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자칫하면 선무당이 나라 잡는다
개헌? 자칫하면 선무당이 나라 잡는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민정당의 노태우 씨가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간접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지명 대회를 치렀을 때 4.19 학생 혁명을 방불케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거국적인 민주 항쟁(1987년 6월)에 굴복하여 대통령 직접 선거와 김대중 씨 정치 복권을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이 나온 것이다.
이어 헌법 개정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경북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의 노태우 씨의 정당, 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적인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 씨 중심의 야당,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약간 개혁적인 민주화 세력인 김대중 씨 중심의 야당, 충남을 기반으로 하는 구 군부세력의 공화당 잔존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김종필 씨 정당 등의 4개 정치 세력이 합의를 보아 이른바 '87년 체제'를 뜻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직선제이지만 대통령의 비상 대권을 폐지하는 등 비민주적인 조항을 삭제했으며, 헌법위원회를 헌법재판소로 승격시키는 등 향상도 있었다. 일반이 묵과하기 쉬운 것은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개편이다. 1선거구 2인의 선거 제도를 1선거구 1인의 선거 제도로 환원한 것은 중대한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 제도 개혁 협상에 있어 여당 측과 김영삼계 야당, 김대중계 야당 등 3파는 당초 1선거구 2인을 중심으로 하되 큰 곳은 3인, 작은 곳은 1인으로 하는 이른바 '1, 2, 3 선거구제'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합의 후 김영삼 씨가 자파 세력의 우세를 믿어서인지 완전 1인 1선거구 제도로 하자고 태도를 바꾸어 그렇게 된 것이다.
(88년 4월의) 총선 결과 김영삼계가 김대중계에 눌려 오히려 제3당이 되었다. 그것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곧이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씨 등 정당의 3당 합당을 촉진하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헌법 개정과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등을 종합하여 '87년 체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 성립 후 30년쯤 지나면서 우리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를 경험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 정권의 연장이지만, 여소야대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 상황 속에서 부정 축재 문제 말고는 비교적 무난히 지냈다.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 척결, 전두환-노태우 구속, 금융 실명제 실시 등 반쯤 혁명적인 개혁을 시행했다.
김대중 정권은 미국과 중국 등 국제 관계의 제약 속에서 남북한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여는데 진일보했다. 노무현 정권은 본인의 진실성과 지방색 타파의 열의로 대통령이 되기는 하였으나, 본인의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본래가 정주영 씨의 아류이기도 하지만, 토목·건축 등 경험만 믿고 대운하란 어설픈 공사를 추진하는 등 엉성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이비 목사에 현혹되어 때로는 주술적 형태를 보이는 등 완전히 실패한 정권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총탄에 잃은 트라우마에서 그런 유혹에 빠진 가련한 인간상을 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30년 된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고 개헌을 주장하며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위태로운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설피 개헌을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 중심제의 굳건한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헌론자들의 주장을 보자 첫째로 내각 책임제 주장이다. 우리는 제2공화국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정당 정치가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 있다. 지난 총선 때 돌연히 거대한 안철수의 제3신당이 탄생하는 등 매우 안정적이지 못한 정당 정치가 아닌가.
이원 집정부제 주장이 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갈등으로 제대로 기능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제2공화국 때는 순수 내각 책임제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심한 갈등을 벌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5년 단임이 너무 단기간이라고, 예를 들어 미국처럼 4년 중임제도로 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대는 매우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 시대로 농경 사회나 단순한 산업 사회가 아니다. 그러한 급변하는 시대에 8년은 너무 길다. 지금의 임기가 합당하다고 본다. 물론 개헌 협상 당시의 5년 단임제 합의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씨 등 모두에 대통령이 될 기회를 주기 위한 타협이었지만 말이다. 또한 그동안의 대통령들을 볼 때 중임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시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굳이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 중간에 중간 선거라고 의원 선거가 있지 않은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의 날이기도 하며 일대 정치 정화의 계기이기도 하다. 굳이 일치시켜 그런 기회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밖에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하니 분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 뚜렷한 개정 방향을 제시하는 측은 없다. 그러나 법률 개정으로도 얼마간의 분권의 실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지방 분권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세수 배분의 문제가 주가 아닌가. 법률로서 다룰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개헌 논의는 무언가 있는 듯 요란하고 시일을 끌겠지만,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결말이 될 것이 눈에 선히 보인다. 우리는 전쟁으로 치닫는 듯한 남북한 관계의 완화 및 평화적 해결, '부익부 빈익빈'의 빨대 구조에 심화되기만 하는 빈곤 문제의 개선 등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개헌 문제에 말려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듯 소란만 피우며, 결과적으로 그러한 심각한 문제를 간과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개헌을 하려면 기본권 조항의 선진화 등 고쳐야 할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시점에서 개헌에 착수할 절실한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개헌할 내용이 있다'는 것과 '개헌할 적절한 시점이냐'는 두 차원의 작량의 문제이다.

▲ 세종시에 문을 연 대통령기록전시관. ⓒ연합뉴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제도 개선의 면에서 보자. 앞서 개헌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이 진행될 경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바와 같은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정의 총책임자를 과반수 국민의 지지도 못 받는 사람으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후보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를 상대로 2차 투표를 하여 득표순으로 대통령을 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정치에의 길이다.
또한 국회에서 비례 대표 의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 비례 대표의 문제는 개헌 사항이 아니라, 법률 개정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의원의 반수는 지역 선출로, 반수는 비례 대표로 하고 있는데 당장 그렇게까지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비례 대표 확대에 최선의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0명의 비례 대표 의원 수를 100명으로 하자는 대단히 참신하고 지혜로운 제안을 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여야 협상 과정에서 비례 대표 수는 오히려 거꾸로 몇 석이 줄고 말았다.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과 농촌 지대의 인구 과소화 현상 때문에 서너 개 군을 합쳐야 한 개 선거구가 된다는 난처한 지역구 분할의 사정도 무시하기가 참으로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국회의원의 정수 문제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수많은 국가들의 의원 수를 조사해보니 우리도 상하원 합쳐 500명 수준의 의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날에 국회의원을 10만 선량(選良)이라고 했다. 지금의 인구에 비추어볼 때 얼추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500명까지 확장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30명이나 50명을 확장하여 그것을 모두 비례 대표 몫으로 하자는 것이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이고 다수는 결정의 원리"라는 명언이 있다. 가령 1선거구 1인의 국회의원 선거 제도에 있어서 약간의 표차는 당선과 낙선을 가른다.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전 유권자가 던진 표 가운데 30% 내지 50% 정도의 표가 죽은 표 즉 사표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국회의원 전원을 예를 들어 이스라엘처럼 비례 대표로 선출할 경우 사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례 대표에만 의존할 경우, 정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지역 대표는 그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 방식을 목표로 꾸준히 비례 대표의 확대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민의를 보다 더 충실히 정치에 반영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다음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인 남북 관계를 생각해보자. 우선 말해둘 것은 북한 체제의 실패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경제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수많은 탈북 난민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독제 체제 아래서의 인권 상황은 비참하다. 매년 거듭되는 유엔(UN)에서의 북한 인권 탄압 규탄 결의안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건재한 북한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중국은 6.25 한국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그들 국경 주변의 완충 지대를 보존하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치르며 싸웠다. 모택동(마오쩌둥)의 아들까지도 참전하여 희생되었다. 중국이 그런 북한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여 중국의 동북방에 있는 동삼성(길림, 요녕, 흑룡강성) 옆에 성이 하나(북한) 더 있다는 동사성이라고 생각하여 지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라는 것은 몇몇 강대국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다만 핵전쟁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중소국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려고 강대국 간에 합의하여 핵무기 개발 금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대국들은 중소국에 대한 핵무기로 인한 위협을 방지해줄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만약 그런 군사적 위협을 방지해 주는 보장이 없다면 중소국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북한과 미국 간에는 클린턴 행정부 말, 관계 개선의 좋은 조짐이 있었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의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클린턴 대통령마저 평양 방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반대하여 아깝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과 군수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체니 부통령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을 '악의 축'이라고 악마화하였으며, 핵무기가 없는 이라크를 무조건 침략하여 때려 부수기도 했다. 이라크 침략은 아들 부시의 '푸들 강아지'라고 불리게 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지원도 받았는데, 석유 이권을 확보하고 이스라엘에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러한 '악의 축'의 악마화 정책이 지금도 계속되고 군사위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질 스타인 녹색당 후보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뉴딜정책'을 실시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군사 산업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경고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산 복합체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군사와 외교 정책까지도 지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군산 복합체에 그들을 유지하고 팽창시킬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고양이에게는 갖고 놀 쥐가 필요한 것 아닌가. 거칠게 결론지어 말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그러한 요인이 게재되어 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정책에도 중국에 대한 견제 목적과 아울러 그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휴전이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북한과 평화 조약은 물론 불가침 조약도 맺고 있지 않으며, 북한 주변에서 가공할 무기를 동원하여 군사 훈련을 계속하고, 심지어는 북한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참수 작전 운운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임기 내내 북한과의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다시피 하였다.
박근혜 정권은 '통일 대박' 운운의 요상한 이야기를 하며 남북 관계를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영어로 '브링크맨십(brinkmanship)'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 아슬아슬하게 접근하여 펼치는 전략은 매우 위험하여 고도로 유능한 군사, 외교 전략가들만이 펼칠 수 있는 전략이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마추어가 함부로 택할 전략은 아니다. 국민은 박근혜 정권의 극단적 대북 정책에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남북은 공존하며 대화로 앞날을 열어갈 수밖에 없다. 권총을 든 강도에게 권총을 내려놓으면 안전도 보장하고 원조도 하겠다고 한들 설득이 되겠는가. 안전도 보장하고 원조도 하는 절차를 진행하며 설득해, 종국에는 권총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을 택하여야 할 것이다. 같은 이치로 북핵의 폐기를 선행 조건으로 삼지 말고, 미국은 북한을 승인하고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며 경제 협력을 하는 등의 절차를 병행하면서 핵무기 폐기 협상을 진행해 종국에는 핵무기를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평화 성취 노력, 그리고 남북한 간의 화해 노력이 우리가 힘써야 할 초미의 제1과제임은 분명하다. 그와 같이하여 남북한 간, 미국-북한 간의 평화가 이루어질 때 북한도 점차 그들의 정책을 변경하여 아직도 세계에 잔존하는 공산 국가인 중국, 베트남, 쿠바의 예에서 보듯이 점차 경제에서의 자유화의 길을 걸으며 정치적 탄압을 완화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30년 또는 50년 안에 남북 분단은 봄날의 얼음 녹듯이 해소될 것이 아닌가.
지난한 과정일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장기적인 전망에 희망을 걸어야 할 줄 안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그와 같은 남북한 간 화해와 타협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결단을 감히 내리는 용기를 가진 정치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아시아 회귀 정책이라고 말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온 미국의 오바마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고 더 강화하겠다는 클린턴 후보가 패배하고 미국 중심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는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써 한반도의 사정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미국 국제 관계 전문지에서 '빙하를 움직이기 위하여'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훌륭한 논문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남북한 관계의 극한적인 군사적 대치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이끄는 일은 마치 움직이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시피 한 빙하를 인력으로 움직이는 일과 같이 지난한 일일 것이다.
(이 글은 잡지 <씨알의 소리> 송년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와 잡지사 측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문재인, 반대 아니라 '혁신' 프레임 짜야
손석희 진행자의 개헌에 관한 질문에, 문재인 전 대표는 '내가 본래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는 사람인데, 지금 개헌을 추진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차기 대선 이후에 개헌을 논의하는게 옳다고 본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다. 이런 얘기는 문재인 전 대표가 최근 여러 언론을 통해서 하고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얘기 자체로 보면 틀린 얘기가 아니다.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고, 빠르면 내년 봄 이전에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그 전까지 개헌을 한다면 그것은 졸속 개헌이 될 수 밖에 없다.
시민사회가 요구해 온 직접·참여민주주의 확대, 지방 분권과 자치 확대 등의 내용을 담아내기는 어려운 개헌이 될 수밖에 없고, 오로지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제로 바꾸는 내용의 개헌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얘기는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안이한 얘기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입에서 '이제는 사람의 교체로는 안 되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이런 얘기에 동조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 개편 움직임까지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론적인 답변만을 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김무성같은 정치인이 조기대선 이전에 개헌을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즉시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개헌을 매개로 정계 개편의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주장하는 것처럼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세력을 모두 '개헌'이라는 강력한 명분으로 모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이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세력'이고, 문재인 전 대표는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인 것처럼 프레임을 짜 보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현 시점 개헌 반대, 차기 대선 이후 개헌'이라는 원론적 얘기만 하는 것은 자칫 스스로를 '반대' 프레임에 가두고, 상대편에게 '혁신'이라는 이미지를 빼앗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이 김무성 전 대표 등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미국 대선에서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내세워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얻었던 것처럼, 기득권 정치 세력에 속하는 이들이 '시스템 개혁'을 주장하며 살 길을 찾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방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정치 개혁을 해 보겠다는 대선 후보라면, 김무성 전 대표가 주장하는 개헌은 '시스템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하겠다는 것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진짜 시스템 개혁의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상대방이 짜놓은 프레임에 갖히게 될 것이다.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단순 전환하는 것은 시스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의원내각제이지만, '제왕적 총리'가 정치를 좌우했던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떠올려보면 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12년 동안 집권하면서, 영국 시민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일본의 아베 총리 역시 장기 집권을 도모하면서 원전 재가동 등 독단적 정치를 펴고 있다.
기가 찬 것은 이들이 과반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마거릿 대처가 속한 보수당은 1979년 총선에서 43.9%를 얻는데 그쳤지만, 지역구 1위 대표제 선거 제도 덕분에 53.4% 국회 의석을 확보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보수당을 선택하지 않은 56% 유권자들의 의사는 무시당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속한 연립여당도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 46% 남짓 득표했지만, 잘못된 선거 제도 덕분에 68% 의석을 확보했다.
따라서 문제는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선거 제도이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스웨덴, 덴마크 등의 국가들은 단순히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 제도로 택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당들이 국회에서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선거 제도가 이렇게 될 때에, 의원내각제도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연합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정책을 중심으로 국회 의정 활동이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300명 국회의원 중 253명을 지역구에서 선출하는 선거 제도를 놔두고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는 것은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아마도 지금 선거제도 하에서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면,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들끼리 자리를 나눠먹는 '권력 나눠먹기'가 성행할 것이다. 총리와 장관 자리를 나눠먹기 위한 이합집산이 거듭될 것이다. 호남당, 영남당만이 아니라 충청당, 강원당도 생길 것이다. 지역구에서 당선이 가능한 기득권 정치 세력만이 국회를 채우고, 세대 대표성, 계급 계층 대표성은 상실한 국회가 유지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김무성 전 대표 등이 의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대의 프레임이 아니라, 혁신의 프레임을 짜야 한다. 광장에 190만 명이 모이더라도, 내년 대선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의 정치가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보장도 없다.
시스템 혁신의 깃발을 엉뚱한 쪽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진짜 시스템을 바꾸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시민들의 직접·참여민주주의 확대, 획기적인 지방 분권, 특권 개혁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권력이 제대로 분산되고, 진정으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을 실현할 수 있다.
지금은 그 기로에 놓여 있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이라면, 여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개헌은 퇴행이고 반동이다
현재의 개헌 주장은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 아니 반동(反動)적이기까지 하다.
봄이 가니 여름이 온다는 당연한 얘기처럼 언젠가 개헌은 필요하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분산시키는 개헌은 우리시대의 과제이다. 그러나 왜 지금이어야 하나?
권력분산의 대안으로서의 개헌은 내각제부터 이원집정부제까지 이해 당사자간 입장의 차가 너무 크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들이 공약을 통해 국민과 합의하고 차기 정권에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분권의 초보적 첫걸음인 총선에서의 소선거구제 개선과 비례대표제 확대조차 거부하던 자들이 갑자기 분권을 이야기 한다.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시급한 것은 대통령에 의해 방치되고 저질러진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을 단죄하기 위해 신속히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조기 대선으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다.
시급히 부정선수를 실격처리하고 재경기를 치러야 할 때인 것이다. 개헌은 자기 팀에서는 경기에 뛸 마땅한 선수가 없으니 관중석의 응원 점수로 승자를 정하자는 격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궤변이다. 조기대선에 놀라 괜한 본전 생각으로 주판알 튕기지 말자. 준비가 되어도 안 되어도 그것 또한 운명일 뿐이다.
무엇보다 개헌이 갖는 정치적 퇴행과 반동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개헌을 주장하는 자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기 보다 지역과 계파라는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이나 원로 중진 정치인인 점은 우연이 아니다.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권력의 중심을 의회로 옮기는 것은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정치의 책임성을 높이고 정당의 역할을 높일 수 있는 안정적 권력체제이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변화가 어렵고 정치체질이 보수화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영국이 한국보다 초선 진출이 낮고 재선 및 다선위주라는 사실의 의미를 잘 새겨보아야 한다.
내각제는 소선거구제를 대신해 중선거구제 또는 대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다. 선거구가 넓어지면 본 선거에서는 얼마나 알려져 있는가, 즉 명망성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미 의원에 진입하여 지역기반을 다진 현역 중진의원에게 유리할뿐 정치신진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또한 정당의 공천에서는 계파와 지역기반이라는 기득권세력의 입김이 보다 강화되는 구조가 된다.
현재 한국의 야당이 일하는 다수국민, 여성 등 사회적 약자가 충분히 진출한 상황이 아니고 여당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대표자들이 아닌 성장과 안보에 기댄 극우들이 장악한 상황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내각제는 여야를 불문하고 지역, 계파, 이념의 파벌을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들이 다수의 국민들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는 사다리 걷어차기 일뿐이다.
현재 내각제 개헌은 분권의 깃발을 들었으나 본질은 낡은 기득권 정치세력의 정치지분 나눠먹기 일뿐이다. 또다른 역사의 퇴행이고 반동일 뿐이다. 개헌 추진 세력들은 대통령제 문제점에 목청을 세우기 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을 대변하는 튼튼한 정당을 먼저 준비하고 있는가를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개헌의 진정성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개헌주의자들이 먼저 앞장서 대통령 퇴진과 탄핵의 촛불을 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