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다음 대통령의 자질 - 탄핵 심판 불복? 그것은 '혼란'이 아니다
일취월장7
2017. 3. 10. 14:26
다음 대통령의 자질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3월 09일 목요일 제494호
다음 대통령은 어떠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까?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살펴보아야 한다. 선거공약은 주변 참모들이 만들어준 리스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공약이 모두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로서 어떠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졌으며 헌법에 기술된 인간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검증을 회피하고 대통령이 되어 이 지경이 되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부산대 행사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도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평창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한 대담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21세기 통섭의 시대에 올바른 대화 자세라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투명한 어휘, 분명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부연설명이나 해명을 해야 하는 발언은 이미 잘못된 것이다. 안 지사 측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반어법적 발언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설명도 틀렸다. 오히려 그는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선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책이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심 또는 생각을 반영한 점이 분명하다.
안 지사는 이러한 자세가 21세기 통섭의 지성사에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학문의 경향이 지식 융합을 통해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루트번스타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라는 통합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로 위장하고 헌법재판소 법정에서까지 태극기로 치장한 정치세력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말장난이거나 반대 세력에게도 굄을 받고자 하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말실수나 선거 전략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럴 수 있거나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 지사의 생각은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착각하는 것, 아니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착오로 보인다. 이러한 정견으로는 집권을 하더라도 당면한 경제개혁, 재벌개혁, 정치개혁, 검찰개혁 등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부산대 행사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도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평창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한 대담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21세기 통섭의 시대에 올바른 대화 자세라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투명한 어휘, 분명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부연설명이나 해명을 해야 하는 발언은 이미 잘못된 것이다. 안 지사 측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반어법적 발언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설명도 틀렸다. 오히려 그는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선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책이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심 또는 생각을 반영한 점이 분명하다.
안 지사는 이러한 자세가 21세기 통섭의 지성사에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학문의 경향이 지식 융합을 통해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루트번스타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라는 통합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로 위장하고 헌법재판소 법정에서까지 태극기로 치장한 정치세력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말장난이거나 반대 세력에게도 굄을 받고자 하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말실수나 선거 전략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럴 수 있거나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 지사의 생각은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착각하는 것, 아니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착오로 보인다. 이러한 정견으로는 집권을 하더라도 당면한 경제개혁, 재벌개혁, 정치개혁, 검찰개혁 등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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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안 지사는 인간 행위를 심판하되 행위자인 인간의 생각은 심판하지 말고 선의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평범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드러난 것이 인간의 행위다. 결과적으로 행위를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행위를 낳은 인간의 사고, 생각의 출발점을 확인하지 않으면 행위의 의미를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은 일베의 ‘폭식투쟁’도 그들의 의식을 살펴보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음식 섭취 행위에 불과하다. 그들의 의도는 언어도단이고 잔인했다.
정치의 요체는 조율 혹은 조정이지, 봉합이나 통합 아냐
정치적 이념은 속성상 대립 진영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책은 이해득실이 갈리기 때문에 반대자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드물다. 여러 정당이 존재하는 것도 생각과 가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희정 지사는 대연정을 주장했다가 해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를 보면서 안 지사는 관념적 이론가 내지 허상을 좇는 정치 신인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자기 길을 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넘나들면서 모두에게 예쁨받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치의 요체는 상이한 정책 간의 조율 혹은 조정이지 모두를 아우르려고 하는 봉합이나 통합이 아니다. 헌법적 기본 가치를 외면하는 상대방과 마주 앉아 통합이나 협치를 말한다면 궤변이고 정치적 야합이다. 안 지사는 복지정책이나 대학 등록금 문제 등에서 개혁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주장을 적잖이 했다. 문제의 핵심을 뚫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이에 더해 정치적 견해까지도 보수적인 유권자를 더 끌어들이기 위한 선거 전략을 계속한다면 많은 유권자들은 그를 책략적 정치인으로 의심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주 들어 일부 보수 성향 언론에서는 '혼란'과 '불안'에 대한 우려에 지속적으로 지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정치적 혼란? 사실 당연하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런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혼란'이 일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불을 지른다든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격한다든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든가 하는 범죄 행위를 모의한다면, 이는 무슨 '혼란' 같은 게 아니라 '테러'라고 명명돼야 할 일이다.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찰의 경비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럼 만약 역시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법적인 집회를 벌이면서 헌재를 비난하고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회 혼란'일까? 나아가 우려할 만한 '국론 분열'일까?
아니. 이 경우에는 경찰의 경비나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닌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다.
먼저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촛불집회와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76.9%에 달한 반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이 기관의 앞선 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의견은 대략 80% 전후다. 다른 기관인 '한국갤럽'의 지난 3일 조사에서 역시 탄핵 찬성이 77%, 반대가 18%로 나왔다. 통상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앞서는 비율이 2:1 정도가 되면 '압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도 절대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본다. 응답자의 과반이나 2/3 등 절대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조사 수치로 보더라도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아, 혹시 실제로는 탄핵 반대 의견이 훨씬 높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혹시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공론장에서 같이 논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건강을 빌지만, 더 읽거나, 아니 보거나 댓글은 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창을 닫아 주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 2009년 교육방송공사(EBS) 여론조사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믿느냐는 조사를 했을 때 30.6%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2년 한국갤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진화론은 45%, 창조론은 32%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 18~20%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보다도 낮다.
물론 소수 의견이라고 박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모든 공민에게 천부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다. (불행히도 이 원칙이 때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태다.) 따라서 박근혜 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는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이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씨가 결백하고 무죄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무슨 형사 처벌을 받거나 적법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적합한 자리'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사회 통합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포용'과 '이해'를 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 불복 세력은 어떤 공인된 사실도, 합리적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 씨가 결백하다고 앞뒤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토양이 '똘레랑스(관용)'이라도, 이걸 어떻게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일이다. 그냥 하게 놔두면 된다. 다만 '그게 공론장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좀더 엄중히 판단하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관심이 최선의 해법이다.
비교해 보자면, 오늘 이 순간에도 국회 앞이나 법원 앞, 검찰청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1인 시위는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가치, 이른바 '뉴스 밸류(news value)'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기국' 집회는 왜 달라야 하나?
보통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상은 둘 중 하나다. 다수에 의한 지배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거나. 촛불집회는 둘 모두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핵 불복 집회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탄핵 불복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사회 혼란'이 아니며, 단지 '소수의 불만'일 따름이다. 그나마 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는 달리, 이 불만에는 합당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소수의 불만'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크게 받아 울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는 물론 각 언론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평가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든 한국민은 (원칙적으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든 이른바 '대선 불복'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다만 우리 언론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에 시민권을 부여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시 발휘됐던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성이, 탄핵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치적 혼란? 사실 당연하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런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혼란'이 일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불을 지른다든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격한다든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든가 하는 범죄 행위를 모의한다면, 이는 무슨 '혼란' 같은 게 아니라 '테러'라고 명명돼야 할 일이다.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찰의 경비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럼 만약 역시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법적인 집회를 벌이면서 헌재를 비난하고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회 혼란'일까? 나아가 우려할 만한 '국론 분열'일까?
아니. 이 경우에는 경찰의 경비나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닌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다.
먼저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촛불집회와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76.9%에 달한 반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이 기관의 앞선 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의견은 대략 80% 전후다. 다른 기관인 '한국갤럽'의 지난 3일 조사에서 역시 탄핵 찬성이 77%, 반대가 18%로 나왔다. 통상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앞서는 비율이 2:1 정도가 되면 '압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도 절대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본다. 응답자의 과반이나 2/3 등 절대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조사 수치로 보더라도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아, 혹시 실제로는 탄핵 반대 의견이 훨씬 높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혹시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공론장에서 같이 논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건강을 빌지만, 더 읽거나, 아니 보거나 댓글은 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창을 닫아 주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 2009년 교육방송공사(EBS) 여론조사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믿느냐는 조사를 했을 때 30.6%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2년 한국갤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진화론은 45%, 창조론은 32%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 18~20%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보다도 낮다.
물론 소수 의견이라고 박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모든 공민에게 천부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다. (불행히도 이 원칙이 때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태다.) 따라서 박근혜 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는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이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씨가 결백하고 무죄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무슨 형사 처벌을 받거나 적법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적합한 자리'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사회 통합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포용'과 '이해'를 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 불복 세력은 어떤 공인된 사실도, 합리적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 씨가 결백하다고 앞뒤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토양이 '똘레랑스(관용)'이라도, 이걸 어떻게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일이다. 그냥 하게 놔두면 된다. 다만 '그게 공론장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좀더 엄중히 판단하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관심이 최선의 해법이다.
비교해 보자면, 오늘 이 순간에도 국회 앞이나 법원 앞, 검찰청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1인 시위는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가치, 이른바 '뉴스 밸류(news value)'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기국' 집회는 왜 달라야 하나?
보통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상은 둘 중 하나다. 다수에 의한 지배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거나. 촛불집회는 둘 모두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핵 불복 집회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탄핵 불복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사회 혼란'이 아니며, 단지 '소수의 불만'일 따름이다. 그나마 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는 달리, 이 불만에는 합당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소수의 불만'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크게 받아 울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는 물론 각 언론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평가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든 한국민은 (원칙적으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든 이른바 '대선 불복'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다만 우리 언론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에 시민권을 부여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시 발휘됐던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성이, 탄핵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탄핵 심판 불복? 그것은 '혼란'이 아니다
[기자의 눈] '집회의 자유' 딱 거기까지만!
곽재훈 기자 2017.03.10 17:11:23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주 들어 일부 보수 성향 언론에서는 '혼란'과 '불안'에 대한 우려에 지속적으로 지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정치적 혼란? 사실 당연하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런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혼란'이 일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불을 지른다든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격한다든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든가 하는 범죄 행위를 모의한다면, 이는 무슨 '혼란' 같은 게 아니라 '테러'라고 명명돼야 할 일이다.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찰의 경비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럼 만약 역시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법적인 집회를 벌이면서 헌재를 비난하고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회 혼란'일까? 나아가 우려할 만한 '국론 분열'일까?
아니. 이 경우에는 경찰의 경비나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닌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다.
먼저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촛불집회와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76.9%에 달한 반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이 기관의 앞선 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의견은 대략 80% 전후다. 다른 기관인 '한국갤럽'의 지난 3일 조사에서 역시 탄핵 찬성이 77%, 반대가 18%로 나왔다. 통상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앞서는 비율이 2:1 정도가 되면 '압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도 절대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본다. 응답자의 과반이나 2/3 등 절대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조사 수치로 보더라도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아, 혹시 실제로는 탄핵 반대 의견이 훨씬 높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혹시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공론장에서 같이 논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건강을 빌지만, 더 읽거나, 아니 보거나 댓글은 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창을 닫아 주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 2009년 교육방송공사(EBS) 여론조사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믿느냐는 조사를 했을 때 30.6%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2년 한국갤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진화론은 45%, 창조론은 32%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 18~20%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보다도 낮다.
물론 소수 의견이라고 박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모든 공민에게 천부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다. (불행히도 이 원칙이 때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태다.) 따라서 박근혜 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는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이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씨가 결백하고 무죄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무슨 형사 처벌을 받거나 적법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적합한 자리'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사회 통합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포용'과 '이해'를 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 불복 세력은 어떤 공인된 사실도, 합리적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 씨가 결백하다고 앞뒤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토양이 '똘레랑스(관용)'이라도, 이걸 어떻게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일이다. 그냥 하게 놔두면 된다. 다만 '그게 공론장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좀더 엄중히 판단하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관심이 최선의 해법이다.
비교해 보자면, 오늘 이 순간에도 국회 앞이나 법원 앞, 검찰청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1인 시위는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가치, 이른바 '뉴스 밸류(news value)'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기국' 집회는 왜 달라야 하나?
보통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상은 둘 중 하나다. 다수에 의한 지배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거나. 촛불집회는 둘 모두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핵 불복 집회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탄핵 불복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사회 혼란'이 아니며, 단지 '소수의 불만'일 따름이다. 그나마 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는 달리, 이 불만에는 합당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소수의 불만'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크게 받아 울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는 물론 각 언론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평가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든 한국민은 (원칙적으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든 이른바 '대선 불복'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다만 우리 언론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에 시민권을 부여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시 발휘됐던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성이, 탄핵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치적 혼란? 사실 당연하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가 비었는데, 그런 혼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혼란'이 일까?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불을 지른다든가, 특정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격한다든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든가 하는 범죄 행위를 모의한다면, 이는 무슨 '혼란' 같은 게 아니라 '테러'라고 명명돼야 할 일이다.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경찰의 경비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럼 만약 역시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법적인 집회를 벌이면서 헌재를 비난하고 무효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사회 혼란'일까? 나아가 우려할 만한 '국론 분열'일까?
아니. 이 경우에는 경찰의 경비나 수사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닌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다.
먼저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촛불집회와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언론의 그간 보도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76.9%에 달한 반면,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이 기관의 앞선 조사에서도 탄핵 찬성 의견은 대략 80% 전후다. 다른 기관인 '한국갤럽'의 지난 3일 조사에서 역시 탄핵 찬성이 77%, 반대가 18%로 나왔다. 통상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앞서는 비율이 2:1 정도가 되면 '압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도 절대적 다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본다. 응답자의 과반이나 2/3 등 절대 다수를 형성하지 못한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조사 수치로 보더라도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아, 혹시 실제로는 탄핵 반대 의견이 훨씬 높은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혹시 이 칼럼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여기서부터는 공론장에서 같이 논쟁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당신의 건강을 빌지만, 더 읽거나, 아니 보거나 댓글은 달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창을 닫아 주기 바란다.)
참고로 지난 2009년 교육방송공사(EBS) 여론조사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가운데 무엇을 믿느냐는 조사를 했을 때 30.6%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2년 한국갤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진화론은 45%, 창조론은 32%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의견 18~20%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보다도 낮다.
물론 소수 의견이라고 박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모든 공민에게 천부적으로 보장하는 나라다. (불행히도 이 원칙이 때로는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사태다.) 따라서 박근혜 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실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는 허경영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이 유인원에서부터 진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씨가 결백하고 무죄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무슨 형사 처벌을 받거나 적법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적합한 자리'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정치권에서는 사회 통합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포용'과 '이해'를 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탄핵 불복 세력은 어떤 공인된 사실도, 합리적 근거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 씨가 결백하다고 앞뒤 없이 우기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의 토양이 '똘레랑스(관용)'이라도, 이걸 어떻게 '다른 정치적 입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불필요한 일이다. 그냥 하게 놔두면 된다. 다만 '그게 공론장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좀더 엄중히 판단하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무관심이 최선의 해법이다.
비교해 보자면, 오늘 이 순간에도 국회 앞이나 법원 앞, 검찰청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1인 시위는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보도 가치, 이른바 '뉴스 밸류(news value)'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기국' 집회는 왜 달라야 하나?
보통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상은 둘 중 하나다. 다수에 의한 지배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거나. 촛불집회는 둘 모두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탄핵 불복 집회는?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탄핵 불복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사회 혼란'이 아니며, 단지 '소수의 불만'일 따름이다. 그나마 소수자 인권 운동 등과는 달리, 이 불만에는 합당하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다. 이런 '소수의 불만'을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크게 받아 울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는 물론 각 언론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평가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지난 201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모든 한국민은 (원칙적으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든 이른바 '대선 불복'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다만 우리 언론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에 시민권을 부여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당시 발휘됐던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성이, 탄핵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서도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씨, '8:0' 결과에 불복합니까?
[주장] 어설픈 '화해와 통합론'을 경계한다
2017.03.10 17:55:00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 씨가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란 불명예 속에 10일 파면됐다. 헌법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다. 오만과 타락으로 국정을 운영할 정치적, 도덕적 권능을 상실한 그에게 헌법재판소가 내린 마땅한 선고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박 씨의 파면 사유를 분명히 했다.
이로써 지난 석 달을 이어 온 박근혜 탄핵 심판은 광장에서 발현된 촛불 민의와 제도 기관인 국회 및 헌재가 이성적, 헌법적 가치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매듭됐다.
누적인원 1500만 명. 열아홉 차례의 주말 촛불 집회에서 확인한 수준 높은 시민들의 모습에 세계 언론들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박 씨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자 <뉴욕타임스>는 "한국 민주주의가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박근혜 대리인단의 헌재 능멸과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선동, 일부 친박 단체의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헌재 재판관들은 상식적인 판단으로 헌법적 가치를 지켜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법적 절차에 따른 권력자의 파면을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헌법, 즉 법의 수단에 의해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표현했던대로다. 최 교수가 말한 '촛불의 명예혁명'은 박 씨에 대한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 선고로 완성됐다.
국민들은 박 씨의 집권 기간 동안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을 수 없이 쏟아냈던 터라 이재명 성남시장이 "국민은 역사상 최초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이게 나라다"라고 한 말에도 울림이 있다.
하지만 피를 흘리지 않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될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우려가 없지 않다.
박 씨는 탄핵 인용 결정 뒤에도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입장조차 내지 않고 침묵 모드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누가 봐도 탄핵 불복의 의미일 수밖에 없다.
탄핵 반대를 주장했던 친박 단체의 불복 운동, 박근혜 동정론에 기대 정치적 입지를 모색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 선동에 기대 법 밖의 영역에서 장외 여론전을 전개하겠다는 뜻이다. 박 씨의 저항은 형사책임 앞에 직면한 '자연인 박근혜'의 반헌법적 몸부림이다.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보편적 믿음을 헌재가 확인한 만큼, 박 씨가 40년 지기 최순실 씨와 공모한 국정 농단과 이권 추구, 이 과정에서 삼성 등 대기업과 맺은 정경유착의 실체는 이제 검찰이 규명해야 할 몫이다.
일각에선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탓에 박 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늦춰질 거란 우려가 있다. 검찰의 좌고우면은 박 씨와 일부 탄핵 불복층에게 정치적, 사법적 반발의 시간과 공간을 열어주는 꼴이다. 검찰은 정치 일정과 관계없이, 특검 수사에 철저히 불응했던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박 씨에 대해 원칙에 따른 엄정한 수사로 사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은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탄핵이 인용된 직후부터 거리에선 탄핵 반대 세력과 경찰이 충돌해 불상사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 씨를 옹호하는 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야 할 책임은 누구보다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통합론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헌재가 보충의견으로 "탄핵 심판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탄핵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규정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광장의 민의를 바탕으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될 때부터 헌재의 선고가 나올 때까지 민심은 단 한 번도 분열 된 적이 없었다.
탄핵 찬반론을 기계적으로 나열해 '국론 분열 프레임'을 부추기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려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박근혜 씨를 탄핵한 민심과 헌재 선고에 대한 왜곡이다.
벌써부터 '용서와 화해'라는, 고상한 언어로 포장된 또 다른 교란도 일고 있다. 그러나 자기 책임을 인정한 박 씨의 진솔한 사죄의 변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데다, 박 씨에 대한 제대로 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등장한 '용서와 화해'는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파면 이후 가장 우려되는 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처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한 그가 국정 실패의 공동 책임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씨의 탄핵이 인용된 이상, 황교안 과도 정부의 정당성도 권위도 사라졌다. 망한 정부의 2인자인 그를 비롯해 내각의 그 누구도 사표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의아하다.
황 대행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면서도 "정부는 비상 상황 관리에 혼신을 다하겠다"며 되레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려는 행보다.
특히 황 대행은 이날 한민구 국방장관 등과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 도발 가능성'을 운운하며 정치적 오해를 자초하고 있다. 가뜩이나 전격적인 사드 도입으로 박근혜 정부의 실패한 외교안보 정책에 말뚝을 박은 그가 안보 정국으로 국면 뒤흔들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만약 황 대행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국민들과 정치권의 요구를 외면한 채 박근혜 없는 국정을 사유화하고 극우 세력에 편승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한다면, 그 역시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된 비상한 정국에 조기 대선 국면까지 열린 상황에서 대선을 향해 뛰는 주자들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라는 박근혜 탄핵의 의미를 미래화 된 국가 의제로 업그레이드시켜서 제시해야 한다.
80%의 탄핵 찬성 민심과 헌재의 8:0 전원일치 결정은 정치인들이 속기 쉬운 어설픈 타협론을 배척한다. 적폐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잠시 숨죽인 박정희 체제는 언제든 되살아난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 파면으로 시작된 대선은 탄핵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