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영국 국민들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

일취월장7 2016. 6. 25. 10:46

[현지 기고] 영국 국민들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

2016.06.25 05:22:37


브렉시트, 정치에서 버림 받은 대중의 반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결정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 있다. 43년 만의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영국 국민 '정치적 결정'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예상되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선택'을 했을까?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김보영 영남대학교 교수가 현지에서 이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종료된 23일 오후 10시, 유럽연합 잔류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듣고 잠든 영국은 다음 날 아침에 다소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 들었다. 투표자 5천명을 대상으로 한 어제 조사에서 잔류가 52%, 탈퇴가 48%로 나왔지만 오늘 아침 공식 결과는 오히려 탈퇴 52%, 잔류 48%. 정반대로 뒤집어진 것이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날 여론조사 발표 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파운드화는 투표함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폭락을 시작했다. 잔류가 상당히 우세할 것이라고 생각한 뉴캐슬(Newcastle)에서는 잔류가 겨우 앞섰고, 탈퇴가 다소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된 선더랜드(Sunderland)에서는 탈퇴가 크게 앞섰다. 분위기는 급반전 됐고,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탈퇴와 잔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론조사를 보면서도 탈퇴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잔류진영이나 탈퇴진영이나 이 것이 영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지만 탈퇴의 경우 적어도 일시적인 경제적 타격은 피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제와 안보 불안 경고에도 브렉시트 결정한 영국 국민 

영국 정부는 물론이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주요 동맹국 지도자들, 국제통화기금(IMF)부터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 등 주요 경제 기구와 기관들 모두 그렇게 진단했고, 심지어 마지막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장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안보에도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이번 국민투표는 '감성적으로는 탈퇴', '이성적으로는 잔류'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반이민정서가 높다고 하더라도 보다 분명해보이는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그 것도 최근 여느 선거보다도 높은 투표율을 보이면서 말이다. 사실 투표 당일 보여지는 높은 투표 열기는 잔류 쪽에 유리한 듯 보였었다. 탈퇴일수록 고령이고 적극적 투표의사층이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을수록 잔류 쪽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왜 영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 안보 불안을 감내하면서도 탈퇴를 선택했을까. 그 답은 이 결과에 최대 수혜자로 부상한 극우성향의 영국 독립당(UKIP) 나이젤패라지(Nigel Farage) 대표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유럽연합 탈퇴가 공식 발표된 직후 의회 앞에서 "영국의 주류 정당들은 그동안 이민자들로 인해 병원 약속이 밀리고, 학교에 자리가 없고, 소득이 떨어지는 대중들의 고통을 외면했다"고 일갈했다.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물론 그 발언에서 결정적으로 틀린 한가지가 있다. 대중들의 고통의 원인은 이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운영하는 영국 병원이,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학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현 정부의 극심한 긴축재정에 원인이 크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민자는 그렇게 세금혜택을 받는 것보다 그들이 내는 세금이 더 많다는 것이 여러 통계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또한 이민자가 임금에 주는 영향도 최저임금 수준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여러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 집권 보수당은 바로 그 긴축재정을 하고 있고, 현 야당인 노동당은 이전 집권 끝에 긴축재정으로 이어진 경제위기를 촉발하였을 뿐 아니라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설득력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국민투표 캠페인 중에 양 진영이 모두 공통되게 듣는 말 중 하나는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 주류 정당들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영국 국민들은 터져 나오는 경제적 위험에 대한 주류의 경고보다 차라리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전 총선들보다도 높은 투표율은 주류 정당 중 선택을 하게 되는 기존 선거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민심까지 드러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류 정치가 수용 못한 불만이 반이민정서로 표출 

하지만 기존 정치가 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그 분노는 이민자와 같은 엉뚱한 희생양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결과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를 비롯하여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정치와 맞닿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이를 풀어가야하는지에 대한 함의도 없지는 않다. 사실 탈퇴 진영이 이번 선거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내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국가무상의료인 NHS를 살리자는 것이었다. 매년 납부하는 엄청난 유럽연합 분담금을 NHS에 사용해서 더 나은 복지를 만들자는 것이 TV광고에도 쏟아지고 선거운동 버스 전면에 인쇄된 메시지였다.

물론 분담금 절반 이상은 돌려받거나 어차피 국내에 지원되는 돈이고, 탈퇴를 해도 단일 유럽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분담금 지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국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탈퇴 진영의 공통된 주장은 세계화로 인해 악화된 일자리와 복지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서구 복지국가의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경험한 서구는 무너진 경제와 불안정한 삶을 모두 되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였고, 황금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세계화된 경제에서 지속성에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가 또다시 직면한 애초의 질문 

하지만 이제 다시 서구사회는 세계화된 경제 아래 불안정한 경제와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요구 받고 있다. 새로운 복지국가와 같은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지금과 같은 극우의 부상으로 더 불안해진 세계는 그 대가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고속성장으로 사회를 유지해왔지만 저성장 아래 각종 극단화되어가는 사회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질문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 브렉시트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영국 캐머론 총리 부부. 이번 투표 결과로 캐머론 총리는 "10월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영광스런 고립' 택한 영국, 푸틴은 웃는다?

2016.06.24 18:54:50


"브렉시트는 푸틴의 승리"…안보 지형 격변

             

'하나의 유럽'을 추구해 온 유럽연합(EU)의 꿈이 24일 깨졌다. '영광스런 고립'을 선택한 '브렉시트'의 나비효과는 경제적 충격이나 유럽 극우정당의 준동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이 빠진 유럽연합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졌다. 브렉시트가 서구유럽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세력 지형을 뒤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은 미국을 유럽으로 연결하는 가교다.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협력을 매개하는 특수 관계국이 영국이다. 양국의 정보 교환과 안보 협력은 최상위 수준이다.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유럽의 중재자로서 영국의 역할도 미국의 뒷받침 하에 성립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미국과 영국이 이끌어간다. 나토 동맹국 가운데 군사력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미국 대서양위원회에 따르면 영국의 EU에 대한 군사비 부담률은 20% 이상이다. 

브렉시트가 영국의 나토 탈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EU를 통해 추구해 온 '하나의 유럽'이 깨진 충격은 유럽의 집단안보 체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브렉시트가 야기할 유럽 동맹국들의 군사적 결속력 약화를 우려해왔다.

이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 영국의 EU 잔류가 "미국과 세계의 이익"이라고 밝힌 데서 엿볼 수 있다. 미군 기관지 성조지도 21일 유럽 결속의 악화는 미국과 나토 동맹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브렉시트 투표를 하루 앞둔 22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분열은 지역적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테러 위협에 직면한 유럽의 현실에서 "강력한 유럽과 강력한 영국이 나토에 유리하다"고 했다.

미국과 나토의 핵심적 근심은 러시아의 팽창이다. 이들은 유럽 안보의 최대 위협 세력으로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과 함께 러시아를 상정하고 있다. 나토와 EU, EU와 미국을 매개해온 영국의 유럽사회 이탈이 러시아의 팽창으로 이어져 안보 위기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유럽에선 현재 '신냉전'이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로 러시아와 나토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태다.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을 촉발한 이래 이 같은 긴장은 줄곧 상승해왔다. 

월터 슬로콤브 전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은 나토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속내를 직접적으로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영국의 EU 탈퇴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며 "푸틴은 EU 회원국 간에, EU와 나토 회원국 간에 발생하는 마찰로 러시아가 이득을 볼 것으로 기대하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외교전문가 마이클 맥폴 역시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트위터를 통해 "오늘 사건은 푸틴 대외정책의 큰 승리다. 그가 브렉시트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부터 이득을 얻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탈 EU'를 주장하는 유럽 극우정당을 은밀히 지원한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브렉시트 투표 전 "영국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그러나 영국이 선택한 '영광스런 고립'이 촉발하는 유럽의 분열을 러시아가 대외 정책의 기회로 간주할 경우, 신냉전의 파고는 위험 수위를 넘어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