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에 메가폰급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다. '비선 실세' 의혹이 단순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 청와대 게이트 국면으로 부메랑이 되고 있다. 최순실의 개인 회사로 알려진 더 블루케이에 케이스포츠 재단 공금이 유입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면 전환을 주도했다. 청와대는 개헌 정국으로 수세를 공세로 전환하려 했지만, JTBC 특종으로 대통령 연설문 개입 의혹 정황과 증거들이 보도되면서 개헌 정국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여당 의원조차 '탈당', '특검'을 거론할 만큼 보수 정권은 최대 위기에 봉착한 양상이다. 20일 수석비서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은 청와대가 재단 설립에 개입했음을 공식으로 확인시켜줬다. 25일 마침내 취임 후 처음으로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친분 관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과가 활화산처럼 솟아오르는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것 같지 않다. 2분의 짧은 사과로는 진실을 덮기 힘들다. 더욱이 구체적인 향후 일정조차 밝히지 않아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겠다는 임시방편 변명에 불과했을 뿐이다.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에 쏟아진 각종 의혹 제기에 청와대는 비선 실세를 늘 유령 취급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속한 이번 반응은 의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청와대, 여당의 속내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연설문 개입 의혹은 우리의 헌정 체제를 위협할 만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는 사안이다. 구체적인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 마당에 이제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다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청와대의 침묵과 함께 '비선 실세' 논란은 커졌다. 비선 실세가 없었다면 당당하게 모든 의혹을 투명하게 밝히면 그뿐이었다. 적어도 국민의 시각에서 그러길 원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킨 청와대, 비호하기에 바쁜 정부 여당의 태도는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침묵은 물증은 없지만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금방 들통날 너무도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비선 실세'의 문제
'비선 실세' 의혹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비선 활동은 명목상으로는 국가를 위한 행위로 포장되지만, 겉껍질을 한 번 벗기면 개인 영달과 영욕의 민낯이 드러난다. 은밀한 뒷거래는 늘 개운치 못한 앙금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번 사태가 꼭 그렇다. 진정 순수한 의도에서 재단을 설립하고자 했다면 의당 국민에게 알리고 투명한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순수하지만 알리지 못할 상황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비선 라인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 이유다. 비선 '실세'는 늘 그 이상의 문제를 낳는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국가 대사를 주물럭거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어도 진실은 언제고 드러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양파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진실이 야속할 뿐이다.
이번 정부 들어 유독 비선 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비민주적 통치 스타일이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분명 일리 있는 분석이다. 아집과 불통, 이벤트성 통치는 비민주적인 대통령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여전히 명확히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공무원 조직과 여당, 대안 없는 야당, 비판 없는 언론, 그리고 침묵하는 시민이 설명되지 못한다. 분노와 저항조차 못 하는 현재 상황을 해명하지 못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한층 포괄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해 더욱 그렇다.
이번 비선 실세 의혹 논란에는 되짚어볼 만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주종(主從) 관계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이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힘들다. 온갖 갑질은 무엇을 말하는가.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우리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언어 생활은 그 단면이다. '금수저', '흙수저'는 지금까지 우리 현실의 좌표 구실을 했다. 하지만 '황태자', '공주'와 같은 낡은 단어들이 다시 등장하고 살아 있는 은유로 작동한다. 주종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은유들이 판을 친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관련된 온갖 의혹을 생각해보라. 총장 사퇴까지 불거진 이화여자대학교 사태는 대학마저 주종 관계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먹이사슬로 얽힌 악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타락한 대학에 화가 치밀고 부끄럽다. 장자크 루소는 깊은 사회 불평등이 이런 변화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주종 관계로 변한다는 것이다. 가시적인 주종 관계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주종 관계를 요구한다. 우리 사회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정신 상태와 싸워야 한다. 관습화된 주종 관계는 한 사람의 힘으로 떨쳐버리기 힘들다. 우리 삶의 구조를 다시 바꿔야만 한다.
게다가 주종 관계는 국가의 모든 공적 영역을 산산조각낸다. 주종 관계에서는 공적 영역이 작동할 수 없다. 건전한 공적 영역에 밑바탕을 두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와는 물과 기름의 사이다. 침범받지 않는 독자 영역의 확보가 민주주의 실현에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여주듯이, 주종 관계는 기가 막힐 정도로 일사불란한 행동을 요구한다. 이런 상태에서 공적 영역은 권력의 하수인이 된다.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야 할 대학, 경제 단체, 문화 영역까지 비선 실세의 노름에 놀아났다. 문제를 확인하고 책임져야 할 청와대 사정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비선 실세를 보호하기 급급한 정부, 여당의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두는 주종 관계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집단 현상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미래를 위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 새로운 시작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선 실세에 놀아난 정부가 성공할리 만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은 사회를 위해 뛰지 않는다. 아마도 청와대, 정부, 여당은 개인 비리 혐의로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싶어 하겠지만, 파장은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정국의 블랙홀이라 했던 개헌 논의는 최순실 게이트를 덮지 못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진실규명에 맞춰 있다.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청와대는 개인 비리를 가리켜 '국기 문란' 행위로 규정해왔다. 비선 실세 논란은 전형적인 국기 문란, 국정 농단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심상정 의원의 말대로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다. 대통령 스스로 친분을 인정한 만큼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많은 의혹의 중심에 최순실이 있다. 그의 행적과 흔적은 너무도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다. 시민의 공분이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비선에 놀아난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시민의 선택을 능멸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은 진실규명이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에 단호하고 떳떳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통령 자신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마저 못한다면 이번 정부는 정말 무능한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사악보다 무능이 더 무섭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조차 못하는 무능이 더 끔직하다.
직시하자. 이번 사태는 정부 여당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무거운 돌은 더 깊은 심연으로 빠지게 마련이다. 일어서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깊은 곳으로 빠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의 분노를 삭여줄 또 다른 영웅이 그립다. 난세가 영웅을 낳은 법, 분노의 표출만큼 미래를 생각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정국의 비전을 제시할 진보정치가 일어설 때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
[시민정치시평] '비선 실세', 유령이 아니었다
박근혜 탄핵이 아니라 하야를 시켜야 하는 이유_정치/외교/안보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752959&pageIndex=1
국민을 또 한 번 조롱한 박근혜의 대국민사과를 너덜너덜하게 만든 뉴스룸의 추가 보도에 의해 박근혜 정권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박근혜 탄핵'에서 내려올 줄 모른 것에서 보듯, 대한민국을 무당의 나라로 만든 박근혜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최순실-정유라 게이트'를 덮기 위한 개헌 얘기도 하루만에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새누리당에서도 탄핵을 위한 전 단계인 탈당 요구가 나왔다.
더민주를 비롯한 야당에서는 탄핵 얘기도 나왔다. 박근혜가 대국민사과문를 할 때 연속극을 재방송한 엠병신(현 경영진과 고위간부, 방문진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 김세의 기자 등에 대한 드골식 청산이 필요하다)을 빼면 종편을 비롯해 모든 방송들이 박근혜 물어뜯기에 나서는 기회주의적 기민함을 보여주었다. 박근혜가 대국민사과를 할 때 백남기씨 시신을 강탈하려던 살인경찰도 분노한 시민의 저항에 철수를 선택했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면 박근혜의 탄핵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노무현을 탄핵했던 과거의 패악질이 부메랑이 돼 박근혜에게 돌아왔다. 깜도 안 되는 칠푼이가 과대포장된 박정희 신화의 후광과 국가기관을 동원한 불법·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작금의 상황이 사필귀정임에는 분명하다. 최순실에게 보내진 자료에 북한 관련 기밀과 인사 관련 서류도 포함돼 있어서 내란죄 적용도 가능한 상황이니 박씨와 최씨 일가의 대한민국 말아먹기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내통했듯이, 최순실이 북한 관련 기밀을 빼돌려 북한에 보냈다면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공포하기 전에 김일성의 아량과 이해를 구하기 위해 2번이나 사전통보한 것과 똑같은 '내통'을 박근혜도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송민순 회고록을 철저하게 악용해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북한과 내통했다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막장질도 더 이상 유효할 수 없게 됐다. 2대에 걸쳐 북한과 내통한 박씨 일가에 충성을 바친 정당이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보도와 이대생의 아름다운 저항, JTBC 뉴스룸의 최순실 태블릿PC 확보가 결정적으로 작용해 여기까지 왔지만, 박씨와 최씨 일가의 대국민사기를 영원히 종지부 찍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박정희 신화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는 바람에 생긴 최악의 부작용이었다. 정치는 물론 경제에서도 철저하게 실패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뒀다면 박정희는 국민의 손으로 끌어낼 수 있었는데 김재규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바람에 박정희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박정희가 이승만처럼 국민의 힘으로 퇴진에 처해졌다면 박정희 신화는커녕, 그가 저지른 온갖 범죄와 살인, 부정축재, 북한과의 내통, 일본에의 굴종, 미국의 이익 챙겨주기, 공안통치, 경제실패(특히 민생경제) 등이 모조리 밝혀졌을 것이다. 칠푼이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아니라 복지선진국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이런 가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두 번의 실수를 없게 하는데는 여전히 유효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필자가 최상이라고 보는 것은 의회에 의한 탄핵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에 따른 박근혜의 하야다. 이럴 때만이 박근혜와 그의 환관들, 최순실 일당이 벌인 모든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부정축재, 북한과의 내통, 경제실패, 언론통제, 부정·불법선거, 세월호참사, 사드 배치, 백남기씨 살해, 사초실종 논란, 메르스 대란 등이 모조리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회에 의한 탄핵은 국민의 요구를 대리할 뿐이어서 이 모든 것들이 밝혀질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이 저지른 4대강공사와 자원외교, 방산비리, 언론장악, 종편 허가, 천안함 침몰 등에 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 박근혜의 탄핵에 이명박계가 찬성을 표할 터, 이들이 이명박 정부의 수사에 반대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개혁하려면 의회에 의한 탄핵보다는 국민의 명령에 따른 하야가 최상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단언하지만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돌아가려면 박근혜와 박정희 신화를 이땅에서 거둬내야 한다. 한국의 어떤 경제학자도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결합해 천착하다 보면, 35%에 이르는 박정희 신화의 숭배자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헬조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전문적인 내용이라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집필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민주주의의 본질이 '인민(국민)의 통치'에서 출발했으며, 민주주의의 최고 단계가 사회적 권리의 실현(베버리지 경의 <베버리지 보고서> 참조)에 있다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박정희와 박근혜 같은 독재자가 다시는 나올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정희 망령은 물러가라! #최순실과 정유라를 강제소환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형님"이었나?
[사회 책임 혁명] 지금 박근혜가 할 일은 개헌이 아니라 해명
2012년 12월 19일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내 주변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도 탐탁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재인이 되었다면 기뻤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쪽저쪽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유권자로, 두 후보의 장점보다는 항상 단점을 한눈에 파악해내며, 늘 대안의 희망을 가늠하지만 (부끄럽게도) 현실의 장벽에 냉소로 쉽게 주저앉는 경향을 보이는 집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의 당선 시점 또는 그 전과 후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주변에게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언급한 사항이 박근혜의 성(性·sex)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혜의 여성성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았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황 아무개라는 전 대학 교수가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해 (박 후보의) 생식기만 여성이지 (박 후보는) 여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황 전 교수의 주장은 박근혜가 여성 대통령이 아니다로 요약될 수 있다.
'생식기'란 해부학적 용어를 일상적인 용어로 순화하여 다시 설명하면 "박근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론 여성이 아니다"이다. 성과 성별, 생물학적 성과 사회학적 성, 섹스와 젠더의 구분쯤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비록 황 전 교수가 그때에 젠더를 가부장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크게 보아 그의 시각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비하조로 말하는 '꼴펨'에 남자가 포함되지 말란 법 없으며 여자 마초가 없으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황 전 교수의 시각은 관점에 따라서 당시 박근혜에 대한 나의 의미 부여보다 더 진취적이다. 내가 생물학적 여성이 선출직 최고위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일단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황 전 교수는 그것만으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을 옹호하자면, 사회학적 전환에 앞서 대체로 생물학적 전환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었다. 익숙한 용어로 양질 전환이다.
황 전 교수와 다른 입장에서 박근혜의 여성성에 대한 일반적인 세간의 기대는, 박근혜가 여성이기에 덜 부패하리라는 판단이었다. 나도 약간은 동의하였는데, 여성 자체보다는 가족, 더 정확하게는 소위 직계 비속이 없다는 점에서 부패로부터 약간은 더 자유로울 여건을 갖췄다고 보았다. (부패와 관련하여 가정된) 여성성의 장점보다는 가족이란 질곡의 단점에서 자유롭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묘하게 일그러지며 깨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최순실 스캔들을 떠올리게 된다. 흔한 분석으로 방조했다면 탄핵감이고, 몰랐다면 무기력의 극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언니"라고 부르고 불리는 사이였다는 떠돌아다니는 말이 사실이라면 남자 세계의 "형님" 문화와 다를 게 없다. 황 전 교수의 분석이 맞아 들어가는 걸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자신의 '수하'들에 대한 신뢰와 의리는 "형님" 문화를 압도할 정도로 더 "형님"스럽다. 사실 의리를 내세우는 "형님" 문화라는 게 이익 앞에서 쉽사리 무력해지는 현실과 비교하면 박근혜의 "형님" 문화는 "형님" 문화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배신하면 했지 결코 측근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성 대통령인 그는 역설적으로 분명 이 시대 최고의 "형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안을 꺼냈다. 박 대통령이 '깜짝 카드'를 꺼내는 장면에서 나는 1987년의 장면이 겹쳐졌다. 4·13 호헌 조치에 이어 6·29 선언으로 수세를 돌파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전두환 씨. 6·29 선언을 발표한 이는 노태우 씨이지만, 전두환 씨의 기획과 설득에 의해 가능했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거짓 승리를 거머쥐며 한순간에 가라앉았고 소위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행여 자리를 빼앗길까봐 그들만의 포커판에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현재의 87년 체제가 출범했다. 순전히 권력 구조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승자독식이되 사이좋게 돌아가며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체제.
박 대통령의 개헌 구상에서 난 그런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니 다른 저의 또한 숨어 있을 터이다. "참 나쁜 대통령"이란 민주당의 반응이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국면 전환, 친박 정권 재창출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대체로 설득력을 갖지만 나는 혹시 개헌 구상마저 오직 최순실 씨를 구하기 위해서 안출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마침 JTBC가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봤다"고 특종 보도함에 따라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이원종 비서실장)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
권력 서열 1위가 최순실이고 3위가 박근혜란 시중의 얘기가 설마 사실일리는 없겠고, 나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박 대통령이 순도 100%의 "형님" 의식을 갖다보니 최 씨를 구하기 위해 개헌 카드까지 꺼낸 게 아닐까 싶다. 정치가의 권력 의지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블랙홀, 기승전 최순실. 반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는 드는 게 이상할 걸까.
모든 사람이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잇달아 현실로 확인되는 아수라장에 얼이 빠진 상태다. 도대체 선출직 최고위 공직자와 그 주변에서 왜 모든 상식이 증발하고 해석 불가의 상황이 점철되는지 궁금해서 미칠 노릇이다. 우리가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 씨의 "형님"을 선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에 대해 선출된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 우려를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박 대통령이 지금 할 일은 개헌이 아니라 해명이다. 해명 없이는 개헌은커녕 자리를 보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정상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
연산군도 광해군도 하야했다. 박근혜도…
[민교협의 정치시평] 하야(下野)만이 국민에 대한 책임이다
한국 현대사 속 하야한 대통령들
하야한 첫 번째 대통령이 바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임기 12년간 정치적 무능과 부정 부패 공화국을 만든 이유로 1960년 4.19 혁명에 의해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대통령은 4월 혁명과 전 국민적 민주화의 요구에 힘입어 1960년 8월 내각책임제 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윤보선이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에 의해 1962년 3월 하야해야만 했다. 박 소장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 국정을 정상화시키고 '군으로 돌아가겠다'던 스스로의 '혁명 공약'을 저버린 채, 정치적 난국을 빨리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윤보선 대통령을 사임하도록 만들었다.
윤보선을 정치적 무능을 빌미로 하야시켰던 세 번째 대통령 박정희가 결국 그 자신도 장기 독재와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최측근에 의해 1979년 10월 26일 생물학적으로 하야(?)되었던 사실은 아이러니컬한 비극적 역사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하야 외에 구속 사건으로도 나타났다. 1995년 11월과 12월 노태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 역시 12·12 쿠데타와 5·18 관련 민간인 학살, 거액 수뢰 혐의 사건으로 구속되어야 했다.
민주공화국에서 수렴청정이 웬 말인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12년 12월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 5년간 엉망이 되어 버린 국정,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문제나 대학생 반값 등록금 문제 등이 주요 현안으로 논쟁될 무렵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구체적인 답변을 생략한 채 밑도 끝도 없이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거 아니에요, 제가?"라는 말로 일축했다. 성의 없는 답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국민들은 그를 준비된 대통령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재임 3년 반만에 한국은 수렴청정의 나라가 된 듯하다. 며칠 전(10월 25일) 박 대통령은 95초 동안 최순실 사건에 대한 어설픈 해명과 사과를 했다. 그 발표 과정에서 언급되었던 임기 초반(출범 이후 2014년 7월까지라는 주장은 새로운 증거 자료에 의해 벌써 허물어졌지만) 민간인 신분의 최순실의 의견(?)을 구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역사적으로 상상하면, 성인이 되기 전의 어린 왕 대신 어머니를 포함한 최측근에 의한 수렴청정이 이뤄진 것과 유사하다.
과연 대통령은 수렴청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유아와 같은 존재였고, 그런 사람을 국민들은 국가 최고 책임자로 선출했단 말인가? 국민의 입장에서 정체성도 알 수 없고, 어떠한 국정의 책임도 지지 않는 대통령의 개인적 최측근에게 국정을 맡긴 일이 사과 한 마디로 아무 일이 아닌 듯이 무마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샤머니즘 무당이 나라를 지배해왔다는 말까지 들린다.
수렴청정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JTBC 보도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 도배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신비주의의 민낯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찍이 신비주의를 콘셉트로 삼아왔다. 2014년 정윤회 사건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과 관련된 최순실 사건들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문득 몇 년 전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2011년 11월 10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핵심을 꼬집었다. "실력은 검증된 게 없는데 주변에서 신비주의로 감싸고 있고 이건 정상적인 정치가 아니다" 또한 "지금 박 전 대표는 매우 인기가 높지만 실력을 가늠할 길이 없고,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미소의 의미가 뭐고 옷을 뭘 입었고 머리는 어떻게 바뀌었다는 게 관심의 초점"이라는 식의 내용이다.
최근 몇 달간 청와대와 전투를 치르다시피 한 <조선일보> 측에서도 이번 최순실 사건 등을 이전투구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TV조선 보도 영상에서는 해외 순방을 앞둔 박 대통령의 옷을 고르고 있는 최순실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그가 고른 옷들은 여지없이 해외 순방길에서 대통령의 입성으로 등장했다.
최순실은 사실상의 '만능 비서'였는지, 비록 나이는 대통령보다 어리지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는지, 또는 정신적 지도자였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최순실이 소위 '영생교' 제2대 교주(1대 교주 최태민)라는 소문도 회자되고 있다. 마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대재벌은 정상적인 세금에 대해서는 온갖 탈루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순실 교단에 헌금을 내듯이 그가 실세인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만드는 데에는 800억 원을 쾌척하지 않았던가?
나아가 2013년 2월 25일 박 대통령의 취임 전후로부터 최순실은 의상 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드레스덴 선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단 접견이나 중국 특사단 추천 의원 등 중요한 국정 현안이나 외교 현안까지 관여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실제로 법정에 가봐야 알겠으나,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등의 혐의로 명백한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전 국민적으로 충격을 던진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건 당시의 7시간의 비밀을 둘러싸고 최순실과 관련된 저간의 소문이 무성하게 되는 데에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가 분명해지는 듯하다.
최고의 권력과 최고의 책임은 동전의 앞뒤
최고의 권력은 최고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그간 아무리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분노하거나 자살로 삶을 포기해도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대체로 과녁을 잘못 맞춘 화살이었다. 2012년 경제 민주화 공약을 걸고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었으나, 대통령은 출범 직후 경제 민주화를 사문화시켜버렸다.
세계 최저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놓았던 독일식 경력 단절 여성 문제 해결 방안은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가속시키고, 여성의 평균 임금을 더 떨어뜨렸을 뿐이다. 청년 실업 문제 해법 역시 국민의 세금을 퍼부었지만, 비정규직 일자리만 만들었을 뿐 재벌 해체와 경제 민주화를 통한 실질적인 좋은 일자리 창출은 없었다.
대학 개혁을 시키겠다던 교육 정책이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강사 수와 강좌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대학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수많은 교수들이나 교직원들이 대학 개혁 관련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몇 년째 휘둘리는 동안 교육과 학교 행정은 오히려 혼동을 겪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130년 역사에서 최초의 총장 사퇴 사건을 초래한 사건의 한 가운데에는 미래라이프대학 사업과 같은 국책 사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최순실-정유라 사건이 몸통처럼 있었다.
심지어 최근 사드 배치 등으로 남북 관계를 최악으로 만듦으로써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게 하고 있다. 2002년 김정일을 만나 4시간여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장차 자신이 국가 최고 책임자가 될 때를 상정한 발언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짐작과 함께 2014년 3월 28일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드레스덴 선언문과 '통일 대박론'을 터트릴 때만 해도 한반도의 위기를 이렇게 까지 악화시키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재현하는 듯했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여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자마자 유신 개헌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남북 위기 상황을 반공사태로 국면 전환하면서, 유신 독재를 강화시켰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국정 운영과 남북 관계 속에서 불안과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국민들, 특히 청년들이 더 큰 목소리로 헬조선을 외치고 있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의 부재를 느끼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에 이어 2016년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역의 지진 사건 때에도 국민들은 안전을 지켜주는 국가 시스템이나 정부의 노력이 부족함을 경험해야 했다. 경주에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강진이 발생한 후 8일이나 지나서야 대통령은 현장을 찾았다.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에 쌀 관세 문제로 시위했던 백남기 농부가 과잉 진압으로 인해 쓰러졌건만, 정부는 사과는커녕 불법 시위를 탓했을 뿐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국민에게 자부심을 부여하고 경제는 어려워도 참고 견디게 할 자랑스러운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무능은 하야만이 국민에 대한 책임이다
과연 이 나라의 최고 위정자들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위정자들만이 행복하게 살도록 할 의무와 숙명을 부여받은 개돼지인가? 단연코 아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 헌법 69조에 있듯이,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러한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이러한 의무를 자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대통령은 안보이고, 최순실이나 대통령의 극소수 최측근의 비리와 전횡 이야기만 무성할 뿐이다.
주지하듯 조선 왕조에도 국정을 책임을 지지 못했던 왕들은 비록 세습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야했던 사례가 있었다. 조선 왕조 최악의 폭정을 자행했던 연산군은 결국 반정(反正)으로 폐위되었다. 최근에 긍정적인 재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 역시 자신들의 혈족을 제거하거나 유폐시킨 반윤리적인 군주라는 명분에 의해 폐위되었다. 하물며 민주공화국에서 국민 행복 제일을 위한 노력은커녕 수렴청정에 의해 국정이 농단당하는 일이 어떻게 좌시될 수 있겠는가? 정치적으로 후진성을 보였던 제1공화국시대 조차 국민의 뜻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해야만 했다.
위정자들의 눈에는 민중들이 개돼지이거나 그렇게 비춰졌는지 모르겠다. 또한 상당수 민중은 김수영의 시처럼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 "풀"과 같은 때로는 기회주의자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중은 역시 김수영의 시처럼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 풀과 같은 존재이다. 위정자가 민중을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개돼지라고 여길 무렵, 민중은 위정자들의 허위의식을 치고 일어선다.
1960년대의 4.19혁명에서도 1980년 5·18에서도, 1987년의 6월 민주화항쟁에서도 모두 민중들이 주역이었다. 그들은 잠시 숨소리를 죽였을지 몰라도 책임지지 못하는 위정자를 영원히 좌시하지 않는다.
늦었지만 국민 앞에 진정 책임지려 한다면, 하야해야 한다.
사이비교주 딸 순실이가 대통령이냐? 국민이 대통령이다!
거두절미하고 온 국민은 불안해서 잠조차 편히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유는 그 무엇 때문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질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일개 사이비무속인의 비이성적인 판단 하나에 자칫 한반도가 잿더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난데없는 최순실게이트 파문으로 온 국민, 아니! 온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일개 강남 아줌마가 뜬금없이 등장해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등 뒤에서 인형 부리듯 일거수일투족을 관장했다고 합니다. 대명천지에 우리네 보통 국민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대사기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25일, 박근혜는 이례적으로 최순실게이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결행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사과의 진정성을 놓고 우리 국민은 놀라움과 실망감을 넘어 숨 막히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박근혜의 사과마저 온갖 거짓으로 도배되면서 더는 박근혜을 신뢰 할 수 없어 햐야를 요구하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박근혜는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은 단지 오래된 지인으로 대선을 전후해 홍보글과 연설문만을 도와준 도우미 정도라고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사과 발표가 끝난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박근혜의 사과마저 대국민 사기극의 일부분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순실이 2014년 3월 까지 국정은 물론, 외교, 안보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관여한 문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전문적 지식이 없던 일개 강남 아줌마인 최순실은 대통령인수위원회 인사와 대통령취임식 총괄을 비롯해 청와대 국무회의는 물론, 박근혜와 호주총리와의 통화내용까지 관여하면서 외교정책까지 좌지우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박근혜와 이명박의 독대에 관여하면서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급기밀인, 이명박 정권과 북한당국사이의 3차례에 걸친 비밀회담 까지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 할 수 있는 최고결정권을 지닌 자리입니다. 대통령의 판단 하나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경제가 파탄 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 경제, 안보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개 아줌마가 대통령의 권력을 손에 쥐고 고위관료 인사는 물론, 국정 전반에 걸쳐 떡 주무르듯 권력을 행사하면서 대기업으로부터 비자금까지 챙겨 온 것입니다.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최순실은 박근혜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최태민의 딸로 밝혀졌습니다. 최태민은 일제강점기 순사로, 해방 후 경찰이 되어 인천경찰서 사찰주임을 그만두고 불교, 천주교을 전전하다 사이비교주가 되어 박근혜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지배한 인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더욱이 박근혜의 동생, 근령과 지만이 1990년 당시 대통령 노태우에게 호소문까지 보내 박근혜를 최태민으로부터 구해달라고 할 정도였으니,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 또한 어느 수준일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박근혜가 ‘혼이 비정상이다.’거나 ‘온 우주의 기운’ 등을 자주 거론했고 불통의 대명사가 된 것 또한 사이비종교에 깊숙이 빠져 있었음을 쉽게 짐작케 합니다.
속된말로 사이비교주 최태민의 피를 이어받은 최순실이 지금까지 박근혜의 영혼을 지배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 지식이 전무한 사이비교주 최순실의 지배를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최태민이 교주라서 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신앙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그 신앙 또한 존중받아야함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개인의 사익을 위하여 존재할 때 그 것은 사이비가 되며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되는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박근혜는 집권 4년간, 사이비교주 최씨 일가의 관장 하에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안보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박근혜는 뜬금없이 국민의 82%가 반대하는 한일 위안부합의로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 국운이 달려 있기에 수년간 신중을 기해오던 사드배치를 하룻밤사이에 결정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대통령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최순실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왜 박근혜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질렀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전문적 지식이 전혀 없는 한 사이비교주의 농락에, 한때 자랑스러웠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국민은 열심히 공부했고, 피땀 흘려 일했으며, 배 곪으며 저축해서 대한민국의 번영을 일궈냈습니다. 그런데 왜? 사이비종교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또 다시 굶주림에 시달리며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만 합니까?
우리 국민은 단지 혼이 정상인 대통령을 원할 뿐입니다. 사이비종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는 당장 하야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이비종교집단의 대국민 사기극을 더는 용납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앉아서 죽느니 들고 일어나 팔이라도 휘젓다 죽을 것입니다. 그게 살아 있는 사람이고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국민 이어야 합니다. 더는 머뭇거리는 당신의 뒷걸음질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바로 뒤가 헬조선으로 직행하는 천길 벼랑입니다. 대한민국호는 더는 버틸 여력이 없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박근혜 하야집회에 동참해 주십시오!
2016년 10월26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다"
[사회 책임 혁명] 누가 박근혜를 끌어내릴 것인가
그 최순실이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귀국했다. 라디오 아침 방송을 진행하는 어느 아나운서가 "전 국민에게서 가을을 빼앗아갔다"고 말한 그 최순실 씨. 2016년의 계절을 봄 여름 최순실 겨울(어쩌면 겨울 대신 또 최순실, 혹은 박근혜?)로 바꿔버린 그 최 씨가 갑작스럽게 입국하는가 하면, '최순실 게이트'의 관련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렇게 미적지근하던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 수색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 즈음 국민들은 청계광장에서,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와 그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청와대·내각의 인적 쇄신, 책임총리 임명, 하야 수준의 2선 후퇴, 탈당 후 거국 중립 내각 구성 등 이런저런 수습책과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절차를 빼곤) 사실상 탄핵 당했고 결정적으로 좌초한 상태이기에 어떤 수습책을 내어놓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촛불 집회와 시국 선언에서 요구하듯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 외에 다른 수습책은 진정한 수습책이 될 수 없다.
잠깐 둘러가자면, '최순실의 계절'과 함께 네티즌들에 의해 다음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되는 JTBC 손석희 앵커가 성가를 높이는 등 '최순실 게이트'의 이런저런 부수 현상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여옥 전 의원처럼 과거 발언 때문에 얼떨결에 칭찬을 받는가 하면 MBN 김주하 앵커는 '최순실에게 보내는 편지'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김주하 앵커가 왜 그런 편지를 썼는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손석희 앵커와 경쟁하는 구도에 처한 그 시간대 TV 뉴스 앵커들의 공통적인 고민에서 김주하 앵커는 한 발짝 더 나갔고, 의도치 않게 과욕이 부른 참사를 부르게 되었으리라. 김주하 앵커 혼자 욕먹고 있지만, 사건의 책임은 사실 MBN의 보도국장 등 방송국 전체에 있다.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이고, 걸러내는 과정을 거쳤든 안 거쳤든, 국민적 공분을 살만한 그런 편지를 무심한 듯 폼 잡으려 읽었다는 건 그쪽 보도역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김주하 앵커의 편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국민을 대신해 김주하가 전합니다"는 표현이었다. 물론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취재하여 공공의 이익이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감시하고 추궁한다. 언론인은 선출직 공직자와 비슷하게 대리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선출직과 달리 언론인은 자격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대리인 기능의 정당성을 검증 받는다. 대리인 기능에 충실한, 정당한 취재 행위는 JTBC에서 보듯 용인되고 권장되지만 김주하 앵커가 한 것과 같은 어쭙잖은 대리인 행세는 욕먹기 딱 좋다. 누가 김주하에게 국민을 대신하라고 했는가.
'최순실 게이트'에서 국민이 최순실 씨에게 분노한 이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상적으로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법적으로 대리인 자격을 받은 사람과의 친분을 이용해 부당하게 대리인 행세를 한 데 있다. 국민을 대신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김주하 앵커에게 그렇게 큰 비난이 쏟아질 정도면 최 씨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오죽하겠는가. 왕조 시대였다면 최 씨의 변호인의 말마따나 "단두대에 올랐어야 할 죄"를 저지른 것이다.
부당하게 국민의 대리인 행세를 하였다는 데에서 김주하 앵커와 최순실 씨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김주하 앵커는 자신의 '충정'이 왜곡돼 당혹스럽고 슬프겠다. 또한 자신의 실수에 비해 너무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다고 억울해 할 만하고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다. 기실 김주하 앵커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분야 엘리트들의 본심을 단지 적나라하게 끄집어냈을 뿐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우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직면한 여의도의 움직임에서 유일하게 목격되는 건 박근혜 이후 권력의 향배에 관한 이른 바 정치 공학이다. 이들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을 대신하도록 위임된 '진짜' 대리인이다. 그러나 이 정치 엘리트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폭발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건을 '국민을 대신해서' 자신들만의 권력 게임으로 변용시키려고 한다.
예컨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 구차하게 납작 엎드려 국회의원으로서 존재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던 새누리당이 최 씨 귀국에 맞춰 여야가 동의하는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하라고 요구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밀려 박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만은 막고 싶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면서 권력 지분을 공유하고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최소한 그들 외에 다른 세력이 권력 판도를 흔드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속내이다. 여야는 다른 세력이 '국민을 대신하는' 꼴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이심전심으로 합의한 상태다.
재삼 강조하자면, 국민은 합당하게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불법적이고 은밀하게 대리인 행세를 한 것에 격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대리인들 또한 그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고, 부도덕하게도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였다는 엄중한 판단이 깔려 있다. 국민을 대변하라고 선출된 여의도의 여와 야가 말 그대로 온전히 국민을 대신해버린 적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것보다 뿌리가 깊고 훨씬 더 심각하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들은 국민의 최고위 대리인인 박근혜가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없는 최순실에게 대리인 자격을 넘긴 데에 더 격분한다.
요는 '가짜 대리인'이 '진짜 대리인'을 조종해 사적 이익을 취한 것보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진짜 대리인'이 대리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게 훨씬 더 큰 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가을을 실종시킨 참담한 사태는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정확하게 '박근혜 게이트'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앞서 지적하였듯 '문제 대리인'은 박근혜 하나가 아니다. 단적으로 '포스트 박근혜 구상'에서, 국민을 대변하여 우리 사회와 정치를 바로잡을 생각 대신 자신들의 파당적 이익을 보존하고 확대할 궁리만 하는, 우리 정치의 대리 시스템 안에 뿌리내린 부패하고 무능하며 탐욕스런 정치 엘리트들이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해결하는 과정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민이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로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의 대리인 문제에 관해 차제에 심도 있는 토론과 숙고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내가 보기에 그 첫 걸음은,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같은 탄핵 전문가가 포진한 국회 등 다양한 유형의 '국민 대신자'들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결을 맡겨서는 안 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는 탄핵을 거부하고 국민은 박 대통령의 하야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모든 관련자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나아가 썩어가는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할 여러 방식의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발안하여 제도로서 안착시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이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