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체제의 폭력에 맞선 역적…서민들 숨통을 틔우다 - 국민이 바뀌고 있다

일취월장7 2017. 2. 23. 10:27

체제의 폭력에 맞선 역적…서민들 숨통을 틔우다

입력 2017-02-11 07:40:06 | 수정 2017-02-11 07:40:06

MBC 월화드라마 '역적'


이탈리아 철학가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을 통해 체제의 폭력성과 박탈당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주장했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죽여도 처벌받지는 않지만 이를 희생물로 바치는 건 금지된 대상이다. 이는 사회적·정치적 정체성도 없는 존재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체제에서 벗어난 가장 숭고한 존재이기도 하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의 마음을 훔친 도적’(역적)의 아모개(김상중 분)가 바로 이 호모 사케르다. 그의 신분은 대대로 종으로 사는 씨종이다. 존재는 하지만 아무런 주권이 없는 생명체다. 자신과 식솔의 생살여탈권을 주인인 조참봉(손종학 분)이 갖고 있고, 주인 허락이 없으면 자식의 이름조차 지을 수 없다. 주인 대신 매를 맞거나 주인의 기분에 따라 희생당해도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주인에게 순종하고 사는 길만이 최선인 아모개의 삶에 변수가 생긴 것은 둘째 아들 길동(아역 이로운, 윤균상 분)이 ‘아기 장사’임을 알고부터다. 양반가의 자식이 장사라면 장군감이지만 종의 자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족은 멸하고 출신 마을마저 흉하다는 취급을 받기 일쑤다. 아모개는 이를 알고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한다. 나중엔 장사 수완을 익혀 조참봉의 재물을 불려주고 면천을 꾀한다. 


일은 아모개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모개의 재산을 탐낸 조참봉과 아내 박씨(서이숙 분)는 아모개의 임신한 아내 금옥이 조산을 하고 죽도록 계략을 꾸민다. 가족과 생존을 위해 주권 없이 살아가던 아모개가 자각하고 봉기하는 순간이다. “온통 노비는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리라고 별 수 있었겠소. 인간 같지 않은 놈들 싹 다 죽여불고 새로 태어날 생각을 왜 못했을꼬.” 울분을 토한 아모개는 조참봉에게 복수를 하고 옥에 갇힌다. 주인에게 반기를 든 노비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역적’의 주인공은 아모개의 천하장사 아들 홍길동이다. 그런데 익히 알려진 홍길동과는 다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 홍길동은 없다. 대신 가족을 위해 주권을 찾아가는 강력한 아버지 아모개, 그리고 다른 이들의 주권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성장하는 아모개의 아들 홍길동이 있다.


허균 소설의 홍길동이 거대한 체제에 소심하게 반기를 들었다면 ‘역적’의 홍길동은 체제를 전복시킨다. 1회 첫 장면에 등장한 연산군과 대적하는 홍길동은 불가능한 꿈의 실현이다. 연산군(김지석 분)은 대적한 홍길동에게 “멸족당한 고려 왕족의 후손이라 들었다”고 하지만 홍길동은 답한다. “난 그저 내 아버지의 아들이요. 내 아버지. 씨종 아모개의 아들.” 연산군이 “천한 몸에서 너 같은 자가 났을 리 없다”고 말하자 홍길동은 되묻는다. “그대는 나라님의 몸에서 나 어찌 그리 천한 자가 되었습니까?”

애초에 모든 생명은 벌거벗은 그 자체로 숭고한 존재다. 사유를 봉쇄하는 체제조차 자신과 가족과 동료를 위하는 인류애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천하디천한 핏줄의 홍길동이 백성의 마음을 훔친 역적이 되고, 귀하디귀한 연산군이 희대의 폭군이 된 이 색다른 영웅 서사의 서막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울화가 치미는 시대다. 상대적 박탈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역적’은 그런 서민들에게 산소호흡기처럼 숨통을 틔워준다.



한달짜리 비정규직이 본 세상

[민미연 포럼] 비정규직 동생과의 대화
2017.02.22 08:13:06


"여기 천국이야. 학교 공무원, 교사는 편하게 일하고 연봉도 많고 많이 누리더라."

학교에서 일하는 1개월짜리 비정규직이 한 말이다.

천국은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상에도, 대한민국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는 대한민국,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개한민국'에서 천국은 어디일까. 모든 사람들이 '헬조선'에 살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일부 계층은 따뜻한 성안에서 살고 있다. 반면 많은 대중은 시베리아처럼 추운 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살지만 온도 차가 매우 심하다.

2015년 11월 30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빠, 나 00중학교 행정실에 한 달짜리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됐어. 모레부터 출근해."

여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과거 공무원으로 재직했다가 사직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여동생은 지난 4월 초,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행정실 비정규직을 그만두었다. 여동생은 자발적 퇴직이라 실업급여도 타지 못한 채 6월 공무원시험에 낙방한 후, 지난 5개월 동안 관청과 학교 비정규직 채용 공고를 보고 10여 차례 자기소개서를 내고 지원했으나, 번번이 탈락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활이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일하려고 하던 중 어느 중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아 1개월짜리라도, 발등에 불이 붙었는데 이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중학교 행정실에 근무하게 됐다. 1개월짜리 학교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짧아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내 여동생에게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요즘 관공서와 학교 비정규직 채용공고를 보면 초단기(근무 기간 30일, 50일, 60일, 90일짜리) 비정규 계약직을 뽑는 곳이 많다. 정규직 대체인력으로 비정규직을 소모품처럼 단기간 부려먹다가 버리는 것이다. 비정규 계약직이라도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최소한 6개월은 고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이 소모품인가. 

ⓒ연합뉴스


여동생이 집에 놀러 와 말했다. 

"나도 과거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요즘 공무원들은 내가 공무원으로 일했던 1990년대에 비해 봉급도 엄청나게 많고 좋더라. 학교 공무원, 교사는 편하게 일하고 많이 누리더라. 여기 천국이다. 이 중학교 행정실 사람들은 좋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 6급 공무원인 행정실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한 시간 정도 사무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 놀다가 퇴근할 때쯤 사무실에 들어와 퇴근한다. 그분은 내년에 정년퇴직인데,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아. 하는 일 없이 봉급 많이 받는다. 여기는 6급 행정실장, 7급 공무원, 무기계약직 여성, 나, 이렇게 4명 근무한다. 지난번 실업계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때는 남자 정규직 공무원 2명이 비정규직인 나에게 일을 떠넘겨 엄청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여기는 중학교 행정실이라 일도 적고 행정실장과 정규직 공무원이 일도 많이 시키지 않는다. 모두 느슨하게 살랑살랑 일한다. 오전 8시 30분 출근, 오후 4시 30분 퇴근이다. 방학 때는 더 편하겠더라. 초등학교 행정실은 중학교 행정실보다 더 편하다고 하더라. 내가 학교에서 일을 많이 해봤는데, 교육행정직 공무원과 교사는 직장이 천국이다. 교육행정직 공무원과 교사들은 일은 적게 하면서도 월급과 각종 수당은 많이 받고, 게다가 교사들은 방학 때에는 놀면서도 월급 100% 챙겨가며 해외여행 가고. 모순이야. 비정규직과 민간 직장인, 노동자들은 고생하는데 그들은 누리는 것이 너무 많다. 기득권자야. 나도 생활이 어려워 공무원이 되려고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특권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공무원, 교사의 특권을 줄이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학교가 공무원과 교사에게 천국이구나." 

"응, 천국이야. 나는 비정규직이라 한 달간만 천국 생활을 해. 비정규직으로 월 160만 원을 받는 사람도 천국으로 느껴지는데, 월 300~500만 원 이상 받는 공무원과 교사들은 본인들은 민간 직장인 생활을 안 해봐서 천국에서 산다고 못 느낄지 몰라도 천국에서 엄청나게 호강하며 평생을 사는 거지. 반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노비다. 관노비! 학교는 비정규직 백화점이야."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관노비 맞다. 모두가 공무원, 교사처럼 누리는 삶을 살면 좋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아. 그래서 문제인 것이야. 모두가 양반이 되는 세상, 모두가 귀족이 되는 세상, 즉 상향평준화는 우리의 이상일 뿐 현실의 프로그램이 될 수 없어. 그렇다면 종신고용안정을 보장받는 공무원과 교사의 특권은 줄여야 해. 편하게 일하고 높은 연금을 받고 종신고용안정과 공무원연금을 보장받는 공무원과 교사는 고용안정은 보장하더라도 임금이 높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장기근속 50대 공무원과 교사를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해야 돼. 임용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국가에서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것은 공무원과 교사가 새로운 양반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야." 

"오빠 말이 맞지만, 세상이 안 바뀐다. 공무원과 교사는 양반이다. 기득권집단이야. 누구도 그들을 개혁할 수 없어. 관료도 정치인도 공무원의 편이야. 관료도 공무원이야. 내가 지금 세상 걱정할 때가 아니다. 여기서 1개월 근무하고 다른 학교 행정실에 가서 몇 개월 더 근무해야 될 텐데, 걱정이다. 비정규직은 사는 게 걱정이다." 

공공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도 심하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가 극심한 현장의 생생한 소리이다. 내 여동생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청년·지인·기혼 여성 수십 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봤는데, 한결같이 여동생처럼 말했다. 재벌만 특권층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일상화된 간접고용 “우리 사장님은 누구인가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파견·용역·특수고용직 노동자들

이민우 기자·정지원 시사저널e.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3(목) 08:23:56 | 1427호


2016년 5월 한 청년이 지하철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호출을 받고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던 청년은 승강장에 들어오던 열차와 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19세 청년이 남긴 갈색 가방에는 공구들과 함께 먹지 못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숟가락이 들어 있었다. 제대로 밥 한 끼 먹을 시간 없이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져 온 국민을 비통함에 빠뜨렸다.

 

비단 구의역 사고만이 아니다. 2월3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 협력업체 반장 이아무개씨(44)가 자신이 작업하던 파이프 사이에 끼여 숨졌다. 울산 남구에 위치한 한화케미칼 울산3공장에서 매몰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강아무개씨(52)가 숨진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2016년 6월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붕괴 참사에서도 하청업체 노동자와 일용직들이 피해를 입었다. 2016년 9월에는 야간 선로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KTX에 치여 숨졌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 똑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매뉴얼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 수칙을 지키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외주화의 끄트머리,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컵라면을 들고 다녀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은 한국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외주화와 인력 감축이라는 비정한 논리에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에게 남긴 시민들의 추모글 © 시사저널 고성준

구의역 사고로 숨진 청년에게 남긴 시민들의 추모글 © 시사저널 고성준


협력업체에 맡겨진 일터, ‘간접고용’이라는 역병

 

한국은 ‘간접고용 공화국’이다. 어느 무렵부터인가 우리네 일터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점령당했다. 간접고용이란 기업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인력공급업체 등을 통해 공급받아 일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파견·용역·위탁·도급·사내하청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하청업체나 용역업체에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됐다면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핵심 사업만 남기고 외주화를 남발했다. 하청에 재하청의 틀에 갇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헐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됐다. 간접고용 문제가 불거진 것은 제조업체였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왼쪽 문을 조립하는 이들은 회사 소속이고, 오른쪽 문을 조립하는 이들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채워졌다. 사회적 문제가 되자 조립은 본사 소속 정규직 직원들에게, 도색과 출고 업무는 외부업체 노동자들에게 맡기는 꼼수까지 벌어졌다.

 

제조업체에 집중됐던 간접고용은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 서비스, 신세계·이마트·삼성전자서비스 등 민간 서비스, 병원의 간호 업무, 원자력발전의 주요 부품 납품, 숭례문 복원 과정 등 안전·문화재 업무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기존 직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옮긴 뒤 물류·수리(AS) 등의 업무를 외주화하는 행태까지 자행됐다.

 

간접고용이 일상화된 이유는 회사가 각종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용역업체나 파견업체에서 고용한 인력이기 때문에 해고가 자유로웠다. 사고가 나도 원청회사는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교섭을 요구하면 해당 회사와 계약을 해지하면 됐다. 법망을 피해 가는 유용한 방식이었다.

 

물론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은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다. 대부분이 불법파견인 셈이다. 하지만 합법파견과 불법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했다. 불법 여부를 판단할 근거는 인사노무관리의 독립성, 지휘감독권 행사의 주체, 사업 독립성 등이었다. 1월25일 여수산업단지의 한 협력업체에서 자살한 남고생의 휴대전화 기록에서 다른 관리자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은 내용이 발견됐지만 원청업체인 대림산업은 “협력업체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발뺌하는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노동당국이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을 이유로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 현지 협력업체에 3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다행히 법원에서 이 같은 간접고용 행태에 조금씩 제동을 걸고 있다. 2010년 이후 대법원은 한국지엠·현대차·남해화학·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월10일에는 고등법원에서 간접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 노동자까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지방노동위원회부터 중앙노동위, 행정소송 1·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한 결과였다.

 


비정규직 줄인다더니 간접고용 늘리는 정부

 

간접고용의 남용은 허름한 공단의 중소기업이나 잘나간다는 대기업 제조공장의 얘기만이 아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2월1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342개 공공기관의 소속 외 인력은 8만188명에 달했다. 2011년 5만2936명에서 51%나 늘어난 수치다.

 

인천국제공항을 예로 들어보자. 외국을 찾거나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공항 직원들과 마주하게 된다. 서비스 안내부터 비행기표 발권, 수하물 검색, 출입국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만나는 사람 가운데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직원은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대민(對民) 업무는 아웃소싱 업체에 맡겨져 있다. 흔히 공항 직원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용역업체 직원이거나 비정규직이다.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은 여객터미널 주차장 건너편의 공항공사 건물에서 공항 건설이나 공항 운영, 마케팅, 경영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은 이명박 정부 때 대세로 자리 잡았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공공부문 외주화를 추진했다. 인력공급업을 핵심산업으로 성장시키려는 법 개정 작업도 벌였다. 인력공급·고용알선업에는 2011년까지 법인세의 20%를 깎아줬다. 그 사이 KTCS, 유니에스, 에스텍시스템 등 공룡 같은 인력공급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완화만 강조할 뿐 간접고용의 남용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이어지자 파견업 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정규직화 계획을 추진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공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정규직 축소 비율을 경영평가 실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비정규직이 감소한 자리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통계에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는 탓이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인건비 규제를 받는 직접고용보다 규제를 받지 않는 간접고용을 늘리는 게 유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필수적인 업무에 소요되는 인력만 정규직으로 하고 나머지는 간접고용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공공기관의 고용보장과 임금에 대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선하는 한편 간접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된 이들에게는 그나마 ‘노동자’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하지만 일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특수한 이들도 있다. 바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학습지 교사, 방송작가, 방송외주PD, 헤어디자이너,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자동차 판매사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법적인 신분은 ‘자영업자’ ‘개인사업자’다. 외환위기 이전에 직접고용된 노동자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근로계약서가 ‘업무위탁계약서’ ‘도급계약서’로 둔갑했다.

 

 

일은 하지만 노동자 아닌 ‘특수한 존재’

 

김환영씨(47)는 19년 차 자동차 대리점 판매사원이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조회를 한다. 업무전달을 받고 나면 동료들과 함께 판촉행사에 나선다. 오후 시간엔 개인판촉을 뛴다. 이처럼 여느 회사원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김씨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4대 보험의 대상자도 아니다. 자동차 대리점 판매사원들 대다수는 개별대리점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촉계약을 맺고 일한다.

 

김씨가 특수고용직이 된 건 5년 전이다. 1999년도에 대우자동차 정규직 판매사원으로 입사해 12년간 일하다가 2012년 9월부터 신분이 바뀌었다. 회사가 직영점에서 대리점 체제로 전환하면서 직접고용하던 판매사원들을 모두 특수고용직으로 바꾼 탓이다.

 

자동차 대리점주와 판매사원이 판매대수당 수수료를 약 7대3의 비율로 나눠가지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차를 많이 팔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김씨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대리점과 판매사원이 과도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처음엔 차를 많이 팔면 월급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건 최저임금 수준인 120만원 남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매사원들이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옵션 끼워주기 경쟁을 시작했다”며 “수당에서 일부를 떼어내 내비게이션과 같은 각종 옵션을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안전망인 4대 보험의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 정규직일 때는 회사와 김씨가 절반씩 부담하던 보험료를 지금은 김씨가 전액 내고 있다. 김씨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이 정규직일 때보다 월 30만원 더 나간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은 아예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 때문에 비자발적인 사유로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도 가입대상이 아니다. 지갑은 가벼워지고 고용은 불안해졌는데 사회안전망은 더 열악해진 셈이다. 김씨는 “판매사원들은 특수고용직이라서 점주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서 “고용불안이 심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김씨의 동료들은 단 한 명도 퇴직금을 못 받았다. 김씨와 같은 회사의 대리점에서 2013년 12월까지 9년간 근무한 윤아무개씨도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퇴직금반환청구소송을 냈지만 소송에서 졌다. 현재 윤씨는 자금난으로 인해 항소를 포기한 상태다.

 

김씨는 “월차·연차 휴가도 따로 없다. 매년 8월초에 자동차 생산공장이 일주일 동안 일괄 쉬는데, 이때 쉬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월차·연차뿐만 아니라 시간외 수당도 언감생심”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판촉에 자주 빠지면 당직에서 제외돼 영업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여성 판매사원의 경우 더 심각하다. 출산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자동차 딜러’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김씨는 딜러라고 불리길 거부한다. 김씨는 “딜러라고 하면 사람들은 ‘판매왕’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최저임금 조금 넘게 돈을 버는 비정규직”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규직으로 일할 때와 비교해 업무내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특수고용직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면서 “직영점 체제로 다시 전환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2010년 이후 대법원은 한국지엠·현대차·남해화학·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 연합뉴스

2010년 이후 대법원은 한국지엠·현대차·남해화학·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등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뒤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 연합뉴스


특수고용직 보호 정책은 ‘제자리걸음’

 

균열 일터. 지난 30년간 진행된 일자리의 질적 하락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 정책을 수립한 데이비드 와일 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게 벌어지는 바위 틈(fissured)처럼 일터도 지난 30년간 균열을 겪었다”며 이 개념을 차용했다. 노동관계법을 피해 가기 위한 갖은 꼼수가 확산되면서 법 조항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특수고용직 문제 또한 그 꼼수에서 출발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도 있었다.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처음으로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대책을 논의했고, 수차례 입법절차를 추진했다. 정부는 2006년 10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을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로 보고 사회보험 적용 등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며 만든 특례 조항은 이들의 노동자 신분 회복을 어렵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권의 입법 움직임도 있었지만 재계의 반발 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19대 국회에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이들의 노동자성(性)을 인정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여전히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한 통계자료는 없다. 지난 15년 동안 50여 개 업종, 약 200만 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생겨났다고 추정될 뿐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수고용직 근로 형태에 대한 조사 결과, 특수고용직 직종 대부분은 사용종속성과 조직종속성 등 노동자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 지위 인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강로에서] 국민이 바뀌고 있다

박영철 편집국장 ㅣ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7.02.10(금) 13:47:52 | 1425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의 첫날 국내외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대선 불출마 선언이 그것입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24일 “박연차가 반기문에 23만 달러 줬다”는 제목으로 반기문 전 총장의 금품 수수 의혹을 전 세계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반기문 검증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입니다. 이후 언론의 검증 공세가 봇물처럼 터졌고, 해외 언론까지 가세했습니다.

 

반 전 총장의 퇴장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반 전 총장급 거물이 이 정도 사안으로 대선 레이스에서 내려오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영수급 정치인들이 연루된 과거의 뇌물 스캔들은 단위가 다릅니다. 뒤에 동그라미가 몇 개는 더 붙었고 그런데도 무사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모 야당 지도자는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본인은 물론 지지자들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여당은 훨씬 많이 받아먹었다”는 논리로 방어막을 쳤고, 그게 먹혔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 국민성을 보면 의외로 최고책임자에게 너그러운 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예를 볼까요. 그렇게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분개해서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데모를 했던 우리 국민들이 막상 이 대통령이 하야(下野)를 선언하고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떠나자 연도(沿道)에 구름같이 몰려들어 눈물을 훌쩍거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이 박사(이승만)가 나빴나? 이기붕이 같은 밑에 놈들이 나빠서 그랬던 거지”라는 유(類)입니다. 리더에게는 지휘책임 내지 관리책임이라는 게 엄연히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이 대목에 관대했던 거죠. 지금 탄핵심판 대상으로 전락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동정적인 국민이 있는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그랬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조금 바뀔 모양입니다. 시사저널 기사에 나오는 23만 달러와 3만 달러, 합쳐서 26만 달러면 한화로 약 3억원입니다. 예전 같으면 문제가 안 될 금액일 수도 있는데, 이제는 문제가, 그것도 아주 많이 됩니다. 이 기사가 맞고 안 맞고를 떠나 구체적인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이 설득력 있는 해명을 못한 것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그 후로도 친인척 비리, 무능 논란 등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됐고 핀치에 몰린 반 전 총장은 결국 뜻을 접었습니다.

 

이번 ‘반기문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국민들이 (예비)최고지도자의 잘못에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관행이 이제는 면죄부가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새 관행’이 정착되면 대한민국은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앞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수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가던 잘못도 이제는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자신은 사생활이 문란해도 정치인들의 사생활에는 엄격한 미국형으로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변화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정치의 변화는 민간의 변화로 연결돼 우리 사회가 탈(脫)권위주의로 나아가게 되겠죠.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넌더리가 나서 도덕성이 최고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이 됐지만, 이것만 갖고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도덕성과 소통능력을 갖춘 유능한 최고지도자가 출현할 때 비로소 이 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가 쌓이면 언젠가 대한민국은 따뜻하면서 유능한 엘리트가 이끄는 멋진 나라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단독 인터뷰] 고영태 “국민들이 응원해주셔서 더 창피하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7년 02월 10일 금요일 제491호


2월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이 열렸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국민연금공단을 매개로 한 삼성의 박근혜 대통령 뇌물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고영태씨의 출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고씨와 최순실씨의 내연관계가 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씨의 출석을 요구했다. 고씨는 이날 헌재에 출석하지 않았고 헌재는 직권으로 증인채택을 취소했다. 2월8일~9일 고영태씨를 만나 헌재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헌재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는?

어머님이 그만하라고 하더라. 내가 나올 때마다 가족들이 힘들어한다. 이제 내 일은 다 했다. 내가 나설 때가 아니라 사법기관에서 정리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고영태씨를 계속 보자고 하는데.

단순히 시간 끌기 아닌가. 최순실씨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헌재 심판의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불륜설을 제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역겹다고 이야기했다. 대꾸할 값어치도 없다고 했다. 나는 모두 답변했다. 최순실 측에서는 아무런 반박을 못했다.

불륜설, 마약 전과 등 사생활 이야기가 나오면 상처받지 않나?

상처? 이미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받지 않는다(웃음). 재판에 나와서 다 얘기하지 않았나. 도대체 얼마나 더 반박해야 하나? 처음에는 최순실씨 관련 자료를 던져주면 언론과 검찰이 알아서 정리할 줄 알았다. 이렇게 큰 사건인 줄 몰랐던 거다.


ⓒ연합뉴스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가 6일 최순실 씨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7.2.6



그렇게 판단한 게 언제였나?

지난해 9~10월이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순수한 뜻이었다. 애초부터 최순실이 힘이 있으니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지 못한다고 보았다. 차은택, 김종, 삼성 사장 정도만 검찰 조사 등을 받고 정리될 줄 알았다. ‘차은택 게이트’로 정리되는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최순실씨가 더스포츠엠(SPM)을 일반 회사, 미국에서 소개받은 회사로 알고 있었다. 제 주머니 찬 줄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큰 사건인지 계산할 머리가 있었다면, 이 사건을 조작할 머리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지자 고영태씨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더블루케이가 나오니까 내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미르재단 의혹이 불거지자 이성한 전 사무총장을 공격했다. 그때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와! 이 모든 사건을 또 한 놈 죽여서 무마시키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전에 이석수 감찰관 사건, 정윤회 문건 사건 때 자살한 경찰관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나에게 오는구나. 나만 죽이는 구나…. 그래서 처음엔 외국에 좀 가있으려고 했다. 괴로웠다. 그걸 다 어떻게 표현하겠나.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는 ‘고영태가 최순실을 이용해서 정부 돈 타내자’고 했다고 주장한다. 녹취도 있다고 한다.

그거에 대해선 검찰과 특검에서 설명을 다 했다. 내가 먹으려고 했다는데, 정황이 없어서 끝났다. 한 탕 해먹으려고 했다면 김종 차관이나 차은택 감독처럼 거기서 버텼겠지.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잘라야 한다는 최순실의 이야기를 듣고 사적으로 통화한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는 고영태 관련 녹취 파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녹취 파일이 2000개다. 대부분이 김○○(고영태씨 지인)이 영어공부하고 자기 친구들이랑 통화했던 거다. 검찰에서 나와 관련된 것 같은 녹취 파일을 뽑은 게 3개다. 그중 하나가 MBC 보도에 나온 대화다(MBC는 고영태씨의 측근인 김○○씨가 대화를 녹음해왔는데, 이들이 고씨와 최순실씨와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녹취에 나왔던 일을 추진한 적도 없다. 검찰과 특검에서도 다 끝난 일이다. 내가 돈이나 회사를 빼앗으려고 했다면 최순실과 함께 수갑을 차고 있겠지….

‘고영태 잠적설’ 어떻게 생각하나?

잠적한 게 아니라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수사를 계속 돕고 있다. 본질을 흐리게 자꾸 몰아가는 것 아닌가. 내가 뭐 그리 중요한 사람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리 중요한가? 나는 최순실씨의 구성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국민들이 응원해주셔서 더 창피하게 느껴진다. 헌재라든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였다. 나라를 위해 나가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 대리인단들은 개인을 위해 일한다. 지금 그들의 하는 일이 국가를 위한 것도 결코 아니다. 나는 운동만 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잘못된 것을 알았고, 잘못했다고 얘기한 것이다. 태극기를 단 가슴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이건 잘못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나온 거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랑 잘못된 것을 알고 난 후에는 포장마차나 해서 먹고살자고 했다.

재판받을 때 어떤 방청객 할머니가 최순실 변호사들에게 ‘양심 있냐고 돈이 그렇게 좋으냐’고 소리 질렀다.

찡하고 눈물 날 뻔했다. 고향 분들이 응원하는 편지를 읽었다. 막 고맙다가 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든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전남 담양군 대덕면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퇴진 담양군민운동본부 주최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담양 대덕면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측근이었다가 갈라선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고향이다. 참가자들은 '최순실 재판'과 헌재 탄핵심판 사건 증인으로 채택된 고씨를 응원하며 현수막을 걸었다. 2017.2.4 [박근혜 퇴진 담양군민운동본부 제공=연합뉴스]



탄핵이 인용되고 나면 다른 궤적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난 검찰도 경찰도 아니고 수사권도 없다. 이제 헌재와 법원이 풀어야 할 일이다. 난 더 이상 할 게 없다. 끝나면 최대한 빨리 자리로 돌아가야지. 최대한 평범하게. 그냥 조용히 속죄하면서 살고 싶다.

얼굴이 너무 알려졌고, 곰 캐릭터(카카오톡 라이언) 닮아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그냥 평범한 한 구성원으로 살도록 국민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때는 나쁜 놈이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고….


*보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2월13일 발행되는 시사IN 492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