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대선
9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일본의 한 변호사단체가 국회에서 '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토론 중 내가 아시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더니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며 막말을 쏟아내는 미치광이 같기는 하다. 정치와 외교에 전혀 경험을 갖지 못한 터라 당선되면 미국 안에서나 밖에서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는 (신)고립주의 대외 정책은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을 조금이라도 줄일 것이 분명하다.
요즘 언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하면서 '국제주의'와 '고립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대개 두 후보의 보호무역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논쟁은 무역‧통상 분야보다 외교‧안보 분야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는 미국의 대외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방법의 차이로 구별된다. 고립주의는 미국이 자신의 국가 안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 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을 자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 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제주의는 말 그대로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늘리고 군대를 해외에 전진 배치시키며 세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9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일본의 한 변호사단체가 국회에서 '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토론 중 내가 아시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더니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며 막말을 쏟아내는 미치광이 같기는 하다. 정치와 외교에 전혀 경험을 갖지 못한 터라 당선되면 미국 안에서나 밖에서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우는 (신)고립주의 대외 정책은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을 조금이라도 줄일 것이 분명하다.
요즘 언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하면서 '국제주의'와 '고립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대개 두 후보의 보호무역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논쟁은 무역‧통상 분야보다 외교‧안보 분야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고립주의와 국제주의는 미국의 대외적 역할에 대한 인식과 방법의 차이로 구별된다. 고립주의는 미국이 자신의 국가 안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외교 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을 자제하거나 이미 외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철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세계 경찰' 같은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제주의는 말 그대로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외교방침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늘리고 군대를 해외에 전진 배치시키며 세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 지난 9일(현지 시각)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열린 2차 TV토론에서 신경전을 벌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후보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AP=연합뉴스
미국은 건국 초기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걸었다. 대표적인 것이 먼로 대통령이 1823년 발표한 '먼로 독트린'이다. 유럽 열강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지 말고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미국도 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립주의'라는 용어보다 '불간섭주의'라는 말이 더 적합한 이유다.
이후 세계적 전환기 또는 격변기에 '미국의 세계적 역할에 관한 대 논쟁'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세계적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에 그랬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2010년대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 사이에 이 논쟁이 다시 일고 있는 것이다.
첫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19년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군비를 축소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을 통해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자는 취지였다. 1920년 세계 최초의 국제기구로 출범했지만 제안자인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다수파를 차지하던 상원에서 먼로 독트린에 어긋난다며 비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국제연맹군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없다며 소극적 국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 정책을 펴는 등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한 것이다.
둘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열강들이 쇠퇴의 길로 빠져드는 가운데 세계 제1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국제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립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국제주의 외교 정책을 펼친 것이다. 패전국 독일은 물론 승전국 영국과 프랑스도 겨우 30년 사이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퇴조한 반면, 상대적으로 전쟁의 부담이나 피해가 적었던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아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힘의 공백을 채우며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 공산주의라는 명확한 적'이 등장하자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며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 (Pax Americana)'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셋째, 1980년대 말 동유럽 시회주의권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어 냉전이 끝나자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특히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개되었는데, 이 때 논의된 고립주의를 과거의 고립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신고립주의'라고 일컫기도 한다.
먼저 (신)고립주의자들은 소련이 붕괴되어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해외에 전진 배치된 미군들을 철수하고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문제 해결에 국력을 쏟으며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안보를 튼튼히 하고 수출 촉진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신)고립주의자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소수 의원들이나 무소속 대통령 후보들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행정부의 대외 정책 결정이나 전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외침으로만 끝났던 것이다. 국제주의 외교정책은 냉전 종식 이후 오히려 강화되었다.
넷째, 위와 같은 외교 기조가 지속되어온 가운데 2016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고립주의 대외 정책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직후와 달리 무소속 후보들이 아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에 의해서다. 민주당의 클린턴은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국제주의 노선을 천명하지만 무역‧통상 분야에서는 고립주의에 가까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트럼프는 모든 분야에서 굳건하게 고립주의를 주창해왔다.
클린턴이 당선되면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은 그녀가 2011년 만든 것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과 갈등이 심화하거나 악화하리라 예상된다. 미국+일본+남한 사이의 동맹 강화는 중국+러시아+북한의 공조를 이끌어, 중국과 남한의 관계가 훼손되고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진전되기 어려워질 것 같다.
이와 달리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을 하던 2000년 미국이 북한과 고위급 협상과 교류를 통해 국교정상화까지 나아가려 했던 경험은 그녀가 집권할 경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갑작스런 (신)고립주의 대외 정책에 따라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미국에 의한 전쟁은 줄어들 것이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과 갈등 역시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주한미군은 쉽게 철수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을 통해 북한의 남침을 막는 남한의 이익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론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후보들의 대외 정책이 집권 후엔 바뀔 수 있다. 대외 정책을 결정하고 전개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정적이지만, 대외 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국가안보위원회(NSC)와 국무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등의 책임자들과 조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선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강경파들이든 온건파들이든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에 의해 바뀔 수 있어도 미국의 이익은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서로 견제하고 타협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고립주의로 바뀌게 되길 기대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2016년 오늘까지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 정책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무수한 폭격과 전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 약 100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150개 이상의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전진 배치시켜 놓고,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전쟁을 일으키고 개입해왔다. 2010년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국가 (IS)와 관련된 끔찍한 폭력과 전쟁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빚어진 것 아닌가. 민주와 평화를 내세우며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국제주의 대외 정책의 결과는 끊임없는 폭격과 전쟁이었기에 고립주의로 돌아갈 것은 기대하는 것이다.
2. 한국 대선
나는 지난 4월 총선이 실시되기 전까지 내년 대선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많이 했다. 새누리당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얻어 헌법을 뜯어고치고 박근혜의 영구집권을 꾀하지 않겠느냐는 엄살 섞인 두려움이었다. 흥미롭게 꽤 유명한 도인이 내년엔 대통령이 새로운 방식으로 뽑힐 것이라고 장담해온 터였다. 다행히 예상 밖의 총선 결과가 이런 근심을 씻어 주었다.
반년이 흐른 요즘 내년 대선이 없어질 수 있다는 방정맞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나라 돌아가는 꼴과 박근혜의 호전적 대북 정책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역사교과서, 건국절, 위안부, 우병우, 최순실, 차은택, 백남기, 개성공단, 사드, 북한 붕괴 등등. 무능과 부패 그리고 비리와 횡포가 그칠 줄 모르고 겹겹이 쌓인다. 진보는 도덕적이라도 무능하고 보수는 부패해도 유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썩을대로 썩었으면서 너무도 무능하기만 하지 않은가.
과연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박근혜가 임기는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퇴임 후 안전을 위해 새누리당이 다시 정권을 잡아야 할텐데 가능할까? 재집권이 불확실해지면 선거판을 뒤엎어버리려고 전쟁이라도 벌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전쟁을 먼저 일으키기는 곤란할 테니 북한이 먼저 도발하도록 부추기는 게 아닐까?
요즘 북한에 대해 쏟아내는 자극적 발언을 곱씹어보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 관계자들이 북한군더러 휴전선에서 총질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 지난 1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68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거수 경례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그는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북한 주민들에게 탈출을 직접 권유했다. 북한 붕괴를 유도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예비군 사령부를 창설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국방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탈북자를 늘리겠다는 것은 남한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미 남쪽에 정착해있는 약 3만 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기껏 20~30%라고 한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목숨 걸고 넘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며, 제3국으로 나가길 원하는 사람도 많고, 북한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남한 정부의 외면과 주민들의 냉대나 멸시 때문이다.
이미 들어와있는 탈북자도 제대로 껴안지 못해 이런 비극이 생기게 하면서 더 많은 탈북자들을 받아들여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더 행복한 삶을 베풀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나아가 만에 하나 탈북자들이 넘쳐 북한이 붕괴되면 박근혜가 원하는 대로 고이 흡수 통일이 이루어지고 통일 대박이 터질까.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 남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군부지도자들에겐 이판사판 아니겠는가.
그 다음 큰 가능성은 중국의 개입이다.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의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여기저기 막대하게 투자해놓은 게 날아가게 될 터에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따라서 공개적으로 탈북을 권유하고 붕괴를 유도하는 것은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독재자들이 국내정치로 위기를 맞을 경우 전쟁을 비롯한 대외정책을 통해 탈출구를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남쪽의 여왕 독재와 북쪽의 수령 독재가 맞부딪치는 게 너무 위험하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비리와 횡포를 덮기 위해, 그리고 내년의 대통령선거를 없애기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일만큼은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
* 위 글은 <통일경제포럼> 월간지 창간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미국 대선에 관한 부분은 <아시아문화> 2016년 10월호에 게재한 '미국의 대통령선거와 대외정책'의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정욱식 칼럼] 대화는 "시간 벌어준다"는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
미국발 대북 선제 공격론이 한국 언론을 타고 연일 한반도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 차분해야 할 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뜬다. 미국에서 제기되는 선제 공격론에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 차원에서 코멘트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임박한 징후가 있을 경우엔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 자체를 못하도록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발 선제 공격론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태도에 대해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취사 선택을 통한 아전인수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5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신형 엔진 실험 이후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 공격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북 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언론과 정부는 한쪽 눈으로만 미국 내 동향을 바라본다.
사드가 '방어용'이라면서
선제 공격론을 사드 배치 추진과 연관시켜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한미 양국은 사드가 오로지 대북 방어용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동시에 대북 선제 공격도 운운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중하다. 유사시 대북 선제 공격을 통해 북핵 일부를 파괴하고 파괴되지 않은 채 날아오는 북핵은 사드와 같은 미사일 방어 체제(MD)로 요격한다는 군사 전략의 속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은 이랬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1, 2차 걸프전이 대표적이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에 앞서 스커드 미사일 요격용으로 패트리엇 배치를 먼저 단행했다. 1994년과 2003~4년 북한 영변 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을 검토할 때에도 패트리엇부터 배치했다. 당시 북한은 "우리는 이라크와는 다르다"며, 패트리엇 반입을 선제 공격의 신호로 해석하고 강력한 대응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러한 군사 전략과 사례는 내년에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북 선제 공격론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아마도 북한은 한미 양국의 선제 공격이 임박했다며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잃기 전에 쏜다"는 핵 교리에 따라서 말이다. 이에 맞서 한미 양국도 신속한 선제 공격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상시적인 핵전쟁의 두려움이 될 것이다.
안보 무책임의 극치,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성은 이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미국발 선제 공격론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미국 강경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북한을 끝장내는 데 한국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가 북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군사적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미국의 군사 모험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탈북을 종용하고 북한 붕괴론을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언행인지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조금만 주목해도 알 수 있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거대 국가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배치가 다가올수록 '코리아 엔드 게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운명은 미국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 본토에는 화염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이겠지만, 한국은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가능성을 수반하면서 말이다.
기실 북한의 5차 핵 실험은 전화위복의 기회를 잉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협상은 마다하고 강경론에 치우칠수록 미국 내에선 대북 ‘끝장’ 제재론이나 선제 공격론이 힘을 얻게 된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갖게 되면 미국 내에서도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마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대화는 북핵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황당하고도 거짓된 정부의 인식이 갈수록 굳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의 근거는 우리 국민 안에 있다. 반전반핵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넓혀서 평화 의지가 전쟁 의지를 압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인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실력과 의지를 갖춘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는 요란한 실천을 통해 천천히 오지만, 전쟁은 순간의 오판에 의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된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 자체를 못하도록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발 선제 공격론에 대한 언론과 정부의 태도에 대해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취사 선택을 통한 아전인수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5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신형 엔진 실험 이후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 공격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북 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언론과 정부는 한쪽 눈으로만 미국 내 동향을 바라본다.
사드가 '방어용'이라면서
선제 공격론을 사드 배치 추진과 연관시켜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한미 양국은 사드가 오로지 대북 방어용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동시에 대북 선제 공격도 운운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중하다. 유사시 대북 선제 공격을 통해 북핵 일부를 파괴하고 파괴되지 않은 채 날아오는 북핵은 사드와 같은 미사일 방어 체제(MD)로 요격한다는 군사 전략의 속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은 이랬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1, 2차 걸프전이 대표적이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기에 앞서 스커드 미사일 요격용으로 패트리엇 배치를 먼저 단행했다. 1994년과 2003~4년 북한 영변 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을 검토할 때에도 패트리엇부터 배치했다. 당시 북한은 "우리는 이라크와는 다르다"며, 패트리엇 반입을 선제 공격의 신호로 해석하고 강력한 대응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러한 군사 전략과 사례는 내년에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북 선제 공격론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를. 아마도 북한은 한미 양국의 선제 공격이 임박했다며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잃기 전에 쏜다"는 핵 교리에 따라서 말이다. 이에 맞서 한미 양국도 신속한 선제 공격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상시적인 핵전쟁의 두려움이 될 것이다.
안보 무책임의 극치,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성은 이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미국발 선제 공격론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미국 강경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북한을 끝장내는 데 한국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가 북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군사적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미국의 군사 모험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탈북을 종용하고 북한 붕괴론을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언행인지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조금만 주목해도 알 수 있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거대 국가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배치가 다가올수록 '코리아 엔드 게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운명은 미국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 본토에는 화염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이겠지만, 한국은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가능성을 수반하면서 말이다.
기실 북한의 5차 핵 실험은 전화위복의 기회를 잉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협상은 마다하고 강경론에 치우칠수록 미국 내에선 대북 ‘끝장’ 제재론이나 선제 공격론이 힘을 얻게 된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갖게 되면 미국 내에서도 '협상다운 협상을 해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마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대화는 북핵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황당하고도 거짓된 정부의 인식이 갈수록 굳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의 근거는 우리 국민 안에 있다. 반전반핵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넓혀서 평화 의지가 전쟁 의지를 압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인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실력과 의지를 갖춘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는 요란한 실천을 통해 천천히 오지만, 전쟁은 순간의 오판에 의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된다.
대통령 심기가 통치하는 나라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권위주의 체제는 법치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는 ‘법의 지배’가 ‘법을 이용한 지배’로 변질된다. 이제 법은 통치의 무기가 된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제473호
스페인 태생의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권위주의’라는 개념을 정치학에 도입한 선구자다. 정치체제를 민주주의 아니면 전체주의로만 구분하던 1960년대에 린츠는 비(非)민주적이면서도 전체주의와는 구분되는 통치 형태로 권위주의를 제안했다.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핵심 차이를 린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권위주의는 전체주의처럼 이데올로기에 의거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가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여당 인사들도 통치행위의 합리적 맥락을 설명하기 점점 더 어려워한다. 9월25일 청와대는, 전날 국회가 의결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결의안을 수용하지 않은 사례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청와대의 강경 기조는 새누리당으로 옮아갔다. 해임결의안 여파로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보이콧에 나섰고, 이정현 대표는 9월29일 현재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화해 협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야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이 대립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다. 집권당이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가 얻을 실익도, 해임건의안을 묵살하는 헌정사 초유의 선택으로 박 대통령이 얻을 실익도 설명이 쉽지 않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통치의 합리성이란 그 통치가 반드시 선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데올로기에 헌신하거나, 권력을 강화하거나, 정권 재창출을 노리거나, 목표가 무엇이든 권력자가 제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통치한다면 통치의 합리성이 있다고 본다. 이럴 때는 통치행위와 목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통치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는 다르다. 이때 통치는 외부의 목표에 구속받는 대신 권력자의 심기에 따라 작동한다. 그래서 권위주의로 미끄러지는 정권에서는 통치의 합리성이 갈수록 사라진다.
겉으로만 보면, 임기 전반기나 지금이나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대결로 이끌어가고, 달래기보다는 도발하고, 타협하기보다는 고립시켜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임기 전반기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흔들어 사퇴시키며 검찰을 길들인 수법은, 임기 후반기 송희영 주필을 호화 접대 의혹으로 낙마시키며 <조선일보>를 길들인 수법과 판박이다.
하지만 통치 스타일의 공통점을 넘어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임기 전반기만 해도, 찬반을 떠나 통치행위의 목표가 존재했다. 임기 첫해의 전교조 때리기, 임기 전반기를 끌어온 통합진보당 때리기, 노동개혁과 임금피크 정국을 이끌어왔던 정규직 노조 때리기 등은 하나의 일관된 전략 프로세스였다.
첫째,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좁아야 한다. 둘째, 대상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높을수록 좋다. 지지 기반이 좁은 조직이 결집력과 전투 의지만 강할 경우 확산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중산층이나 온건파가 공포를 느끼고 이탈하는 전장을 정교하게 고른다. 북한 문제, 노동 문제, 폭력 집회는 중산층과 온건파를 밀어내기 쉬운 이슈다. 이 세 요소가 합쳐지면, ‘똘똘 뭉친 소수 반대파 대 방관하는 다수파’ 구도가 등장한다. 정부는 소수의 반대파를 도발해 뭉치게 하고, 최대한 강경한 선택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형성된 강경 반대파는,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중산층 온건파를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결국 반대 여론은 고립되고, 헌법재판소 담장과 경찰 차벽 아래에서 산화해버리는 경로를 탄다.
나름 ‘합리적’이던 박 대통령의 통치가…
이런 통치 스타일이 국가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떠나서, 적어도 ‘반대파를 고립시킨다’는 통치의 목표만은 뚜렷했다. 전반기에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부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까지 반대파를 향한 도발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는데, 통치행위와 목표가 논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이 통치 꾸러미들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 통치’는 결국 임기응변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슈를 동원해 지지율을 반짝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지지층이 이반하는 대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어느 정권이나 받아들게 되는 근본 숙제인 먹고사는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서, 다수파를 유지하기는커녕 ‘콘크리트’라고까지 불리던 지지율 30% 선마저 붕괴 위기다. 이 위기는 올해 4월 총선 참패로 돌아왔다.
총선 결과는 박근혜 정권이 소수파 정권으로 전락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변화된 구도에서, 집권 전반기의 핵심 전략이었던 도발 통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도발 통치는 상대가 강경한 소수파로 고립되도록 이끄는데, 변화된 구도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오히려 고립되기가 훨씬 쉬워졌다. 통치의 합리성이 유지되었다면, 통치 스타일이 바뀌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유지된 것은 통치의 합리성이 아니라 통치 스타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대결적 통치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점점 뚜렷해졌다. 징후는 총선 이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정국을 달궜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는 강경파를 고립시킨다는 도발 통치 원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에 가까웠다.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지면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에 구속받지 않게 되고, 이 방향으로 멀리 갈수록 통치 동력은 고갈된다. 이럴 때 권위주의적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를 우회하는 대표 경로가 ‘법’이다. 원론상 법치주의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통치자를 구속하는 원리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통치자의 기분이 아니라 법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권위주의 체제는 법치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권위주의 성향이 강해질수록 법치주의라는 말에는 기묘한 의미 역전이 일어난다. 충분히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는, 법치주의란 “권력자도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에서 “시민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로 의미가 바뀐다. 법치주의가 말하는 ‘법의 지배’는 ‘법을 이용한 지배’로 변질된다. 이제 ‘법’은 통치의 무기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핵심 포스트를 법조인으로 채웠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재는 국무총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표적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불거진 위기 국면에서 정권을 육탄 방어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주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후 총리로 영전했다.
법이 통치의 무기가 되는 전형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정부 비판에 대해 정부 인사들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거는 소송이 일종의 통치전략이 되었다. 2014년 11월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8명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민변 변호사들은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서 박 대통령 조문 장면이 사전에 연출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한 CBS와 <한겨레>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 11월, 시위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가 지난 9월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통치의 압축판이다. 백씨가 물대포를 맞았던 집회는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였다. 노동개혁 추진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궁지에 몰린 민주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과정부터가 박근혜식 도발 통치의 결과물이었다. 집회 하루 전인 11월13일에는 ‘분노한 강경파’인 집회 주최 측을 향해 정부 5개 부처 장관이 “불법 시위 엄단”을 요지로 하는 경고 담화를 발표했다.
<조선일보>가 꾸짖은 대통령의 ‘비(非)법치’
법이 통치의 도구가 되는 국가에서는 법이 권력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즐겨 쓰인다. 백씨 사건의 책임자인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11월23일 국회에 출석해 사과를 요구받고 이렇게 말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책임성에 구속받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결과에 대해 짊어져야 할 ‘최종적 책임’과 좁은 의미의 ‘형사적 책임’을 뒤섞어버린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국회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질의를 받을 때 그의 전매특허는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묵살한 것도 법으로 보면 대통령의 권리에 속한다. 헌법은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수 있다고 할 뿐 대통령이 수용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 형식논리와 법치주의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는 <조선일보> 사설이 명쾌하게 쓰고 있다.
“법의 형식논리만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매사에 ‘법대로’를 내세웠던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느냐를 넘어서서 그 권한 행사가 나라의 정상적 운영에 보탬이 되느냐를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할 더 중대한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을 이용한 통치일지는 몰라도 법의 정신을 살린 법치(法治)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설의 주제는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안’에 헌법이 보장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그해 11월26일자에 나온 사설이다. ‘법을 이용한 통치’와 ‘법치’를 구분하는 분별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가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여당 인사들도 통치행위의 합리적 맥락을 설명하기 점점 더 어려워한다. 9월25일 청와대는, 전날 국회가 의결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결의안을 수용하지 않은 사례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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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정치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통치의 합리성이란 그 통치가 반드시 선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데올로기에 헌신하거나, 권력을 강화하거나, 정권 재창출을 노리거나, 목표가 무엇이든 권력자가 제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통치한다면 통치의 합리성이 있다고 본다. 이럴 때는 통치행위와 목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통치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는 다르다. 이때 통치는 외부의 목표에 구속받는 대신 권력자의 심기에 따라 작동한다. 그래서 권위주의로 미끄러지는 정권에서는 통치의 합리성이 갈수록 사라진다.
겉으로만 보면, 임기 전반기나 지금이나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대결로 이끌어가고, 달래기보다는 도발하고, 타협하기보다는 고립시켜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임기 전반기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흔들어 사퇴시키며 검찰을 길들인 수법은, 임기 후반기 송희영 주필을 호화 접대 의혹으로 낙마시키며 <조선일보>를 길들인 수법과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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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핵심 포스트를 황교안 총리 등 법조인으로 채웠다. |
첫째,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좁아야 한다. 둘째, 대상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높을수록 좋다. 지지 기반이 좁은 조직이 결집력과 전투 의지만 강할 경우 확산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중산층이나 온건파가 공포를 느끼고 이탈하는 전장을 정교하게 고른다. 북한 문제, 노동 문제, 폭력 집회는 중산층과 온건파를 밀어내기 쉬운 이슈다. 이 세 요소가 합쳐지면, ‘똘똘 뭉친 소수 반대파 대 방관하는 다수파’ 구도가 등장한다. 정부는 소수의 반대파를 도발해 뭉치게 하고, 최대한 강경한 선택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형성된 강경 반대파는,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중산층 온건파를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결국 반대 여론은 고립되고, 헌법재판소 담장과 경찰 차벽 아래에서 산화해버리는 경로를 탄다.
나름 ‘합리적’이던 박 대통령의 통치가…
이런 통치 스타일이 국가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떠나서, 적어도 ‘반대파를 고립시킨다’는 통치의 목표만은 뚜렷했다. 전반기에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부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까지 반대파를 향한 도발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는데, 통치행위와 목표가 논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이 통치 꾸러미들은 ‘합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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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 ‘법률관계’를 운운했다. |
총선 결과는 박근혜 정권이 소수파 정권으로 전락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변화된 구도에서, 집권 전반기의 핵심 전략이었던 도발 통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도발 통치는 상대가 강경한 소수파로 고립되도록 이끄는데, 변화된 구도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오히려 고립되기가 훨씬 쉬워졌다. 통치의 합리성이 유지되었다면, 통치 스타일이 바뀌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유지된 것은 통치의 합리성이 아니라 통치 스타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대결적 통치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점점 뚜렷해졌다. 징후는 총선 이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정국을 달궜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는 강경파를 고립시킨다는 도발 통치 원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에 가까웠다.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지면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에 구속받지 않게 되고, 이 방향으로 멀리 갈수록 통치 동력은 고갈된다. 이럴 때 권위주의적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를 우회하는 대표 경로가 ‘법’이다. 원론상 법치주의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통치자를 구속하는 원리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통치자의 기분이 아니라 법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권위주의 체제는 법치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권위주의 성향이 강해질수록 법치주의라는 말에는 기묘한 의미 역전이 일어난다. 충분히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는, 법치주의란 “권력자도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에서 “시민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로 의미가 바뀐다. 법치주의가 말하는 ‘법의 지배’는 ‘법을 이용한 지배’로 변질된다. 이제 ‘법’은 통치의 무기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핵심 포스트를 법조인으로 채웠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재는 국무총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표적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불거진 위기 국면에서 정권을 육탄 방어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주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후 총리로 영전했다.
법이 통치의 무기가 되는 전형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정부 비판에 대해 정부 인사들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거는 소송이 일종의 통치전략이 되었다. 2014년 11월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8명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민변 변호사들은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서 박 대통령 조문 장면이 사전에 연출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한 CBS와 <한겨레>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 11월, 시위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가 지난 9월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통치의 압축판이다. 백씨가 물대포를 맞았던 집회는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였다. 노동개혁 추진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궁지에 몰린 민주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과정부터가 박근혜식 도발 통치의 결과물이었다. 집회 하루 전인 11월13일에는 ‘분노한 강경파’인 집회 주최 측을 향해 정부 5개 부처 장관이 “불법 시위 엄단”을 요지로 하는 경고 담화를 발표했다.
<조선일보>가 꾸짖은 대통령의 ‘비(非)법치’
법이 통치의 도구가 되는 국가에서는 법이 권력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즐겨 쓰인다. 백씨 사건의 책임자인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11월23일 국회에 출석해 사과를 요구받고 이렇게 말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책임성에 구속받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결과에 대해 짊어져야 할 ‘최종적 책임’과 좁은 의미의 ‘형사적 책임’을 뒤섞어버린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국회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질의를 받을 때 그의 전매특허는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묵살한 것도 법으로 보면 대통령의 권리에 속한다. 헌법은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수 있다고 할 뿐 대통령이 수용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 형식논리와 법치주의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는 <조선일보> 사설이 명쾌하게 쓰고 있다.
“법의 형식논리만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매사에 ‘법대로’를 내세웠던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느냐를 넘어서서 그 권한 행사가 나라의 정상적 운영에 보탬이 되느냐를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할 더 중대한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을 이용한 통치일지는 몰라도 법의 정신을 살린 법치(法治)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설의 주제는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안’에 헌법이 보장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그해 11월26일자에 나온 사설이다. ‘법을 이용한 통치’와 ‘법치’를 구분하는 분별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