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파면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 조순 “이젠 국가를 ‘리빌딩’해야 할 때”
박근혜 파면 이후가 더 중요한 이유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8대 0으로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으로 전 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내왔던 지난 90여 일의 투쟁은 이제 마무리됐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의 열망과 TV를 통해 지켜보던 국민의 마음을 반영한 위대한 승리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최고 지도자를 축출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명예 혁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의 역사적 의의
마음껏 즐거워하고, 서로에게 축하해 주자. 이제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고, 올망졸망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앞으로 자랑스럽게 이날의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7년 6월 항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후 30년이 지나서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롭게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근혜 파면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의 법적 체계가 제대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피를 흘리는 무력에 의한 혁명이 아니고 합법적 절차에 의한 혁명을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20여 차례에 이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고, 탄핵 반대 세력의 어이없는 작태까지도 참으면서 감수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될 수 있었다.
탄핵을 반대하던 국민도 이제는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재 판결 이후에도 반발한다면 더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만을 가진 일부 세력이 있을 것이나 국민 간의 갈등과 분열은 이번 헌재 판결로 결국에는 정리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잘못과 왜곡을 고치고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었다.

▲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600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을 들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다음 날인 11일 시민들은 "촛불이 승리했다"며 자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예정된 정치 일정, 그리고 새 정부가 당면할 상황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도 사실은 달라질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이 결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중에도 국정 교과서 강행,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강행, 각종 친재벌 규제 완화 법률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박근혜로 인한 적폐' 문제는 박근혜와 그 일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횡과 국정농단은 재벌–보수언론–학계–법조계-고위 관료-군부 등의 기득권 집단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던 게 분명해졌다. 따라서 이번 헌재의 파면 결정은 박근혜 개인과 그 일파의 축출일 뿐이며, '철의 삼각'을 이루고 있는 이들 기득권 집단들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지켜오던 기득권을 쉽게 내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의 파면은 이들 기득권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사태의 악화를 막아 몸통까지 피해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너무도 명백한 비리와 국민의 압도적인 탄핵 지지를 무시하거나 저지하기에 역부족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생존에 위협을 느낀 보수 언론과 재벌 등의 기득권 세력이 암묵적으로 동조해주었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실제로 이들 '내부자들'은 여전히 경제력이나 물리력, 그리고 공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인 개혁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4월 초까지 각 정당들의 경선이 이어질 것이고 5월 초순에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는 중요한 국정 방향에 대한 "국민 투표"의 성격을 가진다. 각 후보들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발표하고 이를 구체화한 공약을 내걸고 TV 토론 등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국민은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살고자 하는 나라의 모습을 결정하고, 이를 이루어줄 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통상 1년의 기간 동안 이루어지던 일들이 이번에는 2개월 만에 이루어진다. 검증의 기간으로는 너무나 짧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 과정도 없이 선거 다음 날 바로 출범한다. 총리 청문회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신임 총리의 추천과 대통령의 지명으로 각 부처 장관들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된다. 이후 비로소 신임 장관들이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데, 문제는 이 과정이 빨라도 2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방향을 반영해서 실무의 집행을 담당해야 할 주요 공공기관 수장들의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한 사람들일 것이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이 곱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 없이 5당 체제로 바뀐 국회는 이미 탄핵 심판 기간 동안 "특검 연장 실패, 황교안 총리 견제 실패, 사드 배치 저지 실패, 상법 개정안 통과 실패, 국정 교과서 추진 중지 실패"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반개혁적인 정치적 입장과 정치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새 정부가 출범해도 국회의 의석 분포를 볼 때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몇몇 정당들이 연정을 해서 과반을 만들더라도 국회 선진화법이 계속 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복지국가가 돼야 내 삶이 실제로 바뀔 것
새 정부가 사드(THAAD)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중국과 경제 교류를 정상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촛불 혁명을 주도한 국민들은 개성공단의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원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와 절차들이 너무도 많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축소, 그리고 산별 노조 확대와 산별 단체협약의 적용 확대 등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국회로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노동자 대표의 경영 참여 보장 등 적극적인 노동 개혁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 측은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에 너무 익숙하고, 대기업 노조는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노조의 조직율도 너무 낮다.
기업의 지배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도록 원-하청 거래를 정상화하고, 기업 생태계를 복원하며 공정거래가 정착되도록 경제 민주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촛불 혁명의 열기를 모아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재벌 개혁 방향은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고, 같은 당 내에서도 의원들에 따라 입장이 중구난방이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촉발된 해운 산업의 위기와 거제와 울산 지역의 조선 산업 붕괴는 단순히 지역의 경기 침체를 넘어 자동차와 반도체, 화학 등 5대 주력 산업의 전반적 위기로 확산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영세 자영업과 중소기업들은 줄도산과 파산이 예정되고 있다.
이번 국정 농단의 핵심적인 사안이었기에 어느 분야보다도 국민의 기대가 큰 검찰과 국정원 등 사정기관과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은 '공수처(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설치나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경찰의 기소권 부여, 검사장 직선제 등 실제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백가쟁명의 상태다. 국정원의 경우 국내 파트 해체 외에는 별다른 개혁 방안도 없는 상태이다. 특히 개혁 대상 기관들의 입김과 권력이 여전한 상태에서 실제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 자체가 차기 정부에서 시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대안 언론은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겪었던 언론 상황은 최근 10년간 오히려 더 악화된 상태이다. 보수 언론들은 차기 정부의 개혁을 사사건건 반대할 것이다. 박근혜의 적폐와 비리에 일조한 공중파들은 사장의 교체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편집권의 독립이나 해직 기자의 복직 등을 저지하기 위해 새 정부 흔들기를 지속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자신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실제로 국민이 당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무능하다.
문제는 이런 20대 국회가 앞으로 3년간이나 지속되기 때문에 새 대통령이 아무리 유능해도 국회의 동의와 협력을 얻기가 쉽지 않고 노동관계법이나 상법의 개정, 적극적 증세 등의 획기적인 개혁이 통과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금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들이 일정 수준의 복지 확대나 노동 개혁, 그리고 재벌 개혁과 적폐 청산은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의 혁신적 비전이나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분이 아직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로 촛불 혁명 완성해야
한겨울 내내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박근혜 퇴진과 적폐 청산을 계기로 "살만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세월호 참사와 같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대학 입시로 이어지는 살벌한 경쟁이 아니라 전인적 교육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보다 잘 개발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과도한 등록금 부담 때문에 밤새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교육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젊은이들은 청년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취업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집이나 소득을 따지지 않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인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매일 매일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은 의료비 걱정, 노후 걱정, 집값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다.

▲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게 국민이 꿈꾸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 대한민국"이다. 실체 없이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미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에서 구현되고 있는 모델이기에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의 확대와 다당제의 합의제 정치 체제를 통해 다양한 국민의 요구가 생산적으로 정치과정에 수렴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호 역할 분담을 하고, 노동권 보장을 통해 산업 구조의 개편과 고부가 가치 산업이 육성되는 나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나라가 바로 복지국가이다.
공공 부분에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가고, 보육,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등의 국민 불안을 없애고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나라가 복지국가이다. 누구라도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는 대신, 사회경제적 권리와 안정적 삶이 모두에게 보장되는 나라가 복지국가이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 이후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까지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그러나 촛불의 열기를 복지국가 건설로 이어가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박근혜 파면이라는 하나의 승리를 계기로 새로운 나라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간병 비용이 부른 부부의 비극)
정권 교체 목표는 '남북한 경제공동체' 건설이 돼야


▲ 닉슨(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악수하고 있는 장면
“어린애도 빨갱이”라던 태극단 노인
70년 전 3·1절에 좌익과 우익이 갈려 기념식을 따로 치렀다. 그때의 ‘서북청년단’처럼 올해 3·1절에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눈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증오와 저주’의 그림자는 길었다.
‘계엄령 선포하라’는 구호는 기본, ‘빨갱이들 죽여라’는 손팻말이 지천이고 태반이 노인인 성조기 시위대들은 머리카락만큼이나 허옇게 흰자위들을 번득이고 있었어.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세상으로부터 타임머신 타고 온 듯한 노인들의 쉰 목소리에는 옛 노래들이 우렁차게 울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우야 잘 자라>였어. 그 노래가 태어나고 유행했을 때와는 수십 년 세월이 놓인 1970년생 아빠에게도 친숙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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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3월1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모습. |
이 피를 토하는 듯한 노랫말을 지었던 이는 유호라는 분이야. 그런데 그에게 영감을 준 이름 모를 인물이 있었어. 전쟁 발발 당시 서울에 살던 유호씨는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된단다. 이미 인민군 탱크들이 한강변까지 내달리는 상황에서 유호 선생은 한 국군 병사를 목격하게 돼. “철모도 쓰지 않고 헝겊으로 만든 작업화에 총 한 자루만 갖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땀과 흙먼지로 말이 아니었으나 눈빛만은 저주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돌계단 뒤로 몸을 숨기고는 인민군을 향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 총에는 탄환이 떨어지고 없었다. 병사는 총을 내던지고는 효창공원 쪽을 향해서 뛰어갔다(<동아일보> 1992년 6월20일자).” 이미 적에게 함락된 도시에 남은 패잔병. 그러나 ‘저주와 분노’로 적을 겨냥하다가 빈총을 팽개치고 어디론가 달려간 무명의 국군 병사는 그 후 지금껏 전쟁을 경험했거나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을 대변하는 노래의 원천으로 남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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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자료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과 유품. |
1960년 4월19일은 ‘피의 화요일’로 불린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위대가 거세게 밀려들자 경찰은 실탄을 쏘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갔지. 그때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울부짖음 반 노래 반의 <전우야 잘 자라>를 토해내며 총구 앞에 나섰다고 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적군이 아니라 경찰에 의해 쓰러진 친구들의 시신을 넘으면서 그들은 전쟁 때 노래를 불렀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그들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그들의 외침 중 몇 개를 들어보자. “민주주의 바로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데모가 이적(利敵)이냐 폭정이 이적이냐” “공산당도 싫고 이기붕도 싫다” 등등. 이 북한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와 저주’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도 나타난다. 대한민국 육군 공수부대의 야수 같은 진압에 항거하고 나선 광주시민들도 항쟁 초기 “김일성은 오판 말라”를 부르짖고 있었단 말이지. 전쟁이 남긴 ‘증오와 저주’의 그림자는 그렇게 길었다.
‘증오와 저주’는 이제 역사의 무덤에 보내야
한국전쟁 때 일어난 비극 가운데 경기도 고양에서 일어난 금정굴 학살 사건이라는 게 있어. 전쟁 와중에 경찰과 태극단이라는 우익 단체가 공산당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학살하고 묻어버린 곳이 금정굴이었는데, 유해 발굴 결과 여자는 물론 아이들의 유골까지 발견됐지. 빨갱이라는 이유로, 철모르는 아이들까지 다 죽여버린 전쟁범죄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태극단원을 비롯한 ‘우익’은 “전시 상황에서 즉결 처분이라는 것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라고 우겼지. 아빠도 태극단이었다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어. 그때 그 노인 역시 허연 눈자위를 드러내며 소리 질렀지. “애들도 빨갱이였어!” 그 목소리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전쟁이라는 게 무서운 이유는 전쟁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군인들뿐 아니라 또 전쟁의 참화를 목격한 세대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까지 그 기억이 유전되고, 전쟁이 심은 증오와 저주가 상속되도록 만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전쟁의 상흔을 훌륭히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빵’과 민주화의 성취라는 ‘장미’를 모두 거머쥐었던 저 위대한 세대 일부의 가슴에 플라스틱처럼 썩지 않는 증오와 저주를 심어서 툭하면 미친 듯이 ‘빨갱이’ 물어뜯기에 나서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좋든 싫든 네가 아빠와 엄마의 모습과 행동을 닮아 있는 것처럼 결국 아빠 세대와 너희 세대 역시 네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역사적 DNA를 상속받게 돼. 하지만 아빠와 네 세대 역시 할아버지 세대의 역사적 자산을 이어받되 물려받지 말아야 할 악성 부채는 청산해야 할 의무가 있어. 특히 전쟁 때 새겨진 “원한이야 피에 맺힌” 증오와 “어린애도 빨갱이였다”는 이제 ‘잘 자라’고 다독여 역사의 무덤으로 보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3·1절 전야다. 꼭 70년 전의 3·1절. 1947년 3·1절은 우리 역사에 불길한 암운을 예고한 날이었어. 좌익과 우익이 갈려 3·1절 기념식을 치렀고, 좌우익 간 충돌로 서울·부산·제주 등 여러 곳에서 사상자가 났고, 그 이름도 끔찍한 ‘서북청년단’이 살기 어린 눈초리를 공식적으로 드러냈던 날이기 때문이야. 3년 뒤 전면전으로까지 이어지는 ‘증오와 저주’가 바야흐로 싹이 트고 줄기를 올렸던 슬픈 날인 셈이지. 2017년 3·1절은 제발 그 역사의 반복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조순 전 경제부총리 “이젠 국가를 ‘리빌딩’해야 할 때”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실패’ 역설한 조순 前 경제부총리
유지만 기자 ㅣ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7.03.14(화) 11:42:57 | 1430호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탄핵 정국이 일단락됐다. 이제 관심은 앞으로 60일 이내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됐다. 사상 첫 대통령 보궐선거로 치러질 이번 대선 승자는 정권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곧바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서 시작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난 일련의 과정을 두고 ‘국가 시스템의 한계’ 내지는 ‘민주주의 실패’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새로운 대통령에겐 무너진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국가 통합을 이뤄야 하는 짐이 지워졌다.
시사저널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나온 3월10일 오후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만났다. 1928년생인 조 전 부총리는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한 바 있다. “탄핵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조 전 부총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이제는 국가를 새로 만드는 리빌딩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순 前 경제부총리 © 시사저널 이종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됐다. 어떤 느낌인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심판하기 어려운 케이스는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탄핵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감정적으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엇이냐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상식적으로 봐도 탄핵 인용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통령 혹은 리더 자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안 된다. 그런 사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난 박 전 대통령과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명백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에 이르게 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 일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 마치 사기업을 운영하는 듯한 행위를 한 것에서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념과는 관계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사명감이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사기업 운영하듯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합쳐서 9년 정도 보수정권이 들어섰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명박 정권도 성공한 정권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도 성공하지 못했다. 둘 모두 사실상 실패한 정권이다. 보수세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보수가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나라의 기본을 지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현재 보수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개로 갈라졌다. 한나라당 총재를 역임했던 입장에서 보수세력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보나.
보수는 현재 어렵게 됐다. 이 나라의 정체성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무엇이냐’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기 힘들 정도로 정체성이 흐려져 있다. 누가 보수정당을 해도 힘들 정도로 국가의 정체성이 희미한 상태다. 우선 종교로 보면 불교 국가인지, 유교 국가인지, 기독교 국가인지, 천주교 국가인지 알 수 없다. 또 역사가 있는 나라인지 없는 나라인지 모르겠다. 몇 천 년의 역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수도 서울에 고적(古跡)도 별로 없다. 전통을 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적인 국가로 변모하지도 않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보수의 실패’를 겪고 있는 셈인가.
실패다. 완전히 실패했다. 보수가 아니라 수구(守舊)로 변질됐다. 자신의 이권만을 지키는 데 집착한 것이다. 내가 정치권에 몸담았던 시절보다 나아지지 못했다. 사실 보수의 실패는 1공화국 때부터 시작됐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3선 개헌을 하고, 부정선거에까지 걸렸다. 이 때문에 하야했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성공한 것인가.
그들 역시 실패했다. 난 대한민국의 진보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진보라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진보는 분명치 않다. 보수 없는 진보가 없듯, 진보 없는 보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기초를 튼튼히 세우지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의미인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작업은 오랜 시간 해야 한다. 미국을 봐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 초기의 인물들이 상당히 잘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초대 대통령이 실패했고, 2대 대통령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군대가 나라를 장악했다. 3공화국부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가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를 살렸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경제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살리는 것이다. 법을 잘 만들어서 적용하면 국민이 알아서 잘한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놓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셈이다.
경제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인데.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한 뒤에 경제성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경제도 기초가 없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경제 기초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다 날려버리게 됐다.
대선이 가시화됐다. 이번 대선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네이션 리빌딩’이다. ‘국가 다시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건설에 실패했으니, 다시 쌓아야 한다. 국민 지지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자질이 문제다. 자신의 사명을 잘 모르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모두 헛노릇이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을 할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대통령 중에 현 시대상황과 맞을 만한 인물이 있었나.
굳이 따지자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정도다. 비교적 나은 인물이었지만 네이션 리빌딩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현 대선 주자들을 평가한다면.
평가에 앞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 개인에 대한 평은 따로 하지 않겠다. 자신을 모두 던질 각오를 가지고 국가를 바꿀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3월3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부축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내각제,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
개헌 이슈도 있다. 어떤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나온 개헌 논의는 모두 신통치 않다. 이를테면 이원집정부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내치(內治)를 하고 한 사람은 외치(外治)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치와 외치는 분리될 수 없다. 내각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지금껏 내각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필요한 것이 내각제다. 내각제를 하게 되면 총리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총리의 책임은 대통령보다도 훨씬 강하다. 박 전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고 4년 정도 집권했지만 총리는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당장 쫓겨날 수 있다. 책임이 강화되기 때문에 내각책임제가 민주주의하고 가장 가깝다. 대통령책임제는 왕을 만드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다시 세우는 데 가장 우선시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교육과 정치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장래가 없다. 대학에서부터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통제하는 시스템은 필요 없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꾸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교육이 없다. 지식이라고 해도 쓸모없는 것만 가르친다.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경제가 매우 나쁘긴 하지만 경제상황이 나아진다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경제는 경제대로 보살피면서 다른 분야도 손봐야 한다. 밥만 먹고 살 수 없지 않은가.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전혀 철학이 없었다.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갈라졌었는데, 이들이 통합할 수 있을까.
탄핵 반대 집회 측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촛불집회가 싫어서 나선 것인지, 박 전 대통령을 지키려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통합 과제가 있겠지만, 리더십만 확고하게 세운다면 통합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이 어떤 자세로 이 시대를 임해야 할까.
남에게 기대하지 말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방법을 각자 찾아야 한다. 중국 은나라 시조인 탕왕은 자신의 세숫대야에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새겨놓았다. 이는 ‘날로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롭다’는 뜻이다. 매일 얼굴을 씻듯이 나날이 새롭게 돼야 한다는 각오였다. 국민들도 이 같은 자세로 노력했으면 한다. 그렇게 노력하면 결국 이뤄질 것이다.
대통령 파면, 민주주의의 일시적 승리일 수 있지만...
"개·돼지 취급받던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루어 냈다. 이제 진짜 개·돼지에게도 민주주의를! 생태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파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국내는 물론 세계 언론은 일제히 "한국 국민과 민주주의 승리"라느니, "전 세계에서 위협을 받는 자유민주주의에 힘을 실었다"느니, 떠들고 있다.
분명 대한민국 헌법1조 1항과 2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확실히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불과 몇십 년 만에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민주주의 쟁취를 애타게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물러난 후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확고히 자리 잡은듯했고,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몸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다시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심지어 권력의 뒤에 숨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유린해 대통령 파면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조차도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만연한 마당에 왜 이제 와서 다시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민주주의의 의미는 핵심적 내용은 유사하지만,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한 사회가 민주사회인지 아닌지, 혹은 민주화가 됐는지 아닌지의 기준도 모호하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나름의 기준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이번의 대통령 파면은 민주주의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사건으로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더욱 복잡해진 자유민주주의의 앞날이 보장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 처음 등장하였고 한 사람이나 소수가 지배하는 군주정이나 귀족정과 달리 시민 전체가 지배하는 통치 형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근대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성립되고 시민계급이 절대 군주정을 타도하여 근대 국가를 형성한 17~18세기에 자유주의사상과 결합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로 다시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민주주의는 '대의제로서 주로 정부의 조직 원리와 국가 권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원리'로 이해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혹은 다수의 대중이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하고 사회 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의 형식'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주로 서양의 자본주의국가에서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난 다음날(3월 11일),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자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는 오랜 역사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위협요소를 지니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는 그 속성상 민주주의의 위협요소를 내포하는 자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더욱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본래 개인이나 기업들의 경쟁적인 이익추구를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는 개인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세력 집단들 간의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는 대기업 집단과 같은 각종 이익집단들이 형성되어 자신의 집단적 이익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러한 세력 집단들 앞에서 개인들은 자율성을 잃고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요즈음 이러한 집단은 기업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관료 집단일 수도 있고, 군부일 수도 있고, 정당집단이나 언론, 지식인 심지어는 노동자 집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심각한 것은 사회의 운영규칙이 이러한 집단들 사이의 세력관계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수정됨으로써 힘이 없는 다수 대중의 의견은 배제될 공산이 커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회적 약자가 혹은 다수의 대중이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하고 사회 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의 형식'으로 이해된다면, 사회적 약자 혹은 다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의견이 배제되는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민주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간 민주주의로 포장되어 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재벌독재니, 군사독재니, 관료독재니 하는 말들을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실제로 저들 기득권 집단의 지배에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집단, 그것이 재벌집단이건, 관료집단이건, 군대집단이건, 정당집단이건, 종교집단이건 사적 이익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아무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더라도 참된 공동체가 아니다. 참된 공동체란 전체의 발전을 자신의 발전과 동일시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라는 이름으로 공익보다는 일부집단의 사익에 몰두하는 것은 이러한 참된 민주공동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잃게 된다.
민주주의의 위협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근래 신자유주의로 심화된 양극화와 같은 불평등 또한 계층 간의 적대감을 키워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리고 정경유착 등 부패는 정부 관료들이 자신들을 지원해 주는 소수의 의견을 따르게 만든다. 그래서 부패 또한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협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1인 1표'라는 슬로건은 유권자 간 평등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만 투표자들이 동등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투표자들이 단기적인 사적 이익을 장기적인 공공의 이익보다 중요시할 때 바람직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될 위험성이 존재하는 점에서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다수가 통치를 한다 하더라도 압제적일 여지가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의 이러한 문제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게다가 달콤한 공약에 속거나 여론몰이에 휩쓸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선택한 몰상식한 대통령의 잘못된 민주주의의 운용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당연히 들이마시는 공기가 서서히 오염되고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이, 어렵게 쟁취했던 민주주의가 서서히 오염되어 가고 있었던 것에 무감각했던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참에 잠시 소홀히 했던 민주주의를, 어렴풋이 알고 있던 민주주의를, 잘못 알고 있었던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계기로 삼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불행 중 다행히도 국민들의 깨우침으로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어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승리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나 이것이 뒷받침하는 자본주의가 건재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의 이름으로 권력의 맛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 즉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기득권 무리들도 건재하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의 문제들과 위협요소들을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관한 법률적 정비 등에도 의존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민주사회의 주체인 시민들의 역량과 그들의 역할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반성은 물론 민주적 권리와 절차를 존중하는 정치적 훈련과 교육 등을 통한 역량 강화와 능동적이고 활발한 정치적 참여와 활동이 중요하다. 그리고 특히 오늘날과 같이 대의제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에서는 적극적인 투표참여 행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정치 지도자가 해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결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시민에게 달려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각종 이익집단, 세력집단들의 사익추구 행위들이 사회적 약자나 다수의 대중들을 착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집단의 집중적인 사익추구는 자연을 대규모로 남용, 착취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파괴가 만연하는 위기의 시대에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정신을 자연에까지 확장하자는 생각이 싹트고 있다. 이게 바로 '생태민주주의'이다.
생태민주주의에서는 '사회적 약자 혹은 다수의 대중'의 자리에 우리 지구생명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인 '미래세대'나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적 환경' 즉, '생태계' 같은 것들을 포함시킨다. 그래서 환경 윤리 분야에서는 '권리'니, '도덕적 지위'니, '본래적 가치(intrinsic value)'니 하는 것들을 인간에게 부여할 뿐만이 아니라 동식물과 같은 생명체 그리고 무생물적 자연환경과 같은 생태계들까지 확장하여 부여하고자 한다.
실제로 서양적 전통에서 권리는 단계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알려진다. 권리가 처음 문서상으로 부여된 것은 '대헌장(Magna Carta)'(1215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땅을 소유한 백인 남성 귀족에게서만 권리가 부여된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권리는 '노예해방선언'(1863년)을 통해 노예로 그리고 이후 흑인, 여성 등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1973년에는 '멸종위기종을 위한 법안(Endangered Species Act)'을 통해 드디어 동물까지 권리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환경윤리에서는 식물을 포함하는 생명체들 그리고 무생물적 환경에까지 도덕적 지위나 본래적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물에 권리나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근거는 대략적으로 그것들이 '고통'을 느낀다거나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태계는 물론 자연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 상호 교환하는 과정에서 숨을 쉬고, 먹고, 마시고, 분해해야 하는 '우리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이기에 본래적 가치를 부여해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열망이나 이념이 17, 18세기에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기폭제가 되었고 그것이 노예건 흑인이건 여자건 노동자건 모든 인류에게 확장되었듯이, 환경윤리 또한 인간에 의해 부당하게 억압 및 착취당하고는 있는 우리 지구 생명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해방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전통의 확장이나 윤리의 진화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생태민주주의에서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생태계도 시민이고 그것들도 대표권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간들은 자연의 '정복자'라기보다는 그저 생명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 즉 '시민들(citizens)'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의 동료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과 또한 공동체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을 함축한다. 자연의 정복이나 파괴, 착취, 남용이 아니라 서로의 권리나 가치를 존중하는 건전한 공동체 속에서만 인간의 삶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 간의 공동체가 그러하듯 지구 생명공동체에서도 사적 이익 추구에 여념이 없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아무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더라도 참된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지구 생명공동체에서도 인간중심주의라는 이념으로 무장되어 인간의 사적 이익추구에 여념이 없는 인간집단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아무리 생태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되더라도 참된 공동체가 아니고 지속될 수가 없다. 참된 생명공동체란 생명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자신의 발전과 동일시하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이다. 환경윤리에서는 이와 같이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지구생명공동체 모두에 자유와 평등이 실현될 때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이든 사실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 그나마 나은 제도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근래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경험하면서 그리고 생태민주주의라는 제안을 살펴보면서 민주주의는 쉽게 완성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일시적 승리에 도취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유지는 물론 그것의 확장 발전을 위해 끝없는 성찰과 실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도종환 “아직 공개 못한 김기춘 블랙리스트 문건 더 있다”
[인터뷰] 블랙리스트 시집《검은 시의 목록》 출간한 도종환․김성규…부모에게도 연좌제 적용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7.03.16(목) 09:27:48
1월9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7차 청문회.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입에서 마침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답이 나왔다. 조 전 장관은 국조특위 위원들의 계속된 질의에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답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결국 조 전 장관을 포함해 지난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구속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하루 앞둔 3월9일, 시사저널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두 명의 시인을 만났다. 시인으로서 국회에 입성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성규 시인. 모두 지난 정권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블랙리스트 시인’들이다. 또한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시를 모아 만든 시집 《검은 시의 목록》에 시 한 편씩을 올린 이들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윤선 전 장관의 입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도종환 의원은 2015년 이후 줄곧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 제기를 해왔는데, 처음 블랙리스트를 인지한 건 언제였나.
도종환(도)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서 주는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심사의원들의 제보로 시작됐다. 당시 심사과정에서 문예위 직원들이 찾아와 특정인 명단을 들이밀며 “선정 대상에 배제해달라”고 하더라는 거였다. “안 빼주면 이 사업 제대로 진행이 안 될 것이다”는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이 제안을 끝내 거절하자, 문예위가 임의로 최종심사에 오른 사람 중 30명을 빼버렸다.
김성규(김) 이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심사위원들이 녹음파일을 폭로해버렸다. 2015년 8월의 일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인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목됐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도) 우리가 확보한 증거자료 가운데 문체부에서 작성한 대외비 보고용 공문이 있다.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 관련 현안’이란 제목의 이 공문엔 블랙리스트 명단 속 인물을 지원사업에서 배제해야하는 목적과 주요 조치 실적, 문제점과 향후 대응방안까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란 게 단순히 ‘명단’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특정 인물에 대해 명백한 차별과 지원배제를 가한 구체적 정황까지 있다.
특정인 혹은 단체에 재정 지원을 얼마나 해줬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지 여부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재정적 배제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배제 등 사회적 배제 여부도 남아 있다. 해당 공문엔 처리과정에서 진행 여부를 승인 혹은 불승인하는 몇몇 주체들의 의견이 이니셜과 함께 표기돼있다. ‘K(국정원)’‘B(청와대)’‘1차장’ 등이 특정인에 대한 지원에 대해 ‘배제’ 혹은 ‘양해’해줬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대외비 공문서 얘기를 좀 더 해달라.
(도) 문서의 일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례로 2015년 5월21일에 작성된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 관련 현안’ 자료에는 ‘주요 조치 실적’으로 ‘공로사업 중 329건 배제 조치’란 항목이 있다. 2014년6월부터 2015년5월 현재까지 문체부가 주도해 지원을 배제한 사업이 분야별로 보고돼 있다. 이 중 문예위 사업의 경우 총 3360건 신청된 사업에 대해 133건을 배제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예술인복지분야, 공연예술분야, 미술분야 등등 누수한 영역에 걸쳐 이 같은 배제가 이뤄졌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이 구속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개입을 명백히 보여주는 이런 물증 때문이었다.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고 검찰 측의 비공개 협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 모두 공개할 순 없지만, 자식이 블랙리스트 예술가면 부모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인터뷰 당시는 대통령 파면 전이었다)가 들어선 지난 4년은 한국 문화사에 있어 ‘암흑기’로 기록될 것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안 오르고 여부를 결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도) 김기춘 전 실장이라는 한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었다. 극우에 선 이념 가치에 바탕을 둔 판단이었다.
특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2014년 4~5월 사이 국민소통·행정자치·사회안전·경제금융·교육·문화체육·보건복지·고용노동 등 비서관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해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도록 했다. 야당 후보자 지지선언을 하거나 정권 반대운동에 참여하거나 주관적으로 좌파성향으로 선별한 개인과 단체가 그 대상이었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 작성 초기엔 모두 3000여개의 ‘문제단체(좌파성향으로 구분된 단체)’와 8000여명의 ‘좌편향 인사’를 솎아냈다.
(김) 김 전 실장이 사회 전영역에 걸쳐 ‘좌편향 인사 및 단체’를 전수조사하고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문에 블랙리스트는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지금까지 문화예술계만 드러난 것이다.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세력과 야당 지지자들까지 모두 블랙리스트로 규정했다면, 블랙리스트는 이념적인 것은 물론이요, 지극히 정파적인 것이 아닌가.
(도)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2013년 8월21일부터 시작됐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게 같은 해 8월8일이다. 당시 그는 “지금의 형국은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김기춘의 이념은 극단적으로 편향돼있었다. 그는 문화예술계의 90%이상이 좌편향돼 있다고 봤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검찰에서도 “나는 이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김 전 실장의 모습에서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의 모습을 봤다. 아이히만은 나치 정권 몰락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서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지시를 이행하는데 충실했을 뿐이며,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면 양심에 괴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이런 그를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표현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나는 지난 국조특위 청문회에 나온 김기춘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아무 책임과 잘못이 없는, 그저 맡은 바 소임을 다한 ‘늙은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포장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그의 무능함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능.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다.
박 전 대통령(인터뷰 당시만 해도 파면 전이었다)의 승인 없이 일련의 일들이 진행될 수 있었을까.
(도) 김기춘의 시작은 대통령의 ‘말’이었다. 검찰의 공소장엔 대통령이 CJ에서 만드는 영화와 방송이 편향돼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2012년 대선 당시 CJ E&M에서 운영하는 채널 중 하나인 tvN의 한 프로그랜에서 <여의도 텔레토비> 등 풍자 코너가 많았다. 거기에 근거해 김기춘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시작한 것이다. ‘불온한 예술가’들을 걸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는 원래 불온하다” 의원님께서 한 인터뷰에서 하신 말이다.
(김) 시집 《검은 시의 목록》을 읽어보라. 그 속에 담긴 시들이 불온한가. 그저 일상의 한 단면을 담고, 슬픔에 공감하고 아픔에 달래주는 그런 평범한 시들이다.
(도) 그런데 또, 예술가가 불온하면 어떤가? 시인은 불온하다. 연극하는 사람은 삐딱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예술가인가? 전제주의 국가의 월급 받는 시인이 아니라면 현실에 대해 마냥 찬양하는 글만 쓸 수 있을까. 창조란 비판과 저항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시집 《검은 시의 목록》에 수록된 나희덕 시인의 ‘파일명 <서정시>’ 중에서
나희덕 시인의 시 ‘파일명, <서정시>’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데크나메 리릭(Deckname Lyrik)이라는,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체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에 대한 시다. 당시 구동독 정보국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도 불온하다 보고 사찰을 한 것이다.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라고, 시인은 질문을 한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시인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독재자다.

검은 시의 목록 책표지
그렇다면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이들, 궁극적으로 최종 책임자였던 대통령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해야 하나?
(도) 어떤 국민이든 헌법에 의해 감시받지 않을, 검열받지 않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또한 표현․창작․출판의 자유가 있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에 따른 지원배제는 헌법 위반이자 형사상 위법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당시 ‘문화융성’을 국정 지표로 내걸었다. 또 문화가 국력인 나라를 만들겠다 공언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만든 나라는 문화가 국력인 나라가 아니라 문화가 폭력인 나라였다. 또 문화의 가치가 곳곳에 스며드는 문화사회가 아니라 공안의 가치가 곳곳에 스며든 야만의 사회였다. 결코 용납해서도 용서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사법처리 해야 한다. 관련된 기관이나 산하 단체까지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은 시의 목록》은 저항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블랙리스트 시인들의 작품으로만 만들어진 시집.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김) 지난해 말 친한 시인들끼리 모였을 때 이런 책 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후 어떻게 책의 방향을 잡을까 고민했다. 저항 시만 묶기보단 시시인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자고 합의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 명단 가운데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한 시인을 주로 담았다. 원로 신경림, 강은교 시인부터 박준, 박소란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섞어 99명 시인의 시를 한데 모았다. 그러니까 모두 99편의 시가 담긴 셈이다.
이 책을 펴낸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일이지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99편의 시를 읽다 보면, 하나의 검은색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색으로 빛나는 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탄핵 이후 한국은 어떻게 돼야 하나(이 질문은 대통령 탄핵 이후 전화로 물었다).
(도) 구치소 청문회 당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제가 직접 물었다. “장․차관 인사자료 같은 것도 최순실에게 갖다줬냐. 대통령의 지시였느냐”고 묻자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의 포괄적 지시가 있었다”고 답했다. 대체 최순실이란 개인이 누구길래 국정원 기조실장, 1․2차관 임명 후보자를 그에게 보고하고 승인받는가. 분명히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직분과 권한에 벗어나는 행동이다. 대통령 탄핵은 마땅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국가 운영을 맡길 수 있겠는가.
이젠 부패․부정․특혜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박근혜가 되면 온 나라가 순실이 밥상이 될텐데..."


▲ <또 하나의 가족-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조용래 지음, 모던아카이브 펴냄) ⓒ프레시안
앞으로 검찰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온 사회가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