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퍼센트대 성장이 경기 침체? 그건 아니다
3퍼센트대 성장이 경기 침체? 그건 아니다
요즘 국내 경제 연구 기관이 펴내는 한국 경제에 대한 단기 진단이나 중장기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평소 일반적으로 낙관론을 선호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해외 경제 기관마저 한국 경제의 장래를 우려하며 직선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과연 위기인가? 최근 뜨겁게 논쟁 중인 현안 문제, 즉 한국 GDP 성장률을 살펴보자.
한국은행이 2015년 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에 예측한 3.4퍼센트에서 얼마 전 다시 3.1퍼센트로 낮추었다. 심지어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퍼센트로 크게 낮추었다. 이유는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엔화 약세 심화, 열악한 민간 소비,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 등이다.
이처럼 침울한 경기 침체는 한국 젊은이의 소위 '5포 현상'을 불러왔다. 직업 포기, 집 사기 포기, 연애 포기, 출산 포기, 취직 포기가 그것이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과연 이처럼 비관적인가? 이 문제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3.0퍼센트대의 성장률을 '경기 침체'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 국민은 아직도 1970년대의 '독재 압축 성장 시대'와 최근 20여 년의 '중국 등 신흥국 주도 경제 성장'의 꿀맛에 젖어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기본 구조는 급진전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이루어진 IT 혁명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적인 대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즉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선진국이 초로 현상을 거치면서 구조적 '장기 침체'에 빠지고, 과도한 국가 부채로 인해 케인스의 재정 확대 정책이 불가능해져 성장 엔진이 거의 멎은 '밑바닥 경제'의 늪에 빠져 있다. 이같이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에서 3퍼센트대의 경제 성장은 결코 침체나 위기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조건이 하나 있다.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보다 높거나 비슷해야 한다. 잠재 성장률이란 한 국가가 주어진 세계 경제 여건에서 주어진 자연자원과 인력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성취할 수 있는 성장률을 뜻한다.
한국의 경우, 실질 성장률이 3퍼센트이든 3.7퍼센트이든 상관없다. 이것이 한국의 현시점 '잠재 성장률'보다 높거나 비슷하면 된다. 그것이 허황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현실적인 경제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어느 정도인가? 한때는 7∼8퍼센트를 넘은 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여러 경제 연구소(5∼6개)의 추정에 의하면 2015∼2025년의 잠재 성장률은 2.8∼3.5퍼센트선이라고 한다.
3퍼센트대 성장률을 현실적 목표로 인정하고 중장기적 경제 정책 추구해야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하나는 초단기 경제 성과만이 목표인 정치권에서 '3퍼센트대의 GDP 성장률이 침체다, 아니다'라고 아우성치며 싸우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3퍼센트대의 성장률을 일단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로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이 3퍼센트 정도의 성장 과실을 어떻게 분배해야 더 높은 잠재 성장률을 이룰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평한 소득 분배와 잠재 성장률 제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중장기적인 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분배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 요소 소득 측면에서 각 요소의 생산성에 부합하는 공평한 소득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주어진 노동 소득을 노동 요소 간에 공평히 분배하는 문제이다. 비정규직의 임금 문제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는 정치권과 경제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잠재 성장률 제고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자원 부국이 아닌 경우, 한 나라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노동 생산성 향상, 자본 생산성 향상, 기술 진보와 재벌 개혁 등을 통한 경제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온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이고 단기적인 정치권의 전략과는 차원이 다르다.
1)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 분야를 '발굴'하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의 경우 국내 시장, 정부 지출, 수출 진흥 등 수요 진작을 통한 잠재 성장률 증가가 한계에 도달하여 공급 면에서 혁신적인 변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2) 조세 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여 구조적인 내수 수요를 진작해야 한다. 부자 증세와 소득 중심 성장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3) 인구 고령화와 직결된 '사회 안전망' 지출 증가의 적절한 세대 간 배분을 성취해야 한다. 장년층의 연금 및 건강보험 등의 문제와 청년층의 취업 등 세대 간의 '상충 효과'(Trade-off)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적절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4) 국민의 소득 상승 기대에 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삶의 '양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변화를 수용하는 문화적 변화를 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어렵다고 손을 놓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어려운 구조조정에 성공하느냐, 남미의 나라들처럼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마느냐는 국민의 행동에 달려 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원광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