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가난은 정말로 나랏님도 못 구하나요?"

일취월장7 2016. 3. 31. 11:53
"가난은 정말로 나랏님도 못 구하나요?"
[프레시안 books] <지구를 구하는 정치책>
이대희
기자
| 2016.03.31 08:09:00
4.13 총선에 맞춰 정치 분야 신간이 연이어 나온다. 허나 적잖은 책은 기대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지 못한 기획물이다.

<지구를 구하는 정치책>(홍세화·고은광순·조홍섭·조효제·이지문 지음, 나무야 펴냄)은 유행에 발맞춰 쏟아지는 정치책과 조금 결을 달리한다. 이 책에는 이른바 '직업 정치'의 세계와는 조금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민 사회 영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이들이 자기 전문 분야의 소재를 선정해 진정한 정치를 이야기하는 글 다섯 편이 모였다.

좋은 정치란 당리당략 싸움이 아니라, <삼국지>를 인용한 듯 벌어지는 책사의 싸움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극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이 당위성은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심지어 엘리트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만한 유권자부터가 연일 언론이 중계하는 엘리트 정치판의 훈수꾼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정치의 진짜 의미를 망각한다.

이 책은 우리의 주의를 '진짜 정치'로 되돌린다. 삶의 생생한 이야기, 완전히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로 좋은 정치가 필요한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인권연대가 주도해 만든 장발장은행 이야기로 정치가 고귀함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장발장은행은 위법 행위로 벌금형 선고를 받았으나, 돈을 마련하지 못해 강제 노역을 해야 하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홍 이사장은 장발장은행의 은행장도 맡고 있다. 

그는 글에서 장발장은행의 의미와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비참한 삶을 정리한 후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과연 옳으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좋은 나라는 당연히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옳은 정치란 당연히 국가의 주인이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옳은 정치란 당연히 나눔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한 듯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관심 영역 바깥으로 치워버리고, 대신 각종 부패로 몸을 더럽힌 이들이 정치판을 휘젓는 걸 아무 비판의식 없이 지켜본다. 

▲ <지구를 구하는 정치책>(홍세화·고은광순·조홍섭·조효제·이지문 지음, 나무야 펴냄). ⓒ나무야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선 '페미니스트 한의사', '시골 한의사'로 유명한 고은광순은 열강에 유린된 구한말 이 땅의 민중 이야기, 보다 정확히는 동학농민운동과 그에 얽힌 여성의 이야기를 푸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전쟁 위험 국가로 치닫는 우리 주변 환경의 엄혹함을 경고한다. 특히 그는 전쟁을 부추기는 우리의 중독 현상을 경고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야함을 역설한다. 좋은 정치란 당연히 주권자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과연 지금 우리의 정치는 그러한지, 우리가 생각하는 후보자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할 생각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조홍섭 <한겨레> 기자는 환경 이야기를,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난민 이야기를, 이지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는 추첨제 민주주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들이 제기하는 주제는 모두 조금씩 다른 모양새로 여러 양심 있는 지식인이 오랫동안 목청 높여 부르짖었다. 

선거, 여의도 등의 상징어로 수렴되는 정치와 이 책은 얼핏 관계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이 정치임을 알 수 있다. 그제야 4.13 총선의 중요함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평화가 밥 먹여 주냐고? 폭탄 한 방이면 모두 끝!
[시민정치시평] 평화·통일 정책 사라진 총선

솔직히 말하면 다가오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할 생각이 없다. 집권 여당은 지난 대선 이후 무얼 했는지 묻는 게 부질없어 보이고, 야당은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총선을 한 달 앞두고도 후보 선정을 완결 짓지 못했고 정책 선거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고 있다. 해외출장을 핑계로 투표할 생각이 없다니까, 지인이 그래도 진보 정당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투표하란다. 사전 투표일(4월 8일~9일)도 알려주면서. 투표를 할까, 그래도 해야 하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4개 정당이 이번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정당 이름도 다채롭다. '한나라당', '민주당' 등 과거 정당 이름도 있다. 가장 재미있는 당 이름은 '대한민국당'인데 공약을 미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평화·통일과 관련해 눈에 띄는 정당이 '친반평화통일당'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 당은 제1정책 순위로 "평화롭고 안락한 나라 건설"을 설정하고 김정은 정권 인정, 불가침 조약 체결, 낮은 단계의 연방제 실시 등 나름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공약만 놓고 보면 이 당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거의 모든 정당이 생활 밀착형 공약을 내걸고 자기 당과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한다. 세계 경제 침체와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들의 사회 생활이 불안정함은 물론 식의주, 건강 등 기본 생활도 위협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당이 경제, 복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약을 집중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국회의원 선거가 자기 고장을 발전시킬 인물을 뽑는 걸로 착각하는 현상이 일어나더니 이제는 거의 굳어지는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이 섭섭해 할 일이다. 국(國)회의원, 언론, 유권자가 담합한 듯,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우리 동네의 그것으로 치환시키고 국가와 세계 차원의 보편 이익을 나, 우리 단체, 우리 고장의 이익으로 축소시킨다. 거의 모든 정당의 정책·공약에 평화·통일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모든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손에 꼽는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당이 그런 정당일 것이다. 주요 정당이라면 평화·통일 문제를 비중 있게 여기고 관련 정책·공약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당도 있었다. 선관위 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당 10대 정책 보기' 코너를 기준으로 볼 때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10대 정책에 평화·통일 공약이 없다. 11번째 공약이라서 빠졌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이슈로 선심성 공약을 만들기 어렵고, 그래서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일까? 

대체로 진보 정당 쪽이 평화·통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나름의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녹색당과 노동당은 핵 발전을 포함한 '완벽한' 비핵화, 북핵 문제와 평화 협정의 동시 해결, 파병 규제, 군 인권 신장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더민주당과 정의당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의 동시 추진을 제시하고 있다. 더민주당은 남북 인권 협력, 대북 지원을 통한 이산가족 10년 이내 전면 상봉 공약이 인상적이다. 정의당은 중견국 외교, 정예강군(40만)을 목표로 한 국방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이게 전부다. 이번 총선에서는 비핵화, 남북 관계, 대북 정책 등과 같은 이슈들이 쟁점이 아니다. 북한이 수소 폭탄 실험을 했고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험악한 분위기가 반도를 감싸고 있는데도 말이다. 솔직히 경제, 복지 정책도 선심성 공약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할 의지가 있다면 지난 3년 동안 왜 안 했겠는가? 투표율이 낮을 가능성도 크다. 단지,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만 여당이 개헌 가능 의석을 차지할 것인지, 국민의당이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할 것이냐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유능한 정치인들은 평화가 표를 갖다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유권자들도 평화가 밥 먹여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입주 기업은 물론 협력 업체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잊히고 있는 금강산 관광의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물론 강원도 북부 지역 경제가 오래전에 무너졌다. 북한 정권 비난 전단을 날리는 접경 지대에선 주민들의 생계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채 국민 안전, 인간 안보가 표류하고 있다. 국가 안보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천안함 침몰의 진상도 불철저하게 다뤄진 채 유폐돼 있다. 대화와 교류 없이, 진상 규명 없이 희생자들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매년 춘삼월에 두 가지 안보 불안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나는 전쟁 위험이다. 북한 최고 지도자 참수와 정권 붕괴를 겨냥한 한-미 합동 군사 연습과 핵 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군사 도발이 엮어내는 죽음의 굿판이다. 꽃 구경을 시샘하는 황사와 초미세 먼지가 두 번째다. 모두 그 양상은 달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평화가 밥 먹여 준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평화가 우리의 밥을 지켜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가 평화를 위협하는지, 누가 평화를 지키려 하는지 따져보고 투표할 일이다. 나도 투표해야겠다. 



"2년마다 강제 이사, 반사회적인 인권 범죄"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바라는 주거 공약


대한민국에 주거권은 있는가? 세입자들이 우리 사회에 이 질문을 던진 지 오래되었다.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고통의 수렁 속에 빠져 있다.

며칠 전 한 신문에 나온 이야기다. 한국 기자가 독일 세입자에게 한국에는 2년마다 이사 가야 하는 법이 있다고 했더니 "2년마다 이사 가는 건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말하더란다. 나는 2년마다 이사 가는 규정을 두고 있는 주택 임대차 보호법은 '주거 악법'이라고 본다. 임차인 보호법이 아니라 임대인 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 2년마다 이사는 현대판 강제 이주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조경한다고 소나무를 파와서 심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나무가 성하게 자라는 걸 본 적 있는가? 주거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그 집만 뽑아서 강제로 옮기면 풍토가 다른 주거 생태계에서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또 적응할 만하면 또 파서 옮긴다. 이게 바로 문명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야만이고 또 다른 유형의 강제 퇴거다. 즉시 멈추어야 한다. 

2년마다 이사 가야하는 건 반사회적 범죄 행위 

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세입자는 원하는 기간 동안 같은 임차 주택에서 산다. 본인이 원하면 자가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쭉 살듯이 세입자들도 한 곳에 쭉 산다. 주거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머물 권리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무는 것이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원하는 기간만큼 살고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주거권을 유린당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다. 임대인이 2년 계약 기간이 다 되었을 때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고, 임대인이 원하는 만큼 올려달라고 할 때 올려 줄 수 없으면 나가야 하는 건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한쪽은 주거권을 누리고 한쪽은 못 누리는 건 민주공화국 정신을 훼손하고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계약이 끝났다고 많은 돈을 올려 달라고 하는 임대인에게는 단지 돈을 확보하는 문제지만, 자기가 살던 정든 보금자리에서 나가야 하는 사람은 삶의 비애감을 느끼고 좌절감을 겪어야 한다. 세입자한테 물가 수준 정도로 적정하게 올려 달라고 하면서 정든 보금자리이자 삶의 안식처인 '집'에 계속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보금자리 문제를 수요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에 맡겨 놓은 사회를 문명 사회라고 볼 수 없다.

한국의 세입자는 2300만 명에 이른다. 예비 세입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분가를 앞둔 청년, 얹혀사는 사람들, 홈리스, 고시원, 비닐하우스, 쪽방 거주자, 지하방 거주자, 결혼을 앞둔 청년 등을 합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주거 불안에 떠는 나라를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사회가 사회 통합이 될 리가 없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이지만, 이번 총선만큼 정책이 실종된 선거는 드물 것이다. 다른 때 선거가 주로 북풍이 부는 선거였다면 이번 선거는 막장 공천, 독재 공천으로 본 선거 들어가기 전에 빛이 바랬고 막장 공천이 정책 선거를 실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이번 총선 공약을 비교하면서 "2년마다 이사 가야 하거나 4년 되면 이사 가야 하는 건 주거권 유린 행위다" 이렇게 말하는 정당을 찾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발견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지난 총선, 대선 그리고 20대 총선 주거 공약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 때 공공 임대 주택 120만 호(2013-2018년 사이에 매년 20만 호씩 공급)를 확보해서 주거난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담대해 보였던 공약은 헛공약이었음이 판명되었고, 공약을 지키기 위해 애쓴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반년 뒤에 박근혜 후보 대선 공약이 나왔는데 공공 임대 주택 55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6개월 만에 반토막이 나는 공약을 하게 되었는지 해명 한 번 못 들었다.

새누리당 20대 총선 공약집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공공 임대 주택 신규 공급 공약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공 실버 주택 800호 매년 공급, 빈집 리모델링, 임대 주택 매년 600호 공급이 있긴 하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행복 주택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한데 이전 주장의 재탕이다. 2017년까지 14만 호를 공급할 계획인데 5만 호를 짓는 데 추가 예산이 드리라는 제3자적인 자세를 취한다. 현재 9만 호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사업 승인이 났다는 걸 이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 승인 내고 이후 실제 준공하는 비율은 지금까지 30%대에 불과했다.  

▲ 새누리당 주거 공약. ⓒ새누리당

  
위에서 보듯이 새누리당은 공공 주택, 기숙사 등 기존 주택에 대한 관리 방안을 주로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의 주거 관련 공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뉴스테이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기금 등의 투자 참여 유도와 리스크 완화를 명분으로 앞세우며 준공 후 기금 지분 인수, 임대 기간 중 지분 매각 허용을 공약하고 있는데, 이는 공공성을 허물고 건설 재벌에 퍼주기 작전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공공 임대 주택 공약을 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총선 승리는 예정된 것이고 단지 과반을 넘어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하거나 개헌을 시도할 수 있는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으로 보고 정권에 부담이 되는 공약은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 주택이 모자라 고통 받은 세입자의 처지를 외면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공약은 그동안 시민사회와 세입자 단체들, 주거 단체들이 요구한 내용에 어느 정도 근접한 안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이 앞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15만 호씩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점이다. 계약 갱신 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도입도 이들 요구안과 같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세입자 상담 센터 설치는 매우 의미 있는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세입자들이 정보에 목말라 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주거권, 주거 관련 법률에 대해 공부하지 않다. 그래서 세입자 대부분이 법과 제도, 실상을 잘 모른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세입자 상담 센터가 있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은 많이 극복이 될 것이고, 세입자도 그나마 있는 법률과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것이다. 보증금을 법을 몰라 떼이는 확률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공공 임대 주택 60만 호 공급, 계약 갱신 청구권 도입 등을 공약했다. 더민주당의 공약은 문재인 대선 후보의 공약을 잇는 모습이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공공 임대 주택을 연 10만 호 공급에서 15만 호로 바꿨다는 점이다. 공공 임대 주택 규모를 더 늘렸으면 그에 합당한 예산 대책과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야 마땅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역 공약 중 주거 공약

제주도
  
- 실수요자형 임대 주택 공급으로 저소득층 주거 복지를 실현하겠습니다.
- 집 걱정 없는 제주, 도민의 주거 복지를 실현하겠습니다.

경북

- 농어촌 지역 독거노인 공공 임대 주택 단지를 조성하여 어르신들의 주거 불안, 의료 불안을 해소하겠습니다.

경기도

- 임대 주택 공급 목표(8.6%)를 두 배 이상 확대하여,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겠습니다.


위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역 공약 가운데 주거 공약만 모아 놓은 것이다. 지역 공약으로 구체적인 주거 공약을 내놓은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천만 된다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계약 갱신 청구권 도입을 공약했다. 그러나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는 건 물음표다.
 


국민의당은 이렇다 할 주거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주거 항목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을 정도다. 

"이사할 때 불편을 해소하겠습니다. 전월세든 자가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사 시기의 불일치로 인하여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사 시기 불일치하는 세입자 가구에 대해 대출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원내 교섭 단체 규모에 있는 정당이 이래도 되나 싶다. 세입자가 이사 가는 고통을 얼마나 큰데 이사를 안 가고 살 수 있는 고민은 없고, 이사 갈 때 겪는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공약집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모두 네 곳에 주거 관련 표현이 있다. 아래 표에서 보다시피 이렇다 할 공약이 없다. 주거권에 대한 무관심이 너무 심한 수준이다.

국민의당 주거 관련 공약

- 기초 생활 보장 제도를 개선하여 노인 가구의 주거비, 광열비 등 지출 비중이 높은 항목 지원을 확대한다.
- 경로당을 홀몸 어르신을 위한 쉐어하우스로 만든다.
- 청년 희망 주택을 공급(국민 연금 재원)하여 35세 이하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한다.
- 공동 주택 관리법을 개정하여 일상생활 지원 센터를 만든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는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 2018년까지 공공 임대 주택을 연간 12만 호씩 공급 △ 주택 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통해 임차인에게 1회 자동 계약 갱신권 보장 △ 우선 변제 제도 대상 가구 확대 및 우선 변제금 증액 △ 주택 임차료 보조 제도(주택 바우처) 본격 시행. 또한 공공 주택 거주 비율을 "현행 4%에서 10%로 늘리겠다'고 했고 '정부가 앞으로 새로 조정하는 공공 택지는 가능한 건설 업체에 분양하지 않고, 분양 전환이 되지 않는 공공 임대 주택과 토지 임대부 주택 위주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때 나름 의미 있게 평가할 만한 공약을 한 안철수 후보였는데 안철수 의원이 대표로 있는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을 맞아 이렇다 할 주거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

공공 임대 주택 공약 없거나 미약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세 정당의 공약을 비교한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이 선거 때 정당이 무슨 공약을 하는지, 당선된 뒤 그 공약을 지키는지 관심이 없는 시민이 많다. 공약은 말 그대로 공적 약속이기 때문에 공약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공공 임대 주택 공급 공약을 내놓지 않고, 국민의당이 청년 희망 임대 주택 공약을 살짝 언급하는 수준에서 머문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폭등 지역에 한해서 전, 월세 상한제를 도입한다고 했는데, 미흡하기 그지없는 그 공약마저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아예 상한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전, 월세 폭등을 방조하고 조장한 새누리당이 전, 월세 폭등과 주거 불안을 막을 어떤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을 내어놓지 않은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공공 임대 주택 60만호 공약과 계약 갱신권 도입을 내 건 바 있는데, 국민의당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는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3년 만에 이처럼 변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좋은 공약을 내어 놓았는데 세밀한 예산 대책을 내놓지 않아 공약 실현에 의문을 자아낸다. 지난 4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용섭 총선 공약단장이 국민 안심 채권 발행을 통한 국민 연금 투입과 주택 도시 기금을 통해 공공 임대 주택 152만 호를 확보할 재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발표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임대 주택 재고량 11.5%(253만 호)=101만 호(현 재고량)+67만 호(주택 도시 기금을 통한 확충)+85만 호(국민 연금 기금 공공 투자를 통한 확충)."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연금을 매년 10조 원 투입해 장기 공공 임대 주택 85만 호와 5600개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보하고, 주택 도시 기금으로 나머지 67만 호를 확보하겠다고 한다. 우선 제시한 100조 원이 공공 임대 주택과 보육 시설을 확보할 재정 액수가 되는지 구체적인 분석 내용을 제시해야 하고, 얼마의 주택 도시 기금을 확보해야 67만 호를 확보할 수 있는지도 말해야 한다. 주택 도시 기금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도 제시해야 한다. 각 연도별로 구분해 구체적인 재정 로드맵 제시를 요구한다.  

4년 임기의 총선 기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정당이 다음, 다음 국회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기식 방안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오는 4년 동안 60만 호의 공공 임대 주택을 확보할 재정 대책을 촘촘하게 내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는 게 우선이다.

세입자가 맘 편히 사는 세상 만들자 

내가 바라는 주거 공약은 이렇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임대차 보호법에 2년마다 이사 가게 되어 있는 건(제6조) 강제 이주를 합법화해 놓은 것이다. 독일 등 다른 유럽 여러 나라처럼 세입자도 원하면 한 곳에서 계속 머물 수 있는 계속 거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적어도 20년 거주권은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 전세, 월세는 너무나 올라 있는 점을 생각할 때 집세(보증금 또는 월세)는 인하해야 정상이다. 인하는 법제화하기 쉽지 않지만 전, 월세를 동결하는 입법은 가능하다. 4~8년 동결 입법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약하다고 본다. 전년도 물가 이상 못 올리게 하는 물가 기준 전, 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사실상 동결 입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가 지금보다 더 오르면 '깡통 전세'가 될 가능성을 대폭 높이는 문제도 있다. 월세가 더 오르면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된다. 

공공 임대 주택 200만 호를 추가 확보해서 프랑스 수준의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 공공 임대 주택을 매년 25만 호씩 추가 확보해서 4년 임기 동안 100만 호를 확보하고, 다음 21대 국회 임기 동안 같은 물량을 확보하면 200만 호가 추가 확보된다. 이에 대한 재정 대책으로는 사회 복지세 도입, 연기금 투입, 재정 효율화 등이 가능하다.

제발 이사 안 가고 한 곳에 살게 하라. 2년 시한부 주거 인생 이제 끝내자. 세입자도 발 뻗고 맘 편히 살아보자. 집을 부동산으로 보는 시대를 끝내고 집을 삶의 안식처로 보는 시각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