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아들ㆍ딸아, 떠나렴” 이민 부추기는 5060
[우울한 헬조선 ①] 취업난…“아들ㆍ딸아, 떠나렴” 부추기는 5060
-“자녀 미래 암울”…부모세대가 나서 이민 정보 수집 및 권장
-전문가들 “헬조선 인식 상대적으로 약했던 고연령대로 확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 대구에 사는 정주경(56ㆍ여ㆍ가명) 씨는 지난 1년전 31세 아들 진모(33) 씨를 뉴질랜드로 떠나 보냈다. 정 씨의 조언으로 이민을 결심한 진 씨가 열심히 이민을 준비한 끝에 현지 약학대학에 입학하게 됐기 때문. 대학에서 스포츠산업학을 전공한 뒤 2년간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던 진 씨는 예상보다 훌륭한 어학 실력을 인정받아 현지에서도 졸업 후 일자리가 풍부한 약학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정 씨는 “오랜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했지만 학벌이나 학과 때문에 번번히 취업을 하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먼저 이민을 권했다. 그는“이역만리에서 생활하며 힘든 점도 있겠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한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며 “형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둘째 아들에게도 이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라 조언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헬조선(살기 어려운 한국사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떠나 해외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선택하는 20ㆍ30세대 증가세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아가 이들의 부모 격인 50~60대 ‘베이비붐 세대’들이 직접 나서 자녀의 이민을 권장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는 경우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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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20ㆍ30세대의 부모 격인 50~60대 ‘베이비붐 세대’들이 직접 나서 자녀들의 ‘탈조선’을 권장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는 경우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공항 출국장의 모습. [사진=헤럴드경제DB] |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 흙수저들의 취업난, 서울 하늘에서 버젓이 총격전이 벌어지는 불안사회…. 이같은 사회에선 ‘금수저’가 아닌 이상 노력해도 나아질 가능성이 없고, 또 안전마저 위협받는 사회라는 생각에서 자녀들로 하여금 더 나은 세상으로 탈출하라는 유도 심리가 강해진 것을 풀이된다.
사례들은 절박하다. 이민에 필요한 영주권 발급에 가장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기술 자격증에 대한 정보를 찾고, 이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녀에게 알려줬다는 이모(58ㆍ여) 씨는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 고성장기를 맞아 취업도 쉽게 했고, 노후엔 어느정도 자리 잡은 연금제도의 혜택까지 보고 있다”며 “그에 비해 우리 자녀 세대는 젊었을 땐 저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낮은 소득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노후엔 연금 소진으로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란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단 말을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2060년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부산에 사는 박모(59ㆍ여) 씨는 “고교 동창 셋이 모여 해외이민으로 유명한 국가의 이민 조건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여기서 함께 얻은 정보를 각자의 자녀들에게 제공하고, 필요한 자격증을 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대고 있다”며 “같은 모임에 있는 친구의 한 자녀는 5년 앞선 선배들이 명예퇴직을 하는 것을 보고 벌써부터 이민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해 ‘헬조선’에 대한 공감대가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어 큰 문제라는지적이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지금껏 헬조선 인식에 대해서는 특정 젊은이들의 불평ㆍ불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던 것도 사실”이라며 “자녀의 취업 실패 및 생활 불안 등이 겹치며 사회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겪으면서 문제의식이 중장년층에게까지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들까지 패배의식에 빠지지 말고 자녀들의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전환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시각도 강하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ㆍ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영향으로 부풀려져 전해지는 경우도 많다”며 “똑같이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나가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한국사회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는 등 부모들이 앞장서 자녀에게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되찾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한 헬조선 ②] "문과보다 이과가 쉬워"..10대도 이민 고민
헤럴드경제 입력 2016.10.25. 10:01 수정 2016.10.25. 10:40
-“대학 입시ㆍ취업 후에도 불행”…미리미리 이민준비
-문과보단 이과, 언어보단 기술 자격증이라는 공감대
-전문가 “이민이 근본해결책 아냐…철저하게 준비를”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1. 대구 달서구의 한 기계공업고등학교를 다니는 박모(18) 군은 예전부터 막연하게 이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 취업, 결혼 후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촌형들 때문이다. 박 군은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도 승진 압박, 결혼 압박, 자녀 교육 압박 등 모든 기뻐야 할 일들이 압박으로 느껴져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더라”며 “미래를 생각하면 밝아야 하는데 어둡기만 하다”고 했다. 박 군은 1년 전부터 한 포털의 이민 카페에 가입해 유럽 국가로 이민을 가기 위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후 문과보단 이과가 낫고, 언어 자격증보단 기술 자격증이 더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술 자격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25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공인 민간자격증의 수는 2008년 77개이던 것이 현재 100개로 증가했다. 공인 자격증을 제외하고서라도 등록된 민간 자격증이 이미 2만개를 넘어 선 것이다. 이 중 대부분의 자격증은 공업계 기술 자격증인데, 타일기공사 등의 자격증은 기술이민을 계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력한 이민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사진=이민을 희망하는 10대가 늘어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두운 전망 때문이다. 이민을 준비하는 10대들 사이에선 문과보단 이과, 언어보단 기술자격증을 선택하는 말이 낫다는 얘기가 보편적이다.]](http://t1.daumcdn.net/news/201610/25/ned/20161025100104850cbrf.jpg)
이민을 계획중인 경기 수원의 안모(31ㆍ여) 씨도 “아이가 생기고 난 뒤 이민을 가기로 마음 먹었는데 기술자격증이 있으면 영주권을 비교적 쉽게 발급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얼마 전부터 보석감정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학원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자격증=이민 수단’이라는 인식이 이민을 희망하는 10대들 사이에서도 퍼진 분위기다. 외국에 거주하거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10대들에겐 언어 문제보다 기술 자격증 문제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한창 적성과 진로를 탐색해야 할 시기지만 이민을 위한 수단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청년층은 늘고 있어 우려도 낳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4년 발표한 ‘국가기술자격 취업률 등 현황 분석’에 따르면 10대에서 20대까지 청년층이 전체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자의 57.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성과 맞지 않더라도 향후 이민을 가기 위해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있다. 이민 카페에 고민을 올린 한 누리꾼은 “원래 하고 싶은 일은 스포츠 마케팅과 같은 문과 쪽인데 우선 축구강국인 유럽국가로 이민을 가기 위해선 이과를 선택하는 게 낫다고 들었다”며 “이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민을 빨리 갈 수 있는 방법과 자격증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 이민을 고민하는 10대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입시에 성공하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끝없는 경쟁과 열악한 복지 등 헬조선 얘기가 계속 나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10대들이 이민을 고민하는 것 같다”며 “막연히 도피에 가까운 이민을 생각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이민의 어려움과 실패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