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이상한 대통령'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이제 '5월 대선'…문재인 대세론 위협하는 변수들

일취월장7 2017. 3. 11. 11:06

'이상한 대통령'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살림이야기] 한국 정치의 환절기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2017.03.11 10:45:05


2016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시기를 한국 정치의 '환절기'라 한다면, 이 환절기는 언제 끝날까? 우리 사회는 어떤 정치의 계절을 떠나보내기 위해 환절기의 부산함과 불안감, 설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20대 총선, 동료 시민들의 본심을 알게 되다

2016년 가을, 이 사태는 '이상한 대통령'과 그의 오랜 친구들이 행한 기상천외한 행태들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상한 대통령'과 위헌·위법 행위를 공모했던 친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청와대 참모, 임명직 공직자, 직업 공무원, 집권당 정치인, 교육계 종사자, 재벌기업 총수와 관리자 등. 생각해 보면 '이상한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표변한 게 아니었다. 최소한 집권 직후부터는 계속 이상했다. 자신의 선거공약을 가타부타 변명 한마디 없이 파기해 버리고도 당당했고, 시민 수백 명이 수장되는 참사에도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시민들을 '무찔러야 할 적, 청산해야 할 적폐'로 대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다수 시민은 점점 더 그의 기이한 인식과 행태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언론은 그에게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지지해 준다던 '콘크리트 지지층'은 결국 나의 동료 시민들이었다. 그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할 수 없었던 시민들은 서글펐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시민들의 뜻을 존중했고 좌절했고 체념했다.

그러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의 정당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라던 관측을 뒤집고, 그를 지지할 수 없었던 시민들이 다수임을 서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또 정치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태 초기 언론과 정치인 들이 제공하는 단발성 정보만으로도 시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관련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며 대통령은 사임하라고 요구했고, 그가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자 곧 국회더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매주 이어지는 광장을 보면서 드디어 검찰이 수사하기 시작했고 법원이 판결하기 시작했으며,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보들의 조각이 하나씩 맞추어지면서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정보 제공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다수 시민들이 뒷배가 되어 국회와 검찰과 법원과 언론과 헌법재판소를 움직여서, '이상한 대통령'의 해임이라는 목적지로 꾸역꾸역 역사의 수레를 밀고 가는 중이다.(이 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이전에 작성됐습니다. 헌재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했습니다.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과연 몰랐을까? 

이 사태의 주역은 의심할 바 없이 대한민국 시민들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광장에 자주 혹은 드물게 섰던 시민들도 있을 것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탄핵 열차의 순항을 응원했던 시민들도 있겠고, 지금도 부단히 갈등하면서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을 테지만 다수의 합력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함께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이 계절, "'이상한 대통령'이 해임됐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은 여전히 남는다. 20대 총선 이후,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전방위적으로 벌인 위헌·위법행위에 대한 보도를 쏟아 냈던 언론들이, 그 이전에는 과연 몰랐을까? 그제야 바삐 움직였던 정치인들도 몰랐을까? 검찰은, 법원은 또 몰랐을까? 광장에서 다수 시민의 의지를 확인한 이후에야 간신히 제보자의 대열에 섰던 많은 평범한 시민들은, 왜 그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광장의 시민들이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에, 또다시 언론과 정치인 들은 침묵하고 검찰은 조사하지 않고 법원은 제대로 판결하지 않으며 잠재적 제보자들의 입이 닫혀 버린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혹자는 이런 문제에 대비하여 언론개혁, 검찰개혁, 사법 개혁, 정치개혁 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 우리가 이런 '개혁' 꾸러미들을 무시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개혁'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나? 이걸 하면 언론이, 검찰이, 정당이, 국회가, 법원이 제대로 일한다고 해서, 지지도 해 주고 법도 만들어지곤 했다. 물론 그 방향이 틀린 것도 있고, 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도 있고, 꼭 필요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제도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더 노력해야 한다.

2016년 가을, 자각하지 못했던 우리 시민의 힘  

그런데 2016년 가을 이후 사태는, 정작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시민의 힘이다. 검찰이 수사하게 만들고 국회가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게 하고 언론이 보도 경쟁을 하게 만든 건, 시민의 힘이었다. 문제는, '이상한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사태를 엉망으로 만든 후에야, 몇 달 동안 추운 광장에서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는 시민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공적 제도가 몇 년에 한 번 겨우 열리는 광장의 시기에만 시민을 두려워하게 둬서는, 지금 이 계절이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언제나, 전국 어디서나, 공공기관들이 시민의 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두려움 없이 권력의 문제를 공유할 수 있고, 수십만 명이 모이지 않아도 경찰의 차벽 없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언제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의혹을 이야기하면 형법상 명예 훼손죄로 재판정에 서야 하고, 그들이 정해 준 시기가 아닌 때에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행동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거나 징역을 살아야 하고, 집회를 하려면 경찰의 허가를 구걸해야 하고, 제보자는 생계와 생명의 안전을 위협받는 사회에서는 시민의 힘을 느끼게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계절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적어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온전히 누리게 될 때가 되어야 끝날 것이다. 우리의 정치 환절기는 아직 꽤 남은 셈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광장에서 온기를 나누었던 시민들이 함께라면, 좀 긴 환절기도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 2016년 11월부터 2017년 지금까지 시민들은 ‘이상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끝내기 위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며 시민의 힘을 자각했다. 그러나 단지 대통령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온전히 누리는 때 우리의 정치 환절기가 끝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싸워야할 때

[살림이야기] 한국 문화예술정책의 환절기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2017.03.11 10:41:35



블랙리스트의 폭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는 과정에서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다시 등장했다. 예전에는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찍어 내는 문서가 블랙리스트였는데, 이번에는 정부 정책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문화예술계 인물이나 단체를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문서였다. 사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부 공모 사업에서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사업 내용과 무관하게 계속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이 리스트를 작성한 사람들이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니 한숨이 나온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의 인식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자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반성은커녕 "좌파 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는 일은, 문체부 장관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해군 기지 건설이나 4대강 사업,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도 좌파로 내몰리는 세상에서 이런 인식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해도 문제없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정부가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논리는 한국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침해하곤 했다. 그리고 예술 활동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가능하고 때론 필요하지만 논쟁으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속적인 기준에 예술을 맞추려는 것은 폭력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법정이 예술에 관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예술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억압은 지난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채형복의 <법정에 선 문학>(한티재 펴냄)은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필화 사건 일곱 건을 다룬다. 필화란 작가의 글이 법을 어기거나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제재를 받는 일을 가리키는데, 주로 기성 권력이나 도덕 규범 등을 비판하거나 풍자한 작품들이 대상이 되었다. 채형복은 많은 필화 사건들 중에서 남정현 단편소설 <분지>(1965), 염재만 장편소설 <반노>(1969), 김지하 시 <오적>(1970), 양성우 시 <노예수첩>(1977), 이산하 서사시 <한라산>(1987), 마광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1991), 장정일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과거 판례와 법률에 의존해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이 문학작품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채형복은 법관들이 이런 판결을 내리려면 '법적인 정의'를 넘어 '시적인 정의(poetic justice)'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박용준 옮김, 궁리 펴냄)를 인용해서 채형복은 "문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공적 합리성"(27쪽)을 주장한다. 시적 정의는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에 따르는 법률과, 감성과 상상력에 따르는 문학의 결합을, 인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상상력의 결합을 추구한다. 누스바움은 이런 관점에서 '시인-재판관', '재판관-시인' 개념을 제안하는데, 채형복도 법관이 시적 정의의 관점을 가져야 작품에 대한 판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필화 사건 일곱 건 중 이 시적 정의의 관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건은 남정현의 <분지> 사건이다.  

남정현은 소설에서 미국에게 지배당하는 한국의 현실을 제목처럼 '똥 덩어리의 땅(糞地, 분지)'으로 묘사했고, 북한은 작가의 허락 없이 이 소설을 조선노동당 기관지에 무단 전재했다.(지금이라면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내용 때문에 논란이 일었을 텐데, 당시에는 최초로 문학작품의 반공법 위반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1심에서 작가에게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반공법 제4조, 제16조와 국가보안법 제11조, 형법 제57조를 적용해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6월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시적 정의는커녕 사법 정의조차 실현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건 당시 재판정에 제출된 한승헌 변호사의 변론서다. 이 변론서의 결론은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작가로서의 창작 활동 및 그 발표의 자유를 행사하였을 뿐이고 달리 공소장 기재와 같은 범죄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인은 '무죄'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한 작가의 '憤志'를 곡해함은 '糞紙'의 위험을 초래할 뿐이다."(68쪽)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변호인은 작가가 쓴 '분지'라는 제목을 활용해 작가의 '억울하고 분한 뜻(憤志)'을 왜곡하면 정말 '황색 찌라시(糞紙)'가 될 뿐임을 강조했다. 재판관은 아니었지만, 변호인은 시적 정의의 관점을 가진 셈이다. 한국처럼 법관의 정의(正義)가 권력자와의 정의(情誼)만을 고려하는 곳에서, 시민의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 시민들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라는 의미로,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였다. ⓒ프레시안(최형락)


자유란 싸우는 과정  

물론 자유가 무조건적인 선(善)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는 선물이자 저주다. 노동자에게 굶어 죽을 자유가 있고, 인간에게 자신의 삶을 망칠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자유는 없고, 타인의 삶을 망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리고 동학의 교리처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 오심즉여심)'이라 생각한다면, 우리의 자유는 누구도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되고 그 삶을 비하하거나 망치면 안 된다. 자유에도 지켜야 할 선(線)이 있다.  

사이토 준이치는 자유란 "사람들이 자기/타자/사회의 자원을 이용하여 달성·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을 달성·향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 타자의 동일한 자유와 양립하는 한에서 그 자유는 옹호된다"(21쪽)고 정의한다. 곧 자유의 실현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타자와 사회를 필요로 한다. 장애인이 자유를 실현하려면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타자의 도움과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듯이 사회적 약자는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 때로는 남성의 목소리를 막아야 여성이 이야기를 할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해야 자유가 보장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유는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권력으로 접근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시민은 사회가 위험해질수록 안전을 위해서라면 감시를 강화하고 기본권을 제한해도 좋다는 생각과 싸워야 한다. 자유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CCTV가 계속 설치되고 개인정보들이 쉽게 거래되거나 통제되는 현실, 언론 통제나 이동권 제한, 평화와 안전을 내세운 개인의 억압과 싸워야 한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 지금은 싸워야 한다.



이제 '5월 대선'…문재인 대세론 위협하는 변수들

민주당 경선, 안철수 뒤집기, 박근혜 불복 등 정치 변수 첩첩이
곽재훈 기자       
2017.03.10 17:36:03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씨에 대해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내림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가원수 겸 행정 수반의 자리는 공석이 됐다. 향후 60일 간의 대선 경쟁은, 헌재가 결정 선고 망치를 두드리는 순간 이미 시작됐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10일 오후 현재, 차기 주자들 가운데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물론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이미 대선 구도에서 '상수'가 돼 있다.

문 전 대표는 전날인 9일부터 이날까지 공개 일정을 잡지 않고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탄핵 이후' 메시지를 가다듬는 데 골몰해 왔다.  

조기 대선이라는 특성상, 인물이나 정책 검증 및 상호 토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지지율 1위 후보인 문 전 대표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셈이다.

문 전 대표를 돕고 있는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선까지는 시간이 얼마 없다. '문재인 대세'가 뒤집힐 만한 여유가 많지 않다"며 "우리 쪽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문 전 대표의 숙제는 '확장력'으로 꼽힌다.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다는 것. 또 지지세가 강하긴 하지만, 2012년 박근혜 당시 후보만큼 확고하지는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야권 내의 '反문재인' 기류, 구심점은…김종인? 안철수? 

문 전 대표의 '안티'는 사실 보수층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야권 내에서도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심리는 있다. 이는 민주당 내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을 돕거나, 이후 대선 본선에서 '반(反) 문재인 연대'를 구상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최근 민주당 내 비문계로 꼽히는 박영선 의원 등 현역 의원 일부는 안희정 지사에 대한 공개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안 지사를 돕는 의원들은 "패권이 적폐를 낳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기도 한다.  

또 안 지사는 지난달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과 관련해 "어떤 방식의 민주공화정을 작동시킬지 논의를 촉진할 것이며 그 결과가 임기 단축까지 포함한다면 따를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 그룹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 놓은 포석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야권 내 '반문 연대'의 기치·명분 가운데 하나가 개헌이다. 지난 8일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역시 개헌을 고리로 한 '180석 연대'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관련 기사 : 김종인 "180석 연합" 구상, 다목적 포석?) 

하지만 안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결선투표제까지 가는 혈투 끝에 문 전 대표를 꺾을 확률은, 현 상황만 놓고 보면 그리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여야를 포괄하는 '180석 연대'를 건설하고, 그 지휘봉을 잡아 대선에서 역할을 하는 것까지의 모든 과정을 2달 안에 끝낼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민주당 경선이 문 전 대표의 무난한 승리로 끝나고, 이른바 '제3지대' 연대가 대선의 격랑에 별 힘을 못 쓰고 사그라지는 상황에 승부수를 걸고 있는 것은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국민의당이다.  

안 전 대표는 올해 초부터 공공연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는 9일 SBS 인터뷰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이제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누가,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지, 미래에 대한 준비를 누가 더 잘 할 수 있는가로 기준이 바뀌게 된다"며 "그때부터가 본격적 시작"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를 돕고 있는 참모들 역시 "현재까지의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 탄핵 인용 이후,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부터가 진짜 싸움"이라고 한다. 즉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 보수 성향 후보들이 20% 이하의 득표율에 머물고, 본선이 '사실상' 문재인 대 안철수의 1:1 대결이 되면 보수 쪽 표심에 더 확장력이 큰 자신에게 더 승산이 높다는 게 안 전 대표 쪽의 계산이다. 일종의 '막판 뒤집기'라고도 할 수 있다. 

보수는 가만히 있을 것인가…박근혜, 깃발 드나?
 

문제는 안 전 대표 쪽의 계산이 맞아 들어가려면, 보수가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있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전무후무한 '대통령 탄핵' 상황 이후에 보수가 재집권을 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때문에 사태를 논리적으로만 보면 이번 대선에서 보수는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선에서 이들이 꼭 얌전히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대선에 임하는 보수 세력의 동력은 집권 가능성에 대한 희구라기보다는, 그와는 좀 다른 데 있을 확률이 높다. 크게는 두 가지다. 대선 이후의 정계 개편 지분에 대한 선행 투자, 그리고 '인정 투쟁.'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사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을 잡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꿈을 꾸고 있을 확률은 낮다. 오히려 대선 이후 보수의 맹주, 적어도 '영주' 정도는 될 것이라는 기대가 더 현실적 요인이다. 자유한국당에 난립한,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하면 지지율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후보들의 동력은 말할 것도 없다.

또 다른 동인은 현실적이지조차 않지만, 그게 현실에서 발휘할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수도 있다. 박근혜 씨를 지지했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은 유권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친박 세력의 '인정 투쟁'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가부설이 횡행하지만, 만약 황 대행이 출마를 감행한다면 그의 동기는 현실적인 승리 가능성이나 '대선 이후' 따위가 아니라 이같은 정치적 소명 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황 대행은 보수 진영의 잠재적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야권 후보들에게 '현실적'으로 위협이 될 만한 지지도를 받고 있다.

이들의 인정 투쟁에 기름을 부을 것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움직임이 될 것이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서도 박 전 대통령은 '나는 억울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며 정치판에 지속적으로 불씨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구속이라도 되지 않는다면, 탄핵 이후에도 지역과 세대를 기반으로 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