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으로 美·中관계 개선되고 북한 고립돼 통일될 것”
“트럼프 당선으로 美·中관계 개선되고 북한 고립돼 통일될 것”
김창준 前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말하는 트럼프의 승리 비결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1.14(월) 08:34:40 | 1413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예측했던 세계는 이 같은 결과에 놀라는 분위기였다. 한국 언론 역시 ‘이변’이라는 말로 트럼프의 승리를 전했다.
트럼프의 승리는 과연 이변이었을까. 10월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비하라》는 책을 출간한 김창준 김창준미래한미재단(이하 재단) 대표는 트럼프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때부터 그의 승리를 예측했다.(시사저널 제1407호 참조) 그는 1990년 캘리포니아 주 시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2년 후에는 시장, 그 이후 세 차례나 연방하원의원을 지낸 아시아계 최초의 공화당 의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언론이나 정치권은 지나치게 트럼프의 당선가능성을 간과했다”며 “이제부터라도 트럼프가 변화시킬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11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시사저널 임준선 기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됐던 대선 레이스 중에도 꾸준히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잠재력은 무엇인가.
연방하원의원 현직 시절 트럼프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의 그는 일개 사업가일 뿐이었고 나는 그와의 만남을 잊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처음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문득 ‘저 사람이 미친놈 같지만 제때 나왔다’ 싶었다. 순간 그에게서 오래 전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백인 지역구에 하원의원으로 나섰다. 당연히 ‘게임도 안 될’ 줄 알았는데, 결과는 달랐다. 아시아계 최초로 공화당 의원이 됐고 3선이나 지낼 수 있었다. 정치란 숫자나 관례만 따져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즉 민심의 향방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나 역시 당시 캘리포니아 주 민심이 원하던 정치인상(像)에 근접했기 때문에 당선됐다. 트럼프도 그렇다.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을 바라는 민심을 읽어낸 것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제아무리 똑똑해도 시대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트럼프는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공격적이다. 정치인 트럼프는 어떤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돌풍이 시작됐다. 정치인 트럼프의 가장 큰 장점은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는 점, 즉 솔직함이다. 이 때문에 실수도 잦고 비호감 세력도 만들긴 했지만, 노련한 대신 속을 알 수 없는 힐러리 클린턴과 정반대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결국 성공했다.
민심은 후보들을 비교하게 된다. 힐러리는 30~40년간 정치를 해왔다. 그의 남편이 대통령이었고,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장관을 했으며 이젠 직접 대통령에 나섰다.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혼자서, 혹은 그 패거리가 수십년간 정권을 잡고 있는 것 같지 않겠나. 그 동안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기만 하고. 여기에 ‘이메일 스캔들’까지 겹치니 비호감도는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승리는 트럼프란 개인이 잘났거나 공화당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작용인 측면이 더 크다. ‘대통령 트럼프’는 창피한 면이 크지만 ‘그래도 클린턴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번 트럼프의 승리를 만든 것이 백인층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대선에서 최초의 흑인계 미국 대통령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백인들이었다. 미국 시민들은 흑인 대통령이 나오면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흑인들의 지위는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인종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니까 대중들은 ‘소수의 흑인들만 성공할 뿐 전체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실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트럼프의 승리는 한 마디로 ‘백인들의 반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백인 남성들의 반란’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오겠다고 했다. 흑인 권리를 챙겨주고, 이젠 여성 권리까지 챙겨주고 그럼 백인 남성은 뭐가 되느냔 거다. 하지만 백인 남성들은 오랜 역사 동안 자신들만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법을 익혀왔다. 조용한 백인들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을 두렵게 하는 말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특히 ‘안보 무임승차론’과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그의 원칙 때문에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후보 때와 달라질까.
트럼프가 내건 약속 중에 공화당 정책과 크게 반대되는 것은 조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말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FTA 얘기는 반드시 나올 것이다. 천만 다행인 것은 이 이슈에 있어서 우리가 추가로 져야 할 부담이 많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이슈는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다. 거기다 우린 ‘동맹국’이다. 동맹국에 크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없다.
물론 FTA는 재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핵심 사안 중 하나가 쌀과 소고기인데, 상황이 한국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현제 쌀이 FTA 제외 대상인데, 과거에 비해 지금 상황은 어떤가. 미국은 쌀 소비량이 늘었고 한국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부분은 재조정해 협상하면 된다. 6개월 내 쇠고기 추가 협상을 요구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우리 주식(主食)이 소고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고기를 들여온다 해도 품목에 연령 표시를 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시장에서 소비자가 안 사면 그만이다.
책에서는 가장 먼저 바뀔 부분을 중국과의 무역적자 해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미·중관계의 변화인데, 그 과정서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트럼프 당선으로 미·중관계는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중국 내정에 관여를 안 한다. 티벳 문제나 인권 탄압 문제 등에 대해 일절 ‘노터치’다. 오로지 ‘돈’ 문제로만 접근한다. 실용주의적인 중국은 이런 트럼프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미·중관계가 좋아지면 우리에게 어떤 장점이 있을까.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트럼프에 우호적이 되면 북한은 완전히 고립이 된다. 그럼 통일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트럼프 당선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난 오바마 정부 8년 간 통일이 안 보였다. 하지만 이제 보인다. 천만다행인 일이다.
많은 대북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건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거다. 새로운 정부는 어떻게든 그 방향을 달리해 북한을 다룰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예상해본다면.
사실 트럼프 캠프의 대북 정책이란 건 없다. 있다고 해봐야 ‘햄버거 토크(북한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협상하겠다고 한 트럼프의 발언에서 유래)’가 고작이다.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면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도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되면서 급해지니 트럼프가 내민 손을 아주 외면하진 않을 거다. 북한이 그 전에 스스로 붕괴해버리지만 않는다면.
성공적인 대선후보를 거친 트럼프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 털고 갈 ‘업’은 없나.
왜 없겠나. 다만 그 사람이 뭘 털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 지금까지 그랬듯 그냥 넘어갈 것이다.
정치인 트럼프의 취약점은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괜찮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 돌풍’에서 당선까지. 결국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낀 미국 시민들이 변화를 선택한 것 아닌가. 한국은 내년이 대선이다. 한국도 이런 ‘이변’,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기성 정치인으로 분류되지 않던 ‘신인’이 무서운 기세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결국 당선까지 되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렇게 빨리 변화가 오진 않을 것 같다. 보다 나은 민주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공천 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있어야 할 공천권을 당이 쥐고 있으니 여기에서부터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도도 마찬가지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한국을 비판하고 싶진 않지만, 이게 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한 개인이 나라를 이렇게 망칠 수가 있나. 거기에 대통령 측근 인사들, 고위 관료들이란 사람들이 애국심이라곤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고…. 그리고 검찰에 가서는 “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고 말한다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그동안 한국 사회는 죄에 대한 처벌이 약했다. 걸리면 그때만 모면하면 그만이었다. 정의감이 사라진 사회다. 이번 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앵그리 화이트'의 선택, 한반도엔 '빅딜' 기회
화가 난 미국 백인들(angry white)이 트럼프를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사실 트럼프가 했던 여성 비하나 인종 차별은 미국 독립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All men are created equal)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평등의 정신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 여성이나 흑인, 노예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조소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칭해지는 조지 워싱턴도 독립선언 이후에도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트럼프
하지만 독립 선언 이후에도 미국은 끊임없이 평등의 정신을 강조해왔다. 미국 역사에서 불멸의 연설로 남는 연설에도 이 구절이 포함되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5)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어요'(1965)에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를 강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오바마를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에 대한 지지 연설이었다. 오바마는 이 연설에서 다시 한 번 이 문구를 인용하였다. 미국 독립선언에서 밝힌 평등의 정신은 미국 건국 이후 세기를 초월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완전하게 평등을 실현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말로서라도 끊임없이 이 정신을 강조해온 것이 미국의 역사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노골적으로 부정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이런 멋진 구절을 미국의 가치로 내세울 수도 없게 되었다. 미국의 백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트럼프의 미국 독립정신 부정에 동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른 바 '화가 난 백인'들은 그들의 선택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아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화난 백인들이 독립선언에서 말하는 평등의 정신을 기억할 리 없다. 그들은 불안, 불만, 불신이라는 '3불 정치'에 따라서 트럼프를 선택했을 뿐이다.

▲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 당선인이 9일(현지 시각) 오전 미국 뉴욕시 힐튼 미드타운 선거본부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백인들의 불안, 불만, 불신
대서양과 태평양을 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정보통신 산업과 선진 기술에 따른 첨단 산업이 발전해왔다. 그 사이에 미국 내륙 지역의 제조업은 쇠락했다. 미국 백인들이 불안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마이클 무어는 이미 이를 간파하고 트럼프의 승리를 오래전부터 예측해왔다.
마이클 무어는 <허핑턴 포스트>에 트럼프가 승리할 5가지 이유를 기고했다. 그가 첫 번째 이유로 꼽은 것이 미국의 사양화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였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 제조업 지대로서 1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의 번영을 구가하게 했던 중심 지역이었다. 하지만 제조업의 쇠락으로 그들의 번영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공장은 멈추고 기계는 녹이 슬었다.
마이클 무어는 이 러스트 벨트가 미국판 '브렉시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클 무어는 트럼프가 5대호 주변의 민주당 지지 주 네 곳인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만 이기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 대선 개표결과 트럼프는 이 네 곳에서 모두 이겼다.
미국 인구 구성을 볼 때 백인이 60%가 넘는다. 이 가운데 고졸 이하의 학력자는 전체 미국 인구의 50%를 차지한다. 고졸 이하의 미국 백인들은 제조업의 쇠퇴 때문에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 상황에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이들의 불안은 제조업의 쇠퇴에 그치지 않았다. 백인들은 경기 침체 결과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들을 3D 업종의 종사자로, 즉 미국 내 수직적 일자리 분업 구조에서 하위 구조를 담당하고 있는 계층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 테러와 전쟁의 결과 미국도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의 가장 큰 불안은 언제 발생할 줄 모르는 테러이다.
오바마 흑인 대통령 이후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 백인의 가치라고 생각해온 총기 소유나 낙태 규제에 대한 조치가 더욱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소수자에 대한 우대 조치를 자신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안이 불만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들의 불안과 불만은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포퓰리스트 트럼프와 미국의 양극단화
트럼프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무슬림과 히스패닉, 여성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절제 없이 쏟아냈다. 불안, 불만, 불신에 가득 찬 중부 내륙 지대의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말없이 지지했다. 트럼프의 저속한 성적 농담이나 심지어 탈세 혐의조차도 이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역사의 퇴색한 단면으로 보였을 뿐이다. 트럼프가 무슬림을 비하하는 것을 테러로부터 오는 불안을 해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히스패닉과 이민자들에 대한 규제를 그들의 일자리 보호로 여겼다. 결국 그들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세계 언론은 이들은 '화가 난 백인'으로 칭하게 되었다.
트럼프는 이들의 심리를 파고들기 위해서 쉬운 단어와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화법을 사용했다. 트럼프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 압력을 넣는 것이나, 주한미군 철수, 한국 핵 보유 용인 등의 발언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미국의 백인 저학력층들은 미국 군대가 한국방위를 위해 한국에 주둔하는데 한국이 충분한 방위비 분담도 하지 않는다는 투로 트럼프가 말하는 것에 솔깃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한국 방어를 위한 미군 주둔인데도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다고 선동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압력은 한미 동맹을 비용이 들지 않는 동맹으로 재조정하기 위한 용도인 것이다. 트럼프가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이유이고, 트럼프가 대선에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트는 철저하게 실리 중심으로 외교 정책을 짤 것이다. 미국 외교의 시스템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 외교의 시스템에 트럼프의 색을 칠하여 할 것이다. 그것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화난 백인들을 지지층으로 계속 붙잡는 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아도 양극단화(polarized)되고 있는 미국의 균열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미국 연방에서 분리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에 빗대서 캘리포니아의 탈퇴를 의미하는 '칼렉시트'라는 합성어까지 나오고 있다.
반대로 트럼프 지지자들 일부는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미국을 90% 백인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미국에서 무슬림과 히스패닉과 이민자들은 백주 대낮에 그들로부터 위협을 당할 처지에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는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겠지만, 그의 선거 전략은 철저하게 자기 편인 '집토끼'를 모으는 것이었다. 인구의 절대 다수인 백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그들을 결집시키는 것을 최우선시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말초적인 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념, 지역, 인종의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트럼프와 한반도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말했던 한국 핵 보유 용인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하기는 힘들 것이다. 트럼프의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지만, 한국의 핵 보유나 주한미군 철수는 실행 가능한 공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 보유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미국의 시스템이 트럼프의 이런 선거공약을 수정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1990년부터 시도해왔던 주한미군 변경 계획을 추진할 수는 있다. 육군 중심의 주한미군을 경량화시키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한국 방위의 한국화와 주한미군의 보조적 역할로 주한미군의 위상을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해공군을 강화하여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서 신속배치군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증대는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재설정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한국은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언제 어떻게 전략을 변화시키더라도 동맹의 기본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방위를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트럼프 당선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도 예측 불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층들이 기존의 미국 정치 질서를 불신하더라도 이것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불신하는 데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지지자들도 북한 체제에 대한 불신은 다른 미국인들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관련 인사들의 면면은 대북강경파들에 가깝다. 이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지금까지와 같은 강경책을 유지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 실리외교를 통해서 북한 핵을 폐기시키고 미국인들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빅 딜'을 할 경우,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이념이 아닌 '3불 정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지층의 성격 때문에 트럼프의 대북정책에는 유연성이 증대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경경책과 파격적인 관계 개선 등 모든 것을 추진할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트럼프와 동북아
세계에 충격을 준 미국발 11월의 쇼크는 동아시아 질서에서도 반영될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의 통상 압력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점을 중시 여기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과 트럼프의 친숙한 관계가 푸틴의 동아시아 진출 구상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것이다. 푸틴은 트럼프와 협력해서 러시아가 철도, 가스 등을 매개로 동북아에 진출하고 여기에 미국의 참여도 보장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숙원이 이뤄지는 셈이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능력 과시를 통해서 미국이 인내하는 임계점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 미일 동맹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면서도, 트럼프와 소통이 잘되는 푸틴의 12월 방일이 동아시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주히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트럼프 등장, 전통적 미일 동맹의 변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향상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할 상황이다. 전통적인 미일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이 느슨해진다면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트럼프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는 의미이다. 트럼프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중국에 '아웃소싱'할 것이므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 동맹의 효용은 그만큼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게 된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에서 빅딜의 공간을 만드는 정지작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시기에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한국 외교안보의 컨트롤 타워를 굳건히 다시 새로 세우는 것이 우리의 핵심적인 대응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