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불확실성 앞에 가상의 적이 되다
여성, 불확실성 앞에 가상의 적이 되다
[작은책] 경제 상황과 강남역 살인 사건

ⓒ프레시안
규제 완화만 하면 경제가 활활 살아날 것이라던 두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현실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최근 IMF와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KDI가 한국의 201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퍼센트 중후반대로 낮췄습니다. 하지만 실적치는 하반기에 정부가 한국은행까지 동원해서 돈을 쏟아 부어도 2퍼센트를 달성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한은이 금리를 낮췄다는 발표가 나왔는데, 이 역시 경제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거라는 얘깁니다.
한국은행과 KDI가 발표한 올해 1/4분기 경제지표는 우리의 전망이 훨씬 현실적이었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한은의 최근 수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우리 경제는 작년 말에 비해 0.5퍼센트 성장했습니다.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2.0퍼센트 정도 성장할 거라는 얘기죠.
이유도 확실합니다. KDI 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올해 1/4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3퍼센트 감소했습니다(아래 통계는 모두 최근 발표된 'KDI 경제동향'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액의 반에 이르는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릴 리 없겠죠. KDI 통계로 1분기에 설비투자지수는 7.2퍼센트 줄어들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경제가 2.6퍼센트의 성장을 거둔 데는 연간 설비투자가 6.3퍼센트 증가한 것이 톡톡히 한몫했는데, 그 요인이 오히려 큰 폭의 마이너스로 돌아선 겁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건 오로지 건설입니다. 1분기에 23.3퍼센트나 증가했거든요. 주택건설이 무려 27.3퍼센트나 증가한 데 이어 정부가 주도하는 토목건설도 16퍼센트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주택건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계속 늘어날 수 있을까요?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세 배나 빨리 증가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집을 누가 산다는 말일까요? 현재 주택건설의 급증은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부동산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파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경제가 나쁘니 구조조정이 화제입니다. 제가 작년에 한 방송에서 "대대적 구조조정 100퍼센트"라고 호언했을 정도로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지금은 세계 경제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는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문제지만 국내 상황도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위기에 빠진 기업에 대출해 준 은행 자체가 유동성 부족에 빠지면 이제 금융과 실물부문이 상호작용하면서 위기의 기업은 급증하게 됩니다. 은행이 살기 위해서 추가 대출은커녕 기존 대출을 거둬들이면 금융경색이 오고, 그러면 꽤 괜찮은 기업도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을 겁니다. 더 끔찍한 일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여기에 연동된 가계부채가 폭발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께 구조조정의 세세한 쟁점을 일일이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원칙에 관한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대수술을 해야 하는 구조조정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누구나 흔쾌하게 동의하는 답이 있을 리 없죠.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을 끌어가야 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2년째 채권단이 자신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춘 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더구나 이번의 위기는 조선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산업도 계속 문제가 될 텐데 그때마다 은행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엔 '자율협약' 방식으로 돈을 모아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은행이 그 은행인데 이들이 앞으로 쏟아져 나올 위기마다 돈을 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즉, 공적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총선 때 여당 쪽에서 나온 '양적 완화'는 그냥 잊어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구조조정, 즉 부채를 처리하고 기업을 회생시키려면 돈이 필요하고 은행이 그 돈을 대려면 자본 확충이 필요합니다. 민간이 알아서 돈을 조달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줄줄이 대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공적 자금, 즉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야 합니다. 정부가 재정으로 대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국채를 발행해서 그 돈을 은행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모두 국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즉 지금 필요한 건 얼마의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국회에서 결정하는 일입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부총리, 금융위원장, 경제수석이 모여서 속닥속닥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조선산업 하나만으로도 경남의 경제가 휘청거리는데, 이 사태가 철강이나 석유화학, 급기야 금융권까지 번져 가면 전국적으로 대규모 실업사태와 임금 하락이 발생하게 됩니다. 케인스가 글을 쓸 때마다 반복했던 "시설도 남아돌고, 노동자도 노는데 왜 공장을 돌리면 안 되나?"라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케인스의 답은 총수요 부족이었고(즉, 살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고), 불황 상황에선 지금 한국에서 보듯이 기업도 투자하려 하지 않고 시민들도 소비를 줄일 것이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채권단으로 집약되는 민간은 거시 상황에 신경을 돌릴 여유도, 능력도 없습니다. 위기 때 얼어붙는 것은 시장입니다.
정부는 각 산업의 미래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해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산업을 대폭 축소할 것인지, 아니면 예컨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특화할 것인지, 나아가서 노르웨이와 같은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발전시킬 것인지 미래의 밑그림을 제시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실업자의 구제와 재교육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아가서 화물선부터 군함까지 한국의 노후 선박을 교체하는데, 보조금을 대는 단기 정책도 제시할 수 있겠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현재의 구조조정 논란은 조선이나 해운산업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지금 두 자리 수 단위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산업들, 나아가서 내수 산업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 부처가 관련 산업의 미래를 그려 내야 할 때인 거죠. 각각의 그림은 다시 생태경제로의 전환이라든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국제분업이라든가 하는 더 장기적 방향으로 모여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 앞에서 시장은 마비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주장하는 건 말 그대로 직무유기입니다.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을 떠돌았죠.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겁니다. 장두노미(藏頭露尾, 타조가 위험에 닥치면 머리를 땅에 박아서 꼬리가 훤하게 드러난다는 말)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도 참 드물 겁니다.

▲ 'UN WOMEN'의 캠페인 광고. 여성들을 침묵시키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메시지. ⓒUN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이런 경제 상황과 무슨 관계일까요? 아직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여성 혐오'의 주체가 어떤 사람들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국에선 지금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것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잃은 하위 계층이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을 가하곤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930년대의 파시즘, 중세와 근대의 마녀사냥, 최근 유럽의 이민자 공격, 트럼프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열광은 그런 현상 중 일부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더 큰 규모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격, 더 심각한 지역 갈등의 전조일지도 모릅니다. 여성뿐 아니라 외국인, 타지민, '소수'가 모두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죠.
분배와 재분배에 의한 경제의 회복, 그리고 공동체의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등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뚫을 열쇠입니다. 재앙, 혐오와 마녀사냥 등의 집단 범죄는 평등한 사회에서 훨씬 순조롭게 해결됩니다.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가기 : <작은책>)
"네 잘못이 아니야, 자책하지 마"
[작은책] 의지하라? 남자들이 만든 주문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여자라는 이유로' 한 남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딱히 다른 이유도 없이 가해자는 기다렸다가 공용화장실에서 만난 첫 번째 여자를 살해했다고 한다. 강남역에서 촛불 추모와 발언이 이어지고, 신촌에서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한국여성민우회의 페이스북에서 필리버스터가 생중계되었다. 밤중에 혼자 스마트폰으로 그 동영상을 봤다.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여자라서 겪은 차별과 폭력을 증언했고, 여성 혐오를 멈추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그건 여자인 내게도 낯익은 이야기들이었다. 그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나도 하고 싶은 말이 꾸역꾸역 생각났다.

ⓒ연합뉴스
나는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혼자 돌봐야 할 식구가 있기 때문이지만, 어둔 밤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에 혼자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겨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이 무섭다.
그러나 집도 안전하지 않다. 내가 한부모라는 것을 안 같은 건물의 남성 세입자들은 참견을 한다. 일이 있어 가끔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나를 보면 그들은 쉽게 반말을 한다. "밤에 어딜 갔다 이제 들어와?" 그들은 내가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거리낌 없이 훈수를 둔다. 희롱인 셈이다.
계약할 때 집주인은 내가 남편과 같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을 주기 싫다고 대놓고 말했다. 고장 난 보일러를 교체할 땐, 집주인은 보일러 수리공이 있는 앞에서 내게 생색을 냈다. "여자 혼자 사니까 특별히 해 주는 거야!" 그때 집주인은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불콰했다.
이사 올 때는 집에 남편이 없다는 걸 눈치챈 이삿짐 일꾼들이 갑자기 내게 함부로 말했다. "내 누이동생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세탁기 수도꼭지가 고장 났네." "난 요 앞집에 살아요." 내 돈을 주고 부리는 사람들이고 얻은 집이건만, 난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집주인과 관공서와 직장의 남자들과 부대끼면서 정직함이나 겸손, 배려, 친절은 나에게 해로운 것이라는 걸 배웠다. 나는 더 방어적이고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건 집에 남편이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 여성을 차별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혼자 사는 여자라 하면 아무 남자나 달려들 거다." 아버지가 말할 땐 그 내용보다 나이 든 아버지의 편견이 더 미웠다.
대학생 때 야학 활동을 해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는 골목길에서 늘 신경이 곤두섰다. 한밤중 트럭이 다가와 한 남자가 자기 차에 타라고 한 적도 있었다. 거절했고, 차가 갔기에 망정이지 위험한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엠티(MT)에 갔다가 비 오는 밖에 잠깐 나갔는데, 두 남자가 차를 세워 놓고 서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예감이 스쳐 그들과 반대쪽으로 걸었는데, 그들이 갑자기 "아가씨, 거기에 서!" 하면서 차에 시동을 거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구 뛰었다. 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리 뛰어도 곧 잡힐 것이다. 도로 곁은 덤불이었다. 덤불 아래로 몸을 굴렸다. 다시 미친 듯이 달렸다. 차 소리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들었고 가겟집의 불빛이 보였다. 연락을 받고 온 일행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여자로 태어나서 재수 없어." 그때 선배 언니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 여자라서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즈음 나는 방 안에 주로 틀어박혀 있었다. 안전해야 된다는 생각은 나를 지켜 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한 남자 선배를 사귀었다. 그 선배는 거리낌 없이 내 자취방에 와서 밥을 해 달라고 하고 잠도 자고 갔다. 내 감정과 의견은 상관없이 이기적으로 굴었다. 나는 그 선배가 싫으면서도 이 선배밖에 관계 맺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어쩔 줄 몰랐다. 그러니까 세상은 무섭고 남자들은 나에게 폭력적으로 굴 수 있으니 나를 지켜 줄 남자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왜 남자가 나를 지켜 준다는 세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까.
그 선배와 결별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를 만난 이유는 여성적이기 때문이었다.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늘 조용하게 뒤에 있고 감성적인 그를 나는 좋다고 여겼다. 난 몰랐다. 사람은 때와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틀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려면 남자로서, 여자로서 어떻게 하라는 문화적 고정관념과 지난하게 분투해야 한다는 것을….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일상이, 여자에게는 곤혹스러운 고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것도, 의지하라는 것도, 다른 여성과 나를 구분하라는 것도 남자들이 만든 세상의 주문일 뿐이다. '좀 더 용기를 내었다면, 좀 더 자립적이었다면, 좀 더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잘못된 관계 속에 나를 그렇게 오래 방치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했다. 후회는 이혼 후에도 이어졌다.
"난 내가 용서가 안 돼." 말했을 때 친구가 말해 주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자책하지 마."
일터에서 만난 이십 대 여자 동료들이 말했다. 여자로 사는 게 하루하루 아슬아슬하다고. 강변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풀숲에 숨어 있던 남자가 확 밀어뜨려 넘어졌다고. "이 새끼야!" 하고 발딱 일어나 고함쳤다고. <살인의 추억> 영화도 정말 싫었다고. 여자라서 줄줄이 죽이는 그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나빠져서 집에 차 타고 가는데도 무서웠다고. <은교> 영화도 너무 싫었다고.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그려 내는 시선이 싫었다고. 밤중에 모르는 남자가 불쑥 따라오고 때리기도 해서 사는 게 두렵다고도 했다.

ⓒ연합뉴스
"왜 죽였느냐?" "여자라서 죽였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매스컴은 이를 선정적으로 전한다. 그런 말을 태연하게 듣고 있는 우리가 부끄럽다.
차별에는 이유가 없다. 불평등이 극심해질수록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강해진다. 차별받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배제될 수 있다. 차별이 어떤 것인지 몸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여성들이 거리에서 폭력에 대항해 외친다. '나는 ○○에 있었습니다.' 필리버스터의 제목이었다. 밤길에 안 나가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전할까? 어떻게 하면 살려 주고 어떻게 하면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살 수 있는 권리에 조건은 없다. 더 차별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조차 그 사실을 알기에, 거리에 선 용감한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작은책] '피해자'와 '저항의 주체' 사이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SNS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처절한 고백이 이어졌다. 여성이 아니라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독거노인이든 비정규직이든, 심지어 그냥 여행을 가려는 평범한 시민이었더라도 이 사회에 안전한 곳은 없어 보인다. '여성 혐오'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언론은 여성혐오를 장애혐오로, 지역혐오로 돌려막기 하느라 바빠 보인다.
이 와중에 '여성으로 살아가기'라. 원고지 1600매로 쓰라고 해도 다 못 쓸 판인데, 원고지 16매 이내로 써야 한다니…. 모니터만 바라보면 머리가 하얘졌다. 차분하게 글쓰기는 고사하고, 이미 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아무리 눌러도 가슴 저 밑바닥부터 꾸역꾸역 올라오는 통에 요즘 늘 신경은 날카롭고 일상이 평온치 못하다. 유년기부터 40대 후반인 지금까지 겪은 헤아릴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의 기억들은 여전히 선명한 통각으로 떠오른다. 눌러 봐야 소용없는 기억들을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두자, 하다가 마주친 기억.

ⓒAP=연합뉴스
중학교 때 도덕 시간마다 허리춤에 옷핀이 꽂혀 있는지를 검사받고, 옷핀이 없으면 손바닥을 맞았다. 억울한 심정으로 손바닥을 맞던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우리 손바닥을 때릴 때마다 "니들 몸은 니들이 지켜야지, 누가 대신 지켜 준다는 사람 있어?"라고 하던 도덕 선생님의 울 것 같은 얼굴이다. 그 옷핀은 호신용이었다.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성추행 피해를 경험하는 건, 안 당해 본 여성이 없을 정도로 여성에겐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럴 때 소리를 질러 봐야 그놈이 모르쇠 하면서 적반하장일 테니, 당한 사람만 창피해지지? 자리를 피해 봐야 따라오면 또 당할 거고, 피해 간 자리에 그런 놈이 없으리라는 보장 있어? 그러니 조용히 옷핀을 꺼내서 아무도 모르게 콕, 콕 찌르란 말야."
그런 식으로 혼잡한 곳에서의 성추행 퇴치법을 일러 주는 도덕 선생님은 살아온 세월만큼 학생들보다 피해 경험이 훨씬 더 많았을 게 뻔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일을 자주 겪으면서도 그 옷핀을 사용하는 게 늘 겁이 났다. '정말 아무도 모를까? 그 사람이 결국 나한테 해코지를 하면 어쩌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빽빽할 정도로 사람 많은 버스에서 내 엉덩이에 성기를 밀착시켜 비벼 대는 남자가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승객들의 자리가 바뀌어도 이내 내 뒤로 들러붙어 같은 짓을 반복하는 그 남자는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면 잘생겨 보였을 멀쩡한 얼굴에 감색 싱글 양복을 입고 있었다. 한동안 허리춤의 옷핀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나는 드디어 옷핀을 꺼냈다. 그리고 시선은 창밖에 두고 조용히 옷핀으로 그 남자를 콕콕 찔러 댔다. 버스 차창에 비친 그 남자의 찡그린 얼굴엔 뜻밖에 당혹감이 서렸다. 내가 시치미를 떼고 옷핀으로 찌르기를 계속하자 그 남자는 내게서 떨어졌고, 외려 슬금슬금 나를 피해 나에게서 먼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릴 때가 되어서 내렸는지 부러 내렸는지는 몰라도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내가 이 일화를 쓰는 건, 옷핀이 최선의 호신 수단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나는 다만, 남성의 성기가 내 몸에 닿는 끔찍한 이물감과 수치심, 그리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로 버스가 목적지에 닿기만을 기다리며 견디던 내가 처음으로 냈던 '용기'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 나는 지금, 학생들의 손바닥을 때리는 교사의 행위가 인권침해일지언정, 그때 우리에게 '도망치라'고가 아니라 '저항하라'고 가르쳐 준 도덕 선생님에게 참 고맙다.
크고 작은 폭력에의 피해는 물론 나의 생존을 우연에 맡겨야 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피해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저항의 주체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매 순간 결단해야 하는 일이다. '피해자'와 '저항의 주체' 사이는 한 끗 차이이기도 하고, 그 사이엔 엄청나게 험하고 고통스런 심연이 놓여 있기도 하다. 나는 늘 그 사이에서 질퍽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시시때때로 선언한다.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나는 더 이상 잠재적 피해자로 나를 규정하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나는 이 사회가 내 몸에 새긴 수많은 상흔이 지긋지긋한 남성 중심주의와 가부장제라는 구조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정치적으로 각성한' 여성!'이라고.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저항의 주체로 살아남았다'고.
그러나 나에게 행해지던 성폭력에 처음으로 용기를 냈던 날의 기억에 또 다른 기억들이 포개진다. 내가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차별과 폭력을 당하며 사는 동안 "왜 이 여학생에게 자지를 문질러 대는 거야? 그건 폭력이잖아"라고 말하는 남성을 나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 어쩌면 남성이라도 성추행범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남성들 중에 도덕 선생님이 호신용 옷핀을 고안해 낸 것처럼 나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 끔찍한 여성 혐오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을 찾아야겠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회의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가 아니라 '저항의 주체'가 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음을 인정하며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남성들은 무엇을 걸고 있을까? 나는 남성들에게서 이런 선언이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선언.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 역시 이 사회 구조의 피해자였고 그러므로 나는 여성 혐오에 맞서 싸운다'라는 선언. 나는 나를 약자로서 배려하고 보호해 줄 남성들이 아니라 이 체제에 맞서 함께 싸울 동지들을 기다린다.
남성들의 이러한 정치적 각성은 여성들이 '피해자'와 '저항의 주체' 사이에서 겪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갈등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 뿌리 깊은 가부장제·남성 중심주의 사회 구조에 맞서 '저항의 주체'로 선다는 것은, 여성들이 보호의 대상이기를 거부하듯 남성들이 기득권의 수혜자이기를 포기하고, 고통과 수치심과 억울함과 무력감을 대면하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용기를 내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남도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그 남자친구처럼, 끔찍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침착하게 먼저 용기를 낸 사람들의 연대가 아직 고통의 심연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