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북한을 '악마'로 만들었나"
"누가 북한을 '악마'로 만들었나"
미국 중앙정보국(CIA)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1951년 이란을 시작으로 과테말라, 쿠바, 칠레 등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외국 정부에 대한 전복 공작 및 암살 음모입니다. 그러나 CIA 서울 지국장(1973~75년)을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89)의 행적은 이러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1973년 박정희 정권의 김대중 살해 음모를 무산시켰고,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이던 1980년에는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사형 집행을 막아냈습니다. 또한 주한 미국 대사 시절(1989~93년)에는 1992년 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켜 남북대화 진전 등 한반도 평화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1992년 대선을 의식한 한국 내 보수 세력과 미국 네오콘의 합작으로 1993년 재개됐는데, 만일 훈련 중단이 지속됐더라면 이미 오래 전에 한반도 평화가 정착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레그는 공직을 떠난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고, 2014년까지 평양을 여섯 차례 방문해 미국과 북한, 남한과 북한의 상호 교류와 화해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2월 평양 방문 때에는 6.25 참전 용사인 피트 매클로스키 전 하원의원을 대동해 6.25 당시 인제 부근에서 그와 전투를 벌였던 지영춘 북한군 중장을 찾아내 50여년만의 '개인적 화해'를 성사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만남을 보도한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외교"라는 그레그의 말을 전했습니다. 당시 민간 싱크탱크인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회장 자격으로 방북한 그는 평양이 해외투자 유치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남한, 미국 등과 정상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떠오른 2009년 여름,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젊은 김정은을 '수학여행' 삼아 미국으로 초청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물론 이 제안은 묵살됐죠.
한마디로 그레그는 폭력과 강압으로 다른 나라에 자국의 의지를 강요해온 미국의 전통적 외교방식보다는 화해와 협력에 의한 평화로운 국가 관계를 지향하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미국 관리로는 예외적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 ⓒ연합뉴스
그레그는 지난해 펴낸 자서전 <역사의 파편들>(지난 5월 한국어판 발간)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 일침을 가했습니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나 집단을 무조건 '악마화' 하려 드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체제를 제거하여 변화를 강제하려는 전통적인 미국의 접근방식은 이란, 과테말라, 쿠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혼란과 지속적 분쟁만을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 실례로 베트남, 이라크, 북한을 꼽습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과 미국 헌법을 너무도 존경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호치민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국이 자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독립을 허용한 것처럼 베트남의 독립도 인정해달라는 편지를 6차례나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을 공산 중국의 꼭두각시로 오판했고, 또 베트남의 식민종주국 프랑스를 미국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프랑스의 식민 지배 지속을 지원했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민(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결성된 베트남의 공산주의 독립운동단체)에게 결정적으로 패한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까지는 간접적으로, 그 이후에는 직접 개입해 무려 30년간 베트남과 전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패배였습니다. 미국의 젊은이 5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탕진함으로써 미국 경제는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세계 지도국가로서 미국의 위신이 여지없이 추락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중동의 군사강국으로 만들어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1차 걸프전을 통해 그를 격퇴했습니다. 하지만 권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후세인 제거를 위한 2차 걸프전에(2003년) 나섰습니다. 후세인은 테러의 배후세력도 아니었고 핵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미국은 예방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도발했고 후세인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숙적이었던 이란이 후세인 몰락에 따른 어부지리로 중동지역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중동 전역은 전쟁의 불바다가 됐습니다. 지난해 여름 미국은 3차 걸프전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가 된 것이죠.
그레그는 북한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실패 사례"라고 지적합니다. 북한의 실체와 의도에 대한 오판으로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에 이은 제네바 합의 파기입니다. 이로써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8년 간 동결됐던 북한의 핵개발은 재개됐고, 3차례의 핵실험 등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강했습니다. 또한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남북한 등 관련 6개국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바로 다음 날 미 재무부가 대북 금융제재에 나서면서 사실상 좌절됐습니다. 지난 5일 아세안 지역포럼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반도 핵 문제는 이란 핵 문제보다 더 일찍 진전을 이뤘어야 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란 핵타결보다 10년 전에 합의를 이룬 북핵 해결이 이후 진전되지 못한 것은 바로 미국의 고의적 사보타지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레그는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악마화'의 다른 이름은 '북한붕괴론'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보수 세력은 냉전이 끝난 바로 그 시점부터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망령에 씌워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악마화' 하다 보니 곧 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망상을 하는 것입니다. 곧 망할 나라와는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북핵 해결이 지지부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미 정보기관은 "북한도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국민들에게 살해당한) 루마니아처럼 1~2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만난 유튜브 운영자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인터넷이 북한에 침투할 것이고 그러면 잔혹한 정권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북한붕괴론이 나온 지 25년 후에도 북한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합니다.
남한에서도 북한붕괴론이 주기적으로 제기됐습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은 '고장 난 비행기'라며 "북한은 붕괴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해 10월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 합의에 이른 속내는 '북한이 3년 내 붕괴할 것'이라는 한국 정보기관의 예측 때문이란 것이 정설입니다. 곧 망할 나라이기 때문에 10년이 걸릴 경수로 제공에 합의해줬다는 것이죠. 1995~1998년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살아남았습니다.
두 번째 북한붕괴론이 제기된 것은 2008년 여름 이른바 '김정일 와병설' 때입니다. 그해 8월 14일 이후 김정일이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특히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월 9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북한붕괴론이 퍼진 것입니다. 9월 하순, 당시 서재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발표되면서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에 이제라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 안팎에서는 '이 기회에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중순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를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2월에는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두 헛된 기대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붕괴에 대한 보수 세력의 기대와 희망은 꺾이질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세 번째 북한붕괴론의 빌미가 됐습니다.
12월 21일 국가정보원 송년 모임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축배를 들었습니다.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터뜨렸고 곧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0일 박 대통령은 통준위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서 "통일은 내년에라도 될 수 있으니 여러분이 준비하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8월 18일 <한겨레> 보도). 정부는 만일의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붕괴론이 10여년만에 기승을 부리면서 남북관계는 엄청나게 후퇴했습니다. 2010년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에서 최근 비무장지대 내 지뢰 폭발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도발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받아들여야 할 상황입니다. 사드 1개 포대의 비용은 약 1~2조 원, 남한 전역을 방어하려면 4~8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비(37조원)의 약 20%나 되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문제는 사드를 배치한다 해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장 중국이 반발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대북 지원을 시작한 1995년 이후 2014년까지 대북 지원 총액은 3조2571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85%가 넘는 2조8500억 원 정도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집행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 지원은 계속 줄어 2009년 이후에는 연간 100~200억 원 규모에 불과합니다. 대북 교류와 지원을 대폭 축소한 결과 엄청난 국방비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보수 세력들에 대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간 대북 지원은 정부 18억 달러와 민간 6.2억 달러, 총 24.2억 달러로 연 평균 2.4억 달러였다. 이는 서독이 통일 직전까지 동독에 지원했던 연 평균 32억 달러의 13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국민 1인당 부담은 연간 5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약소한 대북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한편 북한에 대한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 세력이 북한붕괴론을 맹신하고 '북한 악마화'에 열을 올리는 데는 다른 저의가 있다는 혐의가 짙습니다. 바로 국내정치에서의 효용성입니다. 그동안 보수 세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5.24조치를 발표하고, 2012년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대선 쟁점으로 제기하는 등 북한 문제를 국내 문제 돌파의 유용한 카드로 이용해 왔습니다. 1992년 가을, 일시 중단됐던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이 전격 재개된 데는 그해 12월 대선에서 북풍 카드를 활용하려는 김영삼 후보 진영의 역할이 컸습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종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북한 악마화'는 보수 세력의 집권 연장에 매우 소중한 카드인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악마화'는 남북 대결 심화,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북한 붕괴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압박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포위하려는 미국 및 일본의 군사 대결 속에 한국은 움직일 공간을 잃게 됩니다.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이 사라지는 것이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한국이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대북 화해 협력을 통해 북한에 대한 외교적 레버리지(지렛대)를 갖는 것입니다.
지난 55년 간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음모와 공작을 펼쳐온 미국이 마침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쿠바 관계정상화가 미국의 국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반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국의 국익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갖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결정한다. 북한에 대한 발언권이 지금처럼 없다면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협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이 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만, 대립의 공간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 남북관계 개선을 한국이 주도할 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도 사라진다."
한국은 이미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이 남북관계에 주도권을 가지고 나설 때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첫 걸음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북한붕괴론이나 '북한 악마화' 같은 헛된 기대를 접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서 북한을 대하는 것입니다. 1999년 미북 관계정상화를 주도한 페리 전 국방장관의 지적대로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합니다.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반환점을 돕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는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전임 정부가 만들어놓은 5.24조치에 막혀 있고,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남북 및 한일 관계의 악화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으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에 자리를 내주었다는(양기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게 냉정한 평가입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각기 국가 이익과 목표를 위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입니다.
박근혜, 전쟁 나면 감당할 수 있나?
문제는 20일 포격 이후 군사적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포사격 직후 남측 군 당국은 전군에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지시하는 한편, 6군단에는 국지전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한미연합사는 대북감시태세인 '워치콘'을 격상했다. 북한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전선 지대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에게 완전무장을 명령했다고 한다.
동시에 북한은 전형적인 화전 양면전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명의의 서한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보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과 철거를 요구하면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방부 앞으로는 총참모부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오늘(20일) 오후 5시부터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하라"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최종 시한으로 통보한 22일 오후 5시부터 한반도 긴장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빈말을 할 줄 모른다'고 즐겨 말해온 북한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군사 위기를 조성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남한 군당국과 정부는 북한의 도발시 강력히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 북한이 운용중인 고사포(위)와 자주포 ⓒ연합뉴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그렇다면 이 사태에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통령과 정부의 핵심적인 책무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호하고도 강력한 보복 의지와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이미 이러한 의지를 천명한 상태이다.
남측의 보복 의지에 북한이 자제를 선택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만약 북한이 위협한 대로 '군사적 행동 개시'에 나서고 남한이 군사적 대응에 나서면 국지전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양측의 적대감과 군사적 준비태세를 감안하면 국지전이 확전될 위험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더라도 남한도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코리아 리스크'가 극적으로 부각되면서 휘청거리는 한국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조치, 즉 '예방' 외교에 나서야 한다. 그건 바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다. 구체적으로는 김관진 실장이 김양건 비서에게 전통문을 보내, 고위급 회담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고위급 회담을 통해 최근 군사 충돌의 발단이 되었던 지뢰 사건과 대북확성기, 그리고 20일 포격전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자고 제안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이 있다. 김양건의 전통문에는 "현 사태"의 수습뿐만 아니라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는 북한이 대북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도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이산가족 상봉 등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내놓은 대북 제안을 논의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화위복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북확성기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8월 4일 지뢰 폭발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린 군 당국은 11일부터 그 보복조치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에 강력히 반발한 북한은 20일 ‘경고성’ 선제사격으로 응수했다. 그만큼 북한이 대북확성기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그런데 대북확성기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취한 방식은 남한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뢰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 남측 요구를 수용하키는커녕, 이 사건을 부인하면서 군사적 도발의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규탄 받아 마땅하지만, 이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북 방송은 본래의 목적, 즉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실효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대북 방송을 일시 중단하고 확성기 제거는 북한의 재발 방지 약속과 같은 상응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렛대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환점과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 정부
공교롭게도 한반도 위기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반환점과 조우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이 시점에 대북 대화 제의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억제와 대화의 병행 전략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이 원칙이 빛을 발할 시점인 것이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수습하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날의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9월에 중국과 미국 방문을 예정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에서 확인된 것처럼, 미·중 양국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남북한 무력 충돌 방지이다.
박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만약 중국과 미국 방문을 앞두고 남북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미·중 관계에서 한국이 설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반면에 박 대통령이 평화의 리더십을 발휘해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다면, 박 대통령의 위상과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크게 올라갈 수 있다.
김종대 "전쟁 위기, 60~70일 정도 지속될 것"
김종대 : 예, 안녕하세요.
김종배 : 지금 나온 속보, 일단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김종대 : 한껏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요. 저는 한 60~70일 정도 지속될 걸로 봐요.
김종배 : 이 상황이?
김종대 : 예, 그렇게 보는 근거는 이게 2013년하고 지금 비슷한 양상입니다. 2013년에 한반도 전쟁 위기가 조성이 됐는데, 이때 김정은 주도로 북한의 전쟁 지도기구, 여러 가지 시스템을 한 번 다 굴려봤지 않습니까? 그게 한 66일간 지속이 됐죠. 3월, 4월에. 그래서 안보 관계 일꾼들이 소집회의 됐다, 또 전략 로켓 사령부가 1호 근무 태세에 돌입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생소한 조치들이 마구 남발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때와 유사하게 김정은 주도로 북한의 하나의 전쟁 준비 상태, 전쟁 준비 기구들이 일제히 시스템을 굴려보는 이런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김종배 : 지금 애청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사항은 '북한의 실제 도발이 있겠느냐' 이 문제일 것 같은데요. 북한은 어제 오후 5시를 기점으로 해서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타격하겠다, 이런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 5시가 되는데요. 내일 오후 5시 이후에 어떤 도발이 실제로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종대 : 예고한 대로 우리 군이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도발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은 또 자동으로 대응에 들어가니까, 이런 큰 도박을 감행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 군도 북한에 어떤 접점을 예의주시하면서 합리적인 조치가 아니라, 강대강으로 그저 자존심 싸움으로 마구 치닫는다면 만약 잘못 관리되어서 남북 간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죠. 사실 이런 걸 예측할 때는 전문가로서도 참 조심스러운 게, 이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흔히 예측을 해서 좀 빠져나갈 구멍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실은 우리의 예측이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만약에 잘못 관리했을 시에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전의 연평도 포격 당시와 같은 이런 사태도 예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종배 : 그런데 우리 군이 어제 접경 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준해서 여쭈어보는 건데요. 김정은이 전선 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고 했는데, 우리 군의 진돗개 하나에 비견한다면 준전시상태 선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수위로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김종대 : 국지적인 면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쪽도 전쟁의 위험이 높은 단계, 저쪽도 준전시단계. 마찬가지인데. 진돗개 하나라는 것은 전국적인 또는 전 전선에 걸쳐서 선포되는 것이 아니고 교전이 일어날 만한 해당 지역만 특정해서 선포되는 겁니다. 반면에 이번에 북한이 얘기하는 완전 무장 상태에서 준전시상태라는 것은 전선 전체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김종배 : 전선 지대의 준전시상태라고 했으니까 그러면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입니까? 전선 지대라고 하는 건?
김종대 : 여기서 전선 지대라고 하는 건 DMZ 일원, 그러니까 군사 분계선에 걸쳐있는 서부 전선, 동부 전선을 다 포괄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김종배 : 알겠습니다. 그러면 북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어제의 그 포격 도발일 텐데요. 잘 보면 1차 포격이 오후 3시 53분경에 고사포 한 발을 쏜 겁니다. 그리고 4시 12분에 여러 발을 어디에 쐈느냐 하면 DMZ에 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제한적 포격이라고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김종대 : 자, 우선 확실한 건 이것이 확성기에 대한 조준 사격이냐, 아니면 경고 사격이냐. 이 부분인데요. 북한은 확성기를 조준 타격하겠다, 이렇게 협박을 해왔지요. 그런데 실제 어제 사격은 다분히 제가 보기에는 실제 타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경고 사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확성기나 우리 군 초소에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고 인근 야산에 떨어진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건 겁주는 건데, 그러면 북한이 우리 군 초소나 확성기를 타격할 능력이 없느냐? 충분히 갖고 있죠.
김종배 : 그러면 야산에 쐈다, 직사포를 DMZ에 쐈다고 하는 것은 인명살상이나 이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이해를 해도 되는 거죠? 두 번째 포격 같은 경우에는?
김종대 : 예, 일단은 경고 사격입니다.
김종배 : 그러면 첫 번째 포격, 한 발인데 그게 고사포였고 야산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역시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거나 확성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 발, 위험용으로 경고용으로 쐈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 거죠?
김종대 : 경고 사격이고, 긴장 조성용이라고 봐야지요.
김종배 : 그러면 김정은이 얘기했던 준전시상태 선포라는 것도 일종의 긴장 조성용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
까, 없습니까?
김종대 : 긴장 조성용입니다. 사실 이거 제가 몇 번째 보는 건데,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말이 다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로 지금 두 번째 전쟁에 준하는 긴장 조성이거든요? 2013년에 이어서? 그전에도 보면 사실 북한군 총 참모부라든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라든가 또는 국방위원회라든가 명의만 바꿔가면서 유사한 사태가 많았어요. 2010년 같은 경우, 2009년에 주로 많이 이루어졌죠. 대남 전면 대결 태세라는 선언, 이런 게 참 생소하지만 한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NSC상임위까지 개최한 적이 있고. 2013년에는 전군에 1호 전투태세 근무 명령, 이것도 준전시상태 선포라고 보이는 거고요. 그 다음에 정전 협정 백지화 선언, 이런 경우는 미국을 향해서, 주로 미국을 향해서는 전시 태세 선언이 아니라 정전 협정 흔들기라는 양상으로 나왔고. 지금은 이런 게 다 나오는 겁니다. 과거에 있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다 종합해서 완전 무장 상태, 준전시상태 선언, 그다음에 지휘관 급파. 전선에 지휘관을 급파한다는 얘기는 옛날에 김격식 대장을 4군단장으로 임명한 뒤에 서해에서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나지 않았습니까? 이렇듯이 최고의 전문가를 전선에 보낸다는 것은 남측의 군사적 행동에 빠르게 조치하는 지휘 체계를 가동시키겠다, 이런 위협 혹은 협박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다 나오는 것이죠.
김종배 :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죠. 어제 포격 도발도 그렇고, 오늘 새벽에 나온 이른바 준전시상태 선포도 그렇고. 일단은 교전, 무력 충돌을 예고하는 이런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경고용, 분위기 잡기용이다, 일단 이렇게 해석한다고 하더라도요.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인 부분에서 뭔가 불씨가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김종대 : 그거는 관리하기 나름이에요. 만약에 우리도 이 사태를 잘못 관리한다면 이건 긴장 조성이 실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겁니다. 예컨대 어제 우리가 대응 사격한 것도 사실은 경고 사격이에요. 북한 군 초소나 시설에 대한 조준 사격은 아니란 말입니다.
김종배 : 원점 타격은 아니었던 거죠?
김종대 : 예, 쏘기는 쐈지만 우리도 뭔가 바로 도발 원점을 격파시키고 지휘 세력까지 타격하는, 이런 사격은 아니었는데. 만약 그런 사격을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북한이 대응 안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남과 북은 치밀하게 상대방의 의도를 관찰해가면서 확전을 방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대응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게 만약 잘못 관리돼서 전쟁을 불사하면서 어떤 희생도 무릅쓰고 이번 기회에 완전히 상대를 제압하겠다고 하면, 제압당할 북한입니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강대강으로 가는 것이죠.
김종배 :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 방송의 지속 여부, 지속을 한다면 북한의 대응 양상. 이 국면에서 대북 심리전 방송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김종대 : 대북 심리전 방송이 계속됐을 때, 문제는 이겁니다.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것이죠. 제 예상으론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경고 단계였던 무력 시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될 겁니다. 예컨대 전방에 우리가 가장 북한의 무섭다고 하는 장사정포를 일제히 포문을 개방해서 사격 준비 태세를 취한다든지 아니면 북한의 어떤 각종 화기가 일제히 화력을 수도권에 발사할 수 있는 전투준비태세로 돌입하고, 실제 발사할 것 같은 모양을 취한다든지. 갱도에서 장사정포를 넣었다 뺐다 이렇게 하면 우리 군 계속 비상이 걸릴 것 아닙니까? 이런 식의 무력 시위도 예상해 볼 수 있는 거고요.
김종배 : 문제는 제가 궁금한 게 북한이 어제, 22일 오후 5시까지가 되겠죠, 48시간이었으니까?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고 이미 선언을 해버린 상태에서, 그렇다고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 방송을 그만둘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종대 : 못 그만두죠.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협박에 의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종배 : 바로 그 점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48시간 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역으로 48시간 동안은 최소한 48시간 동안은 심리전 방송을 그만 못 둔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얘기가 성립되는 거잖아요?
김종대 : 물론, '48시간 이내'라고 하면서 북한이 우리 김관진 안보실장에 보낸 전통문에 나와 있는 얘기 아닙니까, 거기에는 유엔사 장성급 회담이나 아니면 남북 김양건, 김관진 정도의 대화 접촉이나, 이런 걸 통해서 '우리도 자제를 하고 싶으니 대화를 하자' 이렇게 문을 열어둔 거란 말이죠.
김종배 : 바로 그건데요. 이 국면에서 남북 핫라인이 가동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김종대 : 핫라인이 가동된다는 징후는 아직까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대화에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매우 특별한 이유라고 볼 수가 있는 건데, 저번에 지뢰 사건 났을 때 한미 양국의 대응에 매우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통 때, 예컨대 전쟁 위기까지도 갈 수 있는 연평도 포격 도발이나 이런 것들 생각해보면 유엔이 개입 안 했거든요? 유엔사령부가 전혀 개입 안 했어요. 그때 제가 취재해본 결과, 2010년 11월 23일에 남북 간 포사격 교전이 벌어졌는데, 우리 합참에서 유엔군 사령관이죠, 월터 샤프 대장한테 총 11번 전화했습니다. 그 때마다 되돌아온 답변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라. 한국 정부의 자위권 차원에서 할 일이지 우리한테 쏠까요, 말까요 물어보지 마라' 이거였습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이번 지뢰 사건은 전쟁이 날 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유엔사령부가 조사도 하죠, 대북 접촉 제안도 하죠. 또 미 국무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성명을 발표하죠. 모든 우리 측 조치보다 유엔사 조치가 더 빠릅니다. 그러니까 위기 관리를 떠맡은 거예요. 이 차이를 북한이 본 거지요. 유엔사가 모든 위기 관리를 떠맡고 한국 정부의 존재감이 없었던 사건이 지뢰 사건인데, 지뢰 사건이며 포 사격 도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냐, 미국하고 담판을 져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전략 목표하에서 이제껏 지난 3년간 준비되어온 겁니다, 이게.
김종배 : 그러면 형식적으로는 유엔사, 내용적으로는 미국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겁니까?
김종대 : 바라던 대로 가는 것이죠. 이렇게 유엔사가 기민하게 위기 관리를 떠맡은 건 저는 한 20년 동안 처음 봤어요. 그러면 미국하고 담판을 지을 수 있는 대화를 마침 유엔사가 제안을 하고 있으니까 판을 크게 벌려서 북미 간 평화 협정 체결을 할 수 있는, 혹시나 대화의 장이 열리지는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고.
김종배 : 또 한 가지 체크포인트가 있는데요. 중국이 전승절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9월 초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북한이 이런 식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게 중국의 입장에서 바라볼 땐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김종대 : 다분히 대중시위라고 볼 겁니다. 사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 지뢰 사건 와중에도 북한에 대한 대화제안을 한 것도 참 이례적인데, 그것에 이어서 중국 방문을 발표했죠. 그런데 이런 것들도 북한에 대한 압박 혹은 고립감 심화의 한 요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주목해야 할 건 무엇이냐 하면 원래 북한하고 중국 관계가 상당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최근 지뢰 사건에 이르기까지는 악화가 돼도 너무 악화가 된, 말하자면 거의 이상 징후라고 할 만한 상황까지 악화가 됐단 거예요. 이걸 우리 한미 정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분석했던 겁니다. 전선뿐만이 아니고 지금 국경 지대에서 북한의 최정예 병력들이 배치되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아무리 북중 관계가 악화됐다고 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는 겁니다.
김종배 : 맥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겁니까, 그러면?
김종대 : 그리고 관련된 사실이 두 가지가 더 언론에 조금씩 나왔는데, 이걸 왜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하는지 모르겠는데. 김정은의 중국에 대한 초강경 발언입니다. 아예 '중국X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그러면서 '국제 정서의 본질을 알게 해주겠다' 이런 발언이 언론에 일부 나오고 있고요. 또 그전에 원전반대그룹이 해킹을 해서 문서를 깠죠. 여기서 나온 게 무엇이냐 하면 중국이 북한이 붕괴됐을 때 4개국 공동 통치를 제안했다. 그러니까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분할해서 통치한다는…. 저는 그럴 리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중국이 그런 제안을 우리 측에 했을 리는 없어요.
그런데 하여간 우리 국방부 내부 문서상으로 중국의 이런 제안이 있었다고 하면서 함경도, 평안도, 이렇게 다 분리해서 한국은 평안도, 황해도를 통치하고, 이런 식의. 아주 북한으로 봐선 이게 설령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모골이 송연할 얘기도 나왔죠. 그 다음에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이 갈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뭘 말하는 거냐 하면 도대체 중국하고 북한이 동맹국이 맞느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거거든요. 이걸 한미 양국이 이상 징후로 포착하고 있단 것이고, 그다음에 더 심각한 사안이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북중 간 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건 그만큼 북한 체제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겁니다. 최근 한미 양국이 북한 붕괴론 쪽으로 완전히 경도됐다고 전 봅니다. 이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얘기를 입 밖으로 한 것이죠.
김종배 : 통일준비위원회 발언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종대 : 통일준비위원회 발언도 그랬고, 그전에 국정원 비밀 방문했을 때에도 똑같은 발언을 했고.
김종배 : 그렇습니까?
김종대 : 예, 벌써 두 번이나 발언이 언론상으로 나온 건데. 내년에 북한에 무슨 일 생길지 모른다,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여러분은 통일 준비에 만전을 기하셔야 할 것이다,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정확한 발언입니다. 언론에 나온 건 조금 부정확하게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정확한 발언은 이거예요. 그리고 국정원 방문했을 때는 북한에 내년에 무슨 체제가 있을지 모른다, 그다음에 김정은 공포 정치로 인해서 고위급 망명이 속출하고 있다. 북한 체제가 불안하다, 이렇게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이렇게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유가 북한 내부 체제 불안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이게 지금 한미 양국 정보기관의 해석이자 우리 청와대의 생각이고, 그런 만큼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고 보는 겁니다.
김종배 : 여기서 중간 정리를 한 번 하죠. 그러니까 지금 지뢰 도발로부터 시작됐던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되겠지만 관리될 것이라고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기조가 될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긴장, 대치 상태에서는 작은 불씨가 어떤 결과를 빚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작은 불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이게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정리를 해야 하는 거겠죠?
김종대 :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는 위기 관리 차원에서 한미 양국이 공동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 분쟁에 연루되고 싶지 않아 하는 나라니까 그렇게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관리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고, 지금 대북 인식입니다. 지금 북한에 형식적인 대화 제안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을 불신하면서 곧 붕괴할지 모른다는 이런 식의 북한 붕괴론에 경도돼 버리면 남북 대화에 있어서 상당히 그르칠 가능성, 그러니까 이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위기로 전환시킬 가능성이 높단 거예요. 북한 붕괴론이라는 것이 그만큼 우리 대통령들에게는 하나의 모르핀 주사 같은 겁니다.
김종배 : MB도 계속 얘기했던 것 아닙니까, 사실?
김종대 : 김영삼, MB, 박근혜 정부가 똑같은 패턴인데. 곧 망할 북한하고 무슨 협력을 하느냐, 이러다가 협력할 기회를 놓쳐온 것이죠. 즉, 기회를 위기로 전환시켜 온 겁니다. 그런데 정보기관이 북한의 이상한 점을 보수성향의 대통령에게 갖다 주기만 하면 이게 마약 주사처럼 작용해서 남북 관계가 와르르 무너졌단 말이죠. 뽕 맞은 대통령이죠.
김종배 :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지금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김종대 : 을지 프리덤 가디언 와중에?
김종배 : 네.
김종대 : 이걸 비상식적으로 보는데 2013년에 한미 훈련 와중에 전쟁 위기까지 갔던 거거든요? 미국이 스텔스 전폭기를 보냈죠, 스텔스 전투기를 보냈죠. 별거 다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북한의 맞대응이 바로바로 나왔어요. 무수단리 로켓을 괌에 쏘겠다고 했고, 또 장거리 미사일은 그 이전에 발사했고. 북한이 가진 건 다 보여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강대강으로 부딪치는 게 최근 추세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한쪽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미 연합 훈련이 있으면 한쪽은 방어 태세로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공격에 공격으로 맞서는, 이런 특이한 형태의 대결이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라는 거예요. 한미연합 훈련이건 아니건 김정은 위원장은 '나는 그 정도에 쫄을 지도자가 아니다' 이러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한껏 높이는 쪽으로 대응하는 것이죠.
김종배 : 알겠습니다. 일단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표면적으로 드러난 군사적 긴장 상태도 상당히 중요한데, 그 배면의 한반도 정세가 참으로 묘하게 그리고 급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징후가 여러 군데서 포착이 되고 있단 점도 놓쳐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김종대 : 9월에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 방문 때까지가 말하자면 이 도박의 백미를 이룰 것으로 저는 판단합니다.
김종배 : 눈을 뗄 수 없이, 말 그대로 24시간 시선의 레이더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대 : 네.
김종배 : 알겠습니다. 아마 조만간 또 인터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차 인터뷰만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종대 : 네, 감사합니다.
김종배 : 지금까지 김종대 편집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