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이 되고 있는 시민 혁명 - 탄핵 정국 이후, 어떤 '차기 권력'인가?
사상이 되고 있는 시민 혁명
초지일관의 국민
누군가는 "어떻게 30분마다 상황이 바뀌냐?"고 탄식한다. 박근혜의 한 마디에 좌충우돌하는 정치권의 동요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었다. 탄핵전선이 흔들리면서 민심의 분노는 야권에도 조준되었다. 국민들의 자세는 초지일관이다. 오직 박근혜의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부역자 청산에 그 모든 초점이 모아진다. 애초에 탄핵은 이런 목표를 위한 보조 장치에 불과했다. 탄핵이 되던 안 되던 간에 시민혁명의 목표는 그와 상관없이 박근혜의 폐기처분과 그 부역집단의 정리다.
박근혜로 압축되는 구질서의 악폐를 총결산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미래로 진전할 수 없다는 신념은 이제 시민혁명의 사상이 되고 있다. 구질서 극복을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세력은 이 "총결산의 매서운 과정"을 거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는 자들이다. 탄핵 후 즉시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는 논리는 청산작업의 철저한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는 국민적 논의를 배제하는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그 논의는 기존 제도정치의 상층부에서 오가는 정략연대에 불과하고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시민혁명의 요구와는 그 어느 지점에서도 만나고 있지 못하다.
이들 기존 정치권세력이 제기하는 개헌 논의는 마치 박근혜의 제왕적 행태의 책임이 헌법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헌법체계 아래 있던 김대중, 노무현 시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근혜의 문제는 지금의 헌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헌법의 유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할 일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정신의 복구와 이에 따른 범법자들에 대한 처벌이다. 탄핵은 그 처벌의 첫 단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철저한 총결산의 과정을 거쳐야
구질서 앙시앙 레짐의 철폐를 거치면서 개헌논의가 제대로 되자면, 박근혜 정권의 적폐와 그 역사적 기원을 깨끗이 도려내는 총결산의 의지가 시민혁명을 통해 우선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 그 승리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왕성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전면화되는 기반 위에 우리는 제대로 된 개헌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개헌논의는 기득권의 보존과 새로운 기득권 창출에 정치적 사활이 걸린 세력의 계략에 걸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시민혁명의 현장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박근혜 세력과 정치권의 꼼수에 시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만책의 정체에 대해 즉각 꿰뚫어 보고 그에 대한 대응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내놓는다. 정치 공학적 접근에 익숙한 세력과 역사적 과제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세력 간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꼼수의 난무에 대한 혐오가 이들을 퇴각시키기는커녕 도리어 분기탱천의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박근혜와 부역세력들의 예상과는 달리, 촛불이 횃불이 되는 길이 뚫리고 있는 것이다. 시민혁명의 역량을 만만히 본 탓이다.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다고 하고 수사를 거부하고, 탄핵의 대상이 되도 좋다고 해놓고 그걸 피하려 드는 식으로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는 박근혜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탄핵에 앞장서겠다면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이미 끝났다. 박근혜 권력에 대한 사망선고는 더 이상 뒤집을 수 없게 되었고 단지 시기와 방식만이 남은 것이다.
국민적 요구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 승복해야 할 명령
그런데 그 시기와 방식은 이후의 상황에 중대한 의미와 영향을 가지게 된다. 박근혜는 자신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를 제도 정치권의 협상대상으로 전환하려 했고, 그로써 국민적 요구가 여기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해버리려 한 것이다. 자신의 퇴진에 대한 주도권을 정략적 협상에 이골이 난 제도권에 넘김으로써 시민혁명의 공간을 소멸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의 기세는 이에 대해 그대로 묵과하지 않았다.
박근혜 퇴진은 협상대상이 아니며 그 시기와 방식도 시민혁명의 요구 아래 놓여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제도 정치권이 이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민심의 분노는 높아졌고, 이에 놀란 일부 야권은 탄핵 발의 시기를 늦춘 결정을 번복하고 탄핵연대에 다시 합류했다. 압박해야 할 대상을 협상대상으로 설정한 오류의 수정이었다.
물론 비박 세력의 입장 선택은 탄핵포기이거나 아니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이들이 탄핵 결정의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즐기는 태도는 즉각 시민혁명의 타격대상이 되어 새누리당 해체가 보다 강력한 구호가 되었다. 이들은 지금 시민혁명세력에게 포위되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정치적 폭파 대상이 되어 향후의 운명을 가늠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탄핵 반대 정치인의 명단 공개와 이들에 대한 민심의 총공세는 그러한 맥락 속에 생겨난 당연한 결과이다.
분명한 점은 퇴진 시기는 즉각적이어야 하며, 방식은 국민의 명령에 승복하는 것 외에 없다. 더는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며 제도정치권의 방식에만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혁명의 주체는 제도 정치권이 아니라 보통의 국민이다. 이들이 주역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박근혜와 정치권은 모두 시민혁명의 혁파대상이다. 시민혁명의 요구가 제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를 활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세력 역시도 시민혁명의 적이다.
시민혁명의 인내, 그 끝
6차가 되는 시민혁명의 집결은 이제 그 인내의 마지막 단계에 처해 있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위대의 청와대 접근 거리 단계적 축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상징이 되고 있으며, 그 결정적 타격의 양태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 지에 대한 여러 가지 예상은 긴장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명예혁명이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민혁명의 전개과정이 과연 그렇게만 귀결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인내치의 한도를 넘어 권력거점에 대한 물리적 점거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박근혜의 버티기와 이를 위한 기만책은 역설적으로 시민혁명의 의식을 높여주고 있다. 그 의지 또한 강력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박근혜에 대한 공세와 그 전략의 집단 지성적 융합은 이들의 대응전략에 중대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어느 한 부문만 집중적으로 타격하면 되었던 상황에서 이제는 전방위적 방어체계를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아무리 공세적 반격으로 전환하려 해도 승패의 전선은 이미 기울었다.
4프로의 지지율, 그러니까 96프로의 국민에게 비토당하고 있는 권력이 이길 방법은 물리력 동원 외에는 남지 않았다. 이는 박근혜가 최근 경찰인사를 그대로 밀고 나간 배경이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될까? 쉽게 지배되지 않는 시민으로 거듭난 국민들을 경찰봉으로 진압하는 순간, 즉시 파멸이다.
혁명의식의 탄생
김천의 어느 국밥집 할머니가 했다는 말, "이제 우리 국민은 어제의 국민이 아이다."라는 이 놀랍도록 적확한 표현은 시민혁명이 바꾸어놓은 사상의 역사적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어제의 국민에게 통했던 방식을 오늘의 국민에게 들이밀려는 습관이 되풀이 되는 한, 앙시앙 레짐의 수명은 더욱 빠르게 단축될 뿐이다.
이제 시민혁명은 단지 박근혜 퇴진과 부역세력 청산만을 요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불평등한 기존질서, 빈곤의 심화, 은폐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 기본권의 박탈, 국가적 자존감의 훼손 등 지난 시기에 자행되었던 일체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단죄와 극복으로 이동해나갈 것이다. 계급이 신분질서가 되고 권력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며 정의의 수립이 비현실적인 요구가 되는 것을 더는 참지 못할 것이다.
혁명은 이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처하는 의식의 탄생이다. 사상의 성장이며, 역사의 주도권이 바뀌는 대전환이다. 시민혁명은 박근혜의 퇴진으로 촛불의 광화문 집결이 해제되는 날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의 요구는 보다 진보할 것이며, 우리의 행동은 보다 강력해질 것이다. 시민혁명의 총결산은 앙시앙 레짐이 보장했던 신분제도의 철폐가 완료되기까지 끝나지 않는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해 물밀듯 밀려들어가는 시민들의 장엄한 행렬을 목격하는 순간, 시민혁명은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첫 장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
‘11월 항쟁 세대’가 새로운 대한민국 이끌어간다
‘세계 시민운동’ 새 지평 연 ‘11월 항쟁’…“여론 다스림이 불가능해진 정치권은 엄청난 충격”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2.05(월) 15:32:37 | 1416호
‘2016년 11월26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촛불을 들고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인해전술’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외침은 현실이 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1960년 4·19혁명은 시민혁명 1세대, 1987년 6월 항쟁은 시민혁명 2세대로 기록돼 왔다. 이제 2016년 11월 지금, 우리가 참여하고 목격하고 있는 이 대중의 외침은 3세대 시민혁명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특히 ‘11월 항쟁’은 이제까지의 시위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시민운동사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계층과 이념, 지역을 뛰어넘은 11월 항쟁이야말로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1월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전환기’로 평가받는다. 200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반정부 시위를 펼친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외신들은 시민의 피와 땀이 만든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과 달리, 이번 ‘11월 항쟁’에서 보여준 대중의 비폭력 저항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서는 이번 11월 항쟁을 가리켜, ‘21세기 세계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연 사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11월 항쟁은 앞선 시민혁명과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1960년 대구 시내 학생들이 주도가 된 2·28대구학생시위에서 출발한 ‘4·19혁명’은 마산학생시위, 고려대생시위로 이어지면서 이승만 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됐다. 그런 면에서 4·19혁명은 한국 정치사에서 성공한 첫 시민혁명으로 평가받는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한 세력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과 반공교육을 동시에 맛본 세대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민주항쟁 진압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싹텄다. 1987년 6월, 재야세력·대학생·지식인들의 주도에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 가세하면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반면 11월 항쟁은 앞선 두 번의 시민혁명과는 다르게 주도 세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조직이 동원되지 않았으면서도 규모 면에서 사상 최대였다. 최근 20~30년간 우리 사회는 11월 항쟁처럼 연령·종교·이념을 아우르는 ‘범국민적 시민혁명’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1960년 4월19일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학생들이 곳곳에서 피를 흘리게 되자 서울 수송초 학생들이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치며 데모에 가세했다. © 연합뉴스
민중가요 사라지고 패러디 대중가요 등장
무엇이 대중을 광장으로 모여들게 만든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시위문화에서는 쉽게 답을 찾기 힘들다. 11월12일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경찰청 소속 정보관은 해답을 ‘문화’에서 찾았다. 그는 “대중이 느끼는 이번 시위는 정치집회였다기보다 ‘거대한 문화공연’이었으며, 그랬기에 가족 단위나 커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1월19일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찾은 김옥희씨(42)도 “민주주의를 즐기는 젊은 세대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민중가요가 사라지고 대중가요를 개사한 노래가 인기를 끈 것이 달라진 시위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가 진행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또 다른 서울지역 경찰서 소속 정보관은 “공직생활 동안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1월26일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내자동로터리에 있는데, 시민 한 명이 계란 3판을 놓고 가는 거예요. 경찰을 향해 던지라는 뜻이었겠죠. 그런데 지나가던 시민들이 그걸 도로 한편으로 치우더라고요. 또 집회 현장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저희를 보고 ‘여러분, 고생이 많네요’라고 격려해 주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욕먹어도 모자랄 판에 칭찬을 받다니요.”
물리적 충돌 없이 끝났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과거 방식과는 질적으로 달라진 모습이다. 박진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의 말이다. “보통 집회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왜 (집회를) 끝내느냐’며 항의하는데, 이번 시민항쟁은 소집과 해산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거의 없었어요. 한쪽에서 전경버스 차벽에다 스티커를 붙이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떼는데도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을 봤어요. 시민들 스스로가 ‘폭력’에 대한 자기검열 의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11월 항쟁’의 주도 세력을 꼽는다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집회 참가 독려부터 행사 후 토론까지 전 분야에 걸쳐 SNS는 일종의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진가를 보인 ‘실시간 온라인 생중계’는 이미 ‘구시대 기술’로 취급받으며 뒤로 밀렸다. 주역으로 올라선 SNS 공간에는 단문과 사진으로 만든 패러디물이 넘쳐났다.
SNS가 시민사회의 소통 도구를 넘어 거대한 시민운동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재신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지상파·케이블TV와 오프라인 신문·잡지 등 기존 미디어 체제에서 대중은 뉴스 소비자에 불과하지만, SNS에서 대중은 생산자와 소비자 역할을 동시에 한다”면서 “기성 언론만 관리하면 여론은 얼마든지 다독일 수 있다는 정치권에 ‘11월 항쟁’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SNS를 활용한 이번 11월 항쟁을 가리켜 집단지성이 만든 ‘세계 최초의 무혈 시민혁명’으로까지 치켜세우고 있다. 2008년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참여군중》을 쓴 미래학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한국은 대다수의 국민이 기술 활용 능력을 갖췄으며,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이 보장돼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한국을 기술정치, 그리고 사회운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참여군중의 기반이 가장 잘 마련된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1987년 6월 항쟁은 전두환 군부 독재의 종언을 알린 시민혁명이 됐다. © 연합뉴스
SNS는 朴 대통령 등 기성 정치 풍자로 가득
단적으로 정치 스타트업(벤처기업 초기 모델) ‘와글’은 SNS라는 집단지성을 활용, 단시간 내 ‘11월 항쟁의 스타’로 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연설을 패러디한 인터넷 사이트 ‘국민의 뜻이 우주의 뜻(www.cosmospower.net)’은 개설(11월17일) 후 2주 만에 회원 수가 1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와는 별도로 와글은 ‘박근혜게이트닷컴(www.parkgeunhyegate.com)’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11월 항쟁에는 여러 온라인 단체가 위력을 발휘했다. △우주당(우리가 주인이 되는 당) △정알못(정치라고는 1도 모르는) △순실길 △10대 청소년들의 모임인 나비정치연구소(나아가 비상하는 연구소) △무당파(지지 정당이 없는 모임) 등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는 커뮤니티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대중이 참여하는 디지털 민주정치의 복원’이다. “기성 언론이 생각하는 20대 대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예요. 요즘 세대 말로 하면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세대죠. 정치충(극단적인 정치 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도 있지만, 다수가 ‘정알못’인 건 맞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태어난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보다 개인주의를 먼저 배웠어요. 이전 세대처럼 민주주의의 승리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에 길들여졌죠.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게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한 겁니다.” 천영훈 와글 프로젝트 매니저의 말이다.
집회 현장에 등장한 ‘민주묘총’ ‘장수풍뎅이연구회’ ‘범깡총연대’ ‘국경없는어항회’ ‘화분안죽이기실천본부’ 등 이색 커뮤니티는 11월 항쟁이 ‘탈이념적 성향’을 보였다는 방증이다. 이념 대신 취미와 기호로 대중이 구분되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등장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행사를 주관한 국민행동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디자인한 패러디물이 쇄도하고 있는 것도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자발적인 후원금 모금으로 이어졌다. 국민행동에 따르면, 첫 대중 집회였던 11월5일 현장에서 7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았으며, 11월19일에는 하루 만에 2억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박진 실장은 “모금함 속 지폐를 세는 데만 5~6시간, 이를 은행 창구로 가져가 기기로 세는 데만 꼬박 3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좋은 일에 써달라며 국민행동 계좌로 1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손길도 늘고 있다. 트랙터를 타고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전봉준투쟁단’을 위해 트랙터 기름값을 후원하자는 자발적인 모금행사가 호응을 얻은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경험한 전통적 시위의 중심에는 노동·경제적 이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운동의 또 다른 축인 시민운동 역시 여성·환경이라는 이슈가 주도하다 보니 다수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번 11월 항쟁이 계층·연령을 불문하고 강력한 응집력을 보인 이유는 ‘정치+생활형 이슈’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학계에서는 “11월 항쟁의 표면적인 목표는 ‘퇴진·하야’지만, 이런 거대 담론이 나오기까지는 ‘불평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갈등요소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처장은 “학교에 가지 않고, 말만 타고도 명문대에 입학한 ‘정유라’가 1020세대의 공분(公憤)을 샀다면, 이를 비호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이권을 챙긴 ‘최순실’은 학부모이자 서민인 30~60대의 분통을 터트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최순실 게이트는 △입시경쟁 △취업난 △고용불안이라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갈등 요인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리먼 사태 이후 계속된 불황과 집값 상승, 대기업 횡포 등도 대중의 분노를 분출하게 만든 발화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11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사직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혼술·혼밥 세대가 ‘혼시’로 이어진 에너지
집회 현장에 나팔을 들고 나가 거리 행진에 나서는 ‘나팔부대’의 대표자 이아무개씨와 회원들은 평일 점심 교대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씨는 현재 서울에서 홍보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평일 낮 강남역 부근에서 만나는 50~60대 여성들은 상당수가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희 손을 잡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배신’이라는 말이에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거죠. 혼술(혼자 술 마시기)·혼밥(혼자 밥 먹기) 세대가 혼시(혼자 시위 참여하기)로 이어지면서 만든 에너지는 엄청났습니다.” 차와 신호등으로 가득한 서울 도심에 거대한 광장문화가 생기면서 대중의 엄청난 에너지가 일시에 표출됐다는 점도 광화문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11월 항쟁으로 표면화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사회 갈등 요소를 중간에서 조정하는 정부 산하 공적 기구가 전혀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대통령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갈등조정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녹색성장위원회로 편입됐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한국사회연구소장)는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공통점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중이 철저하게 무시됐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면서 “‘갈등은 비생산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만 따라오면 된다’는 식의 보수정권 소통방식도 갈등을 키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미디어카페 ‘후’에서는 주말마다 시국 시민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페이스북 동호회 ‘꼭대구사(꼭두각시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주최한 11월27일 모임에는 팟캐스트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가 초대됐다. 황 전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대중은 개·돼지·노예’라는 사실을 최순실 국정 농단이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내적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대통령 퇴진 이후 11월 항쟁을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활동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11월 항쟁이 4·19혁명, 6월 항쟁과 같은 반열의 시민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정국 흐름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4·19혁명, 6월 항쟁과 달리 지금 정국은 비박계·검찰·보수언론이 손잡고 친박과 박근혜 정부를 교체하는 움직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배권력 전체를 뒤바꾸지 않는다면 11월 항쟁은 하나의 정치적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만약, 박근혜 탄핵이 부결되면…
이 많은 사람이 도대체 왜? 흔히 분노와 심판을 말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더, 시민의 행동은 곧 말하는 것이고 또한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민주적 의사 표현이요 정치 참여니, 곧 민주공화국 구성원의 권리이고 의무다. 핵심은 바로 "내 말을 들어 달라"는 것.
이번 주 금요일(9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루어진다. 탄핵은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주권자의 요구를 제도 정치가 수용한 결과다. 대의제라는 흠 많은 제도적 장치에 수많은 주권자가 직접 개입한 결과 그나마 이 정도까지라도 왔다.
박근혜 게이트 초기에 제도 정치가 "명예로운 퇴진" 운운하면서 탄핵을 머뭇거렸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 조건에서 탄핵 소추가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시민이 압력을 가한 결과다. 직접 참여를 통해 제도 정치를 바꾸었다는 것만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 시민은 이미 절반을 이겼다!
이 논평을 쓰는 때는 4일(일요일) 저녁, 지금 같아서는 탄핵안이 가결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또박또박 처절하게 역사에 기록되어 그 이름까지 남을 친박계 의원은 입에 담기도 싫다. 대통령이 퇴진 약속을 하면 굳이 탄핵까지 할 것 있느냐는 새누리당 비박계의 동요 때문에 탄핵은 부결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민이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번 주는 '역사적'인 한 주가 될 것이 틀림없다. 몇 가지를 정리하여 우리 스스로 경계하고, 또한 동료 시민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누구나 생각할 평범한 것이지만, 진정한 '승리'의 길을 닦는 마음으로 적는다.

1. 탄핵의 의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국정 운영의 문란, 숱한 법률 위반, 도덕적 파탄을 합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은 끝났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파탄에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도 분명하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고 실질적인 구속력이 있으려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퇴진과 직무 정지는, 중요하기는 하되 두 번째 목표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퇴진과 직무 정지는 그 심판의 결과일 따름.
우리는 이번에 탄핵이 부결된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패라면 그것은 제도 정치와 대의 민주주의의 실패일 뿐이다. 탄핵 부결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대의제, 그리고 국회와 정당을 개혁하는 (성공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 틀림없다.
2. 탄핵과 퇴진
퇴진은 법적 절차가 아니다.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고 그렇게 해도 어찌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저 그의 결단에 기대하는 것이니, '신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하고 '촉구'하는 것이 유일하다. 법률적 근거가 없으니 심지어 위헌 시비가 일 수도 있다.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불문가지.
약속을 믿으라고? 지금까지 한 거짓말과 뒤집기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세 번의 담화만 해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시간을 벌고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수단일 뿐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 일부 언론, 정체불명의 이상한 단체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언제 퇴진한다고 약속해도 탄핵은 진행해야 한다.
탄핵이 가장 예측하기 쉽고 안정적인 정치 과정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의적이고 불안정하며 그래서 불안하다. 탄핵이 더 실용적이라는 뜻이다.
3. 9일 이전의 행동
국회의원들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일부 의원은 깡패가 말하는 '의리'로 정치 생명을 포기하고 '순장조'가 되겠다고 결심했는지 모른다. 이들은 공직으로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사익 집단의 집사나 마름에 지나지 않는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래서 어차피 글렀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사회의 실력이 이 정도고 쌓아 놓은 자산이 이 모양인 것을.
나머지 동요하는 친박, 비박계 의원을 압박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그리할 수 있는지, 집단 지성은 이미 차고 넘친다. 원칙은 간단하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다음번의 당선, 그러니 유권자의 표를 겁내도록 하는 것이다. 선거가 제법 남았으니, 지치지 않고 당신을 오래 기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해야 한다.
지역구 사무실과 국회를 물리적으로 포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민과 유권자의 요구를 직접 전달하고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압력을 가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들인가? 유권자의 요구에 둔감하지만 눈치는 빠르고, 공익보다는 사익 추구에 능하다.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한다.
4. 만약 탄핵이 부결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법률적으로는 국회의 회기를 달리해 탄핵안을 다시 발의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제라도 다시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다면,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시민의 요구를 가다듬어 내놓으면 된다. 이 또한 학습이고 경험이며, 그런 의미에서 기회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시민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고 있다. 왕당파가 개혁을 시도하던 국민회의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민중이 봉기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이번에 탄핵이 부결되면 어떻게 될까? 필시 시민의 분노와 궐기는 '체제'를 흔들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체제(앙시엥 레짐)를 평화롭게 '전환'하는 것이 최선이다. 평범한 시민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민주공화국 시민의 의지와 열정을 질서 있고 평화롭게 성취하는 것 말고, 도대체 지금 어떤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면 다시, 준비 단계로 돌아간다. 불확실성과 비관을 이기고 탄핵은 성공해야 한다. 목요일과 금요일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진 '권력'을 모두 드러낼 수밖에 없다. 모이고 말하고 요구해야 한다. 운명의 (첫 번째) 일주일을 위해.
탄핵 정국 이후, 어떤 '차기 권력'인가?
2016년 12월 3일 저녁 광화문. 그것은 거대한 순례였다. 아니 세계 어느 순례가 이처럼 간절하면서도 정연하고 거대하면서도 평화로울 수 있을까.
수백만 인파가 조금이라도 서로 밀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차량이 통제된 건널목에서도 빨간 불 앞에 군중이 조용히 멈춰서며, 뒷골목 마트마다 길게 늘어선 계산대 앞에서 어느 누구 하나 짜증스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기도하듯 어둠 속 가슴 앞에 잡은 촛불에 비친 수백만 시민의 표정은 한 결 같이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면서도 단호했다.
이렇게 크고 높으며 맑은 주권 의식, 주권 의지를 난 지금껏 알지 못했다. 현실 속에서도 어느 나라의 지난 역사 속에서도 못 보았던 것이다.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는 1987년 6월에도 이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이 신성하고 높은 주권 의식, 주권 의지를 우리는 이제 소중히 가슴에 품어야 한다. 결코 다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 고결한 주권 의식, 주권 의지가 몸체를 갖고, 목소리를 갖고,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사랑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 일정은 격랑 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오는 12월 6~7일에는 국정 조사 청문회가 시작된다. 8대 기업 총수가 소환되어 박근혜-최순실과 관련된 제3자 뇌물 죄 여부가 추궁될 것이다. 특검 준비도 착착 진행 중이다. 8일에는 탄핵안이 본회의에 보고될 것이고, 9일에는 탄핵 표결에 들어간다. 그 사이에도 일부 '비박'은 대통령에게 사퇴 일정을 명시해 달라고 아수성일 것이다. 12월 4일 현재, 이들 동요하는 비박이 탄핵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미지수다. 상관없다. 어쨌든 탄핵은 9일 표결에 들어간다. 가결이 되든, 부결이 되든, 이 거대한 흐름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탄핵 표결 이후 국면에서 핵심적인 것은 '거대하게 일어선 국민적 주권 의지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이다. '이어갈 뿐 아니라 어떻게 한 단계 더 높여갈 것인가'이다. 가결된다면 민의의 1차 승리다. 당연히 그 민의를 어떤 방법으로 더욱 구체화시켜갈 것인가, 한 단계 더욱 높여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부결된다면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국회 전체가 쓰나미에 휩쓸릴 것이다. 야-여의 탄핵파들 자신부터가 이미 탄핵이 부결된다면 국회의원 총사퇴를 해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만일 그럼에도 부결되었을 때, 스스로 자기 부정을 한 국회를 대신할 국민적 주권 의지가 어떤 방식으로 형태를 갖추어야 할지가 당연히 제1문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가결, 부결, 국면의 변화 방향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국회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현 국회는 4.13 민심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잊지 말자. 특히 야3당과 새누리당 탈당파, 또는 잔류 비박 탄핵파는 이 점을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들을 국회로 보내준 의지가 4.13 총선의 민심이었다. 현재의 거대한 국민적 주권 의지는 4.13 때 그 첫 움직임을 보였다. 그 태동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사태 전개는 상상하기 어렵다. 여전히 깊은 어둠 속에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더욱 깊었을.
국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은 최근 미국 대선, 영국 브렉시트 사태에서도 보듯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돈-미디어-정치의 삼각 결탁 기득권 체제에 대한 민의 불신, 더 나아가 민심과 무관한 '쇼윈도'로 전락한 대의 정치, 선거 게임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고조되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4.13 민의는 대한민국 국회와 정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야3당과 새누리 회개파는 자신에게 정치적 생명을 준 그 힘을 결코 잊지 말고, 그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
탄핵 가결이든 부결이든, 12월 9일 이후 정국의 초점은 '차기 권력 문제', '어떠한 차기 권력이냐'를 둘러싼 논의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거대한 국민적 주권의지가 일어선 이 순간, '차기 권력 문제'란 단순히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라는 단세포적 의문보다 비할 바 없이 훨씬 크고 높은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 세대, 30년의 결과가 바로 박근혜 정부였다. 그 30년 동안 민주화의 열기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참담한 독재와 국정농단으로 몽땅 회수되고 말았는지 똑똑히 보아야 한다.
올 4·13 투표 직전까지의 암울했던 예측들을 떠올려 보라. 야당의 지리멸렬과 분열로 친박·진박, 새누리당이 개헌선 이상으로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횡행했지 않은가. 그 결과 새 국회에서 제2의 유신헌법 개헌이 여유 있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얼마나 많았던가?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야당은 그럴 정도로 무력한 난장이가 되어 있었다. 국정원 선거 개입 건에도, 세월호 건에도, 사드 배치 건에도 야당은 이상하리만큼 힘이 없었다. 답답할 만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 사건마다 우스운 논리로 걸어오는 종북 프레임에 당당하게 맞서기는커녕 항상 비실비실 피할 곳만 찾아 다녔다.
이런 사태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된 일이 결코 아니다. 한번 돌아보시라. 87년 체제의 첫 정부,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시작되어, 김영삼 정부 때 오히려 강화되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거칠 것 없이 야비하게 노골화되어 왔던 현상들이다. 그리하여 야비한 막말 정치, 막말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야당, 야당 정치인은 모두가 막말 앞에 맥을 못 쓰는 난장이가 되었다. 우리는 이 순간, 그 때 그 기억들을 결코 잊지 말고 똑똑히 되살려야 한다.
'차기 권력 문제'란 바로 그러한 해괴한 비정상들, 민주가 독재로 회수되는 그 반복 구조가 완전히 타파되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안 하면서, 그저 다음 대선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다? 대통령만 잘 뽑아놓으면 그러한 모든 문제는 저절로 다 해결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안일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사태의 엄중한 진실, 87년 이후 지난 30년의 실제 역사의 교훈을 망각시키거나 은폐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결이든 부결이든 탄핵 정국이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면 '차기 권력 문제'를 논의할 주인을 정확히 찾고 바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인은 당연히 지금 거대하게 일어서 있는 국민적 주권 의식, 주권 의지다. 이 국민적 주권 의지에 '차기 권력 문제'를 차분하고 공정하게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야3당과 새누리당 회개파가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방법이 있다. 야3당, 그리고 더하여 새누리당 회개파가 국회에서 시민의회법을 발안하여 통과시키면 된다. 현재 '시민의회법'은 일반 입법 사항이 되기 때문에 단순 과반수 찬성으로 간단히 입법화된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이미 시민의회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이들이 많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일랜드에서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을 논의하고 있다.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는 이미 세계 헌법사, 헌정사의 주요 개념의 하나가 되어 있을 만큼 충분히 검증된 제도다. 시민의회는 국회가 발의하여 소집되는 기구이니 만큼 국회의 긴밀한 협력과 지지 위에서 진행된다. 시민의회 소집 기간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은 시민의회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시민의회는 국회를 보완한다. 국회 내부에서 원만하게 합의하기 어려운 선거법이나 헌법상의 권력구조 개편문제에 대해 소집된 시민들의 합의를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모을 수 있는, 이미 확실하게 검증된 방법이다. 진정으로 공(公)적인 마인드를 가진, 헌법 정신에 충실한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헌법적, 법률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시민의회의 본체는 물론 무작위 선발된 시민의원단이다. 여기에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지도적 힘을 적절히 배합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정당과 시민단체는 시민의회 앞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개헌 방향을 (시나리오 워크숍과 같은) 최선의 방식으로 제안하라. 시민의원들과 한 몸이 되어 같이 토론하라. 정제된 차분한 토론이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이는 시민의회의 기존 사례에서 하나 같이 입증된 바다. 최초에는 여러 안이 병립, 경쟁하지만 논의가 진행될수록 둘로, 하나로 절대다수의 의견이 모아진다. 선의의 철학과 정치사상, 그리고 제도가 모아지는 희귀한 순간이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을 이 모든 과정이 공중파에, 종편에 지상 중계될 것이다. 그렇게 모아진 합의를 국회는 받아서 심의, 의결해 주면 된다. 이로써 국민 속에서 국회는 한 단계 높은 형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야3당과 새누리 회개파가 시민의회를 발안해주기 바란다. '시민의회법' 법안 마련은 국회와 학계, 시민 사회의 몇 사람만 모여 머리를 맞대면 금방 할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 참고할 '시민의회법'들이 여럿 존재한다. 웹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존 시행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그에 대한 해법도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우리 사정에 맞게 약간의 창조적 추가나 변형만 가하면 된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유형의 시민의회가 소집되었고(주로 선거법 개정, 캐나다, 네덜란드, 브라질, 인도, 중국 등), 개헌까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례도 있다(아일랜드). 세계 사상 유례없는 성격의 거대하고 평화로운 주권적 국민 의지가 매주 수백만 씩 출현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볼 때,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시민의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시민의회가 이 땅에 탄생할 것을 예상해 본다.
이 나라에 또 하나 중요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촛불 민의가 여러 지역으로, 도시로, 동네로, 구석구석 확산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렇듯 방방곡곡으로 확산되는 민의는 시민운동 차원의 지역 민회(民會)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가 소집하여 법의 지지와 국가의 후원을 받는 제도 안의 시민의회와 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밑으로부터의 민회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와 시민의회, 그리고 민회가 함께 가는 개헌논의가 된다. '차기 권력 문제'의 가장 바람직한 논의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도, 안철수도, 억울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앞둔 '정치의 주'가 시작됐다. 오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표결될 국회 본회의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질 것이다. 지난 주까지 '촛불 민심'을 앞에 놓고 혼란에 빠졌던 야권도 자세를 다잡고 있다.
지난 주 야권이 직면했던 문제는, 대통령이자 동시에 피의자인 박근혜가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까지도 '자진 하야'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야당은 '스스로 내려오지 않겠다면 탄핵해 주마'라고 나섰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2월 2일 탄핵안 표결 처리 여부를 놓고 야권 내에 이견이 생겼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표결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9일에 하자'고 맞섰다. 결국 신문과 뉴스는 '국민의당 반대로 2일 탄핵 처리 불발'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국민의당은 '탄핵 반대 세력'으로 지목됐다.
탄핵안 표결을 2일에 할 것이냐, 9일에 할 것이냐를 놓고 '언제 하는 게 가장 가결 가능성이 높으냐'의 이치를 따진 게 '탄핵 반대'로 매도된 것에 안철수·박지원 등 국민의당을 이끄는 의원들은 억울해했다. 심지어 현재 국면에서 보면, 9일로 하는 게 결과적으로 나았다. 지난 주말의 거대한 230만 '촛불 민심'을 보고, 흔들리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박근혜가 4월 하야 일정을 밝혀도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관련 기사 : 먼길 돈 非朴 "찬성표 35~40명" 낙관)
국민의당에 비판적이었던 조국 교수조차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 억울한 점이 있다"며 "국민의당은 계속 퇴진·탄핵을 주장해 왔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대표적인 '2일 표결파'였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도 "국민의당이 '탄핵 반대'로 몰린 것은 저도 굉장히 억울하겠다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탄핵에 반대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 지난 일이지만, 지난 주에 국민의당은 왜 '9일 표결'을 주장했나? 이들의 주장은 이랬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려면 200표가 필요하다. 그런데 야당 소속 의원이며 야권 성향 무소속 표를 다 합쳐도 171석에 그친다. 29명이 모자란다. 이 격차를 메우려면 새누리당 비박계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비박계는 11월 29일 박근혜의 3차 대국민담화를 보고 흔들리고 있었다. '스스로 내려오겠다는데 탄핵부터 밀어붙이는 건 부담스럽다. 대통령이 진퇴 문제를 국회에 논의해 달라고 했으니, 1주일을 시한으로 일단 여야 협상을 하자. 만약 친박계 여당 지도부가 무리한 요구를 해서 12월 8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9일 탄핵 표결에는 참여하겠다'는 게 당시 알려진 비박계의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시간을 두고 이들을 설득해서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탄핵이라는 중대 거사를 성사시키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라는 게 국민의당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왜 '2일에 그냥 하자'고 주장했나? 지난 주 시점에서 이들은 3일 촛불집회에 무려 232만 명이 참석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촛불집회 인원 수가 줄어들면, 비박계의 동요는 더 심해질 거라고 이들은 봤다. 비박계 내에서도 김무성 의원 등 일부는 '여야 간 대통령 사퇴 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대통령이 4월에 물러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 탄핵에 동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빠져나갈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 9일에 해도 부결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마찬가지라고 이들은 봤다. 게다가 민심은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하루라도 더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만약 2일에 표결을 했을 때 비박계가 동참하지 않아 탄핵이 무산되면 그것은 비박계를 포함한 새누리당 전체가 책임을 질 일이 된다. 그러면 '촛불 민심'과 함께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길로 나가는 게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 야당으로서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결 가능성을 좀더 높이기 위해 이치를 따진 국민의당이나, 촛불 민심에 좀더 충실하게 호응하고자 했던 민주당·정의당이나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한국에서, 정치란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해 △현실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현실'에, 민주당은 '유권자의 요구'에 좀더 중점을 뒀다.
왼손은 거들 뿐
다 지난 일이라면서도 지난 주의 논란에 대해 길게 설명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야당이 이같은 혼란에 빠진 것은 '민심의 요구'를 모순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면에서 정치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연관된 부분이다.
민심은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한다. 그런데 '하야'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방법이 아니다. '어떠어떠한 경우에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는 법 규정 같은 것은 없다. 제도적 방법은 탄핵뿐이다. 그런데 탄핵은, 설사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해도 대통령이 좀더 버틸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 낙관적 관측에서도 1월 말까지, 비관적으로 보면 최장 180일 동안 진행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박근혜가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를 원하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탄핵 따위 절차는 필요 없다. 국회의원들도 전원 광화문으로 나와 박근혜 즉각 퇴진 요구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2일에 탄핵안을 표결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그런데 지난 3일 전국 촛불집회에서는 '2일 탄핵안 표결을 성사 못 시켰다'는 이유로 제도 정치권 거의 전체가 난타를 당했다. 안철수는 대구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안철수는 빠져라"는 등 야유를 듣고, 사회자로부터도 "흔들리지 말고 탄핵에 나서라"는 당부까지 받았다. 문재인도 애초 광주 촛불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할 예정이었으나, 탄핵 표결 연기에 실망한 주최 측이 '정치인들의 자유 발언을 제한하겠다'고 나서 준비했던 발언을 하지는 못했다. 다만 문재인은 집회 사회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말할 기회는 주어졌다.
이를 모순이라고 본다면, 사실 황교안 총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에서 확인된 민심 중 하나는 황교안이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황교안은 직무 대행을 맡게 된다. 일각에서는 '탄핵부터 하고 총리를 바꿔도 된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 직무 대행자인 총리가 자신의 후임자인 차기 총리를 임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은 부정적으로 본다. 직무 대행은 현상을 유지·관리하는 업무만 할 수 있고, 인사 등 새로운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런 점 때문에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 사태를 크게 우려하는 몇몇 야당 의원들이 '탄핵을 하더라도 총리부터 바꿔 놓고 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자 이들은 '박근혜·새누리당과 총리 자리 놓고 협상이나 하는 정치꾼'들로 찍혔다.
개헌 문제도 그렇다. 지금 국면에서 개헌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는 데에는 야권과 시민사회는 대체적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JTBC 뉴스 인터뷰에서 개헌을 언급한 박지원은 대번에 조리돌림 수준의 욕을 먹었다. 하지만 사실 문재인 등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개헌 자체에는 찬성 입장이다. 다만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개헌 등 다른 문제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박지원도 개헌을 '지금 당장 하자'고 주장한 건 아니었다.) 만약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라면? '대통령 거취 문제 해결'이라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한 정치인들 일부는 바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나아가서는 차기 대선 문제 역시 그렇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활발하게 나서서 발언을 하면 '자기가 대통령 되고 싶어 저런다'고 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 답답하다며 '고구마'라는 조롱을 받는다. 문재인은 자신이 '고구마', 성남시장 이재명이 '사이다'에 비겨진다는 말에 "사이다는 금방 목이 마르다.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2일 TBS 라디오 인터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탄핵안이 가결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 정당은 차기 대선 준비를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5일 <한겨레> 성한용 칼럼)
이를 '모순'으로 인식한다면 그야말로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냉혹하게 말하자면, 이것을 '억울하다'고 받아들이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 대선 주자라고 불리는 '큰 정치인'들은 이미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는 5일 밤 JTBC <뉴스룸>에 나와 '우리는 9일 표결을 주장했을 뿐 탄핵에 반대한 적이 없다'고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미숙했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문재인은 같은 날 밤 '국민과 함께하는 여의도 촛불' 집회에 나와 "황교안 총리는 권한대행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라고 밝히면서도 "총리 문제 때문에 탄핵을 늦춘다든지 탄핵 전선을 혼란스럽게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억울'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민심이라는 것을. 대통령은 저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 추운 겨울날에 232만 명이 거리로 나왔는데도 왜 물러나지 않는지 촛불을 든 대중은 '억울'하다. 그러면 국회라도 나서서 당장 대통령을 끌어내려 주면 좋겠는데, 표결도 다음 주에야 한다고 하고, 국회에서 가결돼도 최소 두 달은 가야 헌재가 결정을 내린다니 이것도 억울하다. 기껏 탄핵이 가결돼도 직무대행이 황교안이라니 너무나 억울하다.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하기는 했지만, 주권자의 의사를 표현할 방법은 사실 4년마다의 총선, 5년마다의 대선 이외에는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정도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국민소환제 등의 보완 장치가 있었거나, 정당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억울하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정리하자면, 대중이 '즉각 하야'를 요구하는 지금 국면에서 탄핵 등 제도정치적 방안은 '거들 뿐'이다. 대통령이 끝까지 버틸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만약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촛불 민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민심은 제도 정치를 통한 탄핵을 보조적 수단으로 격하시키고 직접적 행동을 통해 대통령의 사퇴를 계속 압박하는 길로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일견 모순돼 보이는 민심의 질타도 이해가 된다. 어차피 보조적 수단에 불과한 탄핵마저도 제대로 못 한다면, 도대체 정치의 역할은 뭐냐는 것이다.
제도정치에 대한 민심의 신뢰는 이미 너무나 낮은 상태다. 5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정당 지지도는 동반 하락했다. 이들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하는 90%(갤럽 조사), 하야·탄핵해야 한다는 80%(중앙일보 조사)의 여론을 대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당 정치의 전통이 취약한 한국의 상황까지 감안하면, 이들 80%의 유권자들이 문제 해결을 정치에 믿고 맡길 만한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9일 탄핵안 표결은 '최소한'이다. 정치가 유권자들의 억울함을 풀고 싶다면, 탄핵안을 우선 가결시키고 봐야 한다.
이후에도 대선주자 개인의 이해관계, 각 정당 간의 경쟁관계를 앞세워서는 난망하다. 여야 대선주자 지지도를 다 합쳐도 80%가 안 된다. 야권 대선주자 문재인·안철수·이재명·박원순·손학규 등의 대선주자 지지도를 다 합쳐도 60%가 안 된다. (11월, 갤럽 조사) 이들이 모두 나서서 손잡고 뭔가를 같이 한다고 해야 '촛불'이 지지를 보낼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정도일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요즘 정치권은 겨우 가능한 것만 하고 있지만 진짜 정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이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했다는 말이다.
다만 이들 정치인들을 부리는 '주인'의 입장인 유권자 대중도, 스스로의 요구를 현명하고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물론 더 좋을 것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유명한 대사다. "왼손은 거들 뿐." 현재 국면에서 지금까지 정치는 '왼손'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힘을 빼야 한다. 반면 골을 넣는 것은 오른손이다. 겨냥을 정확하게 하고, 힘차게 던져야 한다.
광장이 권력…큰 그림을 그려라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 정치 혁명의 목표가 되었다.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던 국민의 구호가 진화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는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 '청와대 유폐'에서 벗어나려는 박근혜의 3차례 '꼼수' 담화가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성난 민심을 묵살하는 박근혜는 스스로 역사의 단두대에 올라갔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길을 제 발로 걸어가고 있다. 이제 거국 내각, 퇴진, 사면의 가능성은 모두 사라졌다. 자업자득이다.
광장의 혁명적 열기는 어디로 갈 것인가?
청와대와 광장이 대치한 '이중 권력'의 상태를 거치며 중간 지대에 있던 정치권의 계산은 이제 끝났다. 야당에서 "질서 있는 퇴진"과 "명예로운 퇴진"을 말한 사람들도 모두 탄핵과 즉각 퇴진을 주장한다. 새누리당 친박은 야당 입장을 수용해 "4월 퇴진"을 말했지만, 6차 촛불집회에 놀란 비박의 탄핵 표결 참여로 마지막 비명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만약 탄핵이 부결되면 새누리당은 거센 민심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촛불집회는 국회가 아니라 광장에서 혁명을 완수할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은 광장으로 가고 있다.
광장의 혁명적 열기를 이끌었던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은 개헌으로 역사적 승리를 확인했다. 의회제와 대통령 직선제라는 권력 구조 개편으로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그러나 5.16쿠데타와 노태우 민정당 노태우 후보 당선으로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갔다. 당시 야당은 구파와 신파, 김영삼과 김대중으로 분열되었다. 지금도 역사의 데자비가 어른거린다. 거대한 보수 세력은 그대로 건재하고 야당은 대선에 골몰하고 있다. 탄핵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정국이 교착될 가능성이 커지는 조건에서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의 재판을 피하려면 지금 야당은 촛불 민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헌법 개혁과 사회경제적 민주화
광장의 촛불은 단순한 감정 표출을 넘어 근본적인 현실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정유라 부정 입학 때문에 분노한 것으로만 보는 것은 어리석다. 시민의 가슴 속에는 한국 사회가 '헬 조선'으로 변해버린 한국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4대강 사업, 세월호 참사, 권력형 비리로 만신창이 된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바꾸길 요구한다. 탈규제, 부자 감세, 노동악법,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무너져가는 민생을 되살리기를 기대한다.
지금 정국의 화살은 탄핵을 겨냥하지만, 정치권은 장기적으로 헌법 개혁과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모델을 넘어선 새로운 국가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로 다시 나타난 정경유착이라는 박정희의 망령만큼 한국을 지배하는 자유 시장이라는 거대한 유령과 싸워야 한다. 정치권은 권력 구조 개편을 넘어 공화주의의 가치를 강화하는 헌법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고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행정부의 입법 발의권, 예산 편성권, 행정 감사권을 입법부로 이양해야 한다. 선거구제 개혁, 비례대표 확대, 정당 활동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광화문 광장의 시민 발언대에서 가장 감동적인 연설을 고등학생들에게도 권력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의 리더십
광장의 촛불은 거세지고 있지만 아직 개헌 또는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지는 낮다. 정치권이 과도 정부와 국회 개헌 특위를 구성할지도 불투명하다. 정치권의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보수 세력이 가장 취약한 시기에 근본적 국가 개혁을 미룬다면 역사적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시민사회는 즉각 각계각층의 시민대표 회의를 만들어 국가 개혁의 새로운 요구를 표출해야 한다. 야 3당도 탄핵과 조기 대선을 넘어 국가 개혁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국회와 시민사회가 연결되는 새로운 네트워크 권력 기구를 창안해야 한다. 12월 9일은 대통령 탄핵의 날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탄핵 이후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민주화 항쟁 1~3세대’가 본 ‘11월 항쟁’
“‘분노의 폭발’보다 더 무서운 ‘분노의 자제’로”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2.07(수) 11:05:43 | 1416호
이번 ‘11월 항쟁’은 세대를 뛰어넘은 범국민적 저항운동이었다. 수많은 이들을 촛불 하나 들고 광화문으로 모이게 한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11월 항쟁에 대한 다양한 세대별 의견을 모아봤다. 1세대인 ‘4·19세대’의 송복 연세대 교수가 정통 보수층을 대변한다면, 2세대인 ‘6월 항쟁’ 세대의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진보 성향의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다. 3세대인 성균관대 4학년 김영길씨로부터는 11월 항쟁을 바라보는 102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4·19세대(1세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광화문 집회는 사이비 보수·진보에 대한 시민의 분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연합뉴스
“경제는 2류에서 1류로 올라섰고,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도 선진국 수준에 다다랐는데, 유독 정치만 5류·6류로 치달았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후진적인 한국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엄중한 경고라고 봐야 합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수층의 위기로 봐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답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보는 보수층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송 교수도 “지지층을 ‘배신’한 것이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라고 설명했다. “보수라면 경험적이면서, 점진적이고, 도덕적이면서, 성실해야 한다는 ‘4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모름지기 정치권력은 ‘공공재(公共財)’인데 그걸 사유화했다는 데 시민들이 분노하는 거죠. 지금의 정치권은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가 뒤섞인 구도라고 보면 됩니다.”
송 교수는 ‘4·19세대’다. ‘사상계’ 기자였던 송 교수는 4·19혁명 당시 서울 원남동사거리에 있던 동대문경찰서 부근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4·19혁명과 6월 항쟁이 독재권력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면 이번 광화문 시위는 ‘분노의 자제’”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성숙한 시민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된 것도 시대 변화를 요구하는 합리적 보수층이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어버이연합 등 일부 보수단체에 대해서도 송 교수는 “법치국가라는 이념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박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방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력도 그런 관점에서 ‘사이비 보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질서 있는 퇴진’이 우선시돼야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탄핵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항쟁 세대(2세대)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생활의 빈곤함이 4050세대를 광화문으로 모이게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시사저널 임준선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586 운동권 세대’다. 전대협 1·2기 의장을 역임한 이인영·오영식 전·현 민주당 의원이 대학 후배다. 1986년 5·3인천항쟁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김 교수는 그해 8월 구속돼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때문에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김 교수는 “당시는 군사정권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지금과 같은 평화적 시위는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그나마 1985년 12대 총선에서 김영삼 총재가 이끈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한 뒤, 학내 집회가 가능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 대중들은 다시 광화문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거 투석전을 벌였던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여,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30년 전 상황이 오버랩돼서인지 11월 항쟁을 바라보는 김 교수의 심정은 복잡하다. “이번 시위에서는 비정규직·교육대란·노인자살 등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가 동시에 터졌다고 봐야 합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대중의 불만이 커졌던 것이죠.”
최근 SNS에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국 집회에 나간 것은 처음”이라는 4050세대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의 4050세대는 전후(戰後) 세대이면서 동시에 1980~90년대 경제 호황을 누린 ‘축복받은 세대’다. 어떤 분노가 이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한 걸까? “직장인들은 정리해고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들은 언제 사업이 망할까 걱정합니다. 자녀 교육비 부담은 늘고, 집값 대출에 전전긍긍하는 게 지금의 4050세대죠. 그런데 일부 세력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김 교수는 이번 11월 항쟁을 2011년 미국에서 발생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의 ‘한국판 버전’이라고 주장했다. 탐욕의 월가에 대한 분노가 대중을 2011년 뉴욕 맨해튼으로 모이게 한 것처럼, 2016년 11월 광화문광장에 모인 대중은 ‘상위 1%로 대표되는 특권층과 재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주화를 경험했지만 졸업 후 마주한 현실에서 6월 항쟁 세대는 기득권에 안주했다”면서 “입시 지옥과 취업난을 걱정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4050세대의 걱정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11월 항쟁 세대(3세대) 김영길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금수저’ 정유라 SNS 글 보며 대학가 분노”

김영길 성균관대 국문과 4학년 © 시사저널 임준선
김영길씨는 1년 전부터 전국 대학생 조직 ‘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해 왔다. 조직 내에서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집행위원장이다. 지난 1년간 주요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는 학내에서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선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런 대학가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술렁거리고 있다. 대학마다 동맹휴업을 결의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고 있는 것이다. 김씨 자신도 1년 만에 변한 주변 모습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정유라씨가 SNS에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라고 올린 게 컸던 거 같아요. 학자금 대출 이자도 못 갚아 허덕이는 친구들이 제 주변에 얼마나 많은데요. 정씨가 ‘금수저’로 태어난 걸 자랑한 것에 대해 다들 분노합니다.”
시국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상아탑은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취업과 학점, 등록금 문제가 자리 잡았다. 이들에게 정치는 한가한 말장난이었다. 김씨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이걸 어디다 쏟아내야 할지 다들 몰랐는데,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가 대학가 분노의 해방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11월 항쟁 이후 학내에 ‘소외된 약자를 배려하자’는 관심이 커졌다. 인터뷰 동안 김씨는 ‘부끄럽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 지식인들이 ‘부끄럽다’고 말한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11월 항쟁은 정치권·정치검찰·부패언론이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능했다는 것을 과연 새누리당 사람들이 몰랐을까요? 그렇다면 직무유기죠. 핵심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을 당선 이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을 보면서 대학가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더였다는 게 부끄럽네요.”
새 대통령 뽑으면서 새 국회의원도 뽑는다면?


ⓒ프레시안(최형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