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새로운 것을 보면 ‘얼마냐’고 묻는 아이에게
일취월장7
2015. 3. 17. 10:32
새로운 것을 보면 ‘얼마냐’고 묻는 아이에게
아이들이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 당황스럽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수한 것들을 알게 하고 싶다. 3월, 나의 다짐이다.
조회수 : 332 | 양영희 (하중초등학교 교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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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승인 2015.03.17 04:09:12 |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어느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 아이는 동물과 곤충들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길 원했다. 그럴 여건이 안 되는 부모는 아파트에서 키울 수 있는 동물을 키우도록 허락했고 아이는 2~3종류의 동물을 직접 집에서 키운다. 어느 날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 인근의 동물원에 갔을 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저씨! 여기서 저기까지 다 포장해주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그분의 말에 호응을 해주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마 당황한 내 표정을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자신의 아이가 그런 말을 한 것이 매우 특별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그 아이의 모습은 이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릴수록 그 ‘정도의 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넘을 뿐이다. 교실에서도 교사가 조금만 새로운 것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묻는다. “선생님 그거 얼마예요?” “어디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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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
비싼 옷 때문에 체육 시간에도 움츠리는 아이들
그래서 값나가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고장 나는 일이 생기면 공부 시간도 상관없이 울고 다닌다. 체육 시간에도 비싼 옷이나 안경을 버릴까 봐 몸을 움츠리는 아이들이 많다. 옷을 버리고 안경이 깨지면 생길 피해를 미리 환산하며 활동에 소극적인 것이다. 부모들도 이런 경우에 아이를 야단치며 돈 얘길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땐 아이가 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가 달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활동 중에 망가진 것들은 대부분 상대 부모가 변상해준다. 이런 모습을 본 아이들의 행동양식이 어떨지 이미 우리가 본 것이다. 미래의 아이들이 “당신 삶은 얼마짜리예요?”라고 묻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으로도 ‘막장’ 같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에서 우울함을 느끼는 순간은 너무 많다. 이렇게 단순한 질문 하나에 아이가 인식한 세상이 다 들어 있으니 학교에서는 수시로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절망은 교실에서 출발한 것들도 많다. 아이들 말을 들어주는 귀가 없고, 말을 풀어놓을 공간이 없고, 함께 이야기하는 대상이 사라진 오늘의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이런 질문을 만든 공조자다.
얼마 전 제1회 ‘교육농 축제’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에게 멈추어 있을 장소가 있는지, 느린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라고. 우리는 텍스트대로 마구 달려왔는데 이 지경이 되었다면 새롭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지금 무엇을 물어야 할까? 작게는 어떤 교실을 꿈꿔야 할까? 아직 학교에서의 꿈은 유효한 걸까?
선생님들의 보따리가 커지는 시기다.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풀어놓을 보따리에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짠 교육과정 외에 여러 연수를 통해서 보고 들은 내용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교육방법을 차곡차곡 쟁여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따리를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려 한다. 아이 표정 하나하나, 그 마음 하나하나를 만나는 시간에 정성을 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반 모두가 소리와 공간을 고르게 공유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출구가 없어서 마음에 독소가 생기고 병이 되는,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거칠어지는 일들이 줄어들도록 도울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별이고 우주인 아이들의 세계를 연결해 뒷모습만 봐도 왈칵 정이 느껴지게 살고 싶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수한 것들을 아이들이 알게 할 것이다. 그래서 1년이 지날 때쯤 아이들이 공책 가득 돈으로 살 수 없는 새로운 가치들을 나열하게 하고 싶다. 무엇이든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받으면 되는 줄 아는 세상. 그 밖의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그 모든 것을 아이들과 처음부터 나누고 찾아야 할 시기다, 3월은.