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딜레마 - 권력과 장군의 '매춘', 이건 군대가 아니다!
"연평해전 딜레마, 승전 vs. 개죽음"
제2연평해전 발발 13주년이었던 6월 29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평택 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추모사를 통해 "우리 장병들이 북한의 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라면서 공식적으로 제2연평해전을 승전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주목을 받으면서 제2연평해전에 대한 재평가와 당시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교전수칙이 장병들을 '개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해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수도통합병원에도 가지 않고 영결식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지금 정서로 볼 때 납득되지 않는다. 사실 이건 매우 잘못된 처사"였다며 "당시 청와대는 국가 위기관리의 원칙에 맞게 엄정하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의 중요한 과오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사안과 관련된 비판의 화살이 김대중 대통령에게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지휘책임이 있었던 당시 국방부 장관, 합동참모본부 의장, 해군 작전사령관, 해군 2함대 사령부, 해당 전단에 편대장까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어야 할 이상희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하기까지 했다.
승전이라는 개념을 갖다 붙인 것도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김 편집장은 "군은 제2연평해전이 승전이었다고 하면서 일선 전투원의 죽음은 너무 서럽고 억울하다고 한다"면서 "승전이면서도 아무런 영광도, 환호도 없는 이 전투의 비극성은 감성적으로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지만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딜레마"라고 꼬집었다.
그럼 대체 왜 군은 제2연평해전에 모순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우고 있는 것일까? 김 편집장은 이를 두고 상처 입은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연평해전에 이어 천안함 사건이라는 비극을 겪고 이제는 각종 방산비리로 몸살을 앓는 해군은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돼 있다"면서 "상처 입은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외부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 영화 <연평해전>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갈망이 비단 해군에만 국한돼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공군 역시 방산비리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육군은 잇따른 사고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신간을 펴낸 김 편집장은 "지금 장군들을 포함해 군 전체는 상당한 수준의 자존감과 정체성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군이 처해있는 위기의 실태,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과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지난 3일 김 편집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김 편집장과 인터뷰를 두 편에 걸쳐 소개한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2013년 <서해전쟁> 이후 얼마 전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책을 펴내셨다. 김영삼 정부 이후부터 현 정부인 박근혜 정부까지, 시대를 움직였던 장군들이 많이 거론되던데 책의 제목처럼 장군뿐만 아니라 군 전체가 위기인 것 같다.
김종대 : 지금 장군들이 처해있는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거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행동과 의사 결정, 문제의식 등 여러 가지 방식들에 대해 들여다봤다. 지금 장군들을 포함해 군 전체는 상당한 수준의 자존감과 정체성 위기에 처해있다.
해군이 팔 걷어붙이고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만든 것도 이런 것의 연장선이다. 연평해전에 이어 천안함 사건이라는 비극을 겪고 이제는 각종 방산비리로 몸살을 앓는 해군은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상처 입은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외부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 영화 <연평해전>을 탄생시킨 것이다. 적어도 이 점 자체는 인정하고 우리가 포용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교전이다. 99년 6월 15일 당시 군은 10척의 북한 함정들 중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대형 경비정을 대파했으며, 중형 경비정 2척은 기동이 불가능해졌고 소형 경비정 2척은 파손됐다. 반면 남한은 함정과 인원 모두 경미한 피해를 입는데 그쳤다.
이후 3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긴급 출동한 고속정 253편대 중 참수리 357호가 북한의 포격을 받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 공격으로 남한군은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포함, 모두 6명의 전사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남한군의 대응사격으로 북한 경비정 역시 예인선에 이끌려 되돌아갈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건 이후 '서해교전'이라 불리다가 2008년 4월부터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됐다. 편집자)
그러려면 무엇보다 진실에 입각한 진정성 있는 자기주장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승전이라고 말하는 이 '연평해전'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일단 '해전', '승전' 이런 용어는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된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해교전인 제2연평해전은 우리 고속정과 북한 함정이 1대1로 붙다가 나중에 초계함이 도발자를 응징한 사건이다. 이런 전투는 '교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제2연평해전이 승전이라고 연설했지만, 사실 이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예비역 장성들도 많다.
그런데 군은 제2연평해전이 승전이었다고 하면서 일선 전투원의 죽음은 너무 서럽고 억울하다고 한다. 축하해야 할 승전이지만 축하할 수 없는 전투라는 이 교전의 모순성이 문제다. 이긴 전투지만 분하고 슬픈 죽음이라는 결론은 우리에게 정서적 딜레마다. 승전이면서도 아무런 영광도, 환호도 없는 이 전투의 비극성은 감성적으로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지만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한 딜레마다.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죽지 않아도 될 죽음이 발생했다면서, 잘못된 교전수칙과 대북 정책 때문에 6명의 목숨이 사라졌다고 비난한다.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개죽음'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인들이 '개죽음'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교전이 가치를 떨어뜨려 놓고, 같은 입으로 이걸 승전이니 해전이니 하면서 의미를 격상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모순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평택의 제2함대사령부에 있는 제1연평해전 기념비는 승전비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 기념비는 전적비다. 그간 해군도 제2연평해전을 승전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제1연평해전의 영웅인 박정성 2함대 사령관조차 예전에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제2연평해전 승전 논리는 억지스럽다"고 비판한 적 있다.
만일 그들이 '개죽음'을 당한 것이라면, 그들을 그렇게 사지로 몰고 갔던 당시 군 주요수뇌부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런데 보수는 군 수뇌부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고 오직 김대중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사실만 부각한다. 그리고 당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어야 할 이상희 당시 합동참보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당시 이 교전에 대해 조사한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해군이 기강이 무너져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던 남재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으로 영전했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오직 대통령 탓만 하면 맺혔던 한이 풀리는 것인가? 여기서 한국군이 처한 역설적 상황이 드러난다.
프레시안 : 올해 들어서 승전이라는 평가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것 같은데,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김종대 : 군 내부의 교전수칙이나 작전지침, 정부의 대북정책과 무관하게 현장에 이미 무너진 지휘체계와 기강문란이라는 현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참수리 357호를 포함한 우리 고속정 편대는 시속 6노트라는 최저속도로 북한 경비정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는 함정의 최고 속도인 돌격기동, 그리고 적함에 피해를 주기 위한 근접 차단기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기동이었다.

▲ 영화 <연평해전>ⓒNEW
더 황당한 일은 지금은 작고한 정병칠 당시 2함대 사령관이 나에게 증언하기를 자신은 "적 함정과 3km 거리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불과 150m 앞이라는 섬뜩한 거리까지, 그것도 최저 속도로 기동했는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서 어떻게 연평해전을 말할 수 있나?
사실 전력상으로 보면 우리 함정은 북한함정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기 굉장히 어렵다. 참수리 고속정의 최고 속도가 30노트 (시속 약 55km)인데, 이 속력으로 북한 함정 옆을 지나가면 그 물결에 북한 함정은 출렁거려 견딜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북한 함정의 기관 성능이 낮기 때문에 우리 함정을 추적할 수 없다. 구식 지상 장비를 배에 그대로 얹혀 놓은 북한 함정은 흔들리는 배에서 사격을 정확하게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우리가 접적수역에서 얼마든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인데 왜 그렇게 무력하게 기습공격을 당했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이 교전은 왜 발생한 것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당시 우리 쪽이 전투대형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위험한 수역에서는 앞쪽에 고속정이 기동하고 뒤에서는 초계함이 호위하게 돼 있는데 당시 초계함이 고속정 편대의 13km 뒤에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작전의 직위자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당시 교신기록과 전투 상보가 공개될 필요가 있다. 당시 사건 관련해서 교신기록이나 전투 상보 어느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도 공개하는 나라가 왜 이런 것은 공개하지 못하나? 진실을 묻어두고 감성에 치우칠 문제가 아니다.
초계함이 와서 대응하기 전까지 20분이 넘도록 고속정 편대는 주포와 부포 모두 응사하지 못했다. 결국 1999년 제1연평해전 때 승전한 이후 3년 동안 해군이 자만감에 도취돼서 현장 기강이 무너져 내렸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부당하게 지휘계통에 간섭하여 "적 함정에 근접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했을 것이다. 이 역시 진상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당시 합참의 해상작전과장을 역임한 예비역 해군 심동보 제독은 나에게 "교전이 끝나고 비통한 심정으로 교훈을 분석하고 합참의장 지휘서신을 작성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처벌을 받아야 할 현장 지휘관까지 표창장을 준 것은 심했다는 의견이었다.
이런 궁금증을 놔두고 이제 와서 교전 수칙 때문에 아까운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세상에 어느 국가에 적이 쏘고 있는데 그냥 얻어맞으라는 교전 수칙이 있겠나? 그런 교전수칙이 있다면 그건 범죄다.
선체끼리 충돌하는 근접차단은 1999년의 제1연평해전에서만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 당시는 사정이 달랐다. 어선을 사이에 두고 양측 경비정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포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제1연평해전이 끝나고 박정성 해군 2함대 사령관은 "더 이상 근접전투는 없다"고 부대원들에게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교전수칙 때문에 전투원이 희생되었다는 단순논리 말고 우리는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제2연평해전의 밝혀지지 않은 진실, 사람들이 묻지도 않고 군이 답변하지도 않은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한편 이에 대한 보수언론의 관점은 해군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따질 필요가 없이 오직 정치논리, 그들의 색깔론으로만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수도통합병원에도 가지 않고 영결식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지금 정서로 볼 때 납득되지 않는다. 사실 이건 매우 잘못된 처사였다.
당시 청와대는 국가 위기관리의 원칙에 맞게 엄정하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의 중요한 과오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이유로 선한 해군, 악한 대통령이라는 이분법으로 밀어붙이려는 정치적 의도가 나온다면 곤란하다. 모든 걸 상부의 잘못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태도이자 또 하나의 색깔론이다.
프레시안 : 전투대형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기강 해이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군 책임자들을 강력히 처벌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왜 김대중 정부는 당시 책임자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인가?
김종대 : 우선 월드컵이라는 축제 분위기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청와대가 상당히 심각함을 느낀 것 같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도 이 문제를 조사했고 사태를 규명했던 일인데도 이 문제가 정국의 변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북한이 관련한 사과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일단은 유가족과 현장 지휘 책임자들을 두루 위로하는 선에서 끝낸 것이다.
그러나 사건 경과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사실 제2연평해전은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해군 작전사령관, 2함대 사령관, 해당 전단장까지 모두 보직해임 됐어야 할 정도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사후처리를 하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위기관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에게도 상당한 과오가 있었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철저하게 책임자를 색출해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청와대 군 인사개입, 시작은 노무현 정부였다
프레시안 : 남재준 국정원장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했을 때 청와대와 군 인사개입을 놓고 상당한 갈등을 보였다. 군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같은데?
김종대 : 그 이전 정부는 정권 차원에서 인사진급을 시켜야 할 대상자가 있다면 참모총장과 협의해서 가능한 선에서 배려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 참모총장은 다른 불이익이 없도록 조정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도 잘못된 인사 관행임엔 분명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방부에 대놓고 장성 진급 심사를 다시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황당하고 노골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K 행정관은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찾아와 민정수석의 서명이 들어간 '대통령의 지침'을 들고 와서 육군이 추천한 장군 진급 대상자를 검증해본 결과 상당수 문제가 발견됐으니 그중 3분의 1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윤 장관은 이에 대통령 지시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고 K 행정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윤 장관은 즉시 대통령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김승렬 차관보를 육군에 급파했다. 하지만 남재준 총장과 윤일영 인사참모부장은 인사를 바꿀 수 없다며 맞서고 있었다.

▲ 남재준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양측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국정상황실에 파견 나가 있던 J 중령이 윤 장관을 찾아와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면서 김우식 비서실장이나 청와대 부속실장에게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실장과 통화 후 뭔가 사태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윤 장관은 김 차관보에게 지시를 철회하라고 했다.
이는 청와대 일부 야심가들이 자신의 사적인 판단만 가지고 국정을 농단한 것과 다름없었다. 당시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모른 채 민정수석실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괴담을 듣고 그러한 조치를 취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이 군 인사 전체의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겨졌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해놓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청와대가 군 인사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가 화두가 됐고, 이명박 정부 때는 급기야 청와대가 군 인사를 직접 검증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윤 장관의 왔다 갔다 하는 지시에 남 총장은 청와대와 국방부가 육군을 와해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인사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육군의 갈등이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육군 내부에서도 인사 문제를 가지고 많은 잡음이 들렸다. 남재준 총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 챙긴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소장 진급에서 탈락한 K 장군이 남 총장이 자기 사람만 챙긴다는 괴문서를 뿌렸을 정도였다.
또 진급 대상 장교 중에 일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기무사의 신원 자료가 검증 없이 활용되면서 인사의 공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무사가 11명의 대령에 대해서만 음해성 검증자료를 만들어 남 총장에게 제공했고, 그는 이를 검증절차 없이 인사위원회에서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결과 11명 모두가 장군 심사에서 탈락했다. 군 내부에서는 이를 남재준의 '자기 사람 챙기기'로 받아들였다. 이후 군 검찰단은 2004년 말, 인사비리 협의로 육군본부를 압수수색 하기에 이르렀고 군 내부에서는 인사비리 수사에 힘을 실어줬다.
이 인사비리 수사에서 비록 남 총장 본인은 기소되지 않았지만 주요 인사 실무자들이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서 육군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정권이 끝난 지 한참 지난 이후에도 회자됐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인 이상희 전 장관은 2013년 3월 한 논평에서 당시 육군 인사 사건을 지목하면서 "당시 육군 최고 책임자는 밑에서 한 일이라 자신은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했다"며 남 총장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 자주국방 의지도 있었고 군 예산을 늘리는 등 군에 대한 상당한 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장군들이 여당으로 갔다. 그 이전에는 군인이 정치논리에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많아진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우리 군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반북의식때문은 아닌가 싶다.
김종대 : 군사의 본질은 '나눌 수 없는 이익'이다. 그래서 군인들은 정략보다는 전략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군인들의 입장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북한을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 내지는 통합, 접근의 논리로 대했다. 군이 이러한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시 정부는 군인들이 느끼는 혼란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이냐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정부 때 제2연평해전 군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한 것과 노무현 정부 때 인사 개입 문제는 이른바 '진보 정권'의 실책인 것 같다.
김종대 : 진보 정권에서 두고두고 참고해야 할 사건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의 인사 개입이 뒤에 오는 보수정권에 준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러다 보니 군이 정치권력에 대해 굴욕적이고 모멸감을 느끼는 것을 감수해야 할 처지가 된 측면도 있다.

▲ <위기의 장군들> (김종대 지음, 메디치 펴냄) ⓒ메디치
특히 주목할만한 인물로 장경욱 기무사령관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군 유력자들이 인사를 전횡하는 것에 대한 보고서를 김기춘 비서실장한테 올렸다가 사령관직에서 쫓겨났다. 그 보고서는 일선 육군 사단장들의 여론을 종합해서 사단장들의 불만이 사실인지를 검증해서 써서 올린 보고서였는데, 제대로 된 정보를 올렸다가 되레 경질당한 것이다.
그런데 김기춘 실장이 이걸 당시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에게 누설했다. 군 인사에는 5개의 머리, 즉 안보실장과 경호실장,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이 있다고 하는 와중에 그걸 2명에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이런 사람은 청와대에서 보호해줘야 하지 않나?
책을 통해 누가 선하다 악하다는 것보다는 군인이 자기 본분을 잘 지켰는지를 보셨으면 좋겠다. 어느 정부든 군대와 군인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고뇌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군대가 자긍심이 넘치는 곳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군 내에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 우리가 언젠가는 손을 잡아야 한다. 군대의 주권자인 시민들은 이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군의 모습을 그려가야 한다.
군 인사로 점철된 박근혜 정부, 국가 재난 부른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유독 군 출신 인사가 주요 공직에 많이 진출했다. 군 출신들이 사실상 외교 안보 정책을 쥐락펴락하면서 2년 반이 지났다.
김종대 : 군사는 절대로 상대와 나눌 수 없는 이익을 다루는 영역이다. 국가가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익을 다루는 것이다. 반면 외교는 상대방과 나눌 수 있는 영역을 다룬다.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전략이고, 싸우지 않고도 유리해질 수 있는 것은 정략이다. 그런 면에서 군사는 전략적으로, 외교는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눌 수 있는 국익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해서 군사와 외교가 각기 제자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제대로 못하면 지정학적 어려움이 상존하고 있는 우리는 더욱 재난이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대외정책, 특히 남북관계에서 군을 앞세웠다는 것은 정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마저도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보면 그런 부류의 몇몇 장군이 존재한다. 남재준 국정원장, 프랭크스 연합사 작전참모, 맥도널드 연합사 작전참모부장 등이 대표적인데 이 사람들은 전쟁의 화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들에게는 모든 인간의 역사는 이기는 역사와 지는 역사,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굴복시키지 않으면 굴복당하는 이분법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모든 불행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과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외교를 통해 일본을 '관찰'할 것인가, 아니면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과 같은 군사적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냐를 놓고 조선 조정이 큰 혼란에 빠진 바 있다. 결국 당시 조선은 '자중지란'으로 무너졌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00여 년 전에 신숙주는 <해동제국기>를 통해 일본과 '실화'(失和, 화친을 잃어버림)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전혀 위협이 아니었던 일본이 어느 순간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유성룡의 <징비록>은 신숙주가 경고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는 신숙주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은 것이 임진년 전란의 이유가 됐다며, 아주 통탄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발발 이후 300년이 지난 189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때 한국에 들어온 일본 지도층들이 전부 <징비록> 애독자들이었다. 조선은 300년 전 유성룡의 고언을 무시한 데 비해, 일본에서는 징비록이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300년 전에 자신들이 왜 실패했는지 교훈을 찾고, 대외적으로 확장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가 됐다.

▲ 임진왜란을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명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던 선조. 드라마 <징비록>의 선조(김태우). ⓒ한국방송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임진왜란과 유성룡의 <징비록>-청일전쟁의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일본과 관계에서 외교와 군사를 각기 어떻게 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조선 500년은 이 과제 하나만으로도 외교와 군사의 본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시대다.
조선이 평시에는 외교를, 비상시에는 군사 영역이 그 존재 목적에 충시하면서 맡은 바 본분을 다하도록 했다면 국가적 파국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 500년이 불행에 빠진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해동제국기>와 <징비록>을 모두 무시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책을 쓰는 이유는, 제 책이 그런 책들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지만, 현대에도 <징비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군사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제 책은 군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자기의 치부나 은밀한 것들은 묻어두자는 습성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데 역사를 고민하고, 군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뇌하는 장교가 존재한다면 제 책에 대해 그렇게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인지 제 책은 지적욕구과 왕성한 영관급 장교들이 집이나 화장실같이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는 개인적 공간에서 많이 읽힌다고 하더라. 실제로 어떤 소령 한 명은 <위기의 장군들>이전에 출간했던 <서해전쟁>을 합참 사무실에서 펴놨다가 부서장한테 세게 혼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웃음)
프레시안 : 한 나라의 외교와 군사가 적절하게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데, 문민 지도자들이 외교적 문제를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 아닌가?
김종대 : 외교를 정략이 아닌 전략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즉 외교도 이기느냐, 지느냐의 이분법적인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보면 이런 경향이 아주 극명히 드러난다. 한일관계의 경우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일본을 굴복시킬 것이냐 아니면 굴복당할 것이냐 라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완전히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것, 굴욕감을 주거나 굴욕을 당하는 것 이런 식의 선택지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남한의 태도에 북한은 징벌하겠다는 자세로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북한식의 굴욕감이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극명한 이분법적 사고를 탑재하고 있는 한국의 안보 담당자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자존감의 큰 상처를 입는다. 그러면서 우리도 북한에 무언가의 공포를 줘야 한다는, 징벌자로서의 위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하지 않으면 무너진 자존감을 견딜 수가 없는 거다.
'공포의 균형'이라는 말이 있다. 냉전 시대 때는 핵 균형을 의미했는데,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공포가 균형을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한 쪽이 상대방을 공격했는데 상대방은 줄 수 있는 공포가 없을 때 세력 균형은 무너진다. 이를 맞추는 것이 최상의 안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이른바 '북핵'의 위협을 막기 위해 한국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킬체인, 핵 무장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 안보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이 세 가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상처 입은 자존감을 해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적극적, 능동적 억제의 실현 가능성은 둘째 문제다.
이게 군사적 담론으로 북한을 보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고 습관이 다른 외교적 사안에도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을 방문 할때도 우리 대통령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환영을 받았느냐에 집중한다. 외교마저도 상대를 이기거나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전략적 사고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과신, 위신 세우기, 상대방에 대한 나의 존재감 과시, 이런 것들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외교에 있어서는 사실 굉장히 불합리한 사고다.
프레시안 : 그런데 책에서 보면 지난해 무인기 사건과 관련해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비교적 순수하게 안보적인 차원에서 접근한 것 같다. 사건 초기 국군 정보사, 기무사, 국정원,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심문조가 조직돼서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 정치적인 요인으로 이같은 결론이 조정됐고, 결국 남 원장과 김 실장의 경질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군 보다도 문민 지도자가 더 군사화된 사고 방식을 가진 것 같다.
김종대 : 무인기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상황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유우성 씨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왔다. 정권과 국정원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무인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에 정권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무인기 사건을 이용해 안보 정국을 구성하려고 했다.
이후 남 원장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인기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했다. 4월 14일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간 발표가 나온 날, 국정원 2차장이 경질됐고 남 원장은 3분에 걸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 때 남 원장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무인기로 조성된 엄중한 안보 국면'이라는 표현을 썼다. 간첩조작 사건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로 핵실험과 무인기를 사용하기 위한 정권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전략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군인임에도 무인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대공용의점을 찾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군인으로서는 당연한 절차를 따라 사건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무인기가 정말 위협이 되는지 파악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위협이 되지도 않는데 섣불리 국방 재원을 낭비하면 다른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정치권력의 의도와는 다른 결론이었다. 그래서 김장수 실장이 경질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간첩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마당에 북한의 4차 핵실험이든 무인기든 안보 위기를 부각시켜야 했는데, 안보실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타이밍'을 제때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김 실장의 '비정무적 태도'가 문제였던 것이다.
같은 안보 세력 내에서도 갈등은 있을 수 있다. 군이라고 해도 육해공군 간에도 시각이 다르고, 심지어 합동참모본부 내에서도 합참의장실과 실무 본부의 입장이 다르다.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에도 합참의장실과 실무 본부가 대립했다.
당시 의장실에는 4명의 대령이 의장을 가까이서 보좌했고 합참 정보본부와 작전본부, 전략본부가 상황을 대응했다. 여기서 전투기로 북한을 응징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의장 주변에 있던 4명의 대령은 이미 교전은 끝났지만 지금이라도 전투기로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때 합참 정보본부장이 대령한테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을 치면서 의장한테 공식 계통을 우선시해달라고 정식으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관료 조직은 각자가 갖고 있는 전문성, 책임, 권한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킨다. 마지막에 세상에 나오는 정책은 이러한 갈등의 산물이다. 군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 조직, 상황이냐에 따라 군인들의 반응이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권력과 장군의 '매춘', 이건 군대가 아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김종대 편집장 인터뷰>
① "연평해전 딜레마, 승전 vs. 개죽음"
김종대 : 한국군 상황을 조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군 장교단은 총체적으로 방황하고 있다. 상반되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우리 군은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자위권의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한미 동맹과 무관한 영역에서 북한을 응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행동할 때라는 집단적 결의를 표방한 것이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같은 시기에 전시작전권은 또 연기됐고 미국에 대한 의존이 강화됐다. 우리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제적인 기반이 잠식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군의 입장에서는 '자기분열적'인 상황을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군이 이 두 사안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김관진 장관의 경우는 노태우 정부, 노무현 정부 당시 전작권 환수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 중 하나인데 정권이 바뀌니까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군인으로서 최소한의 소신도 없는 것 아닌가? 군이 나름의 소신을 지키고 있는 집단인지 의문이다. 너무 정치논리에만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이명박 정부 때 김관진 장관은 군 상부 구조개혁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이 문제는 여론 수렴이 덜 됐기 때문에 추진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작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입장을 바꿨는데, 이는 군 내부에 있는 일종의 정신분열적인 현상이다. 본인이 하나의 흐름을 주도했다가 이제는 정치권력의 의지가 달라지니까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바꾸는 건데, 이러다 보면 본인이 어떤 사안도 주도할 수 없게 된다.
정치논리에 따라 군의 입장이 바뀌는 것은 한국군이 제대로 된 군사적인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우리 국방의 가치인지 명확히 정립돼있지 않다. 그러면서 정치권력에 대한 열등감도 커진 상태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정치권력이 군에 강하게 투영됐다.
군을 장악하려는 것은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의지가 과도하게 표출됐다. 이것이 군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생략해버렸다. 방산비리를 수사하고 군 인사 수뇌부를 자주 교체하는 등 실제적인 군사업무 개입이 많아졌고, 무인기 문제같이 위협이 아닌 것을 위협으로 부풀리는 등의 처사로 군은 상당한 굴욕감을 맛봤다. 정치권력에 치이면서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군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붙인 건 돈줄을 막아서 숨통을 조인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방 예산을 연간 4% 정도 증액시켰는데, 연간 5000억 원에서 1조 원에 달하는 불용액을 남겨서 반납하게 한 다음 이를 4대강으로 가져가 버렸다. 그러니까 결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실제 이명박 정부 5년은 국방예산이 감축되는 시기였다. IMF 때보다 더 심하게 돈줄을 죄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군은 다른 곳에서 돈을 아끼게 됐고 엉터리 무기, 싼 무기를 구입하다가 오늘날의 방산비리 사건으로 연결됐다.
정치권력과 군 사이의 소통 문제도 있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국무총리, 주요 안보 부서의 장, 외교안보수석, 안보비서관이 병역 면제자로 채워졌는데, 이들은 군사적 감수성이 별로 없는 인물들이었다. 자연히 군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나쁘게 비유하자면, 보수정권은 국방을 '매춘부'처럼 인식한다. 갖고 노는, 그러면서 짓밟고 거짓말해도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왜? 군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안되면 두들겨 패면 되고, 얻어맞아도 맷집 좋으니까. 보수 정권이 마치 하룻밤 상대처럼 군을 갖고 논 것이다. 그러면서 언어적으로는 안보의 최일선에 서 있는 것인 양 위선적인 정치적 언어가 남발한다.
그런데 당하는 군인들이 실제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워낙 오랜 군 생활동안 얻어 맞는 것이 체질화돼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언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감수한다. 이건 정치권력과 군인의 정신적 '매춘'관계다. 서로 갖고 노는 거다. 타락한 민군관계가 설정된 셈인데, 군이 정권의 시녀이자 직언을 할 수도 없게 되고, 그러면서 군인을 줄 세우고 싶어하는 정치권력과 정치권력에 줄을 대고 싶어하는 일부 군인들이 판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굴욕감은 분명히 있다. 군인들은 이를 풀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됐는데 그게 민간에 대한 공격이었다. 사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정치 논리, 특히 보수정권의 군 장악 의지 때문이었는데도 외부에 있는 언론이나 야당, 시민단체 등을 적으로 만들고 이들에게 감정의 찌꺼기를 배설해버리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굴욕감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감정을 배설하는 야당의 경우에는 보수정권에 비해 상당히 군을 존중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에 대해 파격적인 배려 정책을 시행했다. 우선 국방 변화와 혁신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아낌없이 주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국방예산 증액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군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일자리 창출이나 병영문화 개선 등의 조치가 시행됐다. 예비역 원로들이 청와대를 가장 많이 출입할 때가 노무현 정부 때였다. 재향군인회나 성우회에 대한 예우도 깍듯했다.
여기에 군의 안보 논리에 희생된 사람들, 예를 들면 북파공작원이나 국군포로 등의 문제를 양지로 끌어올린 것도 진보 정권 때 일이었다. 보수 정권 때는 국군포로라는 용어만 써도 잡아갔었다. 한국전쟁 실종자도 대공 용의점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가족까지 연좌제로 불이익을 줬고, 북파공작원 이야기하면 간첩 취급을 받던 현실을 고려했을 때 파격적인 복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으니까 이제는 예비역 장성들이 남북정상회담 할 때 국군포로 송환하라고, 납북자 데려오라고 현수막 펴고 시위를 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그 예비역분들이 배신한 전우가 바로 국군포로들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렇게까지 군을 쥐고 흔들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대 : 우선 과거 정부 통치하에 있던 군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있었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공무원이 정권 바뀌고 나서 원래 부서로 돌아갔을 때 불이익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군은 거의 집단 학살을 당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집무실에 아예 갖고 있을 정도였다.
진급심사를 할 때 군에서 진급 추천자 명단을 청와대로 보낸다. 대부분 군의 뜻을 존중하는데 청와대에서 재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 아무 문제가 없는 장교를 왜 청와대에서 반대하느냐고 따지러 오는데, 그러면 주섬주섬 책상 속에 있던 명단을 꺼내면서 따로 검증한 게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

▲ 박근혜 정부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 (NSC)회의 ⓒ연합뉴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다음 정부인 박근혜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 때 인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정부의 군 인사 중에 참여정부 때 있던 사람들이 다시 요직에 진출하게 됐다. 두 번 뒤집히니까 원위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군은 정권 교체를 할 때마다 군 이데올로기에 일종의 단층선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과거 정부에서 주요 직위자들이 수립해 놓은 정책은 일단은 청산의 대상이 되고 새로운 세력이 그걸 뒤집는 정책을 짜야 하고, 또 다시 이를 반복하고. 이런식으로 군의 군사적 담론에 단층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군에서도 무엇이 국방의 본질이고 원형인지에 대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 군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한미동맹, 전시작전권, 군 구조개편, 병력감축 문제, 병역 거부자 처리 문제 등등 군의 일련의 중요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서 완전히 정반대로 변했다. 노무현 정부 때 병영문화개선 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뒤집었고, 결국 박근혜 정부 때 또 병영문화개선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군대인가? 5년 단위 이상의 국방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마치 사형선고 받은 군인처럼 움직여 온 것이다.
군의 최고 가치는 "싸울 수 있는 군대"
프레시안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방개혁은 25년째 지지부진하다. 노태우 정부 당시 1990년 '818 군제개혁'을 통해 경쾌한 군 지휘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육군 조직과 기능이 확장되는 형태로 개혁이 왜곡됐다.
이후 김영삼 정부 때 '21세기국방연구위원회'에서 유사한 군 개혁 청사진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위기의 장군들>에서 표현하신 대로 국방 개혁은 마치 "유산상속을 앞둔 형제들처럼 이제껏 서로 협력하던 조직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전면화되는 양상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818 이후 25년 동안 국방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군이 중심을 잡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정부가 확실하게 밀어붙이지 않아서인가?
김종대 : 군은 오랫동안 정체성의 위기이자 방황기를 겪고 있다. 사회에서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군의 경우에는 요즘 방산비리가 하도 많으니까 직업군인들이 휴가 나올 때 군복을 못 입는다고 한다. 전역한 고위 장교들은 해군 출신이라고 하지 않고 해양 관련 일을 했었다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군복이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실제 그 반대로 된 셈이다. 사회와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위기의 장군들> (김종대 지음, 메디치 펴냄) ⓒ메디치
이러다 보니 본인의 인생 전체를 투자해서 달성해야 할 성과와 목표도 모호해지고, 계급과 같은 외적인 것만 명예가 된다. 예를 들어 군인이 연구기관에 가면 진급을 못한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군을 위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진급을 포기하고 군의 전력, 교리발전에 매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진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명예롭지는 않다는 분위기가 있다.
마르크 블로크가 쓴 <이상한 패배 : 1947년의 증언>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블로크가 2차대전 때 독일군에 무너진 프랑스군을 묘사한 명언이 있다. "위관 때는 동기, 영관 때는 경쟁자, 장군 때는 적이 되는 것이 프랑스 군대"라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군의 장교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성이 없다. 독일군과 똑같은 수준의 국방비를 쓰고도 전투다운 전투 한 번 못해보고 깨진 것 아닌가.
그런데 프랑스는 나중에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귀감으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는 <해동제국기>나 <징비록>을 포함해 내부의 비판에 대해 매장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한국전쟁 때 깨졌던 한국군과 프랑스 군대가 그다지 다르지 않음에도 말이다.
아픈 부분을 꺼내놓기 두려워하는 군대는 조직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긍심이 없는 조직이다. 자신이 없으니까 숨기려고만 하고, 꺼내놓으려는 용기를 발휘할 수 없고, 그러면 방황이 장기화되고 습관화되면서 개혁에 대한 패배주의가 퍼진다. 해도 안되고, 다음 대통령되면 뒤집혀질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결국 우리 군은 중심도 없고 방향감각도 없는 것 같다. 전작권 환수도 하지 않고 지금처럼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서 자기만의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 싶다.
김종대 : 예전 같으면 합참에서 작전계획 짜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환수 움직임이 시작됐고 합참 조직이 개편됐다. 이때 합참을 전투 위주의 조직으로, 명실상부한 '한국군 사령부'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더니 어느 날 보니까 한미합동군사훈련도 한국군이 주도한다면서 작전 계획을 짜고 있더라. 한국군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런데 이명박 말기-박근혜 초기에 예비역들이 끼어들어서 그나마 올라가던 군사적 역량을 다시 죽여놓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군에는 군을 총지휘할 '한국군 사령부'가 없다. 원래 군이 있으면 총사령부가 있어야 하는데 전작권이 없으니까 사령부도 없다. 유엔사 정전식 교전수칙에도 우리 합참의 임무가 없다. 천안함, 연평도 때 계속 실수를 연발했던 이유도 합참이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비역들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그들은 전투 위주로 합참 조직을 개편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이걸 선진화해 놓으면 미국이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전작권을 늦게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설사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자는 것과 같다. 조직이 개편되지 않으면 교리는 어떻게 만드나? 지금도 미국이 없으면 단 하루도 전쟁을 치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주장만 계속되면 자체 역량을 키울 수가 없다.
실제 우리가 가진 역량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을 찾아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했다. 그런데 탄도미사일은 고도가 높아서 나중에 표적 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기술로는 이런 조치가 불가능하다. 또 GPS의 경우 미국 군용을 사용하는데, 한국이 자체 개발한 무기에는 못쓰게 막아놨다.
이뿐만 아니다. 일반 탄약 비축 분량은 일주일이지만 정밀 유도탄은 하루 이틀 분량도 없다. 미국의 잠수함 분석 정보가 없으면 잠수함 기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군은 모든 면에서 미국의 단말기만 많이 깔아 놓은 상태다.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은 거의 없다.
프레시안 : 미군이 없으면 전쟁을 못하기도 하지만, 미군이 지원해준다고 해도 지금 우리 군이 전쟁이 가능한 군인지 의문이다.
김종대 : 지금 군의 가장 큰 불명예는 싸울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난해 일어났던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을 되돌아보자. 당시 소초장은 3km가 떨어진 옆 중대 본부로 달아났고 부소초장은 휴가 중이었다. 밑에 중사는 탄약고 열쇠를 못 찾았다. 그 열쇠를 소초장이 상황병에게 주고 갔는데 이 상황병은 책상 밑으로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탈영한 임 병장은 총 6번의 검문을 받았는데 전부 "안녕히가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 동부전선 GOP 총기사건의 현장검증이 실시된 지난 7월 8일 임 병장(가운데, 검은 모자)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참혹한 것은 그걸 검거한다고 9개 대대가 출동했는데 그 출동 부대 중에 관심병사들이 많아서 자기들끼리 놀고, 민가에 가서 강아지랑 놀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발사고로 소위가 팔에 관통상을 입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죽하면 검거 작전을 지휘하던 연대장이 군단장한테 전화해서 병력 통제 안 되고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병력 다 빼달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수습하겠다고. 그래서 임 병장한테 그 연대장이 직접 가서 휴대전화랑 볼펜 던져주고 데리고 나왔다. 이런 군대가 전쟁할 수 있을까?
전쟁할 수 없는 군대를 할 수 있는 군대로 바꿔야 하는데, 사실상 군의 변화를 실행하는 중견 장교들은 언론과 시민사회 등 외부의 비판에 대해 공포스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실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회의하면 대령들은 약점 잡힐까봐 아무 말도 못한다. 이들의 최고 목표는 내가 관리하는 부대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다. 전방에 가면 초급 간부들이 밤 10시까지 퇴근을 못한다. 병사들만 따로 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봐. 퇴근해서도 불안하니까 생활관에 CCTV를 설치하자, 군번줄에 전자태그를 달아서 병사들의 동선을 상황실에서 파악하자 등등 별의별 조치들이 다 나온다. 이거 유치원에 CCTV 달자고 하는 이야기랑 똑같다. 지금 초급간부들이 유치원 보모인지 간부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병사의 엄마가 부대 앞에서 하숙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품 넣어주고 치킨 배달 시켜주고, 지휘관에게 수시로 문의하고. 이런 애들을 억지로 잡아다가 끌어 앉혀 놓고 보니 돌아다니는 시한폭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군 최고위층인 장군만 돼도 자기 병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상하 간 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등 어딜 가더라도 사단장과 병이 같이 밥 먹는다. 장군 식당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식당도 다르고 자는 것도, 심지어 군화도 다르다. 이렇게 뭐든 다르게 찢어 놓으니 권위주의만 짙어진다.
이렇게 군대가 운영되고 있으니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상황이 이정도 되니까 이제는 국민이 군을 부담스러워한다. 군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까운 것이다. 군이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잃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현실 안주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진짜 명예를 찾는 길로 갈 것인지, 한국군이 어느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인지 물어보고 답을 들어야 한다. 자주국방, 전작권 같은 문제가 이념적으로 부담스럽다면 대통령은 우선 지금 군대가 군대다운 군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고 자기 본분에 충실해야 하는데, 이념적 구호는 난무하면서 실상은 무너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군인들 내부의 집단 정신이 나와서 하나의 목표를 합의하고, 이를 통해 결의를 다지다 보면 전작권도 언젠가는 자신있게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래서 장군들이나 군 고위직을 만나면 변명하는 식의 보도자료 내지 말고 장교의 본분과 명예를 찾겠다는 자기 선언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명예는 자기 스스로 지키는 건데 이 부분에 대해 한국군의 의지가 아직 안나오고 있다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실마리를 풀어보면 군에 적폐가 나온다, 이걸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한국군의 자질은 전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동안 이들을 계속 억누르면서 '똑똑한 바보'들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군에 모멸감을 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군이 자존감을 외부에서 보상받겠다고만 생각하면 국민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다니는 초라한 모습만 보이게 될 것이다. 군에게 진짜 명예는 진실에 기초하여 각자의 전문성으로 국방의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의 몫이다. 이런 사람들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고 군대를 군대답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