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옹 연대'는 왜 촛불집회에 나갔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촛불의 역사적 의의와 한국 사회의 과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6년 촛불시위는 과거 한국근현대사에서 나타났던 시민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으로부터 민주화운동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시민사회의 다원성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공정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셋째로 시민사회의 자신감이 표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봉기가 이후 적절한 사회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개혁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 현재의 변화된 상황에 근거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로 공정한 규율이 필요하고, 그러한 규율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들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정책 개발과 규율의 창출, 그리고 기구들의 운영을 담당할 수 있는 당양하고 전문적인 인재들을 등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촛불시위의 힘을 통해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한국 근현대사가 보여주는 시민 사회의 힘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많은 분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1993년 코넬대학에 나온 '현대 한국의 국가와 사회(State and society in contemporary Korea)'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한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하버드 대학의 에컬트 교수가 쓴 '남한의 부르조아지: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계급(The South Korean Bourgeoisie: A Class in Search of Hegemony)'과 하와이 대학의 구해근 교수의 '강한 정부, 논쟁적인 사회(Strong State, Contentious Society)'는 한국 사회와 다른 사회와의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글은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지나 자본가계급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갖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부르조아지 계급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후자의 글은 한 사회에서 정부의 힘이 강하면 시민사회의 힘이 약한데, 한국의 경우에는 강한 정부와 강한 시민사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특징은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약한 정부를 추구해 왔다. 이는 시민사회의 요구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국제 자본가 계급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했다. 전자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전체주의의 해체로 이어졌다면, 후자는 1970년대 초 이후 국제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국 사회에도 확산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카치아피카스는 '신자유주의와 광주항쟁(Neoliberalism and the Gwangju Uprising)'이라는 글을 통해 이미 그러한 경향이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2016년의 촛불 시위는 이 두 가지 현상이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부르조아지의 헤게모니가 강화되었고, 2008년 이후 두 차례의 보수정부에 의해 정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이 강화되고 시민사회가 약화되었지만, 2016년의 촛불시위는 부패한 정부의 부정한 개입과 부패한 자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그 중심에 있었다. 대통령의 구속뿐만 아니라 재벌에 대한 비판시위대의 구호와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부르스 커밍스는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를 통해 한국의 미덕(virtue)을 강조했고, 그 미덕은 의로움(義)과 차마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마음(忍)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덕은 송호근이 지적하였듯이 이미 19세기 말 의병전쟁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저항은 인민과 시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전쟁으로부터 의병운동, 3.1운동, 6.10 만세운동, 그리고 1945년 이후 4.19 혁명과 부마항쟁, 그리고 광주항쟁과 6월 항쟁은 모두 한국 시민 사회의 역동성과 그 힘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00년 이후 탄핵 반대 촛불시위, 광우병 파동 시의 시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세월호 희생자 추모 사위,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어져 온 시민 사회의 미덕과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외국 언론들은 2016년의 촛불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백여 만 명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충돌이 없이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다르며,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과거의 시위와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3.1운동에서부터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를 경험했던 한국 사회는 4.19 혁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시위에서 폭력적 성향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경찰이나 군대의 진압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경우는 있지만, 대규모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경찰이나 군대에 대항한 적은 없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2016년의 촛불시위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통으로부터 그 맥을 잇고 있다는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1: 한국 사회의 다원화
그렇다고 해서 2016년 촛불시위에서 과거 시위와의 공통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촛불시위에서는 과거의 시위와 비교해서 여러 가지 차이점과 특징이 드러나는데, 무엇보다도 다양한 깃발과 구호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인터넷에 올렸던 깃발 사진에서 잘 나타나듯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깃발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아래와 같다.
얼룩말 연구회,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독거총각결혼추진회, 노처녀 연대, 트잉여 운동연합, 혼자 온 사람들, 사립돌연사박물관, 행성연합 지구본부 한국지부, 대한민국 아재연합, 전국 집순이 집돌이 연합, 먹사랑, 오버워치 심해유저 연합회, 범야옹연대, 장수풍뎅이 연구회, 각종 야구팀 팬 깃발, 아이돌 팬 깃발, 덕후에게 덕질만 걱정할 자유를, 응원봉 연대, 덕후의 덕질이 보장되는 사회
2000년 이전처럼 시위에 자신을 정체성을 나타내는 깃발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2008년 광우병 파동 집회에서는 자제되었던 깃발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2000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깃발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2000년 이전의 시위에 등장한 깃발들은 대부분 정치, 사회운동, 시민 단체 관련 깃발들이었다. 2016년 촛불시위에 등장한 깃발에는 전국적 단위의 사회운동, 지역 단위의 시민운동 깃발들도 있었지만,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깃발들이 다수 등장했다. 위에서 언급된 깃발들의 대부분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온라인을 통해 형성된 집단의 오프라인 모임이 촛불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사립돌연사박물관'(개복치 키우는 게임), 그리고 '오버워치 심해유저 연합회'와 같이 게임과 관련된 모임의 깃발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응원봉 연대'나 '덕후', '덕질'과 같은 경우 팬클럽 회원들이 트위터나 팬클럽을 통해 일정한 그룹을 형성한 후 오프라인을 통해 시위에 참여한 경우이다. 이전에는 공개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못했던 동호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나왔으며, '응원봉 연대'의 경우 특정 팬클럽을 상징하는 응원봉을 갖고 나와서 집단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 시민들 개개인이 파편화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관심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였고, 그러한 연대를 당당하게 표출시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특정한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독거총각결혼추진회, 혼자 온 사람들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깃발을 대표하는 조직의 실체가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독거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번 촛불시위에서 가족단위로 참여한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었지만, 혼자 참여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고, 식당에서 혼자 나온 사람들끼리 만나서 촛불이라는 공통 관심사항을 주제로 얘기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셋째로 깃발에서 보이는 유머이다. 얼룩말 연구회,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대한민국 아재연합, 노처녀 연대, 전국 집순이 집돌이 연합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헬조선'이나 '금수저' 같은 용어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제가 이미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유머가 섞인 표현을 통해서 자신을 좀 더 부담감 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화되어 있는 심각한 사회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표현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며, 이러한 노력은 이미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촛불시위 깃발을 통해 드러난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보여준다. 첫째로 한국 사회의 다원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원화의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에 집중되었지만, 이제는 외국인 문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 구성원 자체의 다원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거인이 많아졌다는 것 역시 다원화의 한 부분이다. 최근 '일코노미'나 혼밥, 혼술과 관련된 드라마나 논의가 많아지는 것 역시 이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로 인터넷 공간의 다양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은 이전에도 토론의 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고, 이로 인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검열은 물론, 인터넷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번 시위에 나타난 현상은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공감대의 다양성이며, 이러한 다양한 현상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노력이 드러났다.
셋째로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사상 대부분의 철학과 가치관은 '공동체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촛불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온 대부분의 깃발 역시 공동체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 역시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이번 촛불시위가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서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개인의 권리가 침해받아서도 안 되지만, 다른 '개인'들의 권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 속에서는 이런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2: 공정한 사회
촛불시위 초기에 초·중·고등학생들의 참여는 사회적 화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긍, 부정으로 나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청소년들의 참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이다. 물론 초·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는 한국 역사에서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다. 3.1운동이나 6.10 만세운동,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의 중요한 참여층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4.19 혁명 역시 대구와 마산의 고등학생들 시위가 그 촉발제가 되었다. 마산에서 희생된 김주열 군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마산상고 시험을 보기 위해 마산에 와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는 합격 발표 다음 날 시위 도중 사망했다.
이러한 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는 1960년대 이후 2008년 광우병 파동 시위 때까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는 1960년대 말부터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에 의한 교육 통제에 의한 것이었으며, 학생들의 사회참여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전교조 선생님들의 영향과 함께 학생들의 자율적 토론을 통해 스팩을 쌓는 과정에서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이들은 다시금 사회적 이슈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광우병 파동 시위 때에는 주도적인 그룹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8년 이후에 있었던 평화적 시위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이번 시위에는 특히 초·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집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특징이 있다. 집회 진행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기 위한 다양한 팻말을 갖고 나오기도 했다. 이들의 구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헬조선인줄 알았는데, 고조선이네", "이래도 개돼지입니까?",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국정교과서 싫어요", "이럴려고 공부한 게 아닙니다" 등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 중 청소년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를 이번 시위를 통해 한꺼번에 표출한 것이다.
한 고등학생은 아래와 같은 풍자 팻말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구조를 하라니까 구경을 하고 / 보도를 하라니까 오보를 하고 / 조사를 하라니까 조작을 하고 / 조문을 하라니까 연기를 하고 / 사과를 하라니까 대본을 읽고 / 책임을 지라니까 남탓을 하고 /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해라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화여대 사태에 대한 학생들의 실망감이었다. JTBC 뉴스(2016년 11월5일)의 인터뷰에 나온 한 학생은 "정유라씨 최순실씨 사태를 보면서 되게 큰 배신감을 느껴서 집회에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이럴려고 공부한 것이 아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이번 시위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멘트였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사회였다. 공정한 규칙에 의해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조건이다. 교육과정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훈련병보다 일찍 자대배치를 받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 문제, 그리고 정유라가 "부모님에게 돈이 있는 것도 실력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실망과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헬조선'이나 '금수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철이 없는 행동이라는 대중매체의 언급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청소년들의 희망은 기성세대 역시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었기에 청소년들의 촛불시위는 그 만큼 더 강조되었고, 더 주목받았다. 기성세대들 역시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 노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성세대들이 미래 세대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지난 70여년의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들에 비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접할 수 있는 미래 세대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2016 촛불시위의 의미 3: 국민의 힘에 대한 자신감
2016 촛불 시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의 자심감이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패배주의와 회의주의에 젖어 있었다.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금융위기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시민들이 희망을 갖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인해 삶 속에서 개인의 안보(individual security)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후 시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선택한 진보 정부가 개인들의 안보에 어느 정도의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10년 동안 시민들의 이러한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진보 정부의 무능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또 다른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시민들은 진보 정부에 실망했고, 그 대안으로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두 차례에 걸쳐 보수 정부를 선택했다.
또 다시 박정희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보수정부 역시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후퇴 및 굴욕적인 외교 행태를 보이면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은 2008년 광우병 파동 시위와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추모 시위,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 시위 등으로 표출되었다.
시민들의 이러한 실망감은 선거를 통해 풀 수 없었다. 2008년 이후의 대통령 선거, 총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선거 결과는 대부분 보수 정당의 승리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역풍이 불었던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2011년 4.27 보궐선거 분당 지역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시민들은 패배감과 회의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집권 여당의 언론 장악과 관권 선거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대안이 되지 못하는 야당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 4.13 총선 결과는 시민들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집권여당을 비판하고자 하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성취된 것이다. 게다가 야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라 시민들은 더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야당은 분열된 상태에서 단일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한 특별한 캠페인이 없었음에도 투표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스스로 후보를 단일화하면서 야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국회의 변화는 사회적 이슈가 국회를 통해서 공론화되는 계기를 가져왔고, 이는 2016년 촛불시위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시민들은 이러한 기반을 잘 알고 있었고, 국회를 통해서 탄핵안을 통과시키는데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1978년 12월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가 1979년 유신체제의 몰락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을 배태했고, 1985년 2월 총선에서의 황색돌풍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듯이, 2016년 총선거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자신감과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 자신감은 2017년의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청산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강력하게 남아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민주화를 주도한 시민들에게 패배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없이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정치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평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어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큰 절망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성급한 비판보다는 이에 대한 객관적, 실증적 연구를 통해 그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시민사회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해서 2017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현대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1945년 이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경험을 갖고 있다. 1999년 영국의 BBC 방송이 20세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인민의 세기(People’s century)'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처럼 지난 70년 간 네 번에 걸쳐서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나라는 없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부터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2016년 이전 세 차례에 걸친 시민항쟁이 정권 교체나 정권 몰락, 또는 헌법 개정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이 반드시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4.19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실패와 5.16 쿠데타, 1979년 부마항쟁 이후 서울의 봄과 광주학살 그리고 신군부의 등장, 아울러 1987년 6월 항쟁 이후 후보단일화 실패와 보수연합으로서 민주자유당의 탄생 등이 그 사례였다. 시민의 힘이 승리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정작 그 결과와 과실은 정권을 바꾼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세력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현재의 상황 역시 이전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놓여있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시위과정에서부터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2000년 이후의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시위의 조직화는 오히려 그 동력의 상실을 초래할 수 없다. 시민들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그리고 개인과 친구,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같은 시위를 원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전의 시위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역시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시위의 동력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시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의 동력이 줄어든다면, 한국 사회의 비정상화를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촛불시위의 힘을 지속시키고 있으며, 헌재의 탄핵안 인용이 있을 때까지 촛불시위의 동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 위에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권 교체 후의 실패는 준비와 소통의 부족 때문이었다. 과거 진보정부의 실패 원인 중 하나도 치밀한 준비와 소통의 부재에 있었다. 야당과 진보세력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지나치게 '단일화'에 집중하였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단일화'가 되어야만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야당과 진보세력은 정책 공약은 물론 정권 교체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지키지도 못할 '경제민주화'의 담론을 '선점'한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단일화에 몰두하던 야당은 여당의 경제민주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정책과 인재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로 준비된 정책들은 무엇보다도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변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다원화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전통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공동체 담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제 한국 사회에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공동체의 담론 역시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을 경우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여기에 더하여 개개인의 다양한 성향은 이들 스스로가 '소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요구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다양한 그룹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때 이들은 '소수자'로 전락할 것이며, 이들은 다시 관망자의 자리로 갈 것이다. 개인주의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시민 개개인에 대한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 현실을 정치에 반영시키는데 있어서는 현재보다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정치와 사회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회의 소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깃발을 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안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필요하다. '국가'가 무조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며, 개인이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곧 시민사회의 개개인이 국가가 지켜야만 할 가치가 있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 하에서 새로운 국가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로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청소년과 기성세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한국의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 시스템이 아니며, 단순한 복지도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람은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법적 조치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합리적인 시행을 위한 각각의 조항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다면 김영란 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공정한 경쟁 위에서 시장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한 규율과 함께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된 감사, 정보 및 견제기관이 필요하다. 현 시스템 하에서도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 등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있지만,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이러한 독립성은 전혀 보장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기관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그리고 경찰 역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물론 물리력을 사용하는 기관들이 독자적 힘을 가질 경우, 미국의 FBI의 사례처럼 그 자체로서 또 다른 권력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하여 독립된 감사, 정보 및 견제기관의 기관장에 대한 선거제도의 도입, 또는 일부 기관의 경우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 정부로 감독 기관 이전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적인 인적 자원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는 과거와 달리 많은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 반면, 후보자들은 선거를 위해 캠프를 만들었고, 그 캠프는 권력자가 동원되는 인적 자원의 유일한 기반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회전문 인사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용어였다.
인적 자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사정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광범위한 인재 풀을 확보해야 하고, 이들이 적절한 위치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임명된 이들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서, 반대로 임기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10여 년 간 그 중요성이 약화되었던 '기록'과 '보존'의 원칙을 다시 확고히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인재의 적절한 등용은 규율이나 시스템 못지않게 '다원성'의 보장, '개인의 안보' 보장, 그리고 '공정성의 보장'을 위해 가장 핵심적 내용이 될 것이다.
박근혜·이재용이 구속되면 우리 삶이 나아지나요?
[광장편지] 삶터와 일터를 바꾸는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으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2017.01.24 17:28:07
폭설에 이어 최강한파가 몰아칩니다. 광화문 광장 캠핑촌도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천막 안에 있는 물병도, 몽골텐트 안에 있는 정수기 물통도 얼음으로 변했습니다. 치약과 로션마저 얼었습니다. 시민들이 보내준 과일도 돌덩이로 변했습니다.
광장 생활의 어려움 세 가지를 꼽으라면 추위, 소음, 화장실입니다. 버스나 대형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천막이 흔들립니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몇 차례나 잠을 깼는데, 사람의 적응력이 얼마나 좋은지 지금은 그런대로 잘만 합니다.
더 큰 골칫거리는 화장실입니다. 광화문 지하철역 화장실은 전철이 끊기면 문을 닫아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혹한의 날씨, 텐트 밖으로 나가기 싫어 밤에는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어느 촌민은 그리 좋아하는 맥주도 먹지 않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면 길 건너편 24시간 영업을 하는 할리스 커피숍을 이용합니다. 새벽에도 커피를 마시며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쓰고 있는 학생들, 노트북을 켜 놓고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모두들 잠들어있는 시간,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년들을 봅니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면 미안함이 몰려옵니다. 광화문 캠핑촌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더 힘들게 야간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미안하니까 커피는 할리스에서 마시자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커피를 한 잔이라도 더 팔아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의 일당이 조금이라도 많아질까요? 할리스 사장님만 돈을 더 많이 벌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일거리만 늘어나는 건 아닐까요?
광화문 캠핑, 추위와 소음과 화장실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로 주말마다 할리스 커피숍을 비롯해 광화문 일대의 상가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다들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지만, 광화문 일대는 지난 석 달 동안 '촛불 특수'를 누렸습니다. 사장님들은 두둑하게 돈을 챙기셨을 겁니다.
그런데 평소보다 몇 배의 노동 강도로 일을 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어땠을까요? 이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았을까요? 그래서 광화문 촌민들이 모였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새해 엽서를 만들었습니다.
엽서를 들고 식당과 커피숍을 돌았습니다. 사장님과 직원 한두 명이 일하는 작은 식당도 있지만, 아르바이트생을 여럿 두고 있는 가게도 많습니다. 할리스, 엔젤리너스, 스타벅스, 롯데리아, 홈플러스익스프레스와 같은 체인점들에는 노동자들에게 엽서를 건넸습니다.
50여개의 상가에 엽서 200장을 나눠드렸습니다.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분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광화문 캠핑촌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설렁탕집 사장님은 직원들에게 보너스는 주지 못했지만, 일당을 조금 더 챙겨드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식당 직원은 월급을 더 주지는 않더라도 주말에는 인원이라도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생계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도 들지 못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와 청소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노고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엽서 들고 광화문 인근 상가를 돈 이유
광화문 광장에 캠핑촌이 들어선 지 80일이 지났습니다. 열 동에서 시작한 텐트는 60여동으로 늘어났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코란도' 모형에 굴뚝을 올린 자동차집을 지었고,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집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청와대를 본 뜬 집을 만들었습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훨씬 따뜻합니다.
광장은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예술품들이 만들어집니다. 매니저를 둬야 할 만큼 바쁜 '박근혜 조각상'에 이어 이재용, 정몽구, 김기춘, 조윤선 조각상이 차례로 만들어졌습니다. 포승줄에 묶인 조각상들은 청와대, 국회, 정부세종청사, 삼성 서초동 본사, 현대차 양재동 본사로 출장을 나갑니다.
조윤선 조각상은 지난 11일 세종시에 내려가 블랙리스트를 상징하는 먹물을 뒤집어썼습니다. 조각상들이 광장으로 돌아오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포토 존'이 됩니다. 용산참사 때 만들어진 파견미술팀 조각가, 판화가, 사진가, 문화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 둘을 감옥에 보냈으니, 이제 셋 남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패러디한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는 첫 번째 전시가 끝나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제목으로 두 번째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40명의 사진기자와 작가들이 찍은 '시민들의 촛불항쟁 사진전'입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진행되는 '끝나지 않는 광장토론'은 벌써 아홉 번째를 맞았습니다. 이번 주제는 '대안언론과 광장의 정치'입니다. 2월 9일부터 매주 목요일에는 '광장 혁명을 말하다'는 제목으로 연속 강좌가 열립니다. 재밌는 건 수강료가 강좌 당 1만 원인데, 전 강좌를 수강하면 모두 돌려준다는 점입니다.
지난 7일에는 연극인들이 대형 극장을 광장에 세웠습니다. 이름은 '빼앗긴 극장, 이 곳에 세우다, 광장극장 <블랙텐트>'. 첫 공연으로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빨간 시'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매회 객석이 가득 차 차가운 바닥까지 앉아 공연을 관람합니다. 공연을 보는 시민들이 100여명에 이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는 2017년 첫 번째 언론상인 1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광화문 블랙텐트'를 선정했습니다. 언론위원회는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할 블랙리스트의 폐해를 적시하고, 표현과 예술의 자유가 민주의 뼈대임을 부르짖는 블랙텐트의 정신에 주목하였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매일 저녁 8시 공연입니다.
대형 극장까지 들어선 광장
며칠 전 탄핵 시계가 빨라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2월 중순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변호인단이 무더기 증인을 신청하면서 탄핵이 2월 말 3월 초에 진행될 것이라고 합니다. 탄핵 되는 날 바로 텐트를 걷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한겨울을 온전히 광장에서 보내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감옥에 가고 이재용과 정몽구를 감방에 보내면, 우리 삶이 달라질까요? 지난 연말 경남 창원 촛불집회에서 "박근혜가 퇴진하면 내 삶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던 24살 전기공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촛불집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힘겨운 노동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촛불이 단지 권력자를 바꾸는 것 밖에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1000만 촛불혁명이 권력자 교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광장의 민주주의 촛불을 삶터와 일터에서 밝혀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삶터, 동네에서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일입니다. "너 정치하려고?"라는 말은, 정치를 특권층의 전유물로 만들고 싶은 지배세력의 올가미입니다. 우리가 광장에서 든 촛불은 최고의 정치행동입니다. 임기가 남은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촛불항쟁에 참여한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도 있고, 기성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삶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미래를 토론하고 행동하는 일입니다.
둘째, 우리의 일터, 직장에서 노동의 주체로 나서는 일입니다. '노조', '민주노총'이라는 단어에 '불순'과 '특권'이라는 색깔을 입힌 건, 일터를 자본의 전유물로 만들고 싶은 가진 자들의 속셈입니다. 최고의 권력자를 끌어내린 촛불의 힘 일부만으로도 일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노고를 고맙게 여기고, 당신의 노동에 정당한 대우를 하는 직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노조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당신을 도와줄 노동운동가, 변호사, 노무사들도 많습니다.
기업노조를 만들기 어렵다면 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같은 산업에 종사하면 실업자나 취업준비생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도 있고, 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도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당신, 이제 정치와 일터를 바꾸는 촛불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재벌 개혁, 그룹 해체가 능사일까?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재벌 개혁을 주장하며 ‘경제민주화’ 의지를 밝혔다. 한국 사회를 바꾸려면 대표적 기득권인 재벌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 개혁이 개악이 되지 않게 하려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들이 일제히 반(反)재벌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4대 재벌(삼성·현대차·SK·LG)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공격했다. 문 전 대표가 지난해 4대 재벌 경제연구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여전히 재벌 대기업이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몇 달 전부터 “재벌 체제 해체”를 공언하고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전은 자칫 ‘내가 재벌에 더욱 적대적이다’라고 과시하는 경연장이 될 수도 있다.
재벌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이다. 경제 부문은 물론 정치·사회 부문에도 유착과 매수를 통해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바꾸려면 재벌 체제 역시 바꿔야 한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현재보다 우월한 쪽이어야 한다. 선거판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재벌이라는 앙시앵레짐을 철저히 ‘타도’하겠다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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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2014년 6월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노숙 시위를 하고 있다. |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재벌 총수
재벌은 ‘창립자 일가’가 여러 대기업을 하나의 그룹으로 운영하는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쌍용자동차나 GM코리아처럼 단독으로 운영되는 업체는 대기업이지만 재벌로 불리지 않는다. 총수 일가는 주요 기업에 다수 지분을 확보한 뒤 그 기업들이 다른 계열사에 지분을 갖게 하는 방법(순환출자)으로 그룹 전체를 일관되게 지휘한다.
총수 일가가 직접 가진 지분은 그룹 전체 주식 가치의 5% 내외다. 흔히 재벌 일가를 ‘오너(소유자)’라 부르지만, 전체 계열사 차원에서는 극히 적은 지분을 가졌을 뿐이다. 5% 소유로 100%를 지배하니 재벌 그룹을 가리켜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배권을 상속시키기 위해 경제범죄에 가까운 짓도 서슴지 않는다.
재벌 개혁(해체)은 대체로 총수 일가의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는’ 체제를 종식시키자는 것이다. 주로 총수 세력 이외 다른 주주들(소수 주주)의 경영 개입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이다. ‘소수 주주’는 국내 소액 투자자는 물론이고 수백억 달러를 운영하는 거대 해외 펀드까지 망라하는 개념이다. 그동안 재벌 총수는 주주들에게 당장 배분할 수 있는 돈을 장기 투자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다. 소수 주주의 권한이 강화되면 총수가 함부로 투자하는 행태를 차단할 수 있다. 그룹 차원에서 움직이던 기업들이 각각 자사 주주들을 위해 운영되는 독립 대기업으로 해체될 것이다.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30대 재벌 체제를 깨고 300대 기업 체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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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재벌 개혁 의지를 밝히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
재벌은 중소기업 약탈, 저임금, 비정규직 확산, 노동조합 탄압 등의 원흉으로 지목되어왔다. 재벌을 해체하면, 대기업들이 하청 중소기업에 납품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고 정규직화에 앞장서며, 노동운동을 용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재벌 해체(개혁)는 대기업 주주,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 등 거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과제다. 야권의 주요 공약이 될 만하다.
한국 경제 생태계에서 대기업의 위상
다만 재벌 대기업을 건드리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공식적인 재벌 그룹의 정규직 외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소득, 소자영업자들의 생계가 대기업에 사슬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 등 산업생태계 연구팀이 국내 최대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데이터의 자료를 활용해 추적한 연구(<거래 네트워크로 본 한국의 산업생태계>)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소속된 소수의 대기업들이 (기업 간) 거래 네트워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1차 협력(하청)업체들로부터 부품을 매입한다. 1차 협력업체 역시 다른 중소기업(2차 협력업체)으로부터 중간재를 공급받는다. 대기업을 근원으로 하는 원·하청 연쇄고리는 때로 10차 협력업체 이상까지 복잡하게 뻗어나간다. 산업생태계 연구팀이 표본으로 활용한 5만4114개 기업(2011년 기준) 가운데서는 45.5%에 해당하는 2만4600여 개 업체가 대기업 중심의 거래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있다. 극소수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가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이 포함된 전자 업종의 경우, 대기업 협력업체가 모두 8809개에 달했다. 현대차·기아차 등 자동차 업종의 협력업체는 5886개다. 적어도 ‘삼성이 망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재벌 대기업들의 비중이 작지는 않다.
재벌 해체 이후 독립 대기업들의 경쟁력은?
기업집단의 장점은 계열사끼리 서로 지원하면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거나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첨단산업에 뛰어들 때도 유리하다. 그룹의 유명 브랜드를 내거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그룹 내에 축적된 판매 조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전기, 삼성SDI 등 계열사로부터 부품을 조달받기 때문에 애플과 달리 여러 규격의 제품을 유연하게 선보일 수 있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비교우위다. 대기업이 그룹에서 독립하는 경우, 경쟁력이 더 강해질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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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립 대기업에서는 소수 주주의 권력이 강해질 것이다. 재벌 일가의 의지를 떠받드는 다른 계열사의 지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벌 일가는 산하 계열사를 사실상 자신들과 후손의 소유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해당 기업 자체의 성장·발전에 관심이 많다. 일가의 사회경제적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기업 내에 쌓인 자금을 주주들에게 배분하기보다 그대로 유보하거나 투자에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최근 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는 매출액의 7.5%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글로벌 차원에서 최고 수준이다. 같은 시기 애플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4.4%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뒤 주주들의 힘이 강력해졌다. 소수 주주들의 최고 목표는 기업의 성장보다 금융수익 확보다. 재벌 해체의 조짐이 보이면 신속하게 대기업 주식을 매집해놓는 것이 좋다. 주가가 올라 큰 재미를 볼 수 있다. 다만 해당 기업 노동자나 하청업체들까지 좋아할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재벌은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인가?
재벌은 이른바 ‘천민자본주의’의 표상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비정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증거로 활용된다. 선진국에는 재벌 같은 기업조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룹(기업집단) 경영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다. 대다수의 글로벌 우량 기업들은 ‘복합기업 그룹(conglomerate·재벌처럼 여러 업종의 기업이 집단적으로 운영되는 형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보잉, 듀퐁, GM(이상 미국), 바이엘, 지멘스(독일), 르노(프랑스), 네슬레(스위스) 등이 있다. 가족경영 체제로 성공한 독립 대기업도 많다. 미국의 월마트, 일본의 도요타,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미탈,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 프랑스의 PSA 푸조 시트로엥, 독일의 BMW 등이다. 한국의 재벌처럼, 가족이 ‘복합기업 그룹’을 경영하며 자녀에게 승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의 포드, 이탈리아의 피아트, 독일의 베르텔스만, 일본의 산토리, 프랑스 루이비통, 스웨덴 악셀 존슨, 캐나다의 파워코퍼레이션오브캐나다 등이다. 정경유착 등 한국적 부작용을 빼고 기업 운영 형태로만 보면, 재벌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그룹 경영과 독립기업 혹은 가족 경영과 ‘월급 받는 피고용 경영자’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지에 대해서는 국제 학계와 실무 측에서 일치된 견해가 나온 바 없다.
한국 재벌의 ‘소유 없는 지배’도 비판 대상이다. 그런데 이것도 한국 재벌만의 현상은 아니다. 주식회사 제도 자체가 문제다. 주식회사에서는 20%든 30%든 다수 지분만 확보하면 경영 지배권을 통째로 갖는다. ‘소유 없는 지배’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의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차등의결권(경영자의 주식에 일반 주주의 주식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부여) 제도를 통한 ‘소유 없는 지배’가 자행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슐츠버그 재단이 지분 0.6%로 100% 의결권을 행사한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에서) 자신의 1주에 대해 200개 의결권을 갖는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창업자가 1주에 10개 의결권을 행사한다.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차등의결권은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월스트리트식 경영 간섭에 제한받지 않고, 장기적인 기업 전략의 수립 및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싫다면 구글에 투자하지 말라’고 말했다.”
재벌을 해체하면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형편이 나아질까?
재벌이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압도적 시장지배력을 무기로 하청 중소기업들을 약탈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혁신에 투자해야 할 잉여이익을 재벌에 빼앗긴다. 자사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다.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 부문 노동자들 간의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 정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견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 이사는 재벌 시스템 자체로 인해 약탈이 자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산업생태계 연구팀’이 선도 기업(원청 대기업)과 공급 기업(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2011년)을 정리한 그래프(오른쪽 표)를 제시한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협력업체를 심하게 쥐어짤수록 양측의 영업이익률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실제로 건설, 유통, 통신, 시스템통합(SI) 등 내수 서비스업에서는 원청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반면 협력업체들의 그것은 바닥을 기고 있다. 반면 수출 제조업에서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전자 업종의 경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1차 협력업체에 비해 미세하게 높을 뿐이다. 자동차 업종에서는,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1차 협력업체보다는 조금 높지만 2, 3차 협력업체에 비하면 오히려 낮다.
정승일 새사연 이사는 이런 현상을 업종의 차이 때문으로 해석한다. 수출 제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그래서 본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능력까지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 협력업체들의 기술 수준 및 품질관리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원청인 삼성전자와의 납품 단가 협상 등에서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종합건설사인 삼성물산이 수주한 업무는 전문 건설업체인 1차 협력업체들을 거쳐 여러 차례 하청된다(다단계 하청). 협력업체들은 하청 비용을 낮게 불러야 일을 맡을 수 있다. 유통, SI 같은 업종도 비슷하다. 내수 서비스업의 핵심적 경쟁력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건비 저하를 통한 비용절감 능력(하청 약탈)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모두 재벌 계열사다. 그러나 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는 크게 다르다. 재벌 여부가 아니라 업종에 따라 약탈 강도가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승일 새사연 이사는 원·하청 문제의 대안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 및 노동조합 강화 등을 제안한다(42~43쪽 기사 참조).
한편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해체해서 ‘30개 그룹을 300개 독립 대기업으로’ 만들면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와 임금이 오르고, 해외로 나간 생산공장들이 복귀하며,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탄압이 중단될까? 재벌 계열사에서 독립 대기업으로 바뀐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한국GM 등이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에게 특별히 친절하다는 증거는 없다. 주주들을 위해 운영되는 독립 대기업들이 재벌 계열사와 다른 행태를 보이기는 할 것이다. 주주들은 위험한 장기 투자보다 당장의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선호한다. 비용을 줄여야 주가와 배당금이 높아지는 판국에 협력업체 납품 단가를 올리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질 나쁜 헤지펀드 주주라면 단기 수익에 예민한 기관투자가들을 업고 독립 대기업에 이사를 침투시킨 다음, 정리해고 및 연구개발 투자 취소 등으로 비용을 줄여 주주 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회사를 쪼개거나 다른 기업과 합병시키면서 자산 매입·매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떼돈을 벌기도 한다.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강행하려 하면 ISD(투자자·국가소송제)로 맞설 수도 있다.
정확한 문제 분석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 공격에 대한 우려를 ‘민족주의 관점’에 따른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대기업 경영 관행의 문제다. 주주 가치 높이기냐, 기업의 성장이냐는 대기업 경영진의 선택에 따라 고용과 테크놀로지 등 국가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총수 일가와 기업집단을 분리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일가의 범죄는 법치주의에 따라 엄하게 단죄하되 수많은 글로벌 우량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그룹 경영을 한국에서만 포기할 이유는 없다. 총수 일가를 혼내주기 위해 그룹 분리를 선택한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 있다.
재벌 일가와 소수 주주(외국계 펀드 포함) 가운데 양자택일할 문제는 아니다. 국가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대기업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부터 구상한 다음 구체적인 재벌 개혁 방안을 만들어가면 된다. 투자와 혁신을 추진하고 하청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며 비즈니스의 핵심 자원인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생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경영 주체라면, 해외 자본이든 국가든 은행이든 상관없다.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들도 착취와 불평등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한 바탕 위에서 적절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