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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해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 "바보야, 문제는 부동산 특권이야"

일취월장7 2017. 1. 24. 10:27

불평등 해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복지국가SOCIETY] 지속 가능 발전의 세 축, 경제 성장·불평등 축소·환경 보호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2017.01.24 08:13:37


2015년 9월 25일, 유엔(UN) 가입국들은 유엔 정상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를 채택했다. 이 의제에 따라, 각 국은 경제 성장, 사회 발전, 환경 보호 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17개의 상호불가분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이 목표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169개의 세부 목표(targets)를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의제의 공론화 수준이 낮고, 특히 정부의 이행 의지가 매우 약해 기대됐던 성과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논의하는 것은 사회적 의미가 있다.  

'사회 발전' 측면의 지속 가능한 발전 

2015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회 발전, 경제 성장,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논의와 구별된다. 특히 사회 발전에 더 강조점을 두어 빈곤 퇴치, 사회 보호(social protection) 강화, 고용 강조, 임금 및 노동 조건의 개선, 주거 및 도시의 물리적 제도적 환경 개선, 무엇보다도 모든 종류의 불평등 축소를 포함했다. 왜 기존과 달리 사회 발전이 기반이 되는 확장이 일어났을까? 지속 가능성의 원리들이 비로소 제대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은 세 개의 원리에 기초한다.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개인, 조직, 사회 등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초를 다진 브른트란트 보고서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즉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남겨 놓아야만 미래에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원리는 개인, 조직, 사회의 구성 요소들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엮여 있다는 원리이다. 사회 발전, 경제 성장, 자연 보호는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영역의 변화는 다른 영역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며, 이 유발되는 변화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지난 30년간 전 세계는 경제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사회 발전을 위한 요소들을 축소시켜왔다. 이론상으로는 경제 성장이 사회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창됐지만, 현실에서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강화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사회 발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룬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에서도 경제 성장의 강조는 사회 발전의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가난한 구성원들의 수를 증가시켰다. 

한 영역의 강화가 다른 영역을 갉아 먹는다면 그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이로부터 세 번째의 원리가 도출된다.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변화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변화는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를 운영할 때 한 영역의 변화가 다른 영역의 변화를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부정적인 변화는 최소화하도록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의 조건이자 경제 성장 그 자체 

이 세 가지 원리들은 특히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 사이의 관계를 더 명확히 규정한다. 사회 발전은 구성원들이 마주친 삶의 문제들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는 관행이나 제도들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유발 관계가 유엔이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기제가 작동한다.

첫째, 사회 발전은 결국에는 생산과 소비로 이뤄지는 경제 성장의 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보건 의료 제도가 잘 정착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강화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잘 구축되면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생산에 사용할 수 있어서 생산성이 향상하고, 조직 문화가 변해 생산 과정의 효율성이 증가한다. 결국 사회 발전은 경제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의 관행과 제도들, 특히 사회보험, 사회 부조, 사회 수당, 사회 서비스 등은 구매력의 증가를 낳는다. 구매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 여력이 늘어나는 것이며, 결국 생산이 증가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마련된다. 

둘째, 사회 발전은 그 자체가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은 물건의 생산과 소비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사회 서비스는 사회 보장의 네 개의 핵심 중 하나이고 사회 발전의 한 요소이다. 사회 서비스 제공 체계를 잘 구축하면 이 영역에서의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곧 경제 성장의 일부를 이룬다. 즉 사회 발전의 강화 자체가 경제 성장의 일면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 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면 제공이 덜 되거나 질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서비스의 영역이어서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돈이 없거나 절약하기 위해 소비를 포기하여 미충족의 상태로 고통을 감수하거나, 자기 스스로가 서비스의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에 맡기면 사회 서비스 시장은 그 규모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사회 서비스를 사회적 연대에 의거하여 제공하는 것은 이런 불합리한 결과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회 발전이 곧 경제 성장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셋째, 사회 발전은 사회적 비용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 보장이 미비하며, 이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갈등과 미충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비용들은 사회 보장이 제대로 구비되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비용들이다. 따라서 사회 보장을 위해 지금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결국에는 곧 다가올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없애는 것이며, 곧 다가올 미래에 경제 성장을 위해 투여할 자원을 그만큼 더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율의 감소가 경제 성장을 가져 온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요컨대, 유한한 자원을 더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사회 발전은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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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발전은 적정선 수준의 삶의 질을 목표로 삼아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빈곤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지속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할까? 상식의 수준에서 답은 '아니다'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확보해야 함을 전제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모든 인간이 삶의 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삶을 세대 차원에서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브른트란트 보고서의 개념에서 "충족시켜야 할 필요"라는 것은 바로 삶의 질 개선인 셈이다.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수준의 문제이다. 어느 수준까지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가가 핵심이다. 수준은 크게 최저선, 적정선, 최대선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최저선은 삶의 질이 적어도 이 수준은 넘어야 아픔과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저 소득 보장이나 최저임금 등이 보장하는 수준이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인간은 최저선을 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충분하다거나 적절하다고 여기는 수준 또는 아픔과 고통이 양산되지 않는 수준, 즉 적정선을 넘어서야 비로소 삶의 안정감이나 편안함을 가진다.

이런 수준의 문제와 결부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각 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빈국, 개도국, 선진국은 추구하는 수준이 서로 다르고 정책 방향과 정책 도구에서도 상이하다. 빈곤의 퇴치는 주로 최저선을 넘자는 것이다. 최빈국이나 개도국의 경우에는 최저선을 넘기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선진국이 되기 전 단계의 국가들은 최저선이 아닌 적정선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적정선을 추구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지속 가능발전목표(SDGs)의 기본 정신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No one is left behind)'이다. 어느 누구도 배제함이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주의가 기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보편성은 이중의 고려가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그동안 소외의 대상이 되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들은 주로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영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등을 주요 수혜 대상자로 삼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구성원에게 자원 배분이 돌아가야 하는데 특정의 구성원인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자원 배분을 함으로써 보편주의를 위반하게 된다.

여기서 정책이나 제도가 겨냥하는 대상과 대상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상이란 제공되는 특정의 재화나 서비스 그리고 규제를 의미하며, 대상자란 수혜를 받는 구체적인 구성원을 의미한다. 대상은 의료 서비스일 수도 있고 현금일 수도 있으며 고용 보장이라든지 임금 보장 등의 법적 규제일 수도 있다. 대상자는 모든 구성원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다.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가 겨냥하는 대상은 빈곤 퇴치와 같이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하게 가진 욕구와 필요들로서 보편적인 것이다. 반면, 지속 가능한 발전의 주요 대상자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편주의를 위반하는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편적인 욕구와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의 보편성에 기초한다는 점과 궁극적인 목적이 대상자의 보편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자로 삼는 것은 보편주의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선별적 보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우리나라에서 갖는 한계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들이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의 적용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총괄할 조직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 현재 총괄 조직은 환경부 소속 자문위원회인 지속 가능발전위원회이다.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회 발전, 경제 성장, 자연 보호라는 세 개의 축을 포함하는데, 우리나라의 총괄 조직은 환경부에 속해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주로 자연 보호에 한정되어 이해되는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최근 유엔이나 유럽연합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총괄 조직의 위상을 높이고 활동 영역을 넓히는 작업이 시급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전 영역을 두루 포괄하는 종합적인 발전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총괄 조직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은 범정부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이 총괄 조직은 각 관련 부처들의 담당자들을 구성원으로 포괄하여 각 부처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한계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포함된 사회 발전 자체와 연관된다. 유엔이 제시하는 사회 발전은 사회적 결속에 초점을 맞추고,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 빈곤 퇴치, 불평등 해소 등이 제시되며 '선별적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고 특정의 대상자들을 골라 자원을 배분한다. 하지만 적정 수준의 삶의 질을 영위하는 것은 사회적 결속을 위한 제도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결속은 사후 처방과 같은 것으로, 현실에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개인의 노력들이 적절한 결과를 낳지 못했을 때 이를 보완해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 특히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최근에 사회적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예방적 성격의 사회보호 제도들이 이미 도입 안착되어 있다는 맥락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고용 보장, 노동권 보장, 적정 임금의 보장 등이 규제를 통해 제대로 이뤄지고 있고, 사회 보험, 사회 서비스, 사회 수당 등에 자원을 부가적으로 투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반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미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빈곤이나 불평등의 해소가 정책 결정에서 우선권을 갖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와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 고용 보장이 매우 취약하고 노동권과 적정 임금의 보장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사회보험, 사회 서비스, 사회 수당 등도 취약한 상황이다. 따라서 '선별적 보편주의'에 기초한 제도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과는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전제로 이미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먼저 시급하게 복지국가를 제도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1차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고용과 노동 부문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사회 보험 제도들은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야 하며, 사회 수당을 전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회 서비스는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제공 체계 자체가 질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론해야 하는 한계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취약함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특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참여 보장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일이 자신의 일임을 인식하게 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런 주체성의 확립은 더 나아가 자율성의 확립으로 연결된다. 참여 보장은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자유를 향유하는 데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민주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고, 그것을 구축할 정부나 정치권의 의지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 당장 민주적 거버넌스를 도입하고 강화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부동산 특권이야"

[기고] 부동산특권 해체와 19대 대통령 선거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2017.01.25 08:06:03


기로에 선 대한민국, 방향은 특권 해체에서 찾아야

작년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촛불민심의 목소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상식,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이 시궁창에 내던져진 것에 대한 울분과 저항을 넘어 1000만 촛불시민들은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4월이나 5월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것을 묻고 토론하고 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형성'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를 '특권 없는 사회'라고 정리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낡은 질서의 핵심은 '구조화된 특권'이고 새 질서는 이런 특권이 해체된 사회라는 것이다. 특권이 해체되어야 기회균등이 가능하고, 특권이 해체되어야 자유경쟁의 원리가 비로소 작동하며, 특권이 해체되어야 노력의 결과를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특권에는 정치특권과 경제특권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경제특권에 관해서만 논의를 한정해보자. 경제특권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재벌특권이다. 재벌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시장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것은 재벌특권이 작동한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재벌이 시장경제의 최대의 훼방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합뉴스


모든 특권의 어머니, 부동산특권에 주목해야 

그러나 나는 재벌특권보다 부동산특권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부동산특권은 모든 특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특권은 부동산 특권을 기반으로 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런지 질문해보자.

정치특권층의 물적 토대가 무엇인가? 부동산이다. 고위공직자들 혹은 선출직 공무원들 거의 대부분이 고액 부동산 자산가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의 정치특권을 제도화한 '유신'도 부동산특권 위에 세워졌다. 박정희는 자신이 세운 정치특권 체제의 유지비용을 강남 부동산투기를 통해서 조달했다. 정치특권과 부동산특권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유신인 것이다. 재벌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위 1% 기업이 법인 전체가 소유한 부동산의 76%를 소유하고 있고, 재벌 소속인 상위 10대 기업은 법인 전체가 소유한 부동산의 무려 35%나 소유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 재벌의 부동산특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2008~2014년 6년 사이에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546조 원에서 966조 원으로 1.8배 증가했고, 더욱이 상위 10대 기업의 보유 부동산 가격은 18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무려 2.5배나 폭증했다.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공화국 앞에 '민주'가 아니라 '부동산'이 붙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이 국민 일반이 아니라, 고가의 부동산을 과다하게 소유한 소수의 개인들과 재벌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동산특권을 해체하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은 요원하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는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는다. 특권이 노리는 것은 바로 불로소득이다. 일하지도 않았는데 소득이 생겼다면, 그것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노력한 성과를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가로채는 것은 재벌의 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정확히 말해서 토지를 단지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으로 소득이 생기는 것 역시 부동산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동산특권을 해체한다는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부동산특권이 낳은 불로소득의 규모는 대체 얼마나 될까? 토지+자유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2015년 현재 무려 357조 원이나 된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 평균 GDP의 22.4% 정도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실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 엄청난 불로소득은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일까? 거의 대부분을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개인과 재벌이 가져갔다. 우리나라 토지의 경우 1% 인구가 개인토지의 55.2%를 10%의 인구가 개인토지의 97.6%를 차지하고 있고, 무(無)토지소유세대가 무려 40.1%에 이른다. 주택의 경우에는 무주택가구는 44.0%에 이르고 있고, 다주택자 중 11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가구 수만 무려 3만7000에 이른다. 무주택자, 땅 한 평 없는 세대에게 부동산 불로소득은 그림의 떡이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점점 가난해진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위계층에 속한 집 없고 땅 없는 서민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의 상당 부분이 상위계층으로 이전되는 통로가 바로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부동산특권 해체 방안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대통령 선거가 되어야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부동산 정책은 주거복지정책에 머물러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물론 그런 정책들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부동산특권을 해체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주거복지정책은 한계가 매우 크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얼마 전에 발표한 국토보유세(와 토지배당)과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은 의미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부동산특권이 노리는 불로소득을 정조준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토지보유세 만큼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 내지 차단하는 좋은 방안도 드물다. 이 시장이 말한 대로 국토보유세를 신설해서 15.5조 원을 징수하게 되면 부동산특권은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재벌의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다. 환수한 국토보유세 전액을 전 국민에게 배당형식으로 지급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95%의 국민이 혜택을 보고 5%만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높은 땅값도 하향 안정화 되어 일반 시민들의 주거비는 경감되고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은 줄어들고 경제 전체에 활력이 살아날 것이다. 이렇게 특권이 해체되면 그동안 특권에 짓눌렸던 개인과 기업이 살아나고 사회의 역동성도 증진된다.

고위공직자 취임 시 투기용 부동산을 백지로 신탁하게 하는 부동산백지신탁제는 또 어떤가? 이 정책이 제도화되면 부동산특권을 지닌 자가 고위공직을 맡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정책을 내놓았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동산특권층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힘을 극복하기 위해선 '부동산특권 해체'가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상되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도 부동산특권을 해체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 돌아보면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어제 오늘이 아니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초반 "토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세법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겠다"고 할 정도로 보유세 강화에 적극적이었지만,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인 종합부동산세는 보유세 강화에 첫발을 떼는 의미있는 정책이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결국 형해화시켜버렸다. 대다수 사람들이 환영할 부동산백지신탁제는 2005년 지병문 의원(열린우리당)이 입법발의 한 적이 있고, 201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안철수 의원이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때는 지금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지금이 적기다. 모든 특권의 어머니인 부동산특권이 사라진 사회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