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재앙 예고하는 ‘4無의 박근혜’
더 큰 재앙 예고하는 ‘4無의 박근혜’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전환을 예고하는 국회 연설을 했다. 무능·무지·무책임·무대책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이 강경 일변도로 대북정책을 선회해 무척 우려스럽다.
| [441호] 승인 2016.03.04 21:20:11 |
지난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혁명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국회 연설을 했다. “김정은 정권의 브레이크 없는 독주”를 막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더 이상의 교류와 협력, 협상은 무의미하며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의 변화만이 한반도 끝장 게임(Korean end game)의 수순이라는 메시지다. 여당과 보수권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우려가 앞선다. 무능·무지·무책임·무대책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이 강경 일변도로 대북정책을 선회하는 건 더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첫째, 정책적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연설 하나로 그동안 현 정부가 공들여왔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 증폭 프로세스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신냉전 구도로, 유라시아 구상은 립서비스로 끝나고 말 운명에 처했다. 게다가 보수·진보 모두에게 희망의 담론으로 부각되었던 통일대박론도 그 끝이 보인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이 지금 상황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변하지만 그걸 믿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둘째, 현 정부의 무지도 문제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공단 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전용했는가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심증만으로는 우리 국민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이는 전형적인 정보 수집 실패 사례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이란 모델’을 이번 조치의 벤치마크로 삼았다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란 경제와 사회가 열려 있고 개방을 선호하는 중산층이 건실했을 뿐 아니라, 로하니 같은 온건파에게 희망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과 중산층도 존재하지 않고 온건파의 역할이 지극히 제한된 북한에 대한 제재는 원천적 한계가 있다. 더구나 강력한 제재가 북한 정권 변화를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이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편다는 것은 중차대한 정보 판단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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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3년 4월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멀쩡하게 돌아가던 개성공단 조업을 중단시키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말했었다(위). |
셋째, 현 정부의 무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햇볕정책 탓으로 돌렸다. 박 대통령은 “퍼주기가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라고 탄식했는가 하면 여당 지도부는 “햇볕정책이 북한 핵·미사일을 도와주었다”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파국은 지난 7년간 보수 정부의 정책이 야기한 결과다. 그런데도 그 책임을 아직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묻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9·11 이후 워싱턴에 비판적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넷째, 무대책은 더 심각해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는 미국·일본·유엔 등 국제사회의 공조를 끌어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지만 우리에게는 마지막 카드였다. 문제는 이후다. 한·미·일 3국의 독자 제재, 그리고 유엔 차원에서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멀쩡히 존속하고 계속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할 경우 어쩔 셈인가. 사드 도입은 대안이 아니다. 아주 불안한 소극적 억지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무장? 군사행동? 이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분탕질만 쳐놓고 차기 정부에 미루는 것 아닌가.
국민정서나 국제적 분위기로 보아 현 단계에서 강력한 제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재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도, 정권 교체도 이루기 어렵다. 제재는 협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의 끈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화해와 협력, 대화와 협상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은 현 국면을 심각한 국가 안보의 위기로 규정하고 국민의 단합을 호소했다.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것만이 전쟁을 막는 최선의 민주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2003년 9·11 여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 비판적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막을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 맹목적 애국심, 집단주의적 사고가 그 잘못된 전쟁의 원인이었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굳게 잠근다고 문제 풀릴까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대북 봉쇄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관여 전략)을 ‘퍼주기’라는 식으로 일축하고 봉쇄 전략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것이다. 봉쇄는 과연 대북정책의 대안이 될 수 있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릴 때마다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든 무명의 누리꾼 사이에서든 가리지 않고 나오는 논평이다. 대중이 폭넓게 공유하는 ‘반(反)햇볕정책’ 정서의 바탕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그중에서도 “북한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설명은 특히 호소력이 크다. 북한 정권을 비합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상대로 보고, 이런 상대와 대화와 협력을 하려 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어리석었다는 결론을 낸다.
‘미친개(북한)에는 몽둥이(제재)’ 논리는 대북 강경책 지지 여론의 핵심 버팀목이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를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다. 2월 셋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잘한 일이라는 응답이 55%,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33%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대북 봉쇄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20~21쪽 기사 참조). 그래서 따져봤다. 봉쇄는 대북정책의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관여(engagement)’와 ‘봉쇄(containment)’는 대북 안보 전략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다. ‘관여’는 관계의 고리를 끊임없이 거는 전략이다. 교류를 하고, 인도적 지원을 하고, 회담을 하고, 돈 거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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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를 통해 서로 이익을 얻는 국가끼리는 전쟁 위험이 줄어든다. 상대 국가와 평화로운 교류를 하는 것이 자국에도 이익이니 전쟁으로 뒤흔들지 말자는 저항이 생기게 된다. 이 아이디어는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구평화론>에서 칸트는 “국가 간 무역과 경제의 상호 의존이 전쟁을 막는다”라는 유명한 테제를 제시했다. ‘관여’는 서로를 이익이 되는 관계로 묶어 평화를 증진하자는 안보 전략이다. 먼저 잘해주고 상대의 호의를 기대하는 ‘착한 멍청이’와는 거리가 멀다. 김대중 정부가 주창하고 노무현 정부가 계승한 햇볕정책의 이론적 뿌리가 이 관여 전략이었다.
‘봉쇄’도 ‘전쟁광 멍청이’와는 거리가 멀다. 역시 원리가 정립된 안보 전략이다. 북한 정권이 계속 도발을 하는 이유는 ‘도발의 수익률’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1989년 북한 핵 문제가 국제사회에 처음 등장한 이후 4반세기 동안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을 ‘선물’로 무마하려 했다고, 봉쇄론은 본다. 1차 핵 위기에 뒤이은 1994년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했다. 2차 핵 위기에 대응한 6자회담은 북한에 테러지원국 지위 해제와 중유 100만t을 안겨줬다.
핵의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자는 접근법
봉쇄론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불가침 약속과 적당한 대가를 받을 경우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북한에게 핵은 단순한 협상용을 넘어 정권의 위신과 정당성이 걸린 문제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봉쇄론은 예측한다(적지 않은 관여론 지지자도 여기에 동의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불가침 약속과 석유를 줄 수는 있어도, 정치·경제·사상적으로 실패한 국가 북한에 정권 정당성을 공급할 방법은 없다. 이런 처지의 북한 정권에 핵은 확실한 고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실패를 딛고 정권 정당성을 지탱해줄 유일한 보루다. 핵이 대체 불가능한 자원인 이유다.
이용준 이탈리아 주재 대사는 북핵 담당 대사와 외교부 차관보 등을 지낸 북핵 협상 전문가다. 봉쇄론의 이론가인 그는 책 <게임의 종말>에서 “게임은 항상 북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20년간 북핵 문제는 해결된 적이 없이 나빠지기만 했다”라고 썼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 합의를 ‘평화 외교의 승리’로 기억하는 대중의 눈에는 퍽 낯선 주장이다.
북한과의 핵 협상 때마다 국제사회는 에너지 제공이나 테러지원국 해제와 같은 ‘선물’을 주었다. 이런 선물은 대개 도로 빼앗아올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이에 대응해 내놓은 조치들, 핵 동결이나 불능화는 되돌릴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조치인 핵 폐기와는 다르다. 위기 때마다 북한은 선물을 챙겼고, 핵 폐기라는 마지막 숙제를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면 다시 핵 위기를 일으키고 판을 깼으며, 새로 차려진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선물을 챙겼다. 이용준 대사는 북한은 어떤 대가를 받더라도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북핵 위기 20년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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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중앙통신 2월1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새 기록영화를 통해 동창리 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 ‘광명성호’를 발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
당근이 통하지 않는다면 채찍이다. 북한 정권을 ‘정권 유지냐, 핵 보유냐’ 양자택일의 질문으로 몰아붙여야만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 봉쇄론의 핵심이다. 핵을 놓지 않으면 정권이 붕괴한다고 느낄 수준까지 몰려야만 북한은 핵을 포기한다. 관여 전략이 평화의 수익률을 높여주자는 접근법이라면, 봉쇄 전략은 핵의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자는 접근법이다. 봉쇄론의 관점에서는 아래와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평화의 가치가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정권 자체를 버텨주는 핵의 가치보다 높아질 수는 없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오직 봉쇄 전략이 먹힐 때에만 핵을 포기한다. 같은 논리로 관여 전략은 최대로 성공하더라도 핵을 폐기시킬 수 없다.
즉, 봉쇄론은 ‘미친개에는 몽둥이’와 같은 감정 섞인 주장과는 다르다. 북한 정권이 미친개가 아니라, 핵과 비핵화의 수익률을 냉정히 비교할 줄 아는 합리적인 행위자이기 때문에 몽둥이(봉쇄)가 유효하다는 논리다. 북한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봉쇄론의 제안은 출발점이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결론에서 만난다. 여론전에서 봉쇄론이 관여론에 더 자주 승리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2월16일 국회 연설은 의미심장하다. 이날 대통령은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고, 북한의 핵 능력만 고도화시켜서 결국 한반도에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했다. 한 줄 한 줄이 봉쇄론의 기본 노선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말은, 관여 정책으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봉쇄론의 핵심 논거다. “북한의 핵 능력만 고도화시킨다”는 것은 봉쇄론이 주장하는 협상의 역효과다.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은 강력한 봉쇄를 통해 핵의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자는 제안이다.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는 말은, 봉쇄가 불러올 긴장 고조를 버티고 감당해야만 핵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의미다.
봉쇄론이 풀어야 할 ‘두 가지 딜레마’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봉쇄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개성공단 폐쇄는 이 노선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다음 문제는 봉쇄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이다. 현장 외교관들과 연구자들의 논평을 종합하면, 봉쇄론은 두 가지 딜레마를 풀어야 한다. 하나는 당장 봉쇄 전략을 삐걱거리게 만드는 실질적인 딜레마이고, 또 하나는 잠재적이지만 위험성은 더 큰 딜레마다.
실질적인 딜레마는 중국이다. 봉쇄는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가 모두 동참해야 의미가 있는데,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봉쇄의 수준에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중국도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한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안정과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더 우선순위가 높은 목표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3대 불가(不可) 원칙은 ‘전쟁 불가, 불안정 불가, 핵 불가’인데, 순서가 중요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봉쇄망은 계속해서 미완성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봉쇄 정책은 천안함 침몰 이후 등장한 5·24 조치였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존재하는 한 제재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5·24 조치가 북한이 북·중 무역을 통해 로또 같은 외화를 벌던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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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위)하는 등 중국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사드 배치 논의 이후 한·중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
봉쇄론자들도 중국 딜레마를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과도하게 중국에 기울었다는 평을 들을 만큼 대중 외교에 공을 들였고,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북한 문제에 “중국이 나서달라”고 이례적인 부탁을 했다. 보수 언론은 중국의 젊은 세대가 김정은의 기괴한 3대 세습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이 여론을 반영해 대북 외교 기조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과 같은 큰 나라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주변적인 이유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박근혜 청와대는 실감하고 있다. 현실은 그 반대에 더 가깝다. 사드 배치 논의로 한·미 동맹이 중국 안보에 위협으로 떠오름에 따라, 중국 처지에서도 북·중 공조의 전략적 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전망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잠재적이지만 더 뿌리 깊고 더 위태롭다. 봉쇄 전략이 중국 딜레마를 해결하고 제대로 작동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정권이 붕괴한다고 진지하게 느낄 수준까지 북한을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핵이 북한 정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야말로 봉쇄론의 핵심 가정이었다. ‘핵의 마이너스 수익률’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생존 확률이 낮다면, 그런 북한이 이판사판의 자해적 무력 공세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안보 전략은 한반도 전쟁 방지라는 대전제를 만족해야 한다.
물론 북한 정권이 전면전을 택할 경우 의심의 여지없이 멸망한다. 북한과 한·미 동맹의 전력 격차는 압도적이다. 따라서 아무리 고강도로 압박을 받더라도 북한은 생존 확률이 0%인 전면전보다는 굴복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봉쇄론은 북한의 이 ‘합리적 선택’ 덕분에 전쟁 방지라는 대전제를 통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합리적’이어야 오차나 돌발 변수 없이 이런 선택이 가능할까?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팔다리 넷을 자르라고 나보다 훨씬 센 누군가 요구하면, 덤비기보다 팔다리를 자르는 게 ‘합리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그래엄 앨리슨의 <결정의 엣센스>가 밝혀두었듯이, 전쟁 위기에서의 집단 의사 결정에 이런 수준의 합리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고도의 긴장 상황에서 합리성은 대단히 취약하다. 지도자의 순간 오판은 물론이고 심지어 기계 오작동으로도 어처구니없이 붕괴할 수 있다. 냉전 시절이던 1983년, 소련의 미사일 경보 체계가 경보를 울렸다. 미국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소련을 향해 발사했다는 신호였다. 이럴 경우 소련은 즉각 핵 보복 공격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미·소 핵전쟁이다. 만약 당시 경보기지 책임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시스템 결함과 경보 오작동 쪽에 베팅하지 않았다면, 1983년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해였을 수도 있다.
첫 번째 딜레마가 중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하는 등 상황 변화로 해소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두 번째 딜레마는 봉쇄론 자체에 내재해 있다. 핵이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기둥인데도 핵 포기를 고려할 만큼 북한을 압박하려면 봉쇄의 강도가 극적으로 강해야 한다. 생존 위기에 몰리고도 북한이 전쟁을 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가정은, 북한 정권이 고도의 긴장 국면에서 모든 손익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 결과를 오차 없이 집행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합리적’일 때 성립한다. 그것도 젊고 경험 부족한 김정은 체제가 그렇게 해낼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이 정도면 고무 찬양이다.
북한을 '굶주린 야수'로 만들 셈인가

한국시간으로 3월 3일 0시 17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언론과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군사적 제재로는 유엔 안보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그 내용을 보면 전면적 대북 경제 봉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과거 대북 결의는 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억제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하지만 이번 결의에는 WMD뿐만 아니라 소형무기 거래, 해운과 항공, 대외교역, 금융거래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북한의 돈줄을 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재 내용도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짜여 있고, 또한 대부분은 유엔 회원국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일부 항목에서 인도주의 및 민생 목적을 예외로 하고 있지만, 이번 결의가 전면적 이행에 들어가면 북한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외자 유치뿐만 아니라 전체 수출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광물 수출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조금은 숨통을 틀 수 있다고 하더라도, 김정은 정권이 공언해온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 중대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 2일 (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이사국들이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AP=연합뉴스
결의와 능력이 만날 때
하지만 이번 대북 제재 결의를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제재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공식적인 목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은 실현될 수 있을까? 대북 제재는 이를 위한 적절한 방식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제재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고 그걸 인정해 교정토록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이다. 이에 따라 대북 제재 결의에 맞서 체제 수호의 결의를 다지면서 핵과 미사일에 더더욱 집착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또 하나는 북한의 자체적인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외화를 벌어들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우라늄 농축, 흑연감속로, 재처리 시설, 핵무기 제조, 핵실험장으로 이어지는 자체적인 '핵 주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사일 역시 1980년대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를 도입해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독자적인 기술력과 생산 체계를 완성해놓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이번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의 핵 억제력에 대한 결의를 강화시키는 대신에, 북한의 능력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굶주린 야수가 되면
한편 이번 대북 제재 결의에는 "북한 주민이 처한 심각한 고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 결의로 인해 북한 주민의 고난이 가중될 위험이 커졌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국가적 차원의 경제난에 따른 고통은 가장 낮은 곳, 즉 북한 주민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북 제재 결의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굶주린 야수'가 되는 것이다. 경제난 가중과 핵 능력 강화가 만날 경우, 북한은 더욱 거친 존재가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곧 한국의 정치, 경제, 안보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집권 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으로 인한 경제 위기, 안보 딜레마 격화로 인한 평화의 위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전체가 '헬조선'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걸 막으려면 이제 제재에서 대화 모드로의 전환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면 제재를 완화하고 협상에서 성과가 나오면 해제할 준비도 갖춰야 한다. 많은 이들은 이란 핵협상의 교훈을 운운한다. 하지만 핵심적인 교훈은 제재를 협상의 '수단'으로 삼을 때 제재의 '목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