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015년은 캐나다와 달랐다
대한민국의 2015년은 캐나다와 달랐다
|
[426호] 승인 2015.11.12 02:34:22 |
“2015년이잖아요.” 내각 구성을 남녀 동수로 한 이유를 묻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신임 총리는 간단하게 답했다.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등 다수의 이민자와 장애인이 내각에 포진했으며 법무장관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캐나다 누리꾼들은 25번까지 ‘자랑질’ 리스트를 만들며 새 내각에 환호했다.
2. 이민부가 아니라 ‘이민과 난민’부가 생겼지
21. (장관 중)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고
22. 한 명은 시각장애인이고
23. 한 명은 게이라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던가. 캐나다에 뒤질세라 한국 누리꾼도 한국 버전 리스트를 선보였으나 느낌은 사뭇 달랐다.
1. 내각엔 여성이 한 명이지만 대통령은 여성이지
2. 우리 총리는 검사, 그것도 공안검사 출신이야. 법 무부 장관 때는 정당을 해산시켰지
3. 통일부 장관은 하는 일이 없지
“2015년이야?”라고 되묻고 싶은 일도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화제였다. 경비원이 교복 차림의 여고생에게 90°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 두어 달 전부터 부산에 위치한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출근하는 주민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지시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이제 하다하다 아주 참신한 갑질까지 등장한다”라며 분노했다.
![]() |
||
화제가 되자 “인사를 받을 때마다 불편했다”라는 아파트 주민의 고백이 이어졌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인사를 강요했다며 일부 주민이 항의하자 관리사무소 측은 부인했다. 이를 두고 한 누리꾼은 “국민의 뜻이라며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하는 것이 생각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 또한 포기한 듯하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을 두고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검토했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이것이 옳다”라고 답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한술 더 떴다.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50%에 달하는 국민을 무국적자로 만들어버렸다. 이정현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에서는 국정화 반대 여론이 68%에 이른다. 두 선출직 공무원의 패기 앞에 오늘이 몇 년도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여기, 2015년 맞아?”
국정교과서를 위한 무리수,
‘국가의 거짓말’총리는 교과서를 발췌 왜곡하고, 정부는 말을 바꾸고, 권부 핵심 인사는 다수 국민을 상대로 종북몰이를 한다. 대통령은 교과서를 사상 통일 문제로 보는 ‘전체주의’ 사고방식을 얼떨결에 고백한다. 2015년 대한민국이다.
‘99.9%.’ 흰 바탕에 빨간색 숫자가 화면을 채웠다. 함께 등장한 문구는 이랬다. “전국 고등학교의 절대다수가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11월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에 나선 황교안 국무총리는 직접 15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검인정 교과서 공격의 최전방에 나섰다. 전국 고등학교 중 딱 3곳(0.1%)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며, 나머지 99.9%를 모두 편향이라 몰아붙였다. 2012년 대선 기간 내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라던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내놓은 담대한 ‘0.1% 대한민국’ 선언이었다.
‘담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황 총리는 기존 검인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했다. 가장 먼저 두산동아 역사 교과서 278쪽 하단을 캡처해 보여주며 “너무나도 분명한 6·25 전쟁의 책임마저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두고 ‘교묘한 기술’이라고 지적하며, 검인정 교과서가 남침을 부인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제시한 자료는 ‘38도선을 경계로 잦은 충돌이 일어나다’라는 소제목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남북한 사이 많은 충돌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 |
||
ⓒ시사IN 신선영
11월3일 황교안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고등학교 99.9%가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
![]() |
||
|
왜곡이다. 해당 페이지 전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정부가 편집해 보여주지 않은 교과서의 바로 윗부분은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에게 무력 통일을 위한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았다”라고 명시해놓았다. 곧이어 바로 다음 쪽에도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 국제연합은 북한의 불법적인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한국에 군사 지원을 결의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북한의 남침’이라는 표현은 명징하게 279쪽에만 두 번, 280쪽에 한 번, 283쪽에 한 번 등 교과서 곳곳에 반복해서 쓰였다. 박근혜 정부가 현 검인정 교과서가 문제라며 대표 사례로 뽑아온 내용마저 앞뒤를 자르는 왜곡을 통해서만 위태롭게 지탱된다. 이 장면은 검인정 교과서의 편향이 아니라 정부 논리의 허약성을 폭로했다.
황 총리는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이 원천 배제되어 있다며 “2014년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20여 학교는 특정 집단의 인신공격, 협박 등 집요한 외압 앞에 결국 선택을 철회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현장이 반민주적·반사회적 행위에 무릎을 꿇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사실과 거리가 있다.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는 ‘교학사 교과서 부실에 대한 해당 학교 학생·학부모의 반발’이 핵심이었다. 수원 동우여고에서는 교사의 양심선언까지 나왔다. 오히려 교과서 선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지난해 1월2일 <한국일보>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해 반발을 산 파주 운정고의 내부 사정을 한 관계자 멘트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운정고 관계자는 ‘1%도 선택하지 않은 교과서를 꼭 선정해서 아이들에게 친일 등 왜곡된 역사관을 가르쳐야 하느냐’ ‘이 교과서로 공부했다가 수능에서 틀리면 어떡하느냐’는 등 학부모 비판이 많았다.”
11월4일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기자회견. 김정배 국편 위원장은 신형식·최몽룡 명예교수만 집필진으로 공개했다(18~19쪽 기사 참조). 국편은 정부가 검인정 교과서에서 문제로 꼽는 근현대사 부분은 대표 집필자만 공개하고, 공개 시기도 집필 과정을 보면서 하겠다고 밝혔다. 집필진 비공개 원칙을 천명한 것인데, 이 역시 말 바꾸기다.
![]() |
||
ⓒ연합뉴스 2012년 10월11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
국정화 행정 예고일인 10월12일만 하더라도 집필진 공개가 원칙이었다. 김정배 국편위원장은 “모든 행정은 상당히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다. 집필에 들어가면 그때는 (집필진이) 공개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하루 전날인 11월3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집필부터 발행까지 교과서 개발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주무장관의 말까지 하루 만에 뒤집힌다.
이뿐이 아니다. 김정배 국편위원장은 10월14일 “교학사 집필진은 배제하겠다”라고 했지만 11월4일에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특정인을 거명해서 된다, 안 된다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잦은 말 바꾸기와 혼선은 국정교과서를 진행해온 고비마다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했다.
10월25일 불거진 교육부의 비밀 태스크포스(TF) 운영 의혹에 대한 해명 과정도 비슷했다. 교육부는 다음 날 오전만 하더라도 TF팀 존재를 인정했지만, 오후가 되자 TF팀은 없었다며 태도를 바꿨다. TF팀을 20여 일이나 몰래 운영한 사실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TF팀은 행정자치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만들 수 있어서다.
교육부가 10월19일 방송에 내보낸 ‘유관순 광고’도 정부 왜곡의 대표 사례다. 광고 속 교복을 입은 한 학생이 “나는 당신(유관순)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자 자막으로 ‘유관순은 없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현행 교과서에 유관순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의미다. 광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올해 3월 보급된 고교 <한국사> 8종에는 모두 유관순 관련 내용이 있다.
정부발 왜곡과 오독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여론은 국정화 반대로 기우는 추세다. 11월6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찬성이 36%, 반대가 53%였다. 17%포인트 차이다. 정당 지지층 외에 무당층에서도 반대가 훨씬 높았다(찬성 19%, 반대 67%). 무당층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국정교과서 논쟁이 진영론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추세는 정부에 더 나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정화 방침 발표 직후인 10월13~15일 조사에서는 찬반 여론이 42%로 같았다. 일주일 뒤인 10월20~22일 조사에서는 찬성이 6%포인트 줄고 반대가 5%포인트 늘었다(찬성 36% 대 반대 47%). 이후 두 차례 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은 49%에서 53%로 계속 증가세인 반면 찬성은 36%에서 고착됐다.
국정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 지형이 강화되면서 권력 핵심 인사들의 도를 넘어서는 ‘센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문제 삼는 교과서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99.9%를 좌편향으로 몰아붙인 황교안 총리 발언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10월26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교과서가 친북이거나 좌편향 내용이 있다면 바로잡혀야 한다.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비국민론’이다. 국가와 박근혜 정권을 사실상 동일시하며, 정부 방침에 비판적인 사람을 ‘비국민’으로 밀어냈다.
![]() |
||
ⓒ시사IN 조남진
‘국정교과서 집필·개발 과정을 투명히 하겠다’던 황우여 장관(왼쪽)의 말은 뒤집혔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도를 넘어선 발언을 쏟아냈다.
|
이틀 후 그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들이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준비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 의원은 국정교과서 반대론자를 가리켜 “언젠가는 적화통일이 될 것이고 북한 체제로 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됐을 때 남한 내에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미리 그런 교육을 시키겠다는…”이라고 말하다 제지당했다.
국정화 관련해 ‘종북몰이’ 카드 내밀었으나…
전가의 보도인 종북몰이다. 박근혜 정권은 고비 때마다 종북몰이로 위기를 탈출해온 이력이 있지만, 이번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둘 있었다. 첫째, 통합진보당 사태와 같은 종북몰이 국면에서 박근혜 정권은 늘 상대를 소수파로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여론 지형은 정권 자신이 소수파다. 다수 국민을 상대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시도는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패턴과도 충돌한다. 초조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둘째,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정치적 ‘승리’가 역설적이게도 정권의 ‘좋은 타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종북 딱지를 붙이고 싶어도 적당한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교과서 정국 초기에 학생들이 주체사상 교육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망신만 당한 적도 있다.
정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찍었다. 박 대통령은 11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을 앞두고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돼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사용한 ‘사상적 지배’라는 단어는, 그동안 정부가 한사코 부인해오던 국정교과서에 대한 ‘사상통제 욕망’을 역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그동안 기존 검인정 교과서가 잘못되었으니 국정교과서로 갈 뿐이지, 그 해석은 학자들에게 맡기겠다고 누차 말해왔다. 하지만 역사의 사상적 지배 언급은 결국 ‘올바른 역사’에 대한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총리는 교과서를 발췌 왜곡하고, 정부는 말을 바꾸고, 권부 핵심 인사는 다수 국민을 상대로 종북몰이를 하고, 대통령은 교과서를 사상 통일 문제로 보는 ‘전체주의’ 사고방식을 얼떨결에 고백한다. 국정화를 할 권한은 휘둘렀으되 명분과 여론에서 밀리는 불편한 상태가 정부·여당을 옥죄고 있다. 결과는 총체적인 ‘말의 파산’으로 드러났다.
![]() |
||||||||||||||||||||||||||||||||
ⓒ연합뉴스
11월5일 통일준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적 지배’라는 용어를 쓰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신의 추억’에 빠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많이 거론된다. 이배용 원장과 권희영·정영순 교수 등 한중연 소속 인사들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중연 교수들과 학생·졸업생들은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상원 기자
포털 검색창에 ‘권희영’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수출’이 붙는다. 9월14일 한 방송에서 “일제가 조선에 돈을 지불했으므로 쌀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 맞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다. 그는 가장 강력하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해온 학자 중 한 명이다. 교학사가 만든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이기도 한 권 교수는 이미 2년 전부터 국정제를 거론했다. 2013년 11월 한 세미나에서 “검인정 제도가 낫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교과서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선 차라리 국정교과서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각종 포럼과 TV 토론회에 참석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검정제와 국정제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말한 것과 대조된다(<시사IN> 제418호 ‘국가주도형 교과서’ 반대하던 교수님이 지금은…’ 기사 참조). 권 교수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국정교과서 근·현대사 부문 집필자로도 거론된다. 권희영 교수는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소속이다. 이 연구원에는 권 교수 말고도 국정화를 지지하는 학자가 더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은 이배용 원장이 대표적이다. 임명될 때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인 이 원장은 10월30일 한 포럼에서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석학들의 노력을 통해 과거의 아름다운 경험을 후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의 정영순 교수 역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102인에 이름을 올렸다. 정 교수는 2013년 뉴라이트재단이 펴내는 계간지 <시대정신>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한 바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로 설립됐다. 정문연 개원식에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초대 이선근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역사 선생’이라 불렸다. 1970년대 초반 국무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역사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 한 역사학자는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정권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배포하는 목적에 충실했다. 역사뿐만 아니라 국어학·정치학 등 모든 분야가 관변 학자로 채워졌다. 오죽하면 ‘정신병연구원’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정문연은 정권 비호라는 ‘본래 목적’을 적극 수행하지 못했다. 외국인에게는 그저 학비가 무료라는 점 때문에 해외 학자, 학생에게 인기 있는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2005년 ‘한국학 세계화 기관’을 목표로 정문연의 명칭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변경했다. 오랫동안 평범한 연구기관이었던 한중연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계기로 ‘태생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정문연 시절처럼 한중연이 관변 학자들로 채워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런 한중연에서도 내부 반발이 나왔다. 지난 10월27일 한국사학·고문헌관리학 교수 8명이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 반대 성명을 냈다. 박병호 초빙교수와 권희영·정영순 교수를 제외하면 역사 관련 학과 교수 전원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정교과서는 폭압이 난무하는 20세기 역사의 산물로 (중략)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구시대적 유물이다”라고 밝혔다. “국정교과서 집필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작과 관련한 연구·개발·심의 등 어떤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집필 거부 선언도 덧붙였다. 10월30일에는 연구원 내 다른 전공 교수를 포함한 29인도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전체 교수 62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공개적으로 원장에게 반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한중연은 교육부 산하 기관으로, 정부 출연 기금으로 운영된다.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기획재정부 차관이 당연직 이사다. 정권의 입김이 직접 닿는 구조다. 일례로 2013년 이배용 원장 선임 당시 민주당 박혜자 의원은 “이사회 회의록 분석 결과 단 30분 만에 원장 선임이 결정됐다”라고 주장했다. 한중연의 한 교수 역시 “우리 연구원은 교육부 출연 연구기관이기에 교수들이 가능하면 정부 정책에 대해 발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라고 인정했다. 한중연 교수 ‘절반’과 학생·졸업생들의 반대 성명 국정교과서 움직임은 이들조차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중연의 한 교수는 “이번 반대 성명에는 이전까지 어떤 성명에도 참여하지 않은 교수도 있다. 보수로 분류되는 분도 학교 눈 밖에 날 것을 무릅쓰고 참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중연의 또 다른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우리 교수들은 이번 성명을 개인이나 개별 학회가 아니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의로 냈다. 이배용 원장이나 권희영 교수의 입장은 개인 의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그들에게 동조하는 교수는 극소수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조용한 다수’가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재학생·수료생·졸업생 129명이 11월3일 역사정의실천연대를 통해 성명을 냈다. 국정교과서가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이 골자였다. 이들은 “우리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중략) 과거 독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이나, 이제는 지난 과오를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라고 썼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한 재학생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일부 교수들 때문에 한중연 전체가 국정화 찬성 집단으로 비치는 게 우려된다. 우리 연구원은 도제식으로 운영돼 학생 처지에서 나서기에 부담스러운데도 절반 이상이 성명에 참여했다. 실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생 수는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권희영 교수 같은 국정화 찬성 견해는 한중연 전체의 분위기와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 한중연(당시 정문연)에서 수학했던 한 졸업생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모교의 퇴행이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다니던 정문연은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교수가 없지 않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뒤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앞장서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들은 반성해야 한다. 졸업생들이 지켜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들이 안 쓰니 군인이 교과서 쓰나 20일간의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교육부는 국정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집필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등 비상식적 행보가 이어졌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중심으로 전후 3일을 기록했다. 김연희 기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됐다. 20일간의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교육부는 확정고시를 강행하며 재빠르게 국정교과서 만들기에 착수했다. 행정예고 기간 교육부에 접수된 32만1075명(전체 67.7%)의 반대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확정고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에 나섰다.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돌리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중심으로 3일을 기록했다. 11월2일 15:00 이틀 앞당겨진 확정고시 20일 동안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교육부는 11월2일 자정까지 국민 의견을 받아야 했다. 확정고시는 11월5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2일 오후 3시, 바로 다음 날 확정고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후 2시에 교육부에 반대 서명 40만여 건과 국정화 반대 의견서 1만8000여 건을 전달한 참이었다. 의견 접수는 애초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같은 날, 교육부 담당팀 사무실의 의견접수용 팩스가 꺼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 국민 의견을 청취한다며 그나마 딱 한 대 마련해놓은 팩스조차 제 기능을 안 한 셈이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늦게 들어온 의견은 새벽까지 직원들이 확인했다”라고 해명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행정예고 의견 수합 현황’에 따르면 인원 수 기준으로 국정교과서 반대는 32만1075명, 찬성은 15만2805명으로 집계됐다.
11월2일 21:30 정부서울청사 앞 대학생과 시민들이 다음 날 확정고시 기자회견이 있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때 침묵시위 ‘가만히 있으라’를 제안했던 용혜인씨(25)가 SNS에 올린 글이 사람들을 불러냈다. “모여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깁시다. 역사를 통제하겠다는 시도를 막아냅시다.” 그렇게 모인 대학생과 시민 100여 명이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 추위에 대비해 시민들은 온몸에 담요를 두르고, 종이 상자를 깔고 앉았다. 11월3일 11:00 “99.9%가 편향 교과서 선택” 정부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기자회견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황우여 부총리와 함께 나와 담화문을 발표했다. 황 총리는 파워포인트까지 준비해왔다. 그는 15분 동안 국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핵심은 색깔론이었다. 황 총리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등학교가 전국에 세 곳밖에 되지 않는다며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역사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문구를 들이댔다. 뒤이어 황우여 부총리는 국정교과서 제작 과정을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등 투명하게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친일·독재 미화 같은 역사 왜곡 우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그런 교과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성숙했다면 좌편향 교과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역질문에는 다른 말을 했다. “역사 교육은 국가를 유지하는 혼이고 골격이기 때문에 (중략) 정상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11월3일 18:00 학생의 날에 국정화 반대 나선 청소년들 ‘학생의 날’이기도 한 이날 청소년들도 나섰다. 바뀐 교과서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소속 학생 10여 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확정고시는 민주주의와 역사 교육을 죽이는 일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도 새로 써야 하나요?” “무엇이 부끄러워 감추려고 하나요? 국정교과서를 반대합니다”라고 직접 쓴 종이를 들었다. 시민들도 불복종의 촛불을 들었다. 같은 시각 세종로 파이낸스센터 앞에는 시민 300여 명이 모여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 여중생은 학원에 빠지고 집회에 나왔다며 발언대에 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 청소년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합니다.” 11월4일 11:00 주변 만류에 첫 기자회견부터 빠진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진 역사교과서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된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교과서 편찬 기준과 집필진 구성 방식을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김정배 국편 위원장(75)과 함께 대표 집필자로 초빙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76)가 나왔다. 또 다른 대표 집필자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69)는 참석하지 않았다(최 명예교수는 11월6일 자진사퇴했다). 국정교과서 첫걸음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박한남 국편 기획협력실장은 “(최 명예교수를) 집으로 모시러 갔으나, 걱정하는 이들이 참석을 만류해 오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