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는 내부자들
공화국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더 자주 접하는 읽을거리는 두툼한 단행본보다는 정기간행물인 듯하다. 일간신문부터 계간지까지 여기에서 추천하는 몇몇 정기간행물은 공화국의 교양인이 되기 위해 필요충분한 자양분이다.
| [436호] 승인 2016.01.28 16:12:12 |
누구나 알다시피 ‘독서’는 책을 읽는다는 뜻이야. 그런데 책이란 뭘까? 지니고 있는 <동아국어사전>에서 ‘책’을 찾아보니 “1.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종이를 꿰맨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종이를 여러 장 겹쳐 맨 물건”이라고 풀이돼 있네. 두 번째 뜻의 책이 쓰인 예문으로는 “모조지를 책으로 매어 연습장을 만든다”를 들어놨어. 물론 이 뜻의 책은 ‘독서’라고 말할 때의 책은 아니지. 그런데 첫 번째 뜻의 책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책’이라는 말과 고스란히 포개지지는 않아. 예컨대 우리는 리플릿이나 팸플릿이라고 부르는 얄팍한 인쇄물은 보통 책이라고 하지 않아. 또 전자책이라는 말도 있고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책이라고 하면 첫 번째 정의에 나와 있는 대로 ‘종이를 꿰맨 물건’을 연상해. 미래에는 전자책도 그냥 책이라고 부를 날이 오긴 하겠지만, 아직은 ‘e북’이나 ‘전자책’이라고 부르지, 그냥 책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기간행물은 책에서 제외하는 것 같아. 물론 두툼한 계간지라면 더러 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간지나 시사 주간지 같은 걸 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아. 일간지라면 몰라도 시사 주간지는 ‘종이를 꿰맨’이라는 정의에 딱 들어맞는데도 그걸 책이라고 잘 부르진 않아.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더 자주 접하는 읽을거리는 두툼한 단행본보다는 정기간행물인 듯해. 그래서 오늘은 정기간행물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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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
모든 정기간행물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시사’에 관한 정기간행물로 국한하려고 해. 사람들은 취미에 따라 음악 전문 월간지를 볼 수도 있고, 영화 전문 주간지를 볼 수도 있고, 낚시 전문 격월간지를 볼 수도 있지. 이런 전문적 정기간행물과 시사를 다루는 정기간행물의 차이는 전자가 특정 분야 ‘덕질’의 무기인 반면, 후자는 공화국의 양식 있는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읽을거리라는 거지. 후자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읽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지금 종이를 염두에 두고 얘기를 하려고 해. 그리고 내가 추천하는 정기간행물은 내 정치적·이념적 성향을 얼마쯤 반영하고 있다고 미리 털어놓을게.
우선 일간신문. 종이 신문이 내리막인 건 사실이지만, 나는 공화국의 버젓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종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일간신문 가운데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을 추천해. <한국일보>는 그야말로 정치색이 엷은 신문이야. 말하자면 전형적인 중도 신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중도라는 게 거의 모든 기사들이 중도라는 이유만으로 나온 결과가 아니라(중도적 기사가 많긴 하지),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는 수많은 빛깔의 기사가 뒤섞이다 보니 평균적으로 나온 결과이기도 해. <한국일보>의 어떤 기사는 꽤 진보적이고, 어떤 기사는 꽤 보수적이야.
아 참,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게 하나 있어. 흔히 사람들은 기사와 논설, 기사와 사설, 기사와 칼럼, 이런 말을 해. 그런데 이건 바보 같은 말이야. 신문에 실린 글은, 광고를 빼고는 모두 다 기사야. 그 기사 가운데는 기자의 관점을 되도록 억제하고 사실관계만 전하는 보도 기사(흔히 스트레이트 기사라고 불러)와 기자의 관점이 깊이 들어간 의견 기사가 있지. 의견 기사는 보통 논설위원들이나 편집국 간부들, 그리고 외부 필진이 써. 그렇지만 보도 기사인지 의견 기사인지가 모호한 해설 기사라는 것도 있어. 그리고 보도 기사와 의견 기사를 또렷이 나누던 예전과 달리 요즘의 신문 기사들은 그 둘을 포개놓은 경우가 많아. 아무튼 우리가 논설이나 사설이나 칼럼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 기사야. 의견 기사지.
그 신문들은 한국 사회의 누구를 대변할까
어떤 신문의 정치적·이념적 입장은 의견 기사에 많이 좌우돼. 그렇지만, 꼭 그런 건 아니야. 앞서 얘기했듯, 요즘은 보도 기사인지 의견 기사인지 모호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순수한 보도 기사, 즉 순수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도 그 신문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 예컨대 어떤 사건을 기사로 다룰 것이냐 말 것이냐, 몇 면에 얼마만큼의 크기로 다룰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과정이거든. 이건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경향신문>은 리버럴하다고 할 수 있어. 이 신문을 진보 신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글쎄, 내 기준으로 한국에 진보적 종이 일간지는 없는 것 같아. 나는 집에서 <경향신문> 하나만 받아보고 있어. 일간신문 얘기를 꺼내고 보니,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네. 나는 양식 있는 공화국 시민이라면 흔히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안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신문들은 명확히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야. 게다가 <동아일보>는 그 기사들의 됨됨이마저 어설퍼서, 더러 식당에서라도 읽게 되면 손발이 오글거려. <동아일보>는 한때 한국의 양식을 대표하는 신문이었는데, 어쩌다가 저리 망가져버렸는지 모르겠어.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가운데 하나나 둘을 읽는다면 세상 돌아가는 걸 대강은 알게 될 거야.
그다음 주간지. 물론 시사 주간지를 얘기하는 거야. <시사IN>에다 쓰는 글에서 <시사IN>을 최고의 주간지로 꼽지 않는다면, 기자들이 섭섭해하겠지. 그렇지만 기자들이 섭섭해할까 봐 걱정스러워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시사IN>은 글자 그대로 한국 최고의 시사 주간지야. 정치적 성향은 <경향신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기사가 훨씬 심층적이지. 기사의 심층성은 양질의 시사 주간지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야. 시사 주간지는 속보성으로 일간지를 따라갈 수 없잖아. 그리고 그 심층성은 한 기사가 보도 기사의 성격과 의견 기사의 성격이 섞여 있다는 데서 나와. 앞에서 말했듯이 일간지들도 보도 기사와 의견 기사를 포개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일간신문의 잡지화(시사 주간지화)라는 말이 나오는 거야. 보도 기사와 의견 기사를 섞은 기사를 영어로는 흔히 피처(feature)라고 하는데, 시사 주간지 기사는 거의 대부분이 피처지. 그런데 이 피처의 질에서 <시사IN>은 다른 주간지들을 압도해.
그다음 시사 월간지. 거대 신문들은 자매지로 시사 월간지를 내는 경우가 많아. 그렇지만 내가 권하는 건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야. <월간 인물과 사상>은 거대 신문사에서 내는 시사 월간지에 비하면, 교양 기사의 비중이 큰 편이긴 해. 그렇지만 일간지 한둘과 <시사IN>에서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았다면, 좀 더 깊이 들어가 교양인이 될 필요가 있지. 전체적으로 이 월간지는 <시사IN>보다는 덜 리버럴한 것 같아. 그것은 이 잡지가 시사보다 교양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거야.
격월간지로는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권해. 이 잡지가 창간된 1991년에는 생태주의라는 말조차 여느 사람에겐 낯설었지. 그런데 이제는 인류 대부분이 생태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한 멸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어. 온 세계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놓고 회의를 했을 정도니까.
마지막으로 계간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 한국에서 계간지는 주로 문학 계간지를 뜻해.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는 시사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 문학 계간지들 얘기는 하지 않을게. 한국에서 나오는 계간지 가운데 가장 읽을 만한 것은, 내 판단에, <황해문화>야. 제호에서 보듯 인천에서 나오는 잡지인데, 순수한 시사 잡지라기보다는 문학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종합잡지야. 이 잡지는 일반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듯한데, 공을 많이 들여서 내는 잡지라는 게 한눈에 보여.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서 시작해 <녹색평론>과 <황해문화>에 이르기까지 내가 거론한 정기간행물들은 공화국의 교양인이 되기 위해 필요 충분한 자양분이야. 이 간행물들의 정기구독자가 돼서 엥겔계수를 조금 낮춰보자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는 내부자들
영화 <내부자들>은 흥행에 불리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데도 관객 수 900만명(확장판 포함)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처음 상영작에서 50분이 추가된 확장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 관객도 160만명을 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은 꼭 봐야 하는 작품이다. 이전 것을 봤으니 장면들이 더 늘어났다 한들 스토리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이번 영화는 2시간10분짜리 <내부자들> 초판보다 50분이 더 늘어나 3시간짜리가 됐다. 길다. 지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단박에 일소시킨다.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속도감이 장난 아니다. 초판은 말 그대로 ‘요약본’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전 것만을 봤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마치 예전의 외화들, 예컨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프랜시스 F.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을 디렉터스 컷 버전(감독판)으로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부자들> 역시 이번 ‘오리지널’ 판에서 30분을 더 늘려, 3시간30분짜리의 감독판이자 완결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긴 것을 내놓아도 사람들이 볼 것이라는 자신감이 읽힌다.
실제로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의 흥행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1월12일 현재 166만명을 넘었으며, 지난해 11월19일 개봉해 한 달여 흥행 레이스를 달렸던 <내부자들> 초판의 관객 수까지 합하면 873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900만명을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극장가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까지 과연 1000만명을 넘길 것이냐가 요즘 최대 관심사다. 비교적 흥행 수치를 정확하게 맞히는 전문가들에게서는 ‘950만명 선에서 스톱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 역시 놀라운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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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에서 검사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와 우민호 감독(오른쪽). |
확장판이 이처럼 큰 인기를 얻기란 한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한국 영화계에서 시간을 더 늘린 버전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제작비 부담을 이유로 그런 작품을 만드는 걸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부자들>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이 영화를 배급한 ‘쇼박스’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이번 3시간짜리가 매우 재미있어서다. 2시간10분짜리를 보고 확장된 버전을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다고 얘기한다. 그런 한편으로 그 이전 버전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그건 그것대로 편집의 기술이 뛰어나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걸 그렇게 잘라냈을까 하는 놀라움이 이어진다. 아예 2시간10분 버전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번 긴 버전에 바로 매료되는 분위기다. 진부한 분석이지만 △꽉 짜인 스토리 구조 △정교하게 계산된 연출 △배우들의 최고 연기가 황금비율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비단 주요 인물 세 명을 연기한 백윤식(<조국일보> 주필 이강희)과 이병헌(조폭 안상구), 조승우(검사 우장훈)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경영(유력 대선 후보)과 김홍파(재벌 회장), 김의성(편집국장), 배성우(상구파 넘버3), 김대명(<조국일보> 법조 출입 기자), 조우진(조 상무, 재벌 측 청부살인업자) 등등 이른바 서브 캐릭터들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 특히 조 상무 역의 조우진은 이번 영화에서 안상구의 팔을 자르는 등의 과정에서 단아할 정도로 무표정하면서도 섬뜩하게 잔혹한 연기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내부자들>이 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 곧 18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관객 흥행몰이에 기본적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영화가 이렇게 큰 인기를 모은다는 것은 그만큼 기성세대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같은 ‘동조’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통쾌한 카타르시스’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 그러나 진실한 측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권언유착이라는 말이 한가하게 느껴질 만큼 언론과 권력이 어떻게 ‘붙어먹고’ 있으며 그것의 근본은 무소불위의 재벌 권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그러나 다시 한번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다. 물론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게 된 것이 너무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을 사실이라고 분명하게 얘기해준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평소 아무도 그렇게 얘기해주지 않는다고들 느낀다는 점이 문제다. 다들 ‘끼리끼리’ 해먹고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힘 있는 ‘놈’들이 자신들 위에 군림해서 속이고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극중 인물 이강희를 통해 그 점을 낱낱이 까발린다. 이강희는 재벌 총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차분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에 불과합니다. 어찌 그런 우매한 인간들에게 신경을 쓰십니까?” 이 대목을 볼 때쯤에는 얼굴에 찬물이 확 끼얹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무리 영화 속 인물이지만 언론인의 입을 통해 그런 얘기를 직접 듣는 건 충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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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백윤식은 권력·자본과 유착한 언론사 주필 역(왼쪽)을, 이병헌은 조폭 보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
3시간짜리를 보고 나서야 극중 인물 모두의 행동 동기와 그 배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는 점 역시 이번 확장판을 보는 묘미다. 조직폭력배 주제에 안상구가 왜 그렇게 영화 대사를 줄줄 외우고 다니는지, 신문사 주필인 이강희가 왜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 정치판의 가공할 범죄의 뒤를 바짝 쫓는 검사 우장훈이 어떻게 조각의 퍼즐 하나하나를 맞추게 됐는지, 3시간판을 보고 나면 아 이야기가 이렇게 짜이는구나, 아하 우리 사회가 사실 ‘뒷구멍’에서 이렇게 운행되고 있구나 하는 점을 깨닫게 만든다. 그런데 그 자각이야말로 강렬한 통증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시원하면서도 찜찜하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긴 버전에서 세 번쯤 나오는 신문사 ‘데스크 회의’ 장면은 언론이 권력과 ‘돈의 맛’에 어떻게 휘둘리고 있는지, 혹은 선제적으로 그걸 어떻게 취하려고 하는지를 극명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심히 씁쓸하다. 우리는 여전히 신문의 기사나 방송 뉴스를 보면서 그 ‘행간’을 열심히 파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통렬하게 느끼게 된다.
<내부자들>은 실로 오랜만에 상업영화라면 이래야 한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상업영화란 시나리오와 연출(우민호), 촬영과 조명(고낙선), 의상(조상경), 음악(조영욱) 등 프로덕션 안의 프로페셔널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무엇보다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회적 함의를 담아내고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상업영화다. <내부자들>은 그 지점을 성취해낸 작품이다. 이 영화가 예상을 뛰어넘어 10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