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쉽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괴롭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에 죽음을 결행한다. 지난 1월 23일 엘지 유플러스 전주 콜센터(LB휴넷)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실습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그가 왜 죽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스트레스가 큰 SAVE(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해서 돌리는 일이다 보니 감정 노동이 심하다. 2010년에도 이 부서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홍모 씨가 고등학교에서 전공한 것은 애완견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실습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했다. 특성화고 지원 정책 탓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지원액은 학교 한 곳당 1억7000만 원인데 취업률이 45.5% 이상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취업률이 45.5% 이상 되지 않으면 학교는 지원금을 못 받는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실적 압박 및 초과 근무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는지 조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교육청도 상황조사팀을 조직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과 교육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는 협약서에 명시된 것보다 더 길게 일했고 임금은 현장실습 협약서에 비해 월 27~45만 원가량 낮게 받았다. 그런데도 기업은 사망과 업무 스트레스는 관련이 없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기업-정부-학교의 동맹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제도는 죽음을 부르는 제도다. 벌써 몇 번째인가.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이상 일하던 현장실습생은 과다노동 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가 됐다. 기아차가 매년 늘어나는 자동차 생산 대수를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현장실습생으로 채우면서 발생한 사고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직원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고, 2월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현장실습생이 공장 지붕이 무너져 사망했다.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장실습생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 제도에서, 현장실습생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야간노동 강요를 피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또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생이 근무지에서 자살했다. 왜 취업한 지 2개월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과다노동에 지문이 닳아 없어진 그의 몸은 말하고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의 노동 착취는 특성화고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며 그/녀들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그 결과 현장실습생 제도는 저임금, 장시간 야간 노동을 통한 기업의 이윤 생산 엔진이 되었다.
특성화고 학교 수업을 파행시키고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현장 실습이 비판받으면서 2006년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이 마련돼 시행된 적이 있다. 기업 파견형 현장실습을 직업 체험, 교내 실습 등으로 다양화하고, 파견형일 경우에도 3학년 2학기 수업의 3분의 2를 이수한 이후에 실시할 수 있으며 졸업 뒤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로만 한정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자율화 조치'에 따라 이 지침은 폐기됐다. 특성화고 취업 기능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취업률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원하고 학교 통폐합 등을 진행했다.
그에 반해 현장실습생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는 여전히 없다. 현장실습생 청소년들이 대부분 고3인 경우가 많아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만 18세 미만의 야간 노동 및 휴일 노동 금지 조항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2016년 8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 나이 규정을 삭제했지만 근로기준법보다 알려지지 않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노동부의 현장실습생 관련 관리 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15년 4월 감사원은 '산업 인력 양성 교육 시책 추진 실태' 결과 보고서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업체나 현장실습 제한 업체에 실습생 파견 문제, 현장실습 표준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 체결 문제 등을 지적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학교는 인력파견 업소?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청소년 노동권 보장이나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학교는 더 많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생의 '전공을 살리는' 실습이 아닌 '취업률을 높이는' 실습을 추천한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이 일하는 회사에 현장실습생 교육프로그램을 요구하지 못하며 실습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도 보지 않는다. 학생들이 파견 나간 업체가 어떤 곳인지, 노동조건은 어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결과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높아졌지만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 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 발표 자료). 한마디로 특성화고는 나쁜 일자리로 나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노동 인권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취업률 향상만을 주입받은 현장실습생들은 나중에 올 후배들을 생각하며 힘들어도 뭔가 잘못됐다 느껴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학교는 학생들을 노예적 노동시장에 팔아서 돈을 버는 인력파견 업소가 되어 가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는 낮은 임금으로 쉽게 노동 인력을 공급하는 제도이자 학교는 지원금을 받는 수단일 뿐이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현장실습생이라는 존재는 인권의 주체인가
현장실습생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만치 않은 노동 속도와 괴롭힘의 관행에 익숙해지며 착취당하는 경험을 쌓을 뿐이다. 현장실습생 제도를 훑어보고 있노라니 현장실습생은 과연 인권의 주체인가 싶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게 인권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별이 그렇고 나이가 그렇다. 현장실습생 제도는 교육의 이름으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아직 노동은 하지만 취업은 하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며 노동권을 부정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게 교육이라며 교육권을 침해한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교는 현장실습생을 과도기의 존재로 규정하며 인권의 보편성보다는 권리를 제한할 특수성의 이유를 강조한다. 엿장수 맘대로다. 노동권과 교육권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인권의 주체로 상정하면 될 일이다.
인권 보장의 내용을 주체와 상황에 맞게 구체화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특성화고 학생들도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권리와 일할 때 필요한 지식과 훈련, 그리고 그 시기에 필요한 교육과 교우관계 등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 입시가 돼서는 안 되듯이 특성화고의 목적은 취업률을 높이는 게 아니다. 먼저 계속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 파견형 현장실습을 우선 중단하고 청소년에 대한 노동인권 교육은 실시해야 한다. 특성화고 취업률 경쟁에 학생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2015년 감사원에서 지적한 문제점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학교가 수수방관할 수 없도록 현장실습 산업체에 대한 감독이 구체화돼야 한다. 끝으로 현장실습생 노동보호에 관한 법제도(근로기준법, 최저임금 등)를 개선하고 현장실습생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두근두근 인터뷰] 이지선 교수 “4차 산업혁명 준비하는 메이커가 되세요”
2017.03.24 17:00
메이커 생태계 조성에 앞장 선 이지선 메이커교육실천 회장 인터뷰
‘2017 영 메이커 교육’이 지난 4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TONG과 소년중앙, 메이커교육실천(www.makered.or.kr)과 숙명여대가 함께 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초등·중학생 대상인 ‘영 메이커 프로젝트’와 고교생 대상의 ‘영 메이커 연구소’로 구성된다. 영 메이커 프로젝트 참가자는 150명. 영 메이커 연구소의 연구원으로는 전국 39개 고교 동아리, 350여 명의 학생이 선발됐다. 각 동아리는 자율적으로 ‘무언가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메이커 활동을 공유하고 멘토링을 받게 된다.
제한된 도구로 마시멜로를 높이 올리는 ‘마시멜로 챌린지’에 나선 참가자들. 마시멜로를 높이 올리기 위해 스파게티면으로 삼각 다리를 세워 안정성을 확보했다.
메이커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 주제와 연구 방법, 과정 등을 정하고 수행해 나간다. 다만 연구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전문가 그룹을 통해 멘토링을 받을 수 있고, 지역별 거점 영 메이커 교실과 연계해 활동에 필요한 재료와 장비 등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7~8월에는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를 토대로 ‘미니 메이커 페어’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 같은 영 메이커 연구원들의 활동을 뒤에서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이가 있다. 바로 메이커교육실천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다. 메이커 운동의 국내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이 교수는 연구원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줄 예정이다. 메이커 활동에 참고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동아리의 ‘SOS’ 요청에는 자신이 가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라도 꼭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기대와 설렘 혹은 걱정으로 첫 발을 뗀 영메이커 연구소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 메이커 연구소’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연구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활동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탐구하고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합니다. 이렇게 공개된 자료는 다른 메이커의 연구에 활용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동안 우리나라의 영 메이커 활동은 외국에 비해 느리게 확산되어 왔고, 학기 단위로 나뉘어 연속성이 약했어요. 이제 막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보니 메이커들의 공개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이번 영메이커 연구소는 16주 동안 진행되지만, 학생들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연구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픈 포트폴리오 프로젝트(OPP)로 연구 활동을 하게 되면 다양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먼저 공유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그에 따른 효과적인 공개 형태와 공유 방식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죠. 라이선스(특허권)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자료를 가져오고 공유할 때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니까요. 그렇게 해서 공개된 포트폴리오는 다른 메이커들에게 유용한 자료로 쓰이기도 하고, 내 프로젝트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이런 공개 포트폴리오가 많아지면 그만큼 메이커 운동 자체가 활성화되겠죠. 공유와 공개는 메이커 생태계,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적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메이커 운동이 왜 중요한가요. “일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사실 197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플의 공동창립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첫 번째 애플 컴퓨터를 만들던 당시, 미국에서는 이들 외에도 개인용 컴퓨터를 직접 만드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미국 특유의 DIY(Do It Yourself) 문화와 맞물린 일종의 ‘기술적 히피 운동’ 같은 것이었죠. 이후 웹 2.0 시대를 거치면서 기술의 민주주의가 확산되었고, 여기에 예전 DIY보다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강화된 것이 오늘날의 메이커 운동이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생태계’ 개념을 제대로 알고 이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이에요.”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을 고려하고 있을 텐데요. “이제 사회는 정부 주도가 아닌 생태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돌아갈 겁니다. 일론 머스크(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세계적 민간 우주회사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를 보세요. 우주선 개발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보다 앞서 나가면서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론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TED(Technology·Entertainment·Design, 미국의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는 강연회)의 강연 영상을 찾아보면 지금은 거의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시대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교육적 측면에선 어떤가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는 데 무척 취약합니다. 발명대회에서 상을 받은 아이에게 발명품을 직접 만들어봤는지 물어봤더니 아이디어 보드(발명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종이나 널빤지)만 만들어봤다고 하더군요. 이게 우리 현실이에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거죠. 발명교실조차도 일종의 프로그램화가 되어 있어요. 요즘 아두이노(오픈 소스 하드웨어 플랫폼) 교육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아두이노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아두이노만 하고 있어요.”
-메이커 교육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요. “메이커 활동의 핵심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최소 3년 동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것, 계속해서 수정·보완하는 팅커링(tinkering, 땜질이라는 의미)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메이커 운동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가 되는 방법입니다. 특이 영메이커 교육은 미국의 DIY와 같은 문화적 배경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생각의 틀을 깨기가 어렵지만 지금 초중고 학생들에게 투자한다면 불과 10년, 빠르게는 5~6년 안에 결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연관 없는 단어를 조합해 완성된 이야기를 만드는 ‘두뇌 풀기’ 참가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모아 훈련에 임하고 있다.
-아직은 대학 입시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메이커 활동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메이커 활동은 물론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메이커 활동이 앞으로는 분명히 입시에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이미 메이커 포트폴리오를 입학 사정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MIT Maker Portfolio’라고 검색하면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 영상이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메이커 활동을 공개적으로 올리고 유명세를 얻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숙명여대도 메이커 포트폴리오를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에요. 사실 많은 대학들이 이미 ‘소프트웨어 특별 전형’을 실시하고 있어서 메이커 포트폴리오를 활용하게 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어떤 학생의 공개 포트폴리오가 주목을 받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당연히 입시에도 유리하게 되겠죠. 그러려면 디지털 풋프린트(온라인 활동 기록)를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기간에 걸친 메이커 활동 기록은 사교육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설령 사교육으로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해도 그 아이는 스스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도태되고 말 거예요.”
-영 메이커 연구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4차 산업혁명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메이커 활동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철학을 생각해 보는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왜 만들고 싶은지 하는 것 말이에요. 단순한 ‘체험’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메이커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자신의 철학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기존의 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투영한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무작정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거죠. 영메이커 연구소가 다음 시즌에서는 어떻게 발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내주면 좋겠어요.”
-TONG 독자들에게도 한말씀 해주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돈보다 세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결국 세상을 이끌어 나가고 명성도 얻게 됩니다. 인재는 천재성이나 영재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행과 공감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만들고 싶은 건 다 만들 수 있어요!”
글=최은혜 기자·이다진 인턴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황정옥 기자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3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2014년 10월 이곳 콜센터 직원이 자살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두 번째 자살자다.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상담팀장이 자살하며 남긴 메모에는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실습생이 살인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취업 5개월 만에 자살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은 홍 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전북 전주를 찾았다.편집자.
땅이 우묵하게 파여 깊고 넓게 물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산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인적도 드물었다. 한껏 공원으로 단장했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일. 전주에 위치한 아중저수지 이야기다. '아중'은 '관암'이란 뒷산에 갓을 쓴 사람 모양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께 변사체가 발견됐다. 전날 친구와 점심을 먹는다고 나간 고3 여고생 홍은주(가명) 씨였다. 경찰은 22일 오후 6시께 은주 씨가 스스로 저수지에 뛰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은주 씨는 죽기 직전, 저수지 둑이 바로 보이는 카페에서 10여 분 정도 머물렀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을 건넨 뒤, 저수지 쪽으로 향했다
은주 씨가 자기 몸을 던진 날은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기도 했다. 당시 전주의 기온은 영하 9도. 그런 날씨에, 인적도 드문 저수지에 왜 자기 몸을 던져야만 했을까.
▲ 홍은주 씨가 뛰어든 저수지. ⓒ프레시안(허환주)
딸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의 한탄
은주 씨가 자살하기 3일 전인 20일 새벽 아버지 홍순성(58)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딸의 친구였다.
"아버님, 은주가 회사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하더니 그만 자기 손목을 그었어요. 피가 많이 나요. 어서 오세요. 여기는 000이에요."
급히 옷을 입고 딸 친구가 말한 곳으로 달려갔다. 급히 달려간 병원에서는 다행히 동맥을 건드리지 않았단다. 자해한 곳을 꿰맨 뒤 집으로 데려왔다. 가슴이 타들어 갔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면 되뇌었다.
'회사 일이 얼마나 힘들길래 저럴까.'
은주 씨는 평소 자존심이 무척 센 딸이었다. 자기와 관련된 말들은 잘 하지 않은 편이었다. 힘든 일을 겪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은주 씨는 지난해 9월 초순부터 LG유플러스 협력회사인 콜센터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했다. 돈을 벌다가 야간대학을 가겠다면서 선택한 길이었다. 내심 대학 진학을 바랐던 아버지는 이내 알겠다며 딸의 의견을 존중했다.
정확히는 'SAVE' 부서였다.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내부에서는 '해지 방어' 부서라고도 부른다. 한마디로 고객이 계약해지를 위해 전화를 하면 이를 막는 일을 하는 셈이다.
회사와 관련된 말을 하지 않는 딸이지만 아버지도 느끼는 게 있었다. 딸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지난해 12월부터였다. 수습을 마치고 정식직원이 된 시점이다.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지만 이를 맞추는 적은 거의 없었다. 전에는 하지도 않던 회의를 한다며 늦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콜(call)수를 못 채웠다"며 야근을 하기도 했다. 상담사인지라 회사에서 정해진 전화상담 건수가 있겠거니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딸의 성격도 거칠어졌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짜증 내는 횟수가 점차 늘어갔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해를 한 다음날 친구를 만난다면서 나간 게 아버지가 본 딸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꿈에 나타나면 한 번 묻고 싶어요. '너 왜 그랬니? 아빠 생각하면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은 못할 텐데…. 그렇게 모진 일 할 때 아빠 생각 한 번만이라도 했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딸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는 했던 마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 홍은주 씨가 뛰어든 저수지. ⓒ프레시안(허환주)
그렇게 힘들다는 걸 조금이라도 알아챘다면...
은주 씨의 친구인 박윤민(가명, 20) 씨도 마찬가지였다. 은주 씨의 죽음은 여전히 윤민 씨에게는 상처다. 아직도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윤민 씨는 은주 씨가 저수지에 몸을 던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다.
"은주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챘다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하는 그였다. 은주 씨는 평소 친구들에게도 자기 힘든 일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은주 씨는 친구인 윤민 씨에게도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건 자기가 나약하다는 걸 드러내는 거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깔봐. 그러니 너도 힘들다고 하지 마."
그래도 여러 징후는 있었다. 어떤 날은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너는 왜 방어(계약 해지를 막는 작업)를 못 하냐"고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회사에 들어간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는 한밤중에 전화가 오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은주 씨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나 진짜 죽겠다. 죽고 싶다. 더는 못 견디겠다. 고객들이 '쌍욕'하는 것도 힘들고 계약해지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위에서 갈구는 것도 너무 힘들다."
누구를 특정지어 힘들다고 한 게 아니었다. 그저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친구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회사 자체가 힘든 듯했다. 그래도 친구가 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은 전혀 몰랐다.
"내일도 회사를 가야 하는구나."
이따금 은주 씨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푸념도 그냥 말 그대로 푸념인 줄 알았다.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사 초기에는 고객 응대 매뉴얼 등을 암기하느라 바빴다. 이따금 연락하면 "바쁘다"며 끊기 일쑤였다. 회사에 적응할 즈음에는 상품 판매 1등에 오르기도 했다. 그랬기에 은주 씨가 하는 이야기는 그저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윤민 씨에게 친구는 은주 씨 하나뿐이다. 은주 씨가 죽고 난 뒤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축하해줄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양손을 다쳐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했을 때, 내내 찾아와 병시중을 들어주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의 꿈은 밥집을 여는 거였다. 요리를 잘했다. 오리훈제고기를 넣은 김치볶음밥은 언제 먹어도 특미다. 윤민 씨는 그렇게 떠나간 친구 이야기를 늘어놓다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요. 회사만 아니었다면 그 친구가 그런 선택을 했겠나요? 그런데 회사는 사람이 죽었는데 위로금이라고 고작 100만 원을 주네요. 세상이 이런 건가요?"
자살한 여고생은 '욕받이' 상담사였다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②] 고객 상대 최전방 부서에서 일한 여고생
허환주 기자
2017.03.08 08:25:06
칸막이로 가려진 책상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 칸막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사무실 벽면에는 고객과 상담할 때의 태도를 공지하는 문구가 적힌 대형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일등 DNA로 무장한 강한 홈 CVC(고객상담센터)
경청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즐거운 직장으로 고객관점 상담...
사무실 출입구에는 드라마 <피고인>을 패러디한 광고 선전지가 붙어 있었다. 직원 중에서 새로 일할 사람을 데려올 경우, 한 명당 25만 원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출입구 옆에는 상담노동자들이 잘 보이도록 '해지등록률'' 순위표를 게시해 놓았다. 전주 상담센터 내 팀별, 그리고 전국 센터별로 해지등록률을 집계한 순위표였다.
"너 이번 달에 TV 몇 개 했냐?"
"몇 개 못했어."
"너 그러면서 지난달에도 판매 상위권이었잖아."
점심시간 엘리베이터에서는 상담노동자들끼리 이번 달에 TV 몇 대를 팔았는지 확인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떨어진 할당량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각자의 노하우를 주고받기도 했다.
▲ 사무실 출입구 옆에 놓여 있는 해지등록율 순위표. ⓒ프레시안(허환주)
홍 씨가 일한 해지 방어 부서는?
전주시청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대우빌딩. 이곳 15층부터 17층은 LG유플러스 고객상담 사무실이다. 이중 17층에 'SAVE' 부서, 즉.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부서가 자리 잡고 있다. 내부에서는 '해지 방어' 부서라고도 부른다. 고객이 인터넷 등 계약해지를 위해 전화를 하면 이를 막는 일을 하는 셈이다.
지난 1월 23일 저수지에 몸을 던진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일하던 곳이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홍 씨는 졸업을 앞두고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홍 씨는 업무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홍 씨가 일한 'SAVE' 부서는 업무스트레스가 심각하기로 유명하다. 해지를 하려 전화한 고객에게 정작 해지하지 말라고 제지해야 하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일. 홍 씨가 일한 업무를 '욕받이' 업무라고 칭할 정도다.
게다가 회사는 이들 상담사에게 팀별로 목표 해지등록률을 할당하고 여기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두고 순위를 매겼다. 그에 따른 성과급은 당연한 결과였다. 예를 들어 해지등록률이 10%라고 하면 10명에게 해지 전화를 받아 그중 1명만 해지를 막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9명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는 이러한 해지등록률 순위판을 사무실 입구에 세워놓았다.
뿐만 아니라 상품 판매 실적도 강요받았다. 매일 팀 별로 판매할 상품이 할당됐고, 그에 따른 압력이 위에서 내려왔다. 팀 별로 판매 실적을 비교하며 압박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중, 삼중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전·현직 상담사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 만에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 사무실 출입구에는 드라마 <피고인>을 패러디한 광고 선전지가 붙어 있었다. 직원 중에서 새로 일할 사람을 데려올 경우, 한 명당 25만 원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프레시안(허환주)
공대위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 다할 것"
이런 사실이 하나 둘씩 알려지면서 홍 씨의 죽음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홍 씨의 죽음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도내 2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홍 씨의 유가족은 왜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렸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말한다"며 "LG유플러스 고객센터가 즉시 진상규명,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자살한 홍 씨는 해지방어를 하면서 역으로 상품까지 판매해야 했다"며 "재·퇴직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업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그만두었다고 증언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얼마나 쉽게 사람이 그만두면, 업체는 새로 일할 사람을 소개하면 소개해준 사람에게 소개비로 25만 원을 준다고 홍보하는 지경"이라며 "우리는 홍 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측은 "부당한 지시나 목표를 할당해 강요하지 않았다"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안타깝고 당황스럽다.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콜 상담사'의 고백 "나도 자살하고 싶었다"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③] LG유플러스 고객상담사로 일한 김영희 씨 인터뷰
허환주 기자
2017.03.09 15:46:12
김영희(가명 32) 씨는 고3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한참을 울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사회 생활을 오래 해온 김 씨가 느끼기에도 업무 강도나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 등은 상상을 초월했다. 김 씨는 지난 3년 동안 LG유플러스 00지역센터에서 고객상담사로 일해왔다. 주임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지난 1월 퇴사했다.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에 회사를 퇴사할 때는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들 정도까지 회사에 다녀야 하나 생각하니 억울하더군요. 죽을 바에는 그만두자고 생각했어요. 죽은 그 아이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 씨는 LG유플러스에 오기 전 SK텔레콤 등에서 5년 동안 상담사 일을 해왔다. 하지만 LG유플러스만큼 고강도 노동, 그리고 성과를 강압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김 씨는 "대부분이 입사한 뒤 회사 분위기나 업무 강도를 못 이기고 그만둔다. 내·외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 "그중에서도 SAVE팀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숨진 홍은주 씨는 SAVE팀에서 일했다.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내부에서는 '해지 방어' 부서라고도 부른다. 한마디로 고객이 계약해지를 위해 전화를 하면 이를 막는 일을 하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SAVE팀에 전화하는 고객은 내재된 불만이 있는 사림들이에요. 가격, 서비스 불편, 여러 직원의 불친절 등. 그런 분들을 대응하는 것은 경험이 많은 이들이어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불만을 품고 해지하려고 전화하는 사람을 설득해서 다시 사용하도록 하는 게 SAVE팀이에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SAVE팀 일은 경력자가 해요."
김 씨는 적어도 자기가 일했던 센터에서는 고3 현장실습 학생을 SAVE팀에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무척 그 점이 의아하단다. 워낙 힘든 일인지라 초심자에게는 맡기지 않는다는 것. 내부에서 최소 1년 이상 일해본 사람 중에서 센터장 등 면접을 거쳐서 SAVE팀에 배정된다고 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는 자료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못 하면 잘하라고, 잘하면 더 잘하라고 채찍질
프레시안 : 대략 고객상담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어떻게 되는가.
김영희 : 내가 있던 곳은 한 달에 15명이 입사했다. 한 달에 두 기수가 입사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30명 정도가 입사한다. 하지만 1년이 됐을 때는 이 중 6~8명 정도 남는다. 그리고 2년이 되면 3명, 3년이 되면 1명도 채 남지 않는다. 워낙 자주 사람이 나가다보니 퇴사하려면 45일 전에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한다. LG유플러스가 SK 등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다. 성과를 더 올리기 위해 상담사에게 상당한 압박이 들어온다.
프레시안 : 하나하나 짚어보자. LG유플러스가 성과주의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숨진 홍 씨도 그런 성과주의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듯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과급제를 적용하나.
김영희 : 연차, 월차, 그리고 일하는 능력에 따라 목표량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판매팀의 경우, 인터넷이든 휴대전화를 팔아야 한다. 그러면 이 판매수치를 개개인의 연차, 월차, 그리고 능력에 따라 부여한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압력을 가한다.
프레시안 : 입사 연차, 그리고 월차에 따라 목표량이 달라진다는 것은 경력이 오래될수록 목표치가 높아진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목표량은 어떻게 주어지나. 그리고 능력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나.
김영희 : 만약 정해져 있는 콜(call)수가 하루 10이라고 하면 10을 다 받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거기에서부터 능력의 차이를 둔다. 10을 다 해내면 잘한다고 평가한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평가하는 식이다. '이 직원은 성실하고 성과를 잘 낸다'. 그러면 이 직원의 목표량은 12가 된다. 그것을 목표로 다시 일을 한다.
프레시안 : 그럼 목표량 10을 못 채운 경우는 어떻게 되나.
김영희 : 예를 들어 10 중 8을 했다고 하면, '이 사람은 8을 해서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평가된다. 그러면 이후 이 사람의 목표치는 10이 된다. 이 10이라는 목표를 위해 죽어라 일해야 한다.
실시간 목표 달성 순위표, 메신저로 공개
프레시안 : 자살한 여고생도 아빠에게 문자로 "나 콜 수 못 채웠다"며 퇴근하기 어렵다고 했다. 목표치를 세워놓고 닦달하는 구조인 듯하다. 거기에 한 발 더 나가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도록 채찍질하고 못 하는 사람은 못하는 것을 더 끌어올리는 식의 맞춤형 목표치를 만드는 듯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 목표치를 정해놓아도 무시하면 되는 게 아닌가.
김영희 : 그게 어렵다. 팀장의 압박이 심하다. 사무실 내 개인 자리 칸막이에는 전날 자신의 달성한 목표량, 그리고 달성해야 하는 목표치가 붙어있다. 이 수치는 매일 업데이트 된다. 게다가 업무 시간 내에는 수시로 팀장이 메신저로 순위표를 보낸다.
프레시안 : 무슨 내용인가.
김영희 : 실시간 순위표다. 목표치 달성률을 퍼센트로 매긴 뒤, 이를 순위로 매긴 순위표다. 여기에는 사람 이름과 그에 따른 목표치, 그리고 달성률 등을 적어놓는다. 한 마디로 더 열심히 일하라는 식이다. 만약 목표치와 달성률이 현저히 차이 나는 직원이 있으면 굳이 빨간색 표시를 하거나 그 사람의 글자(이름)만 크게 해서 보낸다. 그것을 회사메신저로 전체 직원이 모두 공유하는 식이다. 매우 불쾌한 일이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해도 안 받을 수 없다. 공개적으로 망신주기식이기 때문이다.
▲ 김영희 씨가 메신저로 받은 순위표 중 일부.
프레시안 : 팀장은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김영희 : 팀장도 실적에 압박을 느낀다. 개개인의 실적이지만 이것은 팀의 실적이기도 하다. 지역센터별, 그리고 센터 내 팀별로도 실적을 내야 한다. 그러니 개개인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숨진 여고생이 일하던 SAVE팀(해지 방어팀)은 어떤가. 거기도 목표 콜(call)수가 있는가.
김영희 : SAVE팀은 받는 콜(call)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들어온 콜, 즉 해지하려는 민원을 어떻게 마음을 돌려 그대로 유지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명 방어율이라고 한다. 10명의 콜을 받아서 이중 9명의 마음을 돌려 유지를 시켰다고 하면 이 사람의 해지 방어율은 90%다. 반대로 해지등록률은 10%가 된다. SAVE팀은 이런 해지등록률을 목표치를 정해놓고 여기에 도달하도록 압박한다. 그리고 목표치는 아까 말했듯이 개인별, 팀별 맞춤형으로 정해진다.
사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판매하기도 무척 어렵다. 그런데 그런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에 불만을 품고 해지하려는 고객들을 설득해서 다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겠나. 거기다 위에서는 의무적으로 상품을 할당한다. 이것도 틈틈이 팔아야 한다. 이중 삼중고다.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고3 학생이 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불이익 당하는 게 있는가.
김영희 : 목표 해지등록률을 얼마만큼 도달했느냐에 따라 S-A-B-C로 등급 나눠진다. 그리고 이는 월급으로 연결된다. 등급에 따라 차등해서 월급을 준다는 이야기다.
▲ 자살한 홍 씨의 사무실 출입구 앞에 놓인 해지등록률 순위표. 매일 출퇴근할 때, 그리고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이것을 봐야 한다. ⓒ프레시안(허환주)
스트레스로 1년도 못 버티는 현장실습생들
프레시안 : 현장실습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기는 하는가.
김영희 : 이론상으로 교육은 받는다. 고객응대 매뉴얼 외우기나 고객이 어떤 질문을 했을 때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등. 하지만 실전은 없다. 사실 직접 상담사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게 가장 빠르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곧바로 실전에 투입돼 고객과 부딪친다. 그러니 고객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노하우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욕먹으면서 일을 배우라는 식이다.
프레시안 : 일하던 곳에도 고3 현장실습생들이 있었나.
김영희 : 우리 센터에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SAVE팀에서 일을 시키진 않았다. 일반 상담사로 일했다.
프레시안 : 그들은 회사에 잘 적응했나.
김영희 : 아니다. 그 친구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친구들과 단절될 뿐만 아니라, 놀 수도 없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돈은 많이 번다. 공장가서 일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 돈을 받기는 어렵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들에게는 한 달에 130만 원은 많은 돈이다. 그러니 이곳으로 자꾸 들어온다. 하지만 대부분 1년도 못 버티고 퇴사한다. 경쟁 시스템, 그리고 회사의 압박을 버티기 힘들다.
[단독] '노동 착취' 자살 고3, 야근 기록 '제로'의 마법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④] 시간외 근무 없었다는 해명 거짓 가능성 높아
허환주 기자
2017.03.13 17:53:58
"여고생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6시 이후 연장근무, 그리고 부당한 지시(TV 판매 등)나 목표(call수) 할당은 강요하지 않았다." LG유플러스 협력회사 LB휴넷
현장실습생 홍 씨의 죽음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홍 씨가 근무했던 LG유플러스 협력회사 LB휴넷에서 내놓은 해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앞서 홍 씨 아버지는 언론에 홍 씨와 생전 주고받았던 문자를 공개하면서 고인이 6시 이후에도 연장근무를 해왔음을 밝힌 바 있다.
<프레시안>이 홍 씨와 같은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에게 받은 제보 내용을 보면 회사의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 홍 씨가 몸을 던진 저수지. ⓒ프레시안(허환주)
현직 LG유플러스 전주센터 상담사 "구조 자체가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 퇴근 시간이 오후 6시로 돼 있지만 현실여건상 그렇게 퇴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주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구조 자체가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오후 7시까지 남는 이유는 업무 시간 안에 할당 콜(call) 수를 못 채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에는 걸려오는 민원 상담 전화를 받기 바쁘다. 그리고 이러한 상담 전화 관련 할당량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장시간이 소요되는 민원 전화는 추후 전화를 하겠다고 예약을 잡는다. 퇴근시간 이후 업무는 이런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는 게 주를 이룬다. 물론, 이외에도 업무 시간에 하지 못한 민원 처리 업무도 해야 한다."
전주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팀장은 콜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업무처리를 마칠 때까지 남아서 이들 업무가 제대로 진행됐는지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업무는 연장 근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낮에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저녁으로 미뤄서 처리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시스템상 업무시간 외에는 전화업무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작 다른 방식으로 전화 업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이렇게까지 일처리를 하는 이유는 급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할당된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그 비율만큼 급여에서 삭감된다는 것. 그렇기에 업무 시간 외에도 할당된 콜수를 채우기 위해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자발적 근무로 보고 연장근무 수당을 주지 않고 있다.
자살한 홍 씨의 경우, 일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시간외 근무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홍 씨의 근무기록. 이 기록을 보면 홍 씨는 단 한 차례의 시간외 근무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종환 의원실
뒤로 밀린 업무처리, 교육 등은 퇴근 시간 이후에...
그렇다면 업무 시간 내에 왜 할당된 콜수를 채우지 못하는 걸까. A씨는 하루 35~40콜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이는 팀과 개인 근속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상담사의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전주센터에서 근무하는 B씨는 업무 시간 내에 강한 압박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팀장, 실장, 센터장의 PC에서는 실시간으로 상담사 통화시간, 고객대기 시간 및 숫자 등과 관련한 모든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상담사에게는 상담통화 종료 후 후처리란 시간이 있다. 후처리란 말 그대로 고객이 요청한 건 관련, 처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10초만 지나도 팀장에게 지적이 돌아온다. 고객 대기가 있으니 걸려온 전화부터 받으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련 처리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처리가 뒤로 밀리면서 자연히 퇴근시간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는 것. B씨는 업무 시간 이후에는 이렇게 미뤄진 업무 이외에, 교육도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팀장은 자기 팀 실적이나 자기 팀 소속 상담사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업무 시간 이후에 교육을 시킨다"며 "녹음된 자기의 응대 콜을 듣고 스크립트(받아쓰기)를 하도록 한다"며 "이는 저녁 9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A씨도 "오늘 영업 잘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 녹취 내용을 들어보라면서 전달할 때가 많다"며 "그러면 이 녹취 파일을 들으며 어떻게 상담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업무 시간 이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업무시간 3분 전에는 무조건 로그인
▲ 홍 씨가 생전 아빠와 나눈 문자 내용. 이 문자를 보면 홍 씨는 퇴근 시간인 저녁 6시 이후에도 할당된 콜수, 즉 업무시간에 미뤄둔 민원 처리를 위해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업무 시간 외에 추가로 일하는 구조가 고착화 된 배경에는 회사 분위기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B씨는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는 경우는 신규상품 교육, 성희롱 교육 정도로 아주 희박하다"며 "그 외에는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근무시간 외 전화업무, 교육 등을 이유로 추가근무 수당을 신청할 경우 왜 그런 것을 신청하느냐는 지적이 돌아온다는 것.
"LG유플러스 고객센터는 한 달에 한 번 '우리식구만나기'라는 행사가 있다. 그달 MVP, 우수팀 등 시상 및 센터장, 전무 인삿말 등을 하는 행사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오전 8시까지 회사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 행사마저 '오티수당' 신청은 불가능하다. 이번 달은 홍 양 사건으로 취소되었다."
반면, 업무 시간 준수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업무시작 시간 3분 전에는 고객 전산프로그램에 무조건 로그인해야 한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 시간 내에 로그인 안 할 경우, 곧바로 위에서 지적이 들어온다. 또한 고객과의 통화 전 시간, 즉 대기시간이 길면 대기시간이 길다고 피드백이 들어온다. 게다가 하루에 많으면 두 번 가는 휴식시간에도 제지가 들어온다. 한 번 가는데 10분을 넘기면 거기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이마저도 '하루 휴식시간 20분 이상 사용 금지' 지시를 내린 부서도 있다."
B씨는 "몇 년 전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분이 자살하면서 고발성 유서를 남겼지만 개선된 건 극히 드물다"며 "그나마 개선된(시간외 근무 금지) 사항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대책회의는 13일 LB 휴넷 신도림 서부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인 LG유플러스와 해당 업체인 LB휴넷은 고인의 사망 51일째인 오늘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한술 더 떠 '노동자들의 죽음과 업무스트레스는 관련이 없다'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4년 이미 한 노동자가 자살했음에도, 회사의 노동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고, 감정노동에서 비롯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며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당 업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차안에서 번개탄 피우기 전에 쓴 텔레마케터의 고발장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⑤] 2014년에 이어 2017년에도 똑같은 죽음
허환주 기자
2017.03.15 08:11:13
여기 한 통의 진정서를 소개한다. LG유플러스 전주센터 SAVE팀에서 일한 상담사가 노동청에 보내려고 한 진정서다. 일단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노동청에 고발합니다. 내용을 보시고 미래부, 방통위에도 접수 부탁드립니다.
하기 내용은 비단 이 회사뿐 아니라 많은 인터넷 고객센터에 해당될 겁니다. 전주시 덕진구 서노소동 대우빌딩 15~17층에서 근무 중인 LGU+의 고객센터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직원이 퇴직을 하면 퇴직 한 달의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많이 챙길 겁니다. 예를 들어 8월 근무실적급이 이 회사는 10월 급여에 포함되어 들어오는데 8월 말일에 퇴직시 9월에 기본급만 지급해 줄뿐 10월에 전혀 지급된 금액이 없습니다. 퇴직하는 모든 직원이 이렇습니다.
부당한 노동착취 및 수당 미지급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한 번은 노동청에서 설문조사가 나온다고 하니 미리 예상질문과 답변을 다 짜서 직원들 교육도 시키더군요. 해당회사의 정규근무시간은 09~18시입니다. 허나 상담직원들의 평균퇴근시간은 19시30분~20시... 늦게는 22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추가근무사당이 지급되어야 하나 절대 지급하는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과도한 상품판매인데 고객센터에 단순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전화(070인터넷전화), IPTV, 맘카(홈CCTV) 등의 상품 판매를 강요하고 목표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을 하지 못합니다. 목표건수 역시 회사에서 강제로 정한 내용입니다. 입사설명회 당시에는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해준다고 계약서에 써 있으나 이행이 되지 않습니다. 이 내용은 모든 부서에 해당됩니다.
SAVE라는 부서는 고객들한테는 해지부서이나 내부에서는 해지방어부서입니다. 고객은 해지를 희망하나 상담사는 해지를 많이 해줄 경우 윗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습니다. 해지부서는 월~금요일까지만 근무합니다. 토요일까지 출근해서 불필요한 해지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상담사들이 해지를 많이 했을 경우, 토요일에 강제출근을 시키거나 추가근무수당은 역시 지급되지 않습니다.
여긴 고객센터가 아니라 거대한 영업조직일 겁니다. 가입실은 휴대폰이나 070전화(핫라인)을 통해 녹취를 남기지 않고 가입을 시켜도 쉬쉬할 뿐 제재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가입시키고 보자는 거니까요. 심지어 개인 휴대폰으로 통화하여 터무니없는 상품금액이나 내용들을 안내하고 고객은 가입 후 나중에 문제를 삼으려 해도 상담사 쪽은 그런 적 없다 발뺌하면 그만입니다. 위에서도 이런 걸 알면서 일단 가입시켰으니 다 눈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만 급증하는 거구요. 거대한 사기꾼 같습니다.
상담사들 근무시간은 녹취뷰어로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은 채 로그아웃 된 상태로 TM(텔레마케팅)을 진행하니까요. 그래야 근무를 하지 않은 걸로 시스템상 기록이 되어 로그인 시간으로만 임금을 지급해줍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면 고객에게 사기치는 이 집단의 부조리가 더 많을 겁니다. 철저한 조사와 담당자 처벌, 진상규명 부탁드립니다.
LGU+는 전주센터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센터와 부산에 있는 센터, 이 세 곳을 모두 조사하여야 합니다. 위 내용이 세 곳의 센터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내용이니까요.
계속해서 반복되는 죽음
▲ 숨진 이 씨가 남긴 유서.
이 내용만 보더라도 회사의 실적압박, 그리고 그에 따른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강도가 상담사를 괴롭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A4 한 장 분량의 이 진정서를 당사자는 노동부에 직접 제출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LG유플러스 전주센터 'SAVE'팀에서 근무하던 이모 씨(30). 이 글을 쓴 뒤 자기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2014년 10월의 일이다.
이 씨는 회사 업무에 괴로워했다. 그는 전주센터에서 일한 지 3년6개월 만에 팀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죽어라 일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도 단 한 번 실수로 모든 게 끝나는 곳이 상담센터였다. 자살하기 6개여 월 전, 소위 '진상' 고객을 응대하다 말실수를 했다. 장장 6시간 전화통화 끝에 나온 말실수였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 이 씨는 '진상' 고객에게 사과하기 위해 고객 거주지까지 찾아갔다. 대구였다. 하지만 고객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대신 센터에 이 씨의 해고를 요구했다.
결국, 센터는 3개월 뒤 복귀시킨다며 이 씨를 해고했다. 하지만 정작 복직은 6개월 뒤에나 이뤄졌다. 다시 고객상담을 한다는 게 부담이었을까. 아니면 회사 압박을 견디는 게 어려워서였을까. 이 씨는 복귀한 지 일주일 만에 '노동청에 고발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 씨의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LG유플러스 측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도 "언론에 보도된 유언장 내용에 이 씨의 업무와 무관한 내용이 있는 등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개선토록 권고하겠다"며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복지 향상을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아직도 울음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실제 노동부에서는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 상담원 자살사건 관련, 죽은 이 씨 아버지로부터 진정서를 접수받은 뒤, 부당 노동행위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노동부는 관련 사건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 내렸다.
그래서일까. 이 씨의 죽음이 있은 지 정확히 2년 3개월 만에 똑같은 센터, 그리고 똑같은 부서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 숨진 이 씨, 그리고 여고생 홍 씨가 근무하던 전주시 덕진구 서노소동 대우빌딩 15~17층. ⓒ프레시안(허환주)
이 씨의 아버지 이종민 씨는 여고생 홍 씨의 죽음을 두고 자기 아들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들이 죽었을 때, 문제점이 고쳐졌다면 홍 씨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종민 씨는 "그들(회사)은 지금도 발 뻗고 자겠지만 나는 아직도 울음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아들이 회사에 다닐 때, 입버릇처럼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들에게 '어느 직장 가면 다른 게 있느냐'며 '견뎌야 한다'고 매일 타일렀다. 그러면 아들이 내게 '속 편한 소리한다'면서 빈정거리기도 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계속 회사에 다니라고만 했다.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 그만두라고 했을텐데…. 아마 죽은 여고생 부모도 똑같았을 것이다."
이종민 씨는 예전 아들과 함께 살던 전북 익산 집을 떠나 충남 홍성으로 이사했다. 아들이 있던 도시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직장도 그만두고 1년 동안 방황했다.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얼마 전부터 버스운전사를 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심정을 누가 헤아려줄까. 이 씨는 조만간 홍 씨의 아버지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학생기록부 "분위기 좋아", 13일 후 저수지에 몸 던져
[어느 여고생의 자살 ⑥] 고3 실습생이 자살할 때까지 학교와 교육청은 무엇을 했나
허환주 기자
2017.03.17 08:19:11
학생 건강 및 안전 사항에 특이점 없음. 근로시간 및 임금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음. 동료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함. 학생 적성도 잘 맞아 향후 취업연계 가능성이 있어보임. 실습 간에 손님응대에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이나,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함.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를 면담한 담임선생이 홍 씨를 평가한 내용이다. 담임선생은 홍 씨 관련 '산업체 적응도, 현장실습 만족도, 업무 파악 정도' 등을 모두 10점 만점 줬다.
뿐만 아니라 상중하로 나눠 평가하는 '건강상태', '근로시간과 임금', '복지와 후생문제', '취업으로 성장 가능성' 등도 모두 '상'으로 평가했다. 홍 씨가 이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은 12월 21일에 진행한 면담 결과였다.
해를 넘겨 다시 1월 9일에 진행된 면담에서도 결과는 동일했다. 건강상태 등에서 '상'을 줬고, 산업체 적응도 등에서도 10점 만점을 부여했다. 평가 내용도 거의 흡사했다.
학생 건강 및 안전사항 특이점 없음. 근로시간 및 임금은 표준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음. 업무스트레스가 약간 있으나, 극복하려 하며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함. 팀내 분위기가 좋아, 동료들과 개인적이 만남이 많다고 함.
하지만 홍 씨는 이 면담, 즉 순회 지도를 받은 지 13일만에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업무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여고생을 저수지로 떠밀었다.
▲ 1월 9일, 담임교사가 홍 씨를 만난 뒤 작성한 순회지도결과 복명서
각각 다른 계약서, 그리고 다른 월급
확인된 바로 홍 씨에게는 각각 다른 월급액을 명시한 두 개의 계약서가 존재했다. 홍 씨가 실습 나가기 전인 2016년 9월 8일 체결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보면 월급은 160만5000원이지만, 6일 뒤 실습업체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1개월(113만5000원), 2개월(123만5000원), 3개월(128만5000원), 4~6개월(133만5000원), 7개월 차 이후(134만5000원) 등으로 명시돼 있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학생, 업체, 그리고 학교 삼자간 협약을 맺고 있다. 실습학생의 업무조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학교에서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반면 근로계약서는 학교를 배제하고 학생과 업체 간 일대일로 계약을 맺는다.
실습학생을 대상으로하는 근로계약서는 2012년 4월 현장실습생 노동조건 보호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 도입됐다. 사실상 취업과 연계돼 현장실습이 이루어지는 경우, 표준협약과 동시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 이는 현장실습생이 사업장의 다른 노동자와 동일하게 일할 경우, 현장실습생에게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근로계약이 표준협약보다 불리하게 맺어지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홍 씨의 경우가 그렇다.
일선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회사 사정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 등 단서 조항을 넣어 표준협약서를 무력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표준협약서보다 후퇴한 근로계약서를 적용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표준협약서에는 월급 160만 원이 명시돼 있으나 근로계약서에는 120만 원을 주기로 했으니 120만 원을 준다는 식이다. 그나마 홍 씨는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홍 씨 월급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면 1개월째에는 86만4520원, 2개월째에는 116만362원, 3개월째에는 127만2900원, 4개월째에는 137만1020원을 받았다.
물론, 홍 씨의 경우, 법률상 표준협약서대로 회사는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여러 계약이 있을 경우, 노동자에게 유리한 계약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신분으로 소송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노동법이나 현장실습표준협약 등을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생이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는 매월 160만5000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 반면, 근로계약서에는 1개월(113만5000원), 2개월(123만5000원), 3개월(128만5000원), 4~6개월(133만5000원), 7개월 차 이후(134만5000원) 등으로 명시돼 있다.
실습학생이 자살할 때까지 학교와 교육청은 무엇을 했나
결국, 이런 문제점은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홍 씨 관련해서 학교와 교육청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확인된 바로는 담임교사는 홍 씨가 일하던 업무현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업체에서 이를 꺼린다는 이유였다. 홍 씨와의 면담은 모두 작업 현장 이외의 공간에서 진행됐다. 그나마도 홍 씨가 근무한 5개월 동안 단 두 차례만 진행됐다.
면담에서 홍 씨는 업무적 스트레스가 있었음을 밝혔으나 학교 측은 이를 직장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가벼운 스트레스 정도로만 생각하며 넘어갔다. 심지어 홍 씨가 LG유플러스 내 '욕받이 팀'으로 불리는'SAVE'팀에서 일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홍 씨의 죽음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그제야 뒤늦게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지난 8일 정신건강을 해치는 사업체에 학생이 실습 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기로 했다. 이와 함께 부당 노동행위 전력이 있는 업체를 실습금지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아울러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에 대한 관리와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안전과 노동, 인권 교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홍 씨가 죽은 지 40여 일만에 여론에 등 떠밀려 대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 학교와 함께 실습학생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교육청이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 홍 씨가 자살한 저수지. 홍 씨의 시신은 자살한 다음날에야 저수지 내 팔각정에서 발견됐다. ⓒ프레시안(허환주)
교육청 "SAVE팀 배치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홍 씨가 애견학과임에도 전공과 상관없는 상담사로 간 것은 학생이 희망해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실습은 학교 재량권에 맡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역의 한계로 아이들이 취업할 곳이 그리 많지 않다"며 "그래서 학생이 취업에 나가고자 할 경우, 최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현장 순회면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담임선생이 전화를 수시로 했고 문자도 자주했다"면서 대면 조사 때 작업현장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업체가 불편해하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3년 전 똑같은 업체, 그리고 부서에서 자살한 곳에 홍 씨가 배치된 것을 두고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부분이라 알지 못했다. 좀더 관심을 가졌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홍 씨의 사례를 보면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는 학교 입장에서는 취업률을 위해, 그리고 업체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을 비롯한 누구도 현장실습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해당 업체측은 "이 같은 일이 생겨 안타깝고, 진행 중인 경찰 조사를 통해 원인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협약서에는 수습 해제 후 받게 되는 급여가 기록돼 오해가 발생한 것으로, 수습기간 급여는 일반 신입사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홍양의 급여는 근무 이력과 기준에 따라 정확히 지급됐다"고 해명했다.
정부·학교가 고3 실습생을 죽음 앞에 방치했다
[어느 여고생의 죽음 ⑦·끝] '현장실습제도'의 실태와 개선 방안
허환주 기자
2017.03.18 11:01:40
"오늘 저녁 친구들한테 '취업 턱'을 낼 테니 내 통장에서 10만 원 찾아놓아요."
자기가 돈을 버니 이제 식당일 그만두고 엄마는 쉬라던 아들이었다. 고3인 정연채(가명) 씨는 2016년 12월 1일부로 여수산단 대림산업 협력업체인 금양산업개발에 수습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 씨는 자기 페이스북에 '역시 일하는 게 꿀잼'이라는 글을 남길 만큼 회사 일을 즐거워했다. 출근 닷새째 날에 남긴 글이었다. 하지만 일한 지 보름이 지나면서부터 달라졌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하기 시작했다. 과중한 업무지시, 그리고 상급자의 폭언 등이 그를 괴롭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사회생활은 원래 힘들다"며 "참고 일하라"고 다그쳤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이 아버지 가슴에 못으로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월 25일 자기가 일하던 자재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을 맸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아들 주검을 마주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열했다. 두 달 만에 마주한 아들 손가락 지문은 다 닳아 없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일한 지 두 달 만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가 일하던 직장에서 항의성으로 목을 매고 자살했을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이 이어졌다.
아들이 힘들다고 했을 때, 참고 일하라고 했던 아버지의 가슴에는 후회만이 남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죽음, 또 죽음....끊이지 않는 현장 실습생들의 자살
고3 정 씨가 죽은 날은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가명) 씨가 죽은 지 사흘 지난날이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는 법. 둘 다 동갑내기, 그리고 졸업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숨진 정 씨도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지문이 다 닳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해야 했다. 과중한 업무지시, 그리고 상급자의 폭언이 정 씨를 힘들게 했다. 고3에 불과한 이들은 인격 모욕을 감내하면서 직장 내 가장 힘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할 때 취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홍 씨나 정 씨의 사례가 특수한 경우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NO'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여기 사례들이 있다.
군포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A씨는 2015년 12월부터 경기도 성남의 외식업체 조리부에서 일했다. 양식부 막내로 수프를 끓이는 일을 담당했다. 업무 스케줄대로라면 '오전 11시 출근'이지만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퇴근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11시 넘어 퇴근했다.
한 번은 수프를 발에 쏟아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산재는 꿈도 못 꿨다. 치료비는 본인 부담이었다. 다쳤지만 쉴 수도 없었다. 발에 수포가 생겼지만 주방용 장화를 신고 평소처럼 일해야 했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도 그를 힘들게 했다. 더는 견디기 못했다.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2016년 5월의 일이었다. 그래도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출근해야 했다. 그러던 중 상사가 오전 9시까지 출근하라는데 1시간 지각했다. 상사는 A씨를 크게 질타했다. 말이 지각이었지 근로계약서상으로는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 A씨였다.
호되게 혼난 그날 오후, A씨는 혼자 매장을 나갔다. 그 뒤 다음날 새벽, A씨가 다닌 외식업체의 식료품 공장 앞 골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B씨가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 학생 C씨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C씨는 지금까지 뇌사상태다.
'돈벌이 취업'으로 전락한 현장 실습제도
현장실습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통계자료에도 드러난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출신 취업률은 2012년 41.5%에서 2015년 62.6%로 증가한 반면,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
특성화고 취업률은 매년 늘어 2015년 최고점을 찍었으나, 고용보험 보장 일자리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인 조사 자료도 있다. 2012년 2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가 전국 특성화고 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문계학교 산업체 파견 실습학생 설문조사'를 보면 현장실습생 중 19.6%가 2교대, 3교대 등 불규칙한 근무환경을 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도 일반 노동자보다 많았다. 주간 노동시간은 49.6시간으로 노동법의 '주 40시간'보다 10시간 정도 많았다. 야간 노동시간은 월 26.6시간, 휴일 노동시간은 월 11시간이었다. 잔업 시간은 월평균 25.1시간이었고 일일 노동시간은 월평균 9.2시간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습생 30% 정도가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하고 있으며 40%가 잔업을 하고 있었다.
또한 실습생 중 18.3%가 폭언을, 5.8%가 폭행을, 3.8%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5%의 실습생은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전 교육으로 산재 예방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54.9%, 노동법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38.8%, 성희롱 방지 교육은 34.6%가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디자인 장보화
취업률에 목맨 교육계, 관리·감독은 뒷전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특성화고 지원 정책이 취업률 올리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사업 대상은 '취업률 45.5% 이상인 학교'로 제한돼 있다. 한마디로 취업률이 45.5% 이상이 안 될 경우,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주목할 점은 이 취업률은 말 그대로 '취업률'만 본다는 점이다. 학생이 실습하는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 노동조건 등은 따지지 않는다.
중기청의 특성화고 지원액은 학교 1곳당 1억7000만 원이다. 일선 학교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다.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교육부도 중기청과 결을 같이 한다. 취업률을 달성하면 재정지원을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면서 취업률이 미미하거나 일정 규모 이하인 특성화고는 종합고(인문계와 전문계가 같이 있는 학교)에 통폐합을 권고하고, 취업률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렇다 보니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의 전공 연관성, 업체의 노동조건 등을 살펴보기 보다는 취업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실정이다. 애견학과였던 홍 씨가 상담사로 취업한 이유기도 하다.
학교 및 교육청, 그리고 노동부의 관리·감독 미흡도 주요 원인이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이 일하는 회사에 현장실습생 교육프로그램 관련, 적정한 노동조건을 요구하지 못한다. 그런 요구를 할 경우, 이후 업체에서 학교 측에 취업 학생을 요청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홍 씨 업무(해지방어 업무) 관련, "회사의 자율에 맡겼다"고 말한 이유다.
뿐만 아니라 현 구조상으로는 실습학생을 관리·감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각 학교당 취업지원 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결국 취업나간 학생을 관리하는 일은 담임선생이 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장학사 세 명이 전북 지역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더구나 학교 관계자가 실습학생의 업무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업체는 학교 관계자가 작업현장에 오는 것을 간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극도로 꺼린다. 그렇다 보니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현장 면담도 전화 등 요식행위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전교조 실업위원회의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실습 중 교사가 사업장을 방문했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학생은 56명(53.8%)인 반면, '아니오'라고 답한 학생은 47명(45.2%)이나 됐다.
그나마도 사업장 방문에서 교사에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6명(8.3%)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학생은 50명(91.7%)이나 됐다. 홍 씨도 담임교사와의 면담에서 업무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을 뿐, 이렇다 할 애로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디자인 장보화
"MB정부가 지금의 문제 부활시켰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오랜 시간 현장실습 문제를 다뤄온 하인호 전 인천비즈니스고 교사는 지금의 문제를 두고 현장실습이 교육이 아닌 취업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사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실습을 나갈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다"며 "업체가 실습생을 받아 가르칠 구조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 교사는 "여건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받으니 형식은 실습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조기취업"이라며 "결국, 이런 구조가 학생들을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사는 "그나마 이런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2006년 '현장실습정상화방안'을 통해 현장실습은 사실상 폐지됐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산업체의 요구라는 이유로 체계적인 논의와 준비과정도 없이 2008년 학교 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원래 상태로, 즉 현장실습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 교사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장실습을 중단하고 정부와 산업체, 노동계, 그리고 교육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 교사는 "현장실습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워낙 오랜 시간 왜곡돼 사용된 게 현장실습이다. 취업과 실습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