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천천히 살 권리’

일취월장7 2015. 4. 27. 12:50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천천히 살 권리’

‘아직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꼭 빌려준 돈 받으러 온 사람 같다. 생각을 키워주는 일보다 과제를 다그치는 일이 일상을 채운다.

  조회수 : 285  |  양영희 (하중초등학교 교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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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승인 2015.04.27  08:57:36

고학년을 맡고 한 달이 지났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는 도덕·국어·수학·사회·과학·영어·체육·미술·실과·음악 등 10개다. 여기에 교과서는 없지만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적응 활동, 봉사 활동 등의 영역으로 된 ‘창의적 체험 활동’이라는 과목이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3~4개 과목은 교과전담 교사(대체로 영어·음악·과학 등이며 해마다 자율로 정함)가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담임교사가 진행한다. 담임은 전담 과목을 빼더라도 8개 과목을 연구해 진도를 나가야 한다.

누가 봐도 교과목이 너무 많다. 절대 혼자 잘 가르칠 수 있는 분량과 영역이 아니다. 초등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또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분량이 늘어 다뤄야 할 내용들이 숨 가쁠 정도로 많다. 교사도 헉헉대고 아이들도 미처 소화하지 못한 내용들을 덮어놓고 뒤따라 다닌다.

교과서 어디에서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학생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각 교과에 관련된 흔히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와 의도들만 보인다. 혁신학교가 도입되면서 주제를 정하고 과목의 연관성을 찾아 다시 모으고 가르는 작업을 통해 배움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학교가 많아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그런데 교과서를 재구성하다 보면 머릿속이 늘 복잡해진다. 차라리 큰 주제나 도달 목표만 주고 교과목이나 교과서를 주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교사가 주제 구성을 할 때 욕심을 내면 국가에서 정해준 진도를 쫓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만들어주거나 검인정으로 만든 교과서들이 유용한 것도 아니다. 과목만 달랐지 비슷한 내용들이 여기저기서 반복되기 일쑤다. 재구성은 이런 것들을 분석하고 주제를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살려 깊이 공부하려고 시도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은 10개의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따라오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갈까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80분 단위로 진행되는 블록 수업인데도 교사와 아이들은 늘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수학 시간에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국어책을 펴야 한다.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오전 내내 좋아하는 책을 읽게 했다간 다음 진도 때문에 탈이 날 정도로 달려야 한다. 그러니 계획했던 토론 수업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시간에는 매일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배움공책’을 써야 하는데 그것도 밀린다. 알림장만 대충 썼는데도 청소할 시간도 없이 학원 차에 올라야 한다. 아이들 생각을 키워주는 일보다 미완의 과제를 다그치는 일이 학교에서의 일상을 채운다.

벚꽃과 개나리는 누구를 위해 피는 걸까

요즘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후에 절대 아이들을 남길 수 없다. 아이들도 꽉 짜인 스케줄 때문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소가 안 된 교실을 담임 혼자 뒷정리할 때가 많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떠안고 사는지 보게 된다. ‘책 읽기, 수학 학습지, 감상문 쓰기, 보고서 쓰기, 모둠 활동지 완성하기….’ 헉헉대며 늘 ‘아직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꼭 빌려준 돈 받으러 온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몇 개씩 부채가 밀려 나중에는 그것들을 포기하고 만다. 교사도 암묵적으로 이 상황을 넘어가기도 한다. 목록이 많아서 기억하기도 힘들고 그것만 잡고 있다간 아이가 주저앉아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밀린 숙제와 밀린 공부에 짓눌려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친구, 꿈, 희망, 좋은 세상, 이웃….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또 밀리고 밀려서 아이들 삶 밖으로 나가 있는 형국이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살 권리’를 주었으면 좋겠다. 꽃피고 그 꽃을 찾아 벌과 나비가 날아오는 것을 몸으로 만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매화도 목련도 개나리도 아이들보다 예쁠 순 없다. 그렇게 예쁜 아이들이 꽃들이 방긋방긋 웃는 것도 못 보고 햇살이 이렇게 다정한 것도 느낄 겨를이 없이 공부의 양에 압사당하려고 한다. 벚꽃과 개나리는 누굴 위해 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