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4년 ‘벽치기’한 김부겸, 새로운 도전 나서나

일취월장7 2016. 4. 13. 10:19

4년 ‘벽치기’한 김부겸, 새로운 도전 나서나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김부겸’을 주목하는 이가 많다. 여당의 텃밭에서 제1야당 후보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내 위상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 입성할 경우 대권 주자로 부상하리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이오성 기자  |  dodash@sisain.co.kr


흰색 벤츠가 유세차량 앞에 멈췄다. 차 문이 열리더니 “김부겸 파이팅”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뒤따라오던 차 운전자도 “힘내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응원의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도 여러 대였다. 한 식당에서는 점심 식사를 하던 이들 서넛이 숟가락을 놓고 밖으로 나와 박수를 쳐댄다. 만촌동의 한 사거리에서는 지지자가 매실 음료 한 박스를 건넸다. 말린 감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어느 주택가 골목에서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노트에 김부겸 후보의 사인을 받아갔다. 집 앞에서 연설을 듣던 70대 노부부는 “이번에는 김부겸이 된다카데요. 지난번엔 안 찍었는데 요번에는 찍을라꼬요”라고 말했다. 총선을 8일 앞둔 4월5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대구 수성갑)의 유세를 쫓다 목격한 장면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4월5일 범어역에서 유세하는 김부겸 후보(맨 오른쪽)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이가 많았다. 
ⓒ시사IN 조남진
4월5일 범어역에서 유세하는 김부겸 후보(맨 오른쪽)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이가 많았다.

놀라운 광경이다. 보수 진영의 본진인 대구에서 유권자들이 제1야당의 정치인에게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하고 있었다. 정치인 혐오가 극에 달한 요즘 수도권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4년 전 19대 총선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명함을 건네면 눈앞에서 조각조각 찢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대구 전역이 들썩들썩했다던 2014년 대구시장 선거 때와 비교해도 확실히 달라졌다. 김부겸 후보에 대한 대구 수성갑 유권자의 호응은 글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김부겸은 민주당만 아니면 찍어줄 낀데…”라는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정작 김부겸 후보는 조심스러웠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그가 완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지지자와 선거운동원이 마음을 놓지 않도록 다잡았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 때도 박빙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지만, 결과는 15%포인트 차이 패배였다. 4월6일 저녁 유세에서는 더블스코어까지 격차를 벌린 것으로 나오는 <문화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술자리에서 선거 끝난 것처럼 ‘김부겸이 이겼다’고 떠들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로키(low-key) 전략’이다. 조용하면서 신중하게 유권자에게 ‘침투’하고 있다.

압권은 ‘벽치기 유세’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담벼락을 향해 혼자 독백하는 유세다. 길거리 행인이 아니라, 집에 있는 유권자를 공략하겠다는 유세 방법이다. 소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듯 유세를 진행하고, 길어야 10분이면 자리를 뜬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 50군데씩 선거운동 기간에 같은 골목을 세 차례 방문한다. 하루 한 차례 정도 열리는 집중 유세를 빼면, 후보의 일정은 전부 벽치기에 몰려 있다.

언뜻 보면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 같지만, 집안에 살고 있는 주민을 ‘세 번이나’ 만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김 후보의 생각이다. 골목 동선을 잡고, 유세 차량의 위치를 정하는 것도 모두 김 후보가 판단한다. 취재기자들이 김 후보의 위치를 묻기 위해 수행비서에게 문의하면 “어디로 갈지 후보만이 안다”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김부겸 후보는 대규모 유세보다는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담벼락을 향해 혼자 독백하듯이 하는 ‘벽치기 유세’(위)에 집중했다. 
ⓒ시사IN 조남진
김부겸 후보는 대규모 유세보다는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담벼락을 향해 혼자 독백하듯이 하는 ‘벽치기 유세’(위)에 집중했다.

야권에게 ‘험지 중의 험지’인 대구에서 보낸 김부겸의 4년은 그야말로 ‘벽치기’였다. 나 홀로 동네를 다니며 바닥을 다졌다. 저녁마다 술집을 돌며 막걸리 잔을 마다하지 않았고, 한밤중에도 유권자가 오라면 달려갔다. 당 차원의 지원은 전무했다. 오히려 대구·경북 몫 비례대표였던 홍의락 의원을 공천 탈락시키며 김 후보의 고군분투에 찬물을 끼얹었다. ‘헌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의 대구 도전. 이쯤에서 궁금증이 인다. 그는 왜 대구를 택한 것일까. 김부겸에게 이번 대구 총선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김부겸이 대구 출마를 선언한 때가 2011년 12월이었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지낸 그가 2012년 4월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하자 지역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건 월급쟁이 하겠다는 것이다.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라는 것이 그의 출마 일성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당시 대구 출마를 선언한 이후 김부겸 후보는 당권 도전 의사도 함께 밝혔다.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그는 자신의 당인 민주통합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신의 이익에는 약삭빠르고, 공공선을 실현하는 데는 너무나 무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안철수 현상을 좇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1월15일 전당대회에서 그는 한명숙-문성근-박영선-박지원-이인영 의원에 이어 턱걸이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당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워낙 당내 소수파였다. 대중적 지지는 높았지만, 당내 기반은 약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투옥을 거듭한 강성 운동권 출신이지만, 현실 정치에 뛰어든 이래 줄곧 진영을 가르는 정치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선명한 이념 대결보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제3지대론자였고, 야권 일부는 그를 ‘회색’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제정구 전 의원을 따라 한나라당에서 처음 배지를 달았던 경력도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부겸 의원과 오래 일한 캠프 관계자는 “사실상 왕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당내에서 입지가 약했다”라고 말했다.

“총선 이후 정치판을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설 것”

그에게 대구는 숙명의 도전지다. 대구라는 보수의 벽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비로소 당내에서도 자신의 정치를 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험지 승리를 통한 체급 상승’ 따위가 정치적 목표가 아니다. “대구를 녹인 방법으로 야권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라는 게 김부겸의 목표다. 대구 도전은 헌신이자,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수인 셈이다.

김부겸 캠프의 핵심 관계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서 내려온 이들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해보니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보수층)의 마음을 잡는지 알겠다”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를 공격하고 비판해봐야 아무런 호응이 없다.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낼지 이야기를 해야 먹힌다. 나는 비록 야당이지만 여당과의 협력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할 때 유권자들이 귀를 기울이더라.”

확실히 대구에서 보낸 4년은 김부겸의 위상을 바꾸어놓았다. 2012년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벌써부터 20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르리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든든한 우군도 생겼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김부겸 바람을 타고 당선된 더민주 기초의원 13명이다. 강민구 대구 수성구의원의 말마따나 “김부겸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라는 각오를 다진 이들이다. 야당의 험지에서 더욱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김부겸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김부겸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대구에서 통하면 더민주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주겠다. 총선 이후 지리멸렬한 정치판을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김부겸의 도전은 이번 총선의 승패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김부겸·유승민에 흔들리는 대구

대구에 ‘반(反)새누리당 바람’이 불어닥쳤다. 더민주 김부겸 후보와 무소속 유승민 후보가 진원지다. 12개 의석 중 절반이 ‘비(非)새누리당’으로 채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오성 기자  |  dodash@sisain.co.kr


대구가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본진인 대구에 반(反)새누리당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 지역의 절대군주인 박근혜 대통령이 엄연한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1996년(자민련 돌풍)이나 2008년(친박연대 돌풍) 총선 때와는 다르다. 혹자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대구의 정치 지형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대구의 정치 지형에 먼저 균열을 내려 했던 것은 김부겸 전 의원이었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지낸 김부겸 전 의원이 2012년 4월 대구 총선 출마를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역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일당독재의 아성을 깨고 대구를 총선·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만들겠다”라는 것이 김부겸의 일성이었다. 2012년에 이어 2014년에도 대구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김 전 의원은 선전 끝에 고배를 들었다.

  
 

지난 28년 동안 야권에게 대구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1988년 소선거구제로 첫 총선이 실시된 이래 한 번도 제1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었다. 2005년 10월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44%를 득표하고 패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당시 이강철 후보는 대구 지역에서 무려 4전5기에 나섰음에도 끝내 승리의 깃발을 흔들지 못했다.

“대구를 최대 격전지로 만들겠다”라던 김부겸의 일성은 20대 총선에 이르러 현실화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그의 승리를 점치면서 김부겸 전 의원의 세 번째 도전은 역대 제1야당의 어떤 도전보다 더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이 균열을 냈다면, 유승민 의원은 대구의 정치 지형을 밑동부터 흔들었다. 지난해 4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운 이래 그의 정치 역정은 고난 그 자체였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은 이후 그는 숨죽여 지냈다. 그리고 1년 뒤 설마 했던 ‘유승민 찍어내기’가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자행됐다. 새누리당은 유승민 의원의 측근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데 이어 유 의원의 자진 사퇴까지 압박했다. 끝내 유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해야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3월27일 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후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이래 대구에선 제1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연합뉴스
3월27일 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후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988년 소선거구제가 실시된 이래 대구에선 제1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여론이 들끓었다.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여겨졌던 ‘비박 무소속 연대’가 대구에서 현실화했다. 유승민(동구을)을 비롯한 대구 지역 새누리당 탈당파들은 흰색 점퍼를 함께 입고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더민주 김부겸 후보(수성갑), 더민주를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선 홍의락 후보(북구을)의 당선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대구 지역 12개 의석 가운데 절반이 ‘비새누리당’으로 채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돌고 있다. 여권에 사상 유례없는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새누리당은 보수 총결집에 나서고 있다. “한 군데는 주면 안 되나 하는데 안 된다. 모두 당선시켜야 한다”(최경환 의원), “대구가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는 누가 지키나”(조원진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연일 날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당선 안정권에 있는 대구 지역 친박계 후보들은 자기 지역구 선거운동을 제치면서까지 무소속 강세 지역 지원 활동에 나서는 등 대구 지역 전체가 친박 대 비박의 거대한 승부처로 변했다. 친박계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최경환 의원이 새누리당 대구·경북(TK)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가에서는 ‘최경환과 유승민의 TK 혈투’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던 지역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번 총선 투표율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승민과 김부겸, 여야의 두 정치인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할 경우 20대 총선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항간의 예측대로 새누리당이 전국적으로 압승한다 할지라도 대구에서만은 ‘새누리당의 패배’로 정리될 공산이 크다. 다시금 친박계의 공천 학살과 제1야당의 대구 진출이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두 정치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20대 총선 최대 관심 지역으로 떠오른 대구 동구을과 수성갑의 판세를 살펴봤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새누리당을 탈당해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류성걸·유승민·권은희 후보(왼쪽부터)가 3월31일 공동 선거운동 출정식을 열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을 탈당해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류성걸·유승민·권은희 후보(왼쪽부터)가 3월31일 공동 선거운동 출정식을 열었다.

대구 동구을
유승민의 힘, 어디까지?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은 격전지가 아니다. 공천 막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새누리당 소속 이재만 후보(전 동구청장)의 공천장이 날아가면서 유승민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당초 유승민 단독 출마로 ‘무투표 당선’까지 바라봤지만, 후보 등록 마감 직전 더민주에서 이승천 후보(대구미래대 교수)가 나섰다. 유승민 후보의 무투표 당선으로 선거 열기가 식을 것을 염려한 더민주의 포석이었다. 새누리당 소속 후보의 무공천과 더민주 소속 후보의 등장으로 대구 동구을은 ‘무소속 대 더민주’라는 낯선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둘은 리턴매치다. 2012년 총선 때 동구을에서 맞붙어 새누리당 유승민 후보(67.40%)가 민주통합당 이승천 후보(17.24%)를 큰 차이로 제쳤다. 유승민 의원의 생환 여부가 4·13 총선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만큼 이번 선거에서도 무난히 배지를 달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후보 측에서는 선거 결과를 자신하면서도 내심 역풍을 염려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하루아침에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이재만 전 예비후보가 지역구에서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거운동 아닌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후보 측으로서도 이재만 전 예비후보의 낙마가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진박’ 후보와 정면 승부를 펼쳐 승리함으로써 총선 이후 유승민의 존재감이 한층 치솟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천 파동 이전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유승민 후보가 이재만 전 예비후보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전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유승민 후보 측은 대구에서 ‘반박근혜 바람’이 어느 정도 불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 후보 측은 지난해 11월 ‘유승민 의원 부친상’을 그 계기로 본다. 유 후보의 부친은 대구 지역에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이다. 장례식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근조화환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여론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승민이 미워도 그렇지, 부모상에까지 조화를 보내지 않은 건 박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여론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유승민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로 모아진다. 사실상 당선을 보장받은 유 후보가 권은희(북구갑)·류성걸(동구갑)·주호영(수성을) 후보 등 새누리당 탈당파의 선거 유세에 적극 나설 경우 대구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총선 결과에 따라 유승민 후보가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에 강력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지역 정가에서는 “결국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유승민 가운데 대구시민이 누구의 위상을 높게 보느냐가 관건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선거 구도가 박근혜 대 유승민으로 짜일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유 후보가 박 대통령과 또다시 각을 세울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4월1일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더민주 후보가 대구 수성구 범어사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1일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더민주 후보가 대구 수성구 범어사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대구 수성갑
김부겸의 ‘삼세판’

유승민 공천 파동이 있기 전 대구 지역 최대 관심 선거구는 단연 수성갑이었다. 제1야당 간판을 달고 대구 지역 공략에 나서는 김부겸 후보의 ‘삼세판’이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총선에서 김부겸 후보는 40.4%를 득표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40.3%를 얻어 패했지만 자신의 지역구(수성갑)에서는 50.1%를 얻어 승리했다. 김 후보 캠프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후보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다. 경기도 부천에서만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경기도지사 출신 정치인이 대구로 내려올 때부터 지역에서는 논란이 컸다.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자 한때 최경환 의원 차출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김문수 후보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교수 등 전문직이 많이 거주하는 대구의 정치 1번지 수성갑을 야당 후보에게 내줄 수 없다며 김부겸 후보 쪽으로 기운 듯한 지역 민심을 공략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때 일자리 만들기에 성과를 낸 점을 강조하며 ‘큰 인물론’을 내세운다. 선거 초반 김문수 후보가 내세운 승부수는 ‘교육국제화특구’ 공약이다. 수성구를 교육특구로 지정해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특구로 지정되면 외국인학교 설립이 가능해지는 등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학교 주변 주차장 확보, CCTV 설치 등 지역 학교의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공약도 쏟아냈다. 교육열이 높은 수성갑 유권자의 표심을 노린 공약이다.

  
 

김부겸 후보는 50대 이상 장년층(베이비붐 세대)의 표심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50대 이상 퇴직자의 인생 재기를 위한 ‘인생 이모작 지원센터’ 설립, 55세 이상 암검진 부담금 지원 등이 그것이다.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료 지원과 카드 수수료 인하도 주요 정책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인 50대 이상 장년층과 자영업자를 공략해 선거 판세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김부겸 후보의 완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유승민 의원의 공천 파동으로 대구 지역에서마저 새누리당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다는 점이 김부겸 후보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다만 이런 흐름에 대한 반감으로 보수층이 결집할 경우 선거 결과는 예측 불가다. ‘김부겸 한 명 정도는 당선시켜주자’라던 기존 여론이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와 김부겸 후보 둘 중 누가 이기든 이번에 4선 국회의원이 된다. 총선 때마다 이뤄진 물갈이 탓에 유승민·주호영(3선) 의원을 제외하면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없던 대구 정가에 중진 정치인이 또 한 명 등장하는 셈이다.

애초부터 김문수 후보의 노림수가 이것이었다. 자신의 고향인 대구·경북에서 국회의원 4선에 성공함으로써 지역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마땅한 맹주가 없는 대구·경북에서 새로운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었다.

김부겸 후보가 대구에서 당선될 경우 단박에 야권의 새로운 대권 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친노와 비노의 계파 갈등으로부터도 한발 떨어져 ‘제3지대론’을 주창해온 인물인 만큼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 행보에 급속한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김 후보 스스로도 당선 이후 정치권에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