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그들을 세금 도둑으로 만드는 완벽한 방법
일취월장7
2015. 4. 13. 10:28
그들을 세금 도둑으로 만드는 완벽한 방법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어디로 표류한 걸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시사IN>이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지난 1년간의 여론 지형 변화 추이를 살펴봤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 희생자는 손쉽게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혔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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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승인 2015.04.13 01:49:18 |
4월은 돈으로 시작했다. 4월1일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희생자 1인당 8억원(단원고 학생)에서 11억원(단원고 교사)에 이르는 배상·보험·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보수 언론은 지급액을 강조하는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4월2일, 희생자 가족은 분노했고 삭발로 항의했다. 4월3일, 정부는 다시 돈으로 답했다. 희생자 가족에게 생계지원금으로 월 11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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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지난해 10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나오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 자리를 떠났다. | ||
< 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회사 ‘아르스 프락시아’(옛 트리움)와 함께 여론 지형의 변화 추이를 짚었다. 주요 분석 대상은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댓글이다. 참사 1년 전인 2013년 5월부터 2015년 3월까지 96주에 걸쳐서, 네이버 정치·사회 섹션 주간 상위 20개 기사의 추천 상위 댓글 100개를 대상으로 했다. 기사 총수는 4172건, 댓글 총수는 41만7200건이다. 이 밖에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 분석 결과도 참고했다. 온라인 공간 여론 분석은 오프라인과 괴리를 보일 때가 있어 주의 깊게 다뤄야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표출하기 힘든 날것 그대로의 정서를 확인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경우 온라인 여론은 실제 여론의 선행지표가 된다.
이 시기 여론은 희생자 가족에 대해 강하게 감정이입한다. ‘유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며(파란색),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구조’되기를 바란다(초록색). ‘대통령’은 ‘사과’하고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붉은색). 반발하는 흐름은 있다. 하지만 소수파다. ‘유족’이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노란색). 이 반응은 지도 한구석에 고립되어 있다.
‘선동’은 보수가 적대 세력에게 즐겨 붙이는 딱지다. 참사 직후에 정권 보위 반응을 보인 보수 블록은 거의 조건반사로 ‘선동’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이번엔 안 먹혔다. 상대가 이른바 ‘전문 시위꾼’이 아니라 참사의 희생자 가족이었다. 어마어마한 감정이입의 물결 속에 ‘선동’ 공세는 대세를 돌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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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33쪽 <그림 3>을 보자. 2014년 7~9월 ‘유족’ 키워드 담론 지도다. 앞서의 지도와는 전혀 다르다. 이번 지도에서는 ‘유족’이 적대적 여론에 완벽히 포위된 모습이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도의 오른쪽 파란색 대륙이 가장 크다. 키워드의 일관성이 뚜렷하다. ‘특례’ ‘특별법’ ‘특혜’ ‘보상’ ‘의사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에 과도한 특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정서가 여론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특권’은 ‘선동’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다. ‘선동’이 정치색 강한 조롱에 가깝다면, ‘특권’은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을 자극한다. 특권이란 ‘자격 없는 이에게 돌아가는 보상’, 그러니까 무임승차다. <시사IN> 제367호는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이용자들의 심리체계를 ‘무임승차 혐오’ 코드로 짚어낸 바 있다. 세월호 희생자를 특권층으로 포장해 대중의 무임승차 혐오를 자극하는 것은 일베가 즐겨 쓰는 무기다(‘이제는 돌아와 국가 앞에 선 일베의 청년들’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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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가족은 피해자인가 특권층인가
세월호 희생자에게 무임승차 딱지를 붙이는 여론 뒤집기는 어디서 출발했을까. 상세 분석 결과를 보면 이른 시기부터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키워드가 있다. ‘특례’다. 생존자나 희생자 가족의 대학 특례입학 문제가 정치권에서 떠오른 순간은 여론 반전의 결정적 장면이었다. 대입 특례 혜택을 받는 대상자는 많지 않고, 정원 외 특례로 입학하므로 피해자도 없다. 그런데도 대입 특례 문제는 여론을 폭발적으로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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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는, 실제 현실이야 어떻든 간에 한국인의 집단 심성에서 혈연과 지연, 재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청정지대다. 대입은 계층 사다리 상승의 가장 결정적인 기회로 간주된다. 그래서 대입은 ‘공정과 능력주의의 보루’라는 특별한 가치를 상징한다. 대입 특례는 이 가치를 침범하는 중대한 반칙이 된다. 이 이슈야말로 대중의 무임승차 혐오 스위치를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누른다.
이제 대입 특례라는 ‘특권의 증거’가 확보됐다. 이후로는 세월호 관련 논의가 ‘체계적으로’ 산으로 갔다. 의사자 지정, 유가족 보상, 특별법 논의가 모두 특권 코드로 재배치되었다. 7월 이후 세월호 후속 논의는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희생자 가족이 피해자인가 특권층인가’로 흘러갔다. 이 일그러진 구도에서, 희생자에게 감정이입하는 태도는 무임승차 혐오 코드에 완패했다.
위 <그림 2>는 감정이입 키워드(‘동정’ 등)와 무임승차 혐오 키워드(‘특혜’ 등)의 등장 횟수를 월별 그래프로 그린 결과다. 6월까지는 감정이입 키워드가 압도하지만, 7월부터 무임승차 혐오 키워드가 폭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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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왼쪽)을 만났다. | ||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아 희생자 가족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상과는 반대로, 이 장면도 특권층 코드를 오히려 강화했다. 희생자 가족은 교황의 위로를 받는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다. 특권 관련 키워드의 등장 횟수가 정점에 달한 때가 8월이다.
9월에는 이른바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그림 3>의 노란색 대륙). 여론전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전환점이라기보다는 결정타였다. ‘약자인 대리기사 대 특권층 희생자 가족’ 구도는 기존 여론 지형에 손쉽게 이어붙일 수 있었다. 당시 희생자 가족의 술자리에는 국회의원이 동석했고, 이 역시 그들이 특권층이라는 증거로 간주되었다.
네이버만의 특이 사항이 아니다. 폐쇄형 네트워크로 유언비어 유포에 부담이 덜한 카카오톡의 상황은 더했다. 전원 의사자 지정, 공무원 시험 가산점, 유가족 생활 평생 지원, TV 수신료 감면, 수도·전기요금 감면, 아이보기 지원, 간병 서비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요구했다는 ‘특례의 목록’이 카카오톡을 뒤덮었다(<시사IN> 제369호 “표 모아주던 카톡 어쩌다 ‘가카의 톡’ 됐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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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이 7월24일인데, 당시만 해도 여론의 뭇매를 맞을 무모한 발언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번 분석 결과로 보면 7월은 대입 특례 논란 이후 여론 반전의 기운이 이미 형성되던 때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계산했든 본능적이든 갓 떠오르던 특혜 코드를 정확히 자극한다. 보수가 보기에 ‘자격 있는 희생자’인 천안함을 대조시켜 ‘그저 교통사고’인 세월호 희생자를 특권화하는 기술도 보여주었다.
특별법 통과 이후에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타깃이 되었다. 이번에는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나섰다. 그는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도둑” “탐욕의 결정체”라고 원색 비난했다. 세월호 희생자 특권화의 선봉에 섰던 주호영·김재원 의원은 겸직 논란까지 불사하며 올해 3월 청와대 정무특보 임명장을 받았다.
정부가 4월을 돈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보상금 논의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특권층으로 뒤집는 효과를 낸다. 희생자를 여론에서 고립시키는 검증된 스위치다. 노골적이지만 강력하다. 참사 1주기를 맞이하는 정권 처지에서는 이만한 ‘위기관리 전략’이 없다.
의문은 남는다. 무임승차 혐오 코드가 아무리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이라고 해도, 자식 잃은 부모에게 감정이입하는 태도 역시 강력한 인간 본성이다. 실제로 지난해 4·5월의 온라인 여론을 지배한 것은 후자였다. 정부·여당의 필사적인 노력을 고려해도 반전은 지나치게 빠르고 전면적이었다.
단서가 있을까. 분석팀은 <그림 3>의 붉은색 대륙에서 키워드 하나를 주목했다. ‘세금’이다. 희생자가 받는 ‘특혜’는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을 낭비한다는 서사로 이어진다.
‘특혜 코드’가 켠 조세 저항 스위치
월별 여론 추이를 보면, 세월호 이슈는 8월을 정점으로 점차 비중이 줄어든다. 9월에는 새로운 이슈가 세월호를 대체하는데, ‘담배’에서 ‘세금’으로 이어지는 고리다. 담뱃값 인상 검토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여론은 조세 저항으로 폭발했다. 세금 문제는 세월호 이슈를 비주류로 밀어냈다. 이후 연말정산 등 세금 관련 이슈가 연일 여론을 이끌고 가면서 세월호 이슈는 2014년 11월에 분석 범위 내에서 소멸했다.
분석팀은 ‘세금’을 키워드로 새로운 여론 지도 두 장을 그렸다. 34쪽 <그림 4>는 2014년 4월부터 9월까지, <그림 5>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3월까지의 세금 담론 지도다.
< 그림 4>는 세월호 이슈가 어떻게 세금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별법’이 생기면 ‘세월호’ ‘유족’이 받는 ‘보상’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게 된다(노란색). 특혜 코드는 이렇게 조세 저항 스위치를 켠다. ‘내가 낸 혈세’로 ‘저들의 특혜’를 충당한다는 서사가 완성된다. 이미 이 시기부터 세금 문제는 담뱃값(초록색)이나 공무원 연금(붉은색) 등 민감한 이슈와 연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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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이슈가 가장 달아오르던 때를 분석한 <그림 5>는 아예 조세 저항의 결정판이다. ‘증세’ ‘담뱃값’ ‘연말정산’은 ‘서민’을 쥐어짠다(남색). 반면에 ‘대기업’은 ‘법인세’ ‘감세’ 혜택을 받는다(초록색). 이런 부당한 현실을 조장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심지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된다(붉은색). 2014년 9월 이후 온라인 여론을 지배한 것은 단연 세금에 대한 분노였다.
“심각하네요. ‘공적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어요.” 분석을 총괄한 아르스 프락시아의 김도훈 대표가 탄식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감정이입은 가족을 잃은 아픔이라는 사적 공감대를 넘어서지 않고, 여론은 공적 고민의 징후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35쪽 딸린 기사 참조).
공적 문제의식 없이 사적 공감대 하나만으로 버티던 감정이입은 국면 변화에 취약했다. ‘세월호 특혜-혈세 낭비’ 담론이 ‘무임승차하는 특권층과 세금을 뜯기는 나’라는 대립항을 만들어내자 여론은 쉽게 반전되었다. ‘공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든 국가든 내 주머니를 건드리지 마라”라는 날 선 분노다.
강한 조세 저항의 밑바탕에는 두 가지 불신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국가가 내 돈을 걷어가서 제대로 쓸 것이라고 믿지 않고, 내 이웃이 나만큼 세금을 정직하게 내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이중의 불신이 지배할 때 세금이 공정하다고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회에 신뢰가 부족하면 조세 저항이 쉽게 폭발하는 이유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1995)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분류했다. 이후 후속 연구들도 대체로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가족 유대가 끈끈한 한국에 신뢰가 부족하다는 말이 한 번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족의 강한 유대야말로 저신뢰 사회의 유력한 징후다. 가족 울타리 밖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을 때, 혈연이라는 보증 체제에 더 집착한다. 한국은 낯선 사람이나 외국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낮은 반면에 가족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OECD 12개국 평균보다 높다(33쪽 아래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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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뢰 사회에서는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도 쉽다. 다른 이들이 당연히 무임승차를 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을 되짚어보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대체로 공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진상 규명 권한을 요구했고,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시스템 구축을 원했으며, 한국 사회가 희생자들을 공적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이른바 선진국 사회가 보여주는 참사 이후의 모습이 대체로 이렇다.
한국과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 타인의 공적 요구는 ‘말만 그럴듯할 뿐 실은 제 사익을 챙기려는 꼼수’로 거의 자동 번역된다. 참사 국면에서 무능을 노출해 위기에 몰린 정부·여당은 사실상 ‘희생자 고립 작전’을 폈다. 대입 특례 추진과 같은 야당의 몇몇 실수도 기름을 부었다. 그렇게 희생자는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