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 문재인, 북핵 해법 과감히 치고 나가라" - 2017년 한반도 정세 전망
"대선 주자 문재인, 북핵 해법 과감히 치고 나가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마감 단계"에 와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북한이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ICBM 시험 발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당장 북한이 ICBM 시험 발사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분명해지고, 이를 통해 미러, 미중 관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행동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자력 자강'을 내세운 것에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지도부가 국제 제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력 갱생'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고 해석했다.
그는 "북한이 올해 ICBM을 발사하면 중국이 미국처럼 제재를 선도하는 것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분명 북한에 대한 태도는 예전과 달라질 것"이라며 "북한의 행태를 사실상 눈감아줬던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 북한은 설사 이러한 상황이 오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리 '자력자강' 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예방주사'같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 마지막 부분에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다면서 이례적인 자책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바로 그 부분으로부터 김정은의 우상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보천보전투로 우상화가 진행됐다. 이런 업적이 없는 김정일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 통치 정당성 및 우상화를 이어갔다"며 "김정은 역시 우상화를 위한 일종의 '컨셉'이 필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당국은 이 발언을 이용, 주민들로 하여금 '원수님(김정은)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원수님께서는 스스로 인민을 위해 할 일을 못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지도자가 어디 있나. 오히려 죄를 지은 것은 우리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을 펼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한편 새해 들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주자 중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북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뒤지고 있는 결과가 나온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문 전 대표가 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중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축소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일단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 전 장관은 "만약 반 전 총장이 핵 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축소 내지 일시 중단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이렇게 먼저 치고 나오면 다른 후보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먼저 치고 나오지 않으면 상대가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마감 단계에 있다는 부분과 경제 분야에서 전력 상황을 언급한 대목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본인의 능력이 뒤따라주지 않았다는, 상당히 이례적인 '자기 고백'을 하기도 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을 꼽아본다면 어느 부분이었나요?
정세현 : 경제 부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력이 언급됐는데, 구체적으로 지시를 한 점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물론 지난해 당 대회 때 나왔던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 수행'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목표치는 여전히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전략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력과 금속, 화학 공업 부문이 기치를 들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특히 전력 부문에서 "교차 생산"을 하라고 구체적 방법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한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다른 곳에도 쓰게 하라는 건데요.
북한은 전기의 송·배전 시설이 하나로 통합돼있지 않습니다. 우리야 어디서 전기를 생산하든 상관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동평양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특정 구역에만 전기를 공급합니다. 전기가 남아도 다른 곳으로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 자체를 교차로 해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발전 설비와 구조물 보수를 질적으로 하고 기술 개조를 다그쳐야"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꼼꼼히 언급한 이유는 그만큼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공장이든 탄광이든 전기가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력이 신년사에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올해 신년사를 보면 북한이 지난해 두 차례의 핵실험 이후 국방 분야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ICBM에 대해서도 마감 단계라고 밝히면서, 이제 경제 분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한데요.
정세현 : '동방의 핵 강국'이라면서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확인했죠. 그리고 ICBM 이야기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한미 연합 군사훈련 시작인 2월 말이나 3월 초에 발사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입니다.
그동안 북한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한미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해 이른바 '말폭탄'을 쏟아 내긴 하지만, 실제로 상대방의 물리적 대응을 높일 수 있는 조치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분명해지고, 이를 통해 미러, 미중 관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행동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질 경우 북한이 이 틈새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 협상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ICBM 발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 지난해 2월 7일 북한이 쏘아올린 광명성 4호 ⓒAP=연합뉴스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라는 구호가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 좀 주목이 되는데요. 이건 결국 북한 지도부가 국제 제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력 갱생'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힙니다.
그동안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 이른바 '사고'를 치더라도 중국이 북한의 뒤를 봐줬기 때문에 북한의 실질 경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중 관계의 흐름으로 볼 때 중국이 북한의 이런 행동을 언제까지 용인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북한도 이러한 북중 관계의 흐름을 반영한 듯, 관영 매체에서 김 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세계 각국 정상들을 소개하면서 올해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불안해하고 견제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올해 ICBM을 발사하면 중국이 미국처럼 제재를 선도하는 것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분명 북한에 대한 태도는 예전과 달라질 겁니다. 안그래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북한의 행동이 이를 더 강하게 만드는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북한의 행태를 사실상 눈감아주고 접경 지역에서의 각종 무역을 용인했던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설사 이러한 상황이 오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리 '자력자강' 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예방주사'같은 차원에서 말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올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만큼 북한 내부 사회가 부패한 상황이라고 봐야 할까요?
정세현 :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부정부패와 함께 세도와 관료주의도 청산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건 60여년 전 상황과 비슷합니다.
지난 1955년 연말 김일성은 당 학교에서 '당 사업에서의 형식주의와 요령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습니다. 해당 강의에서 김일성은 자신에게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면 해마다 풍년인데 실상 현장에 나가보면 아니다, 왜 이렇게 형식적으로 보고를 하느냐고 질타합니다. 또 일선에 있는 간부들이, 자기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령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2017년, 김정은이 이 이야기를 똑같이 합니다. 그런데 조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사회주의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관료주의의 병폐가 등장했다는 것이었죠.
지금은 북한도 사회주의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시장 경제 원리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통해 시장이 활성화됐고 국제적인 제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수는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되면 사회주의 말기의 러시아,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뇌물을 받아 먹는 관료들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돈을 받고 허가해주는 식의 상황이 나타나게 됩니다. 작은 권력이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소위 '갑질'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중앙의 고위 관리보다 지방 실무자들의 갑질이 주민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와 닿습니다. 우리 속담에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주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는 갑질이 더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지난해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제1차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를 열어 이같은 행태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러한 갑질 때문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자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프레시안 : 이같은 관료들의 부패나 소위 '갑질'을 두고 평가가 엇갈립니다. 북한 체제가 썩어가는 증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구요. 한편으로는 이게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사회를 정비해가는 과정이라는 판단도 있습니다.
정세현 : 좀 살만해지고 의식주가 풍족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필요악' 같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경제가 조금 괜찮아지기 시작하니까 세도나 관료주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물론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걸 그대로 놔두면 안되니까 치료를 하거나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칫 부작용이 생겨서 사회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죠. 인민들이 불만을 가지면 통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인민들이 불만이 없어야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래야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방향성이 있는 지침을 내려야 하겠다고 판단, 초급당 위원장 회의를 개최한 것 같습니다.
사실 어느 사회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북한 사회의 경우 지시한 내용이 그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서 지시한 내용이 말단까지 그대로 내려가야 하는데 중간에 변질되거나 내용이 바뀝니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이른바 '현지 지도'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관료들의 형식적 업무 태도와 요령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통치술로 현지 지도가 시작됐는데 이게 어느새 북한의 대표 브랜드가 돼버린 겁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 마지막 부분에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다고 한 대목이 화제가 됐습니다.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는데요.
정세현 : 그런데 바로 그 부분으로부터 김정은의 우상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보천보전투로 우상화가 진행됐습니다. 이런 업적이 없는 김정일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으로 통치 정당성 및 우상화를 이어갔죠.
김정은 역시 우상화를 위한 일종의 '컨셉'이 필요한 겁니다. 이를 위해 이번에 자책성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북한 당국은 이 발언을 이용, 주민들로 하여금 '원수님(김정은)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원수님께서는 스스로 인민을 위해 할 일을 못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지도자가 어디 있나. 오히려 죄를 지은 것은 우리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을 펼칠 것 같습니다.
물론 김정은의 이번 자책성 표현은 전체적으로 보면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김정은 정권이 남한에서 일어난 촛불 집회를 보고 긴장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자책하는 것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나오게 된 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끌어낸 남한 촛불 집회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정세현 :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실제 북한은 촛불집회를 보도하다가 나중에는 방송에서 주변의 높은 건물들을 지웠습니다. 그러다가 이마저도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북한은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내심 박 대통령이 마음에 안드는데 잘됐다 싶어서 보도를 많이 했죠. 그런데 상황을 계속 지켜보니 이러다가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보도를 줄인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북한 내에서 인민들의 봉기를 미화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사실 이번 한국의 촛불 집회와 민주주의는 소위 일당 독재를 하는 국가에게 굉장히 겁이 나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폭력이 아니라 축제와 같이 사람들이 모이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오면서 체제 저항 운동을 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우물쭈물하다 반기문에 뺏긴다
프레시안 : 오는 9일 임시국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야당은 사회·경제 분야에서 이른바 '민생·개혁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인데요.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정세현 : 올해 연말까지 배치하기로 돼 있던 사드가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로 한 때 5월 말까지로 앞당겨졌는데요.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서, 국가안보실장이나 기존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해왔던 식으로 하자고 밀어 붙이고 있는 양상입니다. 더군다나 대통령 권한 대행인 황교안 총리는 북한의 위협을 이용한 통치가 워낙 몸에 배어있는 인물이라 사드를 빨리 매듭지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드 배치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니 배치를 반대하거나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은 경우도 있더군요. 이건 적어도 지금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드의 조속 배치는 안 된다는 여론이 모아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야당은 이 숫자를 가지고 정부를 압박해 들어가야 합니다. 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사드 배치를 다음 정부로 넘기자고 했으면 이걸 뒷받침해줘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금처럼 더민주의 지지율이 높을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사드 배치와 같은 국가의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더민주가 집권을 하고 싶다면,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 여론 핑계를 대서라도 차기 정부로 이월하자거나 배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추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폐기해야 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드는 왜 그렇게 못합니까? 위안부 합의는 상대가 일본이고, 사드보다 국민적 공분이 큰 사안이라 그런겁니까? 사드 배치는 미국의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겁니까?
사드가 한미 동맹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지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건 논리적으로 심한 비약입니다.
프레시안 : 어떻게 보면 남북관계나 대외 문제, 안보 분야에 대해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제대로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정세현 :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안보, 경제가 삼위일체로 연결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남북관계에 너무 신경 쓰다가 안보를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남북관계와 안보를 '제로섬 게임'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둘은 얼마든지 '윈-윈'하도록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경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국가의 신용 등급이 내려갑니다. 이걸 흔히 '코리아 리스크' 라고 하죠.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가 남북관계입니다.
또 안보와 국방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남북관계는 완전히 끊어버리고 군사력만 키우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다고 남한의 안보가 보장됩니까? 우리가 군사력을 키우면 북한도 여기에 대응합니다. 이렇게 남북이 군비 경쟁으로 가게 되면 남한의 예산에서 경제나 사회 쪽에 투자할 수 있는 양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국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보라는 개념은 피스 키핑(Peace Keeping), 즉 평화를 지키는 것과 피스 메이킹(Peace Making), 평화를 만드는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 덩어리로 구성돼있습니다. 방위는 방위대로 튼튼하게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방위에, 즉 국방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겁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성장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2차 포럼'에서 '강한 안보, 튼튼한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공식 블로그
남한이 북한에 쌀과 비료를 지원할 때 약 5000억 원 정도가 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 위기 정도가 현저히 내려갔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쌀과 비료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북한은 이것이 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즉, 군사적 위기 지수를 높이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겁니다. 만약 북한이 군사적 위기 상황을 조성하면 쌀과 비료가 올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확실히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당시 남한 정부가 국방비를 삭감하지도 않았습니다. 국방 예산은 평상시대로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 국방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재미있는 여론 조사가 하나 있었는데요. 대선 주자 지지율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보다 높은데 북핵 정책에서는 반 전 총장이 더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정세현 :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섀도우 캐비닛(예정 내각)'까지 언급했다면, 핵 문제도 어떻게 해결할지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합니다.
일단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중지 혹은 축소와 북한의 핵 동결을 맞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합동 훈련을 중지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미 양국 군 사이에 복잡한 먹이 사슬이 형성돼있고 여기에 방산업체까지 얽혀 있습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규모를 축소하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실제 한미 양국은 1992년 당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팀스피릿'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전례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서 동의를 받아 낸 겁니다. 이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핵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마중물은 있어야 합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바꾸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이걸 최종 목표로 하고, 일단은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작은 이 정도로 하고 결국 북핵 해결로 나아가겠다고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표를 줄 것 아닙니까? 소위 '안티(Anti) 박근혜' 정서에만 기대서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핵 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축소 내지 일시 중단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먼저 치고 나오면 다른 후보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어젠다 선점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먼저 치고 나오지 않으면 상대가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혼돈의 시대, 박근혜를 뺀 '외교게임'이 시작됐다

시계 제로. 한반도뿐만이 아니다. 세계 질서 자체가 '불확실의 안개'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2017년을 전망하는 '열쇠 말'은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 노선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지만, 알고 보면 트럼프의 당선 자체가 '불확실성'의 결과다.
세계화의 그늘에서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실에 대한 불만'의 물결이 영국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다시 유럽으로, 아시아로 번지고 있다. '향수에 사로잡힌 민족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으로 흩어지고 있다. 과연 이 안개는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중러 삼각관계가 변할까?
동아시아 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미중러 삼각관계가 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 정책을 바꿀 의향을 내비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고, 트럼프 정부를 기다린다. 미러 관계가 좋아지면, 트럼프 정부는 미중관계에서 훨씬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미중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하면서,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불확실성을 더욱 높여서, 선택의 여지를 넓히는 전략이다. 알고 보면 외교는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고, 트럼프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물론 삼각관계의 외교 게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적으로 미러 관계가 복잡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할 때 미러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현재의 시점은 최악이다. 미국의 전략실패도 있지만, 푸틴 정부의 공격적 민족주의 탓도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으면서 양국은 충돌했다. 러시아는 저유가와 구조개혁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국내의 위기를 민족주의적 위신을 추구하면서 벗어나고자 했다. 트럼프 정부가 과연 우크라이나 문제를 비롯해 러시아 제재 완화, 시리아 사태 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 등을 러시아와 타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지난 2013년 6월 17일(현지 시각) 북아일랜드 에니스킬렌의 휴양단지 로크에른에서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 양자회담을 가진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동북아에서 사할린 가스관 연결사업(PNG)처럼 남북미러의 4자 협력 가능성이 있지만, 극동에서의 미러 관계는 유럽에서의 미러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러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개선의 움직임은 있겠지만, 과연 1990년대 중반의 미러 협력 관계를 재구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너무 많고, 악화의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미중러 삼각관계의 변화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시아 카드가 질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여전히 미중 관계가 중요하다. 미중 관계는 당분간 재조정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에 대한 의지와 미중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 사이에서 출렁거릴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대결의 완화, '하나의 중국' 원칙의 변화, 혹은 무역 분쟁의 가능성 모두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20세기 미국은 중국을 미소 관계의 협상카드로 활용했다. 21세기 미국은 이제 러시아를 미중 관계의 협상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20세기 미중소 삼각관계는 세계적인 데탕트를 가져왔다. 21세기 미중러 삼각관계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높인다. 내용을 예측할 수 없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요동치고 있음은 확실하다.
미국의 복잡한 동맹관계의 재조정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국내적 요구가 존재했다. 어떤 식으로든 동맹국들과의 안보비용 분담에 대한 재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연 트럼프 정부가 분담구조를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은 유럽 국가들이다. 유럽 국가들도 형편이 좋지 않다.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화의 그늘이 만든 역습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이 안보부담을 얼마나 떠안을지 의문이다.
ISIS 세력이 퇴조하고 있으나, 당분간 무차별적인 테러는 증가할 것이다. 시리아 사태의 출구를 찾는 일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공동 대응할 현안이다. 중동의 유동성도 여전하다. 테러로 흔들거리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을 몰아붙이기도 어렵다. 터키는 미국에게 언제나 중동의 교두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시아도 복잡하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부는 이미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선언했고,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도 흔들거리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차이나에서 미얀마까지 소위 '아시아 귀환' 정책으로 묶어 놓은 국가들을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동남아시아에서 동맹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려 하지만, 오히려 동맹국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를 고립적으로 보면 안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안보부담 재조정을 어떻게 추진할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한미일 삼각관계를 제도화하려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 미일 관계의 공고함은 한국 외교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지켜보겠다는 북한
북한의 신년사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외적 불확실성을 반영해서 이미 밝힌 원칙을 재확인했다.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시화할 때까지, 그리고 한국의 정치 상황이 구체화될 때까지 북한은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두 번의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추가실험의 기술적 필요는 높지 않다. 운반수단의 성능개량이나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표준화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국제적 제재 상황에서 국내경제의 실험도 확대할 것이다. 북한의 기업관리 제도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포전담당제를 비롯한 농업정책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금컵 종합 식료품공장'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형태의 기업가도 늘어날 것이다. 제재의 영향으로 혁신기업의 산업 분야는 제한적이겠지만, 소비나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대외정책 역시 주변 환경이 불확실한 만큼 유동적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러시아 카드의 효용성은 높아졌다. 러시아카드는 북중 관계의 선택지를 높이는 전통적 역할에서 이제는 북미 관계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북중 관계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2017년은 그동안 물밑에서 조용하게 관계를 재조정하고자 했던 북중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물 위로 형태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북중 양국 모두 정세가 불확실한 만큼, 관계를 유지하고 확대할 전략적 필요가 높아졌다.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치 앞이 캄캄한 우리는 주변 환경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러나 안개는 국내정치만 드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안개야 시간이 흐르면 걷힐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안개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은 빠르게 움직이고, 진폭도 클 것이다.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발밑이라도 가시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탄핵 국면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하고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우리를 둘러싼 질서가 너무 불확실해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말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우선적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 남북관계가 안정되어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둘째,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다. 양자택일은 언제나 악마의 선물이다. 남북관계에서, 북핵문제에서, 혹은 한미 동맹에서 낡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제3의 대안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외교적 능력이다.
셋째, 외교안보는 언제나 국내에서 시작된다.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올바른 출구를 찾을 수 있고, 경제가 살아야 여유가 있고,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지면 어떤 대외적 위기도 헤쳐갈 수 있다. 물론 초당적 협력이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어려운 줄 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추진해 왔던 '내용 없는 형식적인 협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합의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급변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응하면 망한다. 여전히 색깔론을 제기하는 인사들은 한심하고, 색깔론에 포박당해 과거처럼 대응하는 야권도 애처롭다. 지금은 이념놀음을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면서, 하루 이틀이 아니라 먼 장래를 보는 '새롭게 담대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