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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운동이 '3차 시민혁명'인 이유 - '광화문 항쟁',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일취월장7 2016. 11. 21. 11:18
박근혜 퇴진 운동이 '3차 시민혁명'인 이유
[민교협의 정치시평] 2016년 새로운 시민혁명의 고비에서
    
2016.11.19 09:39:42

최근 한국사회의 격동은 우리 역사에서 또 한번의 시민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실감을 전해준다. 지난 토요일 서울 도심에 백만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하여 촛불 파도로 장관을 연출했으며,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함성이 광화문 광장을 넘어 북악산에 메아리쳤다. 거리 곳곳에서 행진하는 시민들은 서로 마주보며 환호하고 자유 발언이 속출하는 토론회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이 대규모의 촛불집회의 목적은 헌정을 유린한 위정자들을 규탄하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지만 시민문화 속에 응축된 에너지가 분출하는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혁명적 사태를 촉발한 일차 원인은 박근혜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권력의 사유화다.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 측근들이 연설문 수정만이 아니라 중요한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범법행위가 단죄되고 대통령 자신도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것은 실정도 실정이거니와 자신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국기문란을 일상적으로 저질러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권 퇴진 운동은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도 빈발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대통령의 행태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 구조까지 뒤흔든 적은 없었다.  

검찰 수사와 앞으로 있을 특검 및 국정조사를 통해서 그 위법 행위가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대통령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판단력에 심각한 불신을 받는 사람에게 군통수를 비롯한 국가의 안위를 맡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백만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일부 여당까지 포함한 정치권의 퇴진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구상하고 있는 '질서 있는 퇴진'은 대통령의 하야선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당장의 해법이 될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여건에서 당장 강제로 끌어내릴 방도가 없다면 가능한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  

그럼에도 야당은 탄핵을 추진하는 경우 시간적 지연, 헌재에서 부결될 가능성, 현 각료진의 유지, 여론의 역풍에 대한 우려 등을 들어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같은 미온적인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탄핵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여당 일부와 청와대의 버티기와 병립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공학적인 고려도 통치자격을 상실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넘어설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저지른 일은 우리 헌법의 정신에 따라 탄핵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자진 퇴진을 거부하는 이상 정치권은 즉각 탄핵소추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시민혁명의 모습으로 대두하고 있는 이 사회적인 힘이 어떻게 출구를 찾고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현실정치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당장에는 진상을 규명하고 이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눈감아서는 안 되는 사실은 그간의 보수 집권세력의 실정과 오만, 민주주의 퇴행, 부패와 기득권구조의 공고화로 인해 민중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현실이 촛불집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의 징후는 지난 총선 당시 무력하고 분열된 야당에게 뜻밖의 승리를 안겨준 민의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폭로가 대중의 정서에 불을 지른 저변에도 바로 이 변화의 흐름이 깔려 있다. 시민들의 이번 대규모 촛불시위는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탄압 등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자격없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고, 최순실 무리의 행태 자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오늘의 시민혁명 흐름이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소추되거나 혹은 2선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종식되어서도 안되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이번의 시민혁명은 한국 역사에서 삼세번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즉 현대사에서 시민의 직접참여는 1960년의 4월 혁명을 낳았고 1987년의 6월 혁명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획을 그었다. 역사상 시민혁명을 야기한 민중적 요구는 동일하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 경제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근본에서 위협하고 있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4월 혁명은 학생들의 주도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혁명을 실천하는 데 미온적인 보수정권을 낳았고 곧이어 군부쿠데타로 그 이념자체가 부정당하였다. 6월 혁명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탄생의 기틀을 세웠으며 형식적 민주주의의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소위 '87년 체제'는 애초 군부 기득권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구축되었던만큼 늘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결국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세력이 연속 집권하기에 이르면서 민주주의는 퇴행을 겪고 기득권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2016년 11월 우리 사회는 세 번째의 시민혁명이 움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유신독재의 시기에 영부인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은 지금도 남아 있는 유신체제의 잔재와 적폐를 청산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박정희 이래로 부추겨지고 왜곡되어온 영호남 대립구도를 통한 패권주의도 변화의 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앞으로 시민들의 변화욕구가 어떻게 분출될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의 미완의 시민혁명을 한단계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는 것이다.   

60년대 시인 김수영은 4월 혁명이 일어난 한 달 후 쓴 시 <기도>에서, 뱀이나 쐐기나 쥐나 살쾡이가 득세하는 정글과 같은 사회 속에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살쾡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고 기원하였다. 현실 속에서 혁명은 그만큼 난관을 겪게 마련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순수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대면하면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김수영은 이후 혁명의 배신을 목격하면서 소시민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자성하는 빼어난 시들을 썼다. 이제 50여년의 세월을 넘어서 우리는 다시 시민으로서의 위엄과 지혜에 바탕을 두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순간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부역자'도 색출해서, 옷 벗기자
[서리풀 논평] 지금 장차관과 비서관들이 해야 할 일
    
2016.11.21 07:24:51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황당함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고백한 일만 하더라도 상식을 한참 벗어나지만, 의심을 받는 일 대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24시간 밀착 체크했던 청와대 초대 의무실장도 최순실 담당의사로 대통령 자문의가 된 김상만 씨를 알지 못하며, 김 씨가 작성한 의무 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 김 씨가 자문의가 됐다는 것도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며 "진료를 하러 오지 않아 일면식도 없다." (☞관련 기사 : 靑 경호실 초대 의무실장 "최순실 단골 의사 일면식 없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국가 2급 비밀이라는 대통령의 건강 관리가 이런 식이면, 다른 일,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인들 제정신이었을까. 무기 로비스트 누구를 만났느니 베트남 대사가 어떻게 발탁되었느니 하는 일을 보면, 이게 국가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은 그만두고라도, 여염집 가장만도 못한 작고 작은 사인(私人)의 의식과 행동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한 가지가 그 사이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 사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적 연결망이야 끼리끼리 모였으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치자. 공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그 많은 정치인, 관료,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적극 가담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을 탐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라, 대통령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정을 어지럽혔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이 '국정(國政)'을 '사정(私政)' 또는 '가정(家政)'으로 망가뜨리는 과정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이다. 대통령직은 그 어떤 자리보다 국가적, 공적 직위이므로 완전히 숨을 수 없다. 또한, 온갖 자질구레한 일부터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일을 보고 들은 사람들, 또 좋건 싫건 개입한 사람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가장 이상한 사람들은 관료들이다. 특히 고위 관료들은 충분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나는 모른다 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고치기는커녕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과 결정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들어오는 것을 모두 보았을 텐데, 다들 입을 다물었다. (☞관련 기사 : "안봉근, 장·차관 가로막고 이재만, 엉뚱하게 靑 인사위 들어와") 

가만히 있었던 정도를 넘어 사사롭게 결정된 정책을 수행하느라 앞장선 공무원도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정책에 동의해서 또는 신념으로 그랬다고 믿지 않는다. 상당수 정책은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관료의 '영혼 없음'을 핑계 삼아 앞장서거나 밀어붙였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익숙한(!) 해명을 믿으란 말인가. 

"보건복지부는 10일 최순실 씨가 다닌 것으로 확인된 차병원에 대해 정부가 각종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차병원 관련 사안은 법령과 예산 등 통상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된 것이며, 최순실 특혜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앞서 JTBC <뉴스룸> 등은 지난 9일 최순실 등이 다니는 차병원에 줄기세포 연구 조건부 승인, 연구 중심 병원 선정과 192억 원의 국고 지원, 차병원 연구소에서 간담회 개최 등 각종 특혜를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복지부 "차병원, 최순실 특혜와 무관…통상적 절차 밟아 지원")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윤소하 의원의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다. (☞관련 자료 : 윤소하, 차병원그룹 의료 영리화(규제 완화) 혜택 보고서 발행)

그 흔한 내부 고발자 한 명도 없었던 이 아득하고 아찔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관료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전제적 권력에 예속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된 결과이다.

첫째, 권력이 전횡하고 관료는 노예가 된 것. 이 정부가 중앙 부처 과장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철저하게 길들인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정유라 씨의 승마 대회 성적 시비를 조사했던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을 대통령이 직접 거명하고 좌천을 지시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알려지면, 공무원은 그야말로 꼼짝도 못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의 정책 관심사를 챙기는 것이야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것이 사적인 업무와 관심에 동원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사로운 일을 챙겨 심기에 맞게 처리하라는 것은 공무원을 개인 집사나 하인으로 여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봉건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수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 관료는 왜 그리하는가. 자리를 보전하거나 출세하는 것이 지상 목표라면, 그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은 5년만 지나면 바뀐다고 하지만, 그 시기에 거쳐야 할 자리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관료들은 어떤 정권에도 잘 '살아남아야' 한다.

자리를 잃으면 생계가 문제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고위 관료의 행동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생계와는 무관한 고위 관료, 예를 들어 장차관이나 수석비서관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전제적 봉건 권력과 그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만난 결과는 참담하다.


둘째 이유는 정말 '영혼' 그 자체의 문제다. 현대 국가에서 관료주의가 심해지면, 관료는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기 쉽다. 도구적 합리성은 목표에 이르는 최적의 수단, 그리고 효율성을 추구할 뿐 목표와 그것의 가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정부에서 많은 관료는 목표와 지시를 위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무리 이상하고 불합리해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결과는 성찰 없이 도구적 합리성만 추구할 때 나타난다. 흔히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공무원의 '영혼 없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재벌과 대기업의 간부도 이런 관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대부분 회사가 철저한 관료제 조직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가치를 생각했으면 그 많은 기업의 임원이 그렇게나 각종 부정에 연루되고 범죄의 주역 노릇을 했을 리 없다. '맡은' 일을(오로지 그것만)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도구적 합리성이 자기 일의 맹목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목적과 도덕적 평가가 분리되는 것은 두 가지 과정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꼼꼼한 기능적 분업이 일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덕적 책임성이 기술적 책임성으로 대체되는 것이다(<현대성과 홀로코스트>(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 펴냄)). 홀로코스트에 비교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만, 이번 사태에서 관료들이 보인 태도가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권력의 예속에서 어떻게 놓여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또 한 번 '기-승-전-민주주의'라고 하는 것 같지만,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 구조 개편이나 선거 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전면적 고양 또는 심화 없이는 어렵다. 

도구적 합리성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모두가 말하듯이) '가치적' 합리성에 기초한 비판과 성찰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얼마나 전면적이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권력 문제와 같다. 단지 관료 조직이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침투해야 관료를 포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정권에 봉사한 고위 관료들의 시각에서 보면, 두 가지 모두 지금이 어느 때보다, 적어도 지금까지보다는, '해방'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과거를 거스르는 해방적 실천을 하기에도 가장 좋은 때라는 뜻이다. 

먼저, 공무원들은 일상 업무를 벗어난 정권의 '정치적' 지시를 거부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헌정을 파괴한 것이 확실하고 그 결과 실질적으로 탄핵 당했다. '가치'의 측면에서 이미 탄핵당한 정권에 봉사하는 것, 그 지시를 이행하는 것은 사실상의 헌법 위반이다.

11월 20일에 검찰이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보탰으니, 이제는 공식적으로도 탄핵소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주어진 지시에만 충실하면, 고위 관료는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부도덕한 정권에 '부역'을 할 판이다. 최소한, 장관과 차관, 청와대 비서관은 바로 사퇴하는 것이 옳다.          


누가 박근혜의 "명예로운 퇴진"을 말하나
[유종성 칼럼] '하야' 아닌 '탄핵'이 정답이다
    
2016.11.21 07:34:21

두어 주 전만 해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이권 개입이 문제의 핵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언론 보도와 11월 20일 검찰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및 최순실 등의 공소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단지 최순실에게 농락당한 무능한 대통령이 아니라 이 사건의 몸통이며 주범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의 범죄 사실의 일부가 명백하게 드러남에 따라 탄핵을 추진할 확실한 근거가 마련됐다. 탄핵 사유로는 검찰이 밝힌 직권 남용과 강요, 검찰이 계속 수사하겠다고 한 뇌물죄(헌법 제46조 대통령의 청렴 의무 위반)는 물론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 수사와 기소를 방해하고, 자유 시장 경제 질서(헌법 제119조 제1항)와 사유 재산권(헌법 제23조)을 부인하여 사기업의 경영과 인사에 대해 부당한 개입을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의 퇴출 강요 등 공무원 임면권의 불법적 사용(헌법 제78조 위반) 등으로 민주공화국 헌정 체제(헌법 제1조)를 유린한 것이 탄핵 사유로 적시될 수 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등으로 학문과 예술의 자유(헌법 제22조)와 같은 국민의 기본적 자유권을 침해하고(이 부분은 아직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관여된 것까지만 드러났고 박 대통령이 직접 관여된 증거는 없지만 국정 조사를 통해 증거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영 방송에 대한 보도 내용 통제와 간섭(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대통령의 지시 하에 했는지 밝힐 필요) 등의 헌법과 법률 위반 혐의도 국회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 조사와 탄핵 청문회 등을 통해 일정한 증거를 확보하면 탄핵 사유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야권 내에 하야를 촉구하자는 의견이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가 검찰 발표 후에도 박 대통령이 결단을 하면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하야 요구는 정도가 아니다. 무능한 대통령에게는 하야 요구가 정당하나 민주공화국 헌정 체제를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해 희대의 권력형 부패를 자행한 범죄자에게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야와 탄핵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비위를 범했을 때 의원면직과 파면의 차이와 같다. 가령 범죄자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여 이승만 대통령처럼 망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박-최 일가가 해외 도피한 자금으로 잘 살 수 있도록 허용해서야 되겠는가? 자진 사퇴를 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임 시 보수의 95%에 대한 연금을 지급받고 경호는 물론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지원, 나아가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 이래도 되겠는가? 물론 하야 시에도 곧바로 형사소추를 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도 취소될 수 있지만, "명예로운 퇴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11월 20일 야권 대선 주자들의 합의문에 탄핵 추진이 들어가 있지만, 그 표현이 애매모호하다. "국민적 퇴진 운동과 병행하여 탄핵 추진을 논의해줄 것을 야3당과 국회에 요청한다"고 했는데, 조속히 탄핵 절차를 밟을 것을 요청했어야 했다. 그동안 야권 일각에서 탄핵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로 1) 탄핵 추진 시 국회 의결 정족수 확보의 어려움, 2)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위원을 맡게 될 국회 법사위원장 권성동 의원에 대한 불신, 3) 탄핵 심판에 최장 180일 소요, 4) 보수적인 헌재 구성상 탄핵안이 기각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5) 내년 1월 31일 임기 만료되는 박한철 소장과 3월 중에 임기만료되는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임명 지연 시 헌재 재판관 7~8명중 6명의 찬성 의결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 등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본다. 

첫째, 탄핵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문제는 새누리당 비주류 비상시국회의에서 탄핵 절차 즉각 착수에 합의함으로써 더 이상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다수 보수층까지 박 대통령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보수 언론까지 탄핵에 찬성하는 지금 국회 의결을 걱정한다는 것은 패배주의적 사고 아니면 탄핵을 하지 않으려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또 탄핵 의결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는 탄핵안 발의 후 사흘 만에 국회 의결을 한 전례가 있다. 

둘째, 헌재의 탄핵 심판에서 소추위원 역할을 할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비박계로서 탄핵에 협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특검법 심의 과정에서 반대한 것을 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하나, 특검법의 야당 추천 조항에 대해서는 내곡동 특검 시에도 반대한 개인적 소신과 함께 여야 합의 시 법사위원장에게 사전에 의논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느라 하루 시간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일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걸림돌이 된다면, 여소야대 국회가 법사위원장을 새로 뽑는 방법도 있다. 

셋째, 탄핵 심판에 최장 180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 심판에는 탄핵과 함께 위헌 법률, 헌법 소원, 정당 해산 등의 심판 및 국가 기관(지방자치단체 포함) 상호 간 권한 쟁의에 대한 심판 등이 포함된다. 이 중 위헌 법률이나 헌법 소원 심판 같은 경우는 180일도 모자랄 경우가 있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식물 정부와 같은 권한 대행 체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에 의거해서 헌재가 최단시일 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고 헌재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 헌재에서 64일이 소요되었는데, 당시엔 헌정 사상 첫 탄핵 심판이라 절차를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한다. 또, 헌재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당시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최종 결정을 내리느라고 시간을 좀 더 끌었으리라 본다. 따라서 이번에 헌재가 서두르면 40~50일이면 충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탄핵심판은 일종의 징계 절차이기 때문에 형사 재판처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사자에게 변론 기회를 한 번 주면 그만이고, 변론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기일을 정해주되 두 번째 정한 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으면 출석 없이 심리할 수 있으므로 그리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넷째, 보수적인 헌재 구성상 탄핵안이 기각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다. 두 가지 점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보수-진보의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고 대다수 보수적인 국민들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민주 헌정 체제의 유린과 구역질나는 부패이다. 헌법을 수호하는 임무를 가진 헌재가 보수적이라고 해서 엉뚱한 판결을 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 나라 헌재의 발자취를 보면 압도적인 민심을 거스르는 무모한 판결을 절대 내리지 않는다. 헌재와 대법원 간에 권한에 대한 긴장과 분쟁이 계속되어 오면서 헌재는 국민의 지지가 중요함을 잘 인식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헌재가 민심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릴 때에는 국민들이 헌재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향후 개헌 논의에서 헌재가 해체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의식할 것이다. 더구나, 헌재에 탄핵안이 넘어가고 나면 시민들의 촛불이 매일같이 헌재를 에워쌀 텐데, 이러한 촛불 민심을 감히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를 봐라.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그의 지휘 아래 있는 특별수사팀이 대통령이 최순실 등과 공범임을 분명히 하고, 피의자로 규정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촛불 민심이 검찰로 하여금 태도를 바꾸게 한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과거 정치 검찰의 죄과가 다 면제될 순 없겠지만, 검찰의 태도 변화는 우리가 보수적인 헌재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끝으로 내년 1월 31일 임기 만료되는 박한철 소장과 3월 중에 임기 만료되는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임명 지연 시 헌재 재판관 7~8명 중 6명의 찬성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정원 9명)에 결원이 생겨도 탄핵 결정에 최소 6명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유 있는 우려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임기 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임명이 지연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한철 소장의 경우 2011년 2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고,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했다. 그의 후임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탄핵 의결이 지연될 때) 또는 그 권한 대행(국회 탄핵 의결 시)이 국회 인사 청문을 거쳐 임명하며, 이정미 재판관은 대법원장 추천에 의해 대통령 또는 그 권한 대행이 임명하게 되는데, 대통령 또는 그 권한 대행이 지연 작전을 쓸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감안할 때 야3당 지도부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조속히 국회의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즉시 탄핵안을 발의하고 11월 말이나 늦어도 12월 초까지는 탄핵안을 의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탄핵안 발의를 빨리 해서 탄핵 의결 전에 박 대통령과 핵심 증인들을 불러 탄핵 청문회도 할 수 있으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12월 초까지 국회 의결이 이루어지면 박한철 소장 임기 만료 전 헌재의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설혹 1월 말까지 결론이 나지 않는 이변이 생기더라도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 전에는 충분히 결정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탄핵을 최후의 수단이라며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일까지도 헌재 결정이 나오지 않고 더구나 후임 재판관 임명이 지연되는 사태까지 겹친다면 큰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야권에서 우려하는 것은 보수적인 황교안 총리가 헌재의 탄핵 심판 기간 중(40~50일간 예상)과 헌재의 탄핵 결정 시 대통령 보궐 선거 기간 중(60일간 예상)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게 되는 문제이다. 필자는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황 총리가 보수적인 인물이긴 하나 박-최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은 없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 독단적으로 지나친 권한 행사를 하면 문제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지금 거대한 성난 민심에 의해 탄핵이 진행되는데, 황 총리가 권한 대행 지위를 이용해 민심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황 총리가 권한 대행으로서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걸림돌이 되면 국회가 단 2~3일이면 탄핵을 의결할 수 있고, 그 즉시 황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며 헌재의 탄핵 심판 기간 중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된다. 테크노크라트인 유 부총리가 권한 대행을 하면 민심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치적 행위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국회 추천 총리를 임명하는 데 동의해주면 좋을 것이지만, 이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추천 총리를 요청했을 때에는 박 대통령의 범죄 사실이 밝혀지기 전이고 하야는커녕 2선 후퇴도 할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 

이제 당신을 곧 탄핵하거나 하야시킬 것인데 질서 있는 하야나 탄핵을 위해 국회 추천 총리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겠는가? 질서 있는 하야나 국회 추천 총리 임명의 근본적 딜레마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므로 이를 위한 영수 회담이나 정치 협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회 추천 총리를 박 대통령이 수용하게 하려면 민심과 괴리되는 정치적 딜(가령 전직 대통령 예우 등 명예로운 퇴진 보장?)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고, 국민들이 이러한 거래를 결코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왜 하야가 아닌 탄핵을 조속히 추진해야 하는지, 굳이 황교안 총리의 교체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지를 검토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특검에 의한 구속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죄과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비해서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는 재벌들에게 돈을 받은 데 대해 "포괄적" 뇌물죄로 유죄를 받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는 특정 재벌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강요를 하고 개별 재벌들의 민원을 청취하며 돈을 달라고 했으니 뇌물죄로 더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 또,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광주 학살 등 내란죄의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도 민주공화국 헌정 체제를 유린한 내란죄에 준하는 법적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웃 나라 대만(타이완)과 비교해보아도 박 대통령의 죄과에는 최대한의 무거운 법적 처벌이 따라야 한다. 대만의 천수이벤 전 총통은 재임 중의 부패 혐의로 퇴임 직후 형사소추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년형으로 감형된 후 6년간 감옥살이 하고 나서 지병으로 인해 가석방을 받았고, 막대한 금액의 벌금형도 병과되었다. 천수이벤 비리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온갖 치졸한 비리를 저지른 박 대통령의 경우에는 더욱 무거운 법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인적 청산과제들이 있다. 첫째는, 박근혜-최태민 일가가 지난 40여 년간 부정 축재한 재산을 철저히 추적해 환수하는 것이다. 둘째, 박-최 게이트에 연관된 의혹이 짙은 우병우 전 수석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다. 조윤선 장관의 탄핵도 추진돼야 한다.

다음으로 이에 못지않게 큰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박-최 국정 농단을 알면서도 이에 편승해서 기득권과 특혜를 누리고 지금도 박 대통령을 무조건 엄호하는 친박 핵심 정치인들의 청산이다. 검찰과 특검 수사가 이들의 범죄 혐의를 다 밝혀내 처벌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정치적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처럼 주민 소환의 대상은 되지 않지만, 국회법에 따른 징계 절차를 밟아 의원직 제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으며(헌법 제24조),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유지와 청렴 의무, 직권 남용 금지 의무 등이 있다(국회법 제155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 유린하는 것을 방조하고 국가 이익보다 공천 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저버린 국회의원들에 대해 국회법에 따라 윤리특위에 회부한 후 본회의에서 가장 높은 징계 수준인 제명을 의결하면 된다. 친박 부역자들에 대한 조사를 국정조사특위와 윤리특위의 중요한 과제로 정해 이들을 20대 국회에서 축출, 이들 지역구에서는 오는 4월 재보선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공당의 대표라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비서 또는 호위무사 역을 자임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친박 핵심으로 자타가 공인하며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박-최 게이트의 부두목에 해당한다고 지목한 최경환 의원,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한 김진태 의원 등 몇 명을 제명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들을 국회에서 추방하는 것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후 청와대의 적반하장식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태에 대해 경종을 울림은 물론 친박의 최후 발악에 힘을 빼고 향후 탄핵 의결은 물론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국회의원 20인 이상이 이들에 대한 징계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는 것이 시급하다.

끝으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국가 지도자를 잘 못 뽑으면 국민들이 결국 얼마나 큰 피해를 입는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박-최 게이트가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 교훈은 지도자가 자기 판단 없이 비선 실세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자기 판단 없는 지도자는 공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형식화하고, 대면 보고를 기피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는 등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박 대통령은 비선 조직에서 기획한 사적인 어젠다를 공식 회의에서 형식적으로 통과시키거나 청와대 비서진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해 집행함으로써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작은 권력이라도 사유화하는 지도자, 공적인 토론과 의결 구조를 무시하거나 형해화하는 독선적 지도자, 베일에 싸인 비선 실세 조직이나 소수의 비공식 핵심 참모 조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지도자를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적 사태를 다시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순실 정권' 산파, 문재인-안철수는 석고대죄하라!

[손호철 칼럼] '광화문 항쟁',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2016.11.21 11:17:38


"누군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덧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마르크스의 글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프랑스 혁명의 공화국 정신을 짓밟고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이 비극이라면, 이후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 속에서 삼촌의 명성 덕으로 권력을 차지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는 코미디라고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를 짓밟고 영구 집권을 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극이라면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어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은 희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소위 '21세기 IT 강국'이 '무당과 호빠 마담의 나라'였으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반복되는 것은 '인물'만이 아니다. '사건'도 반복되고 있다. 박정희는 1979년 10월에 있었던 부마 항쟁에 의해 '퇴출'됐다. 물론 박정희는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여가수와 대학생 모델을 끼고 놀다가 최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10.26의 원인인 '온건파'(김재규)와 '강경파'(차지철-박정희)의 갈등을 만들어낸 것은 부마 항쟁이었다.

구체적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YH 여공들의 신민당사 점거 투쟁으로 촉발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에 저항해 부산과 마산의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일어난 부마 항쟁에 대한 대응 방식에 관한 갈등이었다. 즉 박정희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10.26 의거'이지만 '궁극적인 요인'은 (YH 노동자 항쟁과) 부마 항쟁이었다(이 점에서 원래 TK와 PK는 정치적으로 다르며, 우리의 지역주의가 원래부터 '호남 대 영남'의 대결이었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결국 국민들의 저항에 의해 몰락하고 있다. 아니 이미 몰락하고 말았다. 박근혜는 유례없이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11월 항쟁', '광화문 항쟁'에 의해 사실상 이미 퇴진당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탄핵이냐, 하야냐, 2선 퇴진이냐 등의 구체적 경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박근혜는 물러설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설사 자리를 지킨다고 하더라고 껍데기만의 식물 대통령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포스트 박근혜',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노 이후'이다.  

부마 항쟁은 불행히도, 마르크스의 요약처럼, 비극으로 끝났다. 부마 항쟁을 통해 국민들은 박정희 제거에는 성공했지만 그가 사육해놓은 전두환 등 정치 군인들이 12.12 군사 반란으로 군을 장악했다. 부마 항쟁이 열어놓은 서울의 봄은 거리 투쟁에 나선 사회운동과 달리 제도 정치 틀을 고집했던 정치권의 우유부단과 양김의 분열로 광주 학살과 학살 정권의 출범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만일 마르크스의 정식이 맞는다면, 광화문 항쟁은 그 주인공을 닮아 희극으로 끝나게 되어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물론 광화문 항쟁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뜬금없는 박근혜 면담 제안과 같은 희극이 전개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은 박근혜와 같은 희극으로 끝나서도, 1979년 부마 항쟁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이번 항쟁만은 제대로 된 항쟁으로 발전시켜 해피엔딩으로, 성공한 '광화문 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쟁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특검과 새 정권 출범 후에도 사법 처리 등 이 문제가 다루어지겠지만) 우선 당장 박근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포스트 박근혜'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하야,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일장일단이 있고 결국 정치권 내의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힘의 관계, 나아가 시민 사회 내의 사회적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가 물러설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선택은 탄핵밖에 없는 것 같다. 

탄핵은 독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응징이자 두고두고 역사적 교훈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첫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역풍 가능성이 상당히 있으며 둘째, 시간이 너무 걸리고 셋째, 국회 표결 사법부 판결에서 통과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그 같은 이유로 개인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중은 역풍 가능성에 관한 한 최소한 아직까지는 압도적인 촛불의 힘으로 나같이 나약한 먹물의 기우를 쓸고 가 버렸다. 게다가 박근혜가 퇴진도, 2선 후퇴도 거부함으로써 탄핵 이외의 다른 선택을 없애버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제도 정치권의 탄핵 움직임과는 별개로 광장과 '거리의 정치'에서의 하야, 퇴진 운동을 접지 말고 지속해야 한다. 정치권의 탄핵 운동과 거리의 퇴진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이 같은 광장의 압박만이 탄핵에 필요한 동력을 국회와 정치권이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며 보수적인 사법부에 대해서도 강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포스트 박근혜는 어떠한가? 박근혜는, 나라야 망가지든 말든, 2선 후퇴조차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계엄령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효과는 양면적이다. 우선 국정 표류로 나라가 망가질 것이다, 제2의 외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으로는 박근혜, 그리고 친박의 버티기로 해방 정국의 농지 개혁, 6월 항쟁 당시의 6.29 선언과 같이 '수동 혁명'(위로부터의 '혁명 예방적인 개혁')에 의해 지배 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국민은 떠나고 친박과 '간신'들, 그리고 5%의 콘크리트 지지자들만 남은 명목만의 식물 정부, 즉 '근실(근혜순실)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 정부'가 공존하는, 상당 기간의 '이중 권력' 상태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국회가 중심이 되어 빨리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대체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대해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한 거국 중립 내각이냐, 시민 사회와 광장도 참여하여 선출하는 국민 내각이냐가 대립하고 있다. 바람직한 것은 후자이다. 그러나 야권에서도 일부는 이에 소극적 내지 부정적인 것 같고 새누리당의 합의를 고려하면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양자의 절충적 형태가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 내각이냐 거국 중립 내각이냐는 형식도 형식이지만 속도이다. 빠른 시간 내에 합의된 대안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박근혜가 국내외적으로 국정을 재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하다. 빠른 시간 내에 국회가 야권을 중심으로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대안 내각과 대안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야당 간의 주도권 싸움, 특히 지금과 같은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한 대권 정치, 대권 경쟁을 최소한 국민 앞에서는 중단해야 한다. 

물론 정치란 경쟁이고 정치인에게 경쟁하지 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혁명적 상황'은 다르다. 대권 주자들과 야권은 지금과 같이 현 정국을 개별적인 언론 플레이로 대권 경쟁에 이용하려는 행태를 중단하고 내부적으로 논의해 국민에게 합의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실 (아직까지는)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당대회 야합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이해찬, 박지원을 과감하게 내치는 등 '당 혁신'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안철수는 '아름다운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후보 사퇴를 단행함으로써, 질 수 없는 대선을 지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이들은 국민들이 현재의 비극을 겪게 만든 '원인 제공자들'이다. 따라서 둘이 지금처럼 힘 겨루기를 할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 나와 "저희들이 4년 전 잘못해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리 한다면 그들은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니 그 같은 감동은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와 같은 정국에서까지 계속되고 있는 개인적인 대권 경쟁은 중단해야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처리 문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민은 포스트 박근혜, 특히 무능한, 그러면서도 탐욕스러운 야권이다. 최근의 야권 대권 주자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60년 4.19 학생 혁명과 80년 봄(부마 항쟁이 가져다준),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의 비극적 결말이다.

현 유력 야권 대선 주자들의 얼굴에는 학생들의 피의 대가로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은 뒤 정쟁으로 날을 샌 민주당 구파 윤보선 전 대통령과 신파 장면 전 총리의 얼굴이, 분열로 80년과 87년을 말아먹은 DJ와 YS의 얼굴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한 후배 정치학자는 꿈에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국민의 희망'으로 미화되어 미군기로 여의도에 내리는 이승만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헌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버티기, 야권의 분열 속에 내년 봄 반기문이 '구세주'로 귀국하는 섬뜩한 꿈이다.

이와 관련, 안철수의 제안으로 차기 주요 야권 대선 주자들이 비상시국정치회의를 열고 박근혜의 탄핵 추진 등 합의를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 손을 잡음으로써 "이런 시국에도 대선 주자들이 대선 경쟁이나 하고 있느냐"는 대중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킨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박수를 쳐줄 일이다. 그러나 김윤철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이 역시 "여론 조사 수치에 기대어 대선 주자냐 아니냐를 따지며, 참여 범위의 경계를 나누고 '대선 주자'라는 계급 놀이"를 벌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왜 지지율이 거의 없는 천정배는 들어가고 노회찬은 배제했는가?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들이 박근혜 탄핵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자리에 앉게 빨리 내려오라"고 압박하는 느낌을 주는 만큼 이 문제는 차라리 세 당의 대표들 간의 합의에 맡기고 합의문의 후반부에 밝힌 단합에 초점을 두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촛불 시민에게 감사하며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제 2공화국(장면 정권)과 87년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간다면 이중 권력 상태에서 대안 정부의 '제2권력'은 대안 내각으로 표상되겠지만 그 뿌리는 광장의 시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대안내각에 대한 광장의 통제와 직접 민주주의적 기제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광장의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비상국민행동을 전체 시민을 대표하는 정통성을 가진 안정적인 민주적 기구로 재편하여 장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김세균 교수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인 가입과 민주적 선출 원칙에 따라 부문별/지역별 비상국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이들을 묶어 전국 단위의 비상국민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이 과도 정부로부터 차기 대선('국민 후보' 선출)까지 국민들의 의사를 집약해 정치권에 압박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촛불을 내려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박근혜에게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아니 그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야권이 4.19, 80년, 87년 같은 분열과 '뻘 짓'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서이다. 

탄핵이 시간이 걸리고 박근혜가 국정을 재개한 만큼 야권과 광장은 조속한 대안 내각으로 전제로 투쟁의 강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 특히 검찰이 박근혜를 피의자로 지목한 만큼 더욱 그러하다. 우선 현 내각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전면적인 '불복종 비협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치권은 박근혜에게 모든 통치 행위 중단, 외국에게 모든 협정 일시 중지, 군과 경찰에게 정치적 중립, 공무원들에게 박근혜 정책 집행 거부를 요구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해야 한다는 이도흠 교수의 제안은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권은 현 내각에서 시한을 제시해 사임을 요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건의안을 올리겠다고 압박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모두들 과도 체제의 형식과 누가 총리로 적합하냐는 인물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 아니 어쩌면 이보다 중요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도 체제가, 그리고 다음 정부가 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나는 과도 체제가 어찌되건, 총리가 누가 되건, 광장의 사회운동 세력들이 광화문 항쟁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들의 분노의 내용과 과제들을 응축하여 과도 체제와 이후 정부에 이를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가능하다면 이 같은 '대리주의'까지도 넘어서 광장에 모인 대중들 스스로 자신들을 거리로 내몬 분노의 내용과 과제를 집약하여 과도 체제와 이후 정부에 이를 압박해야 한다.

이번 '근실게이트'에는 세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 표층에는 '73년 체제'(유신 체제)와 '고조선'(한 학부생의 표현으로 "우리 사회는 헬조선이 아니라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신정일치의 고조선'이었다")이다. 중간층에는 '87년(헌정) 체제'이다(요즘도 한국 사회를 87년 체제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87년 체제는 97년 IMF에 의해 무너져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97년 체제로 변화했고 87년 체제 중 남아있는 것은 87년 헌법에 기초한 헌정 체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심층에는 1대 99의 양극화를 특징으로 하는 '97년 체제'(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표층 수준이다. 유신 체제와 고조선 체제가 결합한 근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이 이루어지겠지만 특검에서 다루지 못한 여러 분야의 국정 농단과 탄압 등에 대한 조사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특검의 조사 내용에 특정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조사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조사를 특검에 요구해야 한다. 시간 등 여러 이유로 이것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별도의 조사와 개혁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중 생각나는 것을 몇 가지만 열거하고자 한다. 정유라 이화여자대학교 부정 입학에 대해 교육부는 이대와 정유라 지도교수 등에게 주어진 각종 사업과 연구 과제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육부와 연구재단에 대해 정유라 관련 사업과 영남대 새마을 운동 지원 사업 등 '근실 사업'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 국정 교과서 '복면 집필자'를 포함해 국정 교과서 제정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이미 밝혀진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학계 등 각 분야의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작성 과정, 공영 방송의 파괴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검찰의 사유화 과정을 조사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 통제 기제를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성과급 연봉제 등 근실 정부의 노동 개악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근실과 재벌 유착을 파헤쳐야 한다.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 등 박근혜 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투옥된 노동운동가들과 양심수들의 석방을 관철시켜야 한다,

다음은 중간층으로 87년 헌정 체제이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분명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적인 정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개헌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현 국면을 개헌이란 문제로 초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평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는 개인적으로 개헌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강했다. 

첫째, 우리의 문제는 헌법 그 자체에서 연유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 행태 때문이다. 둘째, 5년 대통령 단임제는 문제이나 이에 대한 '원샷 개헌'은 불가능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전면적 개헌이 불가피하다. 셋째, 헌법은 결국 제정 당시의 사회 세력 간의 힘의 관계를 반영한 것인데 현재 개헌을 할 경우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 삭제 등 개악으로 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고 광장의 촛불이 단순한 근실 게이트의 청산을 넘어서 '민주 평등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에 대해 고민하고 구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광장을 일종의 '제헌의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근실이 덕분에 사회적 힘의 관계까지 역전되어 현재보다 전향적인 헌법의 개정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개헌이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의 구성'이라는 시각에서 기본권으로부터 정부 형태 등 이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해 나가야 한다. 

그 방향은 우선 세 개가 떠오른다. 소수자 권리 등 87년 이후의 변화를 감안한 기본권의 업데이트와 강화이다. 둘째, 내각제, 지방 정부에 권력을 대폭 양도하는 남한 연방제 등 권력 집중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 형태의 고민이다. 셋째, 어쩌면 둘째 보다 더 주요한 문제로 표의 등가성을 파괴하고 사실상의 보수 독점 정치를 영속화시키는 선거 제도를 비례 대표를 강화하고 독일식 연동제로 개혁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인구 차이로 농촌의 표가 도시보다 세 배 이상으로 취급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불합리한 선거 제도에 의해 아직도 보수표는 한 표가 진보 정당표 네 표로 취급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는 독일식 연동제 도입과 비례 대표 확대를 주장했다 (이 안에 여당도 관심을 보였으나 청와대의 반대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여기에도 최순실이 개입한 것인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대 보수 정당들은 올 총선에서 야합해서 비례 대표를 오히려 축소했다, 따라서 정부 형태 개혁을 선거 제도 개혁과 연계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97년 체제이다. 97년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전면화에 따라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과 1대 99의 양극화 사회로 변화했다. 이의 극단적 표현이 '헬조선'이다. 광장의 촛불을 통해 광장의 시민들은 대통령의 국정 농락과 최순실의 작태에 대한 분노(유신, 고조선 체제와 87년 헌정 체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보다 근본적인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헬조선, 흙수저 세습 신분제에 대한 분노이다.

이번 항쟁의 최고의 수훈감은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니고 정유라이다.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SNS에 올린 정유라의 한마디가 헬조선의 현실과 결합하여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을 폭발시키고 만 것이다. '박근혜 이후 살고 싶은 사회'에 벽에 붙은 포스트에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있다.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이 돈 없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이 점에서 이번 항쟁은 신자유주위의 희생자들이 동력이 됐던 '트럼프 혁명', 정확히 표현해 '트럼프 반혁명'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좌초한 '샌더스 혁명'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샌더스와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희생자들의 두 출구이다). 

답답한 것은 이와 관련해, 우리의 경우 광장의 99%의 분노를 묶어서 정치적 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샌더스와 같은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야권을 대표하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바, 이 문제에 관한 한 (97년 경제 위기라는 상황에 집권했다는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주도한 사실상의 당사자들이다. 예를 들어, 정리 해고와 파견 근로제를 전면화시킨 것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쌍용자동차를 해외 매각한 것도 이들이다.

과거는 과거다. 문제는 이에 대해 이들이 아직까지 진솔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고 있지 않으며 신자유주의 정책과 결별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사실 문재인의 경우 미르와 K재단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나고 모금에 앞장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뻐젓이 재벌 기업 연구소장들과 회동을 했다. 한마디로, 설사 박근혜를 몰아내고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청소년들을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헬조선이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적 정책들을 만들어 과도 정부와 차기 정부에 압박해야 한다. 나아가 광장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문제로 촛불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세계 민주주의 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형"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한 진보 언론이 나에게 현장에 가보고 르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원고를 보냈는데 기사가 계속 나오지 않아 문의를 하니 내 글에 문제가 있어 게재를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을 찬양하는 '선동적' 글을 기대했는데 너무 '성찰적'인 글을 써준 것이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글은 결국 실렸는데 요즈음 광화문 항쟁을 보면서 자꾸 그 글이 생각난다.

광우병 촛불은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의 운동권 중심의 근엄주의를 넘어서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이 참여하는 축제 분위기의 '즐거운 혁명'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가져온 것, 주요 사회운동 단체장들이 단상을 차지하는 낡은 단상 권력을 해체하고 모두가 단상에 오를 수 있는 '단상 혁명'을 이룬 것 등은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다. 촛불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일회성 촛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촛불은 계속될 수 없다. 사실 광우병 촛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02년 대선 때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효순 미선 촛불 시위가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촛불이 있었다. 그러나 이 촛불들은 정치적 주체화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자 꺼졌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승리했다. 

불행히도, 나의 글은 맞았다. 광우병 촛불은 오래지 않아 꺼졌다. 얼마 뒤 용산 참사가 일어났지만 촛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했다. 현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광우병 집회보다 촛불은 더욱 진화하고 발전했다. 중고생들까지 촛불에 가담했고 집단지성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더 성숙했다. 

대중은, 시민은 위대하다. 그러나 촛불은, 역사의 '광기의 순간'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적 주체화가 시급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야당들도,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이들의 분노와 열기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정치적 주체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새로운 진보적 프로젝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일이다. 

광화문 항쟁은 마르크스의 정식대로 희극으로 끝나서도, 부마 항쟁,  4.19 학생 혁명, 6월 항쟁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광화문 항쟁, 11월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광화문 혁명', '11월 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 특히 야권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촛불을 폄하했다. 그러나 4.19와 80년 봄,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이 보여주듯이 촛불을 꺼트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야권의 뻘 짓이다.

이 같은 뻘 짓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다. 촛불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