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박정희' 꿈꾼 박근혜, 오컬트에 기댔나 -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대통령
'제2의 박정희' 꿈꾼 박근혜, 오컬트에 기댔나
'제2의 박정희', '문화융성의 어머니'를 꿈꿨으나, 국민들에 의해 사실상 '탄핵' 상태로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
민심에 떠밀려 두 번의 (성의 없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약속했으나, 변호사를 선임하더니 돌연 약속을 뒤집고 '청와대 농성'에 들어갔다. JP(김종필)가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쁜 점만 물려 받아, 5000만 명이 물러나라 해도 절대 안 물러날 것"이라고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에도 남을 만한 도심 한복판의 '100만 촛불 집회'가 말하는 것은 '변화'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와 탄식을 넘어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대규모 평화 시위를 촉발했다.
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인 정태인 칼폴라니 경제연구소 소장과 '2세대 진보정치'를 말하는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전 소장과 대담을 마련한 목적은 세대와 지역,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은 거대한 '촛불 민심'이 명령하는 '변화'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퇴진'과 함께, '박근혜 이후'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1987년과 2016년의 가장 큰 차이는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앞날을 맡기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아닌 다른 정치인(또는 검찰 등 권력기관)도 이 거대한 민심을 거스를 경우, '탄핵'될 수 있다. '헬조선'의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100만 송이 장미'는 대한민국 탄생 이후 70여 년간 여망 해온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마지막 희망일 수 있다.
정태인 소장과 조성주 전 소장의 대담은 전홍기혜 편집국장의 사회로, 지난 15일 프레시안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전문.

▲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는 오컬트적(초자연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체가 오컬트"
전홍기혜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기 무섭게 새로운 의혹이 쏟아진다. 이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은 무엇일까?
조성주 :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선 국회의원에 정당대표까지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전혀 맞지 않는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사태는 87년 민주화 이후 발생한 청와대 발 게이트의 '종합판’을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초월해 모든 권력을 청와대로 집중시켰는데, 최순실 씨는 역대 대통령의 어떤 친인척보다도 그런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정태인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말로, 개인이 사적 이익을 취한 특이 케이스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내세웠지만, 기본 정책은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다. '줄푸세'는 재벌에게 유리한 '한국형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재벌이 원하는 대로 온갖 규제를 다 풀어줬다. 특히 세월호 참사 후 박 대통령은 '국가대개조'를 '국가대혁신'으로, 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말을 바꿔가며 규제완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다른 정권과 다른 것은 재벌에게 규제완화에 대한 보상을 받으러 다녔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까 너희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내'라는 식이었다. 삼성은 최순실 씨의 딸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35억 원을 내지 않았나. 과거 박 대통령은 재벌과 보수 언론의 꼭두각시였는데, 지금은 최 씨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꼭두각시로, 이중의 역할을 한 셈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됐을까?' 하는 점인데, 박 대통령은 그 조직의 입장에서 가장 부리기 좋은 사람이자 조직의 이익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 따른 장악력이 현재의 비극을 낳았다고 본다.

▲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희망의 새 시대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알고 보니, '순실의 시대 순실이가 행복한 나라'였다.(청와대 제공)
전홍기혜 :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태인 :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15년 동안 의원 생활을 했지만, 내세울 만한 입법 활동이 없다. 입법부 일원이었지만, 가장 일을 안 한 사람에 속한다. 이런 사람의 문제는 위기 때 드러나는데,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 행정부 수반으로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위기의식의 무능을 보여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순실'이라는 샤머니즘 성향을 지닌 사람에게 한 사람에 의해 국정이 농단 당한 것 아닌가.
앞으로 더 많은 의혹이 쏟아질 것이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문제, 외교부의 한일위안부합의 등 박근혜 정부의 어떤 장관도 자유롭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예 '최순실의 수족'이었다. 특히 최 씨가 국방부의 차기 전투기 사업, 록히드마틴사의 F-35A 결정에도 관여했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사실이라면 국가 안보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인데, 이는 국가 시스템을 해체해 버린 것이다.
국정 시스템을 정상화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과도 정부 또는 차기 정부가 국정 농단 사태를 바로잡으려면, 최소 1급 공무원 이상 고위직 모두를 경질해야 한다. 그들은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직무유기의 책임이 있다. 국무위원 전부가 몰랐다고 얘기하는데, 거짓말이다. 청와대 비서진은 결정 과정의 이상 현상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홍기혜 : 규제완화에 따른 보상 심리가 최순실 씨의 사적 이익만을 위한 것일까? 수백억 원을 거둔 박 대통령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상상 이상의 일이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정태인 : 박근혜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가장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체가 오컬트(occult, 초자연적)이다.(웃음)
최순실 씨는 독일에만 1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등 돈을 조직적으로 해외로 빼돌렸다. 분명히 도와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꼬리를 쉬 잡을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목적이라는 것도, 검찰과 특검이 조사해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조성주 : 정치인 박근혜는 오랫동안 대통령을 꿈꿔온 사람이다.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었을까? 아마 '제2의 박정희'와 같은 인물로 기억되고 싶었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국 경제의 아버지'라고 하듯, 박 대통령은 스스로 '문화융성의 어머니'를 꿈꿨던 것은 아닐까?
박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 정당성이나 시스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800억 원 규모의 재단은 퇴임 후 정계와 재계에 미칠 영향력까지 계산한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정태인 : 실제로 '창조경제'의 핵심은 '문화융성'이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왕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독재 정치를 보고 자라지 않았나. 스스로 옳다면, 모든 것이 용인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의 국가 발전 모델대로 재벌을 만든 사람이지만, 딸인 박 대통령은 재벌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한 사람이다.

▲ 정태인 칼폴라니 경제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지금이 마지막 기회, 탄핵을 준비하라"
전홍기혜 : 김종필 씨의 <시사저널> 인터뷰가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면을 보여준 것 같다. 최순실 씨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면서도 강한 권력욕을 가지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절대 하야하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다. 딸로서 나름의 소명이 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욕망과 달리, 지난 12일 100만 명이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이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는데, 실질적인 내용은 어떤 게 되어야 할까?
정태인 : 박근혜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오는 대로 조사받고 구속될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탄생 100주년에 대한 사명도 있겠지만, 당장은 구속되는 게 더 무섭지 않을까? 어떻게든 임기를 채우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최소 요구일 것 같다. '정권 퇴진'이든 '대통령 하야'든 상당 기간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대통령 탄핵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대통령의 직무는 완전히 정지된다. 대통령 탄핵에 앞서 총리가 바뀐다면, 새 총리가 국무회의 등 사실상 국정을 운영하게 되다. 외교도 총리가 총괄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해도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청와대에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다'며 기각하기까지 64일이 걸렸다. 굉장히 빠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있기 때문에 헌재도 빨리 판결하지 못할 것이다.
광장의 '하야' 요구가 거세져야 법적 절차인 탄핵도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번복도 '100만 촛불'의 힘이다. 박 대통령이 끝까지 하야하지 않겠다고 하면, 국회는 특검을 통해 좀 더 압력을 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박 대통령도 사실상 통치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지 않을까?
조성주 : 모를 것 같다.(웃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등 친박이 힘을 모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국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청와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정태인 : 물론, 모를 수 있다. '우주의 기운'을 가진 인간 박근혜 씨의 상태를 우리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웃음)

ⓒ프레시안(최형락)
조성주 : 사태 초기에는 탄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에 대한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에서 헌재의 역할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광장의 여론처럼 대통령 탄핵이 맞다고 본다.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이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곳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도덕적·민주적 정당성을 잃었다면, 국회가 나서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자신들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게 민주주의적으로도 옳다. 만약 헌재가 국민의 95%가 문제 있다고 하는 지지율 5%의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한다면, 다음 탄핵 대상은 헌재가 될 것이다.
정태인 : 헌재의 판결에 기대는 것은 시민운동과 정치를 사법화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만큼은 국회가 탄핵 절차에 들어간다고 해도 시민들이 '우리 일은 끝났다. 국회가 하는 일을 지켜보자'고 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국회가 진짜 잘하는지 끝까지 지켜보자'고 할 것이다. 그러다 무엇인가가 잘못되면 다시 광장으로 나와서 요구할 것이고,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 하야' 요구는 광장에서 주도해야 하는 일이고, '대통령 탄핵'은 국회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이다. 동시에 국회는 헌재의 탄핵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국정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과도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시민의 광장과 의원의 국회는 절대 '대치 관계'가 아니다.
과도 내각은 하나의 당과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는 거국 내각이 되어야 하며, 기존체제에 대한 문제점과 방향까지 합의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상 정권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과도 내각이 제대로 구성되면, 대통령 선거를 내년 12월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지금이 공화국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경제 상황으로 보나 정치 시스템으로 보나, '망국(亡國)'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조성주 :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6년 11월 지금이 개헌하지 않아도 내용상 새로운 공화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다. 제7공화국에 준하는 그런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과도하게 집중된 청와대 권력을 개혁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국가정보원과 검찰과 같은 사정기관을 개혁해야 한다.
과도 내각에서는 시민 10만 명, 100만 명이 꼭 광장에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조직이 나와 요구하는 바를 말하면 된다. 박근혜-최순실의 기운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기존 체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광장의 정치에, 정당과 국회의원은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정태인 : 얘기하다 보니까 진짜 꿈의 나라를 그리고 있다.(웃음) 말한 대로, 각 계층이 광장에서 자기 분야의 개혁 과제를 토론하고 방향을 정해 과도 내각에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건데,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나.
조성주 : 자기의 요구를 항의로 전달하면, 정당과 국회가 받아 실제로 집행하는 게 민주주의다.

▲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전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1987년과 2016년의 광장은 다르다
전홍기혜 :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12일 모인 시민 100만 명의 힘 덕분이다. 진짜 100만 명이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쌓인 민심의 폭발한 것인데, 정치권은 이 힘이 어디까지 갈지 몰라 움츠러든 상태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00만 촛불'의 의미를 살핀다면? 향후 활용법까지 얘기해 달라.
조성주 : 광장에 나온 100만 명을 보고 정말 남달랐다. 50대 이상은 바로, 1987년 6월을 떠올리며 분열을 우려하더라. 하지만, 또래 젊은층은 '대한민국의 에너지가 이 정도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했다. 이들의 요구가 단순히 '대통령 하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에 정치가 반응하는 경험을 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시민적 에너지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인 : 50대는 87년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87년 6월 10일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인원이 아마 20~30만 명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서울 전역에서 가투가 벌어졌고, 최루탄과 돌멩이가 연일 날아다녔다. '4.13 호헌 조치'가 있었지만, 전두환의 독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6월 29일 민주정의당(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대선에서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압도적인 표차로 기호 1번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권은 분열했고, 시민권도 당연히 분열했다. 이를 경험한 50대는 '정치권에 그대로 맡기면 안 된다. 계속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추미애의 양자회담 해프닝처럼 지금 실천되고 있다.
또 하나의 경험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인데, 미국산 쇠고기라는 하나의 이슈에도 불구하고 7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그렇게 축제처럼 시민들이 6개월간 지속적으로 광장을 나왔고, '촛불 의제'라는 것도 먹을거리에서 민영화까지 확장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첫해부터 '하야하라'라는 요구가 터져 나왔지만, 정치적으로 이룬 것은 많지 않았다. MB의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2016년의 '대통령 하야'와 '정권 퇴진'은 다르다. 박근혜 정권이 1년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다가 정치·경제·사회할 것 없이 이슈가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게 나라인가'라는 한탄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8년 전에 경험한바, 정치권에 모든 것을 맡겨두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망국의 조짐이 만연하다.
전홍기혜 : 연세대 조한혜정 명예교수가 지난 4월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나가는 선망국(先亡國, 먼저 망하는 나라)"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인 : 우리는 MB라는 '한국형 트럼프'를 이미 경험했다. '이명박근혜'를 뽑은 민심은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의 트럼프에게 쏠린 민심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우리는 그렇게 가면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전홍기혜 :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해 야권이 공조하고 있지만, 선거를 치르게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야권도 대선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것 같다.
조성주 : 여야 할 것 없이 대선주자들이 여러 명이다. 일명 '빠'(팬덤)의 정치가 아닌, 콘텐츠 경쟁이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권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태인 : 2017년 대선 역시 사람들은 1987년 대선과 비교할 것이다. 당시와 지금이 다른 것은 첫째, 김영삼-김대중이라고 하는 '양김'이 없다는 점이다. YS와 DJ처럼 엄청난 카리스마와 자기 기반을 확실하게 가진 정치인이 지금은 없다. 두 번째는 당시 국민들은 이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앞날을 맡겼다. 시민운동가들도 백기완 후보를 포함해 자신의 지도자에 따라 세 개의 덩어리로 나뉜 채 선거를 치렀다. 김영삼-김대중-백기완은 사경을 헤매다시피 하며 민주주의를 끌고 온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2016년 시민의 힘이라면, 대선 후보들을 단일화시킬 것이다. 시민들은 과도 대각 하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플랫폼을 도출하고 주자들이 합의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연합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이상적으로 이뤄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의 압력으로 후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선거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전홍기혜 : 1987년과 2016년의 결정적 차이는 시민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자신의 운명,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조성주 : 야권이 후보를 단일화하기보다는 각자 경쟁하는 체제로 선거를 치르면? 새누리당도 단일 후보를 세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100만 촛불'이라는 시민적 에너지가 잘 귀결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 망국의 조짐?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식 경제 모델은 끝났다"
전홍기혜 :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한국 경제가 먼저 망할 것 같다.(웃음)
정태인 : 실제로 모든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그나마도 '빚내서 집 사라'며 돈을 풀고 집을 지어 끌어올린 경기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더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태다. 또 주택공급이 이미 실수요를 뛰어넘었다. 주택경기로는 경제를 끌고 갈 수가 없게 됐다.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다른 하나는 수출인데, 주요 산업은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이다.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되는데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추가되는 셈이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펼칠 보호주의가 엄청난 통상 마찰을 일으킬 것이다.
다음으로 재벌인데, 상당한 현금을 가지고 있어도 불확실성이 가중된 상태에서 투자하기는 어렵다. 또 해운-조선-건설-철강 등 구조조정은 더 본격화될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삼성과 현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은 '갤럭시7 리스크'고, 현대는 100만대 이상 쌓여 있는 자동차 문제다. 전체적으로 재벌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적 대외 환경이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수가 늘어야 하는데, 임금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실업자 고용 문제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50년 이상을 버텨온 수출주도 성장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정책 기조를 다 바꾸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내년에 마이너스가 될 위험성이 있다.
전홍기혜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것 중 하나가 정치와 재벌의 유착 관계다. 두 집단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왜곡시킨다. 박정희식 경제 성장 모델의 병폐가 지금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인 : 박정희식 경제 모델은 끝났다. 박정희 모델에 1996년 이후 신주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붙으면서 재벌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특히 삼성은 사법부와 언론 대부분을 장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시스템으로 가면 삼성이 망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재벌 대부분이 경영 1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면서 IT에 투자했지만, 거의 다 망했다. 이후 눈을 유통으로 돌렸지만, '앙트레 프레너'(entre preneur, 기업가 정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요즘 아이들 소원이 '건물 임대업'이라고 하던데, 재벌 3세들도 면세점이 먹고살 길이라는 생각에 피 터지게 싸우는 것 아닌가. 재벌 시스템이 얼마나 낡았는지, 또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다행히 야권 대선주자들이 경제 정책의 기조가 틀렸다며 '소득이 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재벌 시스템에 얼마나 손댈 수 있을까? 시민들이 독재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지만, 재벌에 관해서는 아직이다. 단적으로, 삼성을 비판하는 게 김연아 선수를 비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망국'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100만 촛불'이 낡아빠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일단은 정치 제체가 바뀌겠지만, 이를 통한 경제 개혁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조성주 : 재벌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위해 모았다는 800억여 원, 재벌이 권력자에게 '삥' 뜯긴 게 아니라 아주 싼 값으로 공적 영역을 통한 민원 해결을 한 셈이다. 재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폭넓고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 '최순실 씨가 재벌에게 '삥'을 뜯었네, 재벌이 '삥'을 뜯겼다'라는 식으로 다뤄지는 것은 좋지 않다.
정태인 :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확실하다. 자신이 재벌에게 '삥'을 뜯는 게 아니라, '내가 줬으니 너희도 내놔라'라는 것이다. 그것도 재벌, 너희가 하지 않는 문화융성 즉 새로운 창조경제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권력과 재벌의 공생(共生)이다.

ⓒ프레시안
'한국형 샌더스'를 찾아야 한다
전홍기혜 :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정태인 : '트럼프 현상'의 전조가 지난 6월 브렉시트였다. 영국의 EU 탈퇴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과 미국의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사람의 성향이 비슷하다. 영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 산업지대)에 거주하는 40대 이상의 백인 남성. 이들은 과거 진보적 가치를 내세운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의 과거 조직적 지지자였다. 이들은 특히 '세계화의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2012년 미국의 '오큐파이'(occupy, 월가를 점거하라)와도 비슷하다. 연령이나 성별은 겹치지 않지만, 이들이 가진 불만은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우린 할 수 있다) 또는 미국의 '샌더스 열풍'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미국 대선 초기,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공화당 트럼프 대선 후보의 지지 기반이 일정 부분 겹쳤다. 다만, 샌더스는 문제의 원인이 국내 정책에 있다고 주장했고, 트럼프는 원인을 불법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한쪽은 내부에서 다른 한쪽은 외부에서 각각 답을 찾은 셈이다.
지금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발생한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대로, 90대 10 또는 99대 1로 완전히 벌어졌다. 그러나 서구의 진보(영국의 노동당, 미국의 민주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등)조차 신자유주의 정책과 비슷한 경제 정책으로 일관했다. 엘리트 그룹과 IT, 금융 쪽 지지를 받은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가 기득권층(establishment)으로 인식된 이유다.
조성주 : 힐러리 후보는 기득권인 워싱턴 정치의 상징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망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4년 후 정권 탈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공화당은 트럼프 후보를 거부하다 끝내 굴복한 것이고, 민주당은 '샌더스'라는 에너지를 안에서 흡수했다고 본다. 그래서 미국이 '헬'(hell)이 되기보다는 진보층에서 더 많은 저항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경우, 이명박 정권에서 '한국형 트럼프'를 겪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것이었다.
정태인 :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의 같은 점은 보호주의, 고립주의, 인종주의다. 세 가지 노선대로라면, 맞는 적인지는 모르지만 피아 구분이 확실해진다. 세계 전체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다. 나치즘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과도 내각을 통해 민주당이 연합 정권이 된다고 해도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 중 일부는 재벌과 연결되어 있으며 심지어 재벌을 공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형 힐러리'는 누구고, '한국형 샌더스'는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 그 사람들 편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 하면 된다'고 제시할 사람이 필요하다.

▲ 정태인 소장(왼쪽)과 조성주 전 소장(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전홍기혜 :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정태인 :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가 아닌, 내치를 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웃음) 아마 박 대통령은 살아남기 위해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다.
트럼프 정책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중국에 대한 압력이다. 특히 중국의 수입품에 대한 45% 관세 등 실제로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때부터 강화된 아시아 국가에 대한 덤핑 제소가 더 강화될 것이다. 특히 환율조작국에 대한 감시가 철저해질 것이다. 한국도 환율조작 감시대상국이다. 환율이 1200원이 되어야 하는데 1300원이라서 미국이 100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면, 미국은 한국 상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10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환율 슈퍼 301조'라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려면 중국-대만-일본과의 공조가 필요한데, 과연 박근혜 정권이 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선 후보 시절 한미FTA에 대해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재협상을 한다면 지적재산권이나 ISD 조항 등을 고치자고 맞불 놔야 한다. 조건이 안 맞으면 폐기하자고 해야 하는데, '박근혜 외교라인'이 그럴 리 없다. 무기를 더 사거나 사드를 한 대 더 들여오는 식으로 훨씬 쉬운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과도 내각에서 총리는 외교 쪽에도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미국과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베짱이 상당한 사람이어야 한다. 강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전홍기혜 : 북한 변수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태인 : 북한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 무력시위를 한 번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도발이 굉장히 줄어들 것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치킨게임, 즉 상대적으로 더 광폭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북한이 주도권을 가졌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연평도 포격 같은 것은 못한다. 섣불리 도발은 안 할 것이다. 대신 평화협정을 굉장히 강조할 것이다.
조성주 : 트럼프 대선 후보 시절, 북한과 협상하겠다고 했다.
정태인 : 단순하게 '내가 해결할게' 정도의 태도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더라도 주한미국 비용 등 전액을 내라고 할 사람이다. 한미 FTA처럼 '철수해라'라고 할 베짱이 있어야 한다. 북한과 남한의 GDP가 40배다. 주한미국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 전문가 대부분이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경우는 '정권이 붕괴될 때'라고 말한다. 외부 공격으로 붕괴되거나, 내부 반란으로 정권이 위험에 처한 경우다. 북한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면 모를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 유지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안심시키면 된다.

▲ 11월 12일 시민 100만 명이 촛불을 들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쓰레기통에서 핀 100만 송이 장미
전홍기혜 : 오는 19일에도 '100만 촛불'이 타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당부할 얘기가 있다면?
조성주 : 시민들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101만 번째 촛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쏟아내야 한다. 노동조합이나 시민 조직도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더 많이 표출해야 한다. 그래서 광장에도 더 많은 공론장이 열렸으면 좋겠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정태인 : 외국학자들이 '어떻게 샤머니즘 대통령과 사니?'라고 묻더라.(웃음) 그런데 지난 12일 '100만 촛불'로 상황이 바뀌었다. '이게 무슨 나라냐?'에서 '이게 바로 대한민국이다'라고. 정치적인 문제가 일단락되고 과도 내각이 출범한다면, 차기 정부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시민들도 같이 토론했으면 좋겠다. 자괴감에서 자부심으로 바뀐 에너지를 최소한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쪽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영국 기자가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꽃'이라고 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쓰레기통이다. 그런데 이를 구원할 '100만 송이의 장미꽃'이 지난 12일 폈다. 그리고 또 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공황이나 전쟁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지 않고도 헤쳐갈 수 있는 방법이 정치고, '100만 촛불'이다.
시민의 힘으로 신자유주의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밑바닥까지 떨어진 국격이 맨 위로 올라가는 민주주의의 진짜 모범이 될 것이다. 혹시 아나?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국가'가 될지.(웃음)
조성주 :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도 '문화국가'를 꿈꿨던 것 아닐까? 문화융성을 통한 창조경제로, 오컬드적으로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을 수 있다.(웃음)
"175만 촛불이 나서면 박근혜는 물러날까"
청와대 진격인가, 평화 시위인가
다시 주말입니다. 이번 주에도 100만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100만 명이 모인 집회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능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이들의 의견이 모두 하나로 일치되어야 한다면, 혹은 그 중 몇 개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면, 그것은 자유가 질식된 민주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폭력과 비폭력에 대하여 사람마다 입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 어떤 입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결론 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와 카이사르의 말대로, 그것은 상황에 따라 항상 달라집니다.
그래도 여기에 일반적 가설이 없지는 않습니다. 2012년, 1980년생의 젊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베쓰(Erica Chenoweth)는 <Why Civil Resistance Works>를 써서 미국정치학회 올해의 책 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에리카 체노베쓰와 그의 동료들은 자료가 수집 가능한 20세기의 시민혁명 사례 323개를 조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들을 200여 개의 폭력혁명과 100여 개의 비폭력 시위로 구분해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폭력 시민혁명의 성공률은 26%, 비폭력의 경우는 53%였습니다. 더 주목할 만 한 점은, 폭력 혁명의 경우 성공한 이후에 다시 독재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던 반면에, 비폭력 시위로 성공한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안착된 경우가 많았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또한 기존 연구에서는 시민저항이 성공하는 경우의 참여 인원을 전체 인구의 5% 이상으로 보았지만, 이들의 조사에서는 국민의 3.5% 이상이 시위에 참여한 경우, 그 시민혁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비폭력 시위의 성공률이 더 높은 이유, 그리고 그 이후에 민주주의가 더 잘 안착되는 이유에 대해 체노베쓰는 '우리는 시위 유형에 따른 성공 여부나 이후의 진행 경과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을 뿐이지, 질문한 부분에 대한 답을 지금 드리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폭력 집회보다는 비폭력 집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경우 결과적으로는 시위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어쨌든 우리는 갖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경우에 그 민주주의는 힘이 세다는 것이 역시 증명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평화 시위가 항상 옳다는 말인가?
어떤 분들은 이 연구 결과를 보시고, 생각할 것입니다.
'거 봐, 역시 비폭력 시위가 더 효율적이라잖아. 그러니 폭력 시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틀렸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체노베쓰 본인도 언급했듯이, 이 연구 결과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연구는, 비폭력 시위도 47%는 실패했으며, 폭력적인 수단을 통한 혁명도 26%는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참가자가 3.5%에 이르지 못했던 많은 시민저항도 성공했습니다.
기실 모든 시위가 단순히 한 번의 사례로 카운트되는 이러한 계량적 방식의 분석은 여러 질적인 차이에 의한 변수, 가령 그 중 어떤 저항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한 어떠한 폭력 시위가 나중에는 다수가 참여하는 비폭력 시위의 원동력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그 저항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관계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시위의 비폭력성과 그것의 성공 간에 통계적 유의미성이 존재하며, 비폭력을 통한 시위를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이 통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옳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모든 통계적 수치는 그로부터 곧바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논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시작점일 따름입니다.
체노베쓰의 연구는 시위의 폭력/비폭력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어떠한 해법이 가장 바람직한지, 그것을 위해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인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통계적 유의미성이 현재 우리의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판단은 자신과의 대화뿐 아니라 광장과 SNS상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려져야 합니다.
그 판단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설령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대단히 극소수라고 하더라도 그 판단이 그르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자유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현재에도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광장에 나온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강압이 아니라 대화로 서로를 설득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른 결론이 지금까지의 모든 연구결과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행하기에 충분히 정당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박근혜 이후의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치'의 시작입니다.
축제와 성찰이 어우러지는 광장
1987년 이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룬 듯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 결과, 우리는 정확히 30년 만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리의 민주주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성찰의 장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동안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왜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부정의와 몰염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 하나 하나는 또한 역사와 우리 자식들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지금도 출세를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줄서기를 고민하는 검사들,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대통령의 측근에게 돈을 갖다 바치며 사건을 무마하는 재벌들, 무자격자가 내리는 부조리한 명령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묵묵히 수행했던 고위 공무원들, 최순실의 위세 앞에서 선생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던져버리고 발가벗었던 교수들.
바로 이들이 우리가 항상 부러워했던 그런 사람들은 아닌지, 우리 자식들에게 성공이라고 가르쳤던 길은 아닌지, 막상 나 자신도 그런 입장이 되면 별 수 없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에 대해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해야 합니다.
100만 명이 모여서 박근혜의 하야를 외치는 것이 단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우리이며, 우리가 먼저 바뀌지 않고서는 이 사회가 절대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해야 합니다.
100만 명의 힘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새누리당은 왜 둘로 갈라졌고, 야당 대표는 왜 영수회담을 철회했으며, 박근혜는 왜 제대로 된 변호사 하나 구하지 못하고, 기자들은 왜 갑자기 그렇게 용감해졌단 말입니까?
그래서 이 시민적 저항은, 단지 박근혜를 퇴진시키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박근혜가 퇴진할 때까지 매주 모일 100만 명의 시민들은, 단지 박근혜를 퇴진시키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해, 인간이 살 수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왜 망가졌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자기 고백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래서 지금을 우리의 민주주의에서 위대한 또 한걸음을 딛는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모이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수능이 치러졌습니다. 대부분 취업 전진기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우리의 청춘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하다고 생각했던 이 경쟁에서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말을 타고 유유히 들어간 사람, 그리고 그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한 사람과 그의 부모와, 그것을 비호해 준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입시에만 억눌려 있던 이 가련한 청춘들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운으로 충만한 자유를 만끽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목청껏 외치면서 그 무거웠던 짐을 하늘로 훌훌 날려버리면 좋겠습니다.
저 하잘 것 없는 박근혜가 들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부끄러운 어른들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하늘에도 닿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인근을 가득 메운 시민. ⓒ사진공동취재단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이게 최선입니까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7(목) 16:16:51
이 정도면 국민적 조롱거리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부터 ‘길라임’이라는 가명까지 모든 키워드가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며 국민들의 따가운 조롱과 질타를 받고 있다. 심지어 단독 영수회담을 요청한 추미애 의원까지 ‘비선실세, 추순실’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일요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예능 프로 사상 처음으로 ‘박근혜 게이트’라는 키워드가 전면에 등장하며 대통령의 무능을 희화화시키고 있다. 거의 동네북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2선 후퇴 또는 하야를 받아들이지 않는 걸 보니 가히 김종필 전 총리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그대로 고집이 세긴 무척 센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정말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만하다. 심지어 최근 심리학계 및 경영학계에서도 그녀의 국정 통치는 학술적으로도 풀기 힘든 난제(?)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더 높은 권좌에 오를수록 자신의 역량에 대해 과신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상당수 기업의 인수합병 관련 연구 결과를 보면 ‘경영자의 우월감이나 경영자의 자부심’이 과도한 인수금액을 불러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분야 최고의 리더들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엔론의 전 CEO인 제프리 스킬링은 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 ‘나는 매우 똑똑하다(I’m fucking smart)’라고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 연구와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학문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탄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리더십과 관련된 상당수 연구에서 가장 강조하는 최근 키워드는 바로 ‘권한위임(Delegation & Empowerment)’이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자신의 역량에 대해 지나친 과신에 빠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제일 잘 안다’가 아닌 ‘내가 제일 모른다’ 행보를 보여 왔고 아주 사소한 일 하나 하나도 제대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전문성도 없는 수많은 인물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특정인에게 의존했다. 기업 및 국가적으로 모든 역사를 통틀어 봐도 이런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100% 권한위임’은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영역을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 지위에 오를수록 의사결정에 대한 자신감은 없어진다’는 가설을 증명하려면 꽤나 복잡한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연구 과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녀가 그토록 강조한 창조경제 성과로 인정해줄 만하다.
결과적으로 필자 역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말 이러려고 대통령을 원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평소 박근혜 대통령을 높이 인정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순수한 애국심을 강조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순수하게 애국심을 기반으로 봉사활동만 했다면 지금쯤 ‘영애 박근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자신의 역량도 모르고 대통령직을 수행했기에 그녀는 지금 불행이라는 터널로 가속도를 밟으며 달려가고 있다. 친박으로 인정받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도 대통령을 멀리하고,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노골적인 아부를 부르짖으며 대통령을 ‘누나’라고 언급한 모 국회의원은 아예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다.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토요일마다 상당수 국민이 광장에 모여 퇴진을 요청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 자리에 앉아서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언제나 모든 사항을 외부의 탓으로 돌렸다는 언론 소식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최근 JTBC에서 보도된 세월호 참사 두 달 이후 만들어진 청와대 내부 문서에서조차 국정 혼란을 ‘외부 탓’으로 돌리고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건설적인 시민단체를 ‘비판세력’이라고 몰아세우기 바쁘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언론들을 전방위적으로 통제하며 재갈을 물리려고 한 상황은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시대를 연상케 한다. TV조선을 통해 보도된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사저널을 향해 본때를 보여야 한다’며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특정 언론사를 향해 열성과 근성을 발휘하라는 그녀의 지시가 무엇인지 참으로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2014년 초 국내 언론 중 최초로 시사저널이 정윤회를 언급했고 이 정부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파헤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윤회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정윤회의 딸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에서 노골적인 특혜를 받았다는 시사저널 기사에 대한 청와대의 보복은 고소고발의 연속이었다. 결국 시사저널 기자들은 단체로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특정 언론사 그것도 단일 언론사 기자들이 언론사의 이름을 걸고 대통령 퇴진 촉구 성명을 발표한 것도 국내 언론 역사상 최초이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가는 길마다, 그리고 하는 짓마다 국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창조경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잠을 충분히 자면서 언론에 대한 봉쇄와 탄압만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행동은 과거 1970년대 무차별한 긴급조치를 남발한 무소불위 통치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정부 역할은 외부 환경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잠재우고 국민들을 향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하는 행동마다, 발표하는 주요 내용마다 불확실성만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국가의 큰 줄기를 잇는 지도자를 의미한다. 일본식 조어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그 어떤 국가도 대통령이라는 의미로 국가 지도자를 부르지 않기에 예전부터 이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많았다. 어찌되었든 국가의 큰 줄기를 계승하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역량에서도,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공적 의식 수준에 있어서도 자격 상실이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013년 윤창중 파문, 2014년 세월호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유례가 없는 지진 사태 및 유례가 없는 막장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한 번도 책임 있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인 적이 없다. 세월호 7시간 논란에 대해서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녀가 오직 청와대에서 보여준 건 배신에 대한 응징과 언론에 대한 레이저 눈빛 발사뿐이었다.
그토록 그녀가 걱정하던 벤처 창업과 한류 열풍은 결국 치명상을 입었다. 북핵 리스크를 우려하던 외국투자자들도 현재 대한민국 내부에서 발생한 대통령의 불확실성에 대해 더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국민행복이라는 국가 성장과 방향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적 키워드는 주인(?)을 잘못 만나 수렁으로 빠진 상황이다. 지난 토요일 1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광화문에 집결해 새벽까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잠이 보약’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폭정이다. 국민들이 비폭력 시위를 통해 건전한 시민의식을 보이며 성숙한 정치를 요청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다. 역량은 없으면서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4년간 값비싼 수업료를 내며 경험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린 피터 드러커는 공정한 인사를 위해 애쓰지 않는 지도자는 결과적으로 약삭빠른 사람들의 출세와 승진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업적에 대한 손상과 함께 조직에 대한 존경심까지 훼손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길라임을 꿈꾸며 불확실성만 창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행보도 보이지 못했다. 그녀가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은 명확한 퇴진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고 초라한 행보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국민의 명령에 대한 그녀의 도리이다. 그토록 국민행복을 강조했으니 이제 국민행복을 위해서 하루빨리 퇴진하길 바란다. 제발 부탁이다.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의 끝은 어딘가요?"

▲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프레시안(최형락)

▲ 스페인의 신생 정당으로 떠오른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마드리드 시민의 모습. ⓒwikipedia.org

▲ 지난 12일 열린 100만 촛불 집회는 한국 길거리 정치의 역량을 선보였다. 앞으로 한국은 이 열망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를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사진공동취재단
좋은 정치인 양성하려면?

▲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이진순·와글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박근혜의 반격과 정치적 내전
박근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이다. 제1 야당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상대는 기력을 회복하고 시민혁명의 불길을 끄겠다고 세력 결집에 나섰다. 어떻게 결말이 날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상황을 정치권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12일 광화문에 집결한 100만 시민들이 터뜨린 함성은 "박근혜 체제 종식 선언"이었다. 연일 드러나는 박근혜 정권의 비리와 부패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혁명이 옳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의 축출"은 그런 변화의 첫 번째 작업이자 절대적 선결조건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만드는 중대한 과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혁명 중"이다.
혁명은 정치적 내전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구체제의 정치적 기반을 허무는 일은 기존 질서의 유지와 강화에 복무했던 자들과 세력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실하고 거세게 성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에게 고통을 가한 자들임을 온 천하에 계속 밝히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정치적 내전은 보다 치열해야 한다. 누구도 이들을 더는 지지하거나 엄호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런데 이 정치적 내전은 박근혜를 비롯한 가해자 세력에게만 향한 전투가 아니다. 이들의 권력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보이는 야당도 그 전투의 대상이다. 물론 시민혁명은 시민사회와 야권 전체의 결속을 통해 진전을 이룩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혁명의 동력을 훼손하거나 그 열매를 독과점하려든지 아니면 그 방향을 교란시키는 세력은 끊임없이 청산해야 한다. 아니면, 새로운 민주적 권력질서를 세우는 일이 좌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의 시간 관리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다. 속도를 낼 때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타격의 강도를 높일 때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시간 허비가 되고 상대는 전투력을 복원하게 된다. 긴 싸움이 내다보인다고 해도 결정적 국면이 있게 마련인데 이걸 놓치면 그 싸움은 지지부진해지고 지쳐간다. 반면에 결정적 국면에 대한 파악과 역량집중이 있게 되면 그 긴 싸움은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야권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박근혜 퇴진 운동의 과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열매로 삼기 위해 계산하고 머뭇거리고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박근혜의 정치적 목숨은 일단 살려 줄테니 다른 권력은 자기들에게 내놓으라는 식의 책임총리제요, 거국중립내각이요, 하다가 퇴진역량을 증폭시키는 일에 필요한 시간을 까먹고 말았다. 제1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의 2선 후퇴론 고수세력은 가장 책임이 크다.
뿐만 아니라 이 와중에 개헌이니 뭐니 하면서 민주정부 수립으로 그 임무가 완결되는 87년 체제의 종언을 주장하고 박근혜 퇴진을 부차적인 사안으로 만들고자 했던 자와 세력들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나, 지금 당장에 박근혜를 퇴출시키는 일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과는 거리를 두었던 노선이다. 상황인식의 절박성이 없고 민심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또 하나의 전선
이들은 모두 이제는 모두 퇴진 전선에 집결한 상태로 보이지만, 애초의 2선 후퇴 고수론자들이나 책임총리제 제안자들 그리고 이 판국에 개헌론 운운했던 자들은 민심이 요동치자 기회주의적 입장 선회를 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이들의 특징은 시민혁명의 동력과 성과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로 전환시키는 시나리오를 계속 관철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퇴진"을 중심으로 시민혁명과 굳게 결합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요구와 의지를 제도정치에 관철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은 시민혁명의 동력에는 편승하면서도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배제시키고자 한다. 정치적 주도권은 언제나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퇴진론자들 가운데도 이런 세력들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시민혁명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시민사회의 주도권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나 세력은 모두 또 다른 전선에서의 정치적 내전의 대상자들이다. 4.19 혁명 이후 기성 정치권이 그 열매를 가져가면서 상황이 지리멸렬해졌던 것이나 6월 항쟁 이후 양김의 분열에 의한 정치적 패배는 모두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의 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와 야3당 간의 결속과 역량 집결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내부의 노선 교란과 정치적 계산에 몰두하는 인물과 세력에 대한 정밀한 비판 역시 필수적이다. 그래야 박근혜 퇴진을 위한 진정한 결속과 역량집중 그리고 그 방향설정이 가능해진다.
시민 권력의 창출
결국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시민 권력의 창출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시민혁명의 동력을 어떻게 정치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시민권력의 리더쉽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가?"이다.
이것은 당연히 박근혜 축출을 위한 운동과정에서 탄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집회는 계속되어야 하며 지금 진행되고 있듯이 각 부문을 비롯해 지역 확산과 대도시에서의 집중을 기획하고 만들어 가야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시민 민주주의의 현장이 되게 하고 박근혜 퇴진운동의 동력을 지속시켜나가는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
둘째, 퇴진운동의 일상화를 강력하게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아파트 베란다에 펼침막을 거는 것도 그러한 예이며, 대중교통에 퇴진 스티커를 붙인다든가 세월호 표식처럼 퇴진 표식을 옷에 달거나 하는 것처럼 퇴진의 구호가 도처를 장악하는 작업이다. 마을 단위의 촛불행사와 시민발언도 이러한 일상적 현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노력이다.
셋째, 탄핵의 병행추진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탄핵은 이 모든 작업의 보조수단이자 도구일 뿐이지 퇴진운동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탄핵정국이 전면화되는 순간, 시민혁명의 동력은 관망세력으로 퇴각하게 되고 제도권에 그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으며 시민 권력의 창출은 어렵게 된다.
넷째, 권력 거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타격이다. 검찰과 공영방송사는 그 타격지점의 주요대상이다. 타격이라고 해서 그곳에 몰려가 건물을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다면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잘하고 있으면 응원하는 것이다. 방송사에 대한 타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권력거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나 손석희의 JTBC 뉴스룸을 엄호하고 응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회를 전면 개방하라
이 모든 시민역량이 집중투입 될 또 하나의 중대지점은 국회다. 대의제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정치적 계산에 따른 기회주의를 비롯해서 시민 배제적 자세를 타파하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를 제도권 내부에 복원하기 위해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 내전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최소 1주일에서 향후 과도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국회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 국회 잔디밭을 비롯해서 각종 세미나실과 본회의실까지도 시민들과 야권 정치인들아 함께 하는 치열한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매일 생중계가 이루어지고 매일 논의된 내용들이 정리되고 그것이 우리사회의 정치적 담론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이행경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광장의 촛불과 함께 가는 일종의 정치적 축제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시민혁명 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태어나거나 또는 미래세대를 포함한 새로운 시민권력 리더쉽의 등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제도정치와 직접 민주주의의 의지가 하나로 결합하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며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가 분리되지 않고 같은 몸이 되는 것이다. 야권 정치인들이 광장에서 시민들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여의도에서 시민들이 야당과 하나의 길을 뚫어내는 권리를 발동하는 일은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자면 11월 19일, 26일의 집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 권력의 주도권을 확립하는 일은 시민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이자 책무이다. 나 하나라도 나서면 그게 곧 우리 모두의 힘이다. 긴 싸움의 결정적 국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박근혜의 반격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날이 될 것이다.
'불면증'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수면제 취해 잤나?
2014년 4월 16일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서, 뭘 했을까?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의혹이다. 청와대가 당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와 관련해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을 놓고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여의도 증권가 '지라시'에 청와대나 혹은 모처의 장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한 일본 기자는 박 대통령이 전 보좌관이었던 정윤회 씨와 같이 있었다고 보도해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는 굿판에 참석한 건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이렇게 설이 파다하고 또 극히 제한된 몇 가지 정보만 나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fact)'을 구성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조심스럽게 '진실'을 구성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 '불면증'을 앓았다
기자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중요한 제보를 하나 받았다. 며칠 전, 박 대통령과 가까웠던 한 정치인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는 박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었다. 심지어 그 역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는 대통령 측근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는데 좋은 의사를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문의도 해왔다. 그는 실제로 몇몇 의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그 자체로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인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제보를 받고 나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진료한 적이 있는 의료인 여럿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 다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이유로 확답을 피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잠이 보약"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로 구설에 올랐다.)
불면증과 '세월호 미스터리'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은, 이것이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불면증을 앓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 주치의 또는 최순실 자매와의 친분 때문에 대통령 자문의로 위촉된 게 확실해 보이는 김상만 의사에게 불면증을 해결할 처방을 의뢰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다시피, 불면증에는 수면제(수면 유도제) 같은 의약품이 처방되어야 하고, 일부는 장기 복용 시 부작용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김상만 의사가 대리 처방한 박근혜 대통령의 약 가운데 이른바 '비타민 주사' 같은 수액 주사 외에 향정신성 의약품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상만 의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복용할 수면제(수면 유도제)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복지부의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수면제(수면 유도제) 처방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주치의나 의무실장의 관리 밖에서 수면제(수면 유도제)와 같은 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불면증을 앓는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약은 흔히 상품명 '스틸녹스'로 알려진 '졸피뎀'이다. 졸피뎀은 다른 약에 비해서 의존성이나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수면제를 먹고 잤다면…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걸 전제로 2015년 4월 16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구성해 보자.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도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 밤새 잠을 안 잤을 수도 있다. 애초 4월 16일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밀린 보고서를 탐독했을 수도 있고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를 몰아서 봤을 수도 있다. 오전에 일정을 처리하고, 낮잠을 청하면 되리라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오전 8시 49분,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첫 보고를 받았고, 오전 10시 15분 또 30분 두 차례에 걸쳐서 구조 지시를 내렸다. 특히 30분에는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세월호는 10시 21분 마지막 생존자를 구하고 나서 사고 101분만인 10시 30분 완전히 침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렇게 세월호가 침몰하고 나서 12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190명이 추가 구조돼 1시 20분께 팽목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잘못된 보고가 그대로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전원 구조" 오보)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 때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나서, 12시 50분께 최원영 당시 고용복지수석과 기초 연금법 관계로 10분 동안 전화 통화도 했다. 만약 밤새 깨어 있었던 데다 오전 업무까지 처리했다면, 박 대통령은 이 시간에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몸 상태였을 것이다.
만약 최원영 수석과의 통화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수면제(졸피뎀)를 한 알 삼키고 세 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면 어떨까? 개인마다 다르지만 졸피뎀 한 알은 세 시간 정도의 효력이 있다. (박 대통령은 수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량된 졸피뎀(스틸녹스 CR)을 삼켰을 수도 있고, 수면 유지가 잘 되도록 디아제팜 같은 수면 유지제를 같이 먹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로부터 올라오는 보고는 쌓여 있기만 하고서 전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잠들어 있었으니 청와대 경호실의 해명대로 외부인이나 병원 차량이 청와대를 방문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 세 시간 동안 세월호에 갇힌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오후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잠에서 깨었을 때는 세상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수면제에 취해서 정신이 멍한 상태였을 테고, 자다 깨서 얼굴 특히 눈 주위도 부었을 것이다. 급하게 준비를 해서 청와대 인근의 세종로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에 5시 15분에 나타날 때까지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되었을 게 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멍한 듯한 표정에 부은 얼굴을 하고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 잤으면 잤다고 고백하라
이상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제보를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다수 의사의 자문을 얻어 그날의 가능성 있는 행적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굿'이나 '성형 시술' 같은 억측에 강하게 반박하면서도, 정작 그날의 행적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생명이 수장되는 동안 대통령이 자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겠나?
앞으로 검찰 또 보건복지 당국이 박근혜 대통령이 졸피뎀(수면 유도제), 디아제팜(수면 유지제) 같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면, 또 그런 약을 박 대통령이 김상만 의사 등을 통해서 입수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한다면, 세월호 7시간의 의혹은 예상외로 간단히 풀릴 수 있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수면제에 취해서 자고 있었더라도, 왜 청와대 보좌진은 억지로라도 그를 깨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권위적인 행태가 그런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대통령보다 훨씬 더 권위 있는 '비선 실세'가 자는 대통령을 깨우지 말라고 막기라도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고백하라.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여럿이 수장될 때, 자고 있었으면 자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