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박근혜는 최태민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센서티브하냐?”

일취월장7 2016. 12. 9. 11:06


“박근혜는 최태민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센서티브하냐?”

인명진 목사(사진)는 난파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그는 새누리당이 소생할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인 목사는 국회의 탄핵 절차와 별도로 박 대통령 위헌 확인 헌법소원과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대통령 퇴진을 실제화하자는 뜻이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16년 12월 08일 목요일 제481호


인명진 목사는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꼽힌다. 최근 친박과 비박 중진 6인 회의에서 난파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이름이 거명되었다. 여권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그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2007년 이명박·박근혜 대선 후보 경선 검증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때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이기도 한 인명진 목사를 11월24일 만났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 및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청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국회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데 별도로 헌법소원과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이유는?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될지도 불분명한 상태라서 시민단체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퇴진을 실제화하자는 것이다. 또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일부 헌법재판관 임기 문제 등으로 혹시 절차가 미뤄질지 모른다. 박 대통령 직무를 중단시키고 나라를 정상적으로 끌어가게 해야 한다. 국민이 언제까지고 주말마다 촛불 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시사IN 조남진

사퇴를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 뒤에 누가 있다고 보나?



차라리 정말 누가 나라를 생각해서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제대로 민심을 전달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니까 제대로 보필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과거에도 소통이 안 됐지만 이번 최순실 사건을 보니 더욱 심각해졌다. 자기들 잘못을 숨기려고 뒤에 숨어서 박 대통령을 앞세워 무모하게 국민과 정면 대결하려고 하는데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쩌려고 이러는지 걱정이다.

그게 누구라고 보나?

나는 이미 2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이 났을 때 그 배후가 김기춘씨와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라며 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에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 본인은 부인하지만 새누리당 안팎의 많은 사람이 김기춘씨를 지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김기춘 같은 사람의 조언을 받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 김기춘 전 실장은 “나는 최순실을 모른다. 무능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라고 부인하던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다. 누가 그 말을 믿겠나. 나는 김기춘 전 실장을 포함해 박 대통령을 옹립했던 소위 원로 7인회 멤버들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민한테 자기들을 믿고 박 대통령을 지지해달라고 했던 분들 아닌가. 그럼 이제라도 나와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해야지 왜 대통령과 비밀리에 얘기하는가. 7인회가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성명도 내고 그래야 책임 있는 자세 아닌가.


ⓒ연합뉴스
김기춘 전 비서실장(뒤)은 사퇴를 거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 사퇴를 공개 촉구했다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나?



인터넷 SNS 같은 데서 나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했다. 마치 유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공포를 느꼈다. 여권에 있는 사람들이 내 안위를 걱정해줄 정도였다. 그때마다 얘기했다. 내가 박 대통령 아버지하고도 평생을 싸운 사람인데 무엇을 무서워하겠나. 내가 잘못 말한 게 뭐가 있나. 당시 박근혜 대통령한테 아무 말도 못하고 찬양 일색이던 사람들이 요새는 돌아서서 비판하는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 하는 비판의 10분의 1만 했어도 박 대통령이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2년 전 최순실씨의 존재를 알았는가?

최순실씨가 뒤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정윤회씨 정도는 파악했다. 내가 2007년에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할 때 대선 경선 후보 검증을 하면서 자료를 보니까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었다. 가령 박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최태민씨의 사위 정윤회씨가 비서실장을 맡았다. 정치적으로 관여한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보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았던 건 대통령이 한 일을 보면 여러모로 징조가 이상하다, 뭔가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이 보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2007년 대선 후보 검증위원장 시절 조사 결과 ‘최태민 목사’의 정확한 신분이 뭐였나?

목사라는 것은 확실히 사기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목사가 된 사람이 아니라 자칭 목사라고 불렀다. 최태민씨가 목사가 되기 전에 영세교를 만든 것까지 확인했다.


ⓒ연합뉴스
11월24일 인명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원 및 직무정지 가처분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시 대선 후보 검증위원장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관계도 물었는데?



요즘 언론에 나오는 최태민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은 다 했다. 같은 당에서 후보 검증하는 것이라서 공격보다는 해명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정제된 질문을 했다. 그런데도 박 후보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가지고 질문했는데, 가령 유신 시절 대통령 공보비서관이던 선우련씨가 1977년 9월20일자 비망록에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를 거세하라고 지시했다”라고 쓴 자료를 보여주면서 물었다. 박 후보는 “아버지가 검찰도 중앙정보부도 아닌 일개 비서관에게 그런 지시를 했을 리가 없다”라고 부인해버렸다. “박 후보께서 최태민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센서티브(민감)하냐?”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 후로도 늘 꺼림칙했다.

뭐가 꺼림칙했는가?

증거가 있는 것은 인정을 해야 신뢰감을 줄 것 아닌가. “내가 나이가 좀 어려서 잘 몰랐고 또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 경황이 없어 최태민 목사와 그렇게 되었던 거 같다” 같은 답변이라도 했더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부인하니까 “내가 보기에 박 후보가 최씨 일가와 악연인데, 이게 계속해서 이어지면 인생의 큰 짐이 되겠다. 그리고 박 후보가 나라를 만드는 권력을 갖게 되면 나라도 참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겠다. 불행해질 수 있을 거 같다”라는 얘기를 해줬다.

새누리당 중진 의원 모임에서는 인 목사를 유력한 비대위원장 후보로 꼽던데?

무슨 일만 생기면 왜 허락도 안 받고 내 이름을 자꾸 올리는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솔직히 현재 새누리당이 비대위를 만들고 누구한테든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주세요” 할 수 있는 상황만 되어도 상태가 꽤 괜찮은 경우다. 이미 실기했다. 남은 것은 당을 나누는 일밖에 없다. 분당하는데 들어가 얼쩡거리다가 벼락 맞을 일 있나.

분당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 당에 비대위원장이 들어간들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비대위원장이 쓸 수 있는 주요한 카드가 대통령 탄핵이다. 국민들 눈에 “새누리가 탄핵에 앞장서? 달라졌네”라고 비치자면, 사실은 당이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고, 탄핵을 무기로 대통령과 담판을 할 수도 있다. 이 카드를 김무성 전 대표가 이미 써버렸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에 탄핵 반대가 상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탄핵 얘기를 했다는 것은 뭘 뜻하겠나. 탄핵을 기준으로 당을 가르자는 것이다. 분당하자고 마음을 먹은 거라 분당이 안 되는 것도 이상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용태 의원 등 선도 탈당파들도 있다.

새누리당 내분은 분당으로 정리될 것이다. 친박 중심으로 당에 남고, 나간 사람들은 제3지대에서 개헌을 고리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려 하지 않겠나. 제3지대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보는 사람들이 뭉칠 것이다. 정치적으로 매우 흥미 있는 지대이므로 소위 잠룡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탄핵 카드를 쓴 김무성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어떻게 보나?


그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적도 없고, 새누리당에서 공식 후보로 거론한 적도 없는데 뭘 내려놓았다는 것인가. 김 전 대표가 분권형 개헌 얘기 하는 것을 봐라. 분권제에서는 대통령에게 아무 실권이 없기에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결국 본인이 개헌한 뒤 실권 총리를 하겠다는 얘기 아닌가. 김무성 전 대표는 내려놓은 게 없다.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치적인 속임수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어떻게 보나?

그 사람이 버틸수록 당은 갈라진다. 집 짓는 것도 어렵지만 부수는 것은 더 어렵다. 특히 새누리당 같은 경우는 더 그렇다. 그런데 이정현 대표 체제로 하루가 더 연장될수록 새누리당이 쉽게 무너져 나간다.

이정현 대표 본인의 판단에 따라 버티기에 들어간 것일까?

이정현 대표는 박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버틸수록 도움은커녕 오히려 박 대통령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이정현 대표를 끌어안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국을 풀어내는 문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정현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면 된다. 이정현 의원이 여당의 대표라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의 불행이고 코미디 아닌가.

탄핵 정국에서 야당의 대응을 어떻게 보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민심이 있다. 지금 대통령은 정신 놓고 있고, 여당은 싸움질만 하고 있는 판인데 이런 때일수록 야당이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국에 국민이 야당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신뢰감을 주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해 보인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 앞에 설계와 계획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 눈에는 야당이 권력만 잡으려고 행동하는 것으로 비친다. 상황에 따라서는 앞으로 박근혜나 여당에 대해 들었던 촛불이 야당을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되었다. 검찰 조사도 거부하고 있는데.

검찰과 특검이 수사해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다만 어떻게 물러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명예롭게 퇴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행하게 끌어내리면 상당히 많은 사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이 어려서 부모 여의고 더 불쌍해졌다는 지지층도 있는 판인데 이 사람들에게 한이 된다. 다음 정부에 계속 부담이 되고, 우리 사회의 주름살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되 한이 맺히지 않게 잘 물러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방법이 뭐라고 보나?


현실적으로 탄핵밖에 없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국정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치적 절충안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바로 헌법 개정이라고 본다.

개헌을 결부하자는 것인가?

대다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빨리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문제는 물러나게 만드는 방법이다. 탄핵 절차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내년 4월쯤에 국민투표를 할 수 있다. 국회 주도 헌법 개정 시안은 지금 다 만들어져 있고, 국회의원 200명 가까이가 개헌에 찬성한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선거 시기를 앞당기면 된다. 자연스럽게 박 대통령의 임기를 종식시킬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건 애국심이었다. 자기를 믿고 투표한 많은 국민, 그 가운데 특히 유세 때 시장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 식당에서 물 묻은 손으로 박 대통령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의 얼굴을 박 대통령이 떠올려야 한다. 그들이 느끼는 참담함, 허탈감을 깊이 생각해, 자기의 안위를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애국심을 발휘해 모든 걸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의 형사처분은 퇴임 뒤 별개로 책임질 문제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국방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내용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바대로 나올 것이다. 정당하고 떳떳하면 왜 필자도 공개하지 못하겠는가.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에 학생과 교사들까지 나서는 판국에 국정화 강행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어리석은 짓이다. 다음 정권에서 어떤 사람도 그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화는 쉽게 폐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 군사협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쉽게 폐기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인데 이 시국에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했으니 누가 책임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야당이라도 그걸 붙잡고 따지고 막아야 되는데 국방부 장관 데려다놓고 한두 마디 물어보고 그만뒀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권력이나 탐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보았나?


매번 나갔는데 이 현실에 대해서 슬픔과 자긍심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평생을 내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고생도 하고 매도 맞고 그렇게 살았는데 미래 세대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주려고 그랬는가 자괴심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저런 수준이지만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훌륭한 나라라는 자부심도 들었다. 헬조선이라고 하지만 집회에 나온 청년들의 눈에서 희망을 보았다.



김제동 "탄핵 부결되면 나부터 국회 담장을 넘겠다"

[현장] 국회 탄핵안 상정 전날 시국대토론회 사회자로 참여
허환주 기자      
2016.12.08 22:44:45


"국민의 명령이다. 새누리당은 탄핵을 가결하라. 금배지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마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방송인 김제동 씨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말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뿔테 안경에는 서리가 낀 지 오래였다. 그의 선창에 따라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도 함께 구호를 외쳤다. 

김제동 씨는 탄핵안 처리를 하루 앞둔 8일 늦은 저녁,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 -응답하라 국회 시국대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석했다. 그는 이날 사회자였지만 현 시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경도 밝혔다. 아래 그의 발언을 종합해 정리했다. 

▲김제동 씨. ⓒ프레시안(최형락)


"친박, 비박만 있지 '친 국민'은 없다" 

지금 상황에서도 '친박', '비박'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친 국민'은 하나도 없고, 친박, 비박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뽑은 국회의원인가. 국민이 뽑았다.  

조선일보는 얼마 전 사설을 통해 세월호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게 대통령 책임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에게 초헌법적인 책임을 묻고 있다고 했다. 그 사설을 쓴 사람에게 말하겠다. 헌법 30조를 보면 타인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헌법 34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하고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한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는 주권을 주장하는 모든 국민을 일컫는다. 국회가 입법기관이라면 국민은 권력 기관이다. 대통령은 이런 국가, 즉 국민을 보호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함께 비옷을 입고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 열심히 학교 다니고 군대 가고 결혼해서 세금 내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국가다. 그리고 대한의 국민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키는 게 사실상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모르는가. <조선>에서 반박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  
  
그런데, 내가 왜 모르냐고 말하면 뭐라 하는지 아는가. '전문대 나온 니가 뭘 아냐'. 그러면 나 역시 '전문대 나온 나도 안다'고 받아친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배운 게 아니라 많이 잘못 배웠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머리를 만지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하지 않나. 더구나 집에서 재택 근무까지 했다. 국가가, 즉 국민이 바다에서 죽어갈 때 거기에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머리를 올렸다. 국민 보호하라고 대통령 시키는 거고 경호원 붙이는 거고, 정상회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돈들을 우리 세금으로 지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걸 지키지 않은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게 초헌법적이라고 하는 신문에 묻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내가 법 어기지 않고 살 게 도와 달라" 

▲김제동 씨. ⓒ프레시안(최형락)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국회에 우리 뜻을 받들라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은 우리 뜻을 받들라고 뽑아놓은 것이다. 우리 목소리를 잘 들었으면 좋겠다. 한 발 더 나가 조용히 이야기할 때 잘 들었으면 좋겠다. 탄핵안 부결되면 나부터 (국회 담장을) 넘겠다. 제발 (내가) 법을 어기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우리 구호 한 번 외쳐보자. 

"박근혜는 우리와 함께 콜라를 마시자. 마셔보면 괜찮다. 내려와서 우리와 함께 마시자. 죄값을 치른 후에."

일부 신문에서는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공개해야 하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사관이 임금을 따라다니며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했다. 사생활도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후대에 평가를 받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태종도 매일 사냥하려 다니니, 사관이 이를 매일 같이 적었다고 한다. 그러자 어느 날 태종이 사관에게 '오늘 사냥 나간 거는 적지 마라'고 했다. 그러자 사관이 '태종이 오늘 사냥 나간 거는 적지 말라 했다'고 적었다. 그것이 진짜 언론이다. 

공인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세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CCTV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는 신뢰를 줘야 한다. 정작 CCTV는 대통령실에 설치해야 한다. 맞지 않나. 나는 세금 받고 살지 않기에 우리 집에는 안 된다.(웃음) 

"국민 편하게 하는 게 국회의원의 할 일" 

행사를 마무리할 시간이 된 듯하다. 꼼짝도 안 하던 의원들을 탄핵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촛불이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어떤 언론, 그리고 전문가는 '촛불은 그저 감정을 배설할 뿐이지,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어떠한 도움도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전문가는 전문적인 것을 알지만, 모든 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만나게 돼서 반가웠다. 비 중에서 가장 좋은 비는 함께 맞는 비다. 여기 비 맞고 나온 시민들의 마음이 어떤지, 새누리당 의원은 잘 헤아려주길 바란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목소리다. 잘 헤아려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도록 하는 게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한 번이라도 여기 나와서 겨울비를 맞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봤으면 좋겠다. 그 눈빛을 본다면 이들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뜻을 받드는 게 정치의 원래 뜻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뜻을 받들어 달라. 차타고 다니면서 보좌관이 문 열어줄 때, 양복 입을 때, 금배지를 달 때 마다, 여러분이 어떤 표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길 바란다. 국민이 살기 편하게 하는 게 국회의원이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구호 하나 외치겠다. 

"새누리가 해체해야 새누리가 열린다. 새누리가 해체해야 대한민국이 제자리에 설수 있다. 새누리당은 해체하라. 탄핵 후에." 

감사하다.  

▲김제동 씨. ⓒ프레시안(최형락)


탄핵 부결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기고] 박근혜 탄핵, '대한민국 조율' 첫 걸음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2016.12.09 10:59:03


희대의 꼭두각시 놀음으로 '최순실과 공동 정권'(차은택)을 차려 국정을 농단하고 신성한 민주공화국과 주권자의 존엄을 더럽힌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박근혜 이후 새 나라를 세우려는 촛불 시민들의 항쟁은 모든 이의 상상 그 이상의 것으로 힘차게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권자의 명령을 거역하고 민주공화국을 모욕, 능멸하는 그와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쉼없이 계속되고 있다.

1. 박근혜는 국민주권을 팔아넘긴, 매국적 꼭두각시 비선 정치 놀음은 물론,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올림머리'를 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사실만으로도 퇴진과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는 3차에 걸쳐 꼼수 담화를 하면서 주권자의 퇴진 명령을 거역했고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는 "탄핵안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며 기회를 엿보는 불통 장기전을 불사하고 있다. 


2. 이정현이 이끄는 새누리 친박 세력은 여전히 박근혜의 꼭두각시 친위대 역할을 사수하고 있다. 그들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거나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은 노셔도 돼요"라는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3. 기회주의적 태도로 왔다 갔다 하던 새누리 비박 세력은 촛불 항쟁 기세에 겁 먹어 막판에 탄핵 대열에 끼여들긴 했으나 탄핵 안에 세월호 사유를 빼라는 등 그들의 주제넘는 요구는 촛불 민심을 한참 배신하고 있다.  

4. 박근혜를 비선으로 지도하며 '공동 정권'을 굴려온 최순실은 국정조사 청문회에 "공항장애"(!)라는 황당한 이유를 대며 출석하지 않았다.(최순실은 불출석 사유로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오기해 빈축을 샀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청문회가 진행되었다. 


5.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권' 국정 농단의 핵심 주모자들인 우병우, 안종범,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은 재판 준비, 건강상 이유, 출석통지서 수령 거부, 사생활 침해 등 황당한 이유를 대며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6. 박근혜 정권 전반기 최고 실세였으며 박근혜 정권을 사실상 '제2기 유신정권'으로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김기춘은 청문회에서 박-최 씨의 국정농단과 자신의 직권남용 등 과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7.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권과 공모하면서 그들의 사익을 마음껏 향유하고 불평등-불공정 세습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해 온 재벌 총수들은 정경유착 검은 거래에서 대가성을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더구나 총수 다수가 그들의 공동집행위원회 전경련의 해체에 반대하는 데 당당하게 높히 손을 쳐들었다. 

지금 우리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은 위와 같이 파렴치한 행태들이 여전히, 버젓이 용인되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이런 행태들은 설사 박근혜 꼭두각시가 사라진다 해도 박근혜 이후 체제가 어떤 모습이 될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지난 시기 6월 항쟁이 만들어 낸 1987년의 전환점 이래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괴리, 노동 참여권과 지역자치 없는 민주주의, 야권의 분열, 3당 합당,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압축 시장화와 사회 공동체성의 해체 등으로 퇴행을 거듭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른바 '공고화'(consolidation) 과정 이상으로 그 핵심적 대목들에서 심각한 '결손화' (defectivication)의 확대, 심화 과정을 걸어 왔다. 한국 민주주의 결손화의 결말은 마침내 박근혜가 최순실 및 재벌에 이중으로 포획되고 그들과 공모, 공범자가 된 전대미문의 '국가 사유화 동맹'에 이르러 막장에 이른 것이다. 이 미증유의 게이트는 거꾸로 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대실패를 말함과 동시에 반성할 줄 모르는 한국 보수/수구주의의 대실패를 증거한 사건이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한국 보수/수구주의의 발본적 조율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보수지배연합은 박근혜를 버리며 지배 체제의 재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촛불 항쟁은 단지 박근혜의 퇴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구체제의 오랜 '과거 적폐'(!)를 털어내고 민주 역사의 새 장을 여는 것, 대한민국을 민주, 평등, 복지, 평화의 나라로 새롭게 '조율'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박근혜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다. 광장 정치와 의회 정치의 두 경로로 가고 있는 오늘의 시민혁명의 길에서 탄핵은 의회가 수행해야 할 최대 과제에 속한다. 이 중차대한 기본 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새누리 세력은 물론이고, 국회 자체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촛불 시민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막판에 탄핵 대열에 기어 들어온 새누리 비박 세력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고 있다. 또 이들과 '거래'하려 한 일부 야당(인사)의 태도 또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탄핵안의 내용에도 문제가 많다. 특히 박근혜의 '헌법 위배 행위' 속에 재벌 기업체들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서술함으로써 피해자로 설정해 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그간의 경과로 볼 때 국민의당 탄핵안이 반영된 것 같다. 이는 광장과 의회간의 긴장뿐만 아니라 의회-제도정당 내부의 긴장과 갈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먼 길도 첫걸음부터다. 박근혜 탄핵안은 기필코 가결되어야만 한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대한민국을 조율하라! 




강자의 뻔뻔함…촛불 축제는 슬펐다

[시민정치시평] 촛불,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밝혀라
황규성 한신대학교 연구교수      
2016.12.08 17:03:28


2016년 11월 12일 오후, 인파가 몰린 광화문역을 포기하고 한 정거장 걸어 올 요량으로 종로3가역에 내렸다. 낙원상가를 뒤로하고 종로에 접어든 순간, 자식뻘 되는 중고등학생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었다. 뜨거운 감격과 왠지 모를 죄책감이 눈시울에 맺혔다.

대학 1학년 때인 1987년 6월이 떠올랐다. 비교가 불가능했다. 화염병은 촛불로, 구호와 투쟁가는 풍자와 해학으로, 전투는 축제로 바뀌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는 티끌 하나 없었다. 세계적인 명품 축제, 문화 융성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축제는 슬펐다. 강자는 절제를 모르고 욕망을 채워 가는데, 평범한 시민들이 극도의 분노 앞에 세운 게 있었다. 비폭력과 질서였다. 강자의 뻔뻔함이 낳은 결과를 자제와 부끄러움으로 받아 안은 약자의 축제는 서글펐다. 가뜩이나 불평등한데, 도덕성마저도 형평성이 없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분노를 접어놓고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 모은 게 무언지 생각해 보았다. 최순실과 일당의 국정농단, 정유라의 부정 입학,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 국가권력과 재벌의 결탁, 국민으로서의 자괴감 등등. 그렇다.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었다. 이번 촛불시위의 특징은 바로 총체성이다.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넘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고!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일당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이 사태가 종결되는 게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슬픈 축제가 담고 있는 총체성의 한 조각을 이루는 것이 바로 불평등이다. 

한국의 불평등, 이것이 팩트다 

불평등의 대명사는 소득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소득은 자산, 주거, 교육, 문화, 건강의 불평등과 엉겨 붙고 있다. '가정의 소득과 자산 → (사)교육 → 대학진학 → 취업 → 소득과 자산'이라는 순환구조가 매듭 없는 사슬처럼 완성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불평등은 어느 한 지점에서 나아지더라도 전체는 남아있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약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생애의 각 분기점마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승자는 안정된 삶에 이르는 기회를 누린다. 반면에 일단 한 지점에서 낙오하게 된 패자는 다른 곳에서 만회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기 일쑤다. 정유라의 부정 입학에 모두가 분개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최소한의 평등인 기회 균등조차도 허물었다. 

생애 경로의 표준도 사라졌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도 공부해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고 열심히 일하면 고단한 몸을 뉘일 집 한 채에 자기 명패를 걸 수 있다는 건 이미 옛 얘기다. 안정적인 삶에 이르는 초대장은 골고루 뿌려지지 않는다. 물이 말라버린 개천에서 용은 고사하고 이무기도 나지 않는다. 취업해도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 20~30대 가구주가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38년 6개월이나 걸린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노~력'하면 된다고 현혹하지 말자.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자신의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부는 대물림되어 세습 자본주의라는 말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직격탄을 온 몸으로 맞은 집단은 "N포세대"인 청년들이다. 이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미루고 있다. 아니, 미룰 수밖에 없다. 이들의 포기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강요된 포기이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춘 21세기 한국의 청년이 불평등한 세상에 들이대는 고발장의 이름은 금수저·흙수저, 헬조선이다.  
고등학생이 꿈꾸는 직업 1위는 공무원,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라고 한다. 1위는 안정적 일자리, 2위는 자산소유를 희구하는 가치관을 반영한다. 10명 중 3명은 꿈이 없다고 한다.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체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일 것이다. 희망에도 격차가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팩트다. 

박근혜 정권의 직무 유기, 장기 파업, 배신의 정치 

국민의 삶이 점점 고단해지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을 무렵, 2012년 대선이 치러졌다. 박근혜 후보는 당시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걸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당선 이후 공약은 헌신짝이 되어 버렸다. 

경제민주화는 고사하고 권력과 재벌은 짬짜미를 서슴지 않았다. 부당 거래(청문회에서 재벌은 부인했지만)에 오간 돈에는 노동자의 피땀과 소비자가 지불한 상품 가격의 일부가 녹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안다. 그래서 시민들은 외친다. "재벌도 공범"이라고!

사회 정책도 마찬가지다. 고용률은 60% 초반대에 머물렀고, 청년 실업도 낮아지지 않았으며, 고용의 질도 나아지지 않았다. OECD 회원국에서 노인 빈곤이 압도적인 1위인데 기초연금 공약은 후퇴했다. 문화 정책은 최순실 일당의 먹잇감이었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불평등 해소가 국가의 일이건대 박근혜 정부는 4년 동안 직무 유기와 장기 파업은 물론이고 후진 기어를 넣고 달렸다. 국민에 대한 "배신의 정치"였다. 그 결과 국민 불행 시대, 국민 스트레스 시대가 되었다. 주인인 국민은 국회라는 마름을 통해 머슴인 대통령을 이제는 해고하려고 한다. 형법상 범죄성립 요건을 넘어 주인을 배신하고 자존감과 품위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과제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대통령 해고의 결말과 관계없이 수백만의 촛불이 알려준 것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항속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려고 평형수를 빼낸 것이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삶을 낫게 만들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한국호에 평형수를 채우는 것이다. 

어떻게?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어야 한다. 정치는 권력 다툼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개혁은 헌법이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다. 향후 정치에 관한 논의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냐, 권력구조는 어떻게 개편될 것이냐 같은 자잘한 정치에 그친다면 그야말로 후안무치다. 

넓은 의미의 정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시장경제 가운데 어떤 시장경제로 만들 것인가, 한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뜯어 고칠 것인가,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해 나갈 것인가 등등. 이 모든 것이 정치적 과제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적 과제라면 박근혜 정부 뿐 아니라 IMF 이후 들어선 정부 모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향후 몇 년 동안 우리는 후세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일 것이다. 우리의 자식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리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일부만 빨리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세상, 평등한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한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소박하지만 오래 타는 촛불을 들고! 



"근혜양, 아프지 않아요!"

[다산 칼럼] 국민의 선처마저 외면한 박근혜
성염 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2016.12.09 13:46:43



섣달그믐이 지고 밝아오는 달을 서양에서는 '야누스 달(January)'이라 한다. 대문(ianua)을 지키는 우리네 '문간대신'이 집 안팎을 한꺼번에 살피듯, 야누스신은 머리 하나에 얼굴 둘을 하고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내다보는 형상으로 숭배를 받아왔다. 한겨레 역사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올바로 새달(正月)을 맞으려면 우리도 병신년을 잘 털고 가야겠다.

헌법상 주권재민(主權在民)을 표방하는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이 나라의 주군이고 공무원은 신하다. 5년 임기로 최고위에 뽑아 앉힌 공무원이 사익을 위해 권력을 휘둘러 국정을 농단하였으니 삭탈관직은 의당하고, 그의 외교가 국운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면 더 중형에 처해야 마땅하다. 조선에서는 금부도사가 사약을 가져오면 죄인은 머리를 풀고 큰절을 한 후에 약사발을 비웠다.   

퇴임 후를 열심히 챙기면서   

연산군을 내몰고 중조반정을 주도한 세력들의 전횡을 보다 못해 '사림혁파'를 도모하다 기묘사화로 내몰린 조광조. 자기를 중용하고 총애했던 임금에게서 사약을 받고서 "선비로 태어나 이 세상에 살면서 믿는 것은 오직 임금의 마음뿐입니다. 국가의 병통이 모두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는 이원(利源)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맥을 새롭게 하여 무궁하도록 하고자 했을 따름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해명하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최근의 대국민담화에서 박근혜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고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라는 어투로 조광조를 거듭 흉내 냈지만, 최순실을 하수인으로 세워 설립해온 저 모든 단체들과 대기업 수탈이 퇴임 후 일신의 영달을 위한 장치임은 요새 시위대의 단상에 올라와 기염을 토하는 '초딩'(옛말로 '삼척동자')도 짐작하는 일인데…. 이 얘기는 특검에 맡기자.

필자가 현 정권에 장탄식한 까닭은 '친일파의 커밍아웃'에 있었다. 해방되자마자 미군정에 붙어 기득권 유지에 성공한 친일부역자들, 반공을 내세워 제주와 여순을 비롯 6·25 전후 국민 100만을 죽이고도 여전히 득세하는 반민족세력, 4·19혁명정부가 들어선 그날부터 5·16군사반란을 음모했고 10·26정변을 5·18군사반란으로 다시 뒤집어엎은 반민주집단! 그래도 몇 해 전까지는 낯부끄러운 시늉은 했다. 조상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면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당시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본인들은 애국자인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다시 권력을 쥐자 국민의 내장 깊숙이 숨어 자양분을 빨아오던 기생충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일제히 밖으로 기어나와 나라를 통째로 갉아먹는 형국을 보였다.

예컨대 박근혜의 대일 외교는, 필자의 짧은 실무경험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국익 도모라는 호혜원칙마저 깨뜨려, 헌법 84조에 명기된 "내란 또는 외환의 죄" 혐의를 받고도 남겠다. 배상금도 위로금도 아닌 후원금 몇 푼을 받고서 70년 넘게 나라의 체통이 걸렸던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단번에 합의했다. 그것도 합의문을 숨긴 채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외교의 근간으로 보면 한반도 안보에 가장 두려운 나라와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마저 서둘러 맺었다.   

외교는 국익을 외면해   

군대 다녀온 남자들 눈에는, 사드가 설치되는 성주는 중국의 장거리미사일 공격에서 오로지 일본(멀리는 미국)을 지켜주는 전략지점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 방어를 포기하면서까지! 북한의 자동붕괴로 '통일 대박'을 노린다면서도 언제 붕괴될지 모를 북한 영토를 국군이 접수하게 만들 전시작전통제권을 마다했다, 미군이 돌려주겠다는데도! 딴 나라가 우리 영토 절반을 점령하더라도 수수방관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니 중등학교 국정교과서 단일화는, 그런 사태에 국민이 눈감게 만들려는 술수로 보일 밖에!

서기 42년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사로잡힌 카이키나 파이투스가 로마로 압송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 근위대장이 단검을 들고 찾아왔다. 비록 역적이지만 참수당하는 욕을 보지 말고 자살하라는 선처였다. 검을 쥐고 벌벌 떨던 남편의 손에서 부인이 칼을 빼앗았다. "정숙한 아리아는 자기 가슴을 찌르고 칼을 뽑아 남편에게 건네며 한마디 남겼다. '아프지 않아요, 파이투스(non dolet, Paete)!'" 남편이 어명을 어겨 멸문의 화를 입지 않을까 여자는 두려웠다.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전하는 일화다.  

이미 식물 정권으로 전락한 박근혜가 기득권 세력에게도 용도 폐기되었음은 보수 언론들이 먼저 내비쳤다. 광화문 광장에서 내려진 국민의 교시를 보고 "근혜양, 아프지 않아요!"라는 전갈을 담아 청와대에 은장도를 서둘러 보낸 것도 보수 언론이었다. 딸한테마저 부모의 비운이 닥친다면 모두에게 역겨운 일이어서 그래도 국민이 베푼 선처마저 끝내 외면당했다.



찬성 234표, '탄핵'은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됐다

비선실세 의혹부터 탄핵 가결까지…이제 헌재 결론에 주목

조유빈 기자 ㅣ you@sisapress.com | 승인 2016.12.09(금) 16:10:58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투표수 299표 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됐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이 정지됐으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299명이 투표에 참가해 234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56표였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기권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9일 오후 3시23분쯤 투표에 들어가 시작한 지 30분만인 3시53분에 종료돼 개표에 들어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두 번째다.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가 쥐게 됐다.​ 

 

탄핵의 서막은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로 열렸다. 이른바 비선 실세 의혹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세계일보는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보도 직후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은 세계일보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년 뒤인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떠오르자, 당시 세계일보가 확보한 문건 속에 비선 실세로 최순실씨가 지목된 내용이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번 탄핵안에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 탄압 의혹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작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었지만 그 끝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마무리 된 셈이다.

 

 

#1. 미르․K스포츠 재단, 그리고 최순실의 등장

 

미르재단은 2015년 10월27일 설립됐다. 그리고 19개 대기업에서 486억원이 모금됐다. 2016년 1월13일 미르재단과 똑같은 정관과 조직을 가진 K스포츠재단이 설립됐다. 이곳도 288억원을 대기업에서 모금했다. TV조선이 먼저 재단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7월26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재단에 돈을 내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최초로 보도했다. 9월20일 한겨레신문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꺼내들었다. 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비선 실세 의혹이 본격적으로 떠올랐다. 이때는 이미 최순실씨가 독일로 출국한 이후였다.

 

9월21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씨가 우병우 민정수석-윤전추 청와대 행정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순실씨의 딸과 관련한 의혹들도 속속 등장했다. 9월27일 한겨레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을 제기했고, 이틀 뒤인 29일에는 이화여대 학칙 개정 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날 시민단체는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파행을 겪었다. 새누리당은 7월부터 제기된 비선실세 의혹을 ‘정치공세’로 몰아가면서 최순실씨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반대했고 결국 국감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 시사저널 박정훈

ⓒ 시사저널 박정훈


10월18일 경향신문은 K스포츠재단이 대기업에게 최순실 독일 비밀회사 ‘비덱’에 80억원을 투자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놨다. K스포츠재단이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원으로 추정되는 자금을 지원받아 최씨 일가 회사에 운영을 맡기려 한 것이다. 비덱의 주주 명부에는 최순실씨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 최씨의 딸인 정유라 두 명의 이름만 올라있었다.

 

10월19일에는 정유라씨에게 입시 및 학사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사임했다. 최 전 총장은 사임하며 “최근 체육특기자와 관련해 입시와 학사관리에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화여대는 12월2일 정유라씨를 퇴학 처리하면서 입학을 취소했으며, 특혜를 준 전 입학처장 등 5명을 중징계하기로 결정했다. 최경희 전 총장의 징계는 검찰 수사가 종료되면 수사 결과에 따라 결정할 예정이다.

 

 

#2. 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 “최순실이 No.1?”

 

본격적인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순실씨의 측근인 고영태씨의 인터뷰가 시발점이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고치기를 즐겨한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백미는 10월24일 최순실씨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플릿 PC를 JTBC가 입수해 보도한 장면이다. JTBC는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를 미리 열람·수정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사실로 확인되는 보도들이 하나 둘 터져 나오자 청와대가 움직였다. 박 대통령은 10월25일 첫 번째 대국민담화를 가졌다. 녹화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최씨의 ‘연설문개입’을 인정했다. 

 

10월27일 검찰은 최순실씨 의혹과 관련해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설치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수본을 꾸렸고, 김수남 검찰총장은 “철저히 수사해 신속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10월29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의 청와대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청와대는 국가기밀을 이유로 대며 거부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국정농단 파문 이후 첫 주말인 10월29일, 민심이 들끓었다. 청소년단체인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한국청년연대도 ‘박근혜 하야하라 분노의 행진’을 진행했다. ‘모이자!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집회’의 이름으로 열린 제1차 촛불집회에는 3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10월30일 박 대통령은 인적쇄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의 사표를 수리했다. 같은 날 청와대 2차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은 사무실 진입대신 요청한 자료가 든 상자 7개 이상을 임의제출 받았다. 

 

11월3일 검찰은 10월30일 입국한 최순실씨를 구속했다. 다음날인 4일,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조사와 특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1월 1주차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5%를 기록했다.

 

 

#3. 담화 발표할 때마다 폭발하는 민심

 

2차 담화 이후 민심은 더욱 폭발했다. 11월5일 2차 촛불집회에서는 20만명, 11월12일 열린 3차 촛불집회에서는 100만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11월15일에는 박 대통령이 유력 대선 후보 시절인 2011년 초부터 차움 의원을 이용하면서 ‘길라임’이라는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존중해달라”고 발언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11월17일 일명 ‘최순실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수사 인력만 최대 65명, 총 105명 규모의 ‘슈퍼특검’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재석의원 220명 가운데 찬성 196명, 반대 10명, 기권 14명으로 가결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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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에는 전국에서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4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11월20일 검찰은 최순실씨 등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대통령 공모’ 부분을 적시하고 대통령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의 모든 범죄 혐의에 대통령도 함께 가담했다는 뜻이었다. 2015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 측근을 KT에 채용하도록 지시한 사실과,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최순실씨 운영 광고회사 자료를 현대차에 전달해 납품을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11월22일에는 비아그라가 등장했다. 비아그라를 포함한 여러 의약품을 청와대가 구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비아그라를 고산병 치료제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11월26일 서울에서 150만명이 모인 대규모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폭발한 민심을 보여줬지만 11월28일 유영하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대면조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이미 사의를 표명했던 김현웅 법무장관의 사표가 수리됐고,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는 반려됐다.

 

11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3차 대국민담화를 가졌다.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큰 잘못이며,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가 논의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11월30일 일명 ‘슈퍼특검’의 특검으로 박영수 변호사가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은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며 항명해 좌천됐던 윤석열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임명했고 특검보 4인과 파견검사 명단까지 확정되면서 사실상 출항단계에 진입했다.

 

 

#4. 탄핵 발의와 청문회, 그리고 가결

 

12월1일 박 대통령은 모처럼 외출했다. 11월30일 화재로 점포 800여 곳이 전소되는 대형 피해를 입은 대구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했지만 오히려 지탄 받았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자리를 떠났는데 여기에 배신감을 느낀 상인들과 박 대통령 지지자 간의 언쟁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 청와대 측에서 “소방호스를 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12월3일 야3당 원내대표 발의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발의에 참여한 인원은 민주당 121명, 국민의당 38명, 정의당 6명, 무소속 6명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한 주 앞둔 12월3일에는 역대 최고 규모의 촛불이 밝혀졌다. 전국에서 232만명이 모인 6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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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재벌그룹 총수 9명이 한꺼번에 출석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관련해 “청와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 받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세월호 7시간 의혹’ 중 90분에 관해 보도했다.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에 할애했다는 내용이었다. 

 

12월8~9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청와대 뿐 아니라 국회에 대한 압박도 시작했다. 여야도 각자의 표계산과 표단속으로 분주한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12월9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