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안심전환대출로 안심하기엔…
일취월장7
2015. 4. 24. 10:36
안심전환대출로 안심하기엔…
한국의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안심전환대출은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조치다. 정부가 부동산 대출에서 시작될지도 모를 금융위기를 우려해 내놓은 조처로 보인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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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승인 2015.04.24 08:58:38 |
3월 말~4월 초, 금융상품 하나가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른바 ‘안심전환대출’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대대적인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를 감행해왔다. 가계 대출 규모가 급증했지만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속내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심전환대출’은 민간 주체들(은행과 대출자)이 이미 약정한 상품 가격(여기서는 금리)을 인위적으로 낮춰버린, 강도 높은 정부 개입 정책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2013년 말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무려 1.6배로 OECD(평균은 1.35배)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1002조9000억원(판매신용 제외)인데, 이 중 절반 이상(55.3%)인 554조6000억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이런데도 나라 경제가 버텨온 것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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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한 시중은행의 안심전환대출 창구(위).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 조건을 ‘(비교적 낮은) 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바꾸는 이 대출이 인기를 끌었다. |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할 수는 없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 역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낮은 금리를 유지했다가는 국내의 돈이 미국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엄청난 충격이 불가피하다. 금리를 올려도 문제다. 상당수의 ‘주택담보대출 가계’가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자빠질 수 있다. 은행 처지에서는 못 받을 돈이 늘어나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다. 결국 부동산 대출뿐 아니라 기업의 사업자금에 대해서도 새로 대출하기보다 이미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데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는 전 사회적 자금 경색, 즉 ‘부동산 대출발(發) 금융위기’다.
이런 상황을 차단하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금리가 올라도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만은 인상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국내 주택담보대출 계약에서는 ‘변동금리-일시상환’ 조건이 압도적이다. 금리 변동에 따른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한꺼번에 원금을 갚는 방법이다. 안심전환대출의 목표는 이 같은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 조건을, 대출 계약 때 정한 금리로 거치 기간 없이 처음부터 원금을 나누어 내는 쪽(고정금리-분할상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직장인 A씨가 ‘변동금리(현재는 연간 3.5%)-일시상환’ 조건, 20년 만기로 2억원을 빌렸다고 가정하자. A씨는 이 기간 전체에 걸쳐 은행에 1억4000만원의 이자를 내고(매월 58만원), 만기에는 원금 2억원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은행으로서는 A씨로부터 ‘20년 동안 3억4000만원을 받을 권리(=대출채권)’를 보유한 것이다. 현재 금리 수준이 사상 최저라는 것을 감안하면, A씨의 상환금은 이 수준을 훨씬 웃돌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A씨가 안심전환대출로 계약을 바꿔, 고정금리 2.8%로 원금과 함께 계속 갚아나가게(분할상환)되면, 전체 기간 그가 갚아야 할 총액은 크게 줄어든다. 시간이 갈수록 원금이 줄어들면서 납입 이자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의 계산에 따르면, A씨가 20년 동안 내야 할 이자는 모두 6000만원 정도다. A씨에 대한 은행의 대출채권은 2억6000만원(원금 2억원+이자 6000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A씨는 이자와 함께 원금도 나눠 내야 하므로, 초·중반의 상당 기간에 기존 계약보다 더 많은 상환 부담을 지게 된다.
외형적으로 은행의 손해가 크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에서 은행은 ‘대출 장사’에서 사실상 빠지게 된다. 은행이 실제로 손해를 보는지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A씨의 경우, 은행과의 기존 계약(변동금리-일시상환)을 청산(일시 중도상환)하고 새로운 대출계약(고정금리-분할상환)을 체결했다고 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의 대출채권(일정 기간 채무자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이 사라진 대신 새로운 대출채권이 생성되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은행은 새로운 대출채권을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에 매각하고 ‘현금’을 받는다. 즉, A씨가 앞으로 갚을 원금과 이자는 은행이 아니라 주택금융공사에 귀속된다. A씨가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손실 역시 은행이 아니라 주금공으로 돌아간다. 기존 계약의 양대 주체는 은행과 대출자였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의 양대 주체는 주금공과 대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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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주택담보대출 294조원 중 34조원만 해당
그렇다면 주금공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일반적으로는 은행에서 양도받은 대출채권을 기반으로 새로운 채권을 발행한 다음 투자자(각종 금융기관)들에게 판매한다. 이른바 주택저당증권(MBS). MBS를 매각한 돈이 대출 재원이다. 다만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주금공의 MBS는 일단 은행들이 매입한 뒤 1년간 보유해야 한다. 은행이 ‘대출채권을 주금공에 팔고 받은 현금’을 다시 대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은행 처지에서는 ‘국가의 횡포’다. 대출채권을 주금공에 넘긴 것은 ‘장사 기회’를 국가에 빼앗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그 매각대금을 사실상 강제로 MBS 매입에 사용해야 한다. 돈이 묶인 것이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라도 금리가 인상되면 MBS 같은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비례).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탄 채무자들이 커진 부담(원금을 분할 상환해야 하므로) 때문에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 MBS의 인기(=가격)가 떨어지게 된다. 은행으로서는 자칫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이 불평만 할 것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은 계속 커진다. 현재로 볼 때는 ‘장사 기회’를 빼앗긴 것이지만, 이후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이 실제로 전개되면 가슴을 쓸어내릴 수도 있다. 금융위기가 터진다면 가장 큰 희생자는 은행이다.
오히려 큰 문제는 안심전환대출이 ‘안심할 만한 규모의 예방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554조6000억원 가운데, 은행권(제1금융권)의 몫은 294조원 정도다. 이 중 86.6%인 255조원이 ‘변동금리나 일시상환’ 조건의 불안한 돈이었다. 안심전환대출로 바뀐 계약 규모는 이 가운데 34조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26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은행 이외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의 고객은 일반적으로 은행 대출자에 비해 신용등급과 소득이 낮다. 금리 인상에 가장 취약한 계층과 대출 계약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저소득층 대출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