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일취월장7
2016. 2. 2. 11:41
'헬조선', 4.13 총선서 지옥문 닫을 수 있을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①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 2016.01.04 11:00:14
본고는 2016년 새 해를 맞아 대한민국이 어디에 서 있고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다가오는 20대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규정해보려는 시도이다.
역사적 과제라는 면에서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당시와 다름없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여전히 핵심 과제이다. 문제는 말만이 아니라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진정성과 유능함 갖춘 정치 세력의 부재이며, 이러한 정치 세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승자독식 선거 제도와 양당에 의한 독과점 정치 구조다. 20대 총선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20대 총선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과연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무엇을 놓고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도 매우 불투명하다. 여당은 여당대로 공천을 둘러싸고 친박과 비박 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고, 야당은 공천권 갈등이 극에 달해 탈당 사태가 이어지며 아예 파열 상태로 가고 있다. 여야가 모두 무엇을 위해 의석을 요구하는지 분명하지가 않고, 유권자들이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더더욱 분명하지 않다.
총선 전야는 어수선하기만 하고 국민은 과연 주권자로서 나라의 미래 방향에 관한 진정한 선택권을 가진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은 매우 중요하다. 변화의 전망이 밝아서가 아니라 변화의 필요가 너무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리에게 지금 어떠한 변화가 요구되는지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20대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헬조선'의 참담한 현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의 침체와 불확실성, 정치적 갈등과 분열, 사회적 불신과 불안이 극에 달해 있다. '헬조선'이라는 절망의 언어가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으로 일자리 부족이 만연하여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자영업은 과포화 상태에서 빈사 상태에 놓여 있다. 대기업의 이익은 큰 폭으로 늘어도 노동자의 임금과 가계 소득은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일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기득권이 공고화된 결과, 국민의 80%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믿을 정도로 불공정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N포 세대라고 자조하며, '헬조선'과 '수저 계급론'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오르는 월세감당하기도 힘든 서민들은 생존 투쟁의 전선에서 헉헉대며 비명을 지를 여유조차 없는 형편이다.
민생을 죽이고 경제가 살 수는 없다. 구조 개혁은 뒤로 하고 무리한 경기 부양에만 매달린 결과 정부·기업·가계가 모두 산더미 같은 부채만 짊어졌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가운데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국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공안 탄압으로 억누르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여 시위를 하는 국민을 테러 집단으로 몰아가는 대통령과 정부의 막장 통치는 세계인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급기야 <뉴욕 타임스>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사설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는데, 정치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고 있다. 거대 여당은 민의에 입각해서 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대통령의 시녀 노릇을 자처하며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마저 집어던져버렸고, 거대 야당도 아무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전투구에 날을 새고 있다. 이로써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커지는 가운데 기득권 세력은 남몰래 득의의 미소를 머금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정권 심판이냐, 야당 심판이냐?
신뢰할 수 있는 정치 세력들이 서로 다른 미래를 약속하고 경쟁한다면 선거는 미래를 선택하는 행복한 선거가 된다. 하지만 집권 세력이 약속을 어기고 무능을 노정하면 과거를 심판하는 착잡한 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집권 세력 못지않게 야당도 믿기 어렵고 무능하다면 '울며 겨자 먹기'식 불행한 선거가 된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을 장악했지만 집권 이후 이 공약들은 점점 축소되었고 급기야는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말았다. 오히려 재벌 특혜와 의료 민영화에 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그리고 비정규직 오남용을 부추기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여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고용 안정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노동 관련 법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뿐만 아니다. 국민 통합을 내세웠으나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고, 신뢰의 정치와 소통을 주장했으나 말 뒤집기와 일방통행이 일상화되었다. 청와대의 수직 통제 아래서 자율적 정책 추진의 의지와 능력을 상실한 정부 부처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복지부동으로 일관했고,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를 통해 총체적 무능과 무책임을 노정했다.
사정이 이럴진대, 다가오는 총선은 당연히 야당을 선택하거나 여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야당이 믿음을 주고 대안을 제시하면 야당을 선택하는 선거가 되고,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여당보다는 낫겠다고 판단되면 여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국민들의 눈에 지금의 야당은 여당보다 나을 게 없는, 아니 오히려 더 문제가 많은 집단으로 보이고 있다. 여당에 비해 현저하게 뒤지는 지지율이 이를 증명한다. 오죽하면 이번 선거는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정부-여당이 핵심 공약마저 뒤집어버림으로써 정치 불신을 증폭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야당이 집권했으면 얼마나 달랐을까? 국민의 입장에서는 야당에 대해서도 불신이 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재벌 개혁과 부동산 투기 근절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가 결과적으로 매우 친재벌적인 (특히, 삼성그룹에 막대한 특혜를 주는) 정책을 펼쳤고, 부동산 값의 폭등을 초래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영리 의료 등 과거 집권 당시에 추진했던 주요 정책을 야당이 되자 특별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입장을 바꿔 반대하고 나서니 어떻게 그들의 정책적 입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정책적 입장은 기회주의적으로 조변석개하면서, 미래의 비전과 정책 개발은 뒷전이고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야당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영리 의료 등 과거 집권 당시에 추진했던 주요 정책을 야당이 되자 특별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입장을 바꿔 반대하고 나서니 어떻게 그들의 정책적 입장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정책적 입장은 기회주의적으로 조변석개하면서, 미래의 비전과 정책 개발은 뒷전이고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야당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혁신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보면 야당은 여당보다도 못하다. 언필칭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야당이지만 수없이 만들어진 혁신안을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고, 아무런 소신도 헌신도 없이 기득권을 누리며 정치해온 인사들과 부패와 갑질로 얼룩진 인사들이 퇴출되기는커녕 서로를 감싸며 요직을 나누어 맡아왔으니 어떻게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야당이 신뢰를 잃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연이은 패배를 겪으면서도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나 하며 제대로 된 평가와 반성조차 하지 않은 데 있다. 그러니 책임도 제대로지지 않고, 혁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여당은 소수 부유층과 특권층의 편이고 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편이라면, 머릿수를 기준으로 경쟁하는 선거에서는 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한다.
여당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주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선거 지형이 야당에게 유리했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며, 실제로 교육감 선거에서는 압도적으로 진보 성향 후보들이 승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새누리당이 당의 존립을 걱정하며 당명과 색깔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유리했던 국면에서 온갖 퇴행적인 공천으로 선거를 망친 19대 총선 이후에도 평가와 책임을 극구 회피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던 소위 '친노 세력'의 행태가 이후의 선거에서도 거듭 반복되면서 야당이 신뢰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 것이고, 오늘날 탈당과 분당 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여당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주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선거 지형이 야당에게 유리했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며, 실제로 교육감 선거에서는 압도적으로 진보 성향 후보들이 승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새누리당이 당의 존립을 걱정하며 당명과 색깔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유리했던 국면에서 온갖 퇴행적인 공천으로 선거를 망친 19대 총선 이후에도 평가와 책임을 극구 회피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던 소위 '친노 세력'의 행태가 이후의 선거에서도 거듭 반복되면서 야당이 신뢰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 것이고, 오늘날 탈당과 분당 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는 여전히 역사적 과제
지난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당시에 모든 주요 정치 세력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주장하면서 이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발전 단계가 이를 요구하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가 주도로 경제 발전을 추진했고, 그 결과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경제 구조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정경유착과 관치 경제, 재벌 독점과 노동 탄압, 지역 간·계층 간 불균형 등 심각한 경제 왜곡과 모순을 만들어냈으며, 만성적인 인플레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경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치적 억압과 더불어 경제적 모순의 심화는 결국 군사 독재 정권의 종언을 불러왔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개발 독재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화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때 성립된 민주주의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나 한 표만 더 받아도 모든 권력을 얻는 승자독식 '다수제 민주주의'였다. 이 시대에 경제 정책의 사조에 있어서는 개발 독재 하의 국가 주도 관치 경제를 민간 주도 시장 경제로 개혁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는 분명 필요한 개혁이었지만 동시에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벌과 같은 경제 권력을 규제하며 노동자와 같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재벌 개혁, 노동권 강화, 복지와 재분배 등 경제 민주화 요구는 힘을 받지 못하였고, 시장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 만능주의 정책이 득세하였다. 특히 외환 위기를 계기로 이러한 정책이 전면화되었고, 한미 FTA로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장화의 길을 내달은 한국 경제는 근본적인 모순에 봉착했다. 재벌은 문어발 확장에 열을 올리는데 골목 상권은 붕괴되고, 대기업 이익은 폭증하는데 임금과 중산층 이하 가계 소득은 뒷걸음질 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대다수 국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극도로 불행하고 청년은 희망을 잃은 나라, 중장년층은 장시간 노동에 허리가 휘면서도 고용 불안과 노후 불안에 시달리는 나라, 노인들은 압도적인 빈곤률과 자살률 통계가 보여주듯 삶을 지탱하기도 힘든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들의 인식에 대전환이 왔다. 이제는 제발 성장에만 올인하지 말고 분배도 좀 하고 복지도 좀 하자는 것이며, 1% 특권층을 위한 경제가 아닌 99%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경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며, 시장 만능주의와 친재벌주의를 넘어서 경제 민주화를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2012년의 국민적 합의였다.
이렇게 한국의 현대사는 개발 독재 하의 산업화, 다수제 민주주의 하의 시장화 단계를 거쳐 경제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 공약을 파기하고 역주행을 하고는 있으나, 경제 민주화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정권에서 결정적으로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상당한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개될 것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는 경제 민주화 논쟁을 더욱 첨예하게 부각시킬 것이다. 20대 총선에서도 여전히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는 중심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최근 야권은 소득 주도 성장론이나 공정 성장론 등을 내세워 성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결국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말하는 것이고, 이를 중도 지향적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주제의 편곡이기는 마찬가지다. 여당은 비록 박 대통령의 역주행을 감싸 안아야 하고 '보수 혁신'을 주장한 유승민계를 탄압하고 있지만, 결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정면으로 부인하지는 못 할 것이다. 아마도 경제 위기를 부각시켜 속도 조절과 미세 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고용 창출을 내세워 성장 지향적인 정책을 옹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연합뉴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정치적 기반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는커녕 시장 만능주의 정책이 강화되어버린 까닭은 무엇인가? 주요 정당들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외치고, 이를 최고의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종국에는 역주행으로 가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여든 야든 무엇을 내세워도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세세한 이유를 따져보면 많은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수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에서 찾는다.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권력 싸움 위주의 정치 문화가 형성된 데다가, 결선 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정치 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생산적인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 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 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양대 정당은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를 무기로 제3세력에 의한 정치적 경쟁을 배제하고 정치권력을 독점적으로 누려왔다. 실제로 현행 선거 제도 하에서는 양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약 1000만 표가 사표로 전락하여 민의가 왜곡되어 왔다. 양대 정당이 겉으로는 서로 권력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독점적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 시장이 독점화되어 유효 경쟁이 사라지니, 아무리 국민의 비판과 질책이 커도 저질 정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공적 가치에 헌신적이며 유능한 인재보다는 당 실력자들에게 유용한 인사들이 공천을 받고, 정치인들의 줄서기 행태가 반복되며, 저질 정치인이 양산되고 있다.
양당 독점 구조에서 양당은 모두 특정 사회집단과 이념보다는 국민 전체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자 하며(catch-all party), 정책적 입장은 선거 전술상의 이미지 정치와 립 서비스 전술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 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 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이 득세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 정치의 두 축을 이루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다. 양당의 정책적 차이는 대북 정책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한 사실이다. 양대 정당은 지역 할거주의를 활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다수제 민주주의' 아래서 주거니 받거니 권력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승자독식 선거 제도에 기반을 둔 양대 정당의 권력 독점을 깨부숴야 비로소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정치적 기반이 형성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전면적으로 비례 대표제를 도입하여 승자독식을 구조적으로 방지하고, 정당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비례 대표제로 사표를 방지하고, 일반 시민은 물론 사회 경제적 약자나 소수자들까지 포함하여 민의가 골고루 대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양당 구조는 무너지고 다당 구조가 형성될 것이며, 대화와 타협에 의한 연합 정치가 일상화될 것이다. 이것이 합의제 민주주의이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정치적 기반이다. 서구의 모든 복지 선진국들이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하여
우리는 개발 독재 아래서 산업화를, 다수제 민주주의 하에서 시장화를 이루었다. 이제 비례 대표제를 기초로 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과연 20대 총선은 이러한 역사적 과제에 응답하는 선거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정치권에서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전혀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으며, 선거구 획정을 위한 여야 협상에서 전체의석의 18%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비례 대표 의석을 더욱 줄이자는 데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보면 이러한 기대는 한낱 몽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의 근거는 있다.
첫째, 여야 협상 과정에서 연동형 비례 대표제가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연동형 혹은 보상형 비례 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에서 정당 득표율과 차이가 발생한 것을 비례 대표 의석 배분에 의해 보상해주는 방식으로 승자독식의 폐해를 상당히 보정해줄 수 있는 제도이다. 이는 정의당의 요구였고, 정의당과의 선거 연대를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채택이 되지 않았지만, 연동형 비례 대표제가 공식 의제로 논의된 것은 고무적이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는 야권의 분열에 의한 다원 경쟁 체제의 형성이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승자독식 양당 구조의 관점에서 보면 야권 분열은 여당에게 어부지리만을 안겨주는 불행한 현상이지만, 합의제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다당제로 이행하는 단초가 될 수 있고 분열된 야권 세력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서라도 비례 대표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선거 연대를 구축한다면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
셋째, '비례 대표제 포럼'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단체들의 노력에 힘입어 일반 시민들의 비례 대표제나 합의제 민주주의에 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상당한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정치 제도 개혁에 관한 요구로 승화시킨다면, 여론의 급격한 반전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전면적 비례 대표제를 주장하는 '119 교수 선언'이 발표되고 '119 포럼'이 결성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국민적 합의로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의 과정은 이러한 합의를 현실 정책에서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의 부재를 실감한 과정이었다. 20대 총선을 목전에 둔 지금 여전히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는 중심적인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으며, 나아가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으로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과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어떻게 2016년 승리를 준비하나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②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 2016.01.11 16:08:03
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영국 보수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제적이며 포용적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한편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견고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중도층 유권자를 견인하는 전략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새로운 아젠다도 제시될 것이다. 계급적으로 중간층,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도층, 이슈로는 균질화되지 않은 유권자 층 공략을 위해, 여의도연구원은 청년정책, 양성평등, 환경 등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내년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의 전략은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이후를 동시에 준비하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친박과 비박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정책적으로는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 및 확대, 새로운 지지층의 확보가 목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공천권 다툼과 별개로, 여의도연구원과 소장파 의원들, 개혁파 지자체장들이 온정적 보수와 강한 안보라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변화와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강원택 서울대학교 교수의 저서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동아시아연구원 펴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영국 보수당의 생존 전략은 '변화와 개혁'이다. 보수당은 19세기 선거법 개정의 시기에 혹독한 참패를 경험하면서 '대중정당'으로서 보수당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소수 특권계급의 정당에서 벗어나 전 국민의 정당이 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변화하고 개혁을 시도한 보수당은, 20세기 자유당이 노동당에 밀려 존재감을 상실하는 가운데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새누리당이 2016년 들어 당 차원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한 일은 당명 앞에 '개혁'을 붙이는 것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새해 첫 연설에서 "새누리당은 국민이 말하는 경제와 민생을 최고 핵심가치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개혁 선봉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실 새누리당은 2014년부터 당 최고회의에서 '혁신'과 보수를 연결시켜왔다. '보수는 혁신합니다'라는 로고가 그것이다. 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단지 립서비스만은 아니다. 작년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유권자 분석, 정당 정치. 공천제도, 정치 및 사회 비전 등의 연구용역과 공식·비공식 토론회, 간담회에서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학자, 지식인들을 폭 넓게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이 토론회와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여의도연구원은 진보·보수, 여야를 넘나드는 국가적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당 연구소로서도 명확한 사회진단을 위해 다양한 견해를 편견 없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계파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면서 기존의 좁은 인력풀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야권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렇게 볼 때, 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영국 보수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제적이며 포용적이다. 올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한편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견고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중도층 유권자를 견인하는 전략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방식은 한국사회의 현 문제점을 해결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다양한 정책적 수단의 정치적 활용에 있다.
먼저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경제, 사회적으로 1%의 상층과 30%의 하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상위 1%는 계급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이들은 유권자 숫자로는 미미하지만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학계에서 압도적 오피니언 리더십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견고한 지지는 필수적이다.
반면 하위 30%는 가치적인 유인과 더불어 역설적인 계급적 이유로 보수정당에 투표한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전통적 · 보수적 가치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가치적으로 보수적이며,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지적했듯이 '공정한 자본주의의 신화'를 내재화하기 때문에 계급적으로 보수적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반공 이데올로기와 안보 이슈,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이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게 되는 기반이다.
상위 1%와 하위 30%라는 전통적 지지층을 지속적으로 껴안으려는 시도는 현재진행형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병행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 즉, 새누리당은 상·하위 지지층의 모순적 결합을 정치적, 정책적으로 긴밀히 추진하고 있는데, 이 정책들은 상반되는 듯 하면서도 지지층에서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전략에서 새누리당이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집단은 소득 상위 10~20%의 고학력·고임금 전문직·노동자 계급이다. 이들은 현재 야당 지지의 핵심이고, 연령적으로 전통적인 민주화 세대이면서, 정치적 성향으로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이들이 바로 박근혜식 노동개혁의 주요한 타깃이 된다.
이들은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상위 0.1%와 1%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는 경제적 분배 요구의 짐을 함께 질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작년 연말정산 사건이다. 대체로 연봉 6000만 원에서 1억 원 구간의 이들은 소득 분배에서 상위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야당은 이들에 대한 조세부담 강화를 반대했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조세부담 강화를 지지하면서 역으로 상위 1%에 0.1%에 대한 조세부담 구간조정을 통해 복지재원 조달에 대한 요구를 강화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바로 이들이 야당의 가장 굳건한 지지층이기 때문에 야당은 딜레마에 빠지면서, 최종적으로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노동개혁 드라이브는 이러한 야당의 정책적·정치적 딜레마에 기반을 둔 '두 국민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새로운 지지층 창출에 기여한다. 상위 10~20%에 해당하는 여당에 적대적인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를 고립시키면서, 전통적 지지층인 하위 30%에 더해 하위 5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새로운 정치적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여당이 이러한 입장을 일관되게 관철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어떠한 형식으로든 '노동개혁'의 후속작업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확대,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세제개혁'이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온정적 보수주의자들의 미래 비전이면서, '개혁'을 통한 전통적 지지층 결집과 지지층 확대 전략이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은 정치적 이유로 맹목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하위 30% 지지층의 유지를 위한 경제적 대안을 온정주의적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발점은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지속적 강조다. 지난 대선에서 복지가 보수/자유주의 정당 모두의 화두가 되었고 이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여의도연구원은 이미 작년에 2016 총선 주요 의제로 '격차 사회' 해소를 제시했고, 지난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화여대 강연에서 "시대정신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단연코 우리 사회 격차 해소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양극화 해소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되, 해결책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아닌 저소득층 일부에 대한 과시형 공약과 일자리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 연구소는 이러한 대안의 유효성을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층, 중도층 유권자의 의식조사를 통해 확보했다.
새로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새로운 아젠다도 제시될 것이다. 계급적으로 중간층,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도층, 이슈로는 균질화되지 않은 유권자 층 공략을 위해, 여의도연구원은 청년정책, 양성평등, 환경 등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에 대한 기초적인 사전 조사와 연구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여의도연구원에서는 작년 11월 30일 전국 3312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대한민국 청년 실태백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헌재 청년문제의 특징을 '4대 미스매치', 대안의 모색을 '5대 Point'라고 요약하였다. 이 보고서는 여의도연구원 내의 '청년정책연구센터' 주도로 작성한 것으로 그 내용의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새누리당이 총선전략으로 청년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양성평등이나 환경과 관련해서는 정책적 접근도 이루어지겠지만, 사안의 특성상 이 가치들을 대변할만한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통해 이미지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도 이자스민을 영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외국인 정책에 대한 불관용성을 지속하면서도 이미지 개선에는 성공했고, 실질적 득표전략으로도 유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북한 붕괴론과 통일 대박론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들어 한미일의 대북전략 관련 인사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단히 무리한 것으로 보이는 위안부 문제 타결 시도에 대해서도, 북한 위기론을 통한 한미일 안보동맹 필요성의 강조로 어느 정도 타개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총선 전, 미국발 북한 위기론이 제기될 수도 있고, 공개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을만한 외교적 자극에 이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종합적으로 보면, 4월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의 전략은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이후를 동시에 준비하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친박과 비박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정책적으로는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 및 확대, 새로운 지지층의 확보가 목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공천권 다툼과 별개로, 여의도연구원과 소장파 의원들, 개혁파 지자체장들이 온정적 보수와 강한 안보라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변화와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 이들이 신주류를 표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17년 대선에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총선, 결국 '민생경제' 책임 다툰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③
홍경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연구원장 | 2016.01.18 13:33:21
바람직한 정책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한 결과이다. 그래야만 대립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보다 성숙된 통합으로 전환될 수 있고,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20대 총선의 정책적 화두로 새누리당은 공정, 복지, 사회격차를, 더불어민주당은 임금, 일자리, 평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화두는 민생경제의 문제, 즉 경제성장과 복지강화가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이며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부여당의 경제정책 기조는 불과 3년 사이에 여러 번 바뀌었을 뿐 아니라, 별로 새롭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성장전략이 야당에 의해 제시된 바 있지만, 성장전략 그 자체가 이번 총선에서 부각될 것 같지는 않다. 복지강화 또한 현 시기 핵심적 정책 이슈임에는 틀림없으나, 총선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프로그램 수준의 변화를 꾀하는 미시적 수준의 고만고만한 공약들이 복지강화라는 이름으로 제시될 수 있다. 핵심적 이슈에 대한 정책대안보다는 개선되지 않은 민생경제 문제의 책임소재를 둔 다툼이 20대 총선의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진행형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민생경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믿을만한 비전제시가 중요하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현행 소선거구 제도에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한 선거 프레임이 작동하기는 어렵다. 표의 등가성을 확장하여, 다수의 정당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문제가 민생경제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1. 총선은 왜 중요한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가 결정한 행동방침을 정책이라 한다. 그렇다면 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의 산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하나는 당면한 문제나 해결해야 할 목표가 누구의 것인가가 정해져야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것이라 해도 내가 직면한 문제가 너의 문제가 같을 수는 없고, 내가 염두에 두는 목표와 너의 목표는 다를 것이다. 하나같이 절실한 문제이고 중요한 목표이긴 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문제와 목표들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어찌어찌 해서 운 좋게 문제나 목표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고 하자. 그래도 여전히 정책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나 목표에 대한 행동방침 역시 단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나 목표에 대한 것이라 해도,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행동방침에 대한 너와 나의 선택은 다르다. 지금 여기에서 어떤 문제가 심각하고 시급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해도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하기로 한 일, 또한 그에 따라 하지 않기로 한 일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너와 나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저마다의 개성이 덜 키워지거나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비교적 단순하다면 이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개성은 충분히 다양해졌고, 직면한 문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로 양보하기에는 너무 절박해졌다. 그러니 누구의 문제를 먼저 다루고 누구의 목표를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그러한 문제와 목표와 관련해서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은 이질적이며 대립적이고 때론 적대적이기까지도 하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인 모리스 뒤베르제(Mourice Duverger)는 정치의 핵심적 논리를 "칼로 싸울 것을 말로 싸우도록 바꾸는 것'으로 생각했다.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갈등을 보다 성숙된 통합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본 것이다. 당면한 핵심적 정책이슈를 20대 총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와 관련지어 생각해봐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2. 경제성장과 복지강화가 핵심적 정책 이슈다
20대 총선을 준비하면서 여야 정당은 모두 유권자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의 선거공약이 어떤 식으로 제시될 것인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와 그에 대한 분석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새누리당부터 살펴보자.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올해의 총선을 대비한 비공개 워크숍에서 '2016년 총선 시대정신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이 우선시하는 시대정신은 '사회 격차 해소'가 52.7%, '경제 성장'이 43.1%로 성장보다 격차 해소를 중시해야 한다는 답변이 9.6% 포인트 우세했다. 사회 격차 해소 방안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63%, '조세 및 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 재분배'가 32.6%였다. 또한 응답자의 72.6%는 "한국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현재 한국 사회의 화두는 공정, 복지, 사회격차로 요약된다"며 "한국인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사회격차가 해소되고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복지국가'"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정책연구원 또한 지난해 9월 2015 유권자 지형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유권자들은 가장 큰 관심이슈로 '취업(일자리)과 사업'을 꼽았고(17.8%), 이어 '경제불황'을 우려(15.7%)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성장'과 '분배'중 '성장'이 더 중요하다"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유권자의 67.4%가 찬성했는데, 이념과 성향별로 비교를 해보아도 33.3%를 기록한 '매우 진보'층을 제외한 나머지 '진보', '중도', '보수', '매우 보수'층들은 전부 60%대 후반의 높은 찬성 비율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대해 민주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20대 총선에서는 "임금, 일자리, 평등 분야에 전쟁이 치러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분석했다.
20대 총선의 정책적 화두로 새누리당은 공정, 복지, 사회격차를, 더불어민주당은 임금, 일자리, 평등을 제시한 것인데, 얼핏 보면 새누리당은 좌클릭을, 더불어민주당은 우클릭을 시도하면서 무당파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물론 양대 정당에서 이러한 발표와 분석을 시도한 이후 정치지형은 급변한 상황이다. 국민의 당이 등장하면서 무당파 중도층의 일부를 흡수하게 되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좌클릭과 더불어민주당의 우클릭이 실제로 총선공약으로 현실화할지는 매우 불투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공정, 복지, 사회격차, 임금, 일자리, 평등이라는 화두는 민생경제의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가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이며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민생경제의 문제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는 20대 총선의 중심 이슈를 물은 작년 연말의 한 여론조사 결과(<일요신문>, "내년 총선, '정권심판론이 우세할 것' 52.9%…최대 이슈는 '경제성장' 56.8%'. 2015.12.24)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 56.8%가 '경제성장'을 총선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고, '복지강화'가 22.1%로 그 뒤를 이었다. 경제성장과 복지강화가 현 시기 핵심적인 정책 이슈라는 것이다.
3. 저성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990년부터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7년까지 우리 경제는 평균 8% 초반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왔으나 외환위기를 거치며 평균성장률은 5%에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내려앉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3%초반에 머물더니 최근에는 3%를 달성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현상에 대한 원인 진단은 경제 사회적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잠재성장률의 하락, 수출의 감소와 소비 및 투자의 부진, 북한 리스크 등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 시기 한국 경제가 장기복합 불황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사실 '헬조선'이나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장기복합 불황의 초입에 들어선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들이다. 저성장 위기의 원인을 온전히 현 정부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지난 4년간 정부의 경제정책에 합격점을 줄 수는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 19세~49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2015년 국가미래연구원 조사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의 국정운영과정 중 잘못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 대해 16.9%가 경제를 꼽았는데, 이는 24.2%가 꼽은 인사 다음으로 많은 것이었다. 또한 현 정부가 중점을 두어야 할 국정운영 분야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25.6%가 경제라고 답했다.
정부와 여당은 정부 출범 전에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가 시작할 때는 창조경제로 바꾸었고, 근래에는 ‘4대 부문 개혁론’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이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 투자를 동력으로 고용률 제고를 이뤄 결국은 소비와 투자를 확대하고 가계소득을 증대한다는 논리다. 불과 3년 사이에 경제정책의 핵심기조가 갈팡질팡해대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이러한 경제정책 기조가 별로 새롭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항상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 구조화된 한국의 현실에서 기업투자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에 근거한 이러한 정책기조는 너무 많이 틀어 진부해져버린 낡은 18번이다.
야당은 어떠한가? 야당은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비판하면서 소득주도 성장론, 혹은 공정 성장론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인상 → 가계소득증대 → 소비·투자확대 → 내수경기 활성화'의 선순환을 강조하며, 국민의 당을 주도하는 안철수 의원은 '공정한 제도 → 혁신·성장 → 일자리창출·임금인상 → 소비·투자확대‘의 순환을 염두에 둔 공정 성장론을 제시한 바 있다.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나눠먹을 떡 자체가 줄어든다'는 보수진영의 논리가 여전히 우세한 한국의 현실에서 야당이 성장을 정책담론으로 제시한다는 것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책임성을 보여주는 한편, 중도층을 견인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정당의 성장전략 그 자체가 이번 총선에서 우선적인 쟁점으로 부각될 것 같지는 않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나 공정 성장론 같은 야당의 성장론이 아직 구체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정치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번 총선의 선거 프레임이 정책 의제에 대한 각 정당의 약속, 즉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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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복지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현 집권여당은 모든 노인에 대한 20만 원의 기초연금 지급, 누리과정 무상보육 등 복지의 확대를 내세우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이루어졌던 정부 여당의 행보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단지 득표를 위한 정책의제 선점이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집권여당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면서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드리겠다'는 공약을 후퇴시켰고, 누리과정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책임회피는 예산안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 교육감들의 전쟁을 낳았다. 또한 청년활동지원비(청년수당)와 청년배당 등 청년복지정책을 둘러싼 지자체와 정부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게 됐다.
정책이란 문제와 목표에 대해 하기로 한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정부가 하기로 한 일 뿐 아니라 하지 않기로 한 모든 것도 포함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지는 결코 하지 않겠다'는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의 관성을 집권여당이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지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면 지나친 말일까? '감세는 미덕, 증세는 악덕'이라는 오래된 신념으로 '증세 없는 복지'를 고수하는 한 현 집권여당의 복지정책 기조는 복지확대가 아니라 복지축소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최근에는 저성장기조의 고착과 함께 정부여당에서조차 '복지조정론'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높이려면 급격히 증가하는 복지지출에 대한 통제와 지출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이는 인사청문회 자리에 선 신임경제부총리 후보에 의해서도 제기된 바 있다.
야당 역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최우선의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서울시를 비롯해 야당 소속 지자체장들에 의해 복지확대가 추진되고 있지만,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복지를 핵심적 정책 의제로 제기할 것 같지는 않다.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인 것이 드러난 이상 복지의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를 말해야 하는데,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절실한 국민들에게 증세를 선뜻 말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강화 역시 현 시기 핵심적 정책 이슈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번 총선에서 핵심적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신 표피적 상처에 대한 대증요법들,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프로그램 수준의 변화를 꾀하는 미시적 수준의 고만고만한 공약들이 복지강화라는 이름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공약들은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지 못하고 오히려 복지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 있다.
5. 심판론이냐 대안론이냐
과거의 실적에 초점을 두어 투표하는 것을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 미래의 약속에 기초해서 투표하는 것을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라고 한다면 한국의 역대 총선에서는 잘했느냐 아니면 못했느냐를 기준으로 '회고적 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특히 올해 총선과 같이 집권 4년차에 이루어지는 총선은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성장과 복지라는 민생경제 이슈와 관련하여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전망을 더욱 가능케 한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3년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민생경제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시대적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가 현 정부에서 진전된 바가 매우 적다는 점,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경제정책이 부재하는 점 등을 들어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권'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한편, 여당은 개선되지 않은 민생경제 문제의 책임이 '4대 부문 개혁'과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야당 때문이라며 '야당 심판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이 최적화된 합리적 선택이라면, 정치적 타협의 과정은 필요 없거나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정책의 탈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입장은 사실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지배력을 행사해 왔지만,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 이곳저곳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우선하는 '정치 실패'가 국가의 미래를 망친다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 잘 알고, 그 해결을 위한 최적의 합리적인 행동방침 또한 제시했는데도 실행이 안 되는 것은 이해의 소소한 차이를 대립적이고 적대적인 것처럼 확대재생산하는 후진적인 정치 때문이라고. 이러한 소리 또한 ‘무능한 정치인,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야당 심판론의 또 다른 버전이다.
'정권 심판론'이든, '야당 심판론'이든 심판론에 기초한 '회고적 투표'에서는 개선되지 않은 민생경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가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네탓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생경제 문제를 정책의제로 제출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중심으로 경쟁해야 할 필요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생경제의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그렇기에 민생경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의 책임을 따지는 것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믿음직한 약속이 필요한 것이고, 경제성장과 복지강화라는 현 시기의 핵심적 정책 이슈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잘 만들어진 정책대안 사이의 경쟁이 있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현행 소선거구 제도에서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선거 프레임이 작동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표의 등가성을 확장하여, 다수의 정당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문제가 민생경제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만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 이루어지는 정치혁신이 가능할 것이고,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보다 성숙된 통합으로 전환될 수 있다.
'지겨운' 문재인 vs. '거품' 안철수, 돌파구는?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④
금태섭 변호사 | 2016.01.25 14:14:00
20대 총선을 석 달 앞둔 현재 야권의 선거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된 세력은 총선 이후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 새누리당보다는 서로를 제1의 타깃으로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감수해야만 할 전략적 손실’로 여겨질 공산도 크다. 그러나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나 기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모두 생존전략을 짜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의 경우에는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후보들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안철수 의원 개인에 대한 의존과 정체성의 문제, 선거에서의 연대 문제라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안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인적 쇄신, 진영논리에 물든 당내 문화, 그리고 선거에서 야권후보의 난립 대응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있다.
향후 선거가 가까워지고 선거구별로 후보의 우위가 뚜렷해지면 단순히 생존 경쟁을 벌이는 수준을 넘어서 야권 전체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당의 쇄신(인적 쇄신과 문화의 변화), 의제의 제시, 장기적 인재양성 방안의 제시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등 전국 선거를 전략이나 컨셉트도 없이 나눠먹기, 임기응변식으로 치름으로써 결국 백서조차 만들지 못한 전례를 이번 총선에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1. 전체적 전망
2016년 1월 17일 현재 야권의 총선전망은 어둡기 짝이 없다. '혁신'이라는 구호를 놓고 대립해오던 새정치민주연합 내 주류와 비주류의 기 싸움은 직전(直前) 대표를 지낸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파국을 맞았다. 양측의 재결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 의원이 추가로 탈당한 의원들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실적으로 야권의 주요 세력이 하나의 대오로 선거에 대응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최근의 선거마다 시도되었던 '야권연대'는 두 가지 이유로 이번 총선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혹은 훨씬 어려워졌다. 첫째는 유권자들이 무조건적인 연대에 식상했다는 점이다. 공유하는 가치를 분명히 하지도 않고 심지어 절차의 정당성마저 무시한 채 단지 선거승리를 위한 전략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는 연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미 2012년 총선 당시에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저질러진 부정과 불공정, 뚜렷한 정책적 대안도 없이 단지 야권이 하나로 뭉쳤다는 것만으로 승리를 자신했던 오만함은 국민들로 하여금 야권에 염증을 느끼게 했고 결국 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가져온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연대의 한 당사자가 되어야 할 국민의당 대표 주자인 안철수 의원의 야권연대에 대한 반감이다.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기존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조건을 제외하고 이 점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일대일 구도가 되어도 진보 혹은 야권이 불리하다는 것이 정설인데 기존의 제1 야당이 둘로 쪼개져서 각각 따로 후보를 내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꺾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실적인 정치논리로 볼 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1차적 타깃은 새누리당이 아닌 서로가 될 확률이 높다. 설사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탈당 의원 숫자나 영입 인사의 면면을 놓고 양측이 일희일비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야권의 대표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에서는 논리적으로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하나는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비교적 대등한 수준의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새누리당과 함께 정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경우다. 이것은 외형상 무승부로 보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완승으로 보아야 한다. 수십 년간 온존해오던 양당체제가 깨지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야권 거의 전부를 대표하는 제1야당으로서 갖던 이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정권교체'라는 구호로 야권 내의 차별성을 무력화하고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던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더불어민주당 혹은 국민의당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대승을 거두는 것이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큰 격차로 제1 야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국민의당이 미미한 의석을 얻는 데 그친다면 제3당으로 나아가려던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세력의 시도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우리는 계속 양당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만일 국민의당이 상대적으로 다수 의석을 갖게 된다면 사실상 제1 야당의 교체가 일어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 야당의 인물들이 신당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양당 체제로 귀착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서 양당의 총선전략은 '승리'가 아닌 '생존'을 목표로 짜이게 된다.(이 글에서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총선전략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일단 경쟁 상대인 다른 야당을 이기고, 그 후에 가능한 한 새누리당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새누리당이 190석을 차지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80석, 국민의당이 15석, 나머지 진보정당이 15석을 차지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선전(善戰)한 것인가. 내놓고 말은 못 하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중 많은 수는 이것을 차선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19대 의회에 비해서 여당에 30석 이상 더 헌납한 셈이지만, 어쨌든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는 지켜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권 전체의 의석이 아무리 줄어들더라도 자신들이 30~40석 이상을 얻으면 대성공으로 여길 것이다. 특히 한상진 창준위원장의 발언 등을 통해서 엿보이듯이 총선을 망치더라도 야권의 재편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당의 제1 목표라고 본다면,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 상당한 수의 의석을 더 빼앗기는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더불어민주당을 무너뜨리고 제1야당 혹은 확고한 기반을 갖춘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의 어느 경우에도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한다는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상호 생존을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에 대항하는 참신한 의제를 제시하거나 혹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총선국면에서 반전을 시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어려운 이슈, 예를 들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와 같은 것은 논의 자체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야권 내에서조차 논란이 벌어질 주제는 접어두고 반박근혜, 반새누리를 외치는 단순한 선명성 경쟁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신당이 중도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기존의 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그래도 증세나 노동시장 개혁 같은 이슈를 정면으로 들고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상진 교수의 '이승만 국부' 발언 이후 보여준 혼선으로 알 수 있듯이 '새누리당 2중대'라는 비판에 갈팡질팡하기 쉽고 결국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합리성', '진영논리 타파' 등의 구호로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야권 전체의 총선 전망을 암울하게 만들고 총선전략을 예상하기 힘들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각각의 입장에서 생존을 목표로 한 전략을 짜고 수행하기에도 여러 가지 심각한 장애물이 있다. 지금부터는 새로 만들어지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순서로 각각 예상되는 문제들을 간략히 나열해보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지금과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에(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권이 추구해야 하는 전략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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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민의당이 당면한 문제와 예상되는 대응전략
1) 기대치와 후보군의 절대적 부족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하는 과정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호남에서는 제1야당을 제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지지율은 다수의 의원들이 동반 탈당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권주자로서 위상이 추락해가던 안 의원 개인에게도 반전의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렇듯 높은 지지율이 오히려 선거 국면에서 초창기 정당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기존 정치권의 인물들과 행태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반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만 하면 그 내용에 관계없이 높은 기대를 받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신생 정당이 참신성과 무게감을 동시에 갖춘 후보를 250개 안팎의 지역구 대부분에 선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철수 의원이 등장한 초기, 구체적으로 2013년 '새정치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추진하던 때는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준비기간이 짧았다는 변명도 통할 수 있었고 기대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설명하기는 것이 지금보다는 쉬울 수 있었다. 당시 창당을 한 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 정예의 후보를 내고 17개 광역단체장 중 1곳 또는 2곳만 차지했더라도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었고, 그 이후 행보에 강력한 추진력이 생겼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총선에서 유권자들 앞에 '찍어줄만한' 후보를 다수 내지 못한다면 신당은 맥을 못 추고 조기에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신당 주변에서는 지역마다 '숨어있는' 인물들이 있고 이들을 발굴하면 전국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독자적인 당선 가능성이 보일만큼 인지도나 무게감이 있는 후보들을 출마시키지 못하고 단순히 야당 표를 분산시켜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용이하게 만들어줄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면 국민의당은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총선을 석 달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과연 국민의당은 서울 48개 선거구에 내세울만한 인물을 몇 명이나 확보하고 있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는가.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신당의 운명이 걸려 있다. 구체적인 실적 없이 기대치에 기반을 둔 높은 지지율은 현실에서 오히려 독이 된다.
2) 정체성의 문제, 개인에 대한 의존과 내부갈등 요소
또 하나의 문제는 정당으로서 기본적인 정체성의 문제다. 국민의당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안철수 의원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다. 안 의원 본인도 '강철수(강한 안철수)'라는 별명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 한명의 성격 변화가 이렇듯 강한 조명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정당 내에 공유되는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면모의 탈당 의원들이 참여함으로써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졌다.
물론 안 의원이나 국민의당 측은 안 의원이 대표를 맡지 않겠다고 하는 등 사당화(私黨化) 논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창당하는 국민의당이 공당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안 의원 개인에 대한 기대에 힘입고 있는 부분이 크다. 정말 안 의원이 권한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탈당한 현역 의원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게 될 텐데 과연 지지자들이 그런 모습을 환영할 것인가. 총선 국면에서 '안철수당'의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것인지는 신당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하물며 역사와 사회를 보는 큰 틀에서의 시각, 경제문제와 남북문제 등 중요하고도 민감한 이슈에서 결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
3) 연대의 문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역시 연대의 문제다. 기존의 야당에서 나오는 후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야권 지지자 전체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신당의 공천을 받아서 실제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후보들로부터도 상황을 타개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칠 것이다. 아직까지 국민의당 측은 "연대는 없다"는 원칙만을 내세울 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총선 전에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의당은 창당의 명분 자체를 잃거나 혹은 야권 참패의 주된 원인 제공자로서의 책임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총선을 불과 서너 달 앞둔 시기에 별다른 준비 없이 갑자기 창당을 시작한 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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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불어민주당이 당면한 문제와 예상되는 대응전략
1) '지겨움'의 문제
기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는 신당인 국민의당의 문제와 정확히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탈당 사태 이후에도 100명이 넘는 소속 국회의원 수를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에는 유권자들의 귀에 익은 출마 예상자들이 넘쳐난다. 공당으로서의 체계도 갖추고 있고 오랜 기간 정치를 함께 해온 국회의원들은 각종 사안에 대해 비슷한 논조로 발언을 한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이런 모습을 너무나 지겹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 안고 있는 각종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넘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얼굴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수십 년째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정치인이 여론조사에서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 '인지도'라면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벽은 '선호도'라고들 한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정치 지망생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알려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감을 주어야 한다. 피로도가 쌓이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정치인이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지도는 높지만 선호도는 매우 낮은 정치인과 비슷한 신세다. 매번 선거마다 당 안팎에서 '물갈이' 주장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표가 주도하는 인재 영입이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다 근본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2) 문화의 문제, 산토끼의 격분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는 단순히 인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진영논리'로 표현되는 문화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야당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논리 중에 하나가 '집토끼, 산토끼론'이다. 산토끼(여당 지지층)에게 아무리 호소를 해봐도 표를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집토끼(야당 지지층)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하고 최대한 선거일에 투표소에 나오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집토끼만을 상대로 한 활동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또 하나의 효과를 간과하는 논리적 잘못을 안고 있다. 바로 '산토끼들의 격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보는 시각,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유권자들을 가르치려는 태도는 '어차피 야당을 찍을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는 딱 그만큼, '어차피 여당을 찍을 사람들'을 격분시켜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과거의 통념과 달리 최근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았음에도 야당이 패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사안에 부딪히면 야당이 본래의 정체성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2년 전 박근혜 정부가 시도했던 연말정산 제도개편에 대한 반대다. 실질적으로 '부자증세'에 해당하는 것이었는데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강하게 반대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당의 기조와 상반되는 행보를 한 셈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유권자들은 야당에 대해 '자기들만 옳다고 한다', '정략적인 차원에서 반대를 일삼는다'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등 기존의 진영 문화를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진짜로 변했다고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려면 과감하고도 계속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연대의 문제
더불어민주당에 있어서도 총선을 앞두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야권연대의 문제다. 무조건적인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이제 야당 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의당에서 후보를 내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이기는 것은 산술적으로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이 식상해하는 단일화, 연대 타령을 하지 않으면서도 야권의 힘을 모으는 것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주어진 가장 크고 힘든 숙제다.
4. 야권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소한의 전략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예리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야권의 총선전략을 상세히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각각의 운명이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이 시점에서 알 수 없고 언급하기도 조심스럽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전체적인 당 지지도는 몰라도 구체적인 선거구에서는 후보에 따라 한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본다. 유권자들은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고 참신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당선 가능성이 미미한 후보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그렇게 정리가 이루어지는 중에 야권 전체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도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지적해두려고 한다.
1) 정당의 쇄신 - 인적 쇄신과 문화의 변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야당의 모습을 확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야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제 논리나 설득으로 뒤집을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다. 새로운 얼굴과 간판을 등장시키지 않고 과거의 인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아무리 정부, 여당의 실정을 공격해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권자들이 야당에 대해 떠올리는 첫 번째 이미지가 '지겹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옳다'는 태도와 문화도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 아무리 옳은 말을 썼다고 해도 '연판장'을 돌리고 있는 야당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는 유권자는 이제 없다.
2) 의제의 제시
'반박근혜' 구호를 내세우는 전략은 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는 가장 분명한 길이다. 시일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다음 4년간 고민해야 할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야당이 구체적인 대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향후 어떤 일들을 논의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여당이 될 자격이 없다.
3) 장기적 인재양성 방안의 제시
이것은 당장 총선에서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후보로 등장시키고 여론의 관심을 받으려면 이미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인사들을 영입해서 발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깜짝 놀랄 인재'의 영입으로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국지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뿐이다. 젊은 청년들이 정당 내에서 훈련받고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은 '인재영입'이라는 임기응변에 매달려야 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고, 야당도 장기적인 플랜을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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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맺는 말 - 살아남기와 총선 이후, 백서의 발간
몇몇 식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에 대해 아쉽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인다. "성공한 사람들만 보인다", "정당에서 성장한 인물이 없다"고들 한다.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비판도 많다. 100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야권의 수준이다. 야당이 키운 인물을 보여주거나 제대로 된 정책을 보여줄 능력이 없다. 지금 야당이 '살아남기'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주어진 기회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언론에서 지적받은 것처럼 야당의 정치인들은 정말 어디 가서 변호해주기 힘들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해왔다. 이상돈 교수를 영입하려 할 때는 지도부 퇴진 투쟁을 벌이겠다고 했다가 김종인 교수를 영입할 때는 환영일색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것도 당연하다. 경직된 진영논리조차 극복하지 못 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 했던 것은 당연하다. 지금 야권이 필승의 전략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우리 모두의 상식에 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은 내년 대선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단번에 역전을 도모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교두보는 쌓아야 한다. 야권의 힘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어떻게든 공통된 지점을 찾아서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이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백서'를 쓸 수 있는 선거를 했으면 한다. 야당은 2012년 총선에서도 백서를 못 썼고, 안철수 의원이 합류해서 치른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백서를 못 썼다. 선거를 맞는 전체적인 전략과 콘셉트가 없이 나눠먹기식, 임기응변식의 선거를 했기 때문이다. 백서를 쓰려면 최소한 선거 전반에 대응하는 분석과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우리는 이런 전략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 전략이 어떤 성과를 얻고 어떤 좌절에 부딪혔는지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에 지금의 지리멸렬한 야당이 수권정당으로 변화하는 첫 발을 뗄 수 있을 것이다.
"野, '노무현 당선 신화'를 넘어서야 산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⑥

전홍기혜
기자
박세열
기자
대한민국은 8년 동안 '야당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야당은 보수 정권의 연이은 실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 결과는 판판이 깨진 선거 패배의 역사로 나타났다.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프레시안>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유종일 이사장)가 공동으로 기획한 '2016년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의 일환으로 열린 좌담회에서는 이번 총선의 의미와 전망, 신뢰를 잃은 야권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지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이날 좌담회에는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장이 참여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신뢰의 위기"를 꼽았다. 신뢰의 위기는 허약한 정당 구조에서 나온다. 허약한 정당 구조는 이합집산에 익숙한 야권의 분열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이합집산 와중에 콘크리트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그 '익숙한 얼굴들'이 매번 지는 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도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높이는 일이다. 여기에 '호남 민심'과 같은 상수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도 있다. 국민의당 분열도 뼈 아픈 사건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에 220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른 곳도 아닌 야권 내부에서 나오는 분석이다.
정치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문제는 야권에게 과연 유권자의 요구를 해결이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여부다. 야권,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대담은 지난 26일 오후 2시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담의 전문을 주제별로 나눠 3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엔 두 번째 '야권'을 주제로 한 대담이다.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① '헬조선', 4.13 총선서 지옥문 닫을 수 있을까?
② 새누리당, 어떻게 2016년 승리를 준비하나
③ 총선, 결국 '민생경제' 책임 다툰다
④ '지겨운' 문재인 vs. '거품' 안철수, 돌파구는?
"野, 새로운 '얼굴' 갈구하는 대중 앞에 답 내야'"
프레시안 : 안철수신당(국민의당) 추진 세력이 재등장하면서 2012년 대선때부터 계속돼 왔던 '새정치 이슈'가 다시 나오는 것 같다. 지금은 야권이 어떤 형태로든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야권의 분열 상황, 어떻게 보시나?
이철희 :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기 전에는 탈당 카드가 과연 먹히겠느냐, 탈당하고 생존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잘 들여다 보자. 구조적으로 공간이 열린 셈이다. 새누리당이 너무 우클릭을 하다보니 왼쪽 공간이 비어 있었고, 더민주는 좌클릭을 하다보니 오른 쪽이 공간이 비어있었다. 물론 (중도가) 정치 세력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기반인가, 여기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야권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뉴페이스다. 기성 정치 세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모습이 대중에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기성 정치 세력이 둘러싸여 있으니까, 또 지지율이 떨어진다.
더민주는 어떤 상황인가? 기존 야권 멤버가 아니었던 사람이 얼굴이 되니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영입이 먹히는 것은, 저 사람이 정치를 잘 할 것 같다는 이유로 먹히는 게 아니다. 기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등장하니 '달라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주고, 그래서 먹히는 것이다. 새인물에 대한 갈구, 새 주체 세력에 대한 갈구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도 독자적으로 버텨보는 것이고, 더민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양쪽 다 그 딜레마가 있다. 새로움과 신뢰, 여기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하는 고민이 국민의당에도 있고, 더민주에도 있다.
프레시안 : 어떻게 해야 하나?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당 대표로서 당내 갈등을 조정하는 문제보다는 먹고 사는 것과 관련한 정책적 대응에 중점을 둬야 한다. 어떤 프레임으로 갈 것인지를 상징하는 존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내에 새로운 주체 세력이 형성이 돼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미래 세력'이라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 사람들이 새로운 아젠다를 던지고, 그 속에서 신뢰를 확보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게 과연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냐, 기성 질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용인해 줄 것이냐, 이 문제가 중요할 것 같다.
최태욱 :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가 안철수 신당과 통합했는데 충격적이었다. 진보 세력으로 보였던 분이 중도 보수 성향이 분명한 것으로 현재까지 보여지고 있는 국민의당과 통합했다는 것을 통해 한국 정치의 구조를 보면서 착잡한 심경이었다. 한국 정당 체제가 정책과 이념 중심, 가치 중심의 다당제 체제로 가는 게 맞다고 보는 사람으로서, 그런 정당 정치 발전을 주도해 가야 할 사람 중 하나인 천 의원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 때문이다. 선명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천 의원이 중도 보수로 가고, 김종인 위원장이 더민주당을 맡고, 윤여준 장관이 국민의당으로 갔다. 정당 정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 정당 정치 후진국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이것은 '경세가 정치'다. 정당이 단지 출마하기 위해 과정을 밟는 기구에 불과할 뿐이지 정치적 결사체가 아닌 것이다. 경세가라면 어느 당에든 가도 된다는 것이다.
정당이 '파티(party)'다. 부분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의 이익은 노동자의 당이 자본가의 이익은 자본가의 정당이 보장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갈등 주체들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부분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모든 정당이 전체의 이익을 대표한다. 전부 '국민의 정당'을 표방하지 않나. 경세가 정치의 불안 요소는 훌륭한 경세가를 계속해서 제공받을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좋은 경세가가 운 좋게 나타나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정치가 가야 하는지 답답하다.
이철희 : 김종인 위원장이 리더가 된 것을 보면 더민주가 얼마나 부실한 정당인지, 속이 빈 정당인지 알 수 있다. 또 그의 등장과 함께 당내 갈등이 일시에 정리가 됐다고 하면, 과거 그 싸움이 얼마나 명분 없는 싸움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상돈 : 정리가 된 것인가?(웃음)
이철희 : 지금은 잠복돼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싸움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공천 싸움이다. 당내 갈등을 다루지 못하는 정당, 이게 정당이 아닌 것이다. 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돈 : 문재인 대표는, 어떻게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문 대표가 이런 지적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야당에 그간 대통령감이 없었다는 말 아닌가.
"호남 민심은 무엇?"
유종일 : 천정배 의원의 경우 놀라웠지만, 최 교수만큼 놀랍진 않았다. 천 의원의 정당 이름이 이미 국민회의였다. 진보에도 수구가 있고, 보수에도 수구가 있다. 개혁 과제라는 게 보수와 진보의 축을 넘어서서 함께 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런 시점인 것 같다. 이를테면 모든 정당이 경제민주화에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실제로 개혁이 이뤄져야 맞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개혁이라는 화두가 아직 중요한 것 같다.
최근에 호남 쪽 사람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압도적으로 당선된다고 하더라. 중앙 정치에서 이정현 의원이 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역에서는 열심히 했다고 평가를 한다. 한번도 보지 못한 돈이 지역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유권자는 투표를 한다. 그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 있나? 아니다. 이 정당도, 저 정당도 정책적으로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의원의 노력이 확 보인 것이다. 이것이 아직은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학계에서 후진적이라고 하는) 지역 변수도 아직은 중요한 것이 된다.
프레시안 : 지역 변수 얘기 나왔다. 야권에서 중요한 지역은 호남이라고들 한다. 호남 민심을 누가 대변할 수 있느냐를 가지고 그간 야권이 치열하게 싸웠었는데, 그런 와중에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과 손을 잡은 것 같다. 호남 민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최태욱 : 서울에 사니 체감은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 제 생각인데, 호남 민심은 두 가지를 요구하는 것 같다. 한국에는 지역주의 문제가 아니라 호남과 비호남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호남의 차별 문제다. 호남과 영남이 대등하게 싸워야 지역주의 문제가 된다. 오히려 호남의 소외 문제다. 이 호남 문제를 치유하고 다독여주고, 더 나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이게 첫째 요구다.
둘째 요구는 그것을 위해 정치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친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에서 문 대표가 첫 번째 요구와 관련된 감정을 탁 건드린 것 같다. 치유해주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지만, 문재인 대표가 최근 광주를 방문하면서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유종일 :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호남 쪽과 접하는 부분이 있는데, 첫 번째 요구보다, 두 번째 요구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첫 번째 요구는 '정말 믿을 수 있어?' 라는 의문을 수반하는데, 지난 대선을 보면, 이미 빈정이 상한 상태에서도 내키지 않지만 문재인 대표에게 몰표를 줬다. 그래도 정권을 새누리당에게 넘기는 것은 안된다는 심리가 있었다. 그런데 졌다. 호남 사람들은 증명이 됐다고 본 것이다. 그 후에 계속 선거에 졌다. '집권 능력'이 없다고 본다는 것 아닌가. 차라리 당장 지역에 예산 끌어오는 이정현이라도 뽑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지금, 야권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또 나온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콧방귀를 뀌는 것이다.
이철희 :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호남성'이 있다고 하자. 새누리당은 '영남성'을 버리지 않는다. 주로 당의 중심은 영남에서 배출된다. 대선 후보도, 당 대표도 그렇다. 영남성을 놓치 않는 정당이 그것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는 게 있다. 그런 반면 야당은 그게 아니다. 호남성이 옅어졌다. 왜 그럴까. 예고된 비극이다. 호남 정당의 영남 후보가 필승 카드라는 잘못된 신화가 비극을 낳은 것 같다. 노무현 후보가 그 신화였다. 영남을 반분해야 대선에서 이긴다는 논리가 나왔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한 번 이긴 것이다.
그 이후에 비슷한 노력이 다 실패했다. 달랑 두 분의 성공 모델이 있으니 이런 방법론을 성역화한 것 같다. 여기에 호남 원죄론이 작용한다. 호남 출신은 아예 대선 후보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호남 출신은 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이게 총선까지 넘어온다. 총선에서도 영남에서 의석을 갖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권도 영남으로 넘어간다. 이러다보니 호남 사람들이 열패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구조적으로 영남은 덩치가 훨씬 크다. 그래서 그런 고민을 안해도 되지만, 호남은 숙명적으로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저는 지역 주의를 전제로 승리하는 그림을 그리는 한 이 당(더불어민주당)은 안정적으로 갈 수 없다고 본다. 끊임없이 호남은 볼모로 잡히게 된다. 지역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회적 프레임, 계층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이 대비를 해야 한다. 정당 자체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유종일 : 김대중 정권 때부터 영남에서 민주당 쪽 지지율이 그나마 올라갔던 때가 어떤 때냐. 재벌 개혁이라든지 하는, 어떤 개혁성을 선명하게 보일 때 그랬다. (영남 사람을 기용한다든지 하는 식의) 지역을 끌어안는다고 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다.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호남은 안철수 의원이 새누리당을 두드려서 그 쪽 지지층을 끌어오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 것 같다.
이상돈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세 번째로 허무하게 돼 버렸다.
프레시안 : 모두 부정적인 것 같은데, 야당의 과제가 새로운 리더십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전망이 어떤가.
이상돈 : 나는 좀 부정적이다.
이철희 : 왜 그러시냐. 그래도 기대해 본다고 하셔야지.(웃음)
"'허약 체질' 야당을 정당답게 해야 한다"
유종일 : 야당이 현대적인 기업처럼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개혁을 하는 게 아니라, 재발 체제처럼 오너를 통해 수술도 하고 포장도 척척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인 것 같다. 그런 것 없이는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고, 스스로 갈등을 정리할 능력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되버린 황당한 상황이다. 망할 때까지 망한 것은 아니니까, 더 망하는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뉴파티위원회도 만들고, 인재 영입도 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약간씩은 모으는 것 같다. 과연 야당이 새로운 인물들을 주체로 내세우고, 당의 의사결정 구조도 현대적인 민주정당 체제로 갖춰갈지 봐야 할 것 같다.
이철희 : 다른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더민주를 정당다운 정당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내부에서 (명분없이) 싸우다보니 정당을 형해화 해버렸다. 진영 논리의 패권주의를 (야당 일각에서) 따지는데, 그렇게 보면,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같은 사람이야말로 탈당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친박) 패권주의가 어디에 있나. 그런데 당에서 버텨야 한다는 선택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렇게 심하게 안 당해본 사람들이 나간다. 당을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이 다른 것 같다. 당이 차이를 담아내는 그릇이냐 아니냐, 그 차이가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가르는 차이다. 당 구성원들이 진보를 표방하고, 중도를 표방해도 다 좋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ABC라도 제대로 갖추면 좋겠다. 인물도 좀 안에서 길러내야 한다. 더민주는 멀쩡한 사람도 안에 있으면 대접을 못 받는다. 밖에 나가면 대접을 받는다.
이상돈 :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야권에서 정치하는 사람과, 여권에서 정치하는 사람이 체질이 다르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사람들의 뿌리가 다른 것 같다. 현상 유지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집단이고, 선거 때는 (함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권은 사람 하나하나 개성이 강하다. 개개인이 그런거야 어쩔수 없는 것인데, 집단이 되니 힘이 없어진다.
유종일 : 당료들의 프로페셔널리즘도 야당은 새누리당에 비하면 완전히 정치화, 계파화 돼 있다. 당의 전반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철희 : 당료의 문제로 가면 새누리당의 당료는 수준이 높고, 더민주 당료는 낮다는 수평 비교를 하면 안된다. 야당은 당이 계속 쪼개졌다 합쳐졌다 해 왔다. 당료는 직업적 안정성이 중요한데, 직업적 안정성이 없다보니 당료로서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더민주에 있는 당료는 엄밀히 말하면 당료라고 말하기 어렵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니 당료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간다. 이래서는 당료들에게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책임을 묻기 어렵다. 당이 전체가 흔들리니 당료들도 그렇게 간다. 당이 안정돼 당료를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당료들 중에 좋은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는 출구도 열어줘야 한다. 야권의 핵심 문제는 괜찮은 정당, 튼실한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유종일 : 이철희 위원장이 그런 소임을 맡았는데, 굉장히 열악한 조건에서 정당다운 정당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전망은 어떻나?
이철희 : 어렵다. 뉴파티위원회 활동 기간이 6개월이다. 그런데 그 6개월 중에 선거가 있다. 선거 기간을 빼면 어렵다. 안정된 리더십이 구축돼 있고, 그에 따라 당을 새롭게 만들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내부에서 운동을 해보자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웃음) 신뢰를 만들기 위해 '10개명'을 계속 내고 있다. 아무리 메시지를 던져도 메신저가 문제가 있으면 와 닿지 않는다. 이를테면 막말하는 사람을 공천에서 쳐 낼 정도로 과감하게 공천을 해야 한다고 본다. 막말이라는 기준으로 공천에서 배제하는 전례가 남으면, 그 다음부터 막말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전례를 남겨야 한다.
최태욱 : 당기 결속력, 당의 체제 이야기가 나왔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약한 게 바로 기반이다. 이념적 기반, 사회적 기반, 지역적 기반도 약하다. 새누리당은 '수구 + 보수' 정당으로서 확실하게 기반을 잡고 있다. 수구도 있지만 보수도 있다. 즉 새누리당이 더 신뢰가 간다기보다 더 힘이 센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책 생산 능력도 더민주보다 더 뛰어나다고 본다. 이를테면 복지국가라는 이슈도,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똑같이 정책을 생산한다면, 사람들은 새누리당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더민주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하는 부분이 약하다. 당의 기반이 약하니 당기가 셀 리가 없다. 더민주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모임이다. 여당과 야당을 가르는 핵심은 이것인 것 같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태욱 교수, 이철희 위원장, 유종일 이사장, 이상돈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총선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야당 심판론'을 들고 나오지만,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정부 여당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야당 심판론'이 꽤 먹힌다"는 말이 나온다. 왜 이렇게 됐을까.
<프레시안>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유종일 이사장)가 공동으로 기획한 '2016년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의 일환으로 열린 좌담회에서는 이번 총선의 의미와 전망, 신뢰를 잃은 야권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지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이날 좌담회에는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뉴파티 위원장이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언론 자유도 처참한 상황이 됐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가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후, 갑자기 대출 규제로 돌아서는 등, 관료들조차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 '콘트롤타워'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여전히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정부의 '3개년 계획 경제'는 방향타를 잃었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노동시장 개편과 대기업 특혜 몰아주기를 '경제살리기'로 규정하고 매달린다.
이상돈 명예교수는 "8년 간 정부를 이끌어 왔으면 지수가 나온다. 공공 부문 부채가 증가했고, 소득 격차가 세 배로 늘었다. 모두 악화됐다. 나아진 게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경제 정책 실패 이유를 '대외 경제 여건'으로 돌리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명예교수는 "보다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대담은 지난 26일 오후 2시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담의 전문을 주제별로 나눠 3회에 걸쳐 싣는다.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① '헬조선', 4.13 총선서 지옥문 닫을 수 있을까?
② 새누리당, 어떻게 2016년 승리를 준비하나
③ 총선, 결국 '민생경제' 책임 다툰다
④ '지겨운' 문재인 vs. '거품' 안철수, 돌파구는?
"실정은 '지수'로 다 나온다. 그런데 朴의 '야권 심판론'이 먹힌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해 보자.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다.
이상돈 : 여당은 야당의 '경제민주화' 공세와 같은 것을 피해갈 것이다. 박 대통령과 여권은 경제 위기를 얘기할 것이다. 지난 8년 간 정권을 운영했으면,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인데, 그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게 상당히 먹힌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거대 노조의 문제점도 물론 있다. 그런데 지금 일자리가 안 생기는 게 노동 개혁이 안 되고, 기업이 보다 자유로운 구조 조정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경제가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그게 상당히 먹히고 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나.
이철희 : 어느 정도 먹히는 것 같다.
이상돈 : 8년 간 정부를 이끌어 왔으면 지수가 나온다. 공공 부문 부채가 증가했고, 소득 격차가 세 배로 늘었다. 모두 악화됐다. 나아진 게 없다. 참 황량하게 됐는데, 지금 모든 책임을 갖다가 (국회, 야당, 노동계로 돌린다.) 박 대통령이 전경련 등이 주도하는 서명에 동조를 해 버렸다. 그 주장이 백프로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야당이 보다 정교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본다. 과연 8년 전 보다 지금이 더 나아졌나? 야당에서 수치 같은 게 별로 나오는 게 없다. 수사만 있는 것 같다.
유종일 : 사실 (야권에서) 숫자도 많이 제시한다. 성장률도 민주정부 때 더 높았고, 최저 임금 상승률도 더 높았다고 얘기를 한다.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전에 민주정책연구원 쪽에 '민생경제 백서'를 매년 발간하는 프로젝트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야당이 민생 문제에 관심이 있고,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안 한다. 저는 이런 게 바로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언론에 다 나오는 얘기들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없고 설득력이 없다. 정부 여당이 야당 발목잡기 탓을 한다. 그 내용을 따지고 보면 그 주장이 옳지도 않지만, 왜 대중에 상당 부분 먹히느냐? 야당이 비판을 하고 반대를 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좀 약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의료 민영화 우려가 있는 부분을 반대한다, 노동개혁에 어떤 부분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냥 '우려'만 해버린다. 그런 데서 야당 주장의 신뢰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야당에는 일관성의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가 세제 개편을 했는데, 부자 증세가 일부지만 이뤄졌다. 그런데 야당이 그것을 '세금폭탄'이라고 열광적으로 앞장서서 비판했다. 따져보지도 않았다. 과거 한나라당의 '세금폭탄론'과 똑같다. 괜찮은 방안을 여당이 내놓았을 때 확실하게 서포트하고 그랬으면 신뢰감도 생기고, 여당이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렵게 되지 않았겠나.

▲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상돈 : 35%라는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유지되는 이유는 이런 것 같다. 이게 더 늘거나 줄지는 않을 것 같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핵을 보는 자세라고 할까? 이런 부분에서 질린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 덕분에 모두는 아니지만 70% 정도가 20만 원을 받는다. 이념이고 뭐고 떠나서, (이 지지층은) 복잡한 것은 보지 않는다. 지역적으로도 영남, 특히 대구 경북은 그렇게 돼 버렸다. 소위 부유층들이 야당에 등을 돌리는 것은 '종부세 효과'라고 본다.
정권이 잘못되더라도, 이를테면 부유층들은 노태우 정권이든, 김영삼 정권이든, 김대중 정권이든 들어오더라도 본인들은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 아침에 1000만 원 씩 세금 고지서를 받았다. 그게 굉장히 오래간다고 본다. 그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1번을 찍는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유층과 무관한 20대, 30대가 대거 투표장에 가야 할 것인데, 그 사람들은 투표장에 갈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독재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점에서 야권이 젊은 세대에 기대하는 것도 (오류가 있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야당은 상당한 핸디캡이 있다고 본다.
이철희 : 동의를 한다. 내가 어디 가서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복을 타고났다고 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DJ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교류를 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부세를 건드렸다. 이 두 세력이 계속 보이면 (보수 층은) 여당을 무조건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보이던 (싫어하던) 양 쪽 사람들이 야당에서 계속 보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당을 찍는다. 이것을 깨려면, 이쪽, 즉 야당에 새로운 새력이 등장하면 된다. 대상적 구조가 깨지는 것이니까. 뉴페이스가 등장하면 '양자 택일'이 아닌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정체돼 있으니 새누리당이 끊임없이 친노들을 불러 놓는다. 친박과 소위 말하는 친노는 세력 프레임으로 보면 적대적 공존 관계다. 이것을 깨는 게 중요하다. 이것을 안하다보니, 야당은 세대 담론을 끊임없이 꺼낸다. 세대 대결을 통해 뒤집어야 하니까. 그게 2012년 대선이었다. 지금 세대별 인구 구조도 바뀌고 있다. 여전히 익숙한 사람들이 젊은 사람을 선거장으로 끌어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투표 동기를 주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도 그대로고 프레임도 그대로다. 그러니 투표장에 안 나온다. 구조적으로 이것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야권이 못났다는 것이고, 야당 복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안하무인이 된다. 측천무후(則天武后)다.
유종일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대선 때 이회창 씨가 상대 후보였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TV토론회, 연설 등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대중 정부를 많이 공격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보기에 김대중은 김대중이고 노무현은 노무현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야당에는 '유훈통치'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이 도대체 언제냐. 아직도 동교동계니 친노니 하고 있으니, 젊은 사람이 그 당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이상돈 : 다음번 선거에서 이른바 '친노 주류'라는 후보가 나오면 새누리당이 평양 비망록을 또 들고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있더라. 다 공개된 그것 말이다. 친노고 호남이고, 두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운 리더십이 나오지 않으면 야당이 정권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철희 : 덧붙이자면 그런 것 같다. 진보, 지금 야권이 싸움을 잘 못한다. 사람들이 식상하다고 평가는 것 뿐만이 (야권이 지지를 못 받는 이유는) 아니다. 진보가 두 번의 집권을 모두 연대를 통해 했다. DJP 연합,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 그런데 연대 담론이나 연대 가치에 대해 보수가 끊임없이 치고 들어올 때 방어를 못했다. 지난 총선(2012년) 때 보수 쪽에서 '종북' 얘기를 하니 갑자기 소극적이 돼 버렸다. 버텨야 하는 싸움에 대해서는 일시적 유불리를 떠나 버텼어야 하는데, 그것을 안 버티고 후퇴하다보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지금 야권 연대도 하는 것이 굉장히 군색해진 상황이다.
이상돈 : 통합진보당은, 국회에서 최루탄 터트리고 그랬지 않나. 그런 것(야권의 '자책골')을 보면 지난 2012년 대선때 야권이 표를 엄청나게 따낸 것이다.(웃음) 그것은 엄청나게 잘 한 것이다.
이철희 : 선거 하나는 질 수 있다. 그런데 버틸 것은 버티자는 게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 지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이런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 매번 작은 선거(재보선 등)에서도 올인을 한다. 그런데 계속 진다. 문제점은 안 고쳐진다. 너무 식상한 사람들이 주류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싸움도 너무 못하는 싸움을 한다. 물론 옛날 사람들이라도 싸움의 기술이 뛰어나면 싸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이 카르텔 속에서 순치된다. 싸울줄 모르는 정당이 돼 버렸다. 심각하게 정당이 카르텔화 돼 있다. 이런 구조적인 것을 타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야권 내 분석, 새누리당 220석 가능하다더라"
프레시안 : 새누리당 얘기를 해보자. 새누리당의 공천 싸움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될까?
이상돈 : 총선까지는 어떻게 하든 갈 것 같다. 총선 이후에 문제가 될 것이다. 총선 이후에는 청와대 눈치 볼 것이 없어진다. 그 때까지는 다 엎드릴 것이다.
최태욱 : 며칠 전 민주당의 전직 고위 당료가 몇몇 의원들을 모시고 전망 분석하는 것을 같이 들은 적이 있었는데, 설득력이 있는 얘기를 하더라. 모든 지역구를 다 꿰고 있던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서울은 더민주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이 4~5석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기도 역시 거의 비슷하다. 4~5석 정도라고 한다. 삼자구도에서 분석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완패다. 새누리당이 180석, 220석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전문가의 분석도 들어봤는데, 새누리당 220석이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고 한다.
야당이 선전할 가능성을 높이려면, 연대를 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연대를 굉장히 싫어하던데, 연합, 연대는 정치의 예술이다. 연대와 연합을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빠른 시일 안에 하지 않으면, 그리고 훌륭한 후보를 한 명이라도 더 영입하지 않으면 야당이 대패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돈 : 220대 80이라는 얘기다. 과거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왔을 때, 여당 쪽에서 수도권에서 힘들게 이겼던 사람들이 모두 '낭패다'라고 했던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이 있어야 5000표 정도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다. 여당 입장에서 속은 시원했겠지만, 실제로 그런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총선 때 '정통민주당'이 나왔는데, 후보가 150명 가까이 됐었다. 그 사람들이 2000표, 3000표 가져갔다. 수도권에서 그 정도 표면 엄청나게 큰 것이다.
국민의당이 서울 경기에서 10명 정도 나오면 연합을 할 채널이 있어야 하지 않나. 지금은 수도권 의원 김한길 의원 등이 그런 채널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국민의당 같은 경우는 (신생 정당이어서 경쟁자가 없어) 경선 없이 본선 나와서 후보로 뛸 수 있다. 그러면 대거 나갈 수 있다. 당에서 '나가지 말라'고 막을 방도가 없다. 원래 본선보다 경선이 더 돈 많이 들고 치열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안철수 의원 탈당 전의) 새정치민주연합 그대로 가서 총선을 치렀다고 하더라도 80석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밖에 예측이 안 된다는 점이다. 야당, 큰일이다.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뉴파티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저는 그런 전망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다를 것으로 본다. 저는 연대를 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인데, 지금부터 연대만 끊임없이 외치다보면 각 당의 기득권 세력들끼리 연대가 된다. 그것은 별 효과가 없다. 산술적 1대 1이 되기 때문에 물론 연대를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크게 먹힐 것은 아닌 것 같다. 각 당이 혁신을 제대로 하고 뉴페이스를 내세워 싸움을 붙으면 저는 해 볼만 하다고 본다. 새로운 얼굴로 총선을 치르는데 거기에서 연대가 잘 이뤄진다고 하면, 저는 여소야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최태욱 : 연대 플러스 새인물. 두 조건이 같이 있어야 한다. 연대만 외치면 안된다. 그런데 보자. 시간이 별로 없다. 안심번호제를 등록하려면 23일 전에 신청해야 하고, 선관위 얘기는 3월 4일까지 끝내야 한다고 한다. 역산해보면, 내일부터 당장 연대의 실무 작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런데 경선도 안하고, 국민의당은 이제 시작이고, 공천 룰도 아직 안 만들어져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이상돈 : 국민의당은 광주 전남 공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 전체를 조망할 여력도 없는 것 같다.
유종일 : 저는 선거 전망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이상돈 :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웃음)
유종일 : 굳이 얘기를 해보자면 '대중의 지혜'라는 게 있지 않나. 국민들도 불안할 것이고 알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놓아 뒀다가는 여당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는 것 아니냐. 견제 심리가 상당히 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국민들은 지금 정부에 대해 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야권에 주고 싶어 한다. 문제는 야권이 과연 그것을 받아먹을 자세가 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태욱 :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제안한 야권 전략협의체를 국민의당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호응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부터 연대를 위한 실무 작업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