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페이’로 결제해드릴까요
어떤 ‘페이’로 결제해드릴까요
현재까지 한국 핀테크가 주력하는 부분은 비교적 단순한 서비스인 소액 송금과 결제다. 하지만 차별성 없이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는 핀테크 결제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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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승인 2015.09.15 03:47:07 |
김진아씨(가명·31)는 대학 동기들과 식당에서 모임을 한 뒤 밥값 3만원씩을 갹출하기로 했다. 모두가 뱅크월렛카카오(뱅카) 회원이므로 주섬주섬 현금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스마트폰의 뱅카 앱을 띄우면 된다. 이미 은행 계좌와 보안카드 번호는 뱅카에 등록해둔 상태다. 은행 계좌의 돈 중 일부도 뱅카의 전자지갑(뱅크머니)으로 옮겨두었다. 김씨는 자신의 전자지갑에서 3만원을 역시 뱅카 유저인 친구(식당에 현금을 지급)의 전자지갑으로 송금했다. 한자리에서 ‘더치페이’가 이뤄진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김진아씨는 남에게 돈을 송금하는 경우, 주로 거래 은행의 모바일 뱅킹을 사용해왔다.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고, 돈 받을 사람의 계좌번호, 보안카드 번호, 이체 비밀번호 등을 일일이 입력했다. 반면 뱅카의 경우, 처음 등록하면서 자신의 은행 계정과 연동해놓으면 모바일 뱅킹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송금받을 사람이 뱅카 유저이기만 하면, ‘친구 리스트’에서 선택해 송금액과 비밀번호를 눌러주면 된다. 당연히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뱅카의 한계가 뚜렷하다. 시중은행이 제공하는 모바일 뱅킹 서비스와 비교하면 송금 절차만 간소화했을 뿐이다. 송금 가능한 돈도 얼마 되지 않는다. 전자지갑에는 50만원 이상 충전할 수 없다. 송금 규모 역시 하루 10만원까지만 가능하다. 더욱이 송금을 받아도 24시간이 지나야 현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뱅카 측에서 정당한 송금인지를 확인하는 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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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
핀테크가 유망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다른 업종의 사업자들이 이 부문으로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송금이나 결제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뿐 아니라 다음카카오 같은 스마트폰 고객 기반의 메신저 업체, 휴대전화 제조사, 포털 등이 이 부문에서 경합하는 것이다. 서로 결합하기도 한다. 뱅카의 ‘송금 서비스’ 역시 첫 개발자는 중소기업인 뱅크월렛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뱅크월렛의 송금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결국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93% 이상을 회원으로 보유한 다음카카오가 지난해 말, 뱅크월렛의 송금 기술을 카카오 플랫폼에 적용하면서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한국의 핀테크가 주력하는 부문은 비교적 단순한 서비스인 ‘소액 송금’과 ‘결제’다. 그러나 결제와 송금은 핀테크 산업의 더욱 고도화된 영역(P2P 대출, 자산 관리, 소셜 투자, 보험 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결제와 송금 서비스에서 고객을 장악해야 대출이나 보험 등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핀테크 기업들은 송금·결제 서비스에서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각축 중이다. 김진아씨가 뱅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 역시 이 회사가 지난 2월 실시한 ‘세뱃돈 이벤트(신규 가입자에게 세뱃돈으로 뱅크머니 3000원 제공)’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다음카카오는 모바일 결제 부문에서도 선두 주자다. 김씨는 최근 카카오페이의 결제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동안 주로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로 결제해오다 카카오페이의 홍보 이벤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카드 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고 본인 인증을 하면 카카오페이 회원으로 가입되면서 상품 가격을 할인받는 행사였다. 그다음부터는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카카오페이는 다음카카오가 송금(뱅크월렛카카오)과 더불어 모바일 결제 시장에 진출하려고 만든 서비스다. 2015년 5월 현재, 카카오톡 사용자 3800만명 중 400만명가량(9.5%)이 카카오페이를 사용하고 있다. 가맹점이 적어서 주요한 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카카오페이로 납부하는 자동차세·주민세
그러나 시장을 잡기 위한 과감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민은 카카오페이로 공과금을 납부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다음카카오 및 제휴 기술 업체들과 ‘핀테크 기반 간편거래 세금납부 시스템 구축·운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하반기 중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서울시민들은 자동차세·주민세·지방세 등을 카카오페이로 납부할 수 있다. 2015년 5월에는 한국전력공사와 전기요금을 카카오페이로 결제하기로 업무 협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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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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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온라인 결제 시장을 선점한 대형 PG사(전자지급 결제대행업체)들 역시 카카오·네이버 등 메신저 업체의 도전에 적극 맞서고 있다. 최근 등장한 페이나우(LG U+), 케이페이(KG이니시스), 페이코(NHN엔터테인먼트) 같은 서비스가 그것이다. 이들 페이의 특장점은 이미 PG사들의 결제 모듈이 적용되어 있는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페이나우는 2015년 5월부터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없이 한 번만 결제 정보를 등록하면 로그인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 외에도 우리은행 등 계좌를 등록하면 이체를 통한 결제가 가능하다. 소셜 커머스 티켓몬스터에서도 티몬페이라는 브랜드로 사용되고 있다.
케이페이는 결제 대행 분야의 국내 1위 업체인 KG이니시스가 추진 중인 온라인 결제 서비스다. 2015년 상반기 시장점유율이 38%에 이른다. 페이코는 NHN엔터테인먼트가 광고비 420억원 등 총 1184억원을 투입해 만들었다. SK플래닛은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에서 사용되는 시럽페이를 출시했고 신세계백화점은 SSG페이, 인터파크는 옐로페이, 옥션과 G마켓은 스마일페이 등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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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오프라인 결제에도 핀테크가 사용되고 있다. 신용카드가 아닌 휴대전화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
주부 김 아무개씨는 “소셜 커머스에서 페이로 결제 시 할인해준다는 이벤트를 보고 티몬에서 티몬페이, 위메프에서 페이코와 케이페이로 한 번씩 결제한 뒤에는 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핀테크 온라인 결제 서비스는 대량의 결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거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오히려 거부감만 일으킨 것이다.
이런 국내 사정과 달리 해외에서는 온라인 결제에 성공한 사례가 속속 눈에 띈다. 미국 결제 업체 페이팔은 2002년 7월 대형 상거래 사이트 이베이에 인수되면서 발전이 가속화한 경우다.
또 중국 대기업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페이는 타오바오 등 계열 상거래 사이트에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페이팔과 알리페이는 막강한 상거래 업체(각각 이베이와 타오바오)를 계열사로 두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결제 수단의 지위를 확보하고 이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핀테크는 오프라인 결제에도 사용되고 있다. 가게 계산대 앞에서 신용카드가 아니라 휴대전화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물론 해당 휴대전화에 입력된 신용카드 정보에 근거한 결제다.
‘핀테크 100대 기업 명단’에 한국은 없네
김진아씨의 경우, 원래 지갑 대신 스마트폰과 신용카드(교통카드 겸용)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이젠 신용카드도 집에 두고 나올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NFC 기능이 신용카드를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NFC는 모바일 기기와 가게의 단말기를 10㎝ 이내에서 연결할 수 있는 ‘비접촉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이다.
하지만 아직 가맹점에는 NFC 결제 단말기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2011년에도 NFC를 활용한 모바일카드가 비씨카드와 하나카드를 통해 출시돼 화제를 모았지만, 발급 절차가 까다롭고 NFC 전용 결제 단말기 보급이 늦어지면서 사용률이 낮았다.
오프라인 결제에서 NFC에 맞서고 있는 기술이 바로 앱카드 방식이다. 스마트폰의 카드사 앱으로 일회용 바코드나 QR 코드를 띄워서 단말기로 체크한다. 이미 대중화된 바코드 리더기를 쓰기 때문에 빠르게 보급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다만 현재 300만 개에 가까운 신용카드 가맹점 중 앱카드 사용이 가능한 오프라인 가맹점은 1만2000곳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건 삼성페이다. 삼성페이 기술의 특징은 사용자 신용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띠에 들어 있는 정보를 스마트폰에 자기장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신용카드의 마그네틱 띠 안에는 카드번호, 유효기간, 검증번호 따위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암호화해서 스마트폰 내부에 저장해뒀다가, 결제 시 스마트폰 지문 인식을 통과한 다음 자기장의 형성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갤럭시S6에서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동작을 하면 바로 삼성페이가 실행된다. 결제에 사용할 카드를 결정하고 신용카드 결제기에 스마트폰을 가져다대면 된다. 자기장 결제, NFC, 앱카드 결제를 모두 지원하면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월20일 출시한 이후 일주일 만에 20만 장이 넘는 카드가 등록됐다고 한다.
삼성페이보다 먼저 해외에서 상용화된 애플페이는 국내 도입이 지연되고 있지만 곧 출시되리라 보인다. 또 안드로이드 페이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처럼 여러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소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핀테크 산업은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우후죽순 출시된 송금 및 결제 서비스는 비슷한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상호 간에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아메리칸 뱅커’ 등 해외 유수 언론 및 기관에서 발표한 ‘2014년 핀테크 100대 기업 명단’에 한국 업체는 없었다.
소비자들은 아직 ‘그다지 편리하지는 않다’는 반응이 대세다. 상인 처지에서 보면 결제 수단이 핀테크로 변경된다고 해서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 한마디로 소비자·공급자 양쪽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버리고 굳이 모바일 결제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핀테크 시대로 향하는 흐름에도 실물 카드가 얼마나 빨리 모바일로 대체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다만 핀테크 도입을 통해 그동안 각종 규제로 둘러싸여 있던 금융산업의 울타리가 낮아지고, 금융산업과 비금융산업 양쪽에 모두 새로운 활력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핀테크 쇼크’ 이후 금융의 미래는?
핀테크는 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다. 새로운 기술이 금융 분야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마트폰 단말기가 지갑을 대신하고 돈이 필요할 때 꼭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 상상이 일상으로 다가온다.
‘주머니 쌈짓돈’이 사라지고 있다. 현금 없는 일상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은행이 1월2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현금 이용 비율은 전체 결제 건수 가운데 38%에 불과하다. 신용카드와 직불(체크)카드 같은 현금 대체 수단이 이미 대중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금 없는 생활을 넘어서 지갑 없는 생활, 은행 없는 생활도 가능하다면 어떨까. 스마트폰 단말기가 지갑을 대신하고, 소비 패턴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관리를 해주는 시대.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길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돈이 필요한 개인에게 안전하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시대. 기존 금융 시스템과 전혀 다른 생활·문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 상상이 점차 내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와 금융계가 앞다투어 소개한 ‘핀테크(FinTech)’ 때문이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금융 분야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기술을 의미한다. 특히 기존 금융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는 기술혁신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핀테크 기술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논의 중인 분야는 ‘지급결제’ 영역이다. 신용카드가 처음 등장해 전 세계 금융 질서를 재편한 것처럼, 화폐가 지닌 ‘교환의 매개체’ 기능을 흡수하는 기술이다. 인터넷 전자화폐 기능을 넘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지급결제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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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
계정에 일정 금액을 충전하거나 신용카드와 연동한 후,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전자화폐처럼 결제할 수 있어서 간편 결제의 대표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제뿐 아니라 회원 간 송금·수금도 가능하고, 각종 사이트에 연동하기도 편리해 전자상거래 외에 기부나 모금 활동에도 폭넓게 활용된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가 만든 알리페이도 페이팔과 비슷하다. 2003년 ‘즈푸바오(支付宝)’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알리페이는 현재 약 8억2000만명이 이용하는 중국 최대 온라인 금융 플랫폼이다. 알리페이는 도입 초기 상거래 안전을 돕는 장치로 각광받았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임시 계좌를 개설해 소비자가 상품을 받고 물건 상태를 확인한 뒤 판매자에게 결제 금액을 지급하는, 일종의 안전결제(에스크로) 기능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이다.
알리페이의 확대는 모기업인 알리바바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을 촉진했다.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고, 판매자 신뢰도가 낮아서 전자상거래의 발전이 더뎠다. 그러나 신용카드 외에도 휴대전화 결제, 계좌이체 등으로 충전할 수 있는 알리페이가 등장하면서 신용카드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전자상거래 거래량도 늘었다. 최근에는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알리페이 결제 요구가 늘어나 지난해 롯데면세점과 롯데닷컴 쇼핑몰이 알리페이를 도입하기도 했다. 중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중국인이 가진 알리페이를 노려야 하는 시대가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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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2년 이베이가 인수한 페이팔은 핀테크의 선두 주자다. 위는 2월24일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내한해 연세대에서 특강하는 장면. |
핀테크가 단순히 ‘카드보다 편리한 결제수단’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핀테크는 ‘금융시장의 충격’이기도 하다. 2013년 6월12일은 중국 금융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날로 기록된다. 알리페이가 ‘위오바오’라는 인터넷 금융상품을 출시하면서 중국 금융권이 가지고 있던 금융에 대한 패러다임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위오바오는 알리페이 예치금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머니마켓 펀드(MMF)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하고 남은 알리페이를 위오바오에 이체하면, 위오바오는 이 자금으로 중국의 톈훙 자산운용사를 통해 단기 집중투자를 한다. 이때 위오바오는 투자자들에게 연 6% 수익률을 보장했는데, 이는 시중은행 예금 금리(3.3%)의 두 배에 가까운 수익률이었다. 위오바오는 출시 9개월 만에 투자자 8100만명, 투자금 5000억 위안(약 90조원)을 모으면서 인기를 끌었고, 알리페이를 단순한 전자화폐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난 ‘핀테크 쇼크’였다.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등장한 핀테크 스타트업도 위오바오와 같은 ‘발상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아이디어가 바로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다. 트랜스퍼와이즈는 해외 송금을 중개하는 서비스다. 고객이 트랜스퍼와이즈를 통해 해외에 송금할 경우, 돈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만, 정작 실제 국가 간 송금은 일어나지 않는다. 통신망을 통해 국내 송금만으로도 실제 해외 송금이 일어난 것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에 사는 A가 유럽에 있는 B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트랜스퍼와이즈는 마침 같은 금액을 유럽에 있는 C로부터 돈을 송금받아야 하는 미국 거주민 D를 A에게 연결해준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A가 D에게(미국-미국), C가 B에게(유럽-유럽) 송금하는 거래가 완성된다. 이때 보내는 금액이 200파운드(약 33만원) 이하라면, 트랜스퍼와이즈가 가져가는 송금 수수료는 겨우 1파운드(약 1680원)이다. 실제 해외 거래가 일어나지 않아 환전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 핀테크는 사용자가 늘면 늘수록 서비스 안정성과 수익이 더 탄탄해지는 사업이다. 이른바 ‘눈덩이 효과’가 크기 때문에 벤처캐피털로서는 투자할 가치가 높다. 최근 트랜스퍼와이즈는 기업가치 평가에서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돌파해 화제를 모았다. 핀테크 서비스의 폭발력을 투자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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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서울 명동역에 붙은 알리페이 광고. 중국인 관광객이 요구해 몇몇 쇼핑몰이 알리페이를 도입했다. |
핀테크 업체가 대부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핀테크는 이 자본을 네트워크를 통해 동원한다. 인터넷 플랫폼에서 다수 투자자들로부터 소액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를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이라고 한다. 기존 금융권에 가장 위협이 되는 서비스가 바로 크라우드 펀딩의 일종인 P2P (Peer to peer) 대출이다. 개인과 개인이 직접 대부가 가능하도록 중개 업무를 수행하는 서비스다. 전통적인 금융기관의 핵심 사업을 파괴하고 새 영역을 만드는 기술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P2P 대출이 대부업의 일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P2P 대출 서비스인 영국의 조파(Zopa)는 최근 10년간 총 6억7000만 파운드(약 1조1600억원)가 넘는 대출을 중개했고, 미국 최대 P2P 대출 플랫폼인 렌딩클럽(Lending Club)은 2014년 3분기에만 62억500만 달러(약 6조8000억원)에 달하는 개인 간 대출을 중개했다. 개인뿐 아니라 소상공인을 상대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덱(OnDeck)도 등장해 P2P 대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한국에도 뱅크월렛카카오(다음카카오), 네이버페이(네이버)와 같은 핀테크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핀테크 분야에서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미국과 영국, 심지어 중국에서도 발전하고 있는 핀테크가 한국에서는 왜 이제야 소개되는 것일까. IT 인프라가 세계 최고라는 한국에서 왜 이러한 서비스가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핀테크가 발전할 토양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점과 핀테크가 있어도 기존 금융을 보완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점.
6개월에서 1년 걸리던 보안성 사전 심의 절차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경직된 금융 환경과 폐쇄적인 IT 정책이다. 액티브엑스(ActiveX)와 공인인증서로 상징되는 일방적인 보안 규제와 금융 관련 규제가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정부에서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보안성 사전 심의 절차는 금융과 IT 산업 환경 전반을 경직되게 만든 주범으로 평가받는다. ‘보안성 심의’는 전자금융 서비스가 얼마나 안전한지 금융감독원에서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인데, 이 심사에만 평균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데다, 불필요한 기능을 덧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핀테크 서비스가 기존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는 정도에 머물렀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금융기관 내에서 활용하는 금융 소프트웨어나 데이터 분석 분야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지급결제 분야나 플랫폼 사업처럼 금융 소비자의 생활 전반을 ‘변화시키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술만 놓고 보면 분명 진일보한 부분이 많지만, 정작 그 기술이 금융기관의 정보 독점(누가 돈이 필요한지, 누구에게 안전하게 돈을 빌려줄 수 있을지)을 더 견고하게 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기술 진보가 금융 소비자에게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가는 일반적인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오히려 정부다. 글로벌 핀테크 열풍이 국내 금융시장과 정책 결정에 외부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소관부처와 금융감독 기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핀테크 육성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월5일 열린 ‘2015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핀테크 등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금융시장에 진입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2015년 경제정책에서 핀테크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순간이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3월17일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핀테크사·금융사·정부가 참여하는 ‘민·관 합동 핀테크 지원협의체’를 구성하고 각종 낡은 규제를 발굴·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정부가 돌변한 데에는 해외 핀테크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크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 직구족이 늘면서 페이팔 같은 해외 결제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해외 결제수단이 국내 결제 채널을 대체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3월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이 꼽힌다. 이날 박 대통령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입은 코트를 언급하며, 중국인들이 이 코트를 구입하고 싶어도 한국 인터넷 쇼핑몰 결제가 어려워 구할 수 없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결제 시스템 전반에 작동하는 규제를 해결하라는 신호를 대통령이 직접 보낸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회사마다 핀테크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 TF팀을 구성하는 한편, 직접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지원책도 마련 중이다. 바클레이스, HSBC 등 대형 은행이 직접 핀테크 관련 창업을 지원하는 영국의 사례를 참고한 움직임이다. 핀테크 쇼크가 더 이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핀테크를 ‘시급히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선정한다고 해서 곧바로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갑자기 쏟아지는 핀테크 담론 속에서, 핀테크에 대한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핀테크에 대한 3가지 오해 참조). 무엇이 핀테크인지,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도 제대로 공유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이다.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규제 해결 만능주의’다. 규제만 풀리면 핀테크가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이는 일차원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각종 규제 때문에 핀테크가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산업의 특성상 규제가 풀렸을 때 파생될 수 있는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핀테크 명분 삼아 금융 규제 완화? 참조).
또한 한국 금융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당장 핀테크가 줄 이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반짝 관심’에 머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나라마다 다른 핀테크 발전 양상을 들여다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핀테크의 발전 경로는 크게 선진국형과 신흥국형으로 나뉜다. 금융산업이 오래전부터 발전했고, 금융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된 선진국에서는 기술이 어떻게 사용자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편리한 결제, 손쉬운 송금, 저렴한 수수료 등으로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식이다.
반면 신흥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금융 인프라를 처음부터 보완하는 방식으로 핀테크가 대두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알리페이는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중국 금융의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케냐에서 통신사의 송금 시스템인 ‘엠페사(M-PESA)’가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케냐 통신사 사파리콤(Safaricom)이 2007년 출시한 ‘엠페사’는 휴대전화 번호만 가지고도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최근에는 지급결제 서비스까지 확장되면서 1700만명(2013년)이 이용하는 대표 모바일 금융으로 성장했다.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부족한 현실을 통신사와 휴대전화 보급이 대체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이 핀테크에 나서길 주저하는 이유
그런데 신용카드나 인터넷 뱅킹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핀테크가 곧바로 기존 금융산업을 대체하기가 어렵다.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나, 기존 독점 구조에 안주하고 있는 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핀테크에 나설 만한 ‘이익’이 아직까지는 크지 않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인터넷 뱅킹이 처음 도입되던 시절에는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인력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이익’이 확실했기 때문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핀테크 열풍은 금융권에 어떤 이익이 생길지 확실하지 않다”라며 금융권이 먼저 나서서 핀테크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핀테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금융기관과 그 전산망을 적극 활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핀테크는 금융기관의 협력 속에서 편의성을 어떻게 증대시키느냐가 관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