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네가 계속 부족한 선생이기를…

일취월장7 2015. 6. 24. 15:16

 

네가 계속 부족한 선생이기를…

교직 7년차 아들의 고민은 30년 교직 생활 내내 나의 화두이기도 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조회수 : 387  |  안준철 (순천 효산고 교사·시인)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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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승인 2015.06.24  08:59:37

지난 석가탄신일에 가족 여행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교직 7년차 아들의 안색이 피곤해 보였다. 아들은 올해 근무지를 옮기면서 전 학교에 비해 규모가 커진 학교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역시 학교 이야기를 했다. 야간자율학습(야자) 시간에 자기 반 학생들이 너무 떠든단다. 학생들이 떠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떠든다고 뭐라고 하는 게 문제였다.

올해 고1 담임을 맡은 아들은 아직도 중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이 무척 귀엽다고 했다. 야자 시간에 떠든다고 다른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으면 그걸 억울해하기보다는 자기들 때문에 담임이 혼날까 봐 걱정하는 착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야자 시간에 조금 떠들었다고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양 취급받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했다. 학교에 남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보내버리면 그런 일도 없을 텐데 강제로 붙잡아두면서 야단을 치는 것은 뭐냐고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아들에게는 더 큰 고민이 있는 듯했다.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아니 즐길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일정한 한계 속에서나마 현재를 즐기도록 담임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아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사실, 아들의 고민은 30년 교직 생활 내내 나의 화두이기도 했다. 막연한 미래의 꿈과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아이들! 가령 장래 희망이 의사인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는 나이가 35세라고 하자. 이런 지난하고 오랜 과정이 단순히 장래의 직업을 갖기 위한 투자의 성격만 지닌다면 그가 미래를 위해 저당잡힌 현재는 무려 35년이나 된다. 의사가 되기도 힘들지만 의사가 되었다고 해도 그건 절반의 성공이 아닌가.

음악 시간에 음반 한 장을 만들어보는 이유

또한 이런 물음도 생긴다. 그 절반의 삶이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의사가 되기 위한 투자 기간이라는 종속적인 의미만을 갖게 된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삶도 온전할 수 있을까?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답게 매일 만나는 환자들을 생명으로 대할 수 있을까? 그는 혹시 그가 투자한 삶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지불받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긴, 요즘 같은 세태라면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하고 오히려 반문할 법도 하지만 말이다.

아들의 블로그에서 ‘음악시간 음반 제작회의’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학교 수업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준비만이 아닌 ‘지금 여기’의 즐거움과 살아 있는 기쁨에 기여해야 한다는 나름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글로 읽혔다.

“해마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조별 협동학습으로 음반 만들기 작업을 한다. 주제와 세부적인 분류 혹은 스토리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해 정규 앨범의 분량으로 CD 한 장을 만들어낸다. 귓가에 스치듯 음악을 듣던 학생들이 이 과정을 지나면 음악을, 그리고 음반을 만드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계획과 철학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고 좀 더 주의 깊게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되길 바라고, 그것이 이 수업의 기획 의도다.”

글 아래에는 표정이 펄펄 살아 있는 귀엽고 해맑은 고1 남학생들의 앳된 모습과 더불어 사진마다 코멘트도 달려 있었다. 이런 내용도 있었다.

“아이들이 떠들고 노는 것인지, 회의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가는 창의적인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웠다. 왕성한 젊음의 혈기를 어쩌지 못하여 떠들썩하게 살아 있는 교실에서 교사의 긍정 어린 눈빛 세례를 받으며 몸과 마음이 영글어가는 아이들은 내가 볼 때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사진 아래 이런 마무리 글귀가 눈에 띄었다.

“조금씩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옴을 느낀다. 조금 더 엄한 담임이 되면 좋겠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웃음에 그 다짐이 1초도 안 되어 녹아내리는, 아직은 부족한 담임인가 보다 나는….”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읊조렸다. ‘아들아, 네가 계속 부족한 담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