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다가오고 있다" - 북핵문제..
"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다가오고 있다"
1. 미국의 대외 정책 환경
□ 초원을 뒤흔드는 코끼리
우려했던 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거칠고 불안하게 출발하고 있다. 트럼프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오바마의 대외 정책을 통틀어 뒤집겠다더니 어느새 러시아의 크림반도 철수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문제 같은 주요 외교정책에서 미국의 기존 입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먼지가 언제 가라앉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현상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화난 코끼리가 초원을 뒤흔들면 초원이 망가지고 결국 코끼리도 살 곳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 전에 다른 동물이 먼저 사라진다."
트럼프의 미국이 등장한 후 세계의 미래를 우려하는 말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제일 마지막까지 남을 테니 먼저 망가지지 않으려면 약한 나라들이 양보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70년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무역이라는 이념과 가치를 내세워 세계 질서를 이끌어 온 미국이 그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동맹국 안보의 재보험도 자유무역의 문지기도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이합집산의 지정학과 강대국 정치를 귀환시키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아 중국을 견제하고 서유럽을 불안하게 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중국이 독일 중심의 유럽연합(EU)과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면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자리를 채우겠다고 한다. 세계정세의 지판이 송두리째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의 취임 연설에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구축, 기후변화, 빈곤퇴치 같은 보편적 가치는 흔적도 없었다. 오직 "미국산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구호만이 들렸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과 환태평양동반자 협정(TPP) 탈퇴를 결정하고 멕시코 국경의 장벽 구축과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명령하면서 임기를 시작했다.
"스테로이드 맞은 미국 국수주의가 등장했다."는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2000~2014년에 걸쳐 15년 간 제조업에서 약 500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기간에 백인 자살자 숫자만 약 49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주요 배경이다.
백인 유권자들은 미국의 자존심이나 이상 보다는 일자리를 만들고 테러방지로 국토 안전에 몰입하기를 바란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도 국제문제의 선별적 개입, 동맹에 대한 부담 전가, 그리고 보호무역에 기초한 미국 우선주의의 노선으로부터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현실이다.

▲ 지난 1월 2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트럼프가 만드는 스스로의 문제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력을 배치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확대시켜 왔다. 초강대국의 작동원리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국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고립주의(isolationism),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 반이민주의(nativism)를 내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를 경영해온 원리를 뒤집는 것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택했던 1920~30년대에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5% 선이었다. 1929년부터 전 세계를 뒤덮은 대공황의 배경에는 1922년 미국의 포드니 매컴버 (Fordney-McCumber) 법과 1930년 스무트홀리 (Smoot-Hawley) 법이라는 두 개의 관세법으로 촉발된 무역전쟁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이다.
그런데 2015년 현재 의존도는 27%에 달할 만큼 미국 경제가 전 세계의 가치사슬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 전개될 무역전쟁이 가져올 파장은 1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일 수 있다. 이런 고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TPP와 TTIP(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 협정)등 자유무역 협정과 NATO의 장래, 그리고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전후 국제안보의 중추역할을 해온 NATO를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시아의 동맹들도 미군 주둔비용을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동맹 없는 강국은 없다"는 주장을 편다. 또 틸러슨은 트럼프가 탈퇴를 선언한 TPP를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선출직이나 군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 기성 정치권은 물론 공화당의 주류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이념이나 가치 체계에 있어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부동산 사업가의 자세에서 장기적 국가이익보다는 단기 손익계산을 중시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의 행동반경과 영향력이 크게 제약될 것으로 전망된다.
2. 트럼프의 대외정책 전망
□ 우선 과제와 전략
트럼프는 국내 일자리를 위한 무역정책, 이슬람 테러조직의 와해, 중‧러 밀착의 이완과 중국 봉쇄, 해외주둔 미군의 비용 감축에 치중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호관세를 내세우며 러시아와 손잡고 NATO를 비판한다. 일본과 한국에 대해 현지 비용을 전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미‧중 관계의 기본이 되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이런 전략과 전술로 인해 세계 안정의 상수역할을 해온 미국이 불안정을 야기하는 변수로 바뀌고 있다. 목표를 단기에 달성하기 위해 '위협을 통한 성공(Winning through Intimidation)' 전술을 피아 식별 없이 동원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래 저하되기 시작한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를 급속히 추락시키고 있다.
□ 트럼프의 난관과 아시아에 미칠 영향
트럼프는 테러 근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협력이 긴요한 EU와의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대테러 공동 전선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 러시아와의 관계를 호전시켜 보려 하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과 핵 군비 대결로 인해 상호 불신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으로 고조된 미국 내 반러시아 정서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 견제에 최우선을 두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중국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극도의 반중 정책을 주장하는 백악관 무역 위원장(피터 나바로, Peter Navarro) 같은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중국 제품에 대한 45% 보호관세를 부과하여 중국 경제를 약화시키면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중국의 국력팽창도 억제할 수 있다고 본다.
2015년 6000억 달러가 넘는 양국 무역 규모 중 미국의 적자가 약 366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도 금융과 서비스 분야에서 상당한 무역외 수지 흑자를 보고 있다. 또 중국도 보잉, 애플, 나이키 같은 미국의 고부가 가치 상품 구매를 중단하거나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 방출 같은 카드를 갖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환율 절상 카드도 들고 나오지만 중국은 위안화 가치 보전이라는 자체 필요에 따라 이미 통화가치를 올리고 있다. 또 값싼 중국산 제품 수입을 제한하면 미국의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고 결국 미국 자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대중 무역제재가 가져올 미국 내 장기적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디트로이트 인근에 위치한 폐쇄된 자동차 공장 ⓒ위키피디아
한편 미국의 대중견제 전략은 일본, 한국, 호주로 이어지는 아시아 핵심 동맹망의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국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도 트럼프는 그 핵심 장치인 TPP는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동맹국들에게 무역 마찰과 방위비 분담 압박을 가하면서도 동맹 자체는 강화시키려 한다.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의 중국 봉쇄정책은 이미 중국과 일본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을 더 세게 할 것이다. 중국은 군사력 증대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일본은 '강력한 보통국가'의 길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중‧일간 군사 충돌의 위험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동중국해, 한반도 그리고 남중국해에 걸친 발화위험 지역의 긴장이 더 올라갈 것이다.
3. 한반도 정책과 한국의 선택
□ 양자 문제
한반도 정책은 무역, 방위비, 무기구매 같은 미국 내 일자리와 돈에 관련된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둘러싼 대북 정책으로 양 갈래진다. 자유무역협정과 미군 주둔비용 증액 문제는 제로섬 게임이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외 압박의 성과를 조기에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한국 방위는 스스로 책임지라던 트럼프가 취임 후에는 '철갑(ironclad)'공약을 다짐했다. 전형적인 '위협을 통한 승리' 전술의 일환으로서 무역과 방위비 분담 문제를 알아서 양보하라는 신호가 담겨있다. 한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트럼프가 일본이나 독일보다 안보의 약점을 더 안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殺鷄警猴)를 시도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군대의 작전권을 미국에 맡기고 있는 한국은 워싱턴의 압력에 특히 취약하다. 작전권은 한국의 대미 교섭 전반에 걸쳐 결정적 국면에 가서는 늘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조기에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 대북 정책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문제의 해결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북한이 당장 핵·미사일로 도발하지 않는 한, 제재와 군사력 시위 등으로 대한 방위공약을 되풀이하는 '비용절감형 대응'에 치중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이행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국 기업을 위시하여 북한과 비군용물품을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을 동원하거나, 대북 군사행동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만약 강행하면 중국도 미국 기업제재 같은 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 문제를 두고 그 정도로 중국과 정면 대립코자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중국도 미국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1월 말 북한에 대한 이중용도 품목과 기술이전을 금지시켰다.
군사행동 가능성에 있어서도 북한이 실제로 핵·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을 공격할 명백한 징후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개입하는 전면전을 준비한 상태에서 개시할 수 있는 행동인데 이라크과 아프간에 쏟아 넣은 1조 달러에 달하는 전비와 막대한 인명피해가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적 명분은 물론 미국 내 지지부터 얻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미국은 전쟁을 수행 중이거나 개전이 임박한 상태의 대통령은 재선시켜온 역사를 갖고 있다. 2020년 대선에 가까이 가면서 한반도 정세와 미국 국내 정치 사정에 따라 위험한 선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예상되는 북한의 행동과 미국의 반응
북한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조기에 협상에 들어가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같은 구체적 조치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취임 초기에 미사일 시험 발사로 대미 관계의 문이 닫힌 경험을 염두에 둘 것이다. 따라서 3월 한·미 합동 군사훈련 시에도 비난성명 등 제스처를 취할 것이나 대미관계 개선의 여지를 근본적으로 해치는 행동은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 정책 진용이 갖춰질 올해 중반기까지도 북한에 대해 실질적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대미교섭과는 별도로 국내정치와 기술적 목적도 있기 때문에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과시할 핵‧미사일 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미국이 경고용으로 화력을 증강배치하고 북한이 대응태세에 들어감으로써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이런 국면이 되면 중국이 적극 관여하면서 미‧중/북‧중‧미 대화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전면전으로 가지 않으려는 강대국 정치의 전형적인 단면이 될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의 대북 정책 선택
한국으로서는 이와같이 '북한의 도발-추가 제재와 군사행동 시위-한반도 위기 고조-협상'으로 이어지는 위기관리 사이클이 전개될 때 까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이러한 '긴장속의 현상 유지' 정책을 취할 경우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상 변경을 위한 대화'로서 한국이 먼저 미국과 협의하여 중국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면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북 협상을 철저히 국내 정치의 대차대조표에 맞추어 결정할 것이다. 협상을 개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지라는 초기 성과부터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안보 당국자들보다 2018년 중간 선거와 2020년 대통령 재선 기획을 총괄하는 백악관의 수석전략가(스티브 배넌, Steve Bannon)와 비서실장(라인스 프리버스, Reince Priebus)같은 인물들의 판단이 더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거에도 대북 정책의 냉온 조절을 수단으로 하여 한반도 상황을 관리코자 했다. 한국이 대북 대결노선을 택할 때는 미‧북 대화를, 화해노선을 택할 때는 미‧북 긴장을 수단으로 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의 '사업방식'에 비추어 과거보다 더 이런 카드를 활용할 소지가 있다. 한국은 한‧미 양자 문제와 다른 지역 문제에서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대신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는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키는 거래방식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트럼프가 당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긴 과정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으로서 그의 위상이 안정될 경우 세계 주요 지역의 평화구축이라는 업적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함께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전략을 늘 정책의 기저에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당장 한반도의 미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사드 배치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여전히 동북아 정책의 중추로서 미사일 방어망(MD)을 포함한 미‧일‧한 군사 협력을 강화시키려 한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미·중 간 전략적 대결 구도의 핵심 부분이다. 배치의 배경과 기술적 측면을 중국에 설명하여 설득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현상을 개선하고 통일의 지평을 열어두려면 한국이 사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묶어 해결하는 틀을 먼저 고안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중국이 북핵 문제의 진전에 더 큰 역할과 책임을 지게 하면서 미국과는 사드 배치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긴요하다. 미‧중 양측 모두에 명분을 주고, 불가피하게 배치를 강행하더라도 한국 자체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 미·중 간 강대국 정치에 맡겨두거나 국민 여론조사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또 북한의 행동을 전제로 한 핵‧미사일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한‧미 양국이 연합 군사훈련의 조정이나 제재 완화 같은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정책을 외교보다 군사수단에 더 의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율이 과거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합참은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협상의 공간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백악관을 직접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재개 등 대북 정책을 먼저 대폭 전환해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면서 핵과 사드 문제를 풀자는 제안도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대북 정책을 실질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예상되는 국내 반발과 미국의 반대를 감안할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작지만 가시적인' 북한의 행동과 미국의 상응 조치를 연결시키면서 대북 정책을 서서히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에는 거래 이행의 보증자로서 중국의 손이 필요하다.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이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정책에는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가 담겨야 실천력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세 가지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지금까지 미국과 경험해 온 사례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발걸음에 밀착하여 덩달아 움직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는 언제든지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1~2년 후의 정책이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 셋째, 우리의 국론을 수렴한 자체 입장 수립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국내 지지가 단단하면 트럼프의 미국이나 시진핑의 중국으로부터 오는 기세와 위압에도 버틸 수 있다. 분열된 국론으로는 어느 주변국도 상대할 수 없다.
* 위 글은 지난 7일 북한대학원대학교와 경남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7년도 초빙교수연찬회'에서 송민순 총장이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발표한 발표문을 전재한 것입니다.
[단독]박근혜,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을 통일 기회로 여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북한 붕괴와 통일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적힌 ‘AA 신용등급 북한 리스크 반영’이라는 제목의 메모를 보면 박 대통령은 선제타격을 통일의 기회로 인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대북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고 북한 붕괴와 통일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란 북한 핵미사일 등 치명적 위험 요소를 미리 타격하는 군사행동이다. 북한 5차 핵실험(9월9일) 이후 미국 대선 국면에서 선제타격론이 거론되고 여당 일부가 동조하던 시기였다. ‘북한 붕괴론’을 노골화한 발언을 넘어 박 대통령이 직접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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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일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고 발언했다. |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에 나오는 ‘10-13-16 VIP-①, ②’ 메모를 보자. 2016년 10월13일 대통령 지시 사항을 받아 적었다는 의미인데, ‘3. AA 신용등급 북한 risk(리스크) 반영’이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메모가 나온다. ‘but(그러나) 선제타격론 미국 wall가, 10% 이상↓, 지정학적 risk, 외환보유→북한 risk→자본유출, 신용평가사 해외 20, 미국 정책 변화, 투자 환경 변화, 무디스, 선제타격→차원 다른’ ‘JP Morgan:미국 대북정책’으로 이어지는 메모에는 ‘미국 secondary boycot’ 항목 아래 ‘중국 남중국해’와 ‘북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선제타격’이라 쓰여 있다. ‘미국 secondary boycot’은 secondary boycott의 오기로 보이는데 대북 거래 관련 2차 제재를 뜻한다. 그 밑에 안 전 수석은 이렇게 썼다. ‘북한 risk 통제 가능, -범부처 차원 대응팀, -북한 붕괴 시 북한 시장화 -통일→잠재 risk↓→투자 효과.’
전직 통일부 고위 관계자에게 이 메모의 검토를 의뢰했다. 그의 설명이다. “역대 정부는 가급적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저지한 게 대표적이다. 반면 이 지시는 선제타격을 통일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논리다. 선제타격을 곧 전쟁으로 보고 우려하는 다수 학자나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은 미국이 선제타격을 강행할 경우의 부정적인 파급효과, 예를 들어 ‘제2의 한국전쟁’ 같은 한반도 확전 가능성을 경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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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 |
북한 붕괴나 남북 군사충돌이 리스크
‘북한 붕괴 시 북한이 시장화하고 통일이 이뤄져 잠재 리스크가 떨어지고 투자 효과로 이어진다’는 결론에 대해서도 이 고위 관계자는 “평화통일이어도 장밋빛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데 붕괴 뒤의, 혹은 전쟁도 감수한 뒤의 통일이라면 어떻겠나? 굉장히 아마추어적이고, 위험천만하고, 천진난만한 발상이다”라고 평가했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통상 한국의 리스크를 꼽을 때 북한 붕괴 등 급변 사태나 남북 군사충돌을 꼽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이 붕괴돼 북한 노동자 2만명이 서울역에 오면 철도가 마비돼버린다. 더구나 북한은 핵에 더해 서울을 타격할 장사정포 수천 개도 갖고 있다. 선제타격 시 북한이 맞대응 무력시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그런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만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라고 지적했다.
내용뿐 아니라 지시 계통도 엉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10월에 이 메모를 남긴 안종범 전 수석은 당시 정책조정수석이었다.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나 통일준비위원회 같은 자리에서 충분히 비공개로도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어디서인지 모를 곳에서 엉뚱한 보고를 받고 국가안보실장도 아닌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美정보기관 보고서 "미국의 질서 강요는 실패할 것"


▲ 지난 1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으로 출근하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신임 국방장관. 그는 한국을 방문함으로서 북핵 문제로 대표되는 동북아 정세에 미국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세계에 알렸다. ⓒAP=연합뉴스
△부국은 고령화되나 빈국은 그렇지 않다. △세계경제가 변화한다. △기술이 발전을 가속화하지만 불연속성을 야기한다. △사상과 정체성이 배척의 물결을 일으킨다. △통치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분쟁의 성격이 변화한다. △기후변화, 환경 및 보건 이슈가 주목받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전례 없는 속도로 수렴하여 통치와 협력을 더욱 어렵게 하고, 권력의 본질을 바꾸며, 나아가 세계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특히 경제·기술·안보 추세에 따라 결과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단체·개인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국가 내에서는 각종 사회와 각급 정부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재조정할 때까지 정치질서가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갈등이 심할 것이다. 국가 간에는 냉전 이후의 일극 시대가 지나갔으며, 1945년 이후의, 룰에 기초한 국제질서도 사라질 것이다. 일부 주요 강대국과 역내 침략국은 힘으로 이익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나, 비토 세력이 늘어난 상황에서 전통적 형태의 유형적 힘으로는 성과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무위로 돌아가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 위안부 소녀상. 한일 갈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사드 문제와 함께 새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할 숙제다. ⓒ프레시안(최형락)

▲ <글로벌 트렌드: 진보의 역설>(NIC 지음, 박동철 외 옮김, 한울 펴냄) ⓒ한울
[인터뷰] "국방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불확실성'이 키워드가 돼버린 트럼프 시대, 동북아의 안보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까? 지난 1월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하고 돌아온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을 만나 트럼프의 전략을 분석하고 한국의 대처 방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 의원은 하와이에 4성 장군이 4명이나 있다는 말로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달했다. 그는 "하와이에는 태평양사령부와 예하에 육군, 공군, 해군 구성군사령부가 있다. 원래 태평양 사령관만 4성 장군이었는데, 이번에 가봤더니 원래 3성이었던 예하 구성군사령부의 사령관들이 전부 4성 장군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이건 그만큼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의원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 역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동북아에서 세력 균형을 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부상 이후에도 여전히 동북아 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은 우선순위를 조정해 선택적으로 개입하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시아를 우선순위로 잡았고, 이러한 흐름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서 순풍을 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불개입주의를 선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을 길들이기 위해 아시아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의원은 미국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연방안보(federated security)론'을 들고 나왔다며 "미국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태국, 터키, 프랑스, 영국, 미국, 필리핀 등 한국전쟁 당시 전력을 제공했던 9개국 나라들을 모두 모아 주둔군 지휘협정, 즉 소파(SOFA)를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전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다 책임을 질 수 없으니 이들 국가의 도움을 받자는 것인데, 협정을 맺은 국가의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시설도 제공하고 법적 지위도 보장해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훈련도 잘 돼 있어야 한다"며 "이는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양자동맹이 아닌, 다자동맹으로 가자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한반도 전쟁 수행 체제를 과거 한미 양자 동맹의 틀이 아닌, 다자간의 수행 체제로 변혁하자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는 미국의 이러한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아닌 9개국과 군사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부담과 함께, 집단적 의사 결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우려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방위비 증액 요구까지 겹치게 되면 한미 동맹이 예전과 같이 원만하게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이 아니라, 방위비 인상 그 자체로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이 한국 방위에 쓰는 예산보다 한국이 자기 방위에 쓰는 예산이 더 적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렇게 돈을 많이 쓰면서 도와주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만큼 쓰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정부가 통상, 환율, 무역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군비 증액 요구까지 함께 겹치게 되면 이 동맹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는 상당한 위기"라고 분석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위치한 김종대 의원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인터뷰를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난 1월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했는데,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예상하나?
김종대 : 하와이에는 태평양사령부와 예하에 육군, 공군, 해군 구성군사령부가 있다. 원래 태평양사령관만 4성 장군이었는데, 이번에 가봤더니 원래 3성이었던 예하 구성군사령부의 사령관들이 전부 4성 장군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작은 섬에 4성 장군 4명이 있다는 것도 이색적인 광경이긴 했는데, 이건 그만큼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향후 이러한 흐름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미국 전략가들은 중국의 A2AD(Anti-access, ares denial, 접근 저지‧영역 거부)전략과 이의 축소판인 북한판의 A2AD 전략이 나오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이 무너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창의 끝부분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창을 구성하는 배경은 중국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무너졌다고 보고, 과거와 같이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내놓은 처방에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우선 패권 축소론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을 비롯해 세계의 너절너절한 분쟁에 모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조정하여 집중해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패권을 축소시키고 그 유지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이 우선순위를 아시아로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서 순풍을 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개입주의를 선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을 길들이기 위해 아시아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연방안보(federated security)론'을 들고 나왔다. 이는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제시한 개념으로,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쓰는 용어는 아니지만 사실상 적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연방안보 개념은 여러 나라와 '안보'라는 공공재를 같이 만들자는, 즉 큰 양푼을 놓고 각자 가지고 있는 밥을 다 섞어서 숟가락 들고 같이 떠먹자는 식이다. 여러 국가들의 안보 협력이 마치 하나의 연방 국가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동맹국과 협력국을 재설계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의 동맹국과 협력국들이 직접 관계를 맺고, 미국은 그 뒤에서 이들을 조정해주는 방식이다.
군사기술 측면에서도 미국이 내놓은 처방이 있는데, 이 부분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바로 '3세대 상쇄전략'이다. 미국은 1950년대 핵무기, 1970년대는 스마트 기술을 이용해 군사적인 능력 부문에서 경쟁 국가들이 추격을 따돌려왔다. 이렇게 두 번의 혁명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시기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3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0년대 미국이 제시한 스마트 기술은 스텔스, GPS, 토마호크 등으로 대표된다. 이 때 시작된 이 기술들은 1991년 걸프전에서 완성됐다. 하지만 경쟁국들은 금세 이러한 기술을 따라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다시 격차를 벌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미국은 사이버전, 수중전, 미사일 방어, 해양 치안, 인도적 협력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미국은 여기에 300억 달러 (한화 약 34조 원)를 투입했다. 이 중 60억 달러가 비밀예산인데 그만큼 보안을 강조했다. 결과는 차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제주 해군기지에 배치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 최신 구축함 줌월트에 탑재된 레일건 같은 경우도 당분간 중국이 흉내 내지 못할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총포탄이 화약을 탑재해서 상대의 자산을 파괴하는 방식을 쓴다면, 레일건은 화약이 포함돼있지 않은 그냥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레일건은 강력한 전기로 극성을 발생시켜서 그 자기장의 힘으로 포탄을 발사한다. 그런데 이게 음속의 8배까지 속도가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폭발을 시키지 않아도 상대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 있다. 게다가 레일건에 쓰이는 포탄은 화약이 포함돼있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하다. 사실상 무한정 발사가 가능한 포탄인 셈이다.

▲ 미국 차기 전투함 줌월트 ⓒ미 해군
프레시안 : 미국이 제시하는 연방 안보 개념에 실제 참여하는 국가는 어디인가?
김종대 : 이게 사실 한국 국방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데, 유엔사의 한국전쟁 당시 파병국이 16개국이다. 그 중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태국, 터키, 프랑스, 영국, 미국, 필리핀 등 한국에 대한 전력을 제공했던 9개국 나라들을 모두 모아서 주둔군 지휘협정, 즉 소파(SOFA)를 체결하자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이는 실제 전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다 책임을 질 수 없으니 이들 국가의 도움을 받자는 것인데, 협정을 맺은 국가의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시설도 제공하고 법적 지위도 보장해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훈련도 잘 돼 있어야 한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양자동맹이 아닌, 다자동맹으로 가자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한반도 전쟁 수행 체제를 과거 한미 양자 동맹의 틀이 아닌, 다자간의 수행 체제로 변혁하자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이를 중국 봉쇄라고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중국을 봉쇄하는 효과를 낳을 수는 있다.
그런데 한국 국방부는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가 빈혈에 걸리면 미국의 피를 수혈받는 식으로 한미동맹을 설계해 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9개국에서 '수혈'을 받아야 한다. 당장 그들과 한국이 혈액형이 맞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한국 정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 정부에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방식은 집단적 의사 결정을 전제로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례로 지난 2011년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 당시 주한미군 측이 유엔사 회원국을 참관인으로 요청했다. 그 때 우리가 회원국들에게 적극적 억제 전략을 브리핑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항의 서한이 오기 시작했다. 이 전략이 유엔 헌장을 어기는 선제 공격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였다.
이렇듯 여러 국가나 집단에서 개입을 하기 시작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한미 동맹은 간단하다. 훈련부터 계획까지 모든 것이 통합돼있다. 그래서 우리 국방부는 연방안보보다는 지금의 한미 연합사 체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미국은 언젠가 연합사는 소멸할 것이며, 유엔사를 통한 집단적 안보체제 구축으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트럼프, 방위비 분담금 올려라? "완전히 오역한 것"
프레시안 : 트럼프 당선이 과연 한국에 유리한거냐 불리한거냐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보가 동아시아나 한국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전망해보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김종대 :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모순적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처럼 다자주의를 계승하면서 그 힘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경제 분야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기했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적 결정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TPP를 추진했던 이유는 경제적인 것보다는 동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아시아에서 일본, 한국과의 안보협력은 TPP와 같이 가는 개념이었다. 그래야 재균형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안보에서의 재균형은 계속 추진하면서 경제에서의 다자주의는 깨버렸다. 경제적인 부문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군사적인 부문에서 동맹을 중시하는 이러한 이율 배반성은 오래갈 수 없다. 경제에서의 미국 우선주의가 안보에 악영향을 줄 것이고 이게 바로 방위비 문제다.
일반적으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건 트럼프를 둘러싼 가장 대표적인 오역 중 하나다. 트럼프는 방위비가 아니라 동맹국의 국방비 자체를 올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일미군, 주독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은 물론이고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리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동맹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해 돈을 더 쓰라는 뜻이 아니다. 왜 동맹국들의 국방비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한 것이다. 즉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이 아니라 '방위 분담'을 이야기한 것이다.

▲ 지난 1월 20일(현지 시각)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45대 대통령 ⓒAP=연합뉴스
한국은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약 9000억 원을 부담하고 있다. 이를 일본이나 독일 수준으로 올리려면 3000억~4000억 원 정도를 올리면 된다. 그런데 이걸로 동맹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이는 사실 대단히 저렴한 비용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약 34조 원 어치의 미국 무기를 수입했다. 그 외에도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훈련, 미사일 방어 등도 수행하고 있고 평택에 새로운 미국의 전진기지도 허용했다.
미국은 여기서 3000~4000억 원 올려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도 국방비 부담도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의도를 단순히 분담금을 올리는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이건 정말 순진한 발상이다.
프레시안 : 우리는 미국에게 계속 "북한 위협을 막아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트럼프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지역안보에 기여하라는 뜻인가?
김종대 : 그렇다. 트럼프는 객관적으로 미국이 한국 방위에 쓰는 예산보다 한국이 자기 방위에 쓰는 예산이 더 적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이렇게 돈을 많이 쓰면서 도와주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만큼 쓰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의 국방비 증액 문제와 연결되는 문제로 논리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경제 영역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정부가 통상, 환율, 무역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군비 증액 요구까지 함께 겹치게 되면 이 동맹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는 상당한 위기다.
사드 연내 배치, 가능할까?
프레시안 :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3일 한국을 방문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 이후 매티스 장관의 사드 연내 배치 발언을 두고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매티스 장관의 발언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통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사드 연내 배치는 가능할까?
김종대 : 올해 안에 사드가 배치되려면 몇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롯데와 국방부 간 부지 교환 문제도 있고 조기 대선으로 정권 교체 등의 변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미 양국이 마음 먹고 서두르면 올해 내에도 가능하긴 하다. 미국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지만 있는 포대를 옮겨놓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대체 미국에서 추가 생산도 하지 않는 무기를 우리가 왜 이렇게 들여오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고 있냐는 점이다. 사드가 가장 수요가 많은 전략 자산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신뢰가 가는 자산이라면 왜 미국은 추가 생산을 하지 않을까?
올해 사드에 배정된 예산은 3억 6000만 달러(한화 약 4000억 원)에 불과하다. 요격 미사일 한 기에 120억 원이고 48기가 1차 발사분이다. 그러면 한 개 포대만 해도 미사일 가격만 6000억 원이다. 지금 배정된 예산으로는 한 개 포대의 미사일도 다 채우지 못하는 셈이다.
게다가 저 예산 항목은 미사일 보충이 아니라 시스템 유지비다. 추가 생산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국방부의 설명대로 그렇게 신뢰할만한 무기라면 왜 무장을 보충하지도 않고 미국 본토에도 한 대만 놓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사드는 이미 한물 간 무기라는 점이다. 적국이 미사일 배치를 약간만 바꿔도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를 마구마구 깔아야 하는데, 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이런 식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은 경제성이 없다. 상대방은 저렴한 비용으로 위협을 가하는데, 이를 막기 위한 방어에는 몇 배나 많은 예산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합리적인가?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SM-3와 패트리어트, 사드에 의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는 미국을 재정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 하원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론자가 많아서 저런 예산 배정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레일건과 같이 저렴한 요격 체계를 구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사실 사드를 연내 급하게 배치할 이유도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아직 실전 배치가 되지 않은 무기체계다. 공격자의 능력과 작전술이 어떤지 아직 확정하기가 어려운데 방어 개념을 먼저 확정하겠다는 것이 사드 배치인데, 이건 군사적으로 대단히 비합리적인 접근이다. 만약 사드가 조기에 배치되면 북한은 이를 다 관찰한 뒤에 이 방어망을 돌파하는 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사드 조기 배치가 북한을 위한 것인지, 남한을 위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되는 셈이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방위를 위해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사드는 한미 동맹 양자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 배치돼있는 엑스밴드레이더와 함께 생각했을 때 왜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문제다.
일본에는 2대의 엑스밴드 레이더가 횡적으로 배치돼있다. 여기서 정삼각형을 그려보면 그 꼭짓점 위치가 바로 성주다. GPS로 위치를 파악할 때 인공위성 3대가 삼각 측량을 하듯이, 공중에서 날아오는 표적 역시 지상에서 삼각 측량을 해줘야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이다.
즉, 사드는 한국의 방어가 아니라, 통합 공중 미사일방어(IAMD, Integrate Air Missile Defense)의 개념에서 배치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방어망을 구상하는 가운데 성주가 선택된 것이다. 국방부가 설명하는 것처럼 사드만 똑 떼어 놓고 보면 아무런 전략적 의미가 없다.
미국은 이러한 방식으로 빨리 정보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한국과 일본을 완전히 단일한, 하나의 안보 주체로 만들고 싶어한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 자산을 통해 한일 간 정보 공조를 이루고 이지스 체계와 조기 경보기 도입도 서두르고 있다. 실제 최근에 일본에 E-2D 조기경보기가 배치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역시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에 연결돼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구축될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처럼 소지역 단위에서 묶는 것이다. 인도와 호주를 묶는 것도 비슷한 방식이다. 이렇게 미국은 부지런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집단 방위를 추구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 제임스 매티스(왼쪽) 미국 국방장관이 3일 서울 삼각지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성주 사드 배치는 결국 한국이 한미일 3국 안보 체제로 빨려 들어가는 고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대 : 한국이 미사일 방어 국제협력에서 일종의 '접착제'가 되는 셈이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바로 한국 및 일본의 미사일 방어 자산과 통합된다. 이를 통해 한미일 3국의 공동 방위 체제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가 한국 방어에 기여하는 이유로 지휘통제체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사드 배치를 곧 MD 참여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단 정보공조가 시작되면 작전적 공조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사드가 배치되면 지휘통제체제를 재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단지 그 시기가 지금이 아닌 것일 뿐이다.
프레시안 : 최근에는 미국의 최신 구축함인 줌월트 배치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줌월트를 제주 해군기지에 배치하려는 의도에는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나?
김종대 : 사드는 육군의 전략 무기고 줌월트는 해군의 무기다. 해군 출신의 태평양 사령관은 해군에 더 좋은 무기가 있다면서 줌월트를 소개해줬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방어무기로 중국의 억제력을 무력화하면 그 다음에 공격 무기로 이를 종결지어야 한다는 전략 개념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다. 줌월트는 공격 무기다.
한국이 전략자산 배치를 요청해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공중 자산이나 핵잠수함의 상시 또는 순환배치를 요구해왔다. 줌월트 같은 함정이 아니었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자산을 한국에 배치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일단 공중 자산은 오키나와나 괌에서 날아오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한국의 최전방에 가서 타깃이 될 이유가 없다. 또 핵잠수함의 경우 동해에 상시배치 돼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반면에 함정이 이동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니까 이를 구실로 삼아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해서 줌월트를 전진 배치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이 말하는 전략자산도 가져다 놓고 중국과 가장 가까운 기지인 제주에서 적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이밖에도 여러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줌월트와 관련한 발언이 나올 때가 트럼프 대통령이 막 취임했을 시기였기 때문에, 이 사안이 트럼프와 정책적 조정이 됐다고 보기는 이른감이 있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인터뷰] 대선주자들 '균형'의 함정에 빠져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금 대선주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 그런 어설픈 균형 전략은 반드시 눈치 외교, 줄서기 외교를 거쳐 굴욕 외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지향하다가 눈치 외교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강대국으로부터 더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게 균형이라는 담론이 가지고 있는 함정인데, 이걸 보수와 진보 모두가 이용했다. 참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금 대선 주자들의 대외정책 전략에서 균형과 편승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들은 모두 강대국 정치 프레임을 수용한 것"이라며 "자강과 주도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4개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변국에 협조를 구하면서 외교의 판을 만들었다며 "약한 나라도 강대국을 상대로 얼마든지 외교의 판을 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라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지금은 판을 짜는 외교를 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이걸 가장 정확히 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라며 "아베는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보통국가화를 꿈꾸고 있는데, 전시 작전권을 환수하고 강력한 주권을 세워서 보통국가가 돼야 할 한국은 정작 너무나 조용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의 차기 정치 지도자들이 대외 문제에 있어서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로 한국에 내재된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김 의원은 "북핵은 위협적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이는 극복의 대상이어야지,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움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핵무기가 없어도 북한은 우리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에는 북한의 전차, 80년대는 특수부대, 90년대는 장사정포였다"며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대해 모든 군사적 방어 대책을 마련하면서 공포를 이겨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관계,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다양한 수단을 확충하면서 공포를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수단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 정보, 경제 등 비군사적인 수단이 굉장히 많다"며 "그런데도 군사적 조치는 서두르고 나머지 비군사적 조치는 버리자? 이는 북한 핵을 극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위치한 김종대 의원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1편 보러 가기 : "국방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전략자산은 북한을 막기 위한 거라고 보는데, 실제 미국은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고 있고, 한국은 거기에 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대 : 여기서 우리가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다. 한반도 방위를 위해 한미 동맹이 확장 억제력을 제공하고, 북한 제재와 압박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전략 자산을 보낸다고 하면 이걸 무슨 명분으로 거절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위협과 두려움에 떠는 정부라면 이를 거부하거나 비토할 만한 논리가 준비돼 있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가 한국을 돕는 만큼 한국도 지역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한국도 남중국해와 관련해 항행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다국적 훈련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아시아 14개국과 34개의 군사협정을 맺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이렇게 많은 국가와 협정을 맺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일원이기도 하니 항행의 자유, 국제 안보, 공공재, 지역 안보를 위해 한국이 기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또 미국은 지역 안보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데, 한반도 방위는 지역 안보를 강화하는 틀 내의 한 부분이라며 한국이 지역 안보에 참여한다고 해도 한반도의 방위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랬을 때 우리 정부가 이 논리를 비토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지역 안보 담론들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유달리 안보 문제가 절박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는 곧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전쟁/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주권이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지금까지 소홀히 돼왔다. 그런 가운데 지역 안보에만 편승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프레시안 : 사드뿐만 아니라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가 군사문제를 악화시켰고 안보를 위태롭게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 주자가 안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김종대 : 지금 대선주자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설프게나마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이야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어설픈 균형 전략은 반드시 눈치 외교, 줄서기 외교를 거쳐 굴욕 외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균형외교를 지향하다가 눈치외교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강대국으로부터 더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게 균형이라는 담론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다. 그런데 이걸 보수와 진보 모두가 이용했다. 참 불행한 일이다.
지금 대선 주자들도 상황을 타개할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는 균형전략,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편승전략, 안희정 지사는 자강전략, 이재명 성남시장은 균형전략, 안철수 의원은 편승전략에 가깝다. 문제는 여기서 주도 전략이 빠졌다는 점이다. 편승이냐 균형이냐는 사실 강대국 정치 프레임을 수용한 것이다. 자강 및 주도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게 정의당의 전략이다.
야권은 강대국 정치의 프레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예전에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미국에서 그렇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소련과 밀월 외교를 했고, 그러면서도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는,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규정했다. 또 주변국에 협조를 구하면서 미국과 소련, 모두가 싫어하는 판을 짜버렸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고 네 나라의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판을 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약한 나라도 강대국을 상대로 얼마든지 외교의 판을 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일본에 발언권이 밀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결과가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로 나타났고 지금의 부산 소녀상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다가 당사자 지위마저 뺏기게 생겼다. 주도하지 않으면 주도 당하는 것이 국제정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미중 균형외교로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판을 짜는 외교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가장 정확히 표현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외교'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베는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보다는 보통국가화를 꿈꾸고 있지만, 어쨌든 적극적으로 움직인 아베 덕분에 일본의 위상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 지난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조용하다. 정전협정 서명국도 아니고, 전시 작전 통제권도 없는 한국은 주권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다. 이런 우리가 보통국가가 돼야 하는데, 지금 이런 담론을 이야기하는 주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한반도 안보의 당사자는 한국 국민이다. 이는 동맹이나 협정이라는 '법과 규정' 보다도 우선시 되는 가치다. 주권의 문제는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택할 권리를 말하는 건데 우리한테는 이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극성을 띨 수가 없고, 이런 터전 위에 정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물론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이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이냐가 문제인데, 예를 들어 과거 보수와 진보 정권은 대북 정책에 있어 주로 경제와 안보의 교환 모델을 활용했다. 그 방식에서 앞뒤가 달랐을 뿐이다. 진보 정권은 일단 경제지원을 먼저 하고 신뢰를 쌓아서 평화를 달성하자는 선불제였고, 보수 정권은 경제지원 한다는 약속을 하고 일단 평화부터 달성하자는 후불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교환 모델은 선불제와 후불제 모두 단기간 내에 성공적인 결과를 맺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미국도 있고 주변 여건도 있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와서 경제와 안보의 교환 모델은 성립하기 어렵다. 안보와 안보, 평화와 평화의 직접 교환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적극성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가의 안보 우려는 즉각 교환돼야 한다. 경제는 다음 문제다. 이는 예전에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박사가 제시한 방안인데, 이걸 진보정당이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의 전쟁 방지와 긴장 완화, 위기관리를 거쳐 군사협력과 평화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비핵화프로그램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지금은 우회로를 찾을 때가 아니다.
남한이 경제적인 부문을 통해 북한과 뭔가를 하려고 해도, 일단 북한이 남한과 경제협력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 남한이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 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이러한 경향이 없어졌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햇볕정책의 유인 요소가 사라졌다.
안보와 안보 교환 모델을 1단계로 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경제적 교환 모델이 보완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접근법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북핵, 두려움의 대상? 극복의 대상!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가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영입한 것은 상당히 주목할만한 일이었다. 전인범 전 사령관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실제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본인을 이른바 '빨갱이'로 보고 있는 적극적인 반대층이 많다는 점이라는데, 그래서 전인범 전 사령관을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이 다소 소극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김종대 : 지금과 같은 이런 식의 대응이 바로 2012년 대선의 패인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문 전 대표뿐만 아니라 누구도 적극적으로 본인의 언어를 활용해 안보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프레임만 의식하고 있다. 외교안보 문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안보를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자세라기보다는 안보 문제의 대선 쟁점화를 회피하는 관리적인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 쟁점화는 무조건 진보에 불리하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물론 이 전략이 정치 공학적으로 봤을 때 옳은 전략일 수도 있다. 대선을 사실상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고공 지지율을 관리하는 모드에 들어서면서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인범 전 사령관 같은 사람이 문 전 대표에게 필요했던 거라고 본다.
실제 문 전 대표는 한미동맹과 색깔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긴 하다. 최근 미국의 기관 사람들이나 언론인 등 국내 보수 세력과 연결된 계층들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 한미동맹은 끝장난다'는 괴담이 꽤 넓게 확산돼있다. 또 문 전 대표는 색깔론 공격을 당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 후보 입장에서 일단 미국과 관계를 가장 잘 풀어줄 수 있는 인사임과 동시에 색깔론에서 자유롭게 해줄 외부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럴 때 전인범 전 사령관이 이런 부분을 희석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의 소극적 대응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북핵 위협이 우리 안보의 모든 것인 것처럼 떠들어 온 프레임이 안보 문제와 관련한 소신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다.
김종대 : 북핵은 위협적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는 극복의 대상이어야지,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움의 노예가 됐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핵을 가진 북한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이는 곧 파멸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핵을 사용할 조짐만 보여도 참수 작전, 정밀 타격 등으로 사전에 예방 공격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북한의 핵은 역설적으로 쓰지 않을 때 더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두려워하면서 정책을 짤 필요가 없다.

▲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북극성 2호가 발사됐다며, 김정은(오른쪽 세 번째) 국무위원장이 이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그러다가 1990년대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무섭다고 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현실화됐다. 핵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거에, 핵보다도 못한 무기에 더 공포에 떨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극복해왔을까? 모든 군사적 방어 대책을 마련하면서 공포를 극복해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과 관계, 그리고 이걸 관리하는 다양한 수단을 확충하면서 공포를 극복했다. 군사적인 수단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화된 외교적 수단을 활용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만의 전략 자산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외교(Diplomacy), 정보(Intelligence), 군사(Military), 경제(Economy) 등의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것이다.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수단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교, 정보, 경제 등 비군사적인 수단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도 북한 핵 미사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군사적 조치는 서두르고 나머지 비군사적 조치는 버리자? 북한과 대화할 필요 없다? 이는 북한 핵을 극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 떠는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북한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김종대 : 냉전의 유산으로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 바로 이 두려움이다. 소련에 비해 압도적 군사력 우위를 누렸던 미국도 그랬다. 소련에 대한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수없이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게 결국 인류 최악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우리보다는 북한이 훨씬 두려울 것이다. 북한은 두려움과 함께 자신들이 주변국가들로부터 포위돼있다는 이른바 '피포위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가장 유사한 것이 중동의 이스라엘이다. 핵에 매달리면서 동맹에 의존하지 않고 공격 전력을 통해 행동의 자유를 확립하겠다는 것인데 북한의 전략과 완벽하게 닮아 있다.
촛불 이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
프레시안 : 촛불 민심은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등 사회의 모둔 분야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언급 외에 안보 문제 등에 대해 총체적인 쇄신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안보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대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종대 :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이 완전히 와해됐다는 것이 문제다. 19대 때부터 이런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일례로 국회 상임위원회 중에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는 완전 찬밥 신세다. 지원하는 의원이 거의 없다. 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는 곳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치권이 이쪽 분야의 전문가를 발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 의원들이 없다 보니 보좌진도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서 전문가 집단이 붕괴됐다.
그러다 보니 대선 후보들은 캠프 때 전문가 그룹을 급조하고, 이들은 단기적 상품 개발에 투입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 생존을 모색하는 통찰력 있고 적극적인 외교안보 정책이 나오지 못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선거 제도는 승자독식과 지역 패권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비례대표의 효용성은 부인하는 쪽으로 개악돼왔다. 이렇게 되면 국회 내에서 전문가 집단이 양산될 수가 없다.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국회가 구성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집회 이후 정치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지난해 12월 9일 가결된 이후 야3당 대표회담이 두 달이 지난 8일이 돼서야 처음 열렸다. 그 두 달 동안 개혁 입법을 처리하자고 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열다섯 번째 촛불 집회 '천만 촛불 명령이다! 2월 탄핵, 특검 연장'이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1987년 6월 항쟁을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이룬 시기라고 하지만, 이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바로 이듬해 1988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당시 국회는 5공 청문회를 열었고 노동과 언론의 자유 등 시민의 권리를 다양한 제도를 통해 뒷받침했다.
1988년 이후 다시 기회가 찾아왔는데, 국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애써 정치적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었는데,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국회가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국회는 대선 국면에 들어가 있다. 모든 것을 대선 이후로 미뤄놓고 있다. 이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여소야대 정국인 데다가, 막상 집권하면 개혁의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이 집권하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인데 이건 실패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선에 이른바 '몰빵'했는데 새 대통령이 기대에 못 미치면 대통령 탓을 또 얼마나 하게 되겠나?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누가 되도 여소야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정당정치가 살아나고 개혁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가 지금 돌아가야 다음 대통령이 성공한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없이 독립전쟁을 설명할 수 있나? 어떤 사회적 변동이 있을 때는 그것을 집약하고 정리해서 방향을 잡는 치열한 사회적 켄센서스 과정이 뒤따라 나와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개혁입법에는 손을 놓고 사실상 대선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과정은 역설적으로 다음 대통령이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회 역시 제도적으로 아무 일도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는 여야가 똑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서로 상대 당의 방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시민들의 참여마저 봉쇄돼있다.
경제정책을 예로 들어보면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은 사실 도입부에 불과하다.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자신들의 합당한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시민들이 직접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돌려줘야 한다. 노조가 협상권을 가지고, 노동이 합당한 가치로 인정받아서 국가정책에 개입하고 청년들이 투표하는 것이 중요한 개혁이다. 대의적 정치에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들이 혁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정부가 출범했을 때 박근혜 정부가 물려준 숙제를 과연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건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끝)
북한 선제타격하면 서울 광화문과 강남은…

실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북극성 2형 시험발사를 참관한 자리에서 "이제는 우리의 로케트공업이 액체로케트 발동기로부터 대출력 고체로케트 발동기에로 확고히 전환됐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북한이 앞으로 모든 미사일을 고체로 개발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고체연료엔진으로 개발한다면 미국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연료 주입 시간과 장소가 필요해 노출 우려가 있고 장기간 보관에 문제가 있었던 액체연료와 달리 고체연료는 별도의 연료 주입과정이 필요 없이 발사차량에 장착한 상태에서 상시 대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은밀성과 신속성이 장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고체연료를 사용할 경우 사전 탐지 및 대응이 그만큼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킬체인을 포함해 선제타격도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북한의 북극성 2형 발사를 우리 이지스함이 2분 내에 접촉하였다고 하지만 이미 발사 이후이고, 발사 전 북한이 은폐성을 높여 한·미 정보자산에 노출을 줄인다면 선제타격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북극성 2호가 발사됐다며, 김정은(오른쪽 세 번째) 국무위원장이 이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선제타격,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선제타격은 유엔헌장 제51조에 의거해 자위권의 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의 공격이 임박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럴 것이라는 예측만을 가지고 하는 예방공격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예방공격은 곧 침략이다.
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지 대단히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북한의 핵공격이 정말 임박한 상황임이 명백한 사실로 확인된다면 선제타격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핵공격이건, 미국에 대한 핵공격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선제타격을 반대하고 또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비정상이다. 임박한 공격 위협 앞에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선제공격에 찬성할 수 있지만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북한을 선제공격한다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김정은이 핵무기를 단순히 협상용만으로 개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남침적화통일을 위해 핵을 먼저 사용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만약 북한이 남침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북한은 이 지구상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어느 누구도 북한 편을 들어줄 수 없고 북한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살자고 만든 핵무기로 죽자고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핵 보유는 북한에게 세습 정권과 체제 생존을 위한 필사의 수단이자 이제는 목적이 돼버렸다. 따라서 북한은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법'이란 것을 통해 핵무기를 "핵보유국과 야합한 비핵국가가 침략하거나 공격에 가담하는 경우"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핵무기를 북한이 사용한다는 것은 자포자기하거나 절망의 상태에서 함께 죽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 미국은 선제타격을 이야기하고 있고, 북한도 보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과 우리의 선제타격 중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예방적 선제타격은 남북공멸이고 반통일이다
북한이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제타격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제타격이 과대포장 되거나 우선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선제타격 역시 테이블에 올려놓은 수많은 대북 옵션 중의 하나일 뿐이며 기본적으로 원칙론 수준이다. 우리가 나서서 마치 선제타격이 우선순위 높은 시나리오처럼 증폭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 미국을 당황스럽게 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예방적 선제타격'이라는 변형된 모습이다. 예방적 선제타격은 북한이 도발 준비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핵과 미사일 시설을 미리 없애자는 것이다. 선제타격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면, 예방적 선제타격은 주관적인 판단이나 추정에 근거해 오판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전의 가능성이 있는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북한의 핵무기 관련 시설을 타격한다고 해도 여러 곳에 분산 및 은폐되어 있어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백문의 장사정포와 포병이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고 수백발의 중단거리 미사일 등 재래식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북한은 첫 동계훈련을 시작하며 김정은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권과 서북 5개 도서 공격을 담당하는 자주포(자행포) 수 백문을 집결시켜 화력을 과시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도 "정말 엄청난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며 "이래도 저래도 죽는다는 것을 알면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선제타격론에 우려를 표명했다.
물론 선제공격에 따른 북한의 대응을 빌미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휴전선 위로 밀고 올라가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얻은 통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겠지만 이 땅에서 전쟁을 감수하며 지킬 국익은 없다.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가 남북이 공멸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은 고려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국이 그러한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더구나 주한미국에 사드까지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 된다면 중국이 과연 지금의 휴전선을 포기하고 압록강 두만강을 미국과 대치하는 새로운 경계선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스럽다.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현 분단된 상황은 그대로 현상유지 될 가능성이 높고 통일은 더 멀어질 것이다.
무책임한 선제타격은 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제타격으로 서울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 워싱턴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서울을 전쟁의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능력에 더해 북한의 잠수함 개발 능력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에 성공하고 3000t급 디젤잠수함과 3500t급 원자력잠수함을 개발하고 있다.
2014년 8월 미국의 보수 성향 웹진 ‘워싱턴 프리 비컨’은 미국 국방부 정보를 인용해 “북한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SLBM) 발사용 수직 발사관이 식별되었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뉴스는 9월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국군 참모본부 관계자가 “북한의 한 잠수함 기지에서 최근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잠수함 장착용 수직 발사관이 식별됐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북한에 건너간 옛 소련 골프급 잠수함의 SLBM 수직 발사관을 탑재한 북한의 신형 잠수함이 2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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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조선중앙통신 2016년 4월2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 발사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 |
그해 11월 국내 일부 언론은 북한의 이 신형 잠수함을 ‘신포급 잠수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정작 이 잠수함 사진을 최초로 공개한 미국의 북한 정보 사이트 ‘38노스’는 신포급이 SLBM 발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배수량이 900~1500t에 그쳐 북한의 구형 잠수함인 로미오급 후계함으로 보인다고까지 했다. 신포급에서 발사된 북한 SLBM의 위력을 확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5년 1월6일 발표된 <국방백서>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어 2015년 5월9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하에 신포급 잠수함에서 북극성 1호로 명명된 SLBM의 수중 사출이 이뤄졌다. 그해 11월과 12월 두 차례 시험을 거쳐 2016년 4월23일 콜드론칭(Cold Launching:수중에서 미사일을 사출해 물 밖에서 점화) 및 30㎞ 비행 성공, 그리고 8월24일 오전 5시30분 고각 발사를 통한 동북방 500㎞ 비행 성공(정상 각도 발사 시 1000㎞, 연료를 가득 채울 경우 2500㎞까지 가능)으로 북한은 SLBM 기술을 완벽히 터득했음을 보여줬다.
탄도미사일을 잠수함에 탑재해 발사하는 것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곧 SLBM이다. 통상 잠수함 선체 중앙 부분에 위치한 수직 발사관에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발사통제장치(FCS)를 통해 수중의 일정 심도에서 콜드론칭 방식으로 쏘아 올린다. 발사관 내부에서 증기발생기나 고압의 압축공기 시스템을 이용해 미사일을 사출시킨 다음 수면 밖에서 고체연료 부스터에 점화해 발사하는 이중 발사 방식인데 기술적 어려움이 많다. 북한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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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중앙통신 북한이 동해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KN-11·북한명 ‘북극성-1’). |
그런데 새삼스럽게 신포급 잠수함 이외에 전략잠수함 개발에 대한 얘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12월27일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연대’ 소속 ‘북한 WMD 감시센터’가 발표한 자료집 <2016년 북핵 및 WMD 평가>에 따르면, 북한의 전략잠수함 개발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졌다. 하나는 3000t급의 신형 디젤잠수함 개발이고 또 하나는 3500t급의 원자력잠수함 개발이다. 북한이 전략잠수함 개발에 매달리게 된 것은 바로 신포급 잠수함의 한계 때문이다. 신포급 잠수함은 배수량이 2000t에 불과하다. 잠수함이 적의 탐지망을 피해 SLBM을 안정적으로 발사하려면 수심이 50m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때 잠수함의 최소 배수량이 3000t이다. 배수량 2000t의 신포급 잠수함으로는 수심이 20m만 넘어도 SLBM을 발사하기 어려워진다. 또 발사관이 한 개밖에 없어서 SLBM을 한 발만 탑재해야 한다는 것도 치명적인 약점이다. 신포급 잠수함은 SLBM 전용이라기보다는 테스트용 잠수함에 불과한 것이다. 3000t급 이상 전략잠수함 개발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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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갈무리 잠수함의 잠망경까지 탐지 가능한 일본의 대잠 초계기 P1. |
그러나 건조 과정에서 기술적 난제와 무리한 작업 추진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에 잠수함 건조를 끝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성급하게 작업을 추진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잠수함 개조를 돕는 러시아 기술자들이 무리한 작업 강행에 거부감을 나타내 이들과 마찰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뺐다. 2016년 12월10일께 동력·화력·무선·전투지휘·SLBM 콜드론칭·잠함·생활환경 등 구성 체계별 가동시험과 통합연동 시험을 진행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결과 보고를 받은 김정은 위원장의 질책과 중앙당의 문책이 뒤따랐다. 정확한 원인 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잠수함 건조를 책임지고 있는 신포의 ‘봉대보이라공장’ 측과 러시아 기술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어쨌든 2017년 10월까지는 3000t급 신형 잠수함 제작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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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중앙통신 2014년 북한 조선중앙TV가 제작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 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서 공개한 북한 잠수함과 잠수함 기지. |
북한은 3000t급의 디젤잠수함 개발과 더불어 3500t급의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병행하고 있다. 3000t급 디젤잠수함이 북한 핵전력의 주축이 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사 전문지 <군사연구> 2017년 1월호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미국과 일본의 대잠 능력에 맞서 생존력이 떨어진다. 3000t급 전략잠수함의 원형인 옛 소련 골프급의 배터리 능력은 4000㎾/h로 잠항 상태에서 4노트(1kn=1.852㎞/h 또는 0.514m/s) 속력으로 16시간 동안 120㎞를 운행한다. 배터리 능력을 두 배 늘려 8000㎾/h로 할 경우 4노트 32시간 240㎞ 수준이 된다. 이 정도면 12~16시간 만에 한 번, 즉 100㎞ 이동할 때마다 스노클링(디젤엔진 작동용 산소 공급을 위해 전용 환기통을 물 밖으로 꺼내놓는 것)을 해야 한다. 이때 미국과 일본의 대잠 초계기 레이더에 포착될 확률이 높다. 미·일의 대잠 초계기는 잠수함의 잠망경 탐지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 상태로는 동해 중앙부까지 진출하는 것도 어려워서 연안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지휘통신 문제다. 원래 잠수함은 통신에 어려움이 많다. 전파의 속성상 물속에 도달하지 않아 잠항 중 무선통신이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통신에 의존하지 않고 사전에 초계구 및 항로 계획을 주고 함장의 재량권을 허용한다. 수중 무선방송을 통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초장파 방송(VLF:3000~300㎐) 및 극초장파 방송(ELF:300~3㎐)을 이용하는데 둘 다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반면 잠수함에서는 수신만 가능하고 답신은 위성통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사용하기 쉽지 않은 방식들이다. 중앙통제 방식으로 운용되는 북한 시스템에서 잠수함만은 최고 권력의 통제력 바깥에 놓일 공산이 큰 것이다. 북한 전략잠수함의 궁극적 목표는 남한 공격을 넘어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동해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모든 경로는 미·일의 대잠 전력에 장악돼 있다. 소야 해협, 쓰가루 해협, 쓰시마 해협 등 3해협에 일본의 대잠 경계망이 펼쳐져 있다. 다른 해협들도 단순하게 통과할 수 없다. 미·일의 대잠 능력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데 북한이 이 장벽을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러시아 원자력잠수함 도면 해킹해 개발
미국의 한 보고서는 북한 전략잠수함의 용도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위기 시에 동해상의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 주일 미군기지에 탄도탄을 발사하는 자살공격 임무(Suicide Mission)를 수행하거나 북한 해군의 방어능력 부족으로 원거리 작전을 포기하고 인근 도서 등지에 숨어서 주일 미군 기지나 남한 주요 표적을 타격하는 은닉 작전을 주로 수행할 것이라고 보았다. <군사연구> 1월호도 유사시 미국의 통상 공격으로부터 북한의 핵무기를 보호하기 위해 바닷속에 은닉하는 것이 북한 잠수함의 주요 임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서두르는 것은 3000t급 디젤잠수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원자력잠수함은 디젤잠수함에 비해 원자로의 냉각수 순환펌프나 증기터빈 등으로 인해 소음이 더 크다는 단점은 있지만 바닷속에서 장기간 잠항을 할 수 있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SLBM용 잠수함은 궁극적으로 원자력잠수함을 지향한다. 북한은 3000t급 잠수함 리모델링 과정에서 쌓은 경험에 기초해 3500t급 원자력잠수함을 설계 연구해왔다. 초기에는 핵심 기술인 핵동력 추진기관 설계와 제작 경험이 없어서 난항을 겪었지만 정찰총국 산하 121사이버부대가 러시아의 원자력잠수함 회사로부터 3500t 원자력잠수함의 도면을 전부 해킹해왔고, 2013년 러시아에서 원자력잠수함 전문가 5명을 비싼 몸값에 데려오면서 탄력이 붙었다고 한다. 신형 전략잠수함은 길이 약 80m, 너비 약 8m이며 300m까지 잠항할 수 있는 제원을 목표로 2018년까지 건조하려고 한다. 잠수함 건조는 첩보위성에 발각되지 않도록 신포 봉대보이라공장 내에 덮개를 씌운 특별 건조장을 만들어 진행 중이다. 연구에 동원된 과학자·기술자들은 외부와 일절 접촉이 차단된 채 집단 기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