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의 군사 갈등, 누구 책임인가"
"남중국해의 군사 갈등, 누구 책임인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의 군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10월 27일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 12해리(22.2km) 안에 구축함을 진입시킨 데 이어 1일에는 앞으로 매 분기(3개월) 2회 이상 이같은 순찰 활동을 정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반발하면서 주권 수호를 위해 실탄 군사 훈련을 벌이는 것으로 맞받았습니다. 지난 1971년 미중 화해 이후 그런대로 순항해 왔던 양국 관계가 남중국해 남사군도(스프라틀리)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대결 양상으로 바뀌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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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1일 미 군함의 남중국해 순찰 정례화를 밝히면서 "국제법에 보장된 권리를 정기적으로 행사해 미국의 뜻을 중국과 다른 국가들에 상기시키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중국을 방문 중인(2~4일)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3일 베이징대 강연에서 "미군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 비행하고 항해하며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며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항행 자유 원칙에 따라 활동해 왔다. 일상적인 작전 수행이 특정 국가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순찰 활동은 국제법에 따른 자유 항행 원칙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중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 구축함 라센호가 중국 인공섬 12해리 안에 진입한 지 이틀 후인 지난 10월 29일 미국과 중국 군사 당국자는 1시간에 걸쳐 화상회의를 연 바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 우셍리 장군은 미 해군작전본부장 존 리차드슨 장군에게 이번 미군의 순찰 활동은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며 지역 평화와 안보를 해치는 지극히 위험하고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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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 해군의 순찰 정례화 방침이 보도된 직후 중국은 실탄 군사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싱가포르 유력지 연합조보는 2일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로 향하고 있다면서 이번 훈련은 주야에 걸쳐 남중국해의 '중국 영해'에 침입하는 가상 적군 함정을 타깃으로 방어, 수비, 반격을 염두에 두고 모두 실탄을 사용해 실시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 실전 훈련에 투입된 부대는 중국 광둥(廣東)성 잔장(湛江)군항에 기지를 두고 남중국해 해역을 관할하는 중국 남해함대의 주력부대로 052B형 구축함 2척과 054A형 호위함 4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간 훈련은 주로 해상편대 타격, 함재기 연합 대잠수함 작전, 합동 대미사일 방어 작전 등이, 야간 훈련엔 함포 및 미사일의 해상 사격, 대(對) 연안 화력 지원 등이 실시될 예정인데 정확한 훈련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군의 남중국해 순찰 정례화와 이에 반발한 중국군의 실탄 군사 훈련이 맞물리면서 남중국해가 미중 군사 대결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 해군의 남중국해 순찰은 지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는 지난 해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40여 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 남사군도는 지난 1970년대부터 분쟁 지역으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타이완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해저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자원이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가운데 7개 섬 및 암초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4개 암초를 매립하는 동시에 3000미터 길이의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1개는 완공, 2개 건설 중). 또한 군함과 대포 등 군사 장비를 배치했습니다. 중국의 속셈은 인공섬 매립을 통해 이 해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 ⓒAP=연합뉴스
한편 남중국해에는 원유를 비롯해 연간 5조 달러 상당의 물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 말라카 해협이 있습니다. 이중 1조2000억 달러 상당은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은 중국의 인공섬 매립이 이 해역의 자유 항행을 위협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이 인공섬 주변 12해리를 배타적 주권 해역으로 고집할 경우 다른 나라들의 자유 항행이 위협받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은 아직 인공섬 12해리 해역을 영해로 공식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타국 선박의 통행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도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즉 아직까지는 자유 항행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중의 이번 갈등은 '자유 항행 대 주권 수호'보다는 남중국해 주변의 군사 패권을 위한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 주변 해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합니다. 중국의 남사군도 인공섬 매립은 하이난섬에 있는 중국 잠수함의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중국은 '접근 저지 / 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에 따라 미군이 자국 주변 해역에서 마음대로 활동하는 것을 견제하려 합니다. 지난 2013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두 나라가 나눠 써도 될 만큼 넓다"며 신형 대국 관계를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반면 2차 대전 이후 태평양 등 전 세계 5대양을 제 집 안방처럼 누벼왔던 미국은 지난 70년간 마음껏 누려왔던 군사적 행동의 자유를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해 3월 러시아의 크림 반도(우크라이나 영토였죠) 합병에 아무런 대응도 못했고, 최근 시리아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개입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체면을 구긴 것이죠. 이에 대한 미 군부 및 의회의 분노와 좌절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군부는 이미 지난 5월 중순, 중국 인공섬 매립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가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지난 10월 27일에야 군사적 대응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즉 오바마의 주도적 결정이기보다는 군부와 의회의 강력한 압력에 밀린 결정이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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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일본 편을 든 것처럼 남사군도 분쟁에서도 필리핀, 베트남 등의 편을 들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필리핀은 남중국해 섬들을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국제재판소인 네덜란드 상설중재재판소(PCA·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에서 다뤄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PCA는 지난 10월 29일 필리핀이 제기한 남중국해 도서를 둘러싼 분쟁이 PCA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발표했다고 하는군요.
한편 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는 미중 간의 충돌로 공동선언문 채택이 무산됐습니다. 이번 회의에는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ㆍ미국ㆍ일본ㆍ중국ㆍ러시아ㆍ호주ㆍ뉴질랜드ㆍ인도 등 모두 18개국 국방장관이 참석했는데 남중국해 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항행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해양 패권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일본 그리고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도 항행의 자유를 강조한 문구를 공동선언문에 포함시켜 중국의 인공섬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할 방침이었습니다만, 중국의 강한 반발과 몇몇 아세안 국가들이 암묵적으로 중국을 지지하면서 공동선언문 조인식 자체가 취소된 것입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중국 국방부장(장관)이 보는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 연설은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등이 직접 지켜봤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 고위 인사가 남중국해 갈등 당사국인 미·중 국방장관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미국 편을 든 셈입니다.
미국은 국제법을 내세워 필리핀, 베트남 등과 함께 다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다자적 해법에 극력 반대하면서 양자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대적 열세에 있는 베트남, 필리핀 등을 힘으로 누르겠다는 속셈이죠. 힘의 우위를 앞세워 영토적 팽창을 노리는 중국의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국제법과 자유 항행의 원칙을 외치면서 군사적 해법을 추구하는 미국의 태도도 정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내세우는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1982년 체결되고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해약(UNCLOS)인데 미 의회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멜 거토브 교수는 미국은 지난 1986년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자국에 불리하게 내린 결정을 단 한 번도 이행한 적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즉 UNCLOS에 가입도 하지 않고 국제기구의 결정에도 불복해온 미국이 국제법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명분 없는 행동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중국해 자원의 공동 개발 등 다자적 해법을 통해 분쟁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군사력의 일방적 과시와 이에 대한 맞대응은 결코 건설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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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 갈증 심화의 악순환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핵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를 타고 남중국해 인근을 항행할 예정이라고 미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의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항공모함이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높아진 남중국해 인근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해온 점을 감안할 때 카터 장관이 영유권 분쟁지 인근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 경우 미중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중의 군사 갈등 속에 한국은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졌습니다. 최근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와 아베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콕 집어 지지를 요청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오바마와 시진핑, 양국의 지도자들이 이 분쟁을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근혜 방미, 오바마에게 뺨 맞고 온 셈이다"
하지만 두 달 전에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한국이 너무 중국과 가까워진 것 아니냐는 '중국 경사론'이 곳곳에서 제기됐었다.
이를 두고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두서없는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입체적인 수순에 따라 행동이나 언술이 나오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없는 가운데 이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우리가 동북아 역내에서 시종일관 가졌던 입장은, 미-중 간 갈등이 노골적으로 불거졌을 때 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며 "지난 2006년 1월 미국과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때 동북아 역내에서 미-중 간 갈등이 일어나면 개입하지 않겠다는 우리 원칙을 존중해달라고도 이야기했다. 그 합의의 정신이 한국의 공식적인 기본 입장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약 10년이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원칙을 깨고 어떨 때는 중국, 어떨 때는 미국에 편승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균형외교를 위한 행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정상회담 한번 하고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한 번 올라갔다고 해서 균형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전략적 토대 없이 동맹 상대방 때문에 이래저래 휘말려서 균형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균형외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간 8.25 합의 이후 긴장이 완화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수훈 : 현지시각으로 10월 14일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아태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주제 발표를 해달라고 해서 미국에 있었다. 세미나에는 전직 대사, 전직 국무부 한국 데스크, 전직 관료를 포함해 한반도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온 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관심 밖의 일이었다.
워싱턴 입장에서는 9월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회담을 했고, 거기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큰 틀의 합의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 가지고 더 이상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할 것이 없다고 정리가 된 상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은 북핵 해결을 위한 회담에 여력이 없으니 중국이 좀 나서서 해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건 북핵 문제이건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13일에는 CNN주관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첫 번째 토론회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 토론회와 더불어 조 바이든 부통령의 대선후보 출마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상황이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시급한 과제였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2016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5500명의 규모 미군을 그대로 둔다는 결정이었다. 아프간 미군 철수가 공약이었는데, 오바마로서는 본인의 공약을 뒤집어버린 셈이었다. 이 때문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셈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 질문도 전부 미국의 관심사에 집중됐다.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 조 바이든의 출마 여부, 아프가니스탄이 주요 질문으로 등장했다. 오바마가 해야 할 큰 결정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한국이고 북한이고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미국에 온다고 하니까 일단 받아준 셈이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담이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 정부는 양국 정상이 채택한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두고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이라면서 그 의미를 부여하느라 애썼다.
이수훈 : 성명 성과는커녕, 오히려 미국에 뺨을 한 대 세게 얻어맞고 온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형 전투기(K-FX) 핵심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까지 대동해 방미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기술 이전 불가를 재확인했다. 그것도 면전에서 대놓고 거절했다.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에 가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도했는데, 일국의 대통령이 부처를 방문하는데 사열과 예포도 하지 않았겠나? 대통령이 일개 부처를 방문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오히려 부처까지 방문하는 것이 다소 이상한 모양새로 비쳐질 수 있지 않나? 백악관에서 행사를 했다면 우리 언론이 난리법석을 떨었을 게 뻔하다. 우리 언론이 너무 망가졌다.
사실 전시작전권 환수받을 의지는 없으면서 K-FX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좀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무기한 연기'를 합의했다. 전작권을 찾아올 의지가 없으면 독자적 전투능력 배양을 할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K-FX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 올바른 방안인지 되묻고 싶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6일(현지 시각) 정상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하나의 대형 동북아외교 참변이 있었다. 남중국해 문제다.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한 가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국제규범과 기준을 지키는데 실패할 경우 한국이 남중국해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내달라 라는 것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기술 이전을 타진하러 미국에 가놓고, 결과적으로 목표는 이루지 못한 채 커다란 짐만 떠안고 왔다. 그 연장 선상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남중국해 관련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해 남중국해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미국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 결국 이 회담은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프레시안 : 미국 내부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도 이중적인 태도 아닌가? 이란 문제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해결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수훈 : 스탠포드 대학교 방문해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인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답하더라.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 문제를 풀고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내면서 미국 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지지도가 하락하는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갈수록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강세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지지율이 70%가 넘는다고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괜히 북한 문제를 건드렸다가 지지율을 깎아 먹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것이 워싱턴의 기류였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하더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성과가 나지 않고, 그래서 발을 담그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이 분석한 평양의 입장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주요한 요인이 됐다. 물론 미국은 계속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뉴욕 유엔을 통한 대화 채널이 북-미 간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서 좋은 시그널이 오면 대화 테이블에 앉을 의사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을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전략적 인내'라는 카드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로가 버티고 있는 셈인데, 미국은 북한이 '계속 버티면 결국 핵 보유국이 되겠지, 그렇게 되면 협상의 수준과 차원이 달라질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굳이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벌여서 정치적으로 실패할 위험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다.
북한과 이란을 보는 미국의 시각도 다르다. 북한은 이미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이란은 지금 단계는 프로그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만 멈추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북한보다 핵 문제 해결이 쉬울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중동에서 자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란을 잡을 필요도 있다. 오바마는 이번 핵 협상을 징검다리로 삼아 중동의 핵심국가인 이란과 데탕트를 이루고,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려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이수훈 :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비교적 온건한 축에 속하는 인사들이었다. 그런데도 북한 붕괴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그래서 세미나 후반부에 내가 북한 급변 사태에 언급하면서 남한은 절대 북한 붕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북핵 문제는 오바마 정부 내에서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프레시안 : 그럼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조건을 들어줘야 미국이 협상에 임할 수 있을까?
이수훈 : 일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지난 2012년 2.29 합의 내용이 이 부분이었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불러들이고 영변의 핵 시설 활동을 중단시키면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도 있다.
자신감 있는 아베, 두서없는 박근혜
프레시안 : 한-일-중 정상회담 계기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중점 사항으로 제시했지만 사실 해결된 것은 없다.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를 일정 부분 풀었다는 성과를 얻었다. 우리만 얻어낼 것을 얻지 못한 상황 아닌가?
이수훈 : 어떤 진전을 기대할 수 없었던 회담이었다. 양국 정상이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으니까 한-일 관계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과 압박 속에서 치러진 회담이었다. 이런 식의 회담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 한 번 만난 것으로 그나마 의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 지난 2일 정상회담 차 청와대에 방문한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청와대
아베 총리가 자신감을 갖는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미국이 일본 자위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인데, 중국 견제를 위해 미-일 동맹이 가속화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거칠 것이 없어진 셈이다.
프레시안 : 결국 9월 초부터 시작됐던 일련의 외교 행보에서 우리는 미국, 일본,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해주기만 하고 받아낸 건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닌가?
이수훈 : 박근혜 정부가 너무 두서없는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3일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세계 2차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승절 열병식 참석과 이런 발언 때문에 미국과 일본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유착돼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떨치기 위해 박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선봉에 서겠다고 한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외교를 하고 온 셈이다.
여기에 우리 외교 당국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을 진전시킬 수 있는 어떠한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외교 당국은 북핵문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것을 외교적인 성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남중국해 문제만 해도 우리가 너무 경솔하게 발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수훈 : 전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입체적인 수순에 따라 행동이나 언술이 나오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없는 가운데 이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의 양상을 보면, 주권과 국제법적 논리가 같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동아시아의 해양 질서를 만들어가는 진통의 과정인데, 중국은 핵심이익을 이야기하면서 주권을 강조하고 있고, 미국은 자유로운 항행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국제법적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국자의 말에도 미국과 같은 논리가 담겨있다. 한 장관이 "대한민국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항행·상공(上空)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것은 미국의 노선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미국 노선을 이야기하면서 미국 편에 선 셈이다.
9월 초 박 대통령이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 정부는 균형외교를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한번 하고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한 번 올라갔다고 해서 균형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토대 없이 동맹 상대방 때문에 이래저래 휘말려서 균형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균형외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 구축함이 중국 인공섬에 접근했던 것이 미국 정부 차원의 의지가 아니라는 보도도 나왔다. <로이터>는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 사령관이 이미 5월 중순에 군사적인 개입을 건의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결정을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지금에서야 개입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군부와 의회의 압력 때문에 끌려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수훈 : 태평양 사령관에게는 태평양 바다를 책임지는 군사 논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중국과 얼굴을 붉히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퇴역한 해군들이 퇴역 후 연구소 같은 곳에 가서 활동하곤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노골적으로 거대한 방어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에 대한 완벽한 견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다 온건한 사람들은 앞으로 서태평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진통이 필요하고, 그런 진통을 겪으면서 미-중이 공존할 수 있는 해양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입장에 동의한다.
'북한 도발'이야기만…남북관계도 두서없다
프레시안 : 계속 이런 식이면 우리가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량감을 갖기 어려워질 것 같다. 그렇다면 외교적 주도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힘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수훈 : 8.25 합의에 명시했던 이산가족 상봉을 이행했으니 이제 당국 회담으로 가야 한다. 이번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측이 협조를 잘해줬다고 하는데, 북측도 남북 간 대화를 통해 원만한 남북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상봉을 그렇게 강조한 것을 보고, 평양에서는 상봉이 잘되면 그다음 단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 수순으로는 당국회담을 진행하는 것이 상봉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외교만큼 두서가 없다. 지난 2일 국방부에서 제47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대북 억지를 강화하는 '4D'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가 대북 억지·봉쇄 부분에서 다른 나라와 함께 협력하고 수준을 높이는 것을 외교적으로 잘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계획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남북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산가족 상봉의 모멘텀을 살려가려면 당국회담도 하고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노력을 했었어야 한다고 본다. 미-중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6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노력해야 하는데, 오로지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 이야기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