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중국 쇄국정책'? 망국의 첩경이다
'脫중국 쇄국정책'? 망국의 첩경이다

1.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트럼프의 당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취임식을 베이루트에서 지켜보았다. 혹여나 했건만, 역시나 였다. 昏庸無道(혼용무도)한 자가 세계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선거 내내 거의 모든 매체들이 트럼프 반대 진영에 섰던 것을 상기하노라면 놀라운 결과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과점제는 물론이요, 현대사회의 제4부라고 하는 주류언론 '빅브라더'까지 탄핵당한 것이다. 몰락한 백인 노동자의 삐뚤어진, 비틀린 계급의식이 '교조적 민주주의', '자유주의 근본주의'를 갈아엎었다. 탈냉전 이래 네오리버럴과 네오콘이 합작하던 세계화의 질주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영국 민중(people)들이 글로벌 시민(citizen)들을 누르고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과도 맥이 통하는 흐름이다. 내 정치적 신념과는 다른 방향일망정, '혁명'에 준하는 사태라는 판단을 거두기가 힘들다.
신촌에서 베이루트까지, 언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IMF 사태와 더불어 대학생이 되었다. 사회학 입문 수업, <세계화의 덫>을 읽고 보고서를 써내는 것이 새내기 첫 중간고사였다. 두고두고 깊은 영향을 미친 책이지 싶다. 줄곧 반(反)세계화 운동에 가담해왔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WTO 반대 시위를 지켜보며 밀레니엄을 맞은 것은 2000년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를 구호로 내세운 세계사회포럼을 뭄바이에서 구경한 것은 2004년이었다. 2011년 LA에서는 99% 시위에도 참여했다. 헌데 그 반세계화 운동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뜻밖의 모습으로 영미식 세계화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영국은 유럽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미국은 보호무역과 반(反)이민을 내세워 담을 높게 쌓는다. 결자해지라도 되는 양, 세계화의 선봉대가 탈세계화의 기수로 표변했다.
과연 말이 많다. 소란하다. 현란하다. 대가들도 한두 마디씩 보탠다. 이안 부루마가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냈다. 꽤 좋아하는 사학자였다. 하지만 칼럼은 실망스러웠다. 1945년을 원년(Year Zero)으로 삼는 전후질서,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종언'이라고 논평했다. 얼핏, 언뜻, 옳은 말인 양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럴듯하지만 그러하지 않은, 似而非(사이비) 진술이다. 영국과 미국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전후 세계에 전파해 왔던가?
지난 1년 내가 두 눈으로, 두 발로 견문했던 히말라야(미얀마)부터 지중해(모로코)까지, 영미는 '숨은 신'으로 타지와 타국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처처에서 자유주의를 척살했다. 체제 전환과 정권 전복의 사례가 숱하게 쌓여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백면서생의 칠판에서나 존재하는 '가짜 뉴스'에 가깝다. 인도양을 끼고 살아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기층의 실감에 기대어 말하자면, '영미식 조공체제의 종언'이라고 하는 편이 한층 실상에 근접할 것이다.

▲ 베이루트 시내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이병한
천주교, 개신교, 이슬람이 공생하고 히잡과 미니스커트가 공존하는 레바논에서 손에 든 책으로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가 있다. 1980년대 총기 넘치던 20대 후반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중동 견문기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열의 기저에 깔린 영미의 패권적 세계질서에 대한 직관이 번뜩거린다. 그러나 탈냉전과 무섭게 그의 명민하던 지성은 부드럽게, 유연하게, 무디어져갔다. 정보화와 세계화를 찬양하는 설교사이자 전도사가 되었다. 부역의 대가는 달콤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라는 근사한 명함을 들고 전 세계를 주유하며 펜대를 굴리며 살게 되었다. 그 소신으로, 소산으로 발간한 책이 <세계는 평평하다>이다. 1%의 글로벌 엘리트들에게 평탄한 세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2005년 출간 즉시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불과 3년 후, 미국과 유럽이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다. 1980년대의 남미, 1990년대의 동아시아, 2000년대의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이 경험했던 울퉁불퉁 '세계화의 덫'이 부메랑이 되어 구미의 심장부를 강타한 것이다. 영어로는 블로우백(Blow Back), 역풍이 적합할 것이다. 사자성어로는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어울릴듯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일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다.
소 뒷걸음으로 쥐 잡는 격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세계는 정녕 평평해졌다. 선진국과 후진국, 제1세계와 제3세계가 극적으로 평준화되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작자의 면모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지성은 빈곤하고 품성은 천박한 반면으로 선전과 선동에는 능란하다. 몰지각하고, 몰상식하며, 몰염치한 미디어형 정치인의 표본이다. 미국이 음양으로 지원해왔던 '제3세계형 지도자'와도 흡사한 것도 같다.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파키스탄에서, 이란에서, 터키에서, 이집트에서, 이라크에서, 칠레에서 미국이 후원해왔던 개발독재형 지도자의 수준에 근사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인들도 지구촌의 세계주민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 예외주의 또한 더 이상 통용이 되지 않는다. 평준화된 세계, 미국 우선주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다. 세계시장과 세계평화의 공공재를 제공하던 패권 국가이기를 그친 것이다. 세계전도를 펼쳐놓고 지구본을 돌리며 천하를 먼저 근심하던 제국의 태도를 거두어버렸다. 하여 자국의 시장을 개방하여 '반공주의 조공국'들의 발전을 견인했던 왕년의 품 넓었던 대미제국은 깨끗하게 잊어도 좋겠다. 그저 국익을 으뜸으로 치는 고만고만한 '보통국가'로 강등한 것이다. 여럿 가운데 하나(one of them), 흔하고 평범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성조기는 그만 좀 흔들고, 미국 유학도 줄이는 편이 낫겠다. 재조지은(再造之恩)에 감복만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도 흘러버렸다.
그러나 오판은 삼가기로 하자. 대서양 사이가 벌어지고 태평양이 멀어진다고 해서, 탈세계화 또한 正名(정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이 일방으로 돌출되었던 세계화의 특정 단계가 끝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유럽식 문명화와 20세기 미국식 세계화가 지구촌 곳곳에서 파면되고 있을 따름이다. 즉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은 '구미적 세계화'이지 세계화 전체가 아니다. 커녕 '탈서구적 세계화'가 갈수록 면면하게, 도저하게 개창되고 있다. 하여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수사 또한 진부할뿐더러 정곡을 짚지 못한 말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더더욱 또렷하게 '다른 백년'으로, '다른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른 세계화의 최전선으로 '중동'이라 불리던 곳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미의 강점과 강압으로 가장 자잘하게 쪼개졌던 서아시아 대분열체제에도 새 질서가 움트고 있다.
2. 역세계화(Counter-Globaliation)
그 시금석이 시리아 전쟁이었다. 평화협상 단계에 들어섰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러시아이다. 무장투쟁을 방기한 반정부세력을 야당으로 인정하는 중재 역할을 맡아 교섭을 주도하고 있다. 정권 전복과 체제전환만이 유일선이라며 내전을 지속시켰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렸다.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선의의 전쟁'을 지속하기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다는 입장이 주효한 것이다. 그 냉엄한 판단 아래 연립정권 수립, 헌법개정, 신헌법에 의한 총선 실시, 신정권 탄생이라는 국가 재건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로써 출범하는 장차의 시리아는 20세기의 시리아와는 퍽이나 다른 모습일 것 같다. 지난 세기 인공국가 시리아를 주조해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필두로 이란과 터키가 협조한다. 영국, 프랑스,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 이란, 터키가 신중동질서 재편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일백년만의 일대 반전이다.
과연 시리아 평화협상의 장소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스타나였다. 카자흐스탄의 수도이다. 왕년이라면 유럽의 어드메였을 것이다. 파리나 제네바가 단골 도시였다. 구미(歐美, 유메리카)적 질서에서 구아(歐亞, 유라시아)적 질서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심통이 난 구미 언론들은 '알레포 학살'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연신 발신했다. 혹여 내가 서구 매체만 읽을 수 있었다면, 그 '가짜 뉴스'에 깜빡 속아 넘어 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와 이란, 터키 언론도 참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알레포 해방'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했다. 아무래도 '학살'과 '해방' 사이에, 회색빛 진실이 어렴풋 자리할 것이다.
'해방'이라는 수사를 일방으로 수긍하지 않지만, 구미의 '인도주의적 제국주의'가 탈냉전 이후 중동의 대혼란을 야기했다는 러시아-터키-이란 언론의 논조에는 수긍하는 편이다. 이슬람세계의 움마를 해체시키고 외부세력이 주입한 작위적 질서, 국가간 체제(Made in the West)가 근원적 병통이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를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최종 도달지라고 주장하는 유사역사학의 가짜 역사관(=역사의 종언)이 거듭 실책을 반복했다. 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부터 중동의 시라크(시리아-이라크)를 지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까지 도처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체제전복에는 열성이건만, 정작 수습에는 뒷짐이다. 탓에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카불에서 기념하려 했던 견문 2년차 계획도 틀어지고 말았다. 천 년 전 '아랍의 장안'이었던 바그다드를 가보지 못한 것 또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이 심은 '민주주의 괴뢰정부'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겨우 수도만을 간신히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카불 밖 광활한 산악 지대는 여전히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다. 아니 갈수록 세력이 더 강성해지고 있다. 여기서도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나라가 러시아이다. 탈레반의 후견 역할을 하는 파키스탄에 접근한다. 파키스탄과 돈독한 중국도 협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서쪽에 자리한 이란도 동참시키고 있다. 러시아-중국-파키스탄-이란이 협력하여 카불 정권과 탈레반 간 중재와 평화 협상을 진척시키고 있는 것이다. 눈썰미가 있는 이라면, 이 국가들이 공히 SCO 참여국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NATO 공습으로 너덜너덜해진 아프가니스탄을 SCO가 재건하고 있다.
재차 시리아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던 아스타나를 상기해 보자. 그곳은 2013년 시진핑이 일대일로 구상을 처음 발표한 장소이기도 하다. 과연 시리아가 재건되면 SCO에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시리아가 안정되면 각종 인프라 사업을 주도함으로써 다마스쿠스를 중동과 유라시아를 통합하는 일대일로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도 입안되었다. 군사 외교적으로는 SCO, 경제와 문화로는 일대일로와 접속하는 신중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를 마주보고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지난 백년과의 급진적인 결별이다.
혹자는 냉소적으로 혹평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러시아, 중국, 터키, 이란 등 주도국의 면모만 달라질 뿐 강대국 정치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첫째, 더 이상 20세기형 식민지가 아니다. 둘째, 구미식 분할지배를 가동시키는 것도 아니다. 촘촘하게 연결시키고 통 크게 통합시킨다. 서아시아(및 북아프리카) 대분열체제의 기원이 되었던 사이코스-피코 협정 백년 만에 대통합체제, 대공존체제의 맹아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적폐의 청산까지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딱한 사정은 중동의 대반전과 역세계화의 풍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작년 말 푸틴이 일본을 방문했다. 12월 16일 기자회견에서는 중동 신질서의 방침을 소상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기껏 러시아와 일본 간 북방영토문제만이 조명되었다. 푸틴은 현 시기 유라시아 지정학의 최고봉에 서 있는 인물이다. 모스크바에서 유라시아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아라비아와 홋카이도를 한 눈으로 조감한다. 그 폭넓은 시야 안에서 극동과 중동을 동시에 사고하며 수를 두는 것이다. 그의 육성으로 직접 밝혔던 유라시아 구상을 소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진보언론도 보수언론도 북방영토문제만 치중했던 일본 언론 베껴 쓰기에 급급했다. 재차 정보 습득 경로의 편향,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과 정보의 속국 상태가 여전하다. 부디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 유라시아 중추 문명권의 보도를 참조하면서 세계의 변화를 다기하게 살피기를 간곡하게 권한장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며, 읽는 만큼 아는 법이다. 다언어간 크로스체크가 팩트체크의 기본이다.
하나만 일러두자. ECO라는 것도 있다. 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의 약칭이다. 이란의 페르시아어로는 سازمان همکاری اقتصادی, 파키스탄의 우르드어로는 اقتصادی تعاون تنظیم, 터키어로는 Ekonomik İşbirliği Teşkilatı라고 쓴다. 1985년 테헤란에서 발족되었다. 이란과 터키, 파키스탄이 원년 멤버이다. 공히 이슬람제국의 후예들임을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각기 페르시아와 오스만, 무굴제국의 후신임을 자처한다. 이들이 이슬람세계의 재건과 쇄신을 위하여 30년 넘게 뜻을 모아온 것이다. EU에 필적하는 경제공동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한결 민주적인 국제기구를 도모한다. 문화부는 이란에, 경제부는 터키에, 과학부는 파키스탄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응당 삼국연합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터키를 통해서는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이란을 통해서는 중앙아시아로, 파키스탄을 통해서는 동남아시아까지 연결된다. 지난 3월 1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는 유라시아 10개국이 참여했다. 올해의 열쇠말로는 이슬람사상의 근간이 되는 '공정'을 내세웠다. 실제로 ECO 외에도 이슬람협력기구에 포함된 60개가 넘는 국가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지역협력체가 가동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으로 분열되지 않았던 무슬림공동체, 움마가 소생하고 있는 것이다.
3. 신세계화(New-Globalization)
2015년 8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두아라 교수를 재회한 것은 2016년 4월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에서였다. 석양이 유독 아름다운 콜롬보에서 인도양세계의 해양도시 연결망을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린 것이다. 콜롬보는 나로서도 각별한 장소이다. 박사논문의 한 챕터였던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본부가 자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더 오래 전, '실론'이라고 불리었을 때 이곳을 방문한 이들도 범상치가 않다. 1411년 북쪽에서 정화가 내려왔다. 그의 대원정선이 정박했던 갈레항에는 기념비도 세워두었다. 한문과 타밀어, 페르시아어로 태평천하를 다짐했다. 정화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서쪽에서 온 반가운 손님으로는 이븐 바투타를 꼽을 수 있다. 신밧드가 발견했다는 전설의 보물섬이 바로 이곳 스리랑카였다.

▲ 갈레항의 정화 대원정 기념비. ⓒ이병한
회의 참가자들의 면모도 다종다양했다. 자카르타부터 몰디브, 나이로비까지 인도양을 접하는 아시아-아프리카 연안도시 지식인들이 집결했다. 장소가 다시금 의미심장하다. 벵골만과 아라비아해로 구성된 인도양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인도양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물류가 활달한 바다이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찬 항구가 콜롬보항이기도 하다. 인도의 뭄바이항을 제친 것이 2013년이라고 한다. 여기에 함반토타 항구까지 건설이 한창이다.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되었다. 함반토타가 광저우와 자매도시를 맺은 것이 2007년이라고 한다. 인도양세계와 중화세계를 접속시키고 있다. 광동-홍콩-마카오를 묶는 남중국을 남아시아와 결합시키고 있다. 동아시아의 제조품이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까지 판매되는 중간지 역할을 맡게 된다. 나아가 콜롬보를 남아시아의 국제금융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한다. 동북아의 상하이, 동남아의 싱가포르, 중동의 두바이를 모델로 삼고 있다.

▲ 콜롬보의 함반토타 항구. ⓒ이병한
바닷길만 활짝 열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5월에 방문한 네팔에서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험준한 장벽이었던 히말라야에도 어마어마한 길이의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중국의 동부와 연결되었던 티베트의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아대륙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범아시아적 연결망'의 구축이 아닐 수 없다. 해양의 스리랑카도 내륙의 네팔도 마다할 이유가 크지 않다. 압도적인 대국 인도의 곁에서 살아야 하는 소국의 숙명을 안고 있는 처지이다. 역외 대국, 중국과의 연결망을 통해 남아시아 특유의 비대칭성을 교정하는 세력균형을 취하고 있다.

▲ 네팔과 티베트를 잇는 국경지대의 다리. ⓒ이병한
싱가포르에서 만난 또 다른 인도계 지식인으로 키쇼어 마부바니가 있었다. 그 분의 소개로 델리에서 만난 이가 샤시 타루르였다. 이번에는 그의 권유로 오만의 무스캇을 방문해 보았다. 오만에서 대사를 역임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동남아-인도-중동으로 이어지는 인디안 디아스포라 연결망의 혜택을 입은 셈이다. 무스캇은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다. 여지껏 가장 영롱한 월출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한낮의 혹서가 지나고 떠오르는 달빛의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왜 무슬림들이 유독 달을 사랑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달을 노래하기를 즐겨했던 대당제국의 시성 이백은 필히 아랍 출신이었을 것이다.
저 달빛 너머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과 인도의 구자라트가 지척이었다. 서인도와 아라비아반도가 이웃지간임이 확연하다. '무스캇의 보석'이라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 것은 2010년이다. 아라비아해를 오갔던 전통적인 항해선을 복원한 것이다. 그 복원 사업의 주역이 인도의 케랄라 출신 뱃사람들이었음이 흥미롭다. 석유자본에 힘입어 급속한 현대화가 진척된 오만에 견주어 케랄라에는 여전히 옛 방식으로 어선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9세기 이래 천 년 간 무스캇과 케랄라, 스리랑카를 거쳐 싱가포르까지 누볐던 배라고 한다. 인도양세계의 귀환을, 구세계의 재건을 상징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누가 21세기를 '태평양의 세기'라고 했던가. 대서양의 세기(19세기)와 태평양의 세기(20세기)를 지나 지난 2천년 호모 사피엔스의 물류망과 문류망의 중심이었던 인도양의 세기가 재귀하고 있다 하겠다.

▲ 무스캇에서 복원된 인도양 항해선. ⓒ이병한
물론 태평양도 마냥 한적하지만은 않다. '다른 태평양'이 꿈틀거린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거들었던 '환태평양'(TPP)은 트럼프의 취임과 함께 수장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자진 철수에도 태평양은 유장히 전진한다. 트럼프 당선 직후 APEC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가 페루의 수도 리마였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성토하고 자유무역의 수호를 다짐하는 회합의 장이 되었다. 특히 중국이 태평양을 공유하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 자유무역을 선도해가는 책임대국 역할을 자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세계의 개혁개방을 주도해가겠다는 뜻이다.
리마에서는 페루와 칠레가 앞 다투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RECP에는 아세안 10개국에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은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참여하고 있다. RECP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기구라는 오해가 상당하다. 미/일의 TPP와 중국의 RECP를 대비시키는 '가짜 뉴스'가 범람한다. 팩트체크를 하노라면 전혀 그러하지 않다. RECP의 허브는 아세안이다. 중국과 인도, 일본과 호주를 바퀴살로 엮는다. 그 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최대국가 인도네시아가 견인하고 있다. 2015년 4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지식인으로 라이잘 쿠크마가 있었다. '인도태평양' 구상을 제출했던 인물이다. 인도양과 태평양 두 바다를 잇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국가로서 인도네시아를 자리매김했다. 2년 사이 더욱 진일보했다. 인도태평양 너머 아메리카까지 장착시켜, 범태평양 구상으로 진화한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슬람을 배타하지도 않는 '다른 환태평양'이다. 과연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자 인도태평양에 자리한 인도네시아의 위치와 위상이 절묘하다.
대반전의 물결은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도 목도할 수 있었다. 2016년 연말, 성탄절 전후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을 미국과의 특수 관계로만 접근하는 독법 또한 관성적이다. 변화의 지표는 통계 수치에서 나온다. 무역과 투자에서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이 확연하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과의 연계가 갈수록 역력하다. 일대일로의 바람이 예루살렘까지 불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고속철도망이, 홍해와 사해를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허브로, 요르단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가교국가로 이스라엘을 전변시키는 것이다.
오프라인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온라인 비단길, 디지털 실크로드에서도 이스라엘의 역할이 다대하다. 산업과 상업을 온라인으로 결합시키는 중국의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 '인터넷+'의 10년 계획에 이스라엘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보산업과 중국의 인프라산업을 결합시킴으로써 서유라시아 연결망을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스라엘 또한 AIIB에 가입했음이다. 최대 적성국 이란도 반대하지 않았음이 인상적이다. 중국이 만든 플랫폼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이슬람 간 우회적 접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恒心(항심) 앞에 恒産(항산)이 있다. 구미와 일방으로 통했던 이스라엘의 연결망이 아랍과 아시아와 접속된다면, 항심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고 하겠다. 본디 예루살렘부터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이 공히 모시는 일지삼교(一地三敎)의 성소가 아니던가. 중동의 외딴섬으로 서아시아 대분열체제의 화근 노릇을 했던 이스라엘이 유라시아 대공존체제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주시할 일이다.

▲ 일지삼교의 성소, 예루살렘. ⓒ이병한
세계사의 대세를 확인시켜 준 것은 2017년 1월의 다보스 포럼이다. 1% 글로벌 엘리트들이 스위스의 알프스에 집결하는 연례행사이다. 올해는 유독 특별했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불참했다. 반면 중국의 국가 주석이 최초로 참여했다. 미국의 탈세계화에 맞서 중국이 신세계화의 주역임을 온 천하에 천명하는 자리가 되었다. 주빈 자리를 꿰찬 시진핑은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영주의에 바탕한 포용적 세계화를 주창했다. 탈서구적(Post-West) 세계화야말로 21세기의 뉴노멀이자 신상태임을 지구촌에 널리 선포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대동한 이들 가운데는 80여명의 글로벌 자본가들도 있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완다 그룹의 왕젠린, 바이두의 리옌훙 등이 동행했다. 가장 돋보인 인물은 마윈이다. 다보스 직전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다. 알리바바가 구축한 범유라시아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미국의 중소기업 상품을 팔수 있게 돕겠노라며 트럼프를 유혹했다. 백만의 신규 일자리를 미국에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마법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당근의 제시만큼이나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탈냉전 이래 미국은 제3의 물결을 타고 IBM부터 MS, 애플까지 엄청난 돈을 벌어왔다. 문제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것이다. 지난 30년 (공식적으로) 13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천문학적인 자금을 낭비해왔다. 그 돈을 인프라에 투자했다면 어떠했을 것인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지원했다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배하는 워싱턴의 낡은 정치체제가 월가와 할리우드, 군산복합체와 실리콘벨리만 대변하느라 '실패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윈의 쓴 소리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현실 인식과 합치하는 바 없지 않다. 트럼프 또한 미국의 인프라 재건 방침을 밝히고 있다. 복병은 역시나 자본이다. 연방정부는 빚투성이다. 다른 나라라면 이미 여러 차례 파산했을 것이다. 달러를 찍어내어 근근이 연명해왔다. 흥미롭게도 다보스 포럼 직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금융포럼에서 중국의 국부 펀드로 미국의 인프라 건설 자금을 충당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중국을 촘촘하게 엮어낸 고속철, 고속도로 연결망을 유라시아만이 아니라 아메리카까지 깔아보자는 것이다. 150년 전 중국의 이주노동자 쿨리가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했다면, 이제는 중국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고속철도망으로 업그레이드시키자는 것이다. 왕년의 실크로드가 로마와 장안을 이었다면, 새천년의 신실크로드는 동반구의 유라시아와 서반구의 아메리카를 이어보자는 제안이다. 구대륙을 하나로 엮었던 일대일로 구상이 신대륙까지 아우르는 고금합작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것이다. 다보스 포럼에 참여한 AIIB 총재 진리췬도 기민하게 응답했다. 이참에 미국까지 AIIB에 가입할 것을 적극 권장한 것이다. 지구촌을 천하로 삼는 제국의 기질이 중원에서 재점화 되고 있는 듯하다.
4. 진세계화(Re-Orient)
안개가 자욱한 음울한 도시 런던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화를 (잠시) 누릴 수 있었던 것에는 무굴제국의 정복이 결정적이었다. 그 영국 총독부가 자리했던 도시가 콜카타이다.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는 기념관(Victoria Memorial)이 지금도 우뚝하다. 그곳을 '식민지 박물관'으로 변경하는 계획이 인도 의회에 제출되었다. 제안자가 바로 샤시 타루르이다. 한때 세계 부의 27%를 점하던 무굴제국이 어찌하여 대영제국 통치 아래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인도로 전락한 것인지, '식민지 근대화'의 허상을 밝히는 장소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또 영국이 떠난 1947년 이후 남아시아는 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대분할체제로 쪼개진 것인지, '구미적 세계화'의 적폐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학습장으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제국주의를 자랑하던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성찰하는 인도박물관을 지음으로써, 인도 독립 7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을 세계적으로 기념하자는 것이다. 헛개화에서 진개화로, 가짜 근대화에서 진짜 근대화로, 패권적 세계화에서 탈패권적 세계화로 이행하는 '2017년 체제'의 전범이라고 하겠다. 그가 UN 사무총장이 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이 다시금 안타깝다.

▲ 콜카타에 있는 빅토리아 기념관. ⓒ이병한
콜카타가 동인도에 자리한다면, 서인도에는 고아(Goa)가 있다. 바스코 다가마가 다녀갔던 곳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곳에서 작년 10월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렸다. 서세동점의 출발을 알렸던 상징적인 장소에서 탈서구적 세계화의 주역들이 회동한 것이다. 앞서 5월에는 흑해의 휴양도시 소치에서도 러시아-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다. 2025년까지 유라시아경제연합(북방)과 아세안(남방)을 통합하는 대유라시아 구상이 제출되었다.
고아에서 아라비아 해를 건너면 곧장 사우디아라비아에 닿는다. 지난 세기 미국의 중동정책을 대리하는 핵심 동맹국이었다. 그 '속국 왕정' 사우디마저도 재빠르게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살만 국왕이 몸소 아시아를 순방하는 전례 없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지나 일본과 중국까지 장장 한 달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석유 공급지의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여 이슬람-아시아 연결망에 긴밀히 (재)접속하려는 대전략에 바탕한 것이다. 여기에 영국의 식민지이자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호주가 아세안 가입을 적극 모색하고 있고, 그 아세안과 EU간 자유무역협정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까지 보탠다면, 2025년 대유라시아 연합이 마냥 허황한 공상만은 아닐 것도 같다.

▲ 고아의 바스코 항구. ⓒ이병한
물류의 대반전은 문류의 쇄신도 촉발한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연동되기 마련이다. 주목할 장소는 항저우이다. 12월 포스트-반둥시대를 표방하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예술연구원이 들어섰다. 2015년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했던 반둥포럼의 후신이다. 반둥서원(Bandung School)을 지구촌 곳곳에 세우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발주되었다고 한다. 항저우가 어떤 곳인가. 동아시아 문예공화국의 시심을 자극했던 서호(西湖)의 도시로 그치지 않는다.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찬탄해마지 않았던 세계도시의 원형이었다. 바로 그 도시에서 신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G20 회의가 열린 이후에, 대륙 간 민간회의도 열렸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견문했던, 바스코 다가마가 여행했던, 동인도 회사가 진출했던, 19세기 이전 아시아 중심의 세계가 성큼성큼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역류하던 극동의 한 나라가 있었다. 내부자들의 농단과 외부세력의 농락으로 국정이 장기간 표류했다.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제 발등을 찍더니, 사드를 배치한답시고 제 숨통을 죄는 자충수를 연발했다. 식민지 근대화, 분단국 산업화, 속국 민주화의 백년 누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역주행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참에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자는 황당한 주장도 들려온다. 식민지 이래 일백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던 군사적 종속은 눈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중국 시장을 동남아로, 인도로 대체하면 된다는 어불성설도 파다하다. 하나만 설피 알고 둘은 모르며, 둘을 겨우 알아도 열은 미처 모르는 흰소리이다. 동남아도, 인도도, 중앙아시아도, 중동도, 나아가 유럽마저도 중국과 더불어 '동반성장'하고 있다. 이 유라시아의 거대한 분업체제에서 이탈하는 '쇄국정책'과 '주체노선'은 망국의 첩경이 아닐 수 없다.
천만다행으로 광화문을 장기간 점령한(Occupy Movement) 촛불혁명으로 시대착오적인 대반동(De-Orient)의 흐름은 막아내었다. 서아시아 대분열체제, 남아시아 대분할체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해소해가는 세계사의 대반전(Re-Orient)에 합류할 수 있는 물꼬를 재차 틔운 것이다. 실로 민심은 천심이다. 오작동을 반복하며 앙시앙 레짐으로 전락한 '서구 민주'를 돌파하는 '동방 민주'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축하를 나누고, 축배를 건넨다.
극동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멀리서 조감하노라니, 120년 전 동학도의 횃불이 떠올랐다. 2016년이 마침 원불교 개창 100주년이라는 사실도 포개어 보였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도 개벽되어야 한다 하셨던 先知者(선지자)의 말씀이 성성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식민지로 전락한 후 더욱 기승을 부렸던 개화파의 독주를 근심하셨을 것이다. 개화와 개벽의 공진화를 고심하고 숙고하셨을 터이다. 물질개벽의 총아인 사드의 배치 장소가 하필이면 정신개벽의 성소, 성주라는 점도 참으로 오묘하다. 따라서 촛불 이후가 고작 정권교체로만 그쳐서는 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대교체 너머 문명교체(=Reset)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개화파와 개벽파의 대연정으로 지난 백년 세뇌되었던 서구화=근대화의 주박마저 허물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폭주로 심신이 지친 헬조선을 힐링하고 디톡스하는 탈진실 시대의 문명해방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좌/우가 공히 봉인시켰던 전통문명의 熟知(숙지)를 재발굴하고 재숙성시킴으로써, '문명론의 신개략', '신문명론의 개략'을 새로이 써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긴 호흡으로, 깊은 호흡으로, 근본을 천착하고 기원을 탐색할 볼 필요가 크다고 하겠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셨다. 급급하고 긍긍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새 판을 앞두고, 지난 판을 회람하는 복기가 종요롭다. 마침 지난 이백년, '구미적 세계화'의 시발이 되었던 유라시아의 극서지방, 유럽을 둘러보고 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한 곳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다. 지중해 건너 모로코를 마주하고 있는 나라이다. 모로코 출신 이븐 바투타와는 성질을 전혀 달리했던 바스코 다 가마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장소이다. 구세계와 신세계를 날카롭게 갈랐던 콜럼버스의 대항해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극동의 한반도 출신이 극서의 이베리아 반도까지 닿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이제는 고국으로, 고향으로, 집으로 되돌아가는 귀로의 여정이다. 파리부터 모스크바까지, 지난 백년의 천하대란을 일으켰던 동/서 유럽의 혁명을 되짚고 곱씹어보려 한다. 내 나름으로 남북 간 대연정, 대통합을 준비하는 밑 공부로 삼고자 한다.
< 유라시아 견문> 3년차는, 극서(極西) 항구 리스본에서 출발한다.
중국은 이러려고 혁명을 했을까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분 가운데는 나 같은 이가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유신 독재 아래 숨도 못 쉬던 시절 나는 진심 중국(그때는 중공이라고 불렀다)이 부러웠다. 중국 인민은 자기 힘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우지 않았던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천 년간 인민을 착취해온 악질적인 지주와 탐관오리들을 시원하게 응징했다. 그들은 원주민과 흑인을 말살하고 차별한 미국과 유럽의 백인과는 달리 소수민족을 오히려 우대한다고도 했다. 그때는 문화대혁명마저 불치병에 가까운 인간의 탐욕을 집단 교육을 통해 통제하려는 대실험쯤으로 이해하며 좋게 봤다.
홍군이 장제스 군대에 패해 대장정을 한 기록을 볼 때마다 나는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1934년 10월15일부터 후이안에서 옌안까지 1년여 동안 하루에 30㎞씩 1만여㎞를 그들은 도망쳤다. 떠날 때는 10만명이 넘었지만 도착했을 때는 겨우 8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까지도 평등해서 마오쩌둥의 두 아이와 동생마저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수많은 농촌 출신 소년·소녀병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나무에 기대선 채로 죽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정의가 넘치는 새로운 공화국 건설의 토대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꿈꾼 새나라가 어떤 모습일지는 그들의 행동에서 그려볼 수 있다. 적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피란을 떠난 농민들이 남기고 간 쌀 한 톨, 닭 한 마리 약탈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최소한만, 그것도 반드시 차용증서를 남기고 나서야 손을 댔다. 그들은 농가 대문을 떼어내 침대 대신 쓴 다음 떠날 때는 완벽하게 되돌려놓았다. 정복자가 아니라 인민이란 바다를 헤엄치는 진정성 넘치는 물고기가 바로 그들이었다. 결국 바다는 큰 파도를 일으켜 서방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막강한 장제스 군대라는 초호화 유람선을 뒤집어엎고 말았다.
중국은 인민 제일주의 혁명정신을 전 세계로 전파하려는 것 같았다. 냉전의 진원지인 양극단, 미국이나 소련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외세 배격과 인권 옹호를 주장하는 비동맹회의의 맏형을 자처해 전 세계 진보 지식인의 갈채를 받았다. 중국은 이 행성 곳곳에서 신음하는 약자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제국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대국이 출현한 것만 같았다.
프랑스의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에 따르면 예전에 젊은이들이 중국에 환상을 품게 된 것은 전 세계 진보 지식인들이 순진하게도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속아 넘어간 탓이다. 그들이 쓴 엉터리 책을 읽고 젊은이들은 중국 공산당을 정의의 화신처럼 떠받들게 됐다고 기 소르망은 개탄했다. 기 소르망은 진보 지식인들이 서구 사회에 들이댔던 것과 같은 엄정한 잣대를 중국에도 적용했다면 중국의 일그러진 모습이 진작 드러났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혁명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기 소르망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10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가 근거 없는 얘기를 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에 찬성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보며 기가 막혔다. 정부 간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선의를 가지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민간인까지 위협하는 중국 당국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거리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협박이 당국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변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다. 중국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도 모두 막아버린 나라 아니던가. 중국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는 어떤 폭력적인 언사도 온·오프라인 상에서 유통될 수 없다.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혐한 행위는 중국 당국의 명령 혹은 묵인·방조에 따른 결과이다. 나쁘게 본다면 이번 일을 트집 잡아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나 민간인의 재산을 약탈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도 충분한 짓이다. 한국의 인민은 인민이 아니란 얘기일까. 중국 정부가 홍군의 전통을 이었다는 걸 차마 믿기 힘들다.
민족주의 감성이 발동해서가 아니라 지금 중국의 모습은 대장정 중에 죽어간 홍군이나 전 세계 젊은이들이 바랐던 미래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제 우리는 이웃의 거인을 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국 인민은 자기 의사를 마음껏 표현할 자유를 뺏겼다. 공산당 지도부는 민의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감시자로 변했다. 인민은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시진핑은 수억명 중국인이 인터넷에서 낄낄대는 걸 불안해했다. 일제 단속을 위해 수천 개의 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나 활동가 수백명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학교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금지되었다. 뉴욕에 있는 국제 언론감시단체에 따르면 2015년 12월 현재 언론인 49명이 감옥에 있다. 큰 나라 가운데 중국의 언론 통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민은 입이 막혔지만 관의 시진핑 찬양은 점점 ‘발랄’해지고 있다. 정부가 만든 비디오에서 젊은 여성이 포크 스타일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와 결혼하려면 시 아저씨 같은 사람과 하세요. 모든 일에 잽싸고, 결단력 있고, 양심적인 사람 말입니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호 아저씨(호찌민)를 본떠 시진핑을 시 아저씨로 부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비디오 중 압권은 시진핑이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을 칭송하며 “파리가 됐든, 호랑이가 됐든, 괴물이든, 변종이든 모두 싸워 무찌른다”라고 노래한 것이었다. 지난해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인민일보>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신문은 베이징에 사는 젊은 외국인 여성들이 시진핑에 대해 ‘슈퍼 카리스마틱하다’ ‘무지 귀엽다’고 말하며 장래 남편이 시진핑을 닮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얼마 전 중국 인민대회에 티베트 대표들은 시진핑 배지를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중국의 시진핑 우상화는 러시아의 푸틴 찬양과 견줄 지경이 됐다.
이런 모든 현상은 마오 시절 목격했던 컬트화의 조짐이다. 컬트화가 진행되면 권력은 쓴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중국은 지난해 높은 의료비와 베이징 시의 엉망인 교통, 그리고 나랏돈을 떼먹는 관료를 비난한 IN3라는 힙합그룹의 노래 17곡을 금지했다. 닭의 목을 비트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보는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당연히 정부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된다.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의 주식시장이 요동쳤을 때 중국 정부는 전문가들에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경고를 발한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거나 의견을 번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중국 관련 뉴스 가운데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늘어간다.
해마다 이맘때 러시아 최북단의 동시베리아해에서는 원주민인 야쿠트족 수백명이 해빙되기 직전의 얼음 육교를 건너 인근 섬들로 흩어진다.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얼음이 얼어붙기 전까지 짧으면 6개월, 길면 8개월을 보낸다. 집에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파도가 거칠기로 악명 높은 북극해를 목숨을 걸고 작은 보트로 건너야 한다.
시진핑 우상화는 러시아 푸틴 찬양과 견줄 정도
그들이 북극곰의 먹이가 될 각오를 하고, 해안경비대의 눈을 피해 그곳에 머무는 것은 ‘하얀 금’을 캐기 위해서다. 이곳에 고립돼 3700년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맘모스)의 엄니 말이다. 통나무만 한 매머드 엄니는 큰 것이 70㎏에 달하며 6만 달러를 호가한다. 기후변화로 만년빙에 갇혔던 이 매머드의 사체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련 해체 이후 침체를 거듭해온 이곳 경제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상아가 국제무역 금지 품목이 되면서 매머드의 엄니는 대체재, 아니 그 이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엄니의 90%가 향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이 엄니에 광둥성 장인이 불상 수백 개를 새겨넣으면 백만 달러짜리 애장품으로 변신한다. 중국 부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상아로 된 조각품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고도성장기에 원 없이 돈을 번 중국의 벼락부자들 사이에서 매머드 조각은 특별한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런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중국은 육상동물 가운데 가장 크고 똑똑한 코끼리의 밀렵을 부추기는 주범이기도 하다. 2012년 홍콩에서는 6t에 이르는 밀렵 상아가 적발되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중국 정부에 코끼리 밀수입을 강력 단속하라고 요구했지만 별 효력이 없다.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티베트이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티베트를 침공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귀족·승려·시민을 부당하게 체포하고 고문했다. 탄압에 시달리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티베트인이 고향을 등지고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 국내 언론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언론인이라도 티베트를 취재하려 하면 중국 정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막았다.
티베트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공안이 소방차를 대기하고 감시한다. 분신을 막기 위해서다. 2008년 대규모 소요가 일어난 이래 승려들을 포함해 123명이 중국 정부의 압제에 항거해 분신했다. 티베트의 중국 인민대회 대표가 시진핑 배지를 가슴에 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이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설명한다. 중국에 항거하는 원주민과 순응하는 원주민 사이에, 그리고 이 지역의 부를 점점 잠식해가는 한족 사이에 긴장이 높아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은 혁명정신에도 비동맹 정신에도 어긋난다. 중국이 결코 소수민족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5월이 되면 티베트 고원지대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 지역 학생들은 모두 4주간 방학을 받아 산으로 올라간다. 어른들도 가축이나 밭을 돌보는 일을 작파하고 산으로 간다. 아직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번개라도 치면 피할 곳이 없는 벌거벗은 슬로프에서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네 발로 기어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제498호에 계속)
'남북 파행' 출발점 2013년 9월, 박근혜는 왜?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통일미래포럼 창립 기념 대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류 전 장관은 "지난 2013년 개성공단이 정상화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하기로 했다"면서 "그랬다가 우리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일주일 연기하자고 했고 북한이 결국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재개 회담을) 다 거부했다"고 말했다.
당시 2013년 9월 25일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남북은 금강산 회담 일자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북한은 9월 22일 금강산 재개 관련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고, 남한은 9월 25일에 회담을 열자고 역제안했다. 그러자 북한은 다시 8월 말에서 9월 초에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고, 남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직후인 10월 2일 회담을 제의했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중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에 대한 시기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셈이다. 결국 상봉 이후에 하자는 남한의 제의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취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를 두고 류 전 장관은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신뢰 프로세스를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공약을 했고, 실제로 남북 간 신뢰를 쌓으려면 그동안 닫혀있던 것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금강산 관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당시 북한은 김정은의 치적인 마식령 스키장을 필두로 원산 특구와 금강산을 연결하고 싶었고, 정부도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에 착수하려면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필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류 전 장관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으면 평화공원 조성은 어려웠다. 실제로 북한에서 나중에 이를 비공개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야만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금강산) 회담을 연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멈춰졌다"고 평가했다. 류 전 장관은 "이것이 지금 남북관계가 경색 또는 파행이 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정부 내에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류 전 장관은 "당시 내부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정부 차원에서 한다고 해도 바로 관광 재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가 회담을 통해서 북한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다면 핵 문제에서 진전된 행동을 보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대통령의 의중이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통일부의 의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사)통일미래포럼 창립 기념 대토론회에 참석한 전직 장관들. 왼쪽부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사드,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말하면 끝나는 일 아냐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인해 중국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엑스밴드 레이더가 중국이 반발하는 핵심적인 이유인데, 우리가 중국에 '북한으로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동결한다는 선언을 받아오라'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이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명분을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MD(미사일 방어체제)와 사드가 다르다는 말은 산에는 갔는데 등산은 가지 않았다는 말과 똑같은 뜻이다. 사드는 아시아에서 중국을 둘러싸는 방어망에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해 배치하는 것이니 중국은 신경쓰지 말라고 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권 대선후보들 사이에서 사드 배치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이야기하려면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런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넘기라고만 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류 전 장관 역시 사드와 MD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장관을 할 때는 사드에 대해 '3NO'(미국의 요청도, 한미간의 논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 정책을 유지했다"며 "사드 도입은 아무리 (박근혜 정부 당시 당국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미국의 MD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한편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 송 총장은 아직 미국의 정책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기다리기 보다는 우리의 정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지금 미국 국무부의 동아태차관보 임명도 예정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면서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대북 정책을 면밀하게 짜고,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이 미국 대북정책의 원본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중 각축 치열한데 ‘통일 대박론’ 헛다리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사드 자체의 기능이 아니라 배치했을 때의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 사드를 배치하는 순간 한반도는 미·중 간 무력 충돌의 한복판으로 자동 편입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랜드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경우를 시뮬레이션했다. 당시 보고서가 두 건 나왔는데, 각각 <중국과의 전쟁-상정 불가능에서 상정 가능한 것으로>와 <미·중 군사력 비교 스코어 가드>이다(이하 랜드 보고서). 타이완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해전 및 공중전, 우주전쟁 등 9개 관점에서 18가지를 시뮬레이션했다. 미군은 사이버 전투 등 6개 분야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중국군과 호각지세였다. 심지어 타이완 해협이나 중국 본토의 공군기지를 둘러싼 전투에서는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동안 첨단기술에서 앞선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보이리라는 막연한 환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중국군이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수백 발을 쏜다면 미국의 미사일방어(MD)가 전혀 힘을 못 쓴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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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6년 9월5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가테나 기지보다 멀지만 개전 초기 중국군이 집중 공격을 퍼부을 또 하나의 기지가 바로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다. 괌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부대가 발진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본토에서 앤더슨 기지까지는 약 3000㎞. 중국이 보유한 중거리 미사일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사정권이다. 중국군은 지난 2000년부터 오키나와와 괌을 염두에 두고 공격 병기를 쌓아왔다. 앤더슨 공군기지를 11일 정도 기능 정지시키는 데 미사일 100발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랜드 보고서가 지적하듯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군에 비해 취약점이 드러난다. 가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가 많지 않다. 타이완 사태 시 미군이 활용할 수 있는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와 가테나 공군기지 외에 랜드 보고서가 거론한 곳은 일본 본토의 이와쿠니 기지, 미사와 기지, 그리고 요코타 기지, 한국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 등이다. 반면 중국은 타이완을 겨냥해 공군기지 39곳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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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3월2일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 위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미·중의 군사력 격차가 현격히 벌어졌던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의 방공 능력이 형편없어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미군의 재래식 폭격기로도 중국 본토 깊숙이 침투가 가능했다. 지금은 다르다. 훙치-9(紅旗·HQ-9)나 러시아에서 도입한 S-400 지대공미사일 등으로 방공 능력이 대폭 향상돼 함부로 침투할 수 없다. 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스텔스 기능이 없는 구식 전투기는 100% 공격에 노출되고 스텔스 기능이 높은 4세대 전투기도 40~50%의 격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F-22나 F-35 같은 5세대 전투기만이 약 90% 생존율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260여 기를 보유한 5세대 전투기는 전 세계에 퍼져 있어서 중국 주변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중 간 군사력 격차가 아태 지역에서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는 점은 이미 2년 전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 문제가 대두될 때 드러난 바 있다(<시사IN> 제422호 ‘제2의 닉슨 독트린 몰려온다’ 기사 참조). 중국이 난사(南沙)군도에 조성하는 인공섬의 비행장을 시사(西沙)군도 및 필리핀 앞바다 스카보로초의 비행장과 연결하면 전투기들 간의 삼각 합동작전이 가능해진다. 남중국해의 하늘을 중국이 장악하는 ‘공역의 성역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또 난사군도 인공섬은 서태평양에서 남중국해로 진입하는 데 필수적인 바닷길(수도)의 입구에 있다. 유사시 미·일의 군함을 차단할 수 있는 위치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난 섬(해남도)의 094급 원자력 잠수함이 사정거리 8000㎞에 이르는 SLBM 쥐랑-2(巨浪·JL-2)를 싣고 유유히 서태평양을 빠져나가 미국 본토를 겨냥하면 미국의 대중국 핵 우위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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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2월23일 성주 주민들이 사드 기지가 배치될 예정인 성주 롯데 골프장 앞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오산과 군산에도 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따지면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최단거리다. 앞의 랜드 보고서는 이들 기지에 대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국 기지들은 중국 탄도미사일의 매우 좋은 표적이 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려워해 미군이 양 기지(오산·군산 기지)에서 중국을 공격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만약 한국 정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예를 들어 한국 내 다른 미군 기지가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되어 미군이 반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동안 미국이 사드 배치를 왜 그토록 집요하게 강행하려는지를 둘러싸고 주장이 난무했다.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라는 것은 한·미 양국의 공식 주장일 뿐 군사기술적 타당성이 없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 X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 내륙을 들여다보거나, 일본의 레이더 기지와 삼각 좌표를 이루기 위해 배치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로는 뭔가 부족했다. 사드 자체 기능이 아니라 사드를 배치했을 때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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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부 미사일방어국 한반도 사드 기지 배치가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 위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시험 발사 모습. |
일본이나 필리핀, 타이완 등 제1열도선상의 국가들은 중국과 영토 분쟁 등으로 얽혀 있다. 한국은 중국과 영토적으로 얽힐 일도 없고 제1열도선 국가도 아니다(제1열도선은 대체로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주장한 애치슨 라인과 일치한다. 2011년 1월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한 용어 해설에서도 ‘제1열도선은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알류샨 열도-일본-필리핀을 잇는 라인을 ‘서방 측 방위선’이라고 연설에서 말한 것이 기원이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해서 한국을 대중국 전선에 끌어들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다.
중국 S-400 미사일 도입으로 한국 중요해져
그러나 거기에는 좀 더 깊은 내막이 있다. 주한 미군기지에 사드를 배치하자고 최초 공론화한 것은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다. 그 직전인 5월 상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 회담이 있었다. 당시 이 회담에서, 중국이 크림반도 사태로 유럽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가스를 대량 구매하는 대신, 러시아는 중국이 그토록 사고 싶어 하던 S-400 지대공미사일을 중국에 팔기로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양측은 2015년 4월 S-400 미사일 구매 계약 체결이 임박했음을 밝힌 뒤 연말에 6개 포대분(30억 달러. 1개 포대는 6개 미사일 발사 시스템으로 돼 있고 각 시스템은 최대 12개 발사대를 이용해 미사일 48발을 쏠 수 있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남부 해안이나 타이완 해협 아니면 한반도를 겨냥해 배치할 예정이다. S-400 미사일은 센카쿠 열도 등에서 중·일 간 국지전이 벌어질 경우 미군이 참전해 최종 승리를 거둔다는 그동안의 전쟁 시나리오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았다. 기존 시나리오에서는 마지막에 미국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이 등장해 순항미사일로 중국 연안의 중거리미사일 기지를 초토화함으로써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S-400 미사일이 바로 미군의 순항미사일을 잡아버리기 때문에 기존 전쟁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미군이 S-400의 방공 능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잠수함을 한국 서해로 잠입시켜 가까운 거리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겨냥하거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에서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당시 흘러나왔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치솟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드 배치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유사시 대중국 공격의 선두에 서게 될 오산이나 군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드는 방어용이라기보다 유사시 오산과 군산 기지를 대중국 공격용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일 수 있다. 즉, 인계철선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드 배치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본인이 MD에 부정적이었고 그의 측근인 마이클 플린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내부 회의에서 트럼프의 유세 기간 발언을 소개하며 사드는 트럼프의 대외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안보 기득권 동맹(Security Establishment)’의 반격은 집요했다. 정보와 사법 기관, 외교안보, 군수 에너지 분야 고위급 출신 인사들의 횡적 결합체인 이들 안보 기득권 동맹은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를 물고 늘어지며 압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플린이 이미 본보기로 해임됐고 트럼프에게도 닉슨의 길을 갈지, 기득권 동맹의 뜻대로 따라올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 중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들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라고 한다. 또한 플린 보좌관 후임인 허버트 레이먼드 맥마스터 중장은 이들 기득권 동맹의 차세대 유망주 톰 고든 상원의원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배치 결정 역시 워싱턴을 장악한 안보 기득권 동맹이 한국의 군부를 앞세워 밀어붙인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파탄 낸 이래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통일 대박’을 주장한 박근혜 정부는, 다변화하는 국제 질서를 읽지 못하고 나라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