니다. 특히 학제를 바꾸는 방안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가 내놓은 학제개편안은 만 3세부터 유치원 2년, 초등학교 5년, 중학교 5년, 진로 탐색 학교(또는 직업학교 2년), 대학교 4년으로 이어지는 방안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내용과 체제를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과연 그 방향이 직업 교육 시기를 앞당기는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일찌감치 취직할 사람들은 취직을 준비하라는 '분리주의적 교육'에 대해서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또 학제 개편은 교육 내용과 수업 방식, 교사 양성 체계 등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반론합니다.  

두 번째 과학기술. 안 후보는 2022년까지 5년 간 총 10만 명의 '4차산업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합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3D프린팅 등 4차산업 혁명의 각 분야 전문인력을 매년 2만 명씩 5년 간 길러낸다는 계획입니다. 또 각 부처별로 찢어져 비효율적으로 운용돼 온 연구개발(R&D) 예산을 통합해 효율적 배분과 감시가 가능하도록 바꾸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재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창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산업구조 개혁과 연관된 공약이기도 합니다. 안 후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구조를 바꿔 창업 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성실 실패는 재도전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밝혔습니다. 안 후보 본인이 벤처 기업가 출신인 만큼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크다고 합니다. 


안 후보는 '세 가지'를 꼽은 이유에 대해 "4차산업 혁명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래 사회에 걸맞는 '국가 경쟁력 강화'에 가장 역점을 두고 싶어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 과학기술.창업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 ⓒ국민의당



심상정 "이 청년 결혼시키는 게 제 목표입니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⑦ 심상정을 만든 사건과 사람 '3'
2017.04.19 09:03:40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에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측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가지.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에 맞춰 한 후보당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심상정 후보의 '세 가지'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017년 대선에 출마한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후보입니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안철수(국민의당) 양강 구도로 진행되는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는 지지율 3% 안팎으로 4-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 후보는 "촛불 민심을 받들 수 있는 후보"를 자처하면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이번 선거의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의 과제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완주'와 '의미 있는 득표율'입니다. 백기완(14대 대선), 권영길(15-17대 대선)에 이은 세 번째 진보진영 대선 주자인 그는 2012년 사퇴한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후보 등록 직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물러났습니다. 이번에도 문-안 두 후보가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경우, 사퇴 압박이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있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안철수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하지 않겠냐는 관측과 거울상입니다. 

완주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사퇴 압력을 뒷받침하는 '사표론'을 잠재울만큼의 득표율입니다. 정의당은 그 숫자를 '5%'로 보고 있습니다. 역대 진보 후보 중 최다 득표율은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은 3.9%(95만7148표)였습니다. 100만 표를 훌쩍 넘기겠다는 목표입니다. 

심 후보는 지난 13일 있었던 첫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분명한 색깔과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채 한달이 남지 않은 대선 기간 동안 그가 진보정당을 수십년간 괴롭혔던 '사표론'을 잠재우고 '2016년 촛불 혁명'의 민심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때입니다.  

심상정 후보가 꼽은 세 가지 사건은 다른 후보와 차별되는 그의 삶의 궤적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사건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입니다. 서울대 출신인 그는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 '2초 김고은'이란 별명을 얻게 한 대학시절 사진 ⓒ심상정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일간지 1면에 처음 보도된 노동사건이었다. 내가 언론과 맺은 첫 인연도 구로동맹파업이었다. 그해 6월 KBS <9시뉴스>에 '구로동맹파업 배후 주모자 검거에 현상금 500만 원, 일계급 특진'을 걸었다는 내용과 내 증명사진이 보도됐다."

이 사건의 배후 주모자로 지목된 심 후보는 이후 9년 동안 지명수배자로 지냈습니다. 또 1300명의 해고 및 강제사직, 44명의 구속, 부상자 130명이라는 큰 파장을 낳은 이 사건으로 심 후보는 노동운동가로서 삶을 살게 됐습니다. 



▲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낸 심 후보는 당시 '철의 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단 있는 노동운동가였다. ⓒ심상정



'전설적인 여성 노동운동가'인 그가 정치인이 된 것은 2004년 총선을 통해서입니다. 이때 처음 도입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얻으면서 원내에 진출하게 됩니다. 심 후보는 당시 비례 순번 1번으로 의원이 됐습니다. 심 후보는 2004년 국회 진출을 인생 두 번째 사건으로 꼽으면서 "노동자에게도 정당과 국회의원이 있고, 노동자도 정치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충격이었다"며 "'저 당이 우리 당이다', '노동자도 정치의 주인일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헌신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때 같이 의회에 입성한 노회찬 의원과 함께 심 후보는 진보 정당의 '스타 정치인'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됐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2017 대선 출마'입니다. 심 후보는 완주 의지를 거듭 밝힙니다. 그는 "그간 대선에 출마한 진보정당 후보는 진보적 시민들의 '비판적 지지'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대선은 다르다"며 "정권 교체는 이미 국민들이 해놓았다. 개혁 경쟁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선거"라고 이번 대선의 차별점에 대해 말합니다.   


"내게는 이번 대선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 꿈은 대통령보다, 정권교체보다 더 큰 꿈이다. 바로 60년 대한민국의 노선을 대전환하는 것이다. 승자독식, 성장 제일주의의 대한민국 사회를 확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 당당한 나라, 우리 청년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노동'을 정치의 키워드로 삼고 있는 심 후보가 선택한 '세 사람'도 타 후보와 차이를 보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전태일 열사입니다.

1970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에 대해 심 후보는 "내 인생의 들불이자 나침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물두살 때 미싱사 자격증을 따게 된 이유가 전태일 열사 때문이었다. 낮은 곳을 향한 끝없는 연민과 인간 해방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대변되는 전태일 정신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길을 배웠다." 

두 번째 사람은 남편 이승배 씨입니다. 이 씨는 2004년 심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 이후 14년 간 가사일을 도맡아 해왔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 후보는 많은 여성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남편 이승배 씨와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양세형의 숏터뷰> ⓒSBS 화면 캡처



"남편이 집안 살림을 책임져 주면서 자유로운 의정 활동이 가능했다. 남편에게 제일 고마운 점은 제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했는데 남편이 아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아들이 밝고 반듯하게 자라줬다는 점이다." 

세 번째 사람은 청년 노동자 임선재 씨입니다. 임 씨는 지난 9일 '여의도 벚꽃축제' 마지막 날에 4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함께 결혼 예복을 입고 동료들과 함께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임 씨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에서 일합니다. 19세 청년이 서울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일입니다. 임 씨는 야간노동까지 해야 한 달에 190만 원 정도를 버는 데 이 돈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다며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심 후보는 이 시대 수 많은 청년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임 씨의 얘기를 매우 가슴 아프게 들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의 소박한 꿈을 이뤄주는, 청년이 사랑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이 친구 결혼시키는 게 내 목표다." 


▲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요구하는 장미파업이 5월 1일 예정돼 있다.



심상정 "악전고투 워킹맘 대접받는 사회 만들겠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⑧ 심상정이 바꿀 미래 '3'
2017.04.20 16:22:45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19일 2차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우리 삶이 달라질지 의심한다. 문 후보는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입장도 뚜렷하지 않고, 정리 해고 요건 강화에도 입장을 유보했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느끼면 강력한 대안이 나와야 하지 않나." 


문 후보도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심 후보의 기조에 대해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 차이는 여전합니다.  


심상정 후보에게 '당신이 바꿀 미래 세 가지를 말해달라'는 질문을 던지자, 심 후보는 모두 노동자,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답변으로 채웠습니다. 첫 번째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내세웠습니다. 이 목표는 심 후보가 20대 초반 구로공단에 위장취업 할 때부터 꿈꿔오던 것이기도 합니다. 대선 후보가 된 지금, 심 후보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죽어라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노동자와 영세 중소상공인들, 쌀값 폭락과 수입 농산물 홍수에 생명같이 가꿔온 농작물을 갈아엎어야 하는 농민들, 반값인생의 굴레가 자식에게 대물림 될까 두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 편의점과 고시원을 오가며 소박한 꿈마저 박탈당한 우리 청년들,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집과 직장을 오가며 악전고투하는 워킹맘들, 이들 모두가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들 중에서도 특히 청년들의 현실에 시선이 가 있습니다. 심 후보는 지난 1월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발언한 20대 비정규직 청년의 사연을 얘기하면 눈물을 보였습니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내 삶이 나아질까요", "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못 살겠습니다"라는 말은 이 청년만이 우리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 것입니다.   

N포세대(연애, 결혼, 자녀 등 이전 세대가 누리던 것들을 무한 포기한 세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고시오패스(고시생+소시오패스), 호모인턴스(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인턴만 반복하는 세대), '수저 시리즈'에 빗댄 금턴(부모 등 인맥을 통하지 않고는 못 가는 좋은 인턴), 흙턴(단순 노동만 하는 인턴) 등. '헬조선'에서 고통 받는 청년들의 현실을 비꼬는 신조어가 넘쳐난다는 것도 방증입니다.  

"누구는 평생을 써도 다 못쓸 재산을 상속받고, 누구는 끔찍한 가난을 상속받고 있다. 청년들이 겪는 이런 불평등을 과감하게 타파할 것이다. 청년들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를 만들겠다." 

평생 써도 다 못쓸 재산만이 아니라 '재벌 총수'라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대대손손 상속 받는 일은 현재 우리 사회의 불균형의 최정점에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 청년들을 햔한 약속이 허언이 되지 않기 위해 심 후보는 '재벌 3대 세습이 없는 나라'를 마지막으로 꼽았습니다.  

"현재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단지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로 제대로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재벌 3세가 한국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 3세 세습은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청년과 노동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상속세 등 현행법만 제대로 지켜도 불법적인 3대 세습은 가능하지 않다. 재벌들의 조세포탈, 불법 상속, 또 중대 경제범죄에 대해서 법대로 처벌할 것이다." 


▲ 대선 출마 선언에서 청년 노동자 사연을 얘기하면서 눈물 짓고 있는 심상정 후보 ⓒ심상정



현재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거액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입니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결론은 다음 정부에서 내려집니다. 이에 대한 처리가 그 정부의 재벌 개혁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벌 개혁 문제가 다음 정권에선 그저 구호나 선언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실행할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국정원, 해외안전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⑨ 문재인이 바꿀 미래 '3'
2017.04.21 11:37:30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동시에 던졌습니다.

1) 000의 사건 세 가지, 2) 000을 만든 세 사람, 3) 000이 바꿀 미래 세 가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1, 2번 질문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3번 질문에 대한 답변만 보내왔습니다. 게재 순서는 후보들이 답변을 보내온 순서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대선 재수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안타깝게 패한 뒤, 때론 정치 일선에도 있었다가 때론 한발짝 물러나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절치부심하는 동안 다른 후보에 비해 '대통령'이란 자리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 이로 인한 보수층의 균열로 문재인 후보에겐 다시 한번 큰 '문'이 열렸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줄곧 지지율 1위를 기록해온 문 후보가 타 후보에 비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집권이 과연 '내 삶을 바꿀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은 이보다는 적은 듯합니다. 민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인 경제의 흐름, 재벌 중심 경제체제와 이를 중심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기득권 세력 강고한 연대, 개인의 노동권과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기엔 미흡한 법·제도 등으로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보수 극우 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힘은 '촛불 민심'이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이대로 '1위'를 굳혀 대통령인 된다면, 이는 한겨울 칼바람 맞으며 촛불을 든 국민들에게 가장 큰 공이 있습니다. '민주 정부 3기'가 될 문재인 정부는 과거 민주 정부의 과를 극복해야할 숙제를 안고 출발선 상에 서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 후보가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정권만이 아니라 촛불시민 한명 한명의 '삶'도 바뀌어야 하니까요.  


문재인 후보가 첫 번째 꼽은 것은 '적폐청산'입니다. 문 후보는 이번 대선이 "1000만 국민들의 촛불이 만들어 낸 마지막 기회"라면서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리고, 무너진 경제와 안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적폐청산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권력적폐, 재벌적폐, 언론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짚었습니다.  


"권력의 편에 서있던 검찰과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을 국민들께 돌려 드리겠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해 권력과 부패의 연결고리를 끊겠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폐지하고 대북한 및 해외 정보, 안보와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최고의 정보 전문기관인 '해외안전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 재벌개혁을 통해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동반성장하도록 만들겠다. 권력의 도구가 된 공영방송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겠다. 상식과 정의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두 번째로는 '국민통합'을 말합니다. 국민통합은 적폐청산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날게 하는 "양 날개"라면서 "이념과 지역, 세대와 빈부의 격차에 의한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100%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국민통합'을 주요 공약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차이를 만들어내겠지요. 이와 관련해 문 후보는 "진정한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고, 아무런 편견 없이 소수와 함께하는 것"이라며 "지역과 학벌,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하는 차별을 없애고 사람의 가치를 먼저 존중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특히 지역 문제에 강조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보다 더 강력한 지방분권을 통해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도록 하며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능력에 따른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면서 "국민과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으로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문 후보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발표한 "81만개 공공 일자리 창출"을 강조합니다. 그는 "일자리가 최선의 경제회복 방안이고 최고의 복지정책이며,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과 재정능력을 총동원하겠다"고 강조합니다. 81만개 공공 일자리로 "소방, 경찰, 부사관 등 국민 안전과 복지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문 후보의 이 공약과 관련해선 '64만개는 신규 창출이 아니다'(기존 외주 위탁하는 일자리를 흡수하는 것)이라는 비판, 관련 재정 계획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 후보는 더 나아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서 대통령이 매일 직접 챙기겠다"며 "성장의 열매가 대기업과 부자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국민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촛불집회에 참석해 시민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