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권한대행도, 최순실씨도 힘내시라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던지는 인상 깊은 한마디를 영어로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라고 한다. 본래는 긴 인터뷰 내용을 짧게 요약한 한마디를 뜻한다. 늙으나 젊으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코 박고 사는 요즘은 그야말로 사운드 바이트의 세상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이 사운드 바이트가 괴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대선이 당겨질 것이 확실해지면서 짧은 메시지가 횡행한다.
미국의 철학자 잭 보웬은 바로 이 단문을 읽어내는 데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경쾌하지만 소신 있게 한 줄 비난을 하거나 풍자의 이면을 집요하게 비틀어대 종종 읽는 사람을 깔깔대게 만든다. 그는 주로 자동차 범퍼 스티커에 새겨진 내용을 다루는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주여, 주님의 충직한 종들로부터 저를 구하소서.’ 그는 이 메시지를 이리저리 뒤집어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행해지는 위선과 폭력을 꼬집는다.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나,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사람들과 그걸 막으려는 사람들, 이미 대통령이 그만둔 거나 마찬가지라 치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신없이 사운드를 바이트하고 있다. 위기에 처하거나 간절히 원하는 게 있을 때 사람들은 생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그런  |
ⓒ한성원 그림 |
원색의 소리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잭 보웬 흉내를 내보고 싶어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까발려지는 내내 너무 오랫동안 정색을 했더니 좀 지쳤다. 힘든 때일수록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긴 말 중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이러려고 내가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였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긴 하다. 본인까지 포함하면 역대 대통령 중 좋은 꼴을 보고 그만둔 이가 없다. 황교안 국무총리처럼 과도기에 잠깐 얻어걸렸던 분들을 빼고는 모두 험한 일을 당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부터가 총에 맞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대통령직이 순탄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대세룡, 잠룡, 잡룡에 불사조까지.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조차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머리를 들이민다.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점잖은 사람조차 ‘똥볼’을 여러 번 차게 만드는 걸 보면(촛불 경선 주장은 아직도 잘 이해를 못하겠다) 그 자리가 요물은 요물인가 보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계에 달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부르짖곤 하는데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그걸 아는가. 개헌론은 언제나 현 정권의 연장을 바라는 이들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는 이들이 합심해 내놓는 메뉴라는 걸. 나는 처음 정치부 기자 발령을 받아 여의도를 출입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개헌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통계를 보면 정부기관이든, 기업이든, 교회든, 절이든 그 조직의 윗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오래 산다. ‘윗분’들이 스트레스가 심해 암에 걸리기 쉬울 것 같지만 오산이다. 남자든 여자든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거기에 절절매며 따르는 사람보다는 장수한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안종범 전 수석이나 문고리 3인방보다, 어쩌면 휴대전화를 옷에 문질러 공손하게 대령했던 젊은 이영선 행정관보다도 최순실씨가 더 오래 살지 모른다. 박관천 경정이나 고영태씨 등의 견해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씨보다 오래 살기 힘들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자리 탐욕이 심해지는 건, 권력이 곧 불로장생약이라서가 아닐까.
반기문, 인명진, 서청원. 이 70대 3인방도 나이 드는 걸 겁나게 만드는 분들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다른 건 몰라도 체력만은 타고났다. ‘불가능한 직업’이란 평을 듣는 유엔 사무총장직을 10년이나 수행하고 나서 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한국으로 달려와 대통령 선거 본선을 치르듯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이분이 ‘시차 무시하는 법’이란 책을 쓴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이분은 나이 든 사람의 건강을 해칠지 모르는 자기 성찰 능력이 애초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그 정치를 교체하려고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가 바로 그 정치에 환멸을 느껴 대선 출마의 ‘순수한 뜻’을 접은 분이다(!!!). 10년 동안 이분 지휘를 받아온 유엔 직원들한테 내가 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까. 개발도상국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정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온 이 노련하다는 외교관에게서 그들은 뭘 봤을까.
서청원, 최경환 등 새누리당 내의 박근혜 정권 특급 부역자에게 ‘일본 같으면 할복했다’는 악담을 퍼부은 인명진 비대위원장도 감탄스러운 분이다. 말인즉슨 옳다. 쓰레기가 온 나라를 덮었는데 버렸다는 사람도 없고 잘못했다는 사람도 없는 지경이 아니던가. 그런데 할복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려고 본인이 굳이 나설 필요가 있었을까. 이분은 반기문씨한테 나이 든 사람이 겨울에 너무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면 낙상하기 쉽다고 충고했는데, 남의 흉허물을 들추는 데는 송곳 같다. 그게 자기한테도 해당하는 얘기든 아니든. 어쨌건 주여, 앞으로도 주님의 충직한 종으로부터 서청원 의원 등등을 구하지 마소서.
인명진 위원장은 누구까지 할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김무성 전 대표도 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이분이 탈당해서 마치 사면을 받은 것처럼 착각할까 봐 말해두고자 한다. 이분은 박근혜 정부가 시도한 이른바 문화 쿠데타를 추진한 주역 중의 한 명이다. 김무성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혼이 비정상이 된 경우이다. 부친이 친일파로 분류된 그는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획기적인 주장을 폈다. 그는 부친이 민족교육에 앞장섰으며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의 친일 행위를 부각하는 것은 좌파의 공격이라며 열을 낸다. 물타기와 색깔론, 이는 친일 행적을 감추고 싶은 이들이 질리도록 늘어놓는 궤변의 전형이다. 그가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고비 고비마다 주저앉곤 했던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덩칫값도 못해서가 아니라 박 대통령과 여러모로 생각이 같아서였지 않았을까. 그는 정직하기는 한 사람이다.
수십 년 빨아먹은 빨갱이라는 뼈다귀
할복해야 마땅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한테 국회의원을 그만두라고 집단행동을 하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다. 적반하장은 결코 레전드가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발가벗겨 풍자한 작품을 전시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의원직을 내놓으라고 함께 모여서 악을 쓴 것이다. 반민특위에 회부된 민족반역자 중에 자기 행동을 반성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수사가 아니라 진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 의원들이 표 의원에게 인상 쓴 것쯤이야 애교라고 해야만 할까. 인명진 위원장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할복해야 할 사람에 가까울 것 같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치솟는 것도 괴이한 일이다.
이 빨갱이란 뼈다귀는 수십 년을 빨아먹었는데도 아직 단물이 나오는 모양이다. 1948년 7월17일 제정된 제헌헌법은 제101조에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소급해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미군정이 친일파를 등용하는 바람에 역사를 바로 세울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 터였다. 많은 의원들이 노심초사한 끝에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과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북 협상파와 좌파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 의회 내에는 우파가 절대다수였는데도 이룬 쾌거였다. 친일 반역자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의원들이 감지한 결과였다.
법 공포를 전후해 서울 시내에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내용의 삐라가 일제히 살포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반공국민대회도 열렸다. 내무부가 지원하는 관제 데모였다. 이승만 정권은 이 빨갱이 여론몰이를 동력으로 삼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했다. 이승만 정권은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해 반민특위 핵심 관계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각 정부기관은 반민특위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온갖 방해 책동을 했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며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은 7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이 ‘태극전사’들은 ‘군이여 일어나라, 국민이 명령한다’ ‘빨갱이를 죽이자’며 죽어라 악을 써댄다. 이석기 전 의원을 감옥에 보낸 이 나라의 법 감정에 따르면 사실 이들은 너끈히 10년형은 살아야 마땅하다.
이들을 뒤에서 부추기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반일이건 부정투표 항의건 반독재건 전혀 다른 종류의 재료로 빨갱이라는 동일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신묘한 재주를 지녔다. 1948년 그 중요한 때에 지금처럼 국회는 국민의 요구에 굴복했다. 그러나 이 사회 엘리트란 자들이 국민의 뜻을 배신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비관론자들은 지금 헌법재판소의 기류가 바뀌었다며 다시 반동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양상은 매번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어떤 때는 비극이고, 어떤 때는 희극이고. 이번에는 부디 희극이었으면 좋겠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욕심이 커질수록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본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게 되면 황 대행에게는 기회가 없다. 우리가 보기에도 지금 황 대행 얼굴이 너무 밝은데 뒤끝 작렬인 대통령이 보기에는 어떻겠는가. 힘내시라.
최순실씨만 보더라도 이번에는 아무래도 희극 요소가 강하다. 그녀는 조사받기를 거부하다 특검에 끌려가면서 ‘특검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장담하건대 정치학자 중에도 자유민주주의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계몽주의와 아테네까지 들먹이더라도 뜻이 명료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 용어는 멸공주의자를 만나야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누군가 자기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때 입는 옷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최순실씨는 특검을 종북이라고 욕하고 싶었나 보다. 공안 통치를 견인해온 대한민국 검사들에게 빨갱이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첨 봤다. 최순실씨는 확실히 발상이 남다르다. 사식 잘 챙겨 먹으면서 검사들에게 쫄지 말고 기운 내시라.
참고한 활자:<범퍼 스티커로 철학하기>(민음인), <친일과 망각>(다람)
朴, 차기 대통령과 '뒷거래' 하려고 기습 하야한다?
야당 "탄핵 직전 자진 사퇴는 꼼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김윤나영 기자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설'을 다시 제기하자, 야권에서는 일제히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미 "버스는 떠났다"는 것이다.
탄핵 인용이 확실시된다는 전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게 세 가지로 예측된다. 첫째, 탄핵이 인용되면 특검이 종료되더라도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명분이 더 커지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고 탄핵이 각하되면 검찰이 구속 수사를 하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커진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을 수 있다. 셋째, 전직 대통령 지위를 유지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의 여론전과 차기 정부 출범 시 형량 감형, 사면 등을 시도할 수도 있다. '정치적 뒷거래'를 하기에 용이해진다는 말이다.
청와대는 '하야설'을 일축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특검이 종료되는 오는 28일 이후부터 탄핵 선고일 직전까지 자진 사퇴를 급작스레 결단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 자유당 시절에나 어울리는 '하야론'을 띄워 간보기를 하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청와대가 뒤늦게 부인하는 낯 뜨거운 연출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광장에서는 내란 선동이나 다름 없는 국론 분열과 탄핵 불복을 획책하고 있다"면서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탄핵의 다른 말이 '자유당 해체'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이 인용되길 소망한다. 하야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꼼수는 안 된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대통령답게 두 발로 서서 눈 뜨고 죄를 받아야지 죄값을 모면하려고 무릎 꿇고 꼼수를 부리는 비열한 모습을 보이시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탄핵 소추된 대통령 측이나 대리인 그리고 친박이 공공연히 헌법 절차에 시비를 걸고 불복을 미리 얘기하는 것은 또 다른 헌정 파괴, 탄핵의 당연성을 확인시켜줄 뿐"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하야설'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지만, 같은 당 정병국 대표를 비롯한 당내 의원들의 반발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자진 사퇴론' 솔솔…마지막 '꼼수'인가?)
바른정당 김성태 의원도 "친박 자유한국당에서 자진 사퇴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미안하지만 버스는 떠났다"면서 "참으로 안타깝지만 대통령으로서 더 이상 궁색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그것이 마지막 남은 명예를 지킬 일"이라고 했다. 김성태 의원은 "나라를 반쪽 내고 머리 숙여 사죄하지 않는 친박 패거리 여당, 적반하장 꼼수로 일관해온 대통령이 이제서 자진 사퇴를 거론하는 것은 최소한의 정치적 염치조차 없는 후안무치한 발상"이라며 "대통령 탄핵이 초 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하야설은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 정우택 원내대표 등은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론'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 또한 이날 사설에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기각되면 혁명, 탄핵되면 피가 대립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꼭 들어가야만 하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자진 사퇴설'에 힘을 실어줬다. 또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자진 사퇴'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최장집 "박근혜 탄핵되면 촛불의 명예혁명"
"朴정부 붕괴는 대전환점…도전적 태도 버린 야당"
임경구 기자
"위험에 처해 있던 한국 민주주의가 촛불 시위에 힘입어 이제 다시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넓은 가능의 공간이 열렸다."
대담은 '촛불'에서 시작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 시위는 1987년 민주화 이래 최대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될 대사건"이라며 "정치적 수준에서 볼 때 대규모 시위에 관한 한 분명 세계 최고를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타오르던 때, "운동의 강렬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우므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제도 밖에서 분출된 에너지에 경계심을 보인 바 있다.
그 때와 달리 최 교수가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을 "세계적 차원의 모델"이라고 극찬한 이유는 신간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펴냄)에 실린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과의 대담에 잘 설명되어 있다.
최 교수는 "양손잡이 민주화의 등장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촛불 시위가 만들어 낸 가장 큰 공적"이라며 "촛불 시위는 한국 정당 체계를 양극화시켜 왔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해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수 정당의 분화로 비박계가 박 대통령 탄핵에 합류한 점에 주목하며 "보수가 극우적 분파와 합리적 보수로 분열됨과 아울러 이른바 친박계 보수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책 제목이 '양손잡이 민주주의'인 까닭도 최 교수가 진보적 민주파들, 즉 '왼손잡이 민주파'(기존 야당)와 보수적 민주파들, 즉 '오른손잡이 민주파'(비박계 탄핵 찬성파)가 손을 잡고 헌법적 절차에 따른 탄핵을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규모 집회의 요구와 압력을 통해 대통령이 자진사퇴하거나 여론의 힘에 의해 퇴진하기보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퇴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며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헌법, 즉 법의 수단에 의해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탄핵을 통해 헌법적 절차를 따라, 폭력적 방법이나 피를 흘리지 않고도 대통령이 교체될 수 있는 희귀한 사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분명 이 경험은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생생한 교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박 대령에 대한 탄핵이 완성될 때) 탄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촛불 시위에 대해 명예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모든 관심은 헌법재판소에 쏠려 있다. 최 교수는 "헌재가 얼마나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박-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중심이 되는 국회와 헌재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민주적이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약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찬미하는 사회적 힘이, 개발독재를 신화화하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나 반공 보수주의를, 헌법적‧이성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와 접맥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문제는 다른 수준으로 옮겨갈 수 있다"며 "그런 힘들이 촛불 시위를 혐오하고, 촛불 시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다면, 탄핵을 둘러싼 갈등은 이념 대립의 차원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소위 '태극기 집회'에서 드러나듯,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탄핵이 극우 세력의 이념 갈등 교란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대선은 '중대 선거'…야당, 현상타파 못할 것"
최 교수는 탄핵 심판 직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차기 대선과 관련해선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면서도 "그래서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어떤 정권교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들(야당)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고, 어떤 아젠다를 설정하고, 행정관료 체계를 지휘해 어떻게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과거 야당은 두 번이나 집권했지만,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무엇인가 뚜렷하게 남긴 것이 없다"며 "이 점이야말로 개혁적 정당들에게는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촛불 시위 이후 다가오는 대선은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에 이어 두 번째의 정치적 대전환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들 간의 정책 공약에서 나타날 가치나 이념의 차이는, 레토릭 수준에서는 격렬하고 커보일지 몰라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당들은 여전히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능 이익으로 분화되지 않은, 추상화된 다수를 대표하기 위한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며 "서로 추상적인 다수에 호소하기 위해 상대의 공약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므로 상호 정책적 포섭이 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레토릭이 듣기는 좋을 수 있어도 사회구조를 실제로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두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하여금 기존의 정부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 현상을 타파하려는 도전적 태도보다, 안정적인 통치 능력을 보여 주는 방향으로 당과 대선 주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의 이 같은 진단은 사회경제 정책에서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보수‧중도층 표심을 겨냥해 급격한 우경화 행보를 걷는 야당과 대선주자들의 태도에서 확인된다.
그는 "더민주당 쪽이 특히 더 심하다. 박-최 사태로 드러난 대통령의 무능함과 실정, 부패와 리더십 파탄에 대해 과격하게 대응하기보다, 비판을 절제하면서 집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지 않은 온건한 대응이 현명하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결과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아직 야당을 비롯한 한국의 정당 체계가 취약하다는 진단이다. 최 교수는 "냉전 시기 국가 건설과 전쟁, 남북한 간 적대 관계의 지속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이념이 자리잡기 어려워 정치 경쟁의 이데올로기 지평이 극히 협소하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한국의 정당 체계는 이념적 대립이 격렬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 정책과 대외 관계 등 중요 정책 영역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사회의 엘리트 계층,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은 과다 대표되고,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사회의 기능적 이익들은 거의 대표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넓게 열린 공간과 예기치 않게 다가온 구질서의 치명적 약화 내지 해체가,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고 안으로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부응하는 정치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구질서를 다른 형태로 복원하게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합리적 대안은 조절된 시장경제와 결선 투표제"
결국 촛불이 열어놓은 넓은 '가능성의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이냐는 숙제가 남은 셈.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요소가 결합된 "조절된 시장경제"를 강조했다.
국가와 재벌 동맹 해체가 화두가 된 지금, 최 교수는 "과거와 같이 '발전 국가'가 주도하는 제조업 발전, 수출 중심 경제성장과 경제 운영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며 "(반공주의 같은) 이념적 경직성과 폐쇄성, 관료주의에 의한 위계주의와 획일성은 새로운 시대의 기업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라고 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노사 관계의 파트너로 인정되는 문제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기업 운영에 협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코포라티즘(노사협력적 관계)'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관치 경제하에서 국가권력에 종속적인 파트너가 되어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부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시때때로 헌납을 강요받는 것보다, 민주적 가치에 부응해 노동운동을 인정하고 민주적 노사 관계를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명분이 있으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대선을 치르는 일,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해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사려 깊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성급한 개헌 논의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는 "비상한 대선은 비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방식으로 결선 투표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대선 기간이 짧더라도 정당들이 합의하기만 한다면 (결선 투표제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은 대선 관련 선거법을 개정해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지금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교체에 가장 근접해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헌법적 질서에 따른 탄핵에 참여해 '양손잡이 민주주의'의 기회를 열었던 비박계 바른정당도 '지금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방기하고 있는 정치 현실은 여러모로 모순처럼 보이기만 한다.
박근혜 세력의 도전과 촛불의 응전
[진보논평] 촛불은 광장 바깥으로 확장돼야 한다
배성인 한신대학교 교수
설 연휴 이후 정세에 미묘한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탄핵 인용이 목전에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세력의 준동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설 명절 연휴로 인하여 촛불이 잠시 쉬는 동안에 일명 '태극기 집회'를 통해 폭력을 동반한 극우적 행태까지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
사상 최악의 국정 농단 세력들은 처음부터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법은 평등하지 않고 상식은 원래부터 없었다. 그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들의 불법과 거짓말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편법과 비리, 부정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합리성과 원칙으로 맞서는 것은 과분하다. 그들의 사과와 책임은 영혼이 없고 기계적이고 가식적이다. 그들의 창끝은 무디지만 꼼수에는 숙련가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반격 전략은 궁색하지만 끈질기다. 그들은 규모를 좋아한다. '규모의 경제'를 좋아하고 '규모의 정치'를 좋아한다. 수백만이 촛불을 들면 잠시 움츠렸다가 숫자가 줄어들면 반격한다.
이들이 반격이 본격화된 계기는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부터다. 세습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에 대한 사법부의 그릇된 판단이 박근혜 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인 사회가 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재벌 비리와 정경유착이다.
재벌 비리와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재벌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체제 청산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독점적-폐쇄적 지배구조 하에서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경유착의 깊은 고리를 단절할 수 없다. 따라서 이재용의 구속은 수십 년간 누적된 정치권력과 재벌간의 추악한 거래를 일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세력은 노골적인 선고 지연 전술과 공공연히 '대통령 사수'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탄핵 기각설'을 유포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SNS상에는 이들의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때문인지 헌재의 최종 변론기일이 2월 27일로 연장되었다. 우병우의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고 특검 기간 연장의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야당의 무능함과 대통령 놀이가 박근혜 세력에게 반격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지난 2월 11일부터 촛불 광장에 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수많은 야당 깃발이 나부꼈다. 신나게 대통령 놀이를 하다가 '탄핵 기각설'에 '깜놀' 했나 보다.
이들이 광장에 나오는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오히려 불편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탄핵 국면인 현재까지 야당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박근혜 정권 내내 선거 부정에서 세월호, 국정 역사 교과서,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백남기 농민 사망에 이르기까지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탄핵 국면에서도 아무런 개혁 입법을 하지 않고 촛불을 등에 업고 권력 놀음에 취해 있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야당의 합의가 박근혜 세력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해도, 그러한 정치적 발언은 촛불을 무시하는 처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촛불 민심을 부정하고 기만하는 야당을 박근혜 세력은 좋아라 하면서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촛불의 응전은 변함이 없이 담대하다. 지난 11일부터 촛불의 숫자가 증가한 것은 단순한 야당의 참여 때문이 아니다. 설 명절과 추위를 겪으며 원기를 회복하고 에너지를 다시 충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당의 몰상식과 기회주의적 행태가 다시 촛불을 분노케 하고 있다.
박근혜의 탄핵에 찬성하는 80% 안팎의 대중은 야당에게 탄핵의 결정을 위임한 적이 없다. 촛불이 원하는 것은 구체제의 청산을 통한 새로운 국가와 사회 건설이다. 그런데 야당은 이를 수용할 만한 의지와 능력이 없다. 이번 촛불은 과거의 촛불과 다르며 단순한 시민 혁명이 아니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촛불에 의해 야당도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촛불 민심이 우려하는 바는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은 절대이성이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법이 노동자 민중의 편을 들어준 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촛불 민심은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박근혜 세력의 2월 총력전이다. 또 어떠한 꼼수를 부릴지 알 수는 없지만 촛불항쟁은 반동의 도전에 맞서 끈기있게 응전할 것이다.
조직적 개입과 촛불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번 촛불항쟁은 대중운동의 급진화에도 불구하고 자발성이 매순간마다 매너리즘에 빠진 형식적 제도에 소진되는 문제점이 있다. 급진화된 운동에 조응하며 조직적 결합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주저한다. 따라서 대중의 역동성과 자발성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이를 뒤따라만 가는 운동조직들의 의식성은 비판 받아야 한다.
지금은 정세를 보면 촛불에서 드러난 대중들의 정치적 의지와 열망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민주노총 등의 조직 집단이 아니면 결국 개별 정치인에 대한 선택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과 민주노총 등의 정치적 태도가 중요하다.
물론 촛불항쟁을 민주노총 등 조직집단이 정치적으로 대표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민주노총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이미지는 조합원 외에는 우리의 조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촛불이 진행될수록 '한상균을 석방하라'가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전환되고 있고, 부정적 인식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등의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항쟁에서 나타난 의제와 이슈를 중심으로 자신의 요구를 압축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조직, 저소득, 청년, 여성, 실업 등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 조직하고 주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집회에서의 유의미한 동력, 행진 대오에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본래의 투쟁으로 촛불 항쟁과 결합할 때 구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은 한 세기를 넘는 약속과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고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평생을 뛰어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광장에 갇혀 있는 의제와 공간을 지역, 공동체 등으로 확대·심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적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으로서 지역운동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이다.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면서 광장에 나온 이들이 주체인 듯 주체 아닌 관객같은 촛불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광장이 내용을 생산하지 않고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조직화 된 세력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조직화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 조직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촛불이 어느 정당이나 단체에 대규모로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치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따라서 촛불항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확장해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곳은 거리, 지역, 공동체 등 상관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광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 하는 것이다. 촛불항쟁은 일상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면 커다란 의미가 없다. 광장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광장 안과 밖이 동일해야 한다.
탄핵과 벚꽃 대선은 축복인가?
[기고] 왜 공동정부인가?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1. 정권교체는 정답인가?
촛불 정국에서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이 사건은 '박근혜, 이명박 정권 9년 간 억눌린 자유와 민주주의의 울분이 드러난 것이며 그 대안은 정권교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사건인 촛불의 배후에 자리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촛불은 단순히 최순실 게이트나 보수정권의 실정에 따른 사건사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87년 체제, 경제적으로 97년 체제에 기반을 두고 나타난 2007년 체제의 구조적 산물이다.
87년 체제는 대통령 간선제에 반대하는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수립을 가능하게 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정치적 변화를 지탱할 수 있었던 대외적 경제여건의 호황이라는 조건이었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대기업 남성 노동자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의 대가인 합법적인 노동조합을 쟁취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지체되었던 분배적 정의의 결과를 일부 얻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시하듯이, 노동 분야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정확히 거기서 멈췄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치에서 선거와 투표라는 19세기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실질적인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참여나 일상의 민주주의는 발상조차 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정경유착에 기반을 둔 연고자본주의의 개혁과 분배체제의 개선, 사회적으로는 지체된 복지체제의 수립 등이 시작도 못한 상황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반독재 자유주의의 초기단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초보적 단계의 민주화에서 불과 10년 뒤, 한국사회는 세계적인 경제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신자유주의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국가주도의 압축적 산업화 기간 동안 방기되어 왔던 경제체제의 근본적 변화와 기본적 수준의 복지체계를 수립해야 할 국가는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 통치의 목표를 거의 상실해버린 상황이었다.
재벌중심 경제와 매너리즘에 빠진 관치금융은 지속되었고, 위기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던 청와대의 경제적 무능은 국가부도사태로 이어졌다. 정치적 자유주의 위에 경제적 자유주의, 그것도 최소한의 공리주의적, 윤리적 기반을 갖춘 고전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적 신자유주의가 자리를 잡은 97년 체제는 헬조선으로 불리는 불평등 사회의 기반이 되었다.
2007년 체제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라는 토대 위에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수정권이 수립되었을 경우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통치가 아니라 지대추구를 목적으로 권력을 이용했으며, 그 결과는 수 십 조원을 투입해서 건설업자들의 배를 불린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게이트로 대표되는 사상 최악의 부패정부로 나타났다. 권력을 이용한 지대추구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부패 그 자체가 아니라, 집요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동안 완전히 방기된 국정, 곧 세월호 참사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부재의 상태 그 자체에서 너무나 뼈아프게 드러났다.
2007년 체제에서 외교는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은 물론 한반도가 미중간 갈등의 한 복판에 놓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고, 경제적으로는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한 세습자본주의의 폐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들어맞는 극단적 불평등의 사회가 조성되었다. 언론 자유, 국가기구에 대한 신뢰도 지표 등은 곤두박질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은 흔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수저를 들고 태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헬조선은 지난 민주화 이후 30년을 통해 완성된 셈이다.
이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해 보면, 87년 민주화는 독재로부터의 '자유'에 핵심이 있었고, 97년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했으며, 2007년 보수정권의 수립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유'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87년 이후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민주화를 지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비판적인 '자유화'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나눔과 공존의 정신에 기반한 공동체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극단적인 형태의 자본주의가 탄생했으며, 결과적으로 호랑이들의 자유는 극대화된 반면, 토끼들에게는 잡혀 먹힐 자유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 펼쳐졌다.
촛불은 이러한 상황, 곧 '헬조선'의 절벽에 서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특권과 반칙으로 부와 권력을 누려온 사회지도층, 총체적인 국가의 부패, 무능, 부재 속에 지대만을 추구하는 통치계급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촛불이라는 사건은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배경은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그것을 해결하기는커녕 고의적 방기를 통해 가속화시키고 있는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촛불은 지난 4년이나 9년의 문제가 아니라, 87년 민주화 이후 30년 간 악화된 양극화와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사건사적 분출인 것이다.
촛불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야당후보들이 말하는 '정권교체'는 해답이 되지 못한다. 비록 사적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스스럼없이 국가를 수단으로 이용한 나쁜 의도를 실현한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지만, 그들이 공적 임무를 방기하는 사이 국민들이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지게 된 데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촛불이 지난 30년 간 쌓인 한국의 사회경제적 '적폐(積弊)'의 결과라면, 절반의 책임은 그들에게도 있으며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재 야당의 대선후보들 중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전은커녕 책임을 통감하는 인물도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정부가 국정을 완전히 방기하거나 지대추구를 노골화하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선의'가 아니라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즉, 단순히 정권교체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비전과 능력을 갖춘 정권으로의 교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의 구조적 배경이 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이는 다시 '바꿔도 별수 없다'는 평가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광장에서 승리하고 일상에서 패배하는 과거의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이 정치혐오를 깊게 내재화 하게 된다면 촛불은 오히려 아니함만 못한 비극이 될 수도 있다.
2. 탄핵과 벚꽃 대선은 축복인가?
헌법 재판소가 3월 초에 탄핵을 인용하게 되면, 5월 초 대선이 확정된다. 이 대선은 해방이후 한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보수우파의 집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첫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중도진보 진영에게는 이것이 대단한 축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최악의 대선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보수 진영의 붕괴로 인한 중도개혁세력의 급격한 우경화 경향이다. 일반적으로 당내 경선에서는 진보개혁진영의 표를 얻기 위해 중도에서 다소 진보로 확장한 후, 다시 본선에서 중도층 유권자를 잡기 위해 보수화 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나 보수후보가 약한 이번의 경우에는 경선과정에서부터 후보들이 일찌감치 보수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본선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권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전의 정부들과 큰 정책적 차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며, 이는 보수정부가 아니라 개혁성향의 정부가 '보수적 자유화'를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보수 진영의 붕괴로 인해 중도개혁세력 내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선이 사실상 민주당 내의 경쟁으로 치러지고 본선에서의 갈등 봉합과정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면, 대선 이후 민주당 내의 계파 간 갈등은 이전보다 훨씬 악화된 형태로 재현될 것이다. 또한 본선에서 보수후보의 존재감이 거의 없고 실질적으로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만이 경쟁할 경우 상호 비방과 공격이 격렬한 수준에서 나타날 것이고, 대선 이후 두 당의 관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후보 중에서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당내에서는 물론이고 야당들의 협조를 거의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동일하다.
이로써 세 번째 문제가 나타난다. 정당 간 경쟁이 무의미해지고 캠프가 집권하는 체제가 수립되면, 정권 수립 직후부터 정치적 구심력이 약해지고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국정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청와대를 장악한 캠프 중심의 소수세력은 우선 여당을 장악하려고 들 것이고, 이는 패권 논쟁으로 비화될 것이다. 당정 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밖에서는 개헌을 지렛대로 한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정권은 정책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정책집행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정권은 의도와 관계없이 조기레임덕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청와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지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 다수는 차기 총선에 일정을 맞추어 정권의 임기를 종결시키는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올해가 가기도 전에 이 개헌안을 중심으로 정개개편 논의가 모든 뉴스를 차지할 것이다.
사실 청와대와 국회, 여당과 야당, 그리고 개헌안을 둘러싼 논쟁이 정상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정상적인 형태의 정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야권 후보의 캠프가 집권하는 상황이 된다면, 모든 정치세력이 정계개편 논의에 집중하는 사이 실질적인 권력은 관료와 시장이 차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지금 국민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정치개혁, 경제적 분배정의의 실현, 비정상적 재벌경제의 타파, 기본소득과 보편복지를 축으로 한 복지정책의 전면적 개편은 시도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개혁이라는 타이틀을 단 정치행위는 지난 정권의 일부 인사에 대한 형식적인 사법처리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나마 다른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법집행조차 정치보복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개헌 논의 역시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한국에 누적된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향후 30년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차원이 아니라, 당장의 선거를 둘러싼 당리당략 차원의 저급한 권력구조 개편 논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왜, 어떤 공동정부인가?
촛불을 단순히 사건사적 수준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정권교체가 아니라 능력 있는 정권으로의 교체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점은 대단히 명확하다. 새로운 정부는 87년 민주화를 기념하고 계승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30년 역사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차기 정부의 결과가 단지 심리적 불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한국 국민들에게는 일상에서의 좌절로, 개혁진보 진영에게는 정치적 파멸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동정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무엇보다, 작년 촛불 이후 대선에 이르는 동안 정치적 일정이 대단히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원래의 대선 일정에서 약 6개월 정도가 당겨지게 되면서 현재 정당들은 물론 어느 후보 진영도 제대로 된 준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만일 5월에 대선이 치러진다고 예상해 보면, 지금은 12월 대선을 앞둔 9월 말에 해당한다. 각 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것은 물론, 경선과 본선 경쟁을 통해서 각 후보의 국가 비전과 세부적인 공약에 대한 검토가 상당 부분 끝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의 후보들을 보면 이제야 초보적인 수준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고, 그나마 일부 후보는 공약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기이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자, 솔직해져야 한다. 이번 대선은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지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대선이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 일정이 6개월 이상 앞당겨진,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이다. 지난 11월 중순만 해도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12월 탄핵을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후보들이 아니라 국민이 끌고 온 정국이다. 본인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만 국민들은 정권을 빨리 교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야권의 후보들 다수가 그러한 인식 없이 일상적인 대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캠페인을 하고 있고, 보통의 대선보다 훨씬 준비가 안 된 수준의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집권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 실제로 촛불 정국에서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국민이 만들어 준 탄핵밥상에서 서로 먼저 숟가락만 들려는 딱한 꼴이다.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우선 야권의 후보들은, 이번 대선이 승자독식의 이전 대통령선거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국민 앞에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그래야 한다. 그런 모습을 먼저 보이는 사람이 좋은 후보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에서는 승자를 결정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승자가 누가 되든 혼자가 아니라 전체 야권이 공동으로 국정에 책임을 지고 함께 참여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차기 정부는 승자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만들어 준 촛불정부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현재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물론 더 넓은 외연을 갖고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데에 합의해야 하는 것이다.
왜 공동정부인가에 합의한다면, 다음은 어떤 공동정부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과의 관계다. 필자는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비상한 상황에서의 국정운영은 때로 거국내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비상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해 정치적 철학을 달리 하는 정당과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자, 정치적 혼란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들은 야당으로서 국회 내에서 대화와 타협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며, 그 수준에서 원만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는 범야권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긍정적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헬조선의 책임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과를 배제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특정 캠프가 집권하면서 좁은 인력풀에 의존하고 그 결과 권력의 상당부분을 같은 정당이나 야권이 아니라 관료와 공유하면서 제대로 된 개혁을 시도하지 못한 데 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면, 관료나 시장이 아니라 야권, 그리고 진보적 시민사회 전체의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수단에 의한 개혁은 단일 캠프나 단일 정당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현재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물론, 더 넓은 수준에서 야권의 능력있는 인물들을 내각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당내의 특정 계파나 여당의 지지만으로는 국회에서 과반은커녕 개헌 저지선에도 못 미치는 지지밖에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한 정치적 양보를 하더라도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차기정부에는 필수적이다.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한 대선이며, 대선보다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한 정치적 상황이다. 야권의 대선후보들이 대통령이라는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을 공유함으로써 국가적 비상상황을 함께 타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본인도 살고, 나라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이다.
이 글은 22일 '2017 민주평화포럼'이 주최한 '왜 정치연대인가?' 토론회 발표문을 다듬은 글입니다.
연합정치, 시대정신 되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연정’ 화두를 던진 뒤 정치권에 큰 논쟁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당선자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임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연합정치가 절실하다.
연합정치는 한국에서 인기 없는 주제다. 어느 정당이건 핵심 지지층은 연합 없이 단독으로 가져가는 승리를 가장 선호한다. 그래야 대선 이후 지지층의 뜻대로 정부가 운영되리라 믿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더불어민주당)는 ‘대연정’ 화두를 던졌다가 “새누리당은 연합이 아니라 청산 대상이다”라는 지지층의 반발에 곤욕을 치렀다. 당내 경선 국면에서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인기 없는 아이디어를 피해갈 수 없는 아주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대통령제가 가진 가장 뿌리 깊은 숙제를 한국 정치가 정면으로 받아들었다. 첫째, 승자독식 게임인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를 꼭 해야 할까? 둘째, 연합정치가 대통령제에서 작동 가능한가?
5월 대선을 가정할 경우, 다음 대통령은 임기 5년 중 3년을 20대 국회와 함께 통치해야 한다. 임기 후반 권력 누수 현상까지 고려하면 20대 국회가 핵심 파트너다. 현재 의석 분포는 민주당 121석, 새누리당 94석, 국민의당 38석, 바른정당 32석, 정의당 6석, 무소속 8석이다(새누리당 김종태 의원 당선무효 확정으로 궐위 1석). 원내정당이 다섯 개,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가 네 개나 된다. 20대 국회는 21세기 들어 다당제 경향이 가장 뚜렷하다. 어느 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로부터 대통령제의 고전적인 딜레마가 현실에 등장한다. 비교정치학에서 손꼽히는 석학인 후안 린츠는 1990년대에 내놓은 일련의 영향력 있는 연구에서 ‘이중 정통성’과 ‘경직성’을 대통령제의 핵심 문제로 꼽았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입법부가 대선과 총선이라는 별개의 선거로 선출되므로 둘 다 민주적 정통성이 확고하다(이중 정통성). 여소야대 상황에서 타협이 작동하지 않고 대통령과 의회가 극한 대결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까? 린츠는 이렇게 쓴다. “이러한 대결을 해소할 민주정치적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중 정통성 문제로 대통령과 입법부 사이에 교착이 발생해도 대통령제는 제도적 출구를 갖고 있지 않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선출직의 임기는 헌법으로 보장받는다(경직성). 교착이나 위기 국면에서 내각 해산이나 총리 교체를 유연하게 택할 수 있는 의회제(내각제)와의 차이다. 의회제 국가인 영국에서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즉각 사임했다. 헌정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집권 보수당은 바로 후임 총리를 뽑았다.
이중 정통성 딜레마는 대통령의 권한을 결정적으로 제약하고, 경직성 때문에 의회 해산과 재선거 등으로 교착 상태에서 주권자의 뜻을 재확인할 수도 없다. 그래서 린츠는 대통령제가 구조적으로 위기에 더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년이 넘는 후속 연구와 찬반 논쟁이 벌어졌지만, ‘린츠 테제’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대통령제의 딜레마에 ‘독특한’ 해법을 제시해왔다. 1988년 이 딜레마를 처음 맞닥뜨린 노태우 정부(299석 중 여당 의석 125석)는, 야 3당 중 둘을 끌어들이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훌쩍 넘는 공룡 여당을 만들어 문제를 분쇄해버렸다.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139석으로 역시 과반 확보에 실패한 김영삼 정부는 ‘의원 빼가기’를 통해 과반을 맞춰냈다. 입법부를 구성한 민의를 대통령이 힘으로 왜곡하는 해법이다.
박근혜 정부는 152석 과반 의석과 함께 출범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통치에 필요한 의석수를 사실상 180석으로 끌어올린 후여서 같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입법부를 우회해 이 문제를 없는 셈 쳤다. 국회 내의 협상보다 여론을 동원한 압박이 일상사였다.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과 행정 권력의 변칙 활용이 극대화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박근혜식 통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린츠가 “이러한 대결을 해소할 민주정치적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그 문제를, 박근혜 정부는 민주정치적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풀어보려 했다. 부분적으로는 그 결과로 박근혜 정부는 20대 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는 박근혜 게이트를 파헤쳐 정권의 운명을 뒤흔들었다.
차기 정부는 입법부를 강제로 재편하거나 우회하기 어렵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쌓이면서 좌우 정당을 넘나드는 정치적·심리적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권력기관을 동원한 입법부 우회 통치는 보수 정부의 적폐 중에서도 핵심이고,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보여주었듯 작동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이제 입법부와 발을 맞추는 통치 외에는 정권이 성공할 길이 없는데, 입법부 환경은 노태우 정부 때보다 더 까다롭다. 원내 1당이 121석에 불과한 다당제 구조에다,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는 150석도 아니고 180석 이상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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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로 깨졌다 |
이렇게 해서 연합정치는 선택의 문제를 벗어나서, 린츠 테제가 강제하는 필수가 되었다. 공동정부 구성이든 협치든 사안별 연대든, 연합정치는 이중 정통성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정석으로 해소해준다. 통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경직성이라는 대통령제의 단점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장점으로 바뀐다.
문제는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가 과연 작동 가능할까 여부다. 연합의 파트너에 나눠준 권력은 언제든지 대통령이 회수할 수 있다. 김대중·김종필 연립정부였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약속이 파기된 데다가 김종필 측의 내각 인사권이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면서 깨졌다. 의회제라면 연합의 해체는 정권의 붕괴를 뜻하므로 서로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정권이란 사실상 대통령 1인을 뜻한다. 근본적으로 대통령 개인의 뜻에 기대야 하는 연합정치는 제도가 보장하는 연합정치보다 깨지기 쉽다.
대통령제에서도 연합정치는 빈번해
대선 주자나 대통령은 더 큰 연합정치를 추구할 동기가 있다. 지지 기반이 넓을수록 통치력이 커진다.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 휘하의 정치인이나 핵심 지지층은 ‘50%+1표’를 확보한 시점에서 연합의 확장을 멈추기를 원한다. 휘하의 정치인은 권력을 나눌 대상이 가능한 한 소수이기를 바라고, 핵심 지지층은 지지하는 주자의 노선이 가능한 한 온전히 관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이 초박빙 싸움이 아닐수록 ‘연합 거부 메커니즘’은 극대화된다.
DJP 연합은 이념적 거리가 상당해서 지지층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컸지만, 1997년 대선이 초박빙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반면 2017년 대선 구도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한 문재인 전 대표의 핵심 지지층에서 연합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두드러진다. 새누리당·바른정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과의 연합정치에도 비판적이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월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당을 향해 “정당 통합이 어렵다면 연립정부 협상이라도 시작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가 핵심 지지층의 비난에 시달렸다. 민주당 처지에서 국민의당과의 연합정치는 딜레마를 돌파할 최소 조건에 해당하지만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두 당 의석을 합치면 159석으로 의결정족수는 충족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정족수’ 180석에는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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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던진 대연정 제안은 지지층에서 통제 불가능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에게는 긴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2002년 대선부터 2008년 임기 종료까지 노 대통령을 계속 보좌했던 한 참모는 이렇게 회상했다. “2005년 대연정 제안이 뜬금없이 나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총리는 국회 다수파가 추천하도록 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총리를 추천할 다수 연합이 국회에서 구성되고 거기서 나온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면 그게 사실상 연정이다. 국회 협조 없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실패한 후에도 그 발상 자체를 후회한 것이 아니라, 일이 성사가 안 될 방식으로 던진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위기의식을 지지층이 대통령만큼 절실히 느낄 수는 없다. 대연정 제안은 지지층에 떨어진 폭탄이 되어 정권의 기반을 흔들었다.
지지층 관리보다 더 큰 숙제도 있다. 야당이 연합에 참여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7년에는 패배했지만 2022년 대선에서 정권 탈환을 노릴 제1야당 지도자 처지에서 따져보자. 이 지도자는 2017년에 선출된 정부가 실패할수록 정권 탈환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자신이 연합정치에 들어가서 정부가 성공하도록 돕는다면? 정권 탈환 가능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이 구조는 야당이 연정 참여를 거절하도록 만든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정확히 이와 같이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에서 연합정치는 드문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제와 연립정부:제도적 한계의 제도적 해결(홍재우·김형철·조성대, 2011)’ 논문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63개 대통령제 국가를 대상으로 총 687년간 통치 형태를 추렸다. 총 687년 중 442년 동안 대통령 소속 당이 의회에서는 소수파였다. 이중 정통성 딜레마는 아주 흔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442년 중 총 250년 동안 연립정부가 형성되었다. 비율로 따지면 56.6%로, 소수파 정부에서는 연립정부 구성이 단독정부보다도 더 많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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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지방정부에서 연정을 실험한 남경필 경기도지사(왼쪽 사진 오른쪽)는 부지사 직을 야당에 주었다. |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조성대 교수(한신대·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는 “대통령제와 연립정부가 꼭 모순되는 제도는 아니다. 연합정치란 기본적으로 ‘노선’과 ‘관직’의 교환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 대통령 정부에서 정의당이 노동부 장관을 맡는다고 하자. 그 ‘관직’에서 자기 노동정책을 펴는 대가로 입법부에서는 정의당 의원들이 민주당 당론에 따라 투표하는 식의 거래가 기본이다. 이 거래를 어떻게 짜는가에 따라 연합의 가능성은 폭넓게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린츠 테제에 대한 ‘한국식 대응’들이 수명을 다해가는 지금, 민주적 제도 내에서 가능한 대안은 크게 둘이다. 첫 번째는 대선과 총선 주기를 일치시키는 동시선거다. 이 경우 대통령 후광효과 덕분에 집권당이 의회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연정 제안이 실패한 후에도 통치가 작동할 제도를 끊임없이 모색한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원포인트 개헌안’도 대선·총선 동시선거였다. 하지만 이 대안은 개헌이 필요한 데다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상호 견제라는 대통령제 핵심 원리와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한국식 대응’이 시대착오이고 ‘총선·대선 동시선거’도 개헌 장벽과 원론적 반론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대안이 연합정치다. 그래서 연합정치는 여야 후보들이 인식을 같이하는 시대정신이 되어가고 있다. 저마다 쓰는 용어는 조금씩 다르고 구상도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우상호 원내대표 외에도 김부겸 의원(민주당)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바른정당) 등 여야 주요 정치인이 비슷한 인식을 보여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연정 합의문을 작성하고 부지사 한 자리를 야당에 넘기는 등 지방정부에서 연정을 실험해봤다. 남 지사는 “연합정치가 잘 작동한다는 실제 모델을 국민들께 보여주면, 연합정치에 더 어울리는 선거제도나 권력구조로 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지 않겠나”라고 조언 그룹과 논의하곤 한다.
“‘정치적 개헌’의 공간이 열렸다”
다당제와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핵심 조건들이 유지되는 한 연합정치는 20대 국회 내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연합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해온 정치학자 최태욱 교수(한림대 국제대학원)는 20대 국회를 예외적인 기회로 본다. “한국 정치가 양당제로 고착되던 중에 양대 정당이 내부 분열을 감당 못하고 쪼개진 결과가 지금의 다당제다. 사회에 뿌리내린 다당제가 아니고, 우리 선거제도도 양당제를 촉진한다. 이 예외적인 기회에 연합정치를 잘 만들어내서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가 끝나면 다시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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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월2일 대연정을 제안했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정의 상대가 어느 세력까지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부차 문제가 된다. 오히려 연정 자체가 가능할지를 결정하는 질문들이 급박하게 떠오른다. 대통령이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과 같은 권력을 넘길 것인가, 국회는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국무총리를 추천할 다수 연합을 책임지고 구성할 수 있나, 그 총리는 자신을 추천한 국회에 책임지는 형태로 통치할까, 대통령은 그와 같은 ‘유사 의회제 모델’을 임기 끝까지 보장할까, 그렇게 구성하는 연합이 성취하려는 핵심 의제는 무엇인가 등이 본질적인 질문이 된다. 이 질문들에 대해 대선 주자와 의회 지도자들이 충분히 답을 한 후에야, 연정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따져 물을 조건이 갖춰진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치인들이 보여줄 능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린 시기다. 이 시기에 입법부의 권한을 재정립하는 등 권력의 운영 원리를 잘 구성해낸다면, 현재 헌법에서도 사실상 개헌에 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치적 개헌’의 공간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개헌을 통하지 않고도 대통령제의 딜레마를 뛰어넘고 권력의 구동 원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드물게 찾아오는 공간이다. 물론 연합정치에 반대하는 노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예외적인 시기의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도 이 주제를 회피할 수는 없다.
'북풍' 근절하는 최초의 정권이 탄생할까?
[민교협의 정치시평] 김정남 피살과, '북풍'의 추억들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
2월 13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당했다. 연일 보도되는 새로운 사실, 추측성 보도를 듣게 되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불편한 심기가 된다. 일주일 만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김정남 사건 배후는 북한"이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북한의 여타 도발"에 대한 강력한 억제, 대남 협박 등에 상응하는 대비를 해야 한다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말했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지도자로서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릴 필요는 북한뿐만 아니라, 현재 남한의 정권 역시 절실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북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2월 하순이 되자 북풍 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바람의 방향이 잠시 바뀌었던 탓도 있으나 어쩌면 기나긴 한반도 분단의 북풍에 적응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일종의 창(window)이자 거울과 같다. 분단이라는 창을 통해 남과 북의 상대를 보고, 욕하는 동안 서로가 닮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창이자 거울은 서로를 투명하게 비추는 게 아니라, 오목 또는 볼록렌즈들을 달고 있어서 서로를 괴물로 보거나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게 하는 듯하다. 또 때로는 상대의 모습이라고 여긴 것이 사실 자신일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한반도 북풍의 대명사, 간첩
돌아보면 분단 70여 년간 남으로 불어온 북풍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가장 많은 북풍은 간첩사건이다. 공식적으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조국통일의 3대 원칙,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내건 이후, 남북 정권은 모두 간첩 파견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뉴스에는 잊힐 만하면 간첩 사건이 전해진다. 1970년대 선배들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나 비상사태가 되면 어김없이 간첩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중요 정국이 되면 '삼계탕(삼양라면에 계란 푼 것)'을 걸고 간첩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갖고 내기 놀이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에게는 우스갯소리였는지 모르나,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아찔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간첩이 2000년대 들면서 '조작간첩'으로 판결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1958년 거물급 간첩으로 선고받았던 조봉암에게 2011년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1970년대 수많은 재일동포 간첩 사건들이 최근 재심 과정에서 무죄로 판결되고 있으니 70년대 선배들의 삼계탕내기가 거짓말이나 허세이지만도 않은 듯하다. 최근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까지 포함하여, 무수한 간첩 사건들 중에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로부터 현재의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재일동포, 자국민, 탈북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간첩조작사건이 대략 77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현재 재심 청구 중인 사건이나 재조사 요청을 아직 하지 못한 사건들도 많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재심 결과 무죄로 판결을 받은 간첩사건리스트를 보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기에 집중되어 있다. 즉 두 정권은 간첩사건으로 시작되어 간첩사건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간첩사건은 잦았다. 4·19혁명 정신을 받아 혁신계 대변지의 하나로 1961년 1월 25일 설립된 <민족일보>는 5·16쿠데타 직후인 7월 23일 북한의 활동을 고무·동조했다는 혐의로 사장 조용수 외 12명이 기소되어 조용수는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2008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1968년 전후로도 여러 건의 조작 간첩 사건이 있었다. 1968년은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면서 서구권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는 68혁명의 횃불이 격렬하게 타올랐고, 민주화를 겪었다. 또한 소련군이 체코를 짓밟은 '프라하의 봄'으로 동서 양진영 모두 체제안보, 국가안보 상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런 위기 상황은 한반도에도 반영되었다. 1968년 1.21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미수사건(일명 김신조 사건)과 1월 23일 미국의 간첩선 푸에블로호의 북한 침범 및 억류 사건 등이 발발되었다. 그 무렵 납북 어부 백남욱 간첩사건(2008년 무죄),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2014년 무죄), 이수근 이중 간첩 사건(2008년 무죄), 박노수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2015년 무죄) 등의 사건들이 있었다.
또한 유신헌법 선포 전후로 하여 조작간첩 사건이 집중되었다. 재일동포 구말모 간첩사건(징역 15년 선고, 2012년 무죄 판결), 납북 어부 박월림 간첩 사건(징역 4년 선고, 2012년 무죄), 포항제철이사 김철우 간첩 사건(징역 10년 선고, 2013년 무죄), 서울대 최종길 교수(1973년 중앙정보부 조사 중 사망, 2006년 국가 배상 판결), 이호철을 포함한 문인 간첩단 사건(1년 선고, 2011년 무죄), 재일동포 유학생 류영수, 류성삼, 김정사, 강우규 사건(각각 2012, 13, 14년 무죄) 등이 연이어져 정치적 공포와 반공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물론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유학 왔던 상당수의 재일동포들도 졸업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한 채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 조작 간첩 사건들은 1980년에도 계속되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연이은 간첩 사건이 발표되었고, 2000년대 이후 무죄가 입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노무현 당시 변호사의 인생을 바꾼 부림사건(2014년 무죄)이나 아람회 간첩단 사건(2009년 무죄) 등 1986년까지 40여건의 간첩사건이 모두 재심 결과 무죄로 판결되었다.
물론 1990년대 이래로도 간첩 사건은 잊을 만하면 일어났다. 최근 간첩사건에는 탈북자 간첩사건도 눈에 띤다. 2011년 탈북자 한준식 간첩 혐의 사건, 2013년 탈북자 유우성 간첩사건, 2014년의 탈북자 홍강철 간첩사건 등이다. 한준식은 조사받던 중 자살을 했고, 유우성이나 홍강철은 모두 무죄로 판결되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간첩 혐의를 받았던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무죄' 판결로 연좌제의 너울과 사회적 격리와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겠지만, 그들이 겪었을 눈물과 고통의 세월이 갚아질 리 없고, 깊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1980년대까지 숱한 조작간첩사건이 발생하면, 초, 중, 고등학생들로부터 군인, 예비군, 일반 시민까지 반공궐기대회, 반공강연회 등 반공패키지 행사에 동원되었다. 또한 그런 사건들은 정치적으로는 헌법적 질서, 시민들의 기본권, 자유권 등을 약화시키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다.
정국을 싹쓸이한 태풍급 북풍, 북한 관련 테러사건
간첩사건이 작은 북풍이라면, 태풍급 북풍이 있었다. 대표적인 태풍급 북풍이 1974년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1983년의 버마암살폭파사건(일명 아웅산 폭발사건)이나 1987년의 KAL 858기 사건과 같은 북한 관련 테러 사건이다. MBC가 빛나던 시절(?) 만든 100부작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육영수와 문세광 2부작'(연출 조준묵 PD, 2005)에서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둘러싼 오래된 소문과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며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의문을 증폭시켰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육 여사 저격 사건 직후 "김일성 처단하자", "일본은 반성하라"는 내용의 반공, 반일궐기대회, 각종 행사가 벌어졌다. 반공·반북 분위기와 함께 반일 정서가 묶여진 것은 역사적 역설이다. 그런데 육 여사 저격범 문세광(당시 23세)이 재일동포 2세였던 사실이나, 1973년 8월 반유신 운동의 리더격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이 도쿄에서 벌어져 한국과 일본 간에 껄끄러웠던 외교 상황이 되었던 문제와도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
다음으로 1983년 버마암살폭파사건을 들 수 있다. 12·12쿠데타와 광주 학살이라는 태생적 원죄가 있던 전두환 정권은 출범 초에 핵개발이나 미사일개발 등의 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갈등을 겪었고, 1970년대말, 1980년초의 경제적 부침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그런 와중에 1983년 버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수행원과 수행 보도진 신문기자 17명이 폭발과 함께 사망하는 버마암살폭파사건이 있었다. 그 해 가을 내내 폭파범의 배후로 추정되는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반공궐기대회 등이 개최되었다. 버마 당국 역시 이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발표하며, 북한과의 외교단절을 했다가, 2006년에야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1987년 KAL858기사건은 그해 6월민주화항쟁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즉 그 사건은 노태우정권를 탄생시키며, 신군부정권이 연장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승객 115명이 실종된 KAL858기사건은 2000년대 이르러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의 7대 조사대상 사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에 실종자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국정원 발전위 조사 과정에서 1987년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 후보를 대선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KAL858기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공식문건, 이른바 '무지개 공작'의 실체 일부가 드러났으나 결과적으로 1987년 북한을 배후로 둔 미녀 북한 간첩 김현희에 의한 폭파사건이라는 결론은 요지부동이었다(<통일뉴스> 2015년 11월 29일자).
양치기소년의 거짓말이 된 북풍 사건들
북풍의 또 다른 종류는 북한의 위기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다. 북한의 권력투쟁과 최고 권력상의 급변사태 시에도 북풍은 여지없이 불었다. 세계적 오보로 판명된 <조선일보>의 세계적 특종이었던 1986년 11월 17일 김일성 사망설이 있다. 조선일보가 뿌린 호외에는 "휴전선 방송, 열차타고 가다 총격 받았다" "북괴 김일성이 총 맞아 피살됐거나 심각한 사고 발생"했고, 휴전선 이북 선전마을에 16일부터 반기가 게양됐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이후 1994년 실제로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 조문 파동과 함께, 뉴스들은 앞다투어 "도발위험성 경계", "도발 가능성 높아" 등의 속보를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위기는 미국의 북한침공작전에 있었다. 당시 미국의 항모가 인천앞바다에 와 있거나 주한미군의 가족들이 피신을 하는 등, 한반도에는 어느 때보다도 전쟁 발발 위험이 높았다. 그해 10월에 북한과 미국간에 제네바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전쟁 위기 상황이 해소되었다.
또한 2011년 11월 17일, 김정일 사망 시에도 우리 정부는 도발 대비 전망과 가능성을 발표했다. 그런데 김정일 사망 직후 출렁대던 금융(주식)시장이 1주일 만에 회복되었다. 금융시장에서는 1990년대 이래로 김정일 사망 직전까지 북한 발 빅뉴스가 23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각 사건 때마다 잠시 금융시장 등에 영향을 줬으나 대부분 1주일 내로 금융시장은 회복되었다고 한다(<주간동아> 2011년 12월 26일, 818호). 이번의 김정남 사건 역시 금융주식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또 다른 북풍에는 남한 정권의 위기 때 나오는 북한 도발설, 또는 남침설이 있다. 북한에는 1950년 6.25전쟁 도발이라는 원죄가 있다. 그때 이래로 남한의 정치적 위기 때마다 도발설, 남침설이 흉흉하게 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 북한 간첩 개입설이 아니겠는가. 2013년, TV조선 종편채널의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탄 장성민 전 국회의원이나 반북 극우단체들의 '광주사태'에 '북한 1개 대대가 침투해왔다', '광주시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국방부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 등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미국 CIA마저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의 군사행동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이 글에서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북풍 사건들이 있다. 그러한 북풍사건 중에는 실체가 있는 것도 적지 않지만, 실체가 없는 것도 적지 않다. 실체가 없거나 불확실한 북풍은 국민들에게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솝우화를 거듭해서 상기시켰다. 정치인, 대중매체, 사회적 공인들의 거짓말 혹은 과장들은 북풍의 실체에 대해 깊은 의혹을 품도록 만들었다.
분단체제가 만든 북풍
그러나 북풍의 실체 유무와 무관하게 진실이 있다. 진실은 분단체제이다. 분단체제는 남북 정권의 분단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 자유의 마비를 낳았다. 빨갱이로, '(조작)간첩' 종북좌파로 낙인찍히는 것은 정치적 낙인이자 사회적 매장이었다. 그러한 낙인은 가족의 해체이자 개인의 몰락을 의미했다. 소위 1990년대까지 작동되었다고 하는 연좌제의 너울은 관련자들이나 혐의자들이 자유로운 시민은커녕, 국민으로서의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도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2000년대 잠시 우리 사회에 그러한 분단체제가 약화될 기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래로 퇴행하기 시작하여 박근혜 정부 하에서 다시 1970년대 냉전의 시절로 한반도가 돌아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도 잠시, 정부는 생존자들이나 유가족의 고통을 감싸 안고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세월호 지우기에 여념이 없었고, 일베와 같은 극우세력들은 '폭식투쟁'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종북좌빨'이라며 색깔론을 덧씌우는 폭력마저 행했다. 북풍을 낳은 분단체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의 존엄성마저 백안시하는 원흉이 되었다. 또한 잦은 북풍이 가져온 '양치기소년'의 효과는 정치적인 불신, 정치인이나 공인에 대한 불신마저 조장하도록 했다. 심지어 잦은 도발, 침략 등의 발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과 같은 폭력과 공포에 대한 냉소에 거리두기를 하도록 만든다.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의 북풍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김정남 사건의 진실이 덮여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권력투쟁이나 암살, 각종 의혹 등을 증폭시키며,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고 강화하며, 분단에 기생하는 정치가 아니다. 우리는 진정 원하는 정치는 남북의 갈등과 폭력을 극복하고, 평화와 상생을 가져올 정치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무기력화시키는 분단 상태가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정의롭고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는 평화로운 상태로 바뀌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든 죽었으면 "안 됐네." 라고 애도할 수 있는 사회이길 원한다.
또한 우리 국민은 안전한 안보의 나라를 꿈꾼다. 특정한 세력의 정권안보가 아닌 국민주권에 기초한 국가안보나 안심하고 제주이건 해외이건 여행이나 사업을 해도 되는 인간 안보가 지켜지는 나라를 꿈꾼다. 또한 식민이나 전쟁으로 제 국민을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끌려나가고 성노예로 끌려 나가지 않도록 하는 여성 안보, 약자 안보가 통하는 나라를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분단에 기생하는 권력을 우리 국민은 원치 않는다. 그러한 소망과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제 우리는 북풍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더킹>,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시대착오적인가!
[김경욱의 데자뷔] <내부자들>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할 영화
김경욱 영화평론가 2017.02.23 17: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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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재림의 <더 킹>은 지난 1월 18일에 개봉해 2월 21일까지 5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영화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서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는 말이 나도는 걸 보면, 13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출발한 영화가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결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 정도 규모의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흥행 요소를 버무려 넣고 얻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톱스타 조인성과 정우성을 캐스팅하고, 그 동안 제작된 조폭영화와 검사가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인상 깊은 실제 사건들을 이리저리 짜깁기 했다. 여기에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좋은 친구들> 같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참고했다. 주인공 박태수의 고등학생 시절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2004)가 떠오르고, 그의 조폭친구 두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비열한 거리>(2006)가 생각난다. 목포의 조폭인 들개파의 두목이 제거할 대상을 개가 물어뜯어 먹어치우게 할 때는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악랄한 인물인 램지 볼튼의 행각을 보는 것 같다.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병두는 열악한 환경에서 병든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조폭의 일원이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역시 조인성이 연기하는 <더 킹>의 태수는 어머니 없이 사기꾼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권력을 동경해 검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에 매진해 서울 법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법을 어겨야하는 병두와 법을 수호해야하는 태수 사이에 차이는 별로 없다. 조폭과 검사는 성공하기 위해 자기의 자리에서 각각 나쁜 짓을 한다. 조폭이 나쁜 검사가 되고 조폭영화가 이른바 검사영화가 되었다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내부자들>(2015)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더 킹>은 제작되지 않았거나 다른 영화로 등장했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대대적인 흥행작으로 등극하면,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뒤를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은 정치권, 언론, 재벌, 검찰 그리고 조폭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부패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구조를 선정적인 방식으로나마 드러냈다. 그런데 <더 킹>에서는 한강식과 그의 심복인 양동철과 태수, 세 명의 검사가 중심이 된다. 한강식의 배후에는 들개파 두목이 있고 태수에게는 들개파의 조직원 두일이 있지만, <내부자들>의 정치깡패 안상구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더 킹>에는 오로지 검사 세 명이 모든 일을 한다. 한강식과 심복들이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리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인 정치검찰의 타락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들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고 계속 살아남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영화 제목의 '킹'이 마치 한강식인 것처럼, 그를 움직이는 윗선의 존재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산더미 같은 정보 수집을 통해 야당 국회의원의 약점을 잡아 곤경에 빠트리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정보를 넘겨주거나, 이슈를 이슈로 덮는 설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와 같이 인물이 각종 선거에서 실제로 자행했던 진짜 악랄한 공작은 볼 수가 없다. 대신 그는 무당의 점괘에 더 매달리는데, 계속 잘 찍던 무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맹활약하는 정치검찰의 행태를 생생하게 그리기가 부담스러웠는지(무서웠는지), 한강식은 부하들과 춤을 추고 굿을 하는 등의 장면을 통해 기묘하게 희화화된다. 한편으로 그가 직접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특정한 현존인물의 악행을 떠올리게 하는 난처함을 피하려고 했는지, 장소는 대공 분실 같은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들개파의 도살장 같은 아지트이다. 정우성이 연기를 못해서인지, 외모가 너무 수려해서인지, 한강식은 현실에 존재하는 소름끼치는 괴물이 아니라 시종일관 영화 캐릭터로서 비현실적인 인물로 머문다.
태수의 경우에는 부잣집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장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평범한 검찰로 살아간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 불의와 타협함으로써 그는 한강식의 심복이 된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부와 권력의 커넥션이 그려질 여지가 사라진다. 또 그를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하고 자대배치 시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는 장면을 넣었으면서도, 이후 승진 같은 문제와 연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엄존하는 지역차별이 드러날 여지가 사라진다.
이 영화는 전두환에서 이명박에 이르는 대통령과 대선 과정의 다큐멘터리 화면 등을 계속 삽입하고, 실재 일어났던 사건들인, 여배우의 섹스 동영상 유출이나 공연음란행위로 걸린 검사 등의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가미하면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재현한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끊임없이 사건을 설명하는 태수의 내레이션은 그것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장면과 장치를 걷어내면,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차고 넘치게 활용하는 조인성과 정우성(심지어 그들은 30년의 세월이 흘러도 항상 젊은 모습을 유지한다), 그리고 조폭과 연관된 과도하게 잔혹한 장면이 남는다. 태수의 아내,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정의의 사도처럼 등장해 한강식과 양동철을 좌천시키는 안희연 검사 등은 여러 번 등장하는데도 별로 존재감이 없다. 영화가 돈과 권력으로 강고하게 구축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차원에서만 비리를 다루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 시대임에도 그 두 명의 나쁜 검사들만 권좌에서 끌어내리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제거되자, 평범한 샐러리맨 같았던 검사가 부장검사가 되고, 안희연이 여성최초의 감찰부장이 되는 시대가 도래 한다!
그런데 태수는? 그는 우여곡절 끝에 한강식에게 버림받고 검사직에서 물러나 인생이 거의 끝장난다. 만취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병실로 실려 가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다. 그는 "신이여, 우리를 용서 하소서"라고 말하지만, 다음 장면의 전개를 보면 그저 영혼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태수는 한강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야당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전라도 목포출신이라는 점을 비롯해 모든 경력과 활동이 미화된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한강식 등의 비리를 폭로하고 검찰개혁과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정치는 오로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태수는 차기 대선의 여당의 유력주자이자 4선 의원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도전장을 던진다. 민주투사로 변신한 자신을 향해 "나는 사기꾼이자 양아치였고 권력을 위해 충성하는 개였다"고 조롱하면서, 그는 정치를 드라마와 쇼의 장으로 활용한다(현실이었다면, 태수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는 건 정말 인생이 끝장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태수의 변신과 함께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하면서, 정치에 대한 조롱과 냉소주의를 전파한다.
감독은 태수가 국회의원이 됐는지 안됐는지의 여부를 관객에게 넘긴다. 한재림은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안희연 같은 검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대신 태수처럼 권력을 추종하며 나쁜 짓을 일삼는 기회주의자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이동시킨 다음, 관객에게 그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이 때 태수는 "내가 당선 됐는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당신이 세상의 왕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왕이다. 그렇다면 여당의 4선 의원과 야당의 태수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끌어내리고 선택할만한 자들을 그 자리에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말을 결정하지 않은 채(못한 채),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이 영화는, 결국 얼마나 지리멸렬하게 시대착오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