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탄핵, 분당, 개헌 모든 가능성이 열렸다 - 하늘의 섭리를 믿었던 ‘수필가 박근혜’

일취월장7 2016. 12. 6. 09:48


탄핵, 분당, 개헌 모든 가능성이 열렸다

역풍을 우려해 탄핵을 주저했던 야당이 탄핵을 힘 있게 추진하고 있다. 민심의 변화 때문이다. 탄핵안 투표 이후 새누리당 분당 움직임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때부터 개헌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2월 06일 화요일 제481호


단순해졌다. 탄핵 이외의 선택지는 제거됐다. 이제 박근혜 게이트의 결말은 탄핵 가결이냐 부결이냐로 좁혀졌다. 검찰은 최순실씨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주범’으로 적시했다. 야 3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탄핵 추진에 합의했다. 예상 시점도 정기국회 회기 내인 12월2일 또는 9일로 멀지 않다.

새누리당의 분열도 시작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은 11월22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다음 날인 23일에는 정두언 전 의원 등 원외 당협위원장 8명이 탈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11월2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 비박계를 결집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에 최순실씨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밝힌 1차 대국민 사과가 10월25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탄핵’은 야권에서 금기어였다. 이후 사태 전개 과정에서도 탄핵을 먼저 언급한 쪽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였다. 야권은 ‘거국내각과 2선 후퇴’ ‘하야’ 등을 요구하며 탄핵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전선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탄핵은 야 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를 아우르는 반(反)박근혜 대오의 단일안이 되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민중총궐기대회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민심은 탄핵 찬성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탄핵 외의 다른 변수를 모두 제거한 주역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2차 사과 발표(11월4일) 나흘 후인 11월8일, 거국내각 구성과 2선 후퇴를 요구받던 박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는 것은 헌법에 나오는 표현으로, 사실상 현상 유지, 즉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 야당이 주장하던 2선 후퇴의 핵심은 인사권, 그중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권이었다. 대통령이 검찰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2선 퇴진과 거국내각이라는 타협안은 소멸했다.

같은 이유로, 자진 하야도 대통령이 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통령이 국정 정상화나 보수 정당 부활과 같은 공적 가치를 고려한다는 징후는 없었고, ‘자기 보호’가 핵심 관심사라는 것이 사태가 전개될수록 뚜렷해졌다. ‘자기 보호’를 위해서는 직을 반드시 유지해야 했다. 박근혜 청와대와 새누리 친박계는 정치적 해법을 모두 봉쇄한 후 “차라리 탄핵하라”고 나서는 농성전을 택했다.

야권이 11월 중순까지 탄핵 카드를 주저했던 이유의 핵심은 여론 지형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높지만 탄핵이라는 고도의 결단에까지 여론 합의가 된 상황은 아니었다. 여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을 추진했다가 부결되는 날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야권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연합뉴스
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발표 모습. 이때 한 말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 딜레마를 풀어준 이도 박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정치적 해법을 내팽개치고 제도적 권한에 기대어 ‘농성전’을 벌이자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100만 인파를 기록했던 촛불집회는, 숨고르기 격이었던 11월19일 오히려 전국으로 확산되어 기세를 이어갔다. 11월 넷째 주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대통령 업무 수행 지지도는 4%로 역대 최저치를 또다시 고쳐 썼고, 새누리당도 역대 최저치인 12% 지지율로, 국민의당에도 뒤진 3당으로 추락했다(31쪽 상자 기사 참조).

여론 압박이 고조되면서, ‘농성’에 들어간 대통령만 제외하고 당·정·청이 동시에 흔들렸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게 11월29일까지 대면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또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의 ‘반란’으로 탄핵 명분이 두터워졌다. 주말 촛불의 기세를 확인할 때마다 새누리당은 휘청거렸고, 결국 탄핵 추진 선언이 새누리당 안에서 터져 나왔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나란히 사의를 표하면서 박 대통령의 ‘최종 방어선’마저 흔들렸다(박 대통령은 11월25일 최재경 민정수석에 대한 사표를 반려했다).

탄핵 주저하던 야당, 여론 힘입어 강공으로

무너진 권력 기반에서 터져 나오는 검찰 수사와 같은 결과물이 다시 반박근혜 여론을 공고하게 다졌다. 11월21~22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회의 탄핵 추진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78.4%였다. 대통령 거취를 묻는 질문에도 즉각 하야(40.2%), 일정을 예고한 퇴진(35.3%), 국회의 탄핵 추진(15.9%)을 합쳐, 응답자 중 91.4%가 하야 또는 탄핵에 찬성했다. 11월 말이 되자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쳐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공수가 뒤바뀌었다. 이제 야 3당은 탄핵을 추진하다가 설사 부결된다고 해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통령 퇴진이 국민적 합의가 된 만큼, 부결의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부결시킨 쪽이 지게 되었다. 이것이 청와대가 탄핵을 도발하던 11월 초순과의 결정적 차이다. 이제는 친박계가 “특검 수사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라며 시간 벌기에 나선다. 야 3당에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면, 이제 남은 변수는 새누리당 분열의 폭과 깊이다.

가장 깊은 단계의 분열은 분당(分黨) 수준의 대규모 탈당 사태다.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 인사들은 “탄핵에 찬성할 의원이 확인된 숫자만 40여 명이다”라고 말한다. 40명이라면 단숨에 ‘제4지대’를 꾸릴 만한 숫자다. 이 계산이 옳다면 기본 원료는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분당 수준의 집단행동은 의원들에게 꽤 큰 결단을 요구한다. 먼저 깃발을 들고 나섰다가 동료들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해체를 주장하며 선도 탈당한 김성식·정태근 당시 국회의원은 후속 탈당이 미풍에 그치면서 광야에서 고립됐다.

집단행동을 확실히 보장하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있거나, 특정 지역 기반과 같은 확실한 비빌 언덕이 있거나, 높은 결의를 공유하는 결사체가 있어야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등장한 국민의당은 대선 주자(안철수)와 지역 기반(호남)과 결사체(김한길계)를 어느 정도는 갖춘 덕에 더불어민주당의 중력을 벗어나는 ‘탈출 속도’를 내는 데 성공했다.

ⓒ연합뉴스
11월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현재 새누리당 비박계는 셋 다 어정쩡하다. 선도 탈당을 감행한 남경필 지사는 대선 주자로는 경량급이다. 탈당 후에도 비빌 언덕이 되어줄 지역 기반은 오히려 친박계가 보유하고 있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신뢰가 두터운 고도의 결사체로 보기는 어렵다.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여론 압박을 받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집단 탈당이 바로 발생하지는 않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인사들은 당권을 탈환하거나 적어도 ‘탈출 속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결정적 변곡점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게 탄핵 투표가 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탄핵 투표에서 당내 반박근혜 세력의 규모가 숫자로 드러나면, 그때는 집단행동을 조직하기가 더 쉽다.

개별 의원에게 집단 탈당은 대단한 도박이지만, 탄핵 찬성 투표는 부담이 덜하다. 탄핵 찬성파 새누리당 의원의 관점에서 보면, 탄핵이 부결되는 순간 이중으로 곤란한 처지가 된다. 반란 세력의 크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되므로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린다. 또한 분노한 여론이 새누리당 전체를 향해 폭발하면, 친박계 주류와 공멸할 위험이 있다. 더욱이 탄핵 투표는 무기명 투표다. 이래저래 탄핵 찬성파는 본심과 다르게 탄핵 반대에 투표할 압박이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 찬성표는 실제 탄핵 찬성파의 규모에 가깝게 나오리라는 관측이 많다.

친박계는 탄핵 투표 때 집단 퇴장할 수도

탄핵 최후 방어선인 친박계 일각에서는 탄핵 투표에서 집단 퇴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러면 본회의장에 남아 있는 자체로 찬성 의사를 공개하는, 사실상 공개 투표로 바뀐다. 탄핵 찬성파가 찬성투표를 하는 데 느낄 부담이 너무 적으니 최대한 부담을 얹어주겠다는 셈법이다.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이를 두고 “초헌법적 방식으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의견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매일같이 요동치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국면이지만, 여야 모두 탄핵안 가결을 예상하는 기류가 적지 않다. 새누리당의 탄핵 찬성파가 본심과 달리 투표할 유인이 크지 않아서다. 야 3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이 모두 탄핵 찬성표를 던진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는 새누리당 이탈표 28표가 필요하다. 돌발 변수를 감안해 40표가 안정권으로 거론된다. 다만 비상시국회의가 주장하는 “찬성파 40명”이라는 숫자가 신뢰할 만한지가 변수로 꼽힌다.

야 3당의 계획대로 12월2일이나 9일에 탄핵 투표가 실시되고, 거기서 탄핵 찬성이 200표를 넘긴다면, 그 이후는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넘어간다.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예측하기 어렵다. 잠복해 있지만 미묘한 이슈도 있다. 개헌이다. 대통령 퇴진에 고도로 집중된 현재 여론 지형에서는 함부로 개헌 논의를 꺼내기 어렵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낙인 찍혔다가는 분노의 또 다른 타깃이 될 수 있다. 개헌론자들도 우선은 탄핵 논의를 먼저 내세운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가정하면, 그 상태에서 가장 유리한 것은 대선 지지율 선두권을 형성한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탄핵 후 조기 대선’으로 가는 경로가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11월25일 수원 경기대에서 열린 시국대화에서 문 전 대표는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론을 경계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책임론을 물타기하며 정권 연장을 하겠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시도를 ‘꼼수’로 규정하면서 개헌론을 선제 차단했다.

현 구도를 타파하려 하는 세력들은 현상 변경의 동력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 때문에 개헌을 매개로 고리를 걸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개헌론을 들고나왔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개헌론자다.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학규·김종인 등 야권의 비(非)문재인 지도자 그룹도 개헌론자다. 개헌론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들끓는 민심에 답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만일 탄핵 이후 구도를 ‘개헌론=변화, 개헌 반대=변화 거부’로 끌고 갈 수 있다면, 개헌론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개헌론이 ‘정치인들끼리의 권력 나눠먹기 시도’로 비친다면 역풍에 노출된다. 들끓는 민심의 향방을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두 경로 모두가 열려 있다. 주로 비문재인 진영에서 활동해온 야권의 한 전략통은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세론에는 못 미치는 지지율로 섣불리 현상 유지를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에 휩쓸릴 수 있다. 지금 가진 자산으로, 꼭 개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 오히려 대세론으로 올라설 길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금태섭 "국회, 탄핵마저 제대로 못하면 끝이다"

[인터뷰] "박근혜, 탄핵 가결돼도 버티면 이기적인 행태"
곽재훈 기자    
2016.12.05 17:27:52


박근혜 대통령이 운명의 한 주를 맞았다. 야3당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오는 9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친다.

탄핵소추안 작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 중 하나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초선, 서울 강서갑)이다. 검사 출신인 금 의원은 "제가 기초를 잡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겸양했다. 탄핵소추안에 대한 '저자 직강'을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금 의원은 향후 특검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입증이라고 지적하고, 향후 탄핵을 가결시킨 이후에도 이와는 별개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동시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국회는 반드시 탄핵을 가결시켜야 한다고 금 의원은 강조했다. "국회가 탄핵마저 제대로 못한다면, 국민들의 분노를 무슨 명분으로 막겠나?"라고 그는 우려했다.

지난주 야권의 '분열' 단초가 됐던 '2일이냐 9일이냐'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2일파'였던 금 의원은 "당시에는 9일에 한다고 가결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다"며 "(다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230만 명이나 주말 촛불집회에 나와 주셔서, (9일) 가결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 의원은 왜 박 대통령의 '4월 자진 하야'가 아니라 '탄핵'이 최선의 해법인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장 공백과 혼란이 적은 것이 탄핵"이라며 "확실성의 측면" 등 4가지 이유를 들어 탄핵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약속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헌법에 보장된 법적 절차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다음은 금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탄핵 사유 차고 넘쳐…헌재, 최대한 빨리 결정 내릴 것"

프레시안 : 금 의원이 탄핵소추안 작성을 주도했다고 들었다. 역사에 남을 문서인데, 작성에 참여한 소감은? 

금태섭 : 제가 다 했다고 할 수는 없고, 체계를 잡고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 문제는 어떤 의견을 반영하느냐였다. 중간에 이런저런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진행 상황에도 관리가 필요해서 제가 기초를 잡고 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이미 사실상 끝났는데, 사법적으로 보면 무엇이 탄핵의 중점 사유가 되나? 

금태섭 : 헌법학자와 실무자들과 얘기했는데, 탄핵 사유는 넘치고 넘친다. 헌법상 거의 모든 조항과 원칙을 위반했다.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게 아니라, 기본적인 대의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의 원리의 문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틀렸다. 그래서 탄핵 사유를 찾는 데에 전혀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법적인 재판이니,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은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헌재 결정문을 보면, 당시 헌재는 '뇌물'을 특정했다. '대통령이 뇌물죄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탄핵의 사유가 된다'고 헌재는 봤다. 그래서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프레시안 : 만약 헌재에서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다면, 쟁점은 무엇이 될 것으로 보는가? 

금태섭 : 법적 쟁점보다는 사실관계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식이다. 때문에 그 사실관계 부분을 어떻게 심리해서 판단하느냐가 쟁점이 될 것 같다. 다만 형사재판은 유무죄 여부 판단뿐 아니라 형량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공소장 내용 하나 하나를 엄격히 증명해야 하는 반면,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 중대한가', 즉 '대통령을 파면시키면 국정 공백이 올 텐데, 그 공백을 감수할 만큼 위반이 중대하냐'를 주로 본다. 따라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본다.

프레시안 :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 있어서, 세월호 7시간이나 뇌물죄 부분을 넣으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있었다.

금태섭 : 특히 뇌물 부분에 대해 그런 걱정이 있는데, 사실 뇌물은 새로운 사실을 심리할 게 많지는 않다. 예를 들어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경 김창근 SK하이닉스 회장을 만났고, 이후 SK는 미르 재단 등에 수십 억 원을 냈다. 박 대통령과 김창근 회장이 만난 이후인 8월에 최태원 SK 회장이 사면된다. 대통령이 수십 억 원을 받았고 그 기업 총수가 사면됐다면 구체적 청탁이 없어도 그 자체를 뇌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태원 회장이 사면된 건 공식 문서에서 인정된 사실이다. 뇌물 부분은 그런 식으로, 이미 공식 확인된 사실 위주로 넣어서 추가적으로 많은 심리가 필요하지 않도록 했다.

세월호 '7시간' 부분은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이 직무유기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 일도 안 했고 해명도 없었다. 그 부분이 국민의 기본권 중 가장 근본인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데에는 큰 논란이 없을 것 같다. 다만 사실관계 심리가 길어지더라도, 앞서 말했듯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법률 위반이 중대하냐'라는 기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심리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세월호 부분은 그러면 7시간 동안 최순실 씨와 무슨 행동을 했다든가, 무슨 의료행위를 받았다든가 하는 의혹과는 별개로 '부작위에 의한 직무유기'로 탄핵 사유가 된다는 주장으로 이해하면 되나? 

금태섭 : 그렇다.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런 내용으로 소추안은 작성이 됐고, 이제 남은 것은 본회의에서 이 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230만 명이 촛불집회에 나오면서 결국 새누리당 비박계도 돌아섰고, 이에 따라 가결 전망이 훨씬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지난 주에 두 야당이 '2일에 해야 한다', '9일에 해야 한다'고 대립하면서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결과적인 평론일지는 몰라도,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1주일 차이가 그렇게 중대한 것이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금태섭 : 지금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가결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때(지난주) 시점에서 볼 때에는, 새누리당에서는 비박들이 많이 돌아섰고, 새누리당은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고, 청와대는 '야당도 합의하라'라고 하고 있었다. 이미 비박계들의 표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야권 일각에서도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한다고 하면 협의는 해 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애기도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저는 그때 가결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져 있었는데, 저희가 탄핵안 발의를 하면 (표결) 날짜가 정해지고, 그러면 그 사이에 꼭 주말 촛불집회가 아니라도 여의도에서 집회가 열린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 표시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100%까지는 아니라도, 가결 확률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또 그때 시점에서는, 지난 토요일(3일)은 서울 집중 집회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촛불집회에) 나오리라는 것은 저희 당도, 국민의당도, 새누리당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촛불집회에서 큰 '임팩트(충격)'가 없으면 비박계는 (탄핵 반대로) 돌아설 것이고, 박 대통령은 비박 의원들을 만날 것이고, 그러면 가결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고 봤다.

당시 국민의당은 '2일에 발의하면 안 된다'면서 (그 이유로) '가결 가능성이 없는데 왜 하느냐'고 했지만, 저는 그 다음 주로 넘어가면 (가결) 가능성이 더 없어지고 그러면 탄핵안 발의 자체를 못할 것이라고 봤다. 따라서 가결 가능성을 높이려면 (오히려) 발의를 일찍 해서,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비박계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봤다. 국민들이 (12월 2일 표결 전까지 여의도 등지로) 나와줄 것이라고 믿자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국민의당은 당시 '탄핵 반대 세력'으로 몰려서 억울해하기도 했는데, 그런 공격을 당하다 보니 '2일 탄핵 표결'을 주장하는 금 의원 같은 분들에 대해 '그럼 부결돼도 상관없다는 것이냐'고 공격하기도 했다.  

금태섭 : 국민의당이 '탄핵 반대'로 몰린 것은 저도 굉장히 억울하겠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탄핵에 반대했다고는 저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2일 표결'이 '부결도 상관없다'는 식이라는 주장은 전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여러 주째 백만 명 이상이 나와 평화 집회를 하는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분들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해 분노해 있지만, 제도권 정치 자체에 대한 신뢰 역시 굉장히 낮아져 있다. 그런데 탄핵안이 부결되면? 이게 무슨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유리하고,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 자체가 안 될 것이다. 입에 담기도 힘든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저도 지난 토요일 시위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청와대 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분들이 가려고 하실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막았다. 이건 국회나 제도권 정치가 뭔가는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평화 시위를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탄핵마저 제대로 못한다면 사람들을 무슨 명분으로 막겠나? 부결은 생각하기도 힘든 사태다.

프레시안 : 탄핵안이 부결되면 박 대통령은 2018년 2월까지 임기를 채우려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금태섭 : 대통령이 2017년까지 버틸지도 모른다는 건 한참 후의 문제고, 시민들의 분노가 어떻게 뻗어나갈지 모른다는 게 가장 위험하다. 무정부 상태가 올 수도 있다. 지금도 박 대통령은 민정수석 사표를 보류하고 있는 상태고, 법무장관은 사퇴했는데 후임 장관 임명도 못 하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간 것도 비판을 받는 등, 국정 운영이 전혀 안 되고 있지 않나. 그게 가장 큰 문제다. 

프레시안 : 아무튼 이제는 '9일 탄핵안 가결'이 야당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지난주에 금 의원이 '2일 가결'을 주장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박한철 현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1월 말까지고, 그러면 최대한 빨리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켜 헌재로 넘겨야 박 소장의 임기 중에 빠른 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9일 가결'이 됐으니, 헌재가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은 아닌가? 

금태섭 : 탄핵심판에 시일이 오래 걸릴 거라는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간단했던 반면 지금은 내용이 많다는 점 때문에 나오는 것 같다. 반면 그때는 탄핵심판이 역사상 처음이어서 절차 자체를 만들어야 했고 거기에 시간이 많이 들었다. 지금은 절차가 이미 나와 있다. 따라서 최선을 다한다면 박한철 소장 임기 전에 가능하지 않을까? 헌재는 밤을 새서라도 최단 기간 내에 하려고 할 것이라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왜 탄핵인가" 

프레시안 : 한때 야당 일각에서도 '대통령이 4월에 퇴진한다고 공언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는 했다. 탄핵소추안이 만에 하나 헌재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있고, 또 헌재 결정이 4월보다 늦은 시점이 될 경우도 있다면 그보다는 '4월 퇴진'이 더 낫지 않느냐는 취지였다. 이런 반론에 대해. '왜 탄핵이어야 하는지' 주장한다면?

금태섭 : 사실 원론적으로는 국회가 탄핵까지 발의하지 않아도, 국민이 물러나라고 하면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후유증이 덜 남는다. 그런데 대통령은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고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보였다.  

(첫째) '4월 퇴진'이라고 하지만, 그 동안 또 어떻게 말을 뒤집을지 알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은 본인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선 후퇴'도 청와대 주변에서 나온 얘기지, 대통령 본인이 말한 적은 없다. 어느 쪽을 믿느냐 하는 문제다. '협의해서 4월에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지금으로서는 탄핵이 답이다. 확실성의 측면이다.

(둘째) 또 탄핵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4월이 돼도 헌재 결정이 안 날 수 있다. 그러면 혼란이 더 길어진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부터 5개월을 더 가는 것이야말로 혼란이다. 박 대통령이 4월에 물러난다는 100%의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의 권한 행사도 막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외교적 문제가 생기고, 그에 대해 대통령과 (여야 합의) 총리의 생각이 다르기라도 하다면 극심한 혼란이 올 것이다, 박 대통령은 4월에 물러나기 전까지는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박 대통령이 하야하겠다고 했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그것을 안 하니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공백이 적고 혼란이 덜한 것이 탄핵이다. 탄핵을 하게 되면, 국회 가결 순간 법적으로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셋째) 또 국회가 협의를 하면 이정현 대표 등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도 국회 협의 과정의 당사자가 된다. 이들이 협의에 관여하고 의견을 내게 되면 극심한 혼란이 온다.

(넷째) 헌법재판관들의 생각까지는 모르겠지만, 국정 공백이 얼마나 길어지느냐 하는 것은 탄핵심판 국면에서는 100% 헌재에 달리게 된다. 그러면 헌재도 최선을 다해서 빨리 할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총리는 국정 관리 책임만 있지, 새로운 일은 추진할 수 없다. 국가적으로 보면 안 좋은 상태지만, 최소한의 기간으로 하려면 어쩔 수 없다.

"검찰총장이 최순실이어도 지금 수사는 끝까지 간다"
 

프레시안 : 금 의원의 '친정'인 검찰 분야 얘기를 좀 해보자. 검찰이 언론에 공개한 최순실·안종범 등의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강요·직권남용 8건과 비밀누설 1건이다. 검찰 출신으로서 이 공소장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 

금태섭 : 공소장이 굉장히 자세했다. 아주 세세한 면까지, 예를 들면 사기업 인사에도 관여하고, 재단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보통 대통령이라면 '문화 쪽 재단을 만들라' 정도 할 텐데 박 대통령은 최순실로부터 받은 조직도를 주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세세하게 지시했다.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것은 이 공소장만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뇌물죄 부분인데,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때 대법원은 '포괄적 뇌물죄'에 대해 판결하면서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걸쳐 모든 정책 집행에 대한 권한이 있고, 이 권한 행사를 통해 법적·사실적으로 기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정한 청탁이나 직접적 대가성이 없다 해도 돈을 받으면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지금 단계에서도 뇌물죄를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롯데 관련 검찰 수사나, 면세점 인허가 같은 것은 신문지상에 나온 큰 이슈들이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돈을 받으면 당연히 뇌물이다.  

프레시안 :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를 보면,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들까지 있었다.  

금태섭 :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고, 도대체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는 지금도 의문이다. 외신에서도 많이 찾아와 인터뷰를 하는데, 내가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프레시안 : 공소장을 보면, 대통령이 최순실·안종범, 정호성과 공모했다고 돼 있다. 직업이 청와대 비서관인 안종범이나 정호성과 대통령이 범죄를 '공모'했다고 볼 수 있나? 대통령이 '교사'한 것 아니냐? 

금태섭 : 일단 판례에 의하면, 이 정도로 깊숙이 관여를 했다면 안종범과 정호성도 '종범'이 아니라 '정범' 수준이다. 공무원이라고 해도 위법한 명령에 따라서는 안 된다.

또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교사범이든 정범이든 형(刑)의 차이는 없다. 다만 만약 재판으로 가서 형량을 정한다면, 안종범·정호성보다 박 대통령이 훨씬 중형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프레시안 : 검찰 공소장을 보면, 포레카 강탈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빠지고 '안종범·최순실 2인의 공모 범죄'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안종범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돼 있다. 포레카 건에서 박 대통령은 왜 '공모'에서 빠진 것인가?

금태섭 : 저도 그 부분은 잘 이해가 안 간다. 나중에 특검에서 추가 조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지난주까지, 검찰이나 김수남 검찰총장에 대해 '잘한다'는 여론의 칭찬이 많았다. 반면 검찰도 자기들이 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도 있었다. 검찰의 이번 수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금태섭 : 검찰도 자기가 살려고 하는 거다. (웃음) 수사 결과는 상당히 내놨다고 평가한다. 검찰이 이만큼 하는 것은 뒤에 특검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간 많은 잘못을 했다. 그것을 전부 반성하고 새 모습이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책임을 그나마 면하려면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 일지'와 정호성 전 비서관 휴대폰의 음성 파일이 나온 이후로는 설사 최순실이 검찰총장이어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됐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모두 대통령의 육성이 녹음된 것을 들었다. 그런데 만약 '대통령은 관여 안 했다'(고 검찰에서 결론내린다)? 특검에서 왜 그랬냐고, 직무유기라고 할 것이다. 저는 앞서서도 '이 수사는 끝까지 간다'고 봤다. 검찰이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우병우 전 민정수석 문제는 지금 큰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에게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나? 

금태섭 :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지기 희망한다. 다만 문제는, 직무유기란 '보고 눈 감았다'는 것인데, 그간 여권에서도 우 수석 경질 요구가 나왔지만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우 전 수석이 단순히 '눈을 감은' 것인지, 아니면 이 일에 깊숙이 관여해 도운 것인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단순히 눈감은 게 아니라 적극 가담했다면, 공범으로 처벌도 가능하다. 

프레시안 : 우 전 수석 사건이나, 그에 앞서 있었던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등을 보면, 검찰 역시 직무유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금태섭 : 그것도 수사해야 한다. 제가 듣기로는 최순실·안종범을 기소할 때 '지금도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뇌물죄로 기소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안 하면 책임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논란이 검찰 내에서 있었던 것으로 안다. 워낙 국정 농단이 광범위해서 박근혜 정부 4년간 있었던 모든 일을 재점검해 봐야 한다고 보는데, 검찰이 수사하다 '덮은' 부분이 있다면 파헤쳐서 검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다 사실이었는데, 대통령은 '지라시'라고 하고, 그래서 수사를 당하고 자살한 분도 있다. 그런 부분을 덮을 수는 없다.  

프레시안 : 그런 부분까지 다 보는 수사는, 탄핵심판과는 별개로 검찰이 좀더 오랫동안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 

금태섭 : 탄핵과는 별개로 끝까지 갈 거다. 특검도 기간이 정해져 있다. 특검이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이런 부분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은 검찰이 다시 수사해야 한다. 

"대통령 구체 지시 안 나와도 '삼성물산 합병' 뇌물죄 적용 가능"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특검으로 넘어가겠다. 지금 특검 수사 대상이 특검법에 기본적으로 14개로 돼 있고, 추가 인지된 사건도 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그 '추가 인지'될 만한 게 벌써 두세 개나 더 나왔다. 특검보 4명, 검사 20명이 이것을 다 할 수 있겠나?

금태섭 : 특검이 이 국정 농단의 전모를 파헤쳐 완결까지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계속 파헤쳐서, 실마리를 만들어 앞으로 수사가 이어지도록, 즉 국정 전반의 문제를 검찰 등을 통해 앞으로 끝까지 파헤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건 충분히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당장 특검이 집중해야 할 부분은 뭐라고 보나?

금태섭 : 가장 급한 것은 뇌물 부분이다. 그 다음은 현재 의혹은 제기됐는데 확인되지 않은 여러 부분일 것이다. 탄핵소추안을 쓸 때도, 이화여대 학사 관련 개입이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 등도 넣고 싶었는데 최종 지시를 한 사람이 누군지 등 일부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탄핵소추안에서도 이 부분들은 빠졌다.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규명해야 한다. 

프레시안 : 특검이 뇌물죄 입증을 해낼 수 있을까? 

금태섭 :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단계에서도 상당히 (사실관계 규명은) 돼 있다. 정리만 잘하면 된다. SK나 롯데 관련 부분을 앞에서 말씀드렸고, 그 외에도 대림·부영 등 직접적 청탁까지 드러난 업체도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프레시안 : 삼성물산 합병 건도 뇌물죄 적용이 가능할까?

금태섭 : 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연금이 명백히 비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면 뇌물로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가 쉽지는 않지만,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이었고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의 행태도 평소와 달랐다. 또 삼성물산 합병 건은 전 언론이 보도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도 자세히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확인하면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문형표·최경환 당시 장관이나 홍완선 당시 본부장에게 합병 관련 지시를 했는지 여부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금태섭 :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는지가 입증되지 않아도 뇌물죄 적용에 큰 지장은 없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했을 때, 대통령이 직접 검찰총장에게 전화해서 '누구는 빼 줘라' 등의 지시를 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국정을 총괄하고 있는데 수사 중에 거액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뇌물이 된다. 구체적으로 검사에게 어떻게 지시했다는 부분은 양형 사유일 뿐, 구체적 지시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뇌물(사건 성립)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프레시안 : 특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금태섭 : 신속하게 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검 수사가 가능하게 된 것은 국민의 힘이다. 국민이 지금 탄핵에 가장 관심이 많다. 한편에서 헌재가 심리를 해 나가겠지만, 그 심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탄핵소추 대상 부분에 대해 신속히 수사를 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탄핵 가결되면 朴 하야 가능성 높아…버틴다면 이기적인 것"

프레시안 : 주제가 탄핵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헌재의 탄핵 심판은 빨리 나와도 1월말까지는 갈 것 같다. 만약 오는 9일에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다면, 그 이후에는 국회와 정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금태섭 : 국무총리는 국정 관리에 충실해야 하고, 국회는 대통령 권한이 마비된 상태에서 국정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프레시안 :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자진 하야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촛불 민심'은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탄핵안 가결 이후 국면에서, 정치권은 '국정 안정'에 좀더 방점을 둬야 하나, 아니면 '촛불 시민'과 함께 '대통령 즉각 하야'를 계속 요구해야 하나? 

금태섭 : 제 개인 생각을 말하자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바로 하야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다. 60일 만에 대선을 하면 제대로 안 된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도 있는데, 이것은 헌법이 마련한 장치다. 지금 국민들이 보여준 역동성을 보면 60일 만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저는 만약 탄핵안 가결이 확실해지면 대통령 하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에 하야할 수도 있다. 그게 공적 의무를 다하는 일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돼도 박 대통령이라면 계속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앞의 질문 역시 그런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금태섭 : 국민의 의사는 충분히 표현됐다. 헌법재판소는 일반 재판과 달리 정치적 속성이 있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는 게 상식에 맞는 일이다. 그러면 대통령은 그 뜻을 받들어 물러나는 게 맞다. 대통령이 끝까지 버틴다? 이것이 형사재판이라면 피의자로서의 권리를 끝까지 행사하는 데 전혀 이의가 없지만, (헌법재판에서) 대통령이라는 최고 공직을 움켜쥔 채로 개인의 권리를 다 행사하면서 심판 결과까지 보겠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공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물러나야 한다. 

프레시안 : 제도정치권과 촛불민심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좀전에 금 의원이 말씀하신 대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국정에 차질이나 혼란이 없도록 국회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참에 개헌 등 제도적 개혁도 하자고 할 것이다. 반면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정치권이 손을 놓아서야 되겠느냐. 박 대통령이 즉각 사퇴할 때까지 야당도 매일매일 더 열심히 몰아쳐야 한다'는 주장도 분명 나올 것이다. 야당은 뭘 해야 하나? 

금태섭 : 탄핵안이 가결되면 언제 대선을 할 것이고, 그러면 대선주자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할 것이라는 등의말들을 한다. 그것을 따지는 순간 망한다고 본다. 야권이 처음에 제안한 대로 '야권에서 추천한 총리를 세워서 다른 정책을 해 보자'는 주장도 정파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지금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그 이후 일은 그 이후에 정해지는 대로 따라서 하면 된다. 지금 무엇이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놓고 판단하려 들면 그 순간 망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끈질기게 물어서 미안한데, (웃음) 당 대변인으로서가 아니라 의원 개인으로서는 어떤 입장인가? 

금태섭 :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모두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탄핵안이 가결되면,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위원이 된다. 원내에서 탄핵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도 국회 본연의 임무다. 또 탄핵심판 기간에 더해서,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더라도 그 다음 2개월 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것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 (즉각) 퇴진' 주장도 계속해야 한다.

프레시안 :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새 총리'라든지, 개헌이라든지, 차기 대선이라든지 하는 논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가 탄핵 인용 결정을 할 때까지 이런 정치권의 논의가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입장인가? 

금태섭 : 일단 국정 안정에 힘을 쏟아야지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박 대통령이 큰 잘못을 했지만, 제도적인 문제는 과연 없는지 하는 점에서 '헌법도 검토해 보자'(개헌하자)는 얘기도 있을 거라고 본다. 일단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되니 조금 국면이 안정돼서 그런 논의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분노한 국민들도, 대선에서 야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 갈지 보여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판단이나 발언을 볼 때, 아무도 국민들이 안심할 수준에 못 이르고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금태섭 :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대단히 송구스럽다. 국정 농단이 이렇게 길고 광범위하게 이뤄졌는데, 야당도 견제를 못 했다.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다. 국민에게 희망을 드려야 하는데, 과연 야권의 대선 주자나 야당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 저 스스로도 의문점이 많다. 우리 당도 노력하고, 대선 주자들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 새누리당 물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저도 그렇게 크게 외치는데 '그러니까 우리 당 찍어달라'는 말은 저도 정말 입이 안 떨어지더라. 유불리를 따질 게 아니라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변해야 한다고 본다.  



'빨갱이' 외친 윤복희와 최태민-박근혜

[민교협의 정치시평] 최태민 교주와 박근혜의 '사이비 반공' 집중 분석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 
2016.12.06 08:14:36


1979년 6월 2일 문화방송(MBC)의 서울국제가요제 대상에 빛났던 가수 윤복희. 그날 그녀가 불렀던 '여러분'은 오랫동안 독재와 산업화에 지친 수많은 국민을 힐링시킨 가요로 기억되었다. 2011년 5월에 임재범이 다시 '여러분'을 불러 그 노래의 힘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풍기문란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미니스커트 선풍을 몰고 온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1967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패션쇼에서 미니스커트를 선보이면서 한국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랬던 그녀가 2016년 전 국민의 염원을 담은 촛불 시민들에게 낡은 빨갱이 프레임을 씌우는 글로 상처를 줬다. 그녀는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라고 썼던 글이 문제가 되자 "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자, 그녀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말았다.

반공적 기독교와 최태민 

그녀의 글이 촛불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해서 쓴 글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 글을 통하여 한국 사람들의 무의식과 트라우마까지 지배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과 반공주의의 긴 인연을 발견하게 된다. 윤복희 씨의 전성시대였던 1970년대 반공주의적 기독교를 주도해왔던 한 가운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영적 지도자 최태민 목사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윤복희 씨가 최태민과 어떠한 인연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으므로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 윤복희 씨 SNS 화면 갈무리,


지금까지 최태민과 관련된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1975년 이전까지 최태민과 관련된 가장 확실해 보이는 정보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원과 한국복음신문사 기자 출신으로 신흥 이단 종교를 연구했던 탁명환 신흥종교문제연구소장의 진술이다. 1973년, 탁 소장이 최태민(당시 이름 원자경)을 대전에서 만났을 때, 최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영세계 원리'교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1975년 원자경에서 최태민으로 변신한 그는 대한구국선교단의 총재가 되었다. 박근혜가 명예총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4월 23일 구국 선언문을 발표하여 "김일성의 중공 방문은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노골적인 행위이니 일부 정치인, 재야 인사, 종교인, 학생들은 극한 투쟁이나 정치 혼란만을 피할 것이 아니라 반공 기치 아래 뭉치자"고 호소했다. 물론 이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는 23살의 박근혜였다. 

곧 이어 5월 4일에는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이 주최한 구국 기도회가 중앙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그날 목사는 당시 기독교대한감리회를 대표하던 박장원 목사였다. 그는 "북괴는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땅굴을 파는 등 갖은 수단을 다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국론을 통일하고 총화 단결을 이룩하자"고 설교했다. 당시 박장원 목사는 부흥회 전문 목사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목사 집안 출신으로 유명하다. 그의 부친이 박용익 목사이고, 동생이 박신원 목사이다. 박장원 목사의 아들은 현재 인천의 대형 교회라고 하는 인천방주교회의 박보영 담임목사이다. 

유신십자군과 구국십자군 

곧 이어 대한구국선교단 산하에 '구국십자군'이 설립되었다. 1975년 6월 21일 설립된 구국십자군의 초대 사령관으로는 박장원 목사가 임명되었다. 최태민은 구국십자군을 20만 명의 세례교인으로 구성되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구국을 전제로 전국 복음화 운동을 펼치고 사이비 종교를 일소하며 퇴폐 풍조 등 사회 부조리를 제거하여 조국 통일 성업의 초석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배제고등학교 교정에서 진행된 구국십자군 창군식에는 박근혜 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격려사를 통해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 자유세계를 지키는 초석'이 달라고 늙은 목사들을 포함한 소위 '창군대원' 1000여 명 앞에서 당부를 했다고 <동아일보>(1975년 6월 23일자)는 전했다. 이 구국십자군은 목사와 평신도로 구성되었고, 각 시도단위, 군단, 각 개체 회 단위로 분단을 조직하고, 매주 토요일 정기 기본 군사 훈련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최태민이 구국십자군을 착안했던 것은 몇 가지 상황에 기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유신 체제 출범 과정에서 저항 운동을 벌여왔던 한국 기독교계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KCC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진보 세력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그는 정통 기독교계와의 대항하는 카드로서 반공을 전면에 거는 전투적 기독교 단체로서 구국십자군을 착안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 운동은 박근혜는 말할 것도 없고, 박정희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구국십자군은 박정희를 직접 찬양하는 맥락에 있었다. 물론 십자군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걸친 서유럽의 십자군 전쟁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이 반공 전선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한 예로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사건' 때에 한경직 목사가 지리산 일대에서 구국 전도 운동을 펼치면서 '구국전도대가'를 지어, 국경, 토벌대를 '십자가 정병'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도 한국 전쟁은 '의로운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르며, 공산군의 대항 개념으로 십자군을 불렀다. 이들은 기독교의 맥락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알려진 대로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박정희 역시 십자군을 좋아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대를 '구국의 십자군'이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1962년 5.16 쿠데타 1주년 기념행사에서 군사 혁명 정부 내각수반 송요찬이 '1년 전 군사 혁명을 가리켜 구국의 십자군'이라 하였다. 또한 1973년 3월 20일에 있었던 베트남 전쟁 파병 장병 환영 대회에서 박정희는 "어제의 평화십자군이 오늘의 유신십자군, 구국의 십자군이 되어 달라"고 얘기했다. 

나아가 구국십자군이 출범한 1975년에 부활했던 학도호국단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보인다. 학도호국단은 원래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49년 생겼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일시 폐지되었던 것을 군국주의자 박정희가 그 가치를 재평가하여 1975년 5월 21일 국무회의에서 '학도호국단설치령'을 심의·의결하였고 남녀 학생 모두 학생 군사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었다. 1985년에서야 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할 수 있었다. 유신 정국은 군국주의의 부활로 공포 정치를 했던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최태민은 대한구국선교단과 구국십자군을 창조한 것이다. 

구국선교단은 복합적인 사회단체로서 일종의 정부 조직이자, 헤드쿼터였다. 여기에는 종교와 선교, 연구회, 병원, 사회복지 기관 등이 있었다. 또 일종의 군사 조직 개념으로서 구국십자군이 있었다면, 이데올로기 생산 기지로서 조국통일문제연구원이 있었다. 최태민은 이 연구소는 형식적으로는 교수들에게 맡긴 것처럼 보인다. 조국통일문제연구원의 원장으로는 국민윤리를 주도한 한태수 한양대학교 교수와 부원장에 권윤혁 동국대학교 교수가 있었다.

또 연구원은 정치, 경제, 사회, 조사, 문화 분과로 구성되었다. 놀라운 점은 사회 분과 위원장으로는 변시민 교수, 조사 분과에는 김점곤 교수, 문화 분과에는 조연현 씨 등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연구원은 세계 교수단 평화 대회, 민간 외교 사절단 파견, 국난 타개 대책 연구, 학술지 발간을 하겠다고 계획되었으나 그대로 추진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당대 쟁쟁한 학자까지 동원할 수 있었던 최태민의 권력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그가 박정희의 영애 박근혜를 등에 업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KBS


목사들을 동원한 반공 군사 훈련 

구국십자군이 정식으로 창군된 것은 1975년 6월 21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5월 22일부터 24일간 10개 교단을 망라한 목사 100명(여자 권사 6명 포함)이 제식 훈련, M16 소총 사격 훈련 등의 군사 훈련을 받으며 승공 정신을 함양했어야 했다. 물론 퇴소식에 박근혜는 격려사를 통해 "한국 선교 90년 사상 처음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구국 일념으로 모인 결단"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목사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했겠는가? 

구국선교단의 단장이 새문안교회의 강신명 목사(1909~1985년)였다. 강신명 목사는 경상북도 영주 사람이지만 해방 직전에 평북 선천북교회에 있다가 분단 이후 월남하여 한경직 목사와 함께 영락교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1955년 새문안교회로 옮겨와 25년간 목회를 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측)의 리더이자, 한국기독교지도자협회 회장이자, 서울장로회신학교 설립자였다. 그의 경력에는 최태민과의 인연은 빠져 있으나, 지우고 싶은 경력일 것이다. 사이비 목사 최태민에게 새문안교회의 목사가 이러할 지경이라면 군소 교회 목사들이 구국십자군, 구국선교단을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1975년 7월에는 경주 화랑의 집에서 '제1회 화랑 수련 대회'를 가졌는데, 남녀 1000명의 구국십자군이 참여하였고, 예의 최태민 총재가 '1000여 년 전 신라 구국의 선봉이었던 화랑처럼 우리 기독교도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를 건지는 구국의 선봉'이 되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같은 해 8월에는 구국십자군은 강화도에 '강화특수군단'을 설립했다. 군단에서는 멸공대, 기동대, 전도대 등 500명씩 1500명으로 구성된, 순교적 신앙으로 총궐기하겠다고 선서했다. 

대한구국선교단은 광복 30주년을 맞아 4개항 특별 성명을 발표했는데, 제1항이 "멸공만이 구국의 길임을 다시 천명하며, 멸공의 제1선에서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고 하여 멸공을 앞세웠다. 그의 종교는 반공멸공교라 할 만했다. 

1976년 4월 29일엔 구국선교단 부설로 구국여성봉사단이 이화여자고등학교 류관순기념관에서 발족했다. 그날 행사엔 박근혜와 유상근 통일원장관, 구자춘 서울시장, 박순천, 모윤숙, 양순담, 송금선 등 여성계 인사와 단원이 3000명 모였다. 1978년 총재엔 박근혜, 사무국장엔 문제의 인물인 최필녀, 즉 최순실이 취임했다. 

아무튼 구국선교단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치계에서 최태민의 기금 유용이나 박근혜에 대한 '지배' 문제가 얘기되면서 견제를 받게 되었다. 최태민은 새마음기운동본부와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을 합쳐 1979년 5월 1일, 새마음봉사단을 탄생시켰다. 새마음봉사단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2016년 11월 20일 JTBC 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최태민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와 반공주의를 십분 살리며 박근혜의 비선실세로서 독점적 권력을 누렸다. 

1970년대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최태민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국민일보>(2016년 11월 9일자)에 따르면 1975년 7월 예수교장로회(통합) 측에서는 총회 임원회를 열어 '통일교나 구국선교단 등 교단이 인정하지 않은 집단에 가입하는 것을 금'했다. 그해 12월 임원회에서도 '구국선교단은 교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이단 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구국선교단에 동참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1970년대 개신교계는 구국선교단을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멸공,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했다. 그러한 상황은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뿐만 아니라 저항적 개신교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력한 반공주의자임을 끊임없이 입증하거나 고백해야 했다. 강인철 교수가 말하는 "승공을 위한 민주화와 인권 보장 요구"였다. 다시 말해 "한국이 사탄적인 (북한) 공산 세력과 최전선에서 대적할 세계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면 한국이야말로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모범적 국가"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한구국선교단이나 구국십자군뿐만 아니라 대한기독교연합회, 기독교지도자협의회, 기독교반공연합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반공 활동을 계속했고, 반공을 기초로 한 목회자가 계속 탄생하였다. 

반공 무의식, 반공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다시 윤복희로 돌아가자. 윤복희 씨는 촛불 시민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그녀 자신도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촛불 시위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없었다면 이러한 촛불 시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복희의 빨갱이 언급은 그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나와는 다른 사람을 호명하거나 타자화시키는 1970년대를 살았던 많은 한국인의 사고방식이자, 무의식의 문제이다. 이는 가수 윤복희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무의식은 의식 깊숙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평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꿈이나 본능적 상황, 이성 조절을 잃은 감정의 표출 과정에서야 어떤 계기를 통해 복합적으로 무의식은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 한국 전쟁과 그 후 수십 년 동안 반공에 의해 지배당해 온 사회이다. 최근 색깔론이 많이 옅어지고, '빨갱이'나 '종북 좌빨'이 대중적 담론으로 수용되었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빨갱이나 종북 좌빨은 차별과 배제, 감금과 죽음의 기표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1970~80년대 반공은 곧 공포를 의미했고, 간첩이나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당사자는 말할 것 없고, 그러한 가족으로 낙인찍히는 것만으로도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엔 1990년대까지도 연좌제가 있어서 그 자손들마저 사회경제적 활동에 제약을 당해야 했다. 

2000년대 초·중반 남북 관계가 한창 좋았을 때에도 많은 국민들은 남북 관계가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함부로 진보인양 나서지 말라 등과 같은 말을 했다. 자신이 빨갱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수상한 사람을 빨갱이로 호명하거나 신고해야 했던 시대가 너무 길었다. 공포와 의심, 불안과 자기 검열 등의 증세를 가진 한국인들의 반공 무의식과 반공 트라우마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깊숙이 잔존해 있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최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냉전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한국인, 한국 사회의 깊숙이 내면화된 반공적 무의식이 아니다. 객관적인 남북의 냉전적 상황이 해소되어야 집단 무의식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 그러한 과정에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도 치유될 수 있다.

그런데 시민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이러한 현실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헌법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화 통일을 원하면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할 정부를 만들어야 하고, 행복과 복지를 원하면 복지를 실현시켜줄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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