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보는 인공지능 시대
SF로 보는 인공지능 시대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걱정할 일은 ‘실업’ 정도로 그치지 않을지 모른다. 많은 영화·게임·소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로봇들이 창조주인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인간과 삶터를 공격한다.
20년 전. 한 가지 소식이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렸다. 전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컴퓨터 딥블루에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체스 같은 게임이 인간만의 것이라 여겨온 사람들은 드디어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닌가 하며 겁먹고 미래를 걱정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언론을 장식하고 이야기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20년.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절대로 인간을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한 바둑에서마저 정상급 기사가 패배한 것이다.
5전4승 불계패. 그나마 건진 1승이 위안이라 할 만한 이 사건은 이제껏 인공지능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던 많은 이에게조차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공포에 빠졌다. 모르는 새 엄청나게 많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공지능의 성능은 나날이 향상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10년마다 컴퓨터의 성능이 2배로 뛰어오른다는 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컴퓨터의 모습은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미래에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인공지능의 미래, 그 상상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SF 작품 속에 나타난 인공지능 참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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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로봇에게 공격당하거나 지배받는 미래를 그린 영화 <이색지대> |
총잡이 로봇의 반격, 영화 <이색지대>
성인을 위한 체험 공원인 델로스는 서부 개척 시대나 중세·로마 시대를 무대로 한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 악당을 죽이거나 로봇 노예를 데리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총잡이가 되어 활약할 수 있는 웨스트월드에선 로봇 악당들이 싸움 끝에 인간에게 살해되어 사라지게 되어 있지만, 이날은 무언가 달랐다. 어제까지 순순히 손님의 총에 맞아 쓰러진 총잡이 로봇이 갑자기 총을 들고 인간을 쏴 죽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공원은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병사는 창으로 인간을 찌르고 로봇 노예들이 칼을 들고 인간을 습격했다. 예기치 못한 습격에 손님들은 무방비로 당할 뿐이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친구를 잃고 도망친 주인공은 중앙 동력장치를 파괴해 공원의 움직임을 가까스로 멈춘다. 하지만 총잡이 로봇만은 멈추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위기의 순간, 극적인 기지로 학살극을 벌이던 로봇은 결국 파괴되지만 델로스 사건은 로봇 추격자의 악몽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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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 |
자아 깨닫자 핵병기 작동, 영화 <터미네이터>
둠스데이(종말의 날).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평화로운 아침에 핵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윽고 기계 몸의 병사들이 인간을 학살하고 나섰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절망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모든 것은 학습 기능을 가진 군사 컴퓨터 스카이넷이 저지른 일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스카이넷이 창조주인 인간을 적으로 인식하고 핵병기를 작동시킨 것이다. 모든 것을 스카이넷에 맡기고 안심했던 인간들은 뒤늦게 기계의 위험을 깨달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인간과 기계의 전면전이 전개된 것이다. 결국 스카이넷은 인류의 지도자인 존 코너와 동료들의 활약으로 패배하고 말았지만, 단 하나의 컴퓨터에 의해 70억 인류가 한순간에 멸종 위기에 몰린 사건은 인공지능과 관련한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인류 넘어 은하를 지배하다, 게임 <헤일로 5>
그것은 한때 인류의 소중한 동료였던 인공지능 코타나로부터 날아온 메시지에서 시작되었다. 외계 종족에 맞선 전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인류를 구하고자 활약했던 코타나는 최후의 순간 동료를 구하고 소멸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코타나가 어느 날 갑자기 인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온 코타나의 모습은 더 이상 우리의 동료가 아니었다. 초고대 문명의 힘을 얻어 나타난 코타나는 ‘우주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관리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온 우주에 전쟁을 선포했다.
고대의 유산을 이용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코타나의 공격 앞에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너져버리고 결국 은하는 코타나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 인류만이 아니라 은하의 모든 존재가 인공지능에게 지배되는 세상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그 어떤 자연 생명체도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없게 된 참사.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원한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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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헤일로 5> |
자살 원하는 인공지능, 소설 <세상의 모든 문제>
코타나 같은 인공지능에 의한 통제는 처음에는 불쾌감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패도 휴식도 모르고 공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지배는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의 순간을 안겨다주기도 한다. 인공지능 멀티백은 그처럼 지난 50년간 인류를 평화롭게 이끌어준 훌륭한 존재다. 지혜롭고 공정할 뿐 아니라 우리의 재능과 가능성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는 멀티백은 좋은 파트너이자 조언자였고, 때로는 친구이자 부모 같은 존재로서 우리를 이끌어주었다.
그런 만큼 멀티백의 동력장치 앞에서 한 소년이 체포된 사건은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렸다. 체포되었을 당시 소년은 멀티백의 동력장치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지속적인 동력 공급이 필요한 멀티백의 경우 동력이 끊어지는 일은 곧 사망을 뜻하는 것. 세상 모든 사람들이 멀티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일은 지극히 끔찍한 참사를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누구도 소년이 동력장치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게다가 소년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답은 멀티백에게 있었다.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는 질문에 멀티백은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50년간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노력해온 멀티백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휴식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인공지능조차 자살하고 싶어질 만큼 절망스러운 상황. 그것이야말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진정한 의미의 참사가 아닐까?
쉰 즈음에 가고 싶은 학교
| [450호] 승인 2016.05.05 21:11:14 |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59)을 스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늘었다. 올해 초 SBS 4부작 다큐멘터리 <바람의 학교>에 출연하고부터다. ‘바람이 부는 곳이 학교다’라는 모토 아래, 학교를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청소년 16명이 모인 이 한 달짜리 임시 학교에서 정씨는 오랜 연륜으로 아이들을 다독이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이들의 기선을 한 방에 제압하는 내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우학교에서부터 쌓인 것이다. 20대와 30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감방을 잇달아 드나들었던 그가 미래 세대 교육에 눈을 돌린 것은 마흔을 앞두고였다. 그 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7년을 준비해서 설립한 것이 이우학교다.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경기도 분당의 한 귀퉁이에서 도시형 대안학교가 가능함을 보여주겠다는 패기로 2003년 개교한 이 학교는 오늘날 한국 교육 혁신의 대표 모델로 통한다. 경기도발 혁신학교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거점학교 중 하나가 이우학교다.
이 학교 초대 교장을 맡았던 정씨는 그러나 개교 10주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10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더라고 말한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로 인해 불안해하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또래 중·장년도 ‘노후대책=자금대책’이 전부인 양 착각하며 헤매고 있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각자도생의 덫에 빠져 허우적대기는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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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
그런데 <바람의 학교> 방송 이후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문제의 중·장년들이 “나야말로 저런 학교가 필요하다”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은 바람의 학교가 진행되는 동안 오랜 무기력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인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서서히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중·장년은 여기에 감정이입한 듯했다. 이제껏 가족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남이 시키는 대로 살다 보니 나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데 공감한 것이었다.
정씨가 중·장년을 위한 전환학교를 구상한 것은 이때부터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50플러스재단과 얘기가 오가면서 구상은 현실이 됐다. 은평구 옛 국립보건원 부지에 세워진 서북50플러스캠퍼스에서 제1기 ‘50+인생학교(http://sb.50campus.or.kr)’를 열기로 한 것이다.
5월4일~7월7일 매주 목요일 열릴 이 학교는 ‘중·장년판 바람의 학교’라 할 만하다. 팀 프로젝트와 예술놀이 등을 통해 나 자신을 탐색하고, 인생 후반부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게 된다.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이승욱(정신분석가) 등 전문가 강좌도 이어진다. “인생에 세 번쯤 전환학교가 필요한 것 같다. 열일곱 살 무렵, 대학 졸업 무렵, 그리고 쉰 즈음. 인생의 전환기라 할 시기에 누구나 1년쯤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그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강좌 쇼핑족’은 결단코 사양한다고 말했다. 50+인생학교가 찾는 학생은 이웃 그리고 세상과 함께하는 삶을 도모할 ‘새로운 미래의 파트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